축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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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축융은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불과 관련된 신으로, 다양한 문헌에서 묘사되며 여러 신화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름의 어원에는 도자기 기술과의 연관성이 있으며, 산해경 등에서는 묘사 및 계보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축융은 공공과의 전투, 곤 처형, 하나라 멸망 등 주요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불을 다스리고 남쪽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진다. 또한, 소설 속 등장인물이나 화성 탐사선 이름으로도 사용되는 등 현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축융(祝融)이라는 이름은 融중국어 자를 사용하여 표기하는데, 이 글자는 의례용 솥이나 세 개의 다리가 달린 삼족 솥을 의미하는 鬲중국어 자와 벌레, 뱀, 곤충 등을 의미하는 虫중국어 자가 결합된 형태이다. 데이비드 호크스는 이러한 글자 조합이 축융의 이름과 고대 중국 문화 및 도자기 기술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10]
축융은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커다란 호랑이를 탄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늘과 땅을 분리하고 전 세계의 질서를 세우는 것을 도운 신 중 하나였다.
축융은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커다란 호랑이를 탄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축융은 하늘과 땅을 분리하고 전 세계의 질서를 세우는 것을 도운 신 중 하나였다.
2. 어원 및 계보
2. 1. 신화적 계보
축융은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커다란 호랑이를 탄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늘과 땅을 분리하고 전 세계의 질서를 세우는 것을 도운 신 중 하나였다.[10]
공공과의 전투로 유명하다. 자신의 아들인 공공은 물의 악령으로 대홍수를 일으켰는데, 축융은 아들이 하늘의 왕좌를 찬탈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지하러 갔다. 둘은 하늘에서 며칠 동안 싸우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결국 공공은 패하였고 축융은 승전고를 울리며 하늘로 돌아왔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축융부인은 축융의 후예라고 서술하였다.
고대 중국 전설에 따르면, 초나라의 선조 전욱의 후손인 중려(重黎)가 제곡 즉위 후 화정(火正, 불을 관리하는 벼슬)을 맡았다. 중려는 불빛으로 천하를 밝게 비추어 큰 공을 세웠으므로 제곡이 축융(祝融)이라 부르도록 명하였다. 축융의 후손이 기(己)씨라고 전하기도 하는데, 주나라 시대 소(蘇)씨가 되었다.
《산해경》은 축융을 "그릇 가지고 놀기"로 번역되는 아버지의 아들로 묘사하고, 이 아버지는 다시 "솜씨 있는 그릇"으로 번역되는 아버지의 아들로 묘사된다(머리 꼭대기가 네모난 모습으로 묘사됨). 호크스는 《초사》의 "총론"에서 이러한 관찰을 바탕으로 도자기 기술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와 《초사》 자료의 문화적 배경 사이의 중요한 관계에 대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염제의 자손으로 여겨지며[10], 불을 관장한다[5] [6]。화재를 겪는 것을 "축융을 만나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4]。
『산해경』의 "해외남경"에 따르면, 축융은 남쪽의 신이며, 그 모습은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다[7]。
『사기』의 "삼황본기"에 따르면, 축융은 공공과 싸워 이겼지만, 그 과정에서 공공은 불주산에 머리를 부딪쳤다고 한다[8]。
『묵자』의 "비공(하)"에 따르면, 천제의 명령을 받은 축융이, 상의 탕이 하를 멸망시킬 때 하의 도성에 불을 내렸다고 한다[9]。
또한, 『산해경』의 "해내경"에 따르면, 천제의 허락 없이 홍수를 막은 곤을, 천제의 명령을 받은 축융이 죽였다고 한다.[10]
3. 묘사
축융은 자신의 아들인 물의 악령으로 대홍수를 일으킨 공공과의 전투로 유명하다. 아들이 하늘의 왕좌를 찬탈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제지하러 갔으며, 둘은 하늘에서 며칠 동안 싸우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결국 공공은 패하였고 축융은 승전고를 울리며 하늘로 돌아왔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축융부인은 축융의 후예라고 서술하였다.
오량사 비문에는 "축융(祝誦〔融〕)씨: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것에도 중독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형벌은 [그의] 실천에 없었다."라고 묘사되어 있다.[1]
그러나 한 신화에서 축융은 육체적인 힘에 관심을 가졌고, 누가 더 강한지 겨루기 위해 공공과 며칠 동안 싸웠다.[2] 『산해경』에 따르면, 공공은 축융의 후손이다.[3] 이는 한나라 때 중국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해내경(海內經)의 기록이 왜곡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염제의 자손으로 여겨지며[10], 불을 관장한다[5] [6]。그 때문에 화재를 겪는 것을 "축융을 만나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4]。
『산해경』의 "해외남경"에 따르면, 축융은 남쪽의 신이며,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다[7]。
『사기』의 "삼황본기"에 따르면, 축융은 공공과 싸워 이겼지만, 그 과정에서 공공은 불주산에 머리를 부딪쳤다고 한다[8]。
『묵자』의 "비공(하)"에 따르면, 천제의 명령을 받은 축융이, 상의 탕이 하를 멸망시킬 때 하의 도성에 불을 내렸다고 한다[9]。
또한, 『산해경』의 "해내경"에 따르면, 천제의 허락 없이 홍수를 막은 곤을, 천제의 명령을 받은 축융이 죽였다고 한다[10]。
4. 주요 신화
고대 중국 전설에 따르면, 초나라의 선조 전욱의 후손인 중려(重黎)가 제곡 재위 시기에 화정(火正, 불을 관리하는 벼슬)을 맡았다. 중려는 불빛으로 천하를 밝게 비추어 큰 공을 세웠으므로 제곡이 그를 축융(祝融)이라 부르도록 명하였다. 축융의 후손은 기(己)씨라고도 전해지는데, 주나라 시대에는 소(蘇)씨가 되었다. 염제의 자손으로 여겨지며[10], 불을 관장한다[5] [6]。 그 때문에 화재를 겪는 것을 "축융을 만나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4]。 여와가 손상된 하늘을 보수하고 지상에 평화를 가져온 뒤에 강수에 내려왔다고 한다.
『산해경』의 "해외남경"에 따르면, 축융은 남쪽의 신이며, 그 모습은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다[7]。
4. 1. 공공과의 전투
축융은 아들인 물의 악령 공공과의 전투로 유명하다. 축융은 아들이 하늘의 왕좌를 찬탈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지하러 갔다. 둘은 하늘에서 며칠 동안 싸우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결국 공공은 패하였고 축융은 승전고를 울리며 하늘로 돌아왔다.[1]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축융부인은 축융의 후예라고 서술되었다.
하지만 한 신화에서 축융은 육체적인 힘에 관심을 가졌고, 누가 더 강한지 겨루기 위해 공공과 며칠 동안 싸웠다고도 한다.[2] 『산해경』에 따르면, 공공은 축융의 후손이다.[3] 이는 한나라 때 중국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해내경(海內經)의 기록이 왜곡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사기』 "삼황본기"에 따르면, 축융은 공공과 싸워 이겼지만, 그 과정에서 공공은 불주산에 머리를 부딪쳤다고 한다.[8]
4. 2. 곤 처형
『산해경』의 "해내경"에 따르면, 천제의 허락 없이 홍수를 막은 곤을 천제의 명령을 받은 축융이 죽였다고 한다.[10]
4. 3. 하나라 멸망
묵자의 "비공(하)"에 따르면, 천제의 명령을 받은 축융이 상의 탕이 하를 멸망시킬 때 하의 도성에 불을 내렸다고 한다.[9]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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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융은 사기에서 오제 시대의 관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11] 소설 『통속 21사』에서는 인황에 의해 제후로 봉해졌으며, 여와(여황)에 의해 강회(공공) 토벌 임무를 맡기도 했다.[12] 삼국지연의에서는 축융부인과 대래동주 남매가 축융의 후예로 언급된다.[13] 2021년 중화인민공화국의 화성 탐사선 톈원 1호의 탐사차가 축융을 기려 주룽호로 명명되었다.[14]
5. 1. 관직명
고대 중국의 전설에 따르면, 초나라의 선조 전욱의 후손인 중려(重黎)가 제곡이 즉위한 뒤에 화정(火正, 불을 관리하는 벼슬)을 맡았다. 중려는 불빛으로 천하를 밝게 비추어 큰 공을 세웠으므로 제곡이 그를 축융(祝融)이라 부르도록 명하였다. 『사기』에서는 오제 시대의 관명으로 여겨진다.[11]5. 2. 소설 속 등장
축융은 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커다란 호랑이를 탄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하늘과 땅을 분리하고 전 세계의 질서를 세우는 것을 도왔다.축융은 아들인 물의 악령으로 대홍수를 일으킨 공공과의 전투로 유명하다. 축융은 아들이 하늘의 왕좌를 찬탈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지하러 갔다. 둘은 하늘에서 며칠 동안 싸우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결국 공공은 패하였고 축융은 승전고를 울리며 하늘로 돌아왔다.
소설 『통속 21사』에서는 인황에 의해 제후로 봉해졌으며, 여황(여와)에 의해 강회(공공) 토벌을 위해 소환되어 그 임무를 완수했다.[12]
또한, 소설 『삼국지연의』의 등장인물인 축융부인과 대래동주 남매는 축융의 후예라고 언급된다.[13]
5. 3. 현대의 사용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축융부인과 대래동주 남매는 축융의 후예라고 언급된다.[13]2021년 화성에 도달한 중화인민공화국의 화성 탐사선 톈원 1호의 지상 탐사차는 축융을 기려 주룽호로 명명되었다.[14]
참조
[1]
웹사이트
Virtual Tour of Wuzhai Shan Site, 2nd Century CE (v. 2.0)
https://barbierilow.[...]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2019
[2]
서적
Myths and Legends
https://www.worldcat[...]
Wellfleet Press
[3]
문서
山海經 > 海內經 > 炎帝之妻,赤水之子聽訞生炎居,炎居生節竝,節竝生戲器,戲器生祝融,祝融降處於江水,生共工。共工生術器,術器首方顚,是復土穰,以處江水。共工生后土,后土生噎鳴,噎鳴生歳十有二
[4]
간행물
しゅくゆう 祝融
https://dl.ndl.go.jp[...]
富山房
1940-05-08
[5]
문서
「火神也」
[6]
간행물
祝融
大修館書店
1999-03-01
[7]
문서
「南方祝融,獸身人面,乘兩龍」
[8]
문서
「當其末年也,諸侯有共工氏,任智刑以強霸而不王,以水乘木,乃與祝融戰,不勝而怒。乃頭觸不周山崩,天柱折,地維𡙇」
[9]
문서
原文は次の通り。「夏德大亂,往攻之,予必使汝大堪之。予既受命於天,天命'''融'''隆火於夏之城間西北之隅」 湯王が夏の乱れを正すための放伐を天から求めている場面であり、この「隆」を「降」と読んでいる。
[10]
문서
「炎帝之妻,赤水之子聽訞生炎居,炎居生節竝,節竝生戲器,戲器生祝融,祝融降處於江水,生共工。共工生術器,術器首方顚,是復土穰,以處江水。共工生后土,后土生噎鳴,噎鳴生歳十有二。洪水滔天。鯀竊帝之息壤以堙洪水,不待帝命。帝令祝融殺鯀于羽郊」
[11]
문서
「重黎爲帝嚳髙辛居火正,甚有功,能光融天下,帝嚳命曰祝融。共工氏作亂,帝嚳使重黎誅之而不盡。帝乃以庚寅日誅重黎,而以其弟呉回爲重黎後,復居火正,爲祝融」
[12]
서적
通俗二十一史
https://books.google[...]
早稲田大学出版部
2021-05-16
[13]
문서
「[[孟獲|獲]]視之,乃妻祝融夫人也。夫人世居南蠻,乃祝融氏之後」「眾視之,乃孟獲妻弟,現為八番部長,名曰帶來洞主」
[14]
웹사이트
中国第一辆火星车命名为:祝融号
http://www.cnsa.gov.[...]
202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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