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된 아폴로 계획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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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취소된 아폴로 계획 임무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달 착륙을 목표로 추진했던 아폴로 계획에서, 예산 삭감, 기술적 문제, 그리고 아폴로 1호 화재 사고 등의 이유로 인해 취소된 여러 임무들을 의미한다. 1960년대 초반, 초기 유인 저궤도 시험 비행 계획이 새턴 I 발사체의 제한된 성능으로 인해 취소되었고, 이후 아폴로 1호 화재 사고로 인해 유인 블록 I 우주선 비행 계획이 중단되었다. 1970년에는 아폴로 18호, 19호, 20호가 예산 문제로 취소되었으며, 스카이랩 우주 정거장 발사를 위한 아폴로 20호의 취소는 새턴 V 로켓의 활용 계획 변경과 관련되었다. 이러한 취소로 인해 여러 대의 새턴 V 로켓과 부품들이 남았으며, 승무원 배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취소된 아폴로 계획 임무
개요
유형취소된 달 착륙 미션
국가미국
조직미국 항공우주국 (NASA)
취소된 미션
아폴로 18호취소됨
아폴로 19호취소됨
아폴로 20호취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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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폴로 1호 화재 이전의 임무 계획

AS-205 임무의 주 승무원들. 왼쪽부터 돈 아이즐, 월리 시라, 월터 커닝햄. (1966년 9월)
AS-205 임무의 주 승무원들. 왼쪽부터 돈 아이즐, 월리 시라, 월터 커닝햄. (1966년 9월)

1962년 9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1965년과 1966년에 걸쳐 새턴 I 로켓을 이용해 일부 장비만 갖춘 블록 I 아폴로 사령/서비스 모듈(CSM)을 싣고 네 차례의 유인 저궤도 시험 비행(SA-11부터 SA-14까지)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새턴 I 로켓은 탑재량이 제한적이어서, 개량된 새턴 IB 로켓에 비해 실을 수 있는 시스템이 크게 줄어들어 시험 비행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문제가 지적되었다. 이에 따라 NASA는 1963년 10월 이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AS-204와 AS-205로 명명된 두 차례의 유인 새턴 IB 임무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 이 두 임무 다음에는 첫 번째 아폴로 달 착륙선(LM)의 무인 비행(AS-206)이 예정되어 있었고, 세 번째 유인 임무(AS-207/208)는 개선된 블록 II CSM에 승무원을 태워 발사(AS-207)한 뒤, 무인으로 발사된 LM(AS-208)과 궤도상에서 만나 도킹하는 방식으로 계획되었다.

1966년 3월 21일, AS-204 임무의 승무원으로 사령 조종사 거스 그리섬, 선임 조종사 에드 화이트, 조종사 로저 채피가 선발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아폴로 1호라고 명명했다. 계획대로라면 AS-205는 아폴로 2호, AS-207/208은 아폴로 3호가 될 예정이었다. AS-205 임무에는 월리 시라, 돈 아이즐, 월터 커닝햄이 배정되었다. 하지만 AS-205 임무는 나중에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어 1966년 12월 22일 공식적으로 취소되었다.

AS-205 임무가 취소되면서 월리 시라의 팀은 거스 그리섬 팀(아폴로 1호)의 백업 승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원래 세 번째 유인 임무로 계획되었던 유인 LM 비행이 두 번째 유인 임무로 앞당겨졌고, 임무 번호는 AS-205/208로 재지정되었다. 이 임무에는 원래 그리섬 팀의 백업이었던 사령 조종사 짐 맥디비트, CSM 조종사 데이비드 스콧, LM 조종사 러스티 슈바이카트가 배정되었다. 이들은 그리섬 팀이 1967년 2월 발사를 목표로 훈련하는 동안, 첫 번째 블록 II 사령 모듈(CM-101)을 이용해 즉시 훈련에 돌입했다.

그러나 1967년 1월 27일, 아폴로 1호의 발사대 시험 도중 우주선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그리섬, 화이트, 채피 세 명의 우주비행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해 아폴로 계획은 19개월간 중단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안전 문제를 점검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유인 블록 I 우주선 비행 계획은 취소되었고 모든 유인 임무 계획을 사실상 전면 재검토하게 되었다.

3. 아폴로 1호 화재 이후의 개발 임무

두 번째 유인 아폴로 비행 계획의 주 임무 승무원들이 아폴로 1호 화재 전에 노스 아메리칸 항공 공장에서 임무 시뮬레이터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돈 F. 아이즐, 선임 조종사, 월터 M. 시라, 사령 조종사, 월터 커닝햄, 조종사. (1966년 9월)
두 번째 유인 아폴로 비행 계획의 주 임무 승무원들이 아폴로 1호 화재 전에 노스 아메리칸 항공 공장에서 임무 시뮬레이터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돈 F. 아이즐, 선임 조종사, 월터 M. 시라, 사령 조종사, 월터 커닝햄, 조종사. (1966년 9월)

1967년 1월 27일, 아폴로 1호 임무를 위해 발사대에서 시험 중이던 버질 "거스" 그리섬, 에드 화이트, 로저 채피 세 명의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내부 화재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수많은 안전 문제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아폴로 계획을 19개월 동안 중단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유인 블록 I 우주선을 비행하려던 기존 계획은 전면 취소되었고, 모든 유인 임무 계획은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수립되었다.

사고 이후 NASA는 유인 달 착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 방식을 마련했다. 1967년 9월, NASA는 달 착륙까지 필요한 나머지 임무 유형들을 정리하여 A부터 G까지 문자로 된 목록을 만들었다. 여기서 G 임무는 최초의 유인 달 착륙을 의미했다. 이 목록은 이후 달 탐사 임무가 추가되면서 J까지 확장되었다.

재개된 계획에 따라 먼저 무인 시험 발사가 진행되었다.
* A 임무: 두 차례의 무인 새턴 V 로켓 시험 발사로, 아폴로 4호아폴로 6호가 이 임무를 수행했다. 세 번째 시험 발사도 계획되었으나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취소되었다.
* B 임무: 최초의 개발형 아폴로 달 착륙선(LM)인 LM-1의 무인 시험 발사로, 아폴로 5호가 이 임무를 맡았다. LM-2를 이용한 두 번째 무인 시험도 계획되었으나 역시 취소되었다. LM-2는 이후 실제 달 착륙에 사용될 LM처럼 개조되어 스미소니언 협회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에 기증되었고, 현재 아폴로 11호의 첫 달 착륙 시뮬레이션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다.

이어서 유인 임무가 재개되었다.
* C 임무: 아폴로 7호는 최초의 유인 아폴로 사령/서비스 모듈(CSM) 시험 비행 임무였다. 월리 시라가 이끄는 승무원은 1968년 10월, 아폴로 1호 화재 이후 객실 안전 개선 사항이 적용된 블록 II CSM-101을 타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원래 계획되었던 다음 유인 임무들은 다음과 같았다.
* D 임무: 짐 맥디비트가 이끄는 승무원이 최초로 유인 LM을 타고 지구 저궤도에서 시험 비행하는 임무였다. 이 임무는 아폴로 8호로 1968년 12월에 새턴 V 로켓으로 발사될 예정이었다.
* E 임무: 프랭크 보먼이 이끄는 승무원이 CSM과 LM을 결합하여 중간 지구 궤도(MEO)에서 시험하는 임무였다. 원지점 약 7402.96km에 도달하여 달 임무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으로, 1969년 3월로 계획되었다.

하지만 아폴로 시스템 구성 요소 중 LM 개발에 가장 많은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다. LM 개발은 일정보다 지연되었고, 1968년 6월 케네디 우주 센터로 배송된 LM-3에서는 101개 이상의 결함이 발견되었다. 주 계약업체인 그루먼 항공기 공업사는 D 임무에 사용될 최초의 유인 LM이 빨라야 1969년 2월에나 준비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는 전체 계획의 지연을 의미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폴로 우주선 프로그램 사무소장 조지 로는 1968년 8월 새로운 방안을 제안했다. CSM이 LM보다 3개월 먼저 준비될 것이므로, 1968년 12월에 CSM 단독 임무를 먼저 수행하자는 것이었다. 단순히 지구 궤도에서 C 임무를 반복하는 대신, CSM을 달까지 보내 궤도를 도는 "C-프라임" 임무를 제안했다. 이 새로운 임무는 아폴로 10호(F 임무)까지 기다려야 했던 달 비행 절차를 미리 연습할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중앙 정보국(CIA)이 소련이 존드 프로그램을 통해 12월에 자체적인 유인 달 궤도 비행을 시도하여 미국을 앞지르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도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임무 계획과 승무원 배치가 변경되었다.
* 아폴로 8호: 보먼의 승무원이 CSM 단독 달 궤도 비행 임무(C-프라임)를 수행하게 되었다.
* 아폴로 9호: 맥디비트의 승무원이 원래의 D 임무였던 유인 LM 지구 저궤도 시험 비행을 수행하게 되었다.
* E 임무는 취소되었다.

이러한 승무원 교체는 결과적으로 누가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딜지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원래 맥디비트 승무원의 백업 사령관이었던 피트 콘래드는 순서대로라면 아폴로 12호의 사령관이 될 예정이었으나, 변경된 계획에 따라 보먼 승무원의 백업 사령관이었던 닐 암스트롱아폴로 11호의 사령관을 맡게 되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4. 후속 달 탐사 임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아폴로 계획을 위해 총 15기의 비행 가능한 새턴 V 로켓 제작 계약을 맺었다. 첫 달 착륙 임무였던 아폴로 11호는 6번째 새턴 V 로켓을 사용했으며, 이후 9번의 추가적인 달 착륙 임무를 위해 9기의 로켓이 남아 있었다. NASA는 이 임무들을 1972년 7월까지 약 4개월 간격으로 수행할 계획을 세웠다.

초기에 구상된 후속 임무들의 착륙 지점은 다음과 같았다. 다만 이 목록은 실제 착륙 지점을 비행 1~2회 전에 결정했던 아폴로 기지 선정 위원회(ASSB)가 아닌, 컨설팅 회사에서 계획 수립을 돕기 위해 제안한 것이었다. 따라서 취소된 임무들의 실제 착륙 지점은 기지 선정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아래 목록이 NASA의 최종 계획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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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번호임무 유형초기 계획 착륙 지점예정 시기
아폴로 12호H1폭풍의 바다 (서베이어 3호 착륙 지점 근처)1969년 11월
아폴로 13호H2프라 마우로 고원1970년 4월
아폴로 14호H3리트로우 분화구
아폴로 15호H4센소리누스 분화구
아폴로 16호J1데카르트 고원
아폴로 17호J2마리우스 언덕
아폴로 18호J3코페르니쿠스 분화구
아폴로 19호J4해들리 릴
아폴로 20호J5티코 분화구 (서베이어 7호 착륙 지점 근처)


아폴로 15호까지 계획된 H형 임무 이후, 마지막 5개 임무(아폴로 16호~20호)는 J형 임무로 계획되었다. 이 임무들은 달 탐사차를 탑재하고 달 표면에서 3일간 체류할 수 있는 성능이 향상된 확장형 달 착륙선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후기 임무들은 계획 시점에서 최대 3년 뒤에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부 계획은 유동적이었으며, 특히 아폴로 18, 19, 20호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착륙 지점과 일정이 제안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69년 7월 보고서에는 아폴로 18호가 슈뢰터스 계곡, 19호가 히기누스 지역, 20호가 코페르니쿠스 분화구 착륙으로 제안되었고, 다른 제안으로는 18호가 가센디 분화구, 19호가 코페르니쿠스 분화구 등이 거론되었다. 1970년 3월 보고서에서는 18호 목표로 코페르니쿠스, 19호 목표로 해들리 릴(이후 아폴로 15호의 실제 착륙지가 됨)이 언급되기도 했다. 이후 아폴로 18호, 19호, 20호 임무는 취소되었다.

4.1. 임무 취소

1970년 1월 4일, NASA는 스카이랩 우주 정거장을 "건식 워크숍"(지상 조립) 형태로 발사하기 위해 새턴 V 로켓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아폴로 20호 임무 취소를 발표했다. 이는 기존 계획이었던 새턴 IB 발사체의 소모된 S-IVB 상단을 활용하는 "습식 워크숍" 방식 대신이었으며, 예산 제약으로 새턴 V 생산이 15기로 제한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NASA 부국장 조지 M. 로우는 남은 세 번의 달 착륙 임무가 세 번의 스카이랩 임무 이후인 1973년과 1974년으로 재조정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1970년 4월에는 아폴로 13호가 비행 중 심각한 고장을 겪으면서 달 착륙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아폴로 13호의 원래 착륙 예정지였던 프라 마우로 지형은 아폴로 14호의 목표 지점으로 변경되었다.

같은 해 9월 2일, NASA는 추가적인 예산 삭감으로 인해 H4 임무(원래 아폴로 15호)와 J4 임무(원래 아폴로 19호)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으로 아폴로 18호와 19호 임무가 최종적으로 취소되었고, 스카이랩 발사는 1973년으로 연기되었다. 취소 이후 확정된 최종 달 착륙 임무 일정은 다음과 같다.

* 아폴로 14호 (H2) 프라 마우로 지형, 1971년 2월
* 아폴로 15호 (J1) 해들리-아펜니네, 1971년 7월
* 아폴로 16호 (J2) 데카르트 고원, 1972년 4월
* 아폴로 17호 (J3) 토러스-리트로우 계곡, 1972년 12월

당시 NASA에는 49명의 현역 우주 비행사가 있었으나, 임무 취소로 인해 35명이 임무 배정을 기다리는 상황에 놓였다.

프로그램 막바지에는 아폴로 17호의 달 착륙선 조종사였던 과학자 해리슨 슈미트달의 뒷면에 있는 치올코프스키 분화구에 유인 착륙을 시도하자고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이 제안에는 통신 중계를 위한 특수 위성 발사 계획까지 포함되었으나, NASA 행정부는 예산 부족과 위험 증가를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71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 행정부는 남은 아폴로 16호아폴로 17호 임무마저 취소하는 것을 검토했다. 그러나 당시 행정 예산처 부국장이었던 캐스퍼 와인버거아폴로 15호의 성공적인 데이터 수집을 근거로, 남은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우주 왕복선과 같은 후속 프로그램으로 원활하게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닉슨 대통령을 설득하여 임무 취소를 막았다.

아폴로 10호아폴로 16호에 탑승했던 우주 비행사 존 영은 NASA가 아폴로 18, 19, 20호를 취소한 배경에는 임무 중 우주 비행사가 사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4.2. 승무원 배정

비행 승무원 운영 책임자였던 디케 슬레이턴은 아폴로 임무의 승무원 배정을 담당했다. 초기 아폴로 임무에서는 특정 임무의 백업 승무원으로 배정된 우주 비행사들이 세 번의 임무가 지난 후에 해당 임무의 주 승무원으로 배정되는 순환 방식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폴로 계획 후반부로 가면서 이러한 방식은 점차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이는 일부 우주 비행사들이 프로그램을 떠나고, 슬레이턴이 신참 우주 비행사들에게 비행 기회를 주고자 했으며, 더 이상 주 승무원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없는 백업 임무를 우주 비행사들이 맡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취소된 아폴로 임무로 인해 우주 비행사 배정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간트 차트
취소된 아폴로 임무로 인해 우주 비행사 배정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간트 차트

취소된 아폴로 임무들의 예상 승무원은 다음과 같다.

* 아폴로 18호
* 승무원은 아폴로 15호의 백업 승무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리처드 F. 고든 주니어 (사령관, CDR)
* 밴스 D. 브랜드 (사령선 조종사, CMP)
* 해리슨 슈미트 (달 착륙선 조종사, LMP)
* 아폴로 18호가 취소되면서, 과학계의 요청에 따라 지질학자였던 슈미트는 아폴로 17호의 LMP로 배정되어 조 잉글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로써 슈미트는 달을 밟은 유일한 전문 과학자가 되었다.

* 아폴로 19호
* 슬레이턴은 아폴로 19호 승무원으로 아폴로 16호의 백업 승무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 프레드 헤이즈 (CDR)
* 윌리엄 R. 포그 (CMP)
* 제럴드 P. 카 (LMP)

* 아폴로 20호
* 아폴로 20호의 승무원 구성은 다른 임무들보다 불확실성이 더 크다. 일반적인 승무원 순환 방식을 따랐다면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 스튜어트 루사 (CDR) - 아폴로 12호에서 이미 사령관을 맡았던 피트 콘래드 대신 배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폴 J. 와이츠 (CMP)
* 잭 R. 루스마 (LMP)
*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다음과 같은 구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 스튜어트 루사 또는 에드가 미첼 (CDR)
* 잭 R. 루스마 (CMP)
* 돈 L. 린드 (LMP) - 린드는 아폴로 20호가 취소되면서 비행 기회가 없을 것으로 여겨져 아폴로 응용 프로그램으로 이동했다.

5. 스카이랩

스카이랩 5는 더 많은 과학 실험을 수행하고 스카이랩을 더 높은 궤도로 올리기 위한 20일간의 단기 임무로 계획되었다. 밴스 브랜, 돈 린드, 그리고 윌리엄 B. 레노어(과학 조종사)가 승무원으로 예정되었으나, 이 임무는 최종적으로 취소되었다.

5.1. 스카이랩 구조

밴스 브랜드와 돈 린드는 계획이 취소된 스카이랩 구조 임무의 승무원이었다.
밴스 브랜드와 돈 린드는 계획이 취소된 스카이랩 구조 임무의 승무원이었다.

여분의 CSM 중 하나인 CSM-119는 기존보다 승무원 2명을 더 수송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이 우주선은 스카이랩 우주 정거장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잠재적인 구조 임무를 위해 대기 상태로 준비되었다.

스카이랩 3 임무 수행 중, 정거장에 도킹된 아폴로 CSM의 고장으로 인해 승무원들이 안전하게 지구로 귀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CSM-119는 새턴 IB 로켓(SA-209)에 탑재되어 39B 발사 단지로 옮겨져 발사 준비를 마쳤다. 밴스 브랜드(사령관)와 돈 린드(사령선 조종사) 두 명의 우주비행사가 이 CSM을 타고 가서 기존의 세 명의 승무원을 구출할 예정이었다.

다행히 문제는 별도의 구조 비행 없이 해결되었다. CSM-119는 다시 조립동으로 반환되었고, 스카이랩 프로그램이 종료될 때까지 대기 상태를 유지했다.

이후 CSM-119는 아폴로-소유스 테스트 프로젝트를 위한 예비 CSM으로도 지정되었다.

6. 잉여 하드웨어

케네디 우주 센터 아폴로/새턴 V 센터에 전시된 새턴 V 로켓. 정적 시험용 1단(S-IC-T)과 SA-514의 2단,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케네디 우주 센터 아폴로/새턴 V 센터에 전시된 새턴 V 로켓. 정적 시험용 1단(S-IC-T)과 SA-514의 2단,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케네디 우주 센터 방문자 단지 로켓 가든에 전시된 새턴 IB SA-209. 원래 스카이랩 구조 임무를 위해 대기하던 로켓이다.
케네디 우주 센터 방문자 단지 로켓 가든에 전시된 새턴 IB SA-209. 원래 스카이랩 구조 임무를 위해 대기하던 로켓이다.

아폴로/새턴 V 센터에 전시된 CSM-119. 스카이랩 구조 임무 및 ASTP 백업용이었다.
아폴로/새턴 V 센터에 전시된 CSM-119. 스카이랩 구조 임무 및 ASTP 백업용이었다.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에 전시된 LM-2. 비행하지 않은 달 착륙선이다.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에 전시된 LM-2. 비행하지 않은 달 착륙선이다.


아폴로 계획이 축소되고 일부 임무가 취소되면서, 이미 제작되었거나 제작 중이던 많은 하드웨어가 사용되지 않고 남게 되었다. 이 잉여 하드웨어에는 새턴 V 로켓, 새턴 IB 로켓, 사령선/기계선(CSM), 달 착륙선(LM) 등이 포함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박물관 전시용으로 전환되거나 다른 우주 프로그램에 활용되었다.

새턴 V 로켓

총 15기의 비행 가능한 새턴 V 로켓이 제작되었으나, 달 탐사 임무에는 아폴로 17호까지 사용되었고, 1기는 스카이랩 우주 정거장 발사에 사용되었다(SA-513). 이로 인해 비행하지 않은 완성된 새턴 V 로켓 2기(SA-514, SA-515)와 일부 부품들이 남았다. 이들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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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되지 않은 새턴 V 로켓 및 구성 요소 현황
발사체/부품현재 위치구성 요소 상세
SA-513 (3단)존슨 우주 센터, 텍사스주 휴스턴SA-514 1단, SA-515 2단과 결합되어 전시 중이다. 완성되지 않은 CSM-115가 포함되어 있다.
SA-514 (2단, 3단)케네디 우주 센터 방문자 단지, 플로리다주 메리트 아일랜드정적 시험용 1단(S-IC-T)과 결합되어 아폴로/새턴 V 센터에 전시 중이다. 보일러플레이트 우주선 BP-30이 포함되어 있다.
SA-515 (1단)미시시피주 펄링턴 존 C. 스태니스 우주 센터 내 INFINITY 과학 센터1단만 보관 전시되어 있다.
SA-515 (3단)국립 항공우주 박물관, 워싱턴 D.C.스카이랩 우주 정거장의 백업용으로 개조되었으며,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새턴 IB 로켓

몇 기의 새턴 IB 로켓 또한 사용되지 않고 남았다. SA-206, SA-207, SA-208은 스카이랩 유인 발사에, SA-210은 ASTP 유인 비행에 사용되었다. SA-212의 2단(S-IVB)은 스카이랩 우주 정거장 본체로 개조되어 발사되었다. 나머지 미사용 새턴 IB 로켓들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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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되지 않은 새턴 IB 로켓 현황
발사체상태 및 현재 위치비고
SA-209케네디 우주 센터 방문자 단지 로켓 가든 전시스카이랩 구조 임무를 위해 대기 상태로 유지되었던 로켓이다. 현재 아폴로 보일러플레이트 우주선을 탑재한 채 전시되어 있다.
SA-211 (1단)앨라배마주 아드모어 인근 I-65 고속도로변 환영 센터 수직 전시구형 지상 시험용 2단 및 보일러플레이트 아폴로 하드웨어와 결합되어 있다.
SA-211 (2단)앨라배마주 헌츠빌 미국 우주 로켓 센터J-2 엔진을 제외하고 스카이랩 중성 부력 훈련 시설과 결합되었다.
SA-212 (1단)폐기마지막으로 정적 시험 발사를 거친 1단이었으나, 추가 비행 계획이 없어 폐기되었다.
SA-213 (1단)폐기제작되었으나 정적 시험을 거치지 않고 폐기되었다.
SA-214 (1단)폐기제작되었으나 정적 시험을 거치지 않고 폐기되었다.


잉여 로켓다인 H-1 1단 엔진들은 로켓다인 RS-27 엔진으로 재설계되어, 1974년 델타 2000 시리즈와 같은 당시 다른 발사체에 활용되기도 했다.

사령선/기계선(CSM) 및 달 착륙선(LM)

취소된 임무에 배정되었던 CSM과 LM 역시 일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거나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 아폴로 15호의 원래 H 임무용으로 제작된 CSM-111은 ASTP에 사용되었다. LM-9은 케네디 우주 센터의 아폴로/새턴 V 센터에 전시되어 있다.
* 아폴로 19호에 배정되었던 CSM-115는 존슨 우주 센터의 새턴 V 전시물에 포함되어 있다. LM-13(원래 아폴로 18호용)은 부분적으로만 제작되었고, 이후 HBO 미니시리즈 달에서 온 사람들 촬영 소품으로 사용된 후 현재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크레이들 항공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아폴로 20호용 CSM과 LM은 완성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다만 LM의 일부 부품이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프랭클린 연구소에 전시된 LM 모형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 스카이랩 구조 임무 및 ASTP 백업용으로 준비되었던 CSM-119는 케네디 우주 센터 방문자 단지의 아폴로/새턴 V 센터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