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듀랜트
1. 개요
케빈 듀랜트는 1988년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미국의 프로 농구 선수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촉망받는 선수로 평가받았으며, 텍사스 대학교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2007년 NBA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2순위로 지명되었다. 듀랜트는 NBA에서 득점왕 4회, 정규 시즌 MVP 1회, 파이널 MVP 2회를 수상했으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두 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2019년 브루클린 네츠로 이적했으며, 현재 피닉스 선스에서 뛰고 있다. 국가대표팀 선수로도 활약하며 2010년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MVP를 수상했고, 올림픽 금메달 4개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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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 파워 포워드 / 스몰 포워드 |
|---|---|
| 신장 | 211cm |
| 체중 | 108.9kg |
| 리그 | NBA |
| 소속 팀 | 피닉스 선스 |
| 등번호 | 35 |
| 출생일 | 1988년 9월 29일 |
| 출생지 | 워싱턴 D.C. |
| 고등학교 | 포트 워싱턴, 메릴랜드주 소재의 내셔널 크리스천 아카데미 마우스 오브 윌슨, 버지니아주 소재의 오크 힐 아카데미 록빌, 메릴랜드주 소재의 몽트로스 크리스천 스쿨 |
| 대학교 | 텍사스 대학교 (2006–2007) |
| 드래프트 연도 | 2007년 |
| 드래프트 순위 | 1라운드, 2순위 |
| 드래프트 팀 | 시애틀 슈퍼소닉스 |
| 프로 시작 | 2007년 |
| 로마자 표기 | Kevin Wayne Durant (케빈 웨인 듀랜트) |
| 별칭 | KD Slim Reaper (슬림 리퍼) Easy money sniper (이지 머니 스나이퍼) |
| 소속팀 | 2007–2015: 시애틀 슈퍼소닉스/오클라호마시티 선더 2016–2018: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2019–2022: 브루클린 네츠 2022–현재: 피닉스 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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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수상 | 2× NBA 챔피언 (2017, 2018) 2× NBA 파이널 MVP (2017, 2018) NBA 시즌 MVP (2014) 14× NBA 올스타 (2010–2019, 2021–2024) 2× NBA 올스타 게임 MVP (2012, 2019) 6× 올-NBA 퍼스트 팀 (2010–2014, 2018) 5× 올-NBA 세컨드 팀 (2016, 2017, 2019, 2022, 2024) NBA 올-루키 퍼스트 팀 (2008) NBA 루키 오브 더 이어 (2008) 4× NBA 득점왕 (2010–2012, 2014) 2× 50-40-90 클럽 (2013, 2023) NBA 75주년 기념팀 FIBA 월드컵 MVP (2010) 올림픽 MVP (2020) 3× USA 농구 올해의 남자 선수 (2010, 2016, 2021)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 게임 공동 MVP (2006) 퍼레이드 올-아메리카 퍼스트 팀 (2006) 퍼레이드 올-아메리카 세컨드 팀 (2005) 전미 대학 올해의 선수 (2007) Big 12 올해의 선수 (2007) 텍사스 롱혼스 등번호 35번 영구 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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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 2012 런던: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금메달 2020 도쿄: 금메달 2024 파리: 금메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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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 | 2010 터키: 금메달 |
| 신발 | 나이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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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 출신 스포츠인 -
케이티 러데키
케이티 러데키는 미국의 경영 선수로서 중장거리 자유형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며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에서 다수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여러 종목 세계 신기록 보유 및 주요 국제 대회 전 종목 석권 최초의 여성 선수이며,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양한 상을 수상했으며 2024년 회고록을 출판했다. -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선수 -
도만타스 사보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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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시티 선더 선수 -
카멜로 앤서니
카멜로 앤서니는 2003년 NBA 드래프트 3순위로 데뷔하여 10회 올스타 선정, 2013년 득점왕 등 화려한 경력을 쌓고 NBA 통산 28,000득점을 돌파한 미국의 프로 농구 선수이다. -
2010년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참가 선수 -
러셀 웨스트브룩
러셀 웨스트브룩은 2008년 NBA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지명된 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서 데뷔한 공격형 가드로, 2017년 NBA MVP를 수상하고 통산 트리플 더블 NBA 역대 1위를 기록했으며, 미국 국가대표팀으로 금메달을 획득하고 덴버 너기츠에서 뛰고 있다. -
2010년 FIBA 세계 선수권 대회 참가 선수 -
앙드루 알비시
앙드루 알비시는 프랑스의 농구 선수로, 포인트 가드 포지션에서 활약하며 CB 그란 카나리아 소속으로 뛰고, 프랑스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2010년 FIBA 농구 월드컵에서 성인 대표팀 데뷔 후 유럽 리그에서 활동, 2010년 FIBA 유럽 U-20 선수권 대회에서 프랑스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을 이끌며 MVP에 선정되었다.
2. 어린 시절과 고등학교 경력
듀랜트는 고등학교 시절 내셔널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2년, 오크 힐 아카데미에서 1년 동안 농구를 한 후, 마지막 해를 위해 몬트로즈 크리스찬 학교로 전학했다. 몬트로스 기독교 고등학교 입학 당시 이미 키가 약 1.83m였으며, 시니어 시절에는 약 5.08cm가 더 컸다고 한다. 듀랜트는 워싱턴 포스트 선정 올해의 올-멧 농구 선수로 선정되었고, 2006 맥도날드 올아메리칸 게임에서 체이스 버딩거와 공동 MVP를 수상했으며, 그렉 오든에 이어 2006년 최고의 고등학교 유망주 중 두 번째로 평가받았다.
시즌 시작 전, 듀랜트는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코네티컷 대학교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방문했으며, 듀크 대학교, 켄터키 대학교 및 루이빌 대학교도 고려했지만, "내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싶었다"는 이유로 덜 알려진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2.1. 어린 시절
1988년 워싱턴 D.C.에서 완다와 웨인 프렛 부부의 네 자녀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누이는 브리애나이며, 다른 형제들은 토니와 레이본이다. 듀랜트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고, 완다와 웨인은 결국 이혼했으며, 듀랜트의 할머니인 바바라 데이비스가 그를 키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13살 무렵 듀랜트의 아버지가 다시 그의 삶에 나타나 농구 토너먼트를 위해 그와 함께 전국을 여행했다.
듀랜트와 그의 형제들은 워싱턴 D.C.의 동쪽 외곽에 위치한 메릴랜드주 프린스 조지스 군에서 자랐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유난히 컸으며, 중학교 (10~12세) 때 이미 약 1.83m의 키에 도달했다. 듀랜트는 자라면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팀인 토론토 랩터스에서 뛰고 싶어했고, 그 팀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빈스 카터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전미 아마추어 운동 연합(AAU) 농구를 했으며, 피닉스 선스 소속의 마이클 비즐리 등과 여러 차례 우승을 거두었다. 듀랜트는 메릴랜드 지역의 여러 AAU 팀에서 미래의 NBA 선수인 마이클 비즐리, 그레이비스 바스케스, 타이 로슨과 팀 동료였으며, 이 중 마이클 비즐리와 현재까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 멘토이자 AAU 시절의 코치였던 찰스 크레익이 35살에 살해당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35번 등번호의 유니폼을 계속해서 입고 있다.
내셔널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2년간, 오크 힐 아카데미에서 1년간 고등학교 농구를 한 후, 듀랜트는 마지막 해를 위해 몬트로즈 크리스찬 학교로 전학했으며, 시즌 시작 전에 약 12.70cm가 성장하여 약 1.83m로 시작했다. 시즌 시작 전에 듀랜트는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코네티컷 대학교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방문했으며, 듀크 대학교, 켄터키 대학교 및 루이빌 대학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듀랜트는 덜 알려진 프로그램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질문에 "내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 해 말 듀랜트는 워싱턴 포스트 선정 올해의 올-멧 농구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2006 맥도날드 올아메리칸 게임에서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2006년 최고의 고등학교 유망주 중 한 명으로 그렉 오든에 이어 두 번째로 평가받았다.
2.2. AAU 시절
케빈 듀랜트는 어릴 적부터 아마추어 체육 연합(AAU)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피닉스 선스 소속의 마이클 비즐리 등과 함께 여러 차례 우승을 경험했다. 어린 시절 멘토이자 AAU 시절 코치였던 찰스 크레익이 35세에 살해당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35번 등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듀랜트는 지역 AAU 농구팀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농구 경력은 AAU의 프린스 조지 재거스에서 시작되었는데, 여기에는 NBA 선수가 되는 마이클 비즐리도 있었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비즐리는 매일 듀랜트의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함께 통학 버스를 탔다. 재거스에는 크리스 브래즈웰도 있었고, 듀랜트, 비즐리, 브래즈웰이 팀의 핵심이 되어 두 번의 전국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11살이었던 듀랜트는 첫 번째 우승에서 후반에만 18득점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2003년 재거스가 해산된 후 듀랜트는 DC 블루 데빌스로 옮겨 타이 로슨과 함께 뛰었다.
2.3. 고등학교 경력
케빈 듀랜트는 몬트로스 기독교 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키가 이미 6피트 7인치(약 201cm)였으며, 이후 시니어 시절에 2인치(약 5cm)가 더 컸다고 한다. 완벽한 사이즈와 철저한 연습, 경이로운 슛 능력과 볼 핸들링 그리고 수비를 갖춘 선수로 평가받았으며, 현재 휴스턴 로키츠 소속의 체이스 버딩거와 함께 2006 맥도날드 올-아메리칸 게임의 공동 MVP를 수상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워싱턴 포스트에 의해 지역 연간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 무렵 급격한 성장기에 돌입한 듀랜트의 신장은 6피트 8인치(약 203cm)에 달했다. 3학년으로 진급할 때 전미 유수의 농구 명문고인 오크힐 아카데미 고등학교로 전학하여 AAU 시대의 팀 동료인 타이 로슨 등과 함께 플레이하며 평균 19.6득점, 8.8리바운드의 성적으로 퍼레이드지 선정 올 아메리칸 2nd 팀에 선정되었다. 4학년 진급 시에는 고향에 가까운 몬트로스 크리스찬 고등학교로 다시 전학하여 평균 23.6득점, 10.9리바운드까지 성적을 올렸다. 맥도날드 선정 올 아메리칸에 선정되었고, 2006년 맥도날드 고교 올스타 게임에서는 체이스 버딩거와 함께 MVP를 수상했다.
3. 대학교 경력
텍사스 대학교에 입학한 듀랜트는 샬럿 밥캐츠 소속의 DJ 어거스틴 등과 함께 35경기 전 경기에 선발로 출장하였는데, 이 때 키는 6피트 9인치(약 206cm)였으며 윙스팬은 7피트 5인치(약 226cm)에 달했다. NCAA 토너먼트 2라운드에서 남캘리포니아 주립대에게 패배하였으며 컨퍼런스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마른 체구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키와 윙스팬 그리고 퀵니스를 겸비한 그는 덕 노비츠키, 케빈 가넷에 비교될 정도로 굉장한 유망주로 성장하였다. 그의 부드러운 슛 터치는 많은 NBA 스카우터들의 이목을 끌었고, 역사상 최고의 대학 신입생 중 하나라는 평가를 듣게 되었다.
2006-07 대학 시즌 듀랜트는 텍사스 롱혼스에서 경기당 평균 25.8득점, 11.1리바운드, 1.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신입생 시절 경기당 평균 25.8득점과 11.1리바운드를 잡아내었으며, Big 12 토너먼트에서는 평균 28.9득점과 12.5득점을 기록하였다. 텍사스는 시즌을 25승 10패로 마쳤고, 컨퍼런스에서 12승 4패를 기록했다. NCAA 토너먼트에서 4번 시드를 받은 텍사스는 뉴멕시코 주립대와의 1라운드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듀랜트가 30득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2라운드에서 USC에 패했다.
뛰어난 활약으로 듀랜트는 만장일치로 올해의 전국 선수로 선정되어 존 R. 우든 상, 네이스미스 칼리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다른 8개의 널리 인정받는 상과 영예를 안았다. 이로써 듀랜트는 전국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최초의 신입생이 되었다. 네이스미스 칼리지 올해의 선수상, 오스카 로버트슨 상 등 신입생으로서는 최초로 다양한 상들을 수상하였으며 텍사스 주립 대학교에서는 그의 번호가 영구 결번되었다. 신입생 시즌을 마친 후 2007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하게 된다. 듀랜트의 등번호 35번은 이후 롱혼스에 의해 영구 결번되었다.
케빈 듀랜트를 영입한 텍사스 대학교의 어시스턴트 코치 러셀 스프링먼은 듀랜트의 2006-07 시즌을 "전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마칠 것이다"라고 예상했고, 스프링먼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듀랜트는 4명의 1학년이 선발로 나서는 텍사스 대학교 롱혼스의 선발 멤버 중 한 명으로 발탁되어 순식간에 두각을 나타냈다. 시즌 개막 후, 듀랜트는 대학 농구 최고의 공격수로 평가받기 시작했고, 그의 큰 키와 뛰어난 슈팅 능력을 활용한 플레이는 NBA의 명선수 케빈 가넷과 덕 노비츠키 등에 비유되었으며, 텍사스 공과 대학교와의 경기에서 듀랜트가 37득점 23리바운드를 기록했을 때 텍사스 공과 대학교의 명 코치 밥 나이트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롱혼스의 코치 릭 반스는 처음에는 듀랜트를 위한 세트 플레이를 도입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듀랜트를 옭아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코트 위에서 듀랜트가 자유롭게 플레이하도록 했다. 그 결과 듀랜트는 평균 25.8득점, 11.1리바운드의 성적으로 득점과 리바운드 부문에서 전미 랭킹 10위 안에 들었으며, 시즌 통산 903득점은 빅 12 컨퍼런스 역대 신기록, NCAA에서도 역대 2위, 통산 390리바운드는 텍사스 대학교 역대 신기록을 세웠다.
듀랜트가 이끈 롱혼스는 컨퍼런스 3위를 기록하며 시즌 25승 10패를 기록했고, 컨퍼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하여 결승에 진출했다. 이 경기에서 듀랜트는 대학 커리어 하이 타이인 37득점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지만, 경기는 연장전 끝에 듀랜트의 역전 슛이 빗나가며 84-88로 텍사스 대학교는 캔자스 대학교에게 아쉽게 패했다.
듀랜트는 2006-07 시즌 대학 농구 주요 개인 타이틀을 모두 휩쓸었다. 전미 농구 코치 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 오스카 로버트슨 상, Adolph Rupp Trophy영어, AP 통신 선정 올해의 선수, 네이스미스 올해의 대학 선수상, 존 R. 우든 상, 이 모든 상을 역사상 최초로 1학년으로서 수상했다. 2006-07 시즌 종료 후 듀랜트는 NBA 드래프트 조기 참가를 선언하고 대학교를 떠났기 때문에 듀랜트가 텍사스 대학교에서 플레이한 기간은 단 1년에 불과했지만, 대학교는 그가 사용했던 등번호 "35"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현재 롱혼스가 사용하는 아레나인 프랑크 어윈 센터에는 텍사스 대학교 출신인 TJ 포드의 등번호 "11"과 함께 듀랜트의 "35" 배너가 걸려 있다.
4. NBA 경력
2007년 NBA 드래프트에는 르브론 제임스 등이 지명된 2003년 NBA 드래프트 이후 최고의 풍작으로 예상될 만큼 많은 스타 후보생들이 참가했다. 듀랜트 외에도 그렉 오든, 알 호포드, 조아킴 노아 등이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경쟁했다. 듀랜트는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오든을 1순위로 지명하면서, 2순위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드래프트 후, 나이키와 7년 60의 대형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신인 계약으로는 르브론 제임스에 이어 역대 2위 규모였다.
드래프트 전 캠프에서 실시된 신체 검사에서 듀랜트는 84kg 벤치 프레스를 한 번도 들지 못하고, 수직 점프 66cm를 기록하는 등 저조한 성적으로 인해 신체 능력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 윙스팬 | 수직 점프 | 코트 3/4 (약 21m) 달리기 | 벤치 프레스 (84kg) |
|---|---|---|---|
| 225cm | 66cm | 3.45초 | 0회 |
4.1. 시애틀 슈퍼소닉스 /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2007-2016)
2007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지명된 듀랜트는, 19세의 나이로 덴버 너기츠와의 첫 정규 시즌 경기에서 18득점, 5리바운드, 3스틸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다. 11월 16일에는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생애 첫 결승 득점을 성공시키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007-08 NBA 시즌이 끝날 때, 듀랜트는 경기당 평균 20.3득점, 4.4리바운드, 2.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NBA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카멜로 앤서니, 르브론 제임스와 함께 한 시즌 동안 평균 20득점 이상을 기록한 유일한 10대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듀랜트의 루키 시즌 이후, 슈퍼소닉스는 오클라호마 시티로 연고 이전하여 선더로 팀명이 변경되었고, 새로운 팀 색상을 선보였다. 팀은 UCLA 출신 가드 러셀 웨스트브룩을 드래프트하여 훗날 듀랜트와 함께 올스타 콤비를 이루게 되었다. 2009년 NBA 올스타 주간에 듀랜트는 NBA 루키 챌린지에서 46점을 기록하며 대회 신기록을 세웠다. 2008–09 NBA 시즌 동안 듀랜트는 경기당 평균 25.3점으로 이전 시즌보다 5점이나 득점 평균을 끌어올렸으며, NBA 기량 발전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투표에서 3위를 차지했다. 듀랜트는 NBA에서 첫 몇 년 동안 꾸준히 성장하여, 키가 까지 자랐다.
2009–10 NBA 시즌에 듀랜트는 생애 첫 NBA 올스타 게임에 선정되었다. 그의 활약으로 선더는 이전 시즌보다 27승을 더 기록하며 2010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경기당 평균 30.1점을 기록한 듀랜트는 최연소 NBA 득점왕이 되었고, 생애 첫 올-NBA 팀에 선정되었다. 플레이오프 데뷔전에서 듀랜트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1차전에서 24점을 기록했지만, 팀은 패배했다. 오클라호마시티는 6경기 만에 시리즈에서 패배했지만, 팀의 성적은 많은 분석가들로부터 그들을 다가오는 우승 후보로 꼽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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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 시즌, 2011-12 시즌, 2012-13 시즌 동안 듀랜트는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3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고, 올스타와 올-NBA 팀에 선정되는 등 리그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12-13 시즌에는 50-40-90 클럽(야투 성공률 50% 이상, 3점슛 성공률 40% 이상, 자유투 성공률 90% 이상)에 가입하며 (사상 6번째) 효율적인 득점력을 과시했다.
2013-14 시즌에는 러셀 웨스트브룩의 부상 이탈에도 불구하고 41경기 연속 25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마이클 조던의 기록(40경기)을 넘어섰다. 듀랜트는 개인 기록보다 팀을 우선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고,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커리어 첫 시즌 MVP를 수상했다. 듀랜트는 평균 32득점, 7.4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4-15 시즌에는 잦은 부상으로 고전했지만, 2015-16 시즌에는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팀을 이끌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했지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아쉽게 패하며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다.
4.1.1. 2007-2008 시즌 (신인 시즌)
2007년 NBA 드래프트에서 그렉 오든이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1순위로 지명된 후, 케빈 듀랜트는 전체 2순위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지명되었다. 듀랜트는 드래프트 전에 이미 나이키와 7년간 60의 계약을 맺었는데, 이는 르브론 제임스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당시 시애틀 슈퍼소닉스는 레이 앨런과 라샤드 루이스를 다른 팀으로 보내고, 샘 프레스티를 영입하는 등 팀 리빌딩을 진행하고 있었다. 듀랜트는 제프 그린과 함께 팀의 새로운 주축 선수가 될 것으로 큰 기대를 받았다.
P.J. 칼리시모 감독은 듀랜트와 그린의 포지션 중복을 고려하여 듀랜트를 슈팅 가드로 기용했다. 2007년 10월 31일, 듀랜트는 덴버 너기츠와의 경기에서 18득점, 5리바운드, 3스틸을 기록하며 NBA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11월 16일에는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극적인 3점 버저비터를 성공시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신인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42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상대로 승리했다.
듀랜트는 2007-2008 시즌에 평균 20.3득점, 4.4리바운드, 2.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NBA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카멜로 앤서니, 르브론 제임스와 더불어 한 시즌 평균 20득점 이상을 기록한 세 명의 10대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러나 팀은 20승 62패로 부진했고, 듀랜트는 득점력은 좋지만 팀 기여도가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선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시즌이 끝난 후, 시애틀 슈퍼소닉스는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4.1.2. 2008-2009 시즌 (소포모어 시즌)
2007-08 NBA 시즌이 끝난 후, 시애틀 슈퍼소닉스는 오클라호마시티로 연고지를 이전하여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로 팀명을 변경하고 새로운 팀 색깔을 선보였다. 이 과정에서 훗날 듀랜트와 함께 올스타 콤비를 이루게 될 UCLA 출신 가드 러셀 웨스트브룩을 드래프트했다.
2009년 NBA 올스타 주간에 듀랜트는 NBA 루키 챌린지에서 46점을 기록하며 대회 신기록을 세웠다. 2008–09 NBA 시즌에서 듀랜트는 경기당 평균 25.3점을 기록, 이전 시즌보다 평균 5점을 더 득점하며 성장했고, NBA 기량 발전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최종 투표에서 3위에 머물렀다. 듀랜트는 NBA 데뷔 초기에 까지 키가 자랐다.
4.1.3. 2009-2010 시즌
2009–10 NBA 시즌 듀랜트는 생애 첫 NBA 올스타 게임에 선정되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선더는 이전 해보다 27승을 더 기록하며 예상과 다르게 2010년 NBA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경기당 30.1점의 득점 평균을 기록한 듀랜트는 최연소 NBA 득점왕이 되었으며, 생애 첫 올-NBA 팀에 선정되었다.
플레이오프 데뷔전에서 듀랜트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1차전 패배에서 24점을 기록했다. 오클라호마시티는 6경기 만에 시리즈에서 패했지만, 팀의 성과는 많은 분석가들로부터 그들을 다가오는 우승 후보로 꼽히게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2009-10 시즌 썬더에 기대를 걸었다. 듀랜트, 러셀 웨스트브룩, 제프 그린의 평균 21.7세라는 젊음이 넘치는 팀의 핵심이 확립되었으며, 네나드 크리스티치나 좋은 수비수인 타보 세폴로샤, 신인 제임스 하든 등 조연도 갖춰졌다. 그들은 기대에 부응하여 지난 2년간 승률 3할을 넘지 못했던 썬더는 개막부터 승률 5할 이상을 유지했고, 시즌 중반에는 9연승을 기록했다. 팀을 비약적으로 이끈 것은 에이스 듀랜트였다. 듀랜트는 9연승 중에도 45득점을 포함하여 평균 32.6득점을 기록, 정규 시즌 중 8번의 40득점 이상을 기록하며 득점 능력을 크게 보여주었다. 또한 29경기 연속 25득점 이상, 7경기 연속 30득점 이상 달성은 슈퍼소닉스 시대를 포함한 썬더의 프랜차이즈 신기록을 수립했다.
마침내 득점왕 경쟁에 이르러 듀랜트는 리그의 대스타 르브론 제임스와 득점왕을 다툰 끝에 시즌 후반에는 르브론을 제치고 리그 정상에 섰다. 정규 시즌 성적은 평균 30.1득점, 7.6리바운드, 2.8어시스트, 자유투(FT) 성공률은 90.0%였다. 듀랜트는 사상 최연소인 21세 197일의 득점왕이 되었다. NBA 올스타 게임에는 코치 추천으로 처음 출전하여 15득점, 5리바운드를 기록. H-O-R-S-E에도 출전하여 2연패를 달성했다. 팀은 시즌 후반까지 부진 없이 호조를 유지하며 최종 성적은 50승 32패를 기록했다. 전년의 23승에서 무려 27승을 더 기록한 것으로, 이는 리그 역사상 6번째 비약이었다. 대약진의 주역인 듀랜트는 정규 시즌 MVP 투표에서 르브론 제임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올 NBA 팀 선정에서는 1st 팀에 처음 선정되었다. 듀랜트는 단숨에 일류 선수 대열에 합류했다. 또한 스콧 브룩스 감독은 NBA 최우수 코치상을 수상했다. 썬더로 개명 후 처음 진출한 NBA 플레이오프에서는 1회전에서 곧바로 전년도 챔피언 팀인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대결했다. 코비 브라이언트나 파우 가솔 등 백전노장의 베테랑 스타들을 보유한 레이커스에 비해 플레이오프 경험이 없는 선수가 대다수인 젊은 썬더가 확실히 불리했고, 결과는 썬더의 1회전 패배로 끝났지만, 듀랜트 등은 챔피언 팀으로부터 2승을 거두는 선전을 펼쳤다.
4.1.4. 2010-2011 시즌
Kevin Durant영어는 2010-11 시즌에 2년 연속 NBA 득점왕과 올 NBA 퍼스트 팀에 선정되었고, 팬 투표로 NBA 올스타 게임에도 출전하며 슈퍼스타로 인정받았다. Oklahoma City Thunder영어는 제프 그린을 트레이드로 내보냈지만,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55승 27패를 기록하며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오프에서 썬더는 덴버 너기츠와 멤피스 그리즐리스를 꺾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더크 노비츠키와 제이슨 키드가 이끄는 댈러스 매버릭스에 1승 4패로 패했다. 듀랜트는 약체 팀이었던 썬더를 지구 우승과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이끌며, 다음 시즌 리그 제패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4.1.5. 2011-2012 시즌
Kevin Durant영어는 2010-11 시즌 이후 오프시즌에 르브론 제임스와 헬 위크라고 불리는 워크아웃을 진행했다. 2011-12 시즌은 락아웃으로 단축되었지만, 듀랜트는 리바운드, 어시스트, 블록슛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고, 47승 19패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3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는데, 이는 마이클 조던 등에 이어 역대 7번째이자 사상 최연소 기록이었다.
2012년 NBA 플레이오프에서 썬더는 순조롭게 승리하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상대로 2연패 후 4연승을 거두며 5년 만에 파이널에 진출했다. 파이널 상대는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마이애미 히트였다. 헬 위크를 함께 보낸 라이벌이자 현역 TOP2 선수 간의 대결은 큰 관심을 모았다.
파이널 데뷔전에서 듀랜트는 최종 쿼터에서 맹활약하며 파이널 데뷔전 역대 2위인 36득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르브론이 수비에서 우위를 점하고, 듀랜트가 파울 트러블에 빠지면서 썬더는 1승 4패로 패배했다.
4.1.6. 2012-2013 시즌
듀랜트는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득점왕을 경험하고, 르브론 제임스와 헬 위크를 다시 진행하며 기량 향상을 도모했다. 2012-13 시즌 개막 전,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는 계약 문제로 제임스 하든을 휴스턴 로케츠로 보냈다. 듀랜트는 르브론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수비력 향상과 함께 올라운더로서 게임 메이킹도 시도했다. 특히 수비에 대한 열정을 보이며 "ALL NBA DIFFENSIVE 1st TEAM에 선정되고 싶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듀랜트는 비록 4년 연속 득점왕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래리 버드 등과 함께 50-40-90 클럽에 가입하며 (사상 6번째) 뛰어난 활약을 펼쳐 ALL NBA 1ST TEAM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시즌 전 목표했던 수비력 향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르브론과의 격차는 여전하여 "이제 두 번째는 싫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선더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1라운드에서 과거 팀 동료였던 하든이 이끄는 휴스턴 로케츠를 만났다. 러셀 웨스트브룩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는 악재가 발생했다. 웨스트브룩은 종종 듀랜트를 무시하고 슛을 시도하는 등 팀 플레이에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기에, 듀랜트는 웨스트브룩의 부재 속에서 "마치 길거리 농구 같아서 즐겁다"라며 볼 소유 시간이 늘어난 것에 대한 만족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웨스트브룩의 적극적인 플레이가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듀랜트는 웨스트브룩의 부재로 인해 경기력이 저하되었고, 결국 멤피스 그리즐리스에게 패배했다.
4.1.7. 2013-2014 시즌 (MVP 시즌)
2013-14영어 시즌, 러셀 웨스트브룩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썬더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하지만 듀랜트는 맹활약하며 매 경기 높은 득점을 기록, 팀을 이끌었다. 이 시즌에 듀랜트는 41경기 연속 25득점 이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는 40경기 연속 25득점 이상을 기록한 마이클 조던을 넘어 NBA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1, 2위는 윌트 체임벌린과 오스카 로버트슨). 조던의 기록을 넘어선 것에 큰 주목을 받았지만, 듀랜트는 자신의 기록에 집착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 경기 자신의 득점만 언론에 보도되는 상황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4월 8일 새크라멘토 킹스 전에서 썬더는 107-92로 승리했지만, 듀랜트는 23득점을 기록하며 연속 기록이 중단되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듀랜트는 "기록은 팀에 악영향을 미쳤다. 팀 경기인데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라며 기록이 끊어진 것에 안도하며,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3쿼터 종료 시점에 듀랜트는 23득점을 기록, 슛 하나만 더 성공하면 기록을 갱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4쿼터에 출전하지 않고 벤치에서 팀의 승리를 지켜봤다. 팀을 우선시하며 의도적으로 기록을 중단했다고 볼 수 있지만, 진실은 본인만이 알 것이다. 어쨌든 대기록을 세운 것은 변함없으며, 개인보다 팀을 존중하는 듀랜트의 자세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그의 인격은 칭찬받았다.
듀랜트는 시즌 MVP 투표에서 125표 중 119표를 얻어 커리어 첫 시즌 MVP로 선정되었다. MVP 수상 후 시상식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선보이며 뛰어난 인격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이 시즌 듀랜트는 평균 32득점, 7.4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썬더는 복귀한 웨스트브룩의 활약 등으로 59승 23패, 웨스턴 컨퍼런스 2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라운드 멤피스 그리즐리스와의 시리즈는 플레이오프 사상 최초로 4경기 연속 연장전에 돌입하는 접전 끝에 4승 3패로 승리, 컨퍼런스 준결승에 진출했다.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의 시리즈도 4승 2패로 제압, 2년 만에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컨퍼런스 결승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2승 4패로 패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4.1.8. 2014-2016 시즌 (선더와의 마지막 시즌)
Kevin Durant영어는 2013-14 시즌에 러셀 웨스트브룩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맹활약하며 팀을 이끌었다. 그는 41경기 연속 25득점 이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마이클 조던의 기록(40경기)을 넘어 NBA 역대 3위에 올랐다. 하지만 듀랜트는 개인 기록보다 팀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경기에서 23득점을 기록하며 연속 기록이 중단되었을 때, "기록은 팀에 악영향을 미쳤다"라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듀랜트는 2013-14 시즌 MVP 투표에서 125표 중 119표의 1위표를 얻어 커리어 첫 시즌 MVP를 수상했다. 수상 연설에서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인격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이 시즌 듀랜트는 경기당 평균 32.0득점, 7.4리바운드, 5.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선더는 웨스트브룩의 복귀와 함께 59승 23패로 웨스턴 컨퍼런스 2번 시드를 획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 멤피스 그리즐리스를 상대로 4승 3패,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를 4승 2패로 꺾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2승 4패로 패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2014-15 시즌에는 캠프 중 오른쪽 제5 중족골 기저 골절(존스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어 개막 후 한 달 동안 결장했다. 복귀 후에도 오른쪽 발목 염좌와 발 골절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3월 20일에 남은 경기 결장이 발표되었다.
2015-16 시즌, 듀랜트는 MVP 수상 시즌에 버금가는 성적을 기록하며 선더의 지구 우승과 웨스턴 컨퍼런스 3번 시드 획득에 기여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4승 1패로 꺾고, 세미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4승 2패로 이기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파이널 진출을 놓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맞붙었으나, 3승 1패로 앞서다가 3연패를 당하며 4년 만의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4.2.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2016-2019)
케빈 듀랜트는 2016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이적하여 2019년까지 뛰면서 두 번의 NBA 챔피언십과 두 번의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워리어스에서 세 시즌 동안 듀랜트는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에서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 2016-2017 시즌: 워리어스에서 첫 시즌에 팀을 NBA 파이널 우승으로 이끌었고,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 2017-2018 시즌: 워리어스에서 두 번째 시즌에도 팀을 NBA 파이널 우승으로 이끌었고, 2년 연속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 2018-2019 시즌: 워리어스에서 세 번째 시즌에 팀을 NBA 파이널로 이끌었지만, 파이널 도중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했고, 팀은 준우승에 그쳤다.
듀랜트의 워리어스 이적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는 워리어스에서 뛰는 동안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팀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4.2.1. 2016-2017 시즌 (첫 우승과 파이널 MVP)
2016년 7월 4일, 듀랜트는 NBA 챔피언이 되기 위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2년 5,43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이 이적은 친정팀의 라이벌이자 우승 후보 1순위 팀으로 간 것이기에 "패배한 상대에게 굴복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듀랜트 영입에는 워싱턴 위저즈를 포함한 많은 팀들이 나섰지만, 듀랜트 측은 우승 가능성이 높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보스턴 셀틱스, 마이애미 히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6팀과만 면담을 했다. 면담은 며칠에 걸쳐 진행되었고, 각 팀당 몇 시간씩이나 되는 긴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단장이나 구단주 등의 임원들은 물론 팀의 주력 선수들과 연고지의 유명 인사들까지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였다(셀틱스는 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톰 브래디, MLB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비드 오티즈 등을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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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 오라클 아레나에서 친정팀 선더를 상대로 39득점을 기록하며 승리했다. 11월 10일 덴버 너게츠전에서는, 지난 시즌부터 이어져 온 1경기 20득점 연속 기록이 마이클 조던과 같은 72경기에서 멈췄지만, 경기는 크게 이겼다. 이후에도 스테판 커리, 클레이 탐슨 등과 함께 워리어스를 이끌었고, 2017년 1월 19일에는 8년 연속으로 NBA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되어 선발 선수로 뽑혔다. 2월 11일, 이적 후 처음으로 선더의 홈 체서피크 에너지 아레나를 방문했을 때 엄청난 야유를 받았다. 경기 중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받았고, 러셀 웨스트브룩이나 안드레 로버슨과의 트래시 토크 등 격렬한 경기가 펼쳐졌지만, 팀 최다 득점인 34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2월 28일 워싱턴 위저즈전 경기 시작 1분 만에, 마친 고르탓과의 리바운드 경합 과정에서 넘어진 자자 파출리아가 왼쪽 무릎에 부딪히는 사고로 급하게 경기장을 나섰다. MRI 검사 결과 내측 측부 인대(MCL)의 과신전과 경골 타박상을 입은 것이 확인되어 잠시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부상으로부터 약 5주 후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전에서 복귀하여 16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워리어스는 67승 15패로 리그 최고 성적으로 정규 시즌을 마쳤다. 컨퍼런스 플레이오프에서도 압도적인 강세로 승리하여, 3년 연속 대결을 펼치게 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의 NBA 파이널에서, 듀랜트는 평균 35.2득점, 8.4리바운드, 5.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워리어스를 이끌었고, 4승 1패로 NBA 챔피언으로 이끌었으며 NBA 파이널 MVP로 선정되었다.
4.2.2. 2017-2018 시즌 (두 번째 우승과 파이널 MVP)
Kevin Durant영어는 2016-17 시즌 후 선수 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고, 2016년 7월 4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2년 5,43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 이적은 "패배한 상대에게 굴복하는 것"이라며 비난을 받았다.
11월 3일, 오라클 아레나에서 친정팀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를 상대로 39득점을 기록하며 승리했다. 2017년 1월 19일에는 8년 연속으로 NBA 올스타전 선발 선수로 뽑혔다. 2월 28일 워싱턴 위저즈전에서 내측 측부 인대(MCL) 과신전과 경골 타박상으로 부상을 입었으나, 약 5주 후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전에서 복귀하여 16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워리어스는 67승 15패로 리그 최고 성적으로 정규 시즌을 마쳤다.
2017년 NBA 파이널에서 워리어스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4승 1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듀랜트는 평균 35.2득점, 8.4리바운드, 5.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NBA 파이널 MVP로 선정되었다.
2017-18 시즌을 앞두고 듀랜트는 2년 5,300만 달러(1년차 2,590만 달러, 2년차 선수 옵션)의 계약을 체결했다. 2017년 12월 11일, 시즌 8주차 웨스턴 컨퍼런스 이주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통산 26번째였다. 2018년 1월 10일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전에서 40득점을 기록하며 통산 20,000득점을 달성했다. 29세 103일 만의 달성으로, 르브론 제임스(28세 17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기록이었다.
2018년 NBA 올스타전에도 선발 출전했으며, 2월 14일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전에서는 시즌 최고 50득점을 기록했다. 3월 16일 갈비뼈 연골 골절로 2주간 결장했지만, 복귀 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2018년 NBA 플레이오프에서도 맹활약하며 팀의 2연패를 이끌었고, 2018년 NBA 파이널에서 평균 28.8득점, 10.8리바운드, 7.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년 연속 NBA 파이널 MVP로 선정되었다.
4.2.3. 2018-2019 시즌 (3연패 도전과 부상)
2018년 7월 7일, 듀랜트는 2년차 선수 옵션이 포함된 2년 61.5 계약으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재계약했다. 2018년 11월 12일,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의 연장전 패배에서 드레이먼드 그린은 듀랜트가 시즌 후 자유 계약 선수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고, 이는 큰 화제가 되어 그린은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11월 29일, 워리어스는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 131-128로 패했지만, 듀랜트는 시즌 최고 51점을 기록하며 3경기 연속 40득점 이상을 기록했다. 그는 10년 연속 NBA 올스타전에 선출되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의 5차전에서 45득점을 기록했지만 팀은 패배했다. 6차전에서는 50득점을 기록하며 워리어스가 승리했다. 휴스턴 로키츠와의 서부 컨퍼런스 준결승 5차전에서 듀랜트는 오른쪽 종아리 부상을 당해 9경기를 결장했다. 그 사이 워리어스는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꺾고 5년 연속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NBA 파이널에서 카와이 레너드가 이끄는 토론토 랩터스와 맞붙었고, 4차전까지 워리어스는 1-3으로 뒤졌다. 5차전에 듀랜트는 오른쪽 종아리 부상을 안고 출전, 1쿼터에 11득점을 기록했으나, 2쿼터 시작 2분 후 세르주 이바카를 제치려다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고 코트를 떠났다. 워리어스는 이 경기에서 이겼지만, 6차전에서 패하며 NBA 파이널 3연패에 실패했다.
6월 30일, 듀랜트가 브루클린 네츠와 계약할 것이라고 발표되자, 7월 1일 워리어스 공동 구단주 조 레이코브는 듀랜트의 공적을 기려 등번호 35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4.3. 브루클린 네츠 (2019-2023)
2019년 7월 7일, 브루클린 네츠와 계약하며 이적했지만, 첫 시즌은 부상과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결장했다. 2020-2021 시즌에 복귀하여 제임스 하든과 다시 팀 동료가 되었고, 여러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선수 생활 처음으로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한 적도 있으며, 햄스트링 부상으로 23경기에 결장하기도 했다. SNS 상에서의 폭언으로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고, 2021년 NBA 올스타전에서는 팀 주장을 맡았다.
2021-2022 시즌에는 네츠와 연장 계약을 체결하고, 통산 득점 순위에서 앨런 아이버슨을 제치기도 했다. 시즌 최고 득점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지만, 부상으로 올스타전에 결장하고,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오프 시즌에는 트레이드를 요청했으나, 결국 잔류했다. 3년 연속 올스타 게임에 선출되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또다시 결장하게 되었다.
4.3.1. 2019-2020 시즌 (결장)
2019년 7월 7일, 브루클린 네츠와 4년 164에 계약했다. 하지만, 네츠에 합류한 첫 해인 2019-20 시즌에는 아킬레스건 부상과 2020년 3월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시즌 전체를 결장했다.
4.3.2. 2020-2021 시즌
2020년 12월 22일, 듀랜트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의 경기에서 약 2년 만에 공식 복귀전을 치렀고, 브루클린 네츠 소속으로 데뷔하여 22득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하며 팀의 125-99 승리를 이끌었다. 2021년 1월 14일, 제임스 하든이 4팀 간의 대형 트레이드로 네츠에 합류하면서 듀랜트와 하든은 다시 한 팀에서 뛰게 되었다. 1월 16일, 듀랜트는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에서 시즌 최고 42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122-115 승리에 기여했다. 2월 5일,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는 선수 생활 처음으로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2월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23경기에 결장했다. 4월 2일, 듀랜트는 배우 마이클 라파포트에게 SNS를 통해 폭언을 한 이유 등으로 리그로부터 50000USD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2021년 NBA 올스타전에서는 처음으로 팀 주장을 맡았다.
4.3.3. 2021-2022 시즌
2021년 8월 8일, 듀랜트는 브루클린 네츠와 4년 198의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11월 24일 보스턴 셀틱스와의 경기에서 21득점을 기록하며 앨런 아이버슨을 제치고 통산 득점 역대 25위에 올랐다. 12월 12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의 경기에서는 시즌 최고 51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116-104 승리를 이끌었다.
2022년 1월 28일, 듀랜트는 두 번째로 올스타전 팀 캡틴으로 선정되었으나, 왼쪽 무릎 부상으로 인해 올스타전에 결장했다. 또한 올스타전 당일 아침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NBA 75주년 기념 행사에도 불참했다. 4월 3일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경기에서는 시즌 최고 55득점을 기록했지만, 팀은 115-122로 패배했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브루클린 네츠는 보스턴 셀틱스에게 4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오프 시즌에 듀랜트는 트레이드를 요청했지만, 구단주 및 단장과의 면담 끝에 잔류했다. 3년 연속 올스타 게임에 선출되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또다시 결장하게 되었다.
4.3.4. 2022-2023 시즌 (트레이드 요청)
오프 시즌에 브루클린 네츠에 트레이드를 요청했지만, 구단주 및 단장과의 면담 끝에 잔류했다. 3년 연속 올스타 게임에 선출되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또다시 결장하게 되었다.
4.4. 피닉스 선스 (2023-현재)
2023년 2월 9일, 미칼 브릿지스, 캐머런 존슨, 제이 크라우더, 4개의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T.J. 워렌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피닉스 선스로 이적했다. 듀랜트는 등번호 7번을 원했지만, 케빈 존슨의 영구 결번으로 인해 대학 시절과 워리어스에서 사용했던 35번을 선택했다.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인해 2023년 3월 1일 샬럿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데뷔했으며, 약 27분 동안 23득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개막 전 워싱턴 위저즈에서 브래들리 빌이 합류하면서 데빈 부커, 듀랜트와 함께 "BIG3"가 결성되었다.
듀랜트는 정규 시즌 75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37.2분 동안 27.1득점(리그 5위), 6.6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게 4연패로 탈락했다.
2024년 2월 24일, 휴스턴 로케츠와의 경기에서 28득점을 기록하며 NBA 통산 득점을 28,296점으로 늘려 카멜로 앤서니를 제치고 역대 9위에 올랐다.
4.4.1. 2023 시즌
케빈 듀랜트는 2023년 2월 9일, 미칼 브릿지스, 캐머런 존슨, 제이 크라우더, 4개의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T.J. 워렌과 함께 피닉스 선스로 이적했다. 듀랜트는 등번호 7번을 희망했지만, 해당 번호는 케빈 존슨이 착용한 이후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대학 시절과 워리어스에서의 선수 경력 동안 착용했던 35번을 선택했다.
오른쪽 무릎 부상의 영향으로 2023년 3월 1일에 열린 샬럿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데뷔하여 약 27분 동안 출전, 23득점을 기록하며 선스의 승리에 기여했다. 개막 전, 워싱턴 위저즈와의 트레이드로 브래들리 빌이 선즈에 합류하여 빌, 데빈 부커, 듀랜트로 이어지는 "BIG3"가 결성되었다.
듀랜트는 2023년 정규 시즌 75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37.2분 동안 27.1득점(리그 5위), 6.6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1라운드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대결했지만 4연패로 탈락했다.
2024년 2월 24일, 휴스턴 로케츠와의 경기에서 28득점을 기록, NBA 통산 득점을 28,296점으로 늘리며 카멜로 앤서니를 제치고 역대 9위가 되었다.
4.4.2. 2023-2024 시즌
2023년 2월 9일, 미칼 브릿지스, 캐머런 존슨, 제이 크라우더, 4개의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T.J. 워렌과 함께 피닉스 선스로 이적했다. 듀랜트는 등번호 7번을 희망했지만, 해당 번호는 케빈 존슨이 착용한 이후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대학 시절과 워리어스에서의 선수 경력 동안 착용했던 35번을 선택했다.
오른쪽 무릎 부상의 영향으로 3월 1일에 열린 샬럿 호네츠와의 경기에서 데뷔, 약 27분 동안 출전하여 23득점을 기록하며 선스의 승리에 기여했다. 개막 전, 워싱턴 위저즈와의 트레이드로 브래들리 빌이 선즈에 합류하여 빌, 데빈 부커, 듀랜트의 "BIG3"가 결성되었다.
듀랜트는 정규 시즌(RS)에서 75경기에 출전했다. 평균 37.2분 동안 뛰며, 27.1득점(리그 5위), 6.6리바운드, 5.0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팀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1라운드에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대결했지만 4연패로 스트레이트 패배를 당했다.
2월 24일, 휴스턴 로케츠와의 경기에서 28득점을 기록, 이로써 NBA 통산 득점수를 28,296득점으로 하여 카멜로 앤서니를 제치고 역대 9위가 되었다.
5. 국가대표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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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랜트는 텍사스 대학교 재학 중이던 2007년 2월에 미국 대표팀의 훈련 캠프에 초청받았다. 대학교 1학년으로 대표팀 캠프에 참가한 것은 그렉 오든에 이어 두 번째였다. 같은 해 여름 캠프에도 참가했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는 선발되지 못했다. 듀랜트가 처음으로 NBA 득점왕에 오른 2010년 여름, 그는 세계 선수권 대회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멤버 대부분이 대표팀 합류를 고사했고, 베테랑은 차운시 빌럽스와 라마 오덤 단 두 명뿐이었기 때문에, 선수권 대표팀은 매우 젊은 팀이 되었다. 코비 브라이언트나 르브론 제임스 등 빅 네임이 없는 이 대표팀의 사전 평가는 결코 높지 않았다. 그러나 성장세가 뚜렷했던 듀랜트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듀랜트는 토너먼트 통산 205득점, 1경기 38득점을 포함해 평균 22.8득점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