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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코 (범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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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케이코는 1979년 아이슬란드에서 포획되어 수족관에서 사육된 범고래이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수족관을 거쳐 1993년 영화 《프리 윌리》에 출연하며 유명해졌다. 영화 성공 이후 열악한 사육 환경 개선 및 야생 복귀를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1996년 미국 오리건 코스트 수족관으로 옮겨져 재활 훈련을 받았다. 1998년 아이슬란드로 돌아가 야생 범고래 무리와 합류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2003년 노르웨이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케이코의 야생 복귀 시도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낳았으며, 영화 출연 외에도 여러 작품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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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코 (범고래)
기본 정보
1998년 12월 1일 촬영된 케이코
1998년 12월 1일 촬영
범고래 (Orcinus orca)
성별수컷
사망일2003년 12월 12일 (세)
사망 장소노르웨이, 아라스비크피오르, 탁네스 만
다른 이름Siggi
Kago
역할영화 프리 윌리의 윌리 역
웹사이트http://www.keiko.com/

2. 생애

케이코는 1979년 아이슬란드 근처에서 포획되어 여러 수족관을 전전하며 사육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공연 동물로 길러졌으며, 이 과정에서 건강 문제를 겪기도 했다. 1993년 영화 《프리 윌리》에 출연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이를 계기로 열악한 사육 환경에서 벗어나 야생 복귀를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1996년 미국 오리건주 뉴포트의 오리건 코스트 수족관으로 옮겨져 피부 질환 치료와 야생 적응 훈련을 받았고, 1998년에는 아이슬란드헤이마에이섬으로 돌아갔다. 이후 훈련이 계속되었으나, 2002년 노르웨이 서부 할사의 피오르에서 홀로 발견되었다. 야생 복귀 노력은 계속 이어졌지만, 결국 2003년 12월 12일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다.[2][3]

2. 1. 초기 생애 (1979년 ~ 1993년)

케이코는 1979년경 아이슬란드 레이다르피요르두르 근처에서 포획되어, 당시 2세 정도로 추정되며 하프나르피요르두르의 아이슬란드 수족관에 판매되었다. 당시 그는 '''시지'''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후 '''카고'''라는 이름이 붙여졌다.[2][3]

1982년, 그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마린랜드로 옮겨졌다. 이 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음을 나타내는 피부 병변이 생겼으며, 나이가 더 많은 범고래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1985년, 케이코는 멕시코 멕시코시티에 있는 유원지 레이노 아벤투라(현 식스 플래그 멕시코)에 팔렸다. 레이노 아벤투라에서 그는 "케이코"로 개명되었는데, 이 이름은 "행운아"를 의미하는 일본어 이름이다.

2. 2. 영화 "프리 윌리" 출연 (1993년)

케이코는 1993년 영화 《프리 윌리》에 출연하여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소년 제시와 범고래 윌리의 우정을 그리며, 소년이 수족관에 갇힌 윌리를 바다로 탈출시켜 자유롭게 해주는 내용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34]

그러나 윌리를 연기한 케이코는 좁은 수조와 수질 불량 등 열악한 사육 환경에 놓여 있었고, 이는 피부 질환, 소화기 및 심장 질환 악화로 이어졌다. 약 6.40m 길이의 범고래에게 주어진 수영장은 깊이 약 6.71m, 너비 약 19.81m, 길이 약 34.75m에 불과했다. 그는 큰돌고래와 함께 지냈지만, 같은 종은 없었다.[4][5] 케이코는 체중 미달이었고, 수온이 너무 따뜻해 피부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6] 유두종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피부 발진은 캐나다 온타리오에 수용되었을 때 처음 관찰되었다.[7]

세계 주요 매스 미디어가 케이코의 열악한 사육 환경을 보도하자, 케이코를 걱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반향이 일어났다. 영화 제작자 로렌 슐러 도너는 "케이코의 실제 생활은 《프리 윌리》에 그려진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상영만 하고 케이코를 원래 풀로 돌려보내고 그걸로 끝내도 되는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짓을 하면 케이코는 죽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34]

영화를 제작한 워너 브라더스는 자연 보호 단체 어스 아일랜드 인스티튜트에 협력을 요청하여 케이코에게 더 좋은 시설을 찾기 시작했고, 워너 브라더스와 실업가 크레이그 매코의 기부를 바탕으로 케이코의 야생 복귀를 목적으로 하는 프리 윌리 케이코 재단도 설립되었다. 레이노 아벤투라는 케이코의 소유권을 해당 재단에 기부했다.

3. 야생으로의 복귀 시도

영화 《프리 윌리》의 성공으로 케이코의 열악한 사육 환경이 알려지자, 야생 복귀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인간에게 길들여진 케이코의 야생 복귀 가능성에 대한 논란도 컸다.[19] 일부 전문가들은 케이코의 야생 복귀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반면, 케이코의 장기적인 복지를 위해 복귀 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13][19]

이러한 상황에서 노르웨이의 한 정치인 스테이나르 바스테센은 케이코를 안락사시켜 그 고기를 아프리카에 원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14]

이처럼 케이코의 야생 복귀는 많은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복귀를 위한 노력은 계속 진행되었다. ("프리 윌리-케이코 재단" 설립과 오리건으로의 이송, 아이슬란드 귀향과 재활 훈련, 노르웨이에서의 생활과 죽음은 각각 하위 섹션에서 상세히 다룬다.)

3. 1. "프리 윌리-케이코 재단" 설립과 오리건으로의 이송 (1995년 ~ 1998년)

1995년, "자유로운 윌리-케이코 재단(Free Willy-Keiko Foundation)"이 설립되면서 영화 크레딧에 고래 보호를 위한 전화번호가 포함되었고, 수십만 통의 전화가 쇄도하면서 케이코의 해방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8] 워너 브라더스와 크레이그 맥코는 국제 해양 포유류 프로젝트(International Marine Mammal Project)에 도움을 요청했고, 1995년 2월에 "자유로운 윌리-케이코 재단"을 설립했다.[9]

재단과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의 기부로 오리건 해안 수족관은 오리건주 뉴포트에 케이코를 야생으로 돌려보낼 희망을 품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700만달러 이상을 기부받았다. 레노 아벤투라는 케이코를 재단에 기증했다.[10] 멕시코시티에 있는 놀이공원을 떠나기 전, 케이코는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서 공연을 했고, 수천 명의 어린이들이 그를 배웅했으며, 더 많은 구경꾼들이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으로 가는 그의 야간 여정을 지켜봤다.[8][11]

당시 케이코의 몸무게는 약 약 3492.66kg였다.[7][8] 1996년 1월 8일, 유나이티드 파슬 서비스(UPS)에서 기증한 록히드 L-100 허큘리스 화물기가 케이코를 오리건주 뉴포트로 수송했다.[8][12]

오리건 해안 수족관에 도착한 케이코는 해수를 담은 새로운 콘크리트 울타리에 수용되었다. 1997년 6월까지 케이코의 몸무게는 약 4363.56kg로 크게 증가했다.[10]

3. 2. 아이슬란드 귀향과 재활 훈련 (1998년 ~ 2002년)

케이코의 야생 복귀 준비는 1998년 9월 9일에 시작되었다. 케이코는 아이슬란드 베스트만나에이야르의 헤이마에이 섬에 있는 클렛스비크 만으로 옮겨졌다. UPS는 뉴포트 시립 공항까지 육상 운송을 맡았다. 케이코는 몸을 덮을 만큼 충분한 바닷물과 얼음 조각으로 냉각된 약 9.14m 길이의 특수 컨테이너에 실려 수송되었다. 이후 미국 공군이 대여한 C-17 글로브마스터 항공기로 공중 수송되었다.[7] 베스트만나에이야르 공항 착륙 중 C-17 글로브마스터 항공기의 착륙 장치 고장으로 100만 달러 이상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케이코는 다치지 않았다.[15][16]

1998년 9월 9일 오리건주 뉴포트에서 아이슬란드 베스트만 제도로 수송하기 위해 C-17 수송기에 케이코를 싣는 모습


케이코의 일상 관리는 프리 윌리-케이코 재단이 맡았고, 오션 퓨처스 소사이어티가 관리를 지원했다. 케이코는 처음에는 클렛스비크 만의 펜에 수용되었으며, 방류를 위한 훈련(바다에서의 감독 수영 포함)을 받았다.

오션 퓨처스는 2001년 말에 케이코 프로젝트에서 물러났다. 프리 윌리-케이코 재단과 미국 휴메인 협회는 2003년 케이코가 죽을 때까지 프로젝트 관리를 재개했다.[17] 케이코는 2002년 여름에 완전히 자유가 되었고, 8월 초 아이슬란드 해역을 떠나 범고래를 따라갔지만 무리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케이코의 여정은 등지느러미에 부착된 VHF 태그 신호로 추적되었다.[19]

약 한 달 후, 케이코는 노르웨이 스칼비크 피오르에 도착해 인간과의 접촉을 원하며 아이들이 등에 타도록 했다.[18] 관리인들은 노르웨이로 이주하여 15개월 동안 케이코와 함께 보트를 탔다.[19] 허리 둘레 측정과 혈액 검사 결과, 케이코는 아이슬란드에서 노르웨이까지 약 1448.41km를 이동하는 동안 먹이를 먹은 것으로 추정되었다.[19] 케이코는 때때로 야생 범고래 무리에 접근했지만, 100m~300m 거리에서 가장 가까운 범고래 쪽으로 머리를 둔 채 주변에 머물렀다.[19]

3. 3. 노르웨이에서의 생활과 죽음 (2002년 ~ 2003년)

2002년 9월, 케이코는 노르웨이 서부의 하르사 피오르에서 발견되었다. 케이코는 야생 범고래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였으며, 등지느러미에 부착된 텔레메트리 송신기를 통해 추적되었다.[36] 이후 피오르에 정착하여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야생 복귀를 목표로 하는 동물 보호 단체의 요청으로, 노르웨이 정부는 케이코에게 접근 및 먹이 공급을 금지하고, 케이코를 타크네스 만으로 옮겼다. 타크네스 만에서는 부유 울타리를 설치하지 않아 케이코가 언제든 외해로 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케이코는 타크네스 만에서 사육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먹이를 공급받았다. 등지느러미에는 추적 장치가 부착되어 4명의 관리자가 케이코의 위치를 파악했다. 포획된 범고래 치고는 나이가 많았지만, 야생 수컷 범고래는 약 35세까지 산다. 프리 윌리-케이코 재단의 사무총장은 케이코가 비교적 건강했다고 밝혔으나, 사망 전날 무기력증과 식욕 부진 증상이 빠르게 나타났다고 한다. 2003년 12월 12일, 케이코는 불규칙한 호흡수가 측정된 후 빠르게 죽었으며, 사인은 폐렴으로 밝혀졌다.[41][42][43] 미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대변인 닉 브래든은 수의사들이 케이코에게 항생제를 투여했지만, 케이코의 죽음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4. 야생 복귀 과정 평가

케이코의 야생 복귀 시도는 성공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오랜 사육 생활에도 불구하고 자연에서 생존하고 야생 고래와 교류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완전히 야생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간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적 평가가 공존한다.

케이코의 야생 복귀에는 총 2000만달러가 소요되었다. 해양 포유류 과학(Marine Mammal Science)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이 비용을 범고래와 서식지 보호를 위한 보존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28]

장기간 포획되었던 범고래를 방생하는 대안으로, 고래 보호 구역 프로젝트의 로리 마리노는 "보호 구역" 또는 "해양 울타리"(해상 우리)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하며, "그들을 풀어줄 수는 없지만, 삶의 질은 훨씬 향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방법에는 1500만달러에서 2000만달러 정도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25][29][30]

야생 복귀 운동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많았다.[37] 오랫동안 인간의 사육 하에 있던 범고래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인간 곁에 두는 것이 케이코를 행복하게 한다는 주장과 함께, 한 마리의 범고래에게 들인 막대한 비용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야생 복귀를 위한 재활 훈련을 실시한 오리건 코스트 수족관은 케이코가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며 이송에 반대했다. 마이애미 수족관 소유주 아서 허츠는 "영화는 항상 해피 엔딩이지만 실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우려를 표했다.[38]

노르웨이 정치가이자 포경 지지자인 스타이너 바스테센은 케이코의 야생 복귀 활동을 "정신 나간 돈 낭비"라고 비판하며, "케이코의 고기를 60000개의 미트볼로 만들어 수단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보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39] 케이코 사후, 그린란드 천연자원연구소의 말렌 사이먼은 "야생 복귀 시도는 잘못된 행위가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40]

4. 1. 비판적 시각

대부분의 자료는 범고래 케이코를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평가한다.[20]

노르웨이에서 케이코는 다른 범고래들과 거의 교류하지 못했고, 물고기를 스스로 잡지도 못했다. 죽기 몇 달 전부터는 매일 사람에게서 먹이를 받아먹었다.[21][22][13]

가디언지(The Guardian)는 케이코의 탁네스 만에서의 삶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케이코는 죽을 때까지 피오르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기보다는, 일주일에 최소 세 번은 작은 보트를 탄 관리인들과 함께 '산책'을 다녔다. ... 케이코가 자유로운 범고래 무리에 합류하도록 60번이 넘게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노르웨이 해안에서 어선을 따라가 마지막 안식처가 될 피오르로 들어갔다."[23]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는 "케이코는 2002년 7월 30일에 단 한 번 야생 범고래들 사이에서 잠수하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하지만 신체 접촉 후, 케이코는 헤엄쳐가 추적 보트에서 인간과의 접촉을 갈망했다."라고 전했다.[13] Simon, Hanson, Murrey 외 (2009)는 케이코가 야생 범고래 무리 주변에서 목격되기는 했지만, 사회적으로 통합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케이코는 야생 무리에 절대 통합되지 못했고... 인간과의 접촉에 대한 욕구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24]

Simon 외 (2009)는 케이코가 먹이와 교류를 위해 인간에게 돌아온 것이 이 프로젝트의 실패를 보여준다고 말한다.[19]

케이코가 야생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로는 포획 당시의 어린 나이, 오랜 포획 생활, 다른 범고래들과의 장기간 접촉 부족, 인간과의 강한 유대감 등이 꼽힌다.[19]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프리 윌리-케이코 재단의 전무 이사 데이비드 필립스는 방생 프로젝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는 가장 어려운 후보자를 선택하여 멕시코에서 죽어가던 그를 노르웨이에서 야생 고래들과 함께 헤엄치게 했습니다."[23] "케이코는 5년 동안 자연 해수의 모습과 소리를 접했습니다. 케이코, 그의 행복, 그리고 옳은 일을 하고 싶어했던 전 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큰 성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25]

허핑턴 포스트(The Huffington Post)는 케이코의 방생을 "경이로운 성공... 그에게 수년간의 건강과 자유를 선사했다"고 평가하며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다.[26][27]

케이코를 방생하는 데에는 총 2000만달러가 소요되었다. 해양 포유류 과학(Marine Mammal Science)에 게재된 연구의 주 저자는 "이 동물들을 그냥 야생으로 내보낼 수는 없다. 책임을 져야 하며, 그 비용이 많이 들 수 있다. 케이코에게 쓴 돈은 고래와 그 서식지를 보호하기 위한 보존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한 마리의 고래의 모험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28]

장기간 포획된 범고래를 방생하는 대신, 고래 보호 구역 프로젝트의 로리 마리노는 "보호 구역" 또는 "해양 울타리"(해상 우리)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한다.[29][30]

마리노는 2016년 인터뷰에서 "그들을 풀어줄 수는 없지만, 삶의 질은 훨씬 향상될 수 있다."라고 말하며, 비용이 1500만달러에서 2000만달러 정도 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은 엄중한 책임이며, 포획된 동물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25]

4. 2. 긍정적 시각

프리 윌리-케이코 재단의 전무 이사 데이비드 필립스는 방생 프로젝트에 대해 "우리는 가장 어려운 후보자를 선택하여 멕시코에서 죽어가던 그를 노르웨이에서 야생 고래들과 함께 헤엄치게 했습니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23] 그는 또한 "케이코는 5년 동안 자연 해수의 모습과 소리를 접했습니다. 케이코, 그의 행복, 그리고 옳은 일을 하고 싶어했던 전 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큰 성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25]

허핑턴 포스트(The Huffington Post)는 케이코의 방생을 "경이로운 성공... 그에게 수년간의 건강과 자유를 선사했다"고 평가했다.[26][27] 멕시코의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미국 오리건주 뉴포트의 오리건 코스트 수족관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했고, 아이슬란드 헤이마에이섬으로 돌아가 야생 범고래와 함께 헤엄치기도 했다. 비록 완벽한 야생 적응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노르웨이까지 먼 거리를 이동하며 먹이를 섭취하는 등 일부 적응 능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5. 유산과 영향

케이코의 사례는 해양 포유류의 야생 복귀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향후 관련 연구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케이코를 위한 노력은 해양 동물 복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1]

6. 출연 작품

케이코는 영화와 TV 시리즈에 출연했다. 특히 1993년 영화 《프리 윌리》에 출연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다음은 케이코의 주요 출연 작품 목록이다.

제목연도종류비고
킨세아네라1987TV 시리즈
케이코 엔 펠리그로(Keiko en peligro)1990영화
프리 윌리(Free Willy)1993영화
아술1996TV 시리즈
케이코: 언톨드 스토리(Keiko: The Untold Story)2010영화



2010년에는 영화 ''케이코: 언톨드 스토리''가 개봉했다. 2013년에는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 비디오인 '풀려나지 못한 고래'(The Whale Who Would Not Be Freed)에 케이코의 바다로의 귀환에 대한 인터뷰가 포함되었다.[31] 2024년에는 ''뉴욕 타임스''가 케이코에 초점을 맞춘 팟캐스트 '굿 웨일'(The Good Whale)을 공개했다.[32]

6. 1. 영화


  • ''킨세아네라'' (1987; TV 시리즈)
  • ''케이코 엔 펠리그로''(Keiko en peligro) (1990)
  • ''프리 윌리''(Free Willy) (1993)
  • ''아술'' (1996; TV 시리즈)
  • ''케이코: 언톨드 스토리''(Keiko: The Untold Story) (2010)


1993년, 멕시코 멕시코시티의 유원지 레이노 아벤투라(현 시스 플래그 멕시코)에 있던 케이코는 영화 관계자에게 발탁되어 영화 《프리 윌리》에 출연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31] 2010년에는 영화 ''케이코: 언톨드 스토리''가 개봉했다.[32]

6. 2. TV


  • 킨세아네라 (1987; TV 시리즈)
  • 아술 (1996; TV 시리즈)

6. 3. 기타

1985년, 멕시코의 가수 루세로싱글 "케이코"를 발매했다. 이 곡은 케이코가 멕시코시티의 유원지 레이노 아벤투라(현 시스플래그 멕시코)의 새로운 볼거리가 된 것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싱글이다.[35] 수록곡은 "케이코"와 "Keiko 3000 kilos de Amor" 2곡이며, 음반 재킷에는 케이코가 루세로의 뺨에 키스하는 사진이 사용되었다.[35]

참조

[1] 웹사이트 Keiko the killer whale dies https://www.nbcnews.[...] 2024-04-28
[2] 서적 Death at SeaWorld: Shamu and the dark side of killer whales in captivity https://archive.org/[...] St. Martin's Press 2012-07-17
[3] 서적 Of Orcas and Men: What killer whales can teach us https://books.google[...] The Overlook Press 2015-06-16
[4] 뉴스 Keiko's love of children puts his life in danger https://www.theguard[...] 2002-09-07
[5] 뉴스 Orca trainer saw best of Keiko, worst of Tilikum http://www.cnn.com/2[...] 2013-10-26
[6] 뉴스 Ill 'Willy' presents a whale of a problem https://www.washingt[...] 2022-12-16
[7] 뉴스 ''Free Willy'': The true sequel https://www.washingt[...] 2022-12-16
[8] 웹사이트 Willy is freed! Well, moved, anyway https://www.nytimes.[...] 2022-12-16
[9] 웹사이트 Keiko whale rescue https://savedolphins[...] Earth Island Institute 2022-12-16
[10] 서적 Keiko's Story: A killer whale goes home https://books.google[...] Millbrook Press 2017-08-18
[11] 웹사이트 Keiko, the only captive orca to ever return home https://karlamunguia[...] 2022-12-16
[12] 웹사이트 LM-100J — The Commercial C-130J Hercules {{!}} Code One Magazine https://www.codeonem[...] 2024-06-13
[13] 간행물 Why freeing Willy was the wrong thing to do https://www.newscien[...] 2009-04-28
[14] 뉴스 'Turn Keiko into meatballs' https://www.independ[...] 1998-09-15
[15] 웹사이트 C-17A S/N 96-0006 http://www.mcchordai[...]
[16] 웹사이트 C-17 accident during whale lift due to design flaw http://findarticles.[...]
[17] 웹사이트 Free Willy-Keiko Foundation http://www.keiko.com[...]
[18] 뉴스 Keiko not so 'wild' in Norway http://komonews.com/[...] KOMO-TV 2016-09-24
[19] 논문 An attempt to release Keiko the killer whale http://digitalcommon[...] 2009-07
[20] 뉴스 Death of Keiko https://www.national[...] 2017-08-14
[21] 뉴스 ''Free Willy'' whale dies http://www.cbsnews.c[...]
[22] 뉴스 Whale star of ''Free Willy'' dies after return to wild https://www.telegrap[...] 2003-12-14
[23] 뉴스 Free at last? New row as Keiko dies https://www.theguard[...] 2003-12-13
[24] 뉴스 Killer whales: What to do with captive orcas? http://news.bbc.co.u[...] 201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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