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빈스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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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터 빈스펠트는 16세기 후반의 가톨릭 신학자이자 작가로, 특히 마녀사냥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로마에서 유학 후 트리어의 보좌 주교로 선출되었으며, 트리어 마녀 재판의 주요 동인 중 하나였다. 그는 고문으로 얻어진 자백이라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마녀 고발을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또한, 칠죄종과 관련된 악마 목록을 출판했으며, 변신 능력과 악마의 표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페터 빈스펠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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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빈스펠트
출생1540년경, 킨츠
사망1598년, 트리어
직업신학자
주교
종교적 경력
주교 임명1580년
서품1580년
교구트리어 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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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육과 경력

페터 빈스펠트는 지역 수도원장의 추천으로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후 고향으로 돌아와 16세기 후반 개신교에 반대하는 가톨릭 활동을 펼쳤다. 트리어보좌 주교로 선출되었으며, 신학 저술가로 활동했다.

2.1. 마녀사냥 주도

페터 빈스펠트는 트리어보좌 주교이자 신학자로, 16세기 후반 마녀사냥꾼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는 1581년부터 1593년까지 요한 폰 쇠넨베르크 주교의 지배하에 트리어 마녀 재판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였다.

빈스펠트는 여러 언어로 번역된 De confessionibus maleficorum et sagarum ('흑마법사와 마녀의 자백')이라는 논문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고문으로 얻은 자백이라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고발을 독려했다.

그는 12세 미만의 소녀와 소년은 위치크래프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일부 어린아이들의 조숙함 때문에 법이 완전히 엄격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당시 일부 재판소에서 2~5세 어린이를 화형에 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온건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빈스펠트는 당시 다른 저자들과 달리 변신 능력과 악마 자국의 타당성을 의심했다.

1589년, 빈스펠트는 칠죄종과 관련된 악마 목록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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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악마
자존심루키페르
탐욕맘몬
욕망아스모데우스
질투레비아탄
폭식베엘제붑
분노사탄
나태벨페고르

2.2. 칠죄종과 악마 분류

1589년, 페터 빈스펠트는 칠죄종과 관련된 악마와 그 죄의 목록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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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밀어서 보기
악마
교만루키페르
탐욕맘몬
욕망아스모데우스
시기레비아탄
폭식베엘제붑
분노사탄
나태벨페고르

2.3. 변신과 악마의 표식에 대한 의문

당시 다른 저자들과는 달리, 빈스펠트는 변신 능력과 악마의 표식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