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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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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대화상은 본명이 계차 또는 석계차이며, 헐렁한 주머니를 짊어지고 다녀 포대라는 속칭으로 불린 인물이다. 그는 민간에서 복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숭배받았으며, 선종과 관련된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포대화상은 미륵불의 화신으로 묘사되기도 하며, 예술 작품에서 풍요와 기쁨을 상징하는 큰 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표현된다. 앙기다, 고타마 붓다, 프라 상카자이 등 다른 종교 인물과 혼동되기도 하며, 포대우어, 부레옥잠 등 다양한 생물의 이름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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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화상 - [인물]에 관한 문서
일반 정보
부다이의 유약 도자기 조각상. 중국, 명나라, 1486년.
부다이의 유약 도자기 조각상. 중국, 명나라, 1486년.
다른 이름포대 (布袋, Bùdài)
소불 (笑佛, Xiào Fó, 웃는 부처)
반불 (胖佛, Pàng Fó, 뚱뚱한 부처)
쾌락불 (快乐佛, Kuàilè Fó, 행복한 부처)
태국어พระปู้ไต้ (Phra Pu Tai)
스리랑카어බුද්ධායි (Buddhāyi)
인물 정보
사망일917년 3월 28일
문화적 의미
설명불교 및 동아시아 종교 전통의 인물

2. 유래 및 생애

포대화상의 본명은 계차(契此) 또는 석계차(釋契此)이다. 항상 포대(헐렁한 주머니)를 짊어지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布袋)라는 별명이 붙었다.[19] 출신지는 불분명하지만, 석명현(四明縣)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그림처럼 배가 불룩한 모습으로, 절에 머무르지 않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고 한다. 항상 큰 자루를 짊어지고 다니며, 비린내 나는 음식도 가리지 않고 시주를 받아 그 중 일부를 자루에 넣었다. 특이한 모습이었지만, 순수한 마음을 지녔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한다.

계차에 관한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 《경덕전등록》에 따르면, 눈 속에 누워 있어도 그의 몸 위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고 한다.[19] 또, 사람의 길흉을 점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포대화상은 수수께끼 같은 화두를 담은 문답을 남겼으며, 게(偈)와 노래를 통해 진실한 마음의 중요성과 한가로운 심경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선인(仙人)의 우화등선과 비슷하게, 9세기 말 천복 연간에 봉천현에서 사망하여 악림사에서 천화했다는 설(917년)도 있지만,[5] 매장된 후에도 다른 지역에서 목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강남지방에서 포대화상의 그림을 그리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경덕전등록》에 따르면, 포대화상은 죽음을 앞두고 "미륵진미륵 분신천백억(미륵은 참된 미륵이요, 분신이 천백억이로다) 시시시시분 시인자불식(시시로 시분을 나타내지만,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17]

포대화상을 선승(禪僧)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다. 10세기 후반에 쓰여진 《송고승전》에는 포대화상과 선종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포대화상과 선종의 관계는 11세기 초 《경덕전등록》에 양나라보지, 천태지의, 한산, 습득 등과 함께 "명주 포대화상"으로 기록되면서부터 나타난다.

포대화상은 숭배와 지역 전설을 중심으로 기원한다.[6] 전통적으로 그는 단순한 옷을 입은 뚱뚱하고 대머리인 승려로 묘사된다.[7] 그는 가난했지만 만족하며 천으로 된 자루에 그의 몇 안 되는 소지품을 넣고 다닌다.[7] 그는 그를 따르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그의 큰 배를 행복하게 두드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모습은 만족과 풍요를 나타내는 것으로 중국 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포대화상은 사람들의 운명과 심지어 날씨 패턴까지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주변 마을 사람들을 끌어들였다.[5] 방랑하는 승려는 종종 어디든 가서 자는 경향이 있었는데, 심지어 밖에서 잠들기도 했다. 그의 신비한 힘은 눈의 혹독한 추위를 막아주고 그의 몸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917년 3월 28일로 추정되는 포대화상 자신이 쓴 사망 기록에는 그가 미륵의 화신, 즉 미래의 부처라고 주장한다.[5] 포대화상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은 방부 처리되어 저장성 펑화 구의 위에린 사원 대웅전 동쪽에 전시되었다.[8]

3. 선종과의 관계

포대를 선승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다. 10세기 후반에 쓰여진 《송고승전》 21권 ‘감통편’(感通篇)에 나오는 “당나라 명주 봉화현 석계차”(포대)의 전기에는 그와 선과의 관계에 대해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포대와 선종의 관계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시대가 내려와 11세기 초 《경덕전등록》 27권에 “선문달자수불출세유명어시자”(禪門達者雖不出世有名於時者)로서 양나라의 보지, 천태지의, 한산, 습득 등의 다른 승려, 고승들과 함께 “명주 포대화상”으로서 전해져 내려올 때부터이다.

포대화상은 선불교(선종) 신앙에 포함된 몇몇 "속박되지 않은 성인" 중 한 명이었다.[6] 등사(燈史)에 나오는 유사한 "괴짜" 인물들은 공식적으로 선종의 조상 계보에 편입되거나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이러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은 12세기 초중반에 일어난 "특별한 전승"을 나타냈다. 이 전승은 조상 계보의 정통성에 의존하지 않고, 대신 다양한 민속 인물의 독특한 개성과 자질을 사용하여 선종 전통이 "각성"이라는 아이디어에 새롭게 헌신하고, 더 많은 대중에게 선종을 전파하는 것을 설명했다. 선사(禪師) 대혜종고(1089–1163)와 굉지정각(1091–1157)은 모두 지역 전설과 불교 전통의 초기 융합을 이끈 지도자들이었다.[6] 그들은 호감 가고 기이한 인물들을 끌어들여 성별, 사회적 배경, 법과 조상 계보에 대한 완전한 이해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유형의 사람들을 선종 전통으로 끌어들이기를 희망했다.[6] 버나드 포레는 지역 전설과 선종 전통의 이러한 융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선종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길들이기 위한 한 가지 전략은 그들의 초자연적인 힘을 약화시키고 현세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불가사의한 인물들을 트릭스터로 변환시키는 것이었다..."[9][6] 이 움직임은 이러한 인물들을 종교적 소품으로 할당하고, 그들의 특별한 카리스마를 선종 신앙의 렌즈로 유도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했다. 궁극적으로 포대화상은 기이하고 방랑하는 떠돌이로 민간에서 숭배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신비로운 "포대" 가방의 도움으로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풍요, 행운, 기쁨을 가져다주는 '탁발 승려'로서 선종 전통 내에서 새롭게 형성된 인물로 숭배되었다.[6]

4. 민간 신앙

포대화상은 민간 신앙과 지역 전설을 중심으로 숭배되었다.[6] 그는 가난하지만 만족하며 천으로 된 자루에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뚱뚱하고 대머리인 승려로 묘사된다.[7] 그의 큰 배를 두드리면 복이 온다고 알려졌으며, 그의 모습은 만족과 풍요를 상징하여 중국 문화 전반에 나타난다. 포대화상은 사람들의 운명과 날씨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고 알려져 주변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으며,[5] 신비한 힘으로 눈 속에서도 추위를 타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포대화상은 선불교(선종)에 포함된 "속박되지 않은 성인" 중 한 명이었다.[6] 등사(燈史)에 나오는 "괴짜" 인물들은 공식적인 선종 계보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12세기 초중반 "특별한 전승"을 대표했다. 이들은 정통성 대신 민속 인물의 독특한 개성과 자질을 통해 "각성"이라는 선종의 새로운 가치와 대중화를 설명했다. 대혜종고(1089–1163)와 굉지정각(1091–1157)은 이러한 지역 전설과 불교 전통의 초기 융합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다.[6]

포대화상의 본래 이름은 '''계차'''(契此) 또는 '''석계차'''(釋契此)이다.[17] 항상 자루(두타낭)를 짊어지고 다녀 포대라는 별명이 붙었다.[17] 절에 머무르지 않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시를 받아 자루에 넣었다고 하며,[17]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신기한 힘을 지녔다고 전해진다.[17]

포대화상에게는 눈 속에서 누워도 몸 위에 눈이 쌓이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으며,[17] 사람의 길흉을 점쳤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죽기 직전 "미륵은 참된 미륵이요, 분신이 천백억이로다. 시시로 시분을 나타내지만,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네"라는 말을 남겨[17] 미륵보살의 화신이라는 전설이 퍼지게 되었다.[17]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시대에 선화의 소재로 포대화상이 수용되었다. 서민들에게는 복신(福神)의 일종으로 숭배되었고, 무로마치 시대 후기에는 칠복신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진언삼보종 대본산 세이코진세이초지에서는 삼보황신의 권속으로 여겨진다. 포대화상의 비만 체형은 넓은 도량, 원만한 인격, 부귀영화를 상징하며, 그의 자루는 "참는 자루"로도 여겨졌다.

4. 1. 한국의 포대화상 신앙

중국에서는 중세 이후부터 포대화상의 비유적인 배불뚝이 모습이 미륵불의 모습으로 그려졌고, 사원의 주요 불당에 안치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일본에서도 황벽종 대본산 만복사의 천왕전에 사천왕, 탱다천과 함께 포대 화상 모양의 금빛 미륵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서구인들에게는 '마이트레야'(Maitreya|미륵영어)라고 불린다.

5. 예술 작품 속 포대화상

중세 이후 중국에서는 포대화상을 본뜬 배불뚝이 모습이 미륵불의 모습으로 그려져 사원의 주요 불당에 안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일본에서도 황벽종 대본산 만복사의 천왕전에 사천왕, 탱다천과 함께 포대화상 모양의 금빛 미륵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상은 서구인들에게 '마이트레야'(Maitreya영어, 미륵)라고 불린다.

포대화상은 선불교(선종) 신앙에 포함된 몇몇 "속박되지 않은 성인" 중 한 명이었다.[6] 등사(燈史)에 나오는 유사한 "괴짜" 인물들은 공식적으로 선종의 조상 계보에 편입되거나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이러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은 12세기 초중반에 일어난 "특별한 전승"을 나타냈다. 이 전승은 조상 계보의 정통성에 의존하지 않고, 대신 다양한 민속 인물의 독특한 개성과 자질을 사용하여 선종 전통이 "각성"이라는 아이디어에 새롭게 헌신하고, 더 많은 대중에게 선종을 전파하는 것을 설명했다. 대혜종고(1089–1163)와 굉지정각(1091–1157)은 모두 지역 전설과 불교 전통의 초기 융합을 이끈 지도자들이었다.[6] 그들은 호감 가고 기이한 인물들을 끌어들여 성별, 사회적 배경, 법과 조상 계보에 대한 완전한 이해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유형의 사람들을 선종 전통으로 끌어들이기를 희망했다.[6] 버나드 포레는 지역 전설과 선종 전통의 이러한 융합을 "선종에서 초자연적인 것을 길들이기 위한 한 가지 전략은 그들의 초자연적인 힘을 약화시키고 현세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불가사의한 인물들을 트릭스터로 변환시키는 것이었다..."라고 요약한다.[9][6]

포대화상은 거의 항상 큰 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자루는 풍요, 번영, 만족을 상징한다. 포대화상에게 귀속된 수묵화에는 종종 고위 관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글귀와 도장이 있었다. 예를 들어, '포대화상과 강마하(Budai and Jiang Mohe)'는 송련(1310–1381)과 위소(1295–1372)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초석범기(楚石梵琦)에 의해 새겨졌다.

선(Zen) 불교가 13세기경 일본에 전파된 후, 이 지역의 독실한 승려와 신자들은 선 예술의 "각성" 시대의 중심 인물들을 묘사하기 위해 인물화를 활용했다.[6] 포대화상과 같이 선 전통에 편입된 많은 기이한 인물들은 이전에 일본의 기존 문화와 민속에 얽매여 있었다.

타이완 후산사(湖山寺)에 있는 포대화상 조각상.


베트남 빈짱 사원(Vĩnh Tràng Temple)에 있는 포대화상 조각상.


인도 케랄라주 찰라쿠디에 있는 중국 스타일의 포대화상 조각상.


두 마리의 수탉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는 호테이 그림, 유명한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 (1584–1645)가 그림.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이, 포대화상은 특히 다른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있을 때 가장 기뻐한다. 칠복신에서 다른 신들과 함께 묘사될 때, 포대화상은 엄숙하거나 심지어 우울한 표정을 유지한다. 포대화상의 둥근 모습은 승려의 몸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향합 조각(18세기)을 통해 실용적으로 사용된다.

선의 고승 백은 혜학과 같은 일본의 도상학은 포대화상이 행인들을 즐겁게 하고, 우산 아래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며, 그의 자루를 방석으로 사용하여 명상하는 등 다양한 대표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특히 잘 알려진 모티프에서 포대화상은 키세루로 담배를 피우고, 선의 행복을 구현하는 못생겼지만 매력적인 매춘부인 오타후쿠를 내뿜는 모습으로 나타난다.[10][11] 매퉁이는 둥근 외모 때문에 일본에서 '호테이-우오'(포대화상 물고기)로 알려져 있다.[12]

6. 다른 종교 인물과의 혼동

서구권에서 포대화상은 종종 고타마 붓다로 오해를 받아 "뚱뚱한 부처"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14] 몽골에서는 포대화상을 강희제의 몽골식 이름과 동일한 '엔흐 아마글란 칸'이라고 불러 강희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태국에서는 포대화상을 ''프라 상카자이''(Phra Sangkajai) 또는 ''프라 상카차이''(Phra Sangkachai)로 알려진 아라한 카차야나와 혼동하기도 한다. 부처는 프라 상카자이가 복잡한 담마 개념을 쉽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데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프라 상카자이는 ''마두핀디카 수트라''를 지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태국 민간 설화에 따르면, 프라 상카자이는 매우 잘생겨서 한 남자가 그를 아내로 삼고 싶어 했다고 한다. 비슷한 상황을 피하고자 프라 상카자이는 뚱뚱한 승려로 변신했다.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천사와 사람들이 자주 부처와 비교했고, 이를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여 뚱뚱한 몸으로 변장했다.[15]

포대화상과 프라 상카자이는 태국과 중국 사찰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지만, 프라 상카자이는 태국 사찰에서, 포대화상은 중국 사찰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둘을 구별하는 두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프라 상카자이는 머리에 머리카락 자국이 약간 있지만(부처의 모습과 유사), 포대화상은 완전히 대머리이다.
  • 프라 상카자이는 상좌부 불교 방식으로 가사를 입는데, 한쪽 어깨에 가사를 접어 다른 쪽을 드러낸다. 포대화상은 중국식으로 가사를 입어 두 팔을 모두 가리지만 상반신의 앞부분은 가리지 않는다.

7. 관련 생물


  • Aptocyclus ventricosus|앱토사이클러스 벤트리코서스|포대어영어 - 쏨뱅이목 꼼치과의 해수어.
  • 부레옥잠 (포대아오이) - 닭의장풀목 물옥잠과의 수생 여러해살이풀.
  • 부대풀 (포대풀) - 1. 부레옥잠의 다른 이름. 2. 복주머니란의 다른 이름.
  • 포대란 (Calypso bulbosa|칼립소 불보사|영어 var. speciosa 포대란) - 아스파라거스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 포대죽 - 벼목 벼과 솜대속에 분류되는 대나무의 일종.
  • 포대젖버섯 (포대점지) - 애주름버섯목 젖버섯과 젖버섯속에 분류되는 버섯의 일종.

참조

[1] 서적 《明州岳林寺志‧卷二‧古蹟‧彌勒涅槃石》
[2] 서적 Bodhisattva Archetypes: Classic Buddhist Guides to Awakening and Their Modern Expression Penguin Arkana
[3] 서적 How to Raise an Ox Wisdom Publications
[4] 웹사이트 The Laughing Buddha http://www.religionf[...] Religionfacts.com 2011-12-26
[5] 논문 The Chan Master Pu-tai
[6] 서적 Awakenings: Zen Figure Painting in Medieval Japan Japan Society
[7] 서적 Legend of the Laughing Buddha Asiapac Books
[8] 논문 Chinese Preserved Monks https://www.jstor.or[...] Royal Asiatic Society Hong Kong Branch
[9] 서적 The Rhetoric of Immediacy: A Cultural Critique of Chan/Zen Buddhism https://www.jstor.or[...]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
[10] 서적 The Religious Art of Zen Master Hakuin Catapult 2009
[11] 서적 The Sound of One Hand: Paintings and Calligraphy by Zen Master Hakuin Shambhala 2010
[12] 웹사이트 ゴッコ https://www.sapporo-[...] 2022-02-18
[13] 서적 The Sound of One Hand: Paintings and Calligraphy by Zen Master Hakuin Shambhala Publications
[14] 웹사이트 When Did the Buddha Become Fat? https://www.psycholo[...] 2018-11-01
[15] 웹사이트 Sangkachai Buddha https://www.roots.go[...] National Heritage Board 2024-06-19
[16] 서적 《明州岳林寺志‧卷二‧古蹟‧彌勒涅槃石》
[17] 웹사이트 仙厓と布袋―布袋の姿をかりた仙厓の思い http://idemitsu-muse[...] 出光美術館 2019-12-04
[18] 문서 "「布袋」だけでは「ぬのぶくろ」の意。例;[[布袋劇]]"
[19] 웹인용 仙厓と布袋―布袋の姿をかりた仙厓の思い http://idemitsu-muse[...] 出光美術館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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