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령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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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령 인도는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지역들을 포괄한다. 프랑스는 영국, 네덜란드에 비해 늦게 인도 무역에 참여했지만, 17세기 초부터 무역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동인도 회사를 통해 퐁디셰리를 중심으로 식민지를 확장하려 했으나, 영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쇠퇴했다. 1947년 인도의 독립 이후, 프랑스령 인도 지역은 인도와 통합되었으며, 1962년 프랑스 의회의 비준으로 법적으로 인도에 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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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배경
프랑스는 17세기에 동인도 무역에 참여한 마지막 주요 유럽 해양 강국이었다. 영국 동인도 회사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각각 1600년과 1602년에 설립된 지 60년이 지난 시점에도 프랑스는 인도 해안에 무역 기지를 늘리고 있었지만, 실행 가능한 무역 회사나 동부에 단 하나의 영구적인 시설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5][6]


역사가들은 프랑스가 동인도 무역에 늦게 참여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 수도의 내륙 위치, 프랑스의 수많은 내부 관세 장벽, 그리고 프랑스 대서양 연안 상인들의 좁은 시각과 같은 지정학적 상황을 언급한다. 이들은 멀리 떨어진 동인도와의 실행 가능한 무역 사업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5][6]
2. 1. 초기 진출 (16세기~17세기)
프랑스의 첫 인도 상업 진출은 16세기 전반 프랑수아 1세 때 이루어졌다. 루앙의 상인들은 동방 무역을 위해 두 척의 배를 건조하여 르아브르에서 출항시켰으나, 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9] 1604년 앙리 4세가 한 회사에 특허장을 주었지만, 이 또한 실패했다. 1615년에 새로운 특허장이 발급되어 두 척의 배가 인도로 갔으나, 한 척만이 돌아왔다.[9]프랑스 동인도 회사는 리슐리외 추기경의 후원으로 1642년에 설립되었고, 장바티스트 콜베르가 1664년에 마다가스카르로 원정대를 보내면서 재건되었다.[7][8][9]
1667년, 프랑스 동인도 회사는 프랑수아 카롱(페르시아인 마르카라 동행)의 지휘 아래 또 다른 원정대를 파견했다. 이들은 1668년 수라트에 도착하여 인도 최초의 프랑스 공장을 설립했다.[7][8]
프랑스는 17세기 유럽의 주요 해상 강국 중 동인도 무역에 가장 늦게 참여한 국가였다. 1600년 영국 동인도 회사와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설립 이후 60년이 지나, 이 두 회사가 인도 해안에 상관을 늘려가고 있을 때에도 프랑스는 동양에 운영 가능한 무역 회사나 영구적인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역사가들은 프랑스의 동인도 무역 참여가 늦어진 이유로 파리의 내륙 위치, 프랑스 태평양 연안 상인들의 대규모 투자 욕구 부족 등 지정학적 상황을 언급한다.[25][26]
2. 2. 퐁디셰리 점령과 식민지 확장 (1673년~1741년)
1669년, 마르카라는 마술리파탐에 또 다른 프랑스 공장을 설립하는 데 성공했다. 1672년, 프랑스는 생토마스 요새를 점령했지만, 길고 값비싼 포위 공격 끝에 네덜란드 공화국에 의해 쫓겨났다. 샹데르나고르(현재의 찬단나가르)는 1692년, 벵골의 무굴 제국 총독인 나와브 샤이스타 칸의 허가를 받아 설립되었다. 1673년, 프랑스는 비자푸르 술탄국의 술탄 아래 발리콘다푸람의 킬라다르로부터 퐁디셰리 지역을 획득했고, 그로써 퐁디셰리의 기초가 놓였다. 1720년까지 프랑스는 수라트, 마술리파탐, 그리고 반탐에 있던 공장을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잃었다.[1]1673년 2월 4일, 프랑스 장교 벨랑제 드 레스피네가 퐁디셰리의 덴마크 로지에 거주하면서 퐁디셰리에 대한 프랑스 행정을 시작했다. 1674년, 초대 총독인 프랑수아 마르탱은 퐁디셰리를 작은 어촌에서 번성하는 항구 도시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야심찬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네덜란드와 영국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1693년, 네덜란드는 퐁디셰리를 점령하고 요새를 증축했다. 프랑스는 1697년 9월 20일에 서명된 뢰스윅 조약을 통해 1699년에 이 도시를 되찾았다.[1]
1741년까지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프랑스 동인도 회사는 1723년 야농(퐁디셰리 북동쪽 약 840km 떨어진 안드라 해안), 1725년 마헤 (말라바르 해안), 1739년 카라이칼(퐁디셰리에서 남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곳)을 평화적으로 획득했다. 18세기 초 퐁디셰리 시는 격자형으로 설계되어 상당히 성장했다. 피에르 크리스토프 르 누아르(1726–1735)와 피에르 브누아 뒤마(1735–1741)와 같은 유능한 총독들은 퐁디셰리 지역을 확장하여 크고 부유한 도시로 만들었다.[1]
2. 3. 프랑스의 인도 지배 야망과 좌절 (1741년~1761년)
1741년, 조제프 프랑수아 뒤플렉스가 프랑스령 인도의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프랑스는 인도에 영토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영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러한 야망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1] 뒤플렉스의 야망은 인도의 영국 이익과 충돌했고, 양국이 공식적으로 평화로운 시기에도 군사적 충돌과 정치적 음모가 계속되었다.[1] 뷔시-카스텔노 후작의 지휘 아래 뒤플렉스의 군대는 하이데라바드와 코모린 곶 사이 지역을 성공적으로 장악했다.[1] 그러나 1744년 영국 장교 로버트 클라이브가 인도에 도착하면서 뒤플렉스의 야망은 좌절되었다.[1]패배와 평화 회담 실패 후, 뒤플렉스는 1754년 갑작스럽게 해임되어 프랑스로 소환되었다.[1]
2. 4. 영-프 간의 갈등과 프랑스령 인도의 쇠퇴 (1763년~1871년)
영국과 프랑스는 인도 문제에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식민지 확장을 위한 음모는 계속되었다. 프랑스는 벵골 나바브 궁정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벵골에서의 무역 활동을 늘렸다. 1756년, 프랑스는 벵골 나바브 시라지 웃 다울라가 콜카타의 영국 윌리엄 요새를 공격하여 점령하도록 부추겼다. 이는 1757년 플라시 전투로 이어졌고, 영국은 이 전투에서 벵골 나바브와 프랑스 동맹군을 결정적으로 격파하여 벵골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프랑스는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고 영국을 인도에서 몰아내기 위해 라리-톨렌달 백작을 파견했다. 라리는 1758년 퐁디셰리에 도착하여 초기에 쿠달로르 지구의 세인트 데이비드 요새를 파괴하는 등 성공을 거두었지만, 전략적 실수로 하이데라바드, 반디와시 전투, 1760년 퐁디셰리 공방전에서 패배했다. 1761년, 영국은 프랑스의 약탈에 대한 보복으로 퐁디셰리를 파괴했고, 퐁디셰리는 4년 동안 폐허로 남았다. 프랑스는 남인도에서도 지배력을 잃었다.
1765년, 1763년 파리 조약에 따라 퐁디셰리는 프랑스에 반환되었다. 총독 장 로 드 로리스통은 이전 모습대로 도시를 재건하기 시작했고, 5개월 만에 유럽인 가옥 200채와 타밀족 가옥 2,000채가 건설되었다. 1769년,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없었던 프랑스 동인도 회사는 프랑스 왕실에 의해 폐지되었고, 왕실이 인도 내 프랑스 소유지를 관리하게 되었다. 이후 50년 동안 퐁디셰리는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과 평화 조약에 따라 자주 주인이 바뀌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6년, 퐁디셰리, 샹데르나고르, 카라이칼, 마헤, 야남, 그리고 마술리파탐, 코지코드, 수라트의 로지(lodges)가 프랑스에 반환되었다. 퐁디셰리는 이전의 영광을 많이 잃었고, 샹데르나고르는 급성장하는 영국의 대도시 캘커타 북쪽의 중요하지 않은 전초 기지로 전락했다. 이후 138년 동안 역대 총독들은 기반 시설, 산업, 법률,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다양했다.
1871년 1월 25일 법령에 따라 프랑스령 인도에는 선출된 일반 평의회(conseil général)와 선출된 지방 평의회(conseil local)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만족스럽지 못했고, 선거권의 자격과 계층이 수정되었다. 총독은 퐁디셰리에 거주하며 평의회의 지원을 받았다. 퐁디셰리와 카리칼에 2개의 1심 법원이 있었고, 퐁디셰리에 1개의 항소 법원, 5명의 치안 판사가 있었다. 농업 생산품으로는 쌀, 땅콩, 담배, 빈랑 열매, 채소가 있었다.[9]
2. 5. 인도 독립 운동과 프랑스령 인도의 통합 (1871년~1962년)
1947년 8월 15일 인도의 독립은 과거 영국령 인도와 프랑스령 인도 영토의 합병에 박차를 가했다. 마칠리파트남, 칼리컷(코지코드), 수라트의 로지는 1947년 10월 6일 인도에 양도되었다.[10] 1948년 프랑스와 인도 간의 협정은 프랑스령 인도 잔여 영토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선거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샹데르나고르는 1950년 5월 2일 인도에 양도되었고, 이후 1954년 10월 2일 서벵골 주에 합병되었다. 1954년 11월 1일, 퐁디셰리, 야남, 마헤, 카리칼의 네 개의 월경지는 *사실상* 인도 연합으로 이전되어 연방 직할지 푸두체리가 되었다. 프랑스령 인도의 인도와의 *법적* 합병은 1962년 프랑스 의회가 파리에서 인도와의 조약을 비준할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3. 주요 지역
프랑스령 인도는 인도 아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던 여러 정착촌과 로지(상관)로 구성되었다. 주요 지역은 다음과 같다.
각 정착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을 참고할 수 있다.
3. 1. 퐁디셰리
코로만델 해안에 위치한 프랑스령 인도의 정착촌 중 하나로, 퐁디셰리와 퐁디셰리, 빌레누르, 바후르 지역을 포함하는 영토였다.[16]3. 2. 카라이칼
프랑스령 인도의 인도 아대륙에 있던 프랑스 정착촌 중 하나로, 코로만델 해안에 위치해 있었다.[16] 카라이칼과 그에 속한 마가남, 즉 행정구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16]3. 3. 마에
말라바르 해안에 위치한 마헤와 그 영토가 있었다.[16]3. 4. 야남
Yanam영어 (야나온)은 안드라프라데시 해안에 위치한 프랑스령 인도의 정착촌 중 하나였다.[16] 야나온과 그에 속한 알데 또는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다.[30] 1947년 당시 프랑스 시설과 로지 지도에서 야남은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3. 5. 샹데르나고르
벵골에 위치한 '''샹데르나고르'''와 그 영토[16]는 프랑스령 인도의 일부였다. 1839년 당시, 샹데르나고르 외에도 카심바자르, 주그디아, 다카, 발라소르 및 파트나의 다섯 개 로지[18]가 벵골에 위치했다.3. 6. 기타 지역
1839년 기준으로 인도 아대륙에 있던 프랑스령 인도의 정착촌은 다음과 같았다.[16]
프랑스 동인도 회사 치하에서 '로지'라는 이름은 프랑스가 국기를 게양하고 무역 기지를 설립할 권리가 있는 가정집과 인접한 부지로 구성된 공장 또는 격리된 시설에 주어졌다.
4. 프랑스령 인도의 유산
19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으로부터 회수된 다섯 개의 작은 정착촌이 18세기에 뒤플렉스가 획득한 "광대한 제국"의 잔재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식민지 확장 추진자인 피에르 폴 르로이-보리외는 1886년에 "우리 광대한 인도 제국은 다섯 개의 정착촌으로 축소되었다"라고 썼다.[11] 1930년대에 출판된 한 지도에서는 이 다섯 개의 정착촌을 "18세기에 프랑스가 인도에 건설했던 위대한 식민 제국의 잔재"라고 묘사했다.[12] 더 최근에는, 1816년 이후 프랑스령 인도의 역사가가 이를 "제국의 잔해"이자 "영원히 잃어버린 광대한 제국의 마지막 잔재"라고 묘사했다.[13]
그러나 프랑스는 1816년에 회수된 다섯 개의 정착촌보다 훨씬 더 많은 영토를 보유한 적이 없었다. 프랑스령 인도의 역사가이자 기록 보관자인 알프레드 알베르 마르티노(그는 또한 프랑스령 인도의 총독이었음)는 1750년에 뒤플렉스에게 카르나틱에 대한 권한이 부여된 것을 주권 이전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쓴 것처럼, 뒤플렉스는 인도 수바의 중위가 되었을 뿐이며, 그는 자신의 편의에 따라 그의 권한 위임을 철회할 수 있었다.[14] 프랑스 동인도 회사의 역사가인 필리프 오드레르는 뒤플렉스가 복잡한 조약과 동맹 시스템을 통해, 거의 봉건적인 성격의 시스템을 통해 이러한 영토를 통제했으며, 프랑스 사령관이 지휘하는 수비대가 지키고 있었지만, 합병되거나 보호령으로 변환되지 않았다고 썼다.[15]
5. 역대 통치자
1946년, 프랑스령 인도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가 되었다.
프랑스령 인도는 1954년에 사실상 인도 공화국으로 이관되었다.
최초의 고등판무관인 케왈 싱은 1947년 외국 관할권법에 따라 1954년 10월 21일 키주르 국민투표 직후 임명되었다.[20] 수석 판무관은 이전 프랑스 위원의 권한을 가졌지만, 연방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았다.[19]
고등판무관 목록은 다음과 같다.[20]



5. 1. 프랑스 동인도 회사 시대 (1668년~1769년)
프랑스 동인도 회사가 통치하던 시대의 최고 책임자는 대부분 퐁디셰리의 지사이자 동인도 프랑스 식민지 총독(Gouverneur de Pondichéry et commandant général des établissements français aux Indes orientales)이었다. 1816년 이후에는 인도 프랑스 시설의 지사(Gouverneur des établissements français de l'Inde)였다.
5. 2. 프랑스 직할 통치 시대 (1769년~1946년)
프랑스 동인도 회사 시대 최고위 관리 직함은 대부분 '동인도 프랑스 정착지의 퐁디셰리 총독 겸 사령관'(프랑스어: Gouverneur de Pondichéry et commandant général des établissements français aux Indes orientales)이었다. 1816년 이후에는 '인도 프랑스 정착지의 총독'(프랑스어: Gouverneur des établissements français de l'Inde)으로 변경되었다.
1946년, 프랑스령 인도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가 되었다.
5. 3. 프랑스령 인도 (해외 영토) 시대 (1946년~1954년)
프랑스령 인도는 1954년에 사실상 인도 공화국으로 이관되었다.
5. 4. 인도 공화국 고등판무관 (1954년~현재)
최초의 고등판무관인 케왈 싱은 1947년 외국 관할권법에 따라 1954년 10월 21일 키주르 국민투표 직후 임명되었다.[20] 수석 판무관은 이전 프랑스 위원의 권한을 가졌지만, 연방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았다.[19]고등판무관 목록은 다음과 같다.[20]
참조
[1]
문서
Not as widespread as English
[2]
문서
as Commissioner
[3]
문서
as High Commissio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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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문서
Not as widespread; regional and local as well as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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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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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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