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텐보스궁
1. 개요
하우스텐보스궁은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궁전으로, 1645년 오라녜 공 프레데리크 헨드릭의 부인 아말리아 폰 솔름스-브라운펠스의 의뢰로 건설이 시작되었다. 피터 포스트와 야코프 판 캄펜이 설계를 담당했으며, 30년 전쟁 중 네덜란드로 망명한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오라녜-나사우 가문, 프로이센 왕, 여러 국무총리들의 소유를 거쳐 바타비아 혁명 이후 네덜란드 국민에게 넘겨졌으며, 국립 미술관의 전신이 입주하고, 빌럼 1세가 공식 거주지로 삼는 등 네덜란드 왕실의 주요 장소로 활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파손되었으나 복원되어 다시 왕실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며,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 있는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는 이 궁전을 본떠 만들어졌다.
| 유형 | 궁전 |
|---|---|
| 위치 | 네덜란드, 헤이그 |
| 주소 | 's-Gravenhaagse Bos 10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건축 양식 | 네덜란드 바로크 양식 |
|---|---|
| 기공일 | 1645년 9월 2일 |
| 보수 날짜 | 1734년–1737년 |
| 건축가 | 피터 포스트 |
|---|---|
| 개조 건축가 | 다니엘 마로 |
| 의뢰인 | 아말리아 폰 졸름스브라운펠스 |
|---|---|
| 소유주 | 네덜란드 정부 |
| 현재 거주자 | 빌럼알렉산더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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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645년, 30년 전쟁 중 네덜란드로 망명한 팔츠 선제후비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에 의해 하우스텐보스 궁전 건설이 시작되었다. 설계자는 네덜란드 건축가 야코프 판 캄펜이다. 완성 후, 네덜란드 총독 오라녜-나사우 가문의 여름 별장이 되었다.
1805년부터 1807년까지는 홀란드 왕 루이 보나파르트가 이곳에 거주했다. 1815년 네덜란드 왕국 성립 후, 초대 국왕 빌렘 1세는 하우스텐보스 궁전을 공저로 정했다. 이후 네덜란드 왕실의 궁전이 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네덜란드가 독일군에 점령되었을 때도 피해를 간신히 면했다. 전후 1951년부터 1956년에 걸쳐 수리되어 다시 왕실 거처가 되었다.
2.1. 17세기와 18세기
1645년 9월 2일, 오라녜 공 프레데리크 헨드릭의 부인 아말리아 폰 솔름스-브라운펠스의 의뢰로 피터 포스트와 야코프 판 캄펜의 설계 하에 하우스텐보스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1647년 남편 사후, 아말리아는 궁전을 남편에게 헌정하고, 야코프 판 캄펜, 피터 포스트, 헤라르트 판 혼토르스트 등 당대 주요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오라녜홀(Oranjezaal)을 채웠다.
1734년에서 1737년 사이, 건축가 다니엘 마로는 궁전에 두 개의 날개를 추가했다. 이후 궁전은 오라녜-나사우 가문, 프로이센 왕, 그리고 여러 국무총리들의 소유를 거쳐 1795년 바타비아 혁명 이후 바타비아 공화국 정부에 의해 네덜란드 국민에게 넘겨졌다.
2.2. 19세기와 20세기
국립 미술관(Rijksmuseum)의 전신은 1800년부터 1805년까지 이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동생인 루이 홀란드 왕은 1805년에서 1807년 사이에 이 궁에 잠시 살았다.
1815년에 빌럼 1세가 네덜란드 국왕으로 선포되자 하위스 텐 보슈 궁전을 공식 거주지 중 하나로 삼았다. 이곳은 왕족 구성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가 되었다. 1899년 이 궁전은 제1차 헤이그 평화 회의의 여러 회의가 열린 장소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이곳은 빌헬미나 여왕의 주요 거주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침공했을 때 빌헬미나 여왕과 그 가족은 영국으로 대피해야 했다. 나치 행정부는 궁전을 철거할 계획이었지만, 관리자가 설득하여 생각을 바꾸게 했다. 그러나 궁전은 거주할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었다.
1950년에서 1956년 사이 궁전은 복원되어 다시 왕실 거주지가 되었다. 1981년에는 다시 주요 거주지가 되었다.
3. 건축 및 예술
하우스텐보스 궁전은 1645년 30년 전쟁 중 네덜란드로 망명한 팔츠 선제후비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야코프 판 캄펜이 설계를 맡았다. 완성 후 오라녜-나사우 가문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고, 1805년부터 1807년까지는 홀란드 왕 루이 보나파르트가 거처하기도 했다. 1815년 네덜란드 왕국 성립 후 초대 국왕 빌렘 1세에 의해 공저로 지정되어 왕실 궁전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 점령 하에서도 피해를 면하고, 1951년부터 1956년까지 수리되어 다시 왕실 거처로 사용되었다.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하우스텐보스는 이 건물과 네덜란드의 다른 궁전 양식을 본뜬 것이다.
3.1. 오라녜홀 (Oranjezaal)
야코프 판 캄펜, 피터 포스트를 중심으로 헤라르트 판 혼토르스트, 야코프 요르다언스, 토마스 빌레보이르츠 보스샤르트, 테오도르 판 툴덴, 카이사르 판 에버딩언, 살로몬 데 브레이, 피터 사우트만, 곤잘레스 코케스, 피터 데 그레버, 아드리안 하네만, 피터 헤르만스베르크 베렐스트, 얀 리벤스 등 당대 주요 예술가들이 오라녜 공 프레데리크 헨드릭 공을 찬양하는 그림으로 오라녜홀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