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지광
1. 개요
학지광은 1914년부터 1930년까지 발행된 잡지로, 계몽, 민족의식 고취, 사회주의 사상,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게재했다. 주요 필진으로는 독립운동가, 정치인, 언론인, 소설가, 시인, 교육자, 학자 등이 참여했다. 학지광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한국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일제의 탄압과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으로 인한 논쟁 등 한계점도 존재했다.
| 제목 | 학지광 |
|---|---|
| 원어명 | 學之光 |
| 종류 | 기관지 |
| 창간일 | 1914년 4월 |
| 폐간일 | 1930년 4월 |
| 간행 주기 | 연 2~4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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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창간 -
뉴 리퍼블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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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잡지 -
개벽 (잡지)
1920년 천도교청년회가 창간한 월간 종합 잡지 《개벽》은 천도교의 "후천개벽" 사상을 바탕으로 3·1 운동 이후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문학,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게재하며 일제강점기 민족의식 고취와 사회 개혁을 추구하는 공론장 역할을 수행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1926년 폐간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잡지 -
폐허 (잡지)
《폐허》는 1920년에 창간되어 3·1 운동 이후의 시대 분위기를 반영, 자유주의와 낭만주의 경향의 작품을 게재했으나 비판과 검열로 인해 폐간되었지만 한국 문학사에 영향을 미쳤다.
2. 창간 배경 및 목적
1910년대 초, 일제의 식민 통치 아래에서 한국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새로운 지식을 보급하여 민족의 역량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학지광》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창간되었다.
2.1. 창간 주체
《학지광》은 도쿄 유학생 친목회(東京留學生親睦會)를 모체로 한 조선유학생학우회(朝鮮留學生學友會)가 중심이 되어 창간되었다. 이 잡지의 창간에는 장덕수, 현상윤, 김철수, 이광수, 최두선 등이 주요 인물로 참여하였다.
2.2. 창간 목적
학지광한국어은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새로운 지식을 널리 알리며, 학문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또한 사회를 개혁하고 민족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며, 유학생과 지식인들이 서로 교류하고 결속을 다지는 것 또한 주요 목적으로 삼았다.
3. 각 호별 주요 내용
《학지광》은 창간호부터 폐간될 때까지 다양한 주제의 글을 실었다. 다음은 각 호별 주요 내용에 대한 간략한 정보이다.
| 호 | 발행일 | 페이지 | 정가 | 우편 요금 | 비고 |
|---|---|---|---|---|---|
| 제1호 | 1914년 4월 2일 | 창간호 | |||
| 제2호 | 1914년 | 미상 | |||
| 제3호 | 1914년 12월 3일 | 53 | 비매품 | ||
| 제4호 | 1915년 2월 27일 | 55 | 비매품 | ||
| 제5호 | 1915년 5월 2일 | 68 | 13전 | 2전 | |
| 제6호 | 1915년 7월 23일 | 100 | 간기 없음 | ||
| 제7호 | 판매 금지 | ||||
| 제8호 | 1916년 초(?) | 49 | 판매 금지 | ||
| 제9호 | 판매 금지 | ||||
| 제10호 | 1916년 9월 4일 | 60 | 15전 | 2전 | |
| 제11호 | 1917년 1월(?) | 56 | |||
| 제12호 | 1917년 4월 19일 | 63 | 15전 | 2전 | |
| 제13호 | 1917년 7월 19일 | 104 | 20전 | 2전 | |
| 제14호 | 1917년 12월 20일 | 75 | 18전 | 2전 | |
| 제15호 | 1918년 3월 25일 | 82 | 20전 | 2전 | |
| 제16호 | 1918년 | 기타 불상 | |||
| 제17호 | 1918년 8월 15일 | 75 | 25전 | 2전 | |
| 제18호 | ? | 82 | 간기 없음 | ||
| 제19호 | 1920년 1월 26일 | 78 | 40전 | 2전 | |
| 제20호 | 1920년 7월 6일 | 48 | 60전 | 2전 | 정정 재간행 |
| 제21호 | 1921년 1월 31일 | 84 | 45전 | 2전 | 정정 재간행 |
| 제22호 | 1921년 6월 21일 | 102 | 50전 | 2전 | |
| 제23호 | 미상 | 미상 | |||
| 제24호 | 미상 | 미상 | |||
| 제25호 | 미상 | 미상 | |||
| 제26호 | 미상 | 미상 | |||
| 제27호 | 1926년 5월 24일 | 160 | 50전 | ||
| 제28호 | 1927년 3월 10일 | 142 | 간기 없음 | ||
| 제29호 | 1930년 4월 5일 | 94 | 30전 |
"○"는 다이가쿠샤(太學社)에서 영인된 호이고, "※"는 후테이 토시히로(布袋敏博)가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발견한 호이다.
3.1. 제1호 ~ 제10호 (1914년 ~ 1916년)
학지광한국어 제1호는 1914년 4월 2일에 창간되었다. 제2호는 발행일이 미상이다. 제3호는 1914년 12월 3일에 간행되었으며, 53쪽 분량으로 비매품이었다. 제4호는 1915년 2월 27일에 간행되었으며, 55쪽 분량으로 비매품이었다. 제5호는 1915년 5월 2일에 간행되었으며, 68쪽 분량으로 정가는 13전, 우편 요금은 2전이었다. 제6호는 1915년 7월 23일에 간행되었으며, 100쪽 분량으로 간행 기록이 없다. 제7호는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제8호는 1916년 초에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49쪽 분량으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제9호 역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제10호는 1916년 9월 4일에 간행되었으며, 60쪽 분량으로 정가는 15전, 우편 요금은 2전이었다.
제5호에 실린 글은 다음과 같다.
| 쪽수 | 제목 | 필자 |
|---|---|---|
| 2 | 사상 개혁론한국어 | 송진우 |
| 5 | 부활자의 세상은 아름다워한국어 | 몽몽 |
| 9 | 공화국의 멸망 (기서)한국어 | 고주 |
| 12 | 너를 혁명하라한국어 | 최승구 |
| 18 | 새 도덕론한국어 | 이상천 |
| 23 | 사회의 비판과 표준한국어 | 현상윤 |
| 27 | 반도 금후의 금융과 생활 쇄신의 급무한국어 | 노익근 |
| 30 | 이천 년래 유학의 결점과 오늘의 각오한국어 | 안확 |
| 33 | 학지광에 부침한국어 | 윤현진 |
| 34 | 신 충돌과 신 타파한국어 | 김철수 |
| 39 | 의지의 약동한국어 | 장덕수 |
| 39 | 생활인가 싸움인가한국어 | 문희천 |
| 47 | 조선의 미술한국어 | 안확 |
| 52 | 역대 가 (기서)한국어 | 단향 |
| 56 | 야반 외 수종한국어 | 김억 |
| 57 | 비 오는 저녁한국어 | 소성생 |
| 58 | 산녀한국어 | 류암 |
| 59 | 적막한국어 | WC생 |
| 60 | 못생긴 소견한국어 | 우몽 |
| 62 | 한시 수 편한국어 | 우산야인 |
| 62 | 회우시 외 일편한국어 | 박하징 |
| 62 | 구곡 신조한국어 | 양구생 |
| 65 | 천사의 미소한국어 | 한세복 |
제6호에 실린 글은 다음과 같다.
| 쪽수 | 제목 | 필자 |
|---|---|---|
| 17 | 여의직관적소감한국어 | 박이규 |
| 23 | 귀로에임하여한국어 | 신석우 |
| 28 | 출진하는용사제군에게한국어 | 김리준 |
| 32 | 오서의장래문제한국어 | 검산촌인 |
| 35 | 우리의 의무한국어 | 오병은 |
| 37 | 아아형제여한국어 | 정충원 |
| 39 | 졸업생이되어제군의게희망하난바한국어 | 강주한 |
| 40 | 청년의활약한국어 | 하상욱 |
| 41 | 담력을양하라한국어 | 무명인 |
| 42 | 때와졸업생한국어 | 김교현 |
| 42 | 송춘유감한국어 | 김영준 |
| 43 | 강력주의와조선청년한국어 | 현상윤 |
| 49 | 조선산직장려계에대하야한국어 | 이강현 |
| 52 | 경제진흥한여의의견한국어 | 노익근 |
| 57 | 오늘우리의갈길한국어 | 한결한국어 |
| 58 | 오인의이상한국어 | 추송생 |
| 60 | 예술의생활(H군에게)한국어 | 김억 |
| 62 | 오인의특유한력의가치를발휘하여라한국어 | 이응남 |
| 64 | 조선의문학한국어 | 안곽 |
| 73 | 불만과요구한국어 | 최승구 |
| 80 | 한끗한국어 | 류암 |
| 82 | 외국인한국어 | 몽몽 |
3.2. 제11호 ~ 제22호 (1917년 ~ 1921년)
3.1 운동 전후 시기(1917년~1921년)에 발행된 《학지광》 제11호부터 제22호까지는 민족의 독립과 관련된 글들이 많이 실렸다. 이 시기에는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 새로운 사상들이 소개되고, 이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문학 작품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한국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 호 | 발행일 | 페이지 | 정가 | 우편 요금 |
|---|---|---|---|---|
| 제11호 | 1917년 1월 추정 | 56페이지 | ||
| 제12호 | 1917년 4월 19일 | 63페이지 | 15전 | 2전 |
| 제13호 | 1917년 7월 19일 | 104페이지 | 20전 | 2전 |
| 제14호 | 1917년 12월 20일 | 75페이지 | 18전 | 2전 |
| 제15호 | 1918년 3월 25일 | 82페이지 | 20전 | 2전 |
| 제16호 | 1918년 | 정보 불분명 | ||
| 제17호 | 1918년 8월 15일 | 75페이지 | 25전 | 2전 |
| 제18호 | ? | 82페이지 | ||
| 제19호 | 1920년 1월 26일 | 78페이지 | 40전 | 2전 |
| 제20호 | 1920년 7월 6일 (정정 재간행) | 48페이지 | 60전 | 2전 |
| 제21호 | 1921년 1월 31일 (정정 재간행) | 84페이지 | 45전 | 2전 |
| 제22호 | 1921년 6월 21일 | 102페이지 | 50전 | 2전 |
제8호에는 변봉현의 《강자의 노력》, 윤현진의 《네이마에 바늘 한 개》, 이광수의 《살아라》, 일 기자의 《설노래》, 외배의 《어린 벗에게》, 이병도의 《우리의 부끄러움》, 흰옷의 《용동(농촌문제연구에 관한 실례)》, 전영택의 《과학과 종교》, 김철수의 《아관의 유학생》, 일 기자의 《사회단평》, 동상의 《종교의 진수와 필요》, 류암의 《세계의 처음》, 노익근의 《조선 현하의 경제상 공황과 청년의 자각》, 현상윤의 《조선인의 3대 결점》, 노준영의 《농촌 재산가의 반성을 구함》, 거울의 《"크리스마스 밤"》, 몽몽의 《"늑대"(싸에체프)》 등이 실렸다.
3.3. 제23호 ~ 제29호 (1922년 ~ 1930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됨에 따라, 『학지광』에는 계급 문제와 관련된 글들이 많이 실렸다. 이 시기에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간의 논쟁이 심화되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학지광』은 발행 금지 및 정간을 반복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1922년부터 1930년까지 제23호부터 제29호가 발행되었으나, 일부 호는 발행 기록을 찾기 어렵다. 확인된 발행 정보는 다음과 같다.
| 호수 | 발행일 | 페이지 | 정가 | 비고 |
|---|---|---|---|---|
| 제27호 | 1926년(다이쇼 15년) 5월 24일 | 160페이지 | 50전 | |
| 제28호 | 1927년(쇼와 2년) 3월 10일 | 142페이지 | 간기 없음 | |
| 제29호 | 1930년(쇼와 5년) 4월 5일 | 94페이지 | 30전 |
4. 주요 필진
《학지광》 11호에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참여하여 글을 기고했다. 주요 필진과 기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이세화]]: 우리의 갈과 그리스도
* DS생: 페스탈로치의 생애와 사업
* [[박한흠]]: 한시 2수
* [[김명식]]: 객중회추 2수
* [[전영택]]: 가을
* [[노익근]]: 생산의 의의 및 그 소장의 원동력
* [[오상근]]: 창작자가 되고 노력자가 되라
* [[노준영]]: 조선 사람 생활난의 원인
* 춘원: 위선수가 되고 연후에 사람이 되라
* [[김철수]]: 독일의 교육 및 그 학제
* 류암: 만만파파식적을 울음
* {{lang|ko|빗}}: 청춘, 고주
4.1. 독립운동가
--
요약에 언급된 인물들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이다.
4.2. 정치인
김도연, 김동명, 김용무, 김준연, 김효석, 백관수, 백남운, 백남훈, 송진우, 신익희, 이상철, 이인, 장덕수, 정노식 등이 『학지광』에 관여한 정치인으로 언급된다.
4.5. 교육자/학자
* 김동명
* 김양수
* 김현준
* 백남운
* 백남훈
* 변영로
* 서항석
* 송진우
* 안확
* 유억겸
* 이관구
* 이병도
* 이상옥
* 이헌구
* 주기용
* 최두선
* 현상윤
4.6. 기술자/기능자
* 김용무 (1891-?) - 변호사
* 나혜석 (1896-1948) - 서양화가
* 배운성 (1900-1978) - 서양화가
* 변봉현 (생몰년 미상) - 체육인
* 서항석 (1900-1985) - 극작가
* 신태악 (1902-1980) - 변호사
* 이강현 (1888-1976) - 방적 기술자
* 이인 (1896-1979) - 변호사
5. 《학지광》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
《학지광》은 한국 최초의 종합 잡지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학지광》은 민족의 현실을 알리고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여성, 교육, 경제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개혁 논의를 주도했다. 또한,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고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3.1 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다양한 민족운동 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등 민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제의 검열과 탄압으로 인해 자유로운 논의가 어려웠고 발행 금지 및 정간을 반복했다. 주로 지식인들의 글을 중심으로 다루어 일반 대중들의 참여가 부족했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간의 갈등, 개인적인 이념 차이 등으로 인해 내부 분열을 겪기도 했다.
5.1. 역사적 의의
학지광한국어은 한국 최초의 종합 잡지로, 다양한 분야의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폭넓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였다. 민족의 현실을 알리고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여성 문제, 교육 문제, 경제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개혁 논의를 주도했으며,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학지광한국어은 문학 작품을 통해 민족의 정서를 표현하고 새로운 문학 형식을 실험하며 한국 근대 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3.1 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다양한 민족운동 단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등 민족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5.2. 한계
학지광한국어은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일제의 탄압: 일제의 검열과 탄압으로 인해 자유로운 논의가 어려웠다. 학지광한국어은 발행 금지 및 정간을 반복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지식인 중심의 논의: 주로 지식인들의 글을 중심으로 다루어, 일반 대중들의 참여가 부족했다.
내부 분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간의 갈등, 개인적인 이념 차이 등으로 인해 내부 분열을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