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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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1924년 창립된 한국 교회 연합 기구로, 선교사 중심의 연합체와 한국 교회 주체의 협의회가 통합되어 결성되었다. 이후 한국기독교연합회를 거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일원으로서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단체로 변질되기도 했으나, 해방 이후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에 기여했다. 현재 9개 교단과 다양한 기독교 단체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연합 예배를 드리는 등 한국 개신교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NCCK는 사회 정의와 인권 신장에 기여한 개인 또는 단체에게 NCCK 인권상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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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종류 | 교회 협의회 |
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
약칭 | NCCK |
표어 | 오직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 |
역사 | |
설립 | 1924년 9월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
재건 | 1946년 (한국기독교연합회) |
개칭 | 1961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
조직 | |
회원 교단 |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구세군대한본영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정교회 한국대교구 |
협력 기관 | 세계 교회 협의회 (WCC) 아시아 기독교 협의회 (CCA) |
주요 활동 | 에큐메니즘 운동 사회 선교 정의, 평화, 생명 운동 |
관련 인물 | |
주요 인물 | 김관석 강원용 문익환 안병무 박형규 김상근 이해동 조승혁 |
기타 | |
웹사이트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1924년 조선기독교연합회로 시작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1945년 광복 이후 복음 전파와 교회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세계 교회와 협력하여 사회 재건에 힘썼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선교와 인권 보호에 집중했으며, 독재 정권과 군사 정권에 반대하며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함께 북한에서 민족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1]
2. 1. 설립
1905년 장로교 4개 선교부와 감리교 2개 선교부가 협의체를 형성하면서 <한국복음주의선교회연합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를 결성하였다. 이 공의회의 목적은 선교 사업에서 협력을 추구하고,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유일한 하나의 복음주의 개신교를 조직”하는 것이었다.[1] 한국에서 교파를 초월한 하나의 교회를 설립하려는 의도에 선교사들도 호응하였으나,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성사되지는 못했다.1924년 9월 24일 새문안교회에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Korea National Christian Council, KNCC)가 창설되었다. 이는 선교사 중심의 <재한개신교선교부연합공의회>와 한국교회 주체의 <조선예수교장감연합협의회>가 통합하여 창설된 한국 기독교의 대표적인 연합기관이었다. 초대 회장에는 차재명 목사가 당선되었다. 창립 총회에서 채택된 규칙에 따르면, 공의회의 목적은 '협동하여 복음을 선전하고, 사회 도덕의 향상을 도모하며, 기독교 문화를 보급하는 것'이었다.[1]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창립 당시 참여 단체는 다음과 같았다.
구분 | 참여 단체 |
---|---|
한국 교회 | 조선예수교장로회, 조선미감리회, 조선남감리회 |
외국 선교부 | 미국 북장로회, 미국 남장로회, 오스트레일리아 장로회, 캐나다 연합 장로회, 미국 북감리회, 미국 남감리회 |
기독교 기관 | 대영성서공회, 조선기독교청년회(YMCA) |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KNCC)는 실질적으로 오늘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모체라 할 수 있으며, 처음에는 11개 단체 대표들로 조직되었다.[1] 이후 1931년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로 명칭을 변경하였고, 1937년 해산 당시에는 11개 회원 단체 외에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조선예수교서회>, <조선주일학교연합회>, <재일본 캐나다장로회선교회>, <조선기독교여자절제회> 등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었다.
2. 2. 일제강점기
朝鮮耶蘇敎聯合公議會중국어는 일제강점기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인 연합기관으로서, 민족 운동과 독립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일제 말, 친일 단체로 변모하고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통합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종교 단체의 한계와 딜레마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2. 3. 해방과 분단
해방과 더불어 국가와 종교의 재건이 이루어졌다. 일제 말 통폐합되었던 일본기독교조선교단이 해체되었고, 1946년 가을 교파연합운동 기구로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조직되었다. 조선기독교연합회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한국기독교연합회로 명칭을 바꾸었다. 한국기독교연합회는 1948년 8월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총회에 대표를 파견함으로써, 세계 개신교 교파들의 초교파운동에 참여하였다. 또한 해방 이후 한국이 직면한 전쟁과 분단 등 연속적인 국가적 혼란 속에서 한국기독교연합회는 이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1]1961년 국제선교협의회는 세계교회협의회와 병합하여 세계교회협의회의 산하기구인 세계선교와 전도 위원회가 되었는데, 이러한 병합에는 선교와 교회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과 교회가 광의의 선교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두 가지 기조가 놓여 있었다. 이런 변화에 따라 한국에서도 한국기독교연합회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1]
2. 4. 민주화·통일 운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4·19 혁명 이후 한국 개신교는 예언자적 사명을 망각했음을 반성했지만, 5·16 군사 정변을 지지했다. 그러나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을 계기로 개신교 청년들이 정치 현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개신교계는 삼선개헌에 대한 찬반으로 양분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개헌을 강행하며 유신반대 운동을 탄압했다.1974년 정부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을 조작하여 많은 사람들을 탄압했다. 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교단들이 저항했고, 목요기도회가 시작되었다. 또한 1974년 5월 4일 인권위원회를 창립하여 인권 운동을 전개했다. 1976년 1월에는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Ecumenical Youth Council)가 창립되어 민주화 운동의 전위 역할을 담당했다.
긴급조치 9호가 시행되자 1976년 1월 15일 목요기도회가 재개되었다. 한편, 박정희 정권은 대형 개신교 집회를 이용하여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홍보했다. 보수적인 종교인들은 민주화 운동을 비난하고 정권에 접근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민주화 이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통일운동에 힘을 쏟았다. 1988년 2월 29일, 제37차 총회에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통일에 대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입장을 담은 선언으로, 남북한 민족과 세계에 통일 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 선언을 통해 한국 개신교계의 통일 논의가 본격화되었다.[1]
3. 조직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회원 교단들이 1년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회장을 맡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 67회(2018~2019년) 회장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이성희 목사가 역임했다. 회장은 NCCK 실행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의장 역할을 하지만, 실질적인 업무 권한은 총무에게 위임되어 있다. 현재 총무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이홍정 목사이며, 임기는 4년으로 연임이 가능하다.
3. 1. 회원 교단
현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는 9개의 회원 교회가 있다.[2]
3. 2. 회원 단체
- CBS기독교방송
- 대한기독교서회
-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 한국YMCA전국연맹
- 한국YWCA연합회
4. 다른 기독교 단체와의 관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보수적인 개신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연합예배를 드리면서 한국 개신교의 일치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06년부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공동으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으며, 2010년 광복 65주년을 맞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8.15 대성회를 공동으로 개최하기도 하였다.
또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동방 정교회가 회원인 협의회로 세계교회협의회와 에큐메니컬 운동을 같이 하는 협력 단체로서 개신교 내의 일치운동 뿐만 아니라, 정교회와의 일치 운동도 해오고 있으며, 근래에는 천주교회와의 일치 운동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5. NCCK 인권상
(빈칸 - 원본 소스에 해당 섹션에 대한 내용이 없음)
참조
[1]
웹사이트
Our History
http://www.kncc.or.k[...]
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2024-07-10
[2]
웹사이트
Members
http://www.kncc.or.k[...]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2018-06-01
[3]
웹사이트
http://www.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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