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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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성공회는 1890년 잉글랜드 성공회 선교사들에 의해 시작된 한국 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1889년 찰스 존 코프 주교의 한국 선교 시작을 기점으로, 의료 선교와 사회 봉사를 통해 한국 사회에 기여했다. 1914년 성 미가엘 신학원 설립을 통해 한국인 사제 양성에 힘썼으며, 1925년 성가수녀원 설립으로 수도원 활동도 시작했다. 1993년 한국 관구 설치로 독립적인 자치 교회가 되었으며, 현재 서울, 대전, 부산의 3개 교구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성공회는 사회 선교, 교육,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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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는 1914년 대한성공회가 설립한 성 미카엘 신학교에서 시작되어 서울 구로구에 위치하며, 1994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현재의 교명을 갖게 되었고, 민주주의, 사회 운동, 사회적 경제 분야 연구에 힘쓰는 대학교이다. - 대한민국의 성공회 - 샬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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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는 1884년 매클레이 선교사의 내한으로 시작된 한국 개신교 교단으로, 일제강점기 탄압을 거쳐 1949년 현재 명칭을 사용하며, 존 웨슬리의 신학을 바탕으로 공교회주의를 지향하고 교육, 의료, 사회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한성공회 | |
---|---|
기본 정보 | |
![]() | |
주요 분류 | 개신교, 역사적으로 앵글로-가톨릭 기원 |
방향 | 성공회 |
성경 | 성경 |
신학 | 성공회 교리 |
정치 체제 | 주교제 |
수장 직함 | 관구장 |
수장 이름 |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 |
본부 | 서울 |
관할 지역 | 한반도 (북한 및 대한민국) |
신자 수 | 약 65,000명 |
웹사이트 | 대한성공회 공식 웹사이트 |
한국어 명칭 | |
한글 | 대한성공회 |
한자 | 大韓聖公會 |
로마자 표기 | Daehan Seonggonghoe |
일본어 | 大韓聖公会 (だいかんせいこうかい) |
2. 교회의 역사
1890년 잉글랜드 성공회 찰스 존 코프(한국이름 고요한) 주교가 훗날 3대 주교가 되는 마크 트롤로프(한국이름 조마가) 사제와 함께 부산항에 도착하면서 대한성공회의 선교 역사가 시작되었다.[29] 코프 주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의사 랜디스(한국이름 남득시)와 함께 내동성당 자리에 성 루가 병원(낙선시 병원)을 지어 의료선교를 하였고[29], 영국 세관원의 아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는 인천 중구 내동 3번지 언덕에 있는 성공회 내동성당이며[30][31], 서울 정동 3번지에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을 건립하면서[32] 성공회는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코프 주교는 조선인들이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을 알고, 숙련된 의사와 간호사를 통한 의료선교를 계획하였다. 가마, 온돌을 사용하는 등 한국 전통을 존중하였다.
1910년 대한성공회 2대 주교인 아더 터너 주교가 과로로 별세하자, 마크 트롤로프 주교가 대한성공회 3대 주교가 되었다. 트롤로프 주교는 한국인 성공회 사제 양성에 힘써, 1914년 강화도에 지금의 성공회대학교인 '''성 미가엘 신학원'''을 설립하였고[34], 1915년 김희준(마가) 신부가 트롤로프 주교에게 서품을 받음으로써 처음으로 한국인 성공회 사제가 탄생하였다.[35] 1925년에는 현재 성가수녀원인 수녀원을 축성하였다.
대한제국 개화기에 대한성공회는 근대 서양식 교육 보급을 위해 충남 천안에 신명학교를 설립하고, 인천, 여주, 진천 등지에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경기도 수원과 안중에는 보육원을 개설하였다. 3.1 운동 때에는 성공회 병천교회와 부속학교인 신명학교가 태극기를 제작하여 참여하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고, 신명학교 교사 김구응이 일본 헌병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37]
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 문화에 토착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옥으로 지은 성공회 교회들이 지금도 강화도 강화읍(강화읍교회), 온수리(온수리교회), 진천 (진천성당), 청주 (수동성당) 등에 남아 있다.
1936년 천주교, 구세군, 감리교, 성결교와 함께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대부분의 교파들이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 의식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1] 일제 강점기 당시 선교사들이 한국 독립 운동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한국 교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1]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한성공회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 주임신부였던 윤달용(모이서) 신부와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던 조용호(디모데) 신부 등 성공회 성직자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순교하는 어려움을 겪었다.[1]
1965년 이천환(바우로) 주교가 최초의 한국인 성공회 주교로 서품을 받았다. 당시 성공회 교구는 서울교구와 대전교구로 분리되었고, 이후 부산교구가 대전교구에서 독립하였다.
1970년대 이후 대한성공회는 전국적으로 많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며 성장해왔다. 1974년 장애인 교육 기관인 성 베드로 학교를 개교하였고, 성공회대학교로[38] 개편하였다. 개발독재 시기에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하여 노동상담을 하였다.
1993년 정식으로 한국 관구가 설치되었다.[1] 2024년 현재 성공회 한국관구장은 부산교구장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이다.
2. 1. 선교사 시대
1890년 잉글랜드 성공회 찰스 존 코프(한국이름 고요한) 주교가 3대 주교가 될 마크 트롤로프(조마가) 사제와 함께 부산항으로 입국하면서 대한성공회의 선교 역사가 시작되었다. 코프 주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의사 랜디스(한국이름 남득시)와 함께 내동성당 자리에 성 루가 병원(낙선시 병원, 선을 베푸는 병원)을 지어 의료선교를 하였고[29], 영국 세관원의 아들에게 세례를 주었다.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는 인천 중구 내동 3번지 언덕에 있는 성공회 내동성당이며[30][31], 서울 정동 3번지에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을 세우면서[32] 성공회는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1897년에는 잉글랜드 성공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7년 만에 김희준(마가)과 김군명(요한)이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다.[33]
코프 주교는 1890년 조선에 입국하기 전부터 조선인들이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을 알고, 숙련된 의사와 간호사를 통한 의료선교를 계획하였다. 조선 선교 기금 마련을 위해 영국 순방 당시 많은 교우들이 자금을 기부했으며, 미국인 랜디스(한국이름 남득시)가 성공회 내동교회에서 의료선교를 하였다. 이들은 가마, 온돌을 사용하는 등 한국 전통을 존중하였다.
1910년 대한성공회 2대 주교인 아더 터너 주교가 과로로 별세하자, 마크 트롤로프 주교가 대한성공회 3대 주교가 되었다. 1925년에는 현재 성가수녀원인 수녀원을 축성하였다.
대한제국 개화기에 대한성공회는 근대 서양식 교육 보급을 위해 충남 천안에 신명학교를 설립하고, 인천, 여주, 진천 등지에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경기도 수원과 안중에는 보육원을 개설하였다. 3.1 운동 때에는 성공회 병천교회와 부속학교인 신명학교가 태극기를 제작하여 참여하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고, 신명학교 교사 김구응이 일본 헌병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37]
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교회가 되고자 토착화에 힘썼다. 그래서 한옥으로 지은 성공회 교회들이 지금도 강화도 강화읍(강화읍교회)과 온수리(온수리교회), 진천 (진천성당), 청주 (수동성당) 등에 남아 있다.
1936년 천주교, 구세군, 감리교, 성결교와 함께 신사참배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교파들이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 의식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1] 일제 강점기 당시 선교사들이 한국 독립 운동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한국 교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1]
2. 1. 1. 대한성공회의 시작
1890년 잉글랜드 성공회 찰스 존 코프(한국이름 고요한) 주교가 3대 주교가 될 마크 트롤로프(조마가) 사제와 함께 부산항으로 입국하였다. 찰스 존 코프 주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의사 랜디스(한국이름 남득시)와 함께 내동성당 자리에 성 루가 병원(낙선시 병원, 선을 베푸는 병원)을 지어 의료선교를 하였다.[29] 1889년 11월, 캔터베리 대주교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은 고요한 주교는 선교사 모집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자 직접 지원자를 찾았다. 이에 조마가 주교, 남득시 선생, 그리고 3대 한국교구장이 되는 마크 트롤로프가 호응하였다. 찰스 존 코프 주교는 영국 세관원의 아들에게 세례를 주었다.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는 인천 중구 내동 3번지 언덕에 있는 성공회 내동성당이며[30][31], 서울 정동 3번지에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을 세우며[32] 성공회는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1897년에는 잉글랜드 성공회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7년 만에 김희준(마가)과 김군명(요한)이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다.[33]
찰스 존 코프 주교는 1890년 조선에 입국하기 전부터 조선인들이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을 알고, 숙련된 의사와 간호사를 통한 의료선교를 계획하였다. 조선 선교 기금 마련을 위해 영국 순방 당시 많은 교우들이 자금을 기부했으며, 미국인 랜디스(한국이름 남득시)가 성공회 내동교회에서 의료선교를 하였다. 이들은 가마, 온돌을 사용하는 등 한국 전통을 존중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대한성공회는 1993년 관구 설정 이전까지 잉글랜드 성공회 산하 교구로, 1965년 이전에는 잉글랜드 성공회 조선교구로 활동하였다.
대한성공회는 1889년 11월 1일 찰스 존 코프 주교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조선의 첫 번째 교구 주교로 서임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890년 9월 29일 동료들과 인천항에 도착했고, 1891년 9월 30일 내동성당을 설립했다. 그는 서울, 경기, 충청 지역에서 사역하며, 인천, 여주, 진천 지역의 신명학교와 병원, 수원과 안중의 고아원 등 교육, 의료, 사회복지 시설을 설립했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한국 문화 통합을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강화성당과 같이 한국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 건물들이 남아있다.
2. 1. 2. 신학교육의 시작
1910년 대한성공회 2대 주교인 아더 터너 주교가 과로로 별세하자, 마크 트롤로프 주교가 대한성공회 3대 주교가 되었다. 트롤로프 주교는 한국인 성공회 사제 양성에 힘써, 1914년 강화도에 지금의 성공회대학교인 '''성 미가엘 신학원'''을 세웠고[34], 1915년 김희준(마가) 사제가 대한성공회 3대 주교인 마크 트롤로프(마가) 주교에게 서품을 받음으로써 처음으로 한국인 성공회 사제가 되었다.[35]2. 1. 3. 수도원의 시작
1925년에는 현재 성가수녀원인 수녀원을 축성하였다. 이비비(1899년-1990년) 수녀가 첫 지원자이다.[36]2. 1. 4. 사회선교
대한제국 개화기에 대한성공회는 근대 서양식 교육 보급을 위해 충남 천안에 신명학교를 설립하고, 인천, 여주, 진천 등지에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경기도 수원과 안중에는 보육원을 개설하였다. 3.1 운동 때에는 성공회 병천교회와 부속학교인 신명학교가 태극기를 제작하여 참여하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고, 신명학교 교사 김구응이 일본 헌병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37] 청일 전쟁 등으로 고통받는 한국 민중들을 병원, 고아원을 지어 돌보는 사회선교와 김희준 마가와 김군명 요한에게 세례를 주는 선교활동 모두 하였다.[37]찰스 존 코프(Charles John Corfe) 주교는 인천 지역과 경기도, 충청도 지역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인천, 여주, 진천 지역의 신명학교와 병원, 수원과 안중의 고아원과 같이 전국에 걸쳐 여러 교육 기관, 의료 시설, 사회복지 시설을 설립했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교회가 한국 문화에 통합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 결과 강화성당과 같이 전통 한국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성공회 교회 건물들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2. 1. 5. 토착화
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교회가 되고자 토착화에 힘썼다. 그래서 한옥으로 지은 성공회 교회들이 지금도 강화도 강화읍(강화읍교회)과 온수리(온수리교회), 진천 (진천성당), 청주 (수동성당) 등에 남아 있다.대한성공회는 1889년 11월 1일 찰스 존 코프(Charles John Corfe) 주교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조선의 첫 번째 교구 주교로 서임되면서 시작되었다. 코프 주교는 1890년 9월 29일 동료들과 함께 인천항에 도착했다. 한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인 내동성당은 1891년 9월 30일 코프 주교와 엘리 바르 랜디스(Eli Barr Landis)에 의해 인천 중구 내동에 설립되었다. 코프 주교는 서울, 경기, 충청 지역에서 사역하면서 인천, 여주, 진천 지역의 신명학교와 병원, 수원과 안중의 고아원 등 전국에 걸쳐 여러 교육, 의료, 사회복지 시설을 설립했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교회가 한국 문화에 통합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으며, 그 결과 강화성당과 같이 전통 한국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성공회 교회 건물들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초기 선교사들은 한국학 연구에도 선구적인 기여를 했다.
2. 1. 6. 신사참배 결의
1936년 천주교, 구세군, 감리교, 성결교와 함께 신사참배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교파들이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 의식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1] 일제 강점기 당시 선교사들이 한국 독립 운동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한국 교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1]2. 2. 한국전쟁과 대한성공회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한성공회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 주임신부였던 윤달용(모이서) 신부와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던 조용호(디모데) 신부를 비롯한 성공회 성직자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순교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윤달용 모이서 신부는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3일 동안 인민재판을 열어 사람들을 살상하는 폭력에 인민위원장에게 항의하여 순교하는 용감한 죽음을 맞았고, 조용호 신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때에 납치되어 순교했다.[1]2. 3. 대한성공회의 성장
1970년대 이후 대한성공회는 전국적으로 많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며 성장해왔다. 1975년에는 특수 교육이 필요한 아동들을 위한 성 베드로 학교가 설립되었다. 1982년 성 미카엘 신학교가 정부 인가를 받았고, 10년 후 성공회대학교로 승격 및 확장되었다.두 번째와 세 번째 세대의 한국인 주교들 재임 하에 세 교구는 교회 수와 사회 복음화에서 꾸준한 성장을 이어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교회 건립과 추가적인 교회 개척 노력을 지속했으며, 선교교육위원회는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다.
1990년 9월 29일, 대한성공회는 100주년 기념일에 "예수 그리스도, 민족의 생명"이라는 주제로 국민들에게 생명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한반도의 평화적인 통일을 앞당기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1992년 9월 29일 대한성공회 정교회 헌장이 공포되었고, 1993년 4월 16일 초대 한국인 대주교가 취임하면서 대한성공회는 독립적인 관구가 되었다.[1]
2. 3. 1. 한국인 성공회 주교 서품
1965년 이천환(바우로) 주교가 최초의 한국인 성공회 주교로 주교서품을 받았다. 당시 성공회 교구는 서울교구와 대전교구로 분리되었고, 이후 부산교구가 대전교구에서 독립하였다.
2. 3. 2. 사회선교
대한제국 개화기에 근대 서양식 교육을 보급하기 위해 충남 천안에 신명학교를 설립하고, 인천, 여주, 진천 등지에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경기도 수원과 안중에는 보육원을 개설하였다. 항일운동에도 참여하여 3.1 운동 때에는 성공회 병천교회와 부속학교인 신명학교가 태극기를 제작하여 참여하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고, 신명학교 교사 김구응이 일본 헌병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37] 청일전쟁 등으로 고통받는 한국 민중들을 병원, 고아원을 지어 돌보는 사회선교와 김희준 마가와 김군명 요한에게 세례를 주는 선교 활동 모두 하였다.[37]1974년 장애인 교육 기관인 성 베드로 학교를 개교하였고, 성공회대학교[38]로 개편하였다. 개발독재 시기에는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하여 노동상담을 하였으며, 지금도 성공회 나눔의 집 협의회와 성공회 샬롬의 집에서 저소득층,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다. 2018년 1월엔 성공회 남양주 샬롬의 집 사제인 이정호(골롬바) 신부가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동백장을 받았다.
2. 3. 3. 관구
1993년 정식으로 한국 관구가 설치되었다.[1]2024년 현재 성공회 한국관구장은 부산교구장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이며, 서울교구장은 김장환(엘리야) 주교, 대전교구장은 김호욱(디도) 주교, 부산교구장은 박동신(오네시모) 주교이다. 성공회 한국관구민은 13,222명(교구의회 보고 합산, 2019)이다.[2]
대한성공회는 이전에 캔터베리 대주교의 권한 아래 있었다. 1993년 자주성을 기념하기 위해 캔터베리 대주교는 한국의 첫 번째 대주교에게 수도 대주교이자 수좌 주교로서의 권한을 넘겼다. 현재 대한성공회는 서울, 부산, 대전의 세 교구로 이루어진 단일 수도 관구를 형성하고 있다. 수좌 주교직은 세 교구 사이에서 순환된다. 따라서 현재 서울 주교가 한국 대주교이자 대한성공회 수좌 주교이기도 하다.[12]
3. 연혁
1890년 잉글랜드 성공회의 찰스 존 코프(한국이름 고요한) 주교가 한국 선교를 시작했다.[29] 사제인 마크 트롤로프(조마가)와 의료선교를 위한 랜디스(한국이름 남득시)와 함께 부산항으로 입국하였다. 내동성당 자리에 성 루가 병원을 지어 의료선교를 하였다. 첫 성공회 교회는 인천 중구 내동 3번지 언덕에 있는 성공회 내동성당이며[30][31],서울 정동 3번지에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을 세우며[32] 성공회는 한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존 코프 주교는 조선에 입국하기 전부터 조선사람들이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을 알고 의료선교를 생각하였다. 미국인 랜디스(한국이름 남득시)가 성공회 내동교회에서 의료선교를 했다.
1897년 김희준(마가)과 김군명(요한)이 성공회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받았다.[33] 1910년 대한성공회 2대 주교인 아더 터너 주교가 과로로 별세하자, 마크 트롤로프 주교가 대한성공회 3대 주교가 되었다. 트롤로프 주교는 1914년 강화도에 지금의 성공회대학교인 '''성 미가엘 신학원'''을 세웠고[34], 1915년 김희준(마가)사제가 서품을 받음으로써 처음 한국인 성공회 사제가 되었다.[35]
대한제국 개화기에 성공회는 근대 서양식 교육을 보급하기 위하여 충남 천안에 신명학교를 설립하고, 인천, 여주, 진천 등지에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경기도 수원과 안중에 보육원을 개설하였다. 3.1운동때에는 성공회 병천교회와 신명학교가 태극기를 제작하여 참여하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고, 신명학교 교사 김구응이 일본 헌병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성공회는 청일전쟁 등으로 고통받는 한국민중들을 병원, 고아원을 지어 돌보는 사회선교와 김희준 마가와 김군명 요한에게 세례를 주는 선교활동 모두 하였다.[37]
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 문화에 토착화하고자 한옥으로 성공회 교회들을 지었다. (강화읍교회, 성공회 온수리교회, 진천성당, 수동성당)
1936년 천주교, 구세군, 감리회, 성결교와 함께 신사참배를 시작했다.
1965년 이천환(바우로) 주교가 최초의 한국인 성공회 주교로 주교서품을 받았다. 서울교구와 대전교구로 분리되었고, 후에 부산교구가 대전교구에서 독립하였다.
연도 | 내용 |
---|---|
1890년 | 대한성공회 초대주교 존 코프(한국이름 고요한)가 한국 선교 시작. |
1897년 | 내동성당 설립, 김희준(마가)과 김군명(요한) 세례. |
1900년 | 온수리성당 설립. |
1905년 | 2대 주교 터너(한국이름 단아덕) 주교 서품. |
1910년 | 3대 주교 트롤로프 (한국이름 조마가) 주교 서품. |
1914년 | 성 미카엘 신학교 개교 (현재 성공회대학교) |
1915년 | 김희준(마가) 사제 서품. |
1931년 | 4대 주교 쿠퍼 (한국이름 구세실) 주교 서품. |
1936년 | 신사참배 시작 |
1955년 | 5대 주교 존 데일리 (한국이름 김요한) 주교 서품. |
1965년 | 서울교구, 대전교구 분리됨, 서울교구 초대 한국인 주교 이천환 주교 서품. |
1974년 | 대전교구에서 부산교구 분리됨. |
1993년 | 독립 관구가 됨. |
4. 소속 교구
5. 대한성공회 관련 기관
- 대한성공회 출판부 -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에 속해 있다. 성공회 신문, 성공회 기도서, 성공회 관련 소식지 등 교회 출판물들을 편집한다.
- 성공회 선교교육원 -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에 속해 있다. 성공회 신앙교육과 선교를 위한 연구,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훈련을 실시하는 기관이다.
- 나눔의 집 협의회 -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회 선교기관으로 노원나눔의집, 성북나눔의집, 인천나눔의집, 봉천동나눔의집, 수원나눔의집, 춘천나눔의집, 포천나눔의집, 용산나눔의집, 동두천나눔의집 등 9개의 나눔의집이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 샬롬의 집 - 이주노동자를 위한 선교 기관이다.
- 교회선교회 한국사무소 - 18세기 영국 성공회에서 복음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설립한 교회선교회(CMS, Church Mission Society)의 한국사무소이다. 나성권(시몬)신부가 책임자로 일하고 있으며, 아시아 복음화를 목표로 한다.
- GFS - 성공회 여성신도들의 활동기관이다.
- 성공회 환경연대 - 대한성공회의 환경 운동 기관이다. 최상석 신부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 성공회대학교 - 대한성공회에서 세운 신학대학인 성 미가엘 신학원이 전신이며, 천신신학교 시절을 거쳐 현재는 신학과와 일반학과가 공존하는 종합대학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 성 베드로 학교 -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기관이다.
- 연세대학교 -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등과 함께 이사회에 대표이사 1명을 파송한다. 이천환 주교가 이사장을 맡기도 했으나, 현재는 무관하다.
- CBS기독교방송 - CBS기독교방송 재단 이사회에 성공회 대표 이사 1명이 파송 되어 있다.
6. 역대 주교
교구 | 재임 기간 | 주교 | 비고 |
---|---|---|---|
한국 교구 | 1889년 ~ 1905년 | 찰스 코프(Charles Corfe) | (1843년–1921년) |
1905년 ~ 1910년 | 아서 터너(Arthur Turner) | (1862년–1910년) | |
1911년 ~ 1930년 | 마크 트롤롭(Mark Trollope) | (1862년–1930년) | |
1931년 ~ 1954년 | 세실 쿠퍼(Cecil Cooper) | (1882년–1964년) | |
1955년 ~ 1965년 | 존 댈리(John Daly) | (1901년–1985년) 대전교구 초대 주교 | |
서울교구 | 1965년–1985년 | 이천환 (Paul Lee) | 초대 한국인 주교 |
1985년–1995년 | 김성수 | ||
1995년–2005년 | 정철범 | ||
2005년–2009년 | 박경조 | ||
2009년–2017년 | 김근상 | ||
2017년–2024년 | 이경호 | ||
2024년–현재 | 김장환 | ||
대전교구 | 1965년–1968년 | 존 댈리(John Daly) | |
1968년–1974년 | 리처드 럿(Richard Rutt) | (1966년부터 보좌주교) | |
1974년–1987년 | 배덕환(Mark Pae Du-hwan) | ||
1987년–2003년 | 윤환(Paul Yun Hwan) | 1987년 10월 14일, 로버트 런시(Robert Runcie) 캔터베리 대주교에 의해 한남대학교에서 서품 | |
2003년–2007년 | 신현삼(Andrew Shin Hyeon-sam) | ||
2007년–2013년 | 권희연(Michael Kwon Hee-yeon) | ||
2014년-2023년 | 유낙준(Moses Yoo Nak-jun) | ||
부산교구 | 1974년–1987년 | 최철희 윌리엄 | 1974년 6월 1일 이폴(서울)에 의해 서울성당에서 서품 |
1987년–1997년 | 김재헌 베네딕트 | ||
1994년–2000년 | 이대용 요셉 | ||
2000년–2011년 | 윤종모 솔로몬 | ||
2012년–2023년 | 박동신 오네시무스 | ||
2023년– | 김호욱(Titus Kim Ho-uk) |
6. 1. 한국 교구 (Diocese of Korea) 주교
재임 기간 | 주교 | 비고 |
---|---|---|
1889년 ~ 1905년 | 찰스 코프(Charles Corfe) | (1843년–1921년) |
1905년 ~ 1910년 | 아서 터너(Arthur Turner) | (1862년–1910년) |
1911년 ~ 1930년 | 마크 트롤롭(Mark Trollope) | (1862년–1930년) |
1931년 ~ 1954년 | 세실 쿠퍼(Cecil Cooper) | (1882년–1964년) |
1955년 ~ 1965년 | 존 댈리(John Daly) | (1901년–1985년) 대전교구 초대 주교가 됨 |
한국 교구는 1889년[11]부터 1965년 교구가 분할될 때까지[12] 영국 성공회 선교사 임명이었다.[10]
6. 2. 서울교구 주교
1965년 대전교구가 신설되면서 서울교구로 개칭되었다.[9] 서울교구의 역대 주교는 다음과 같다.재임 기간 | 이름 |
---|---|
1965년–1985년 | 이천환 (Paul Lee, 초대 한국인 주교)[13] |
1985년–1995년 | 김성수 |
1995년–2005년 | 정철범 |
2005년–2009년 | 박경조 |
2009년–2017년 | 김근상 |
2017년–2024년 | 이경호 |
2024년–현재 | 김장환 |
현 교구장은 전통적으로 영국 성공회 성향이 강한 교구에서 복음주의적인 김장환 주교이다.[9]
6. 3. 대전교구 주교
- 1965년–1968년: 존 댈리(John Daly)
- 1968년–1974년: 리처드 럿(Richard Rutt) (1966년부터 보좌주교)
- 1974년–1987년: 배덕환(Mark Pae Du-hwan)
- 1987년–2003년: 윤환(Paul Yun Hwan)[24] (1987년 10월 14일, 로버트 런시(Robert Runcie) 캔터베리 대주교에 의해 한남대학교에서 서품)[25]
- 2003년–2007년: 신현삼(Andrew Shin Hyeon-sam)[26]
- 2007년–2013년: 권희연(Michael Kwon Hee-yeon)
- 2014년-2023년: 유낙준(Moses Yoo Nak-jun)
- 2023년–: 김호욱(Titus Kim Ho-uk)
6. 4. 부산교구 주교
7. 신학
대한성공회는 다양한 신앙인과 성직자들이 있는 교단이다. 2001년부터 여성을 사제로 서품하고 있다.[2] 인간 성(性)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성직자, 교회 공동체, 그리고 교단 구성원들은 자긍심을 가지고 LGBT 권리를 지지하며, 프라이드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3][4] 대한성공회는 동성애에 대해 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5] 한 성직자는 한국 기독교 대화에서 대한성공회를 대표하여 동성애에 대한 "두고 보자"는 접근 방식을 제시했다.[6]
참조
[1]
웹사이트
World Council of Churches - Anglican Church of Korea
http://www.oikoumene[...]
2009-12-18
[2]
웹사이트
Korean Catholic priests become Anglican and marry
http://ncronline.org[...]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16-02-22
[3]
뉴스
동성애 축제, 미국 교단은 지지, 한인 교회는 걱정 - 뉴스앤조이
http://www.newsnjoy.[...]
2017-05-04
[4]
웹사이트
Why Korea's Christian churches are leading the anti-gay charge: And how a handful of LGBT-affirming churches are fighting back
https://xtramagazine[...]
Xtra Magazine
2021-05-19
[5]
뉴스
교회에 번지는 '동성애' 논란…동성애자가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는가 - 목장드림뉴스
http://www.penews.co[...]
2017-05-04
[6]
뉴스
동성애 문제 놓고 목사 신부 갈렸다 - 뉴스앤조이
http://www.newsnjoy.[...]
2017-05-04
[7]
웹사이트
Bishop Moses Nag Jun Yoo elected Primate of the Anglican Church of Korea
https://www.anglican[...]
[8]
웹사이트
New Primates for Japan and Korea
https://livingchurch[...]
2020-11-13
[9]
뉴스
Evangelical elected bishop of Seoul
https://anglican.ink[...]
Anglican Ink
2024-12-13
[10]
웹사이트
Details of mission
http://justus.anglic[...]
[11]
뉴스
CONSECRATION OF THREE NEW BISHOPS:Reading, Derby and Corea (Sic)
The Times
1889-11-02
[12]
웹사이트
Asia Division details
http://www.mundus.ac[...]
2024-05
[13]
간행물
Korean bishop in the Chair
Church Times
2021-03-06
[14]
간행물
Bishop Embling dies in Canada
Church Times
2021-03-06
[15]
간행물
London Gazette
1966-03-25
[16]
간행물
The Advent Ordinations. On Sunday Last.
Church Times
2021-03-06
[17]
간행물
Ordinations on Sunday last
Church Times
2021-03-06
[18]
간행물
Consecration of three bishops
Church Times
2021-03-06
[19]
인명록
Chadwell, Arthur Ernest
Who's Who
[20]
간행물
Ordinations on Trinity Sunday
Church Times
2019-11-06
[21]
간행물
Ordinations on Trinity Sunday
Church Times
2019-11-06
[22]
간행물
Double consecration at Westminster Abbey
Church Times
2019-11-06
[23]
서적
Crockford's Clerical Directory 1975-76
Oxford University Press
1976
[24]
웹사이트
Episcopal News Service: Press Release # 87116
https://www.episcopa[...]
[25]
간행물
Primate off to Korea
Church Times
2021-03-06
[26]
간행물
Morning Calm
http://www.koreanmis[...]
Korean Mission Fellowship
2003
[27]
간행물
Consecration of two new Korean bishops
Church Times
2021-03-06
[28]
웹사이트
UoB Calmview5: Search results
https://calmview.bha[...]
2021-01-08
[29]
서적
성공회의 역사
대한성공회 선교교육원
[30]
문서
최초의 성당이 아닌 최초의 교회(공동체)인 까닭은, 성당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31]
문서
천주교 답동성당, 내리감리교회와 같은 지역에 있어, 한국 기독교 초기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32]
문서
1890년에 축성했을 때에는 한옥성당이었는데, 1926년에 지금의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 건축하여 축성함. 고딕양식을 생각했지만, 건축가 아서 딕슨의 도움말대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33]
문서
성공회의 역사/성공회 선교교육원 p.113
[34]
문서
성공회가 한국에 들어온 1890년 당시 수호성인이 성 미가엘과 모든 천사들이었다. 지금도 성공회 내동교회 수호성인이 성 미가엘과 모든 천사들이다.
[35]
문서
《성공회의 역사》/성공회 교육훈련원p.114
[36]
서적
성공회의 역사
성공회 교육훈련원
[37]
서적
성공회의 역사
성공회 교육훈련원
[38]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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