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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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사본청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신도 지령에 따라 설립된 일본의 종교 법인이다. 황전강구소, 대일본신기회, 신궁봉사회가 연합하여 1946년 2월에 창설되었으며, 전국 신사의 관리, 신토 진흥, 신사 의식 수행 등을 목적으로 한다. 신사본청은 약 8만 개의 신사를 포괄하며, 주요 활동으로는 신궁대마 반포, 신도정치연맹과의 연계, 정치적 로비 활동 등이 있다. 헌장과 경신생활강령을 통해 신토의 정신을 구현하며,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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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본청 |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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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명칭 | 신사본청 |
종류 | 종교 법인 |
슬로건 | 없음 |
설립일 | 1946년 2월 3일 |
소재지 | 일본, 도쿄도시부야구요요기 1초메 1-2 (메이지 신궁 인접) |
회원수 | 일본 전국 약 8만 개의 신사 |
언어 | 일본어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조직 및 인물 | |
사무총장 | 다나카 쓰네키요 |
기관 | 지방 기관으로 47개의 도도부현 신사청, 시군에 그 지부 |
관련 단체 | 전국 신사 총대회 신도정치연맹 전국 경신 부인 연합회 신도 청년 전국 협의회 전국 신사 보육 단체 연합회 전국 교육 관계 신직 협의회 전국 신사 스카우트 협의회 전국 우지코 청년 협의회 신사신보사 |
역사 | |
전신 | 황전강구소 대일본신기관 진구봉재회 |
Shinto | |
종교 | 신토 |
위치 | 일본 |
설립 | 1946년 |
이전 기관 | 일본 고전 연구소 신도 연구소 진구쿄 전국 신사 신관 협회 |
2.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일본의 항복에 따라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는 1945년 12월 15일 신도 지령을 발표하여 신도를 국교에서 해체하도록 명령했다.[19][20] SCAP의 명령에 따라 1946년 2월 2일, 황전강구소, 대일본신기회, 신궁봉사회는 내무성 산하 신기원의 기능을 이어받아 비정부 단체인 신사본청을 설립했다.[19][20]
신기원은 점령군의 압력을 예상하지 않고, 신사 비종교의 입장에서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신도 지령"이 발포된 날 폐지되었다. 아시즈 츠네히코는 가혹한 탄압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황전강구소의 요시다 시게루, 신궁봉사회의 미야가와 무네노리와 함께 타개책을 모색했다.
1945년 10월 25일, 아시즈의 "신사 제도 개혁에 대한 사견"이 대일본신기회, 황전강구소, 신궁봉사회의 관계자에게 제시되어, 민간 주도로, 신사계의 생존을 건 논의의 장이 열렸다. 아시즈 안은, "정확한 정보의 전달과 통일된 처리를 하는 전국 조직의 구축", "각 신사의 완만한 연합체로서의 신사 연맹", "이 신사 연맹에는 교의에 대한 표결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11월 7-8일에, 제2회 민간 세 단체의 합동 친목회가 개최되어, "세 단체는 합동한다", "준비 사무국을 신기회관에 설치한다", "합동에 대한 원안을 작성하여 심의회를 개최한다"는 3가지가 가결되었다. 그러나, 11월 13일에, 하나의 종교 단체처럼 교의 표결권이나 산하 신사의 인사권을 갖는다는, 대일본신기회의 "신사교(가칭) 교규대강안"이, 설립 준비 심의회에 제출된다. 이에 대해, 아시즈는, "교의를 고정화하는 것은 신사 신도의 본질에 반하며, 점령 하에서 강력한 중앙 집권 조직을 만들면 점령군의 간섭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하며, 대일본신기회 안을 강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다음 날 14일에, 아시즈 안을 기조로 한 절충안이, 미야가와 무네노리로부터 제출되어, 다시 검토하게 되었다.
이렇게, 심의회는, 아시즈 안을 중심으로 신사계의 조직 구상을 다듬어, 1946년 1월 23일, "전국 신사의 총의에 기초하여, 본종으로 받드는 황대신궁의 허락 하에, 전국 신사를 포함한 신 단체를 결성하여, 협력 일치하여 신사 본래의 사명 달성에 매진하여, 이로써 신일본의 건설에 기여할 것을 기한다."라고 신사본청 설립에 관한 성명이 발해져 종교법인인 '''신사본청'''이 발족, 2월 3일을 기하여 설립한다.[20] 신사본청의 발족에 따라, 종교법인법(종교법인령) 하에서, 신사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 단체로 취급되게 되었다.[21]
본청의 설립 시, 신궁봉사회에서 10만 엔이 신사본청에 기부되었고, 봉사회의 지방 본부 봉사소 중 "상당한 설비를 갖춘"(미야가와의 설명에 따름) 것은 신사로서 재발족했다.[21] 예를 들어 도쿄의 봉사회 본원은 1946년(쇼와 21년) 3월에 신사본청에 신사 설립을 신청하여, 도쿄 대신궁으로 재발족했다.
1956년 5월, 신사 신앙의 기본이 되는 지침으로서 "경신 생활의 강령"을 내걸고, 씨자・숭경자의 교화・육성에 힘쓰고 있다. 또한, 1980년 7월부터 "신사본청 헌장"을 시행하여, 신사본청의 정신적 통합의 기본적인 규범을 확립했다.[22]
2. 1. 설립 배경 (1872년 ~ 1945년)
1872년(메이지 5년), 이세 신궁의 소궁사로 교부성에도 소속된 우라타 나가타미가 '''신궁 교회'''를 설립했다.[14] 1875년에는 전국의 신도 제파를 결집시킨 행정 단체로서 '''신도 사무국'''이 창설되었으며, 총재에는 아리스가와노미야 타루히토 친왕, 부총재에는 이와시타 코헤이가 취임했다.[14] 1882년에는 신도 사무국에서 학생 기숙사를 분리 독립시켜 신직의 중앙 기관인 '''황전 강구소'''가 창설되었다.[14] 신도 사무국은 1884년, '''신도 본국'''으로 개편되었다.[14] 1885년에는 회통 잡지사 『회통 잡지』가 창간되어, 황전 강구소와 신도 본국의 록사 및 관보, 외국의 휘보, 관국폐사의 제사 등이 보도되었다.[14]1890년(메이지 23년) 11월 29일에 시행된 대일본 제국 헌법 제28조에 따라 국민의 "신교의 자유"가 인정되면서, 신도도 불교, 기독교와 함께 종교 단체로서 국가의 공인을 받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신사는 국가로부터 종교로 취급받지 않은 채 국가 제사를 공적으로 행하는 위치로 규정되었다.[14] 황전 강구소는 교육 기관으로 국학원을 설치했다. 1890년, 황전 강구소 소장 야마다 아키요시의 간청으로 타카사키 마사카제가 초대 국학원 원장이 되었다.

1898년(메이지 31년)에 전국 신직회가 결성되어, 전국 신사의 연계가 강화되었다.[14] 1900년(메이지 33년), 사사국에서 독립하는 형태로, 내무성 사사국이 신사국과 종교국으로 재편되어, 신사와 불교가 구별되게 되었다.[14] 전국 신직회는 후에 "대일본 신기회"로 개칭하여, 신사 본청의 전신 단체 중 하나가 되었다.[14]
1899년에는 신궁교가 '''신궁 봉재회'''로 발전했다. 1909년 1월 30일, 도이츠 학협회 간부로 국경사 사주인 이이야마 마사히데가, 황도학과 교육 칙어의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단체 일본 장학 의회를 창설했다.[15]
메이지 말기가 되면서, 황실 제사 관련 규정도 정비되었고, 다이쇼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국 신사의 제사・제식의 형식도 정비되었다.
1917년 (다이쇼 6년), 일본 기독교회가 "신사에 관한 결의" 성명을 통해 신사 비종교론을 부정했다.[17]
1918년(다이쇼 7년), 이마이즈미 사다스케가 황전 강구소의 이사로 취임하여, 국학원을 확충한 뒤 이듬해 국학원 대학으로 개칭했다. 1920년(다이쇼 9년)에 국학원 대학은 구제 대학으로 승격했다. 이마이즈미는 1921년(다이쇼 10년)에는 신궁 봉재회의 회장이 되었다.
쇼와 시대에 들어서, 1938년에는 일본 대학 황도학원이 설립되어 이마이즈미 사다스케가 원장으로 취임했다. 1940년에 신기원이 설치되었다.
1945년(쇼와 20년) 10월 4일에, 연합군 최고 사령부(GHQ/SCAP)가 "사상, 종교, 집회 및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철폐하고 "천황, 국체 및 일본 제국 정부에 관한 무제한의 토의"를 인정하는 "자유의 지령[18]"을 공포했다. 12월 15일에는, 신도 지령을 일본 정부에 명하고, 신기원의 폐지가 이루어졌으며, 12월 28일에 "종교 법인령"이 공포되어 즉시 시행되었고, "종교 단체법"이 폐지되었다.
신도 지령에 대해서는, 서양에서 볼 수 있는 완만한 정부와 종교의 분리와는 거리가 먼, 국가로부터 종교적 요소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격한 내용이라는 신사 본청 측의 견해가 있다. 다만 야스쿠니 신사나 호국 신사를 포함해 GHQ에 의해 파괴된 신사는 없으며, 국가에 의한 지원이 폐지되었을 뿐이다.
2. 2. 신사본청 설립 (1946년)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일본의 항복에 따라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는 1945년 12월 15일 신도 지령을 발표하여 신도를 국교에서 해체하도록 명령했다.[19][20] SCAP의 명령에 따라 1946년 2월 2일, 황전강구소, 대일본신기회, 신궁봉사회는 내무성 산하 신기원의 기능을 이어받아 비정부 단체인 신사본청을 설립했다.[19][20]신기원은 점령군의 압력을 예상하지 않고, 신사 비종교의 입장에서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신도 지령"이 발포된 날 폐지되었다. 아시즈 츠네히코는 가혹한 탄압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황전강구소의 요시다 시게루, 신궁봉사회의 미야가와 무네노리와 함께 타개책을 모색했다.
1945년 10월 25일, 아시즈의 "신사 제도 개혁에 대한 사견"이 대일본신기회, 황전강구소, 신궁봉사회의 관계자에게 제시되어, 민간 주도로, 신사계의 생존을 건 논의의 장이 열렸다. 아시즈 안은, "정확한 정보의 전달과 통일된 처리를 하는 전국 조직의 구축", "각 신사의 완만한 연합체로서의 신사 연맹", "이 신사 연맹에는 교의에 대한 표결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11월 7-8일에, 제2회 민간 세 단체의 합동 친목회가 개최되어, "세 단체는 합동한다", "준비 사무국을 신기회관에 설치한다", "합동에 대한 원안을 작성하여 심의회를 개최한다"는 3가지가 가결되었다. 그러나, 11월 13일에, 하나의 종교 단체처럼 교의 표결권이나 산하 신사의 인사권을 갖는다는, 대일본신기회의 "신사교(가칭) 교규대강안"이, 설립 준비 심의회에 제출된다. 이에 대해, 아시즈는, "교의를 고정화하는 것은 신사 신도의 본질에 반하며, 점령 하에서 강력한 중앙 집권 조직을 만들면 점령군의 간섭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하며, 대일본신기회 안을 강하게 이의를 제기한다. 다음 날 14일에, 아시즈 안을 기조로 한 절충안이, 미야가와 무네노리로부터 제출되어, 다시 검토하게 되었다.
이렇게, 심의회는, 아시즈 안을 중심으로 신사계의 조직 구상을 다듬어, 1946년 1월 23일, "전국 신사의 총의에 기초하여, 본종으로 받드는 황대신궁의 허락 하에, 전국 신사를 포함한 신 단체를 결성하여, 협력 일치하여 신사 본래의 사명 달성에 매진하여, 이로써 신일본의 건설에 기여할 것을 기한다."라고 신사본청 설립에 관한 성명이 발해져 종교법인인 '''신사본청'''이 발족, 2월 3일을 기하여 설립한다.[20] 신사본청의 발족에 따라, 종교법인법(종교법인령) 하에서, 신사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종교 단체로 취급되게 되었다.[21]
본청의 설립 시, 신궁봉사회에서 10만 엔이 신사본청에 기부되었고, 봉사회의 지방 본부 봉사소 중 "상당한 설비를 갖춘"(미야가와의 설명에 따름) 것은 신사로서 재발족했다.[21] 예를 들어 도쿄의 봉사회 본원은 1946년(쇼와 21년) 3월에 신사본청에 신사 설립을 신청하여, 도쿄 대신궁으로 재발족했다.
1956년 5월, 신사 신앙의 기본이 되는 지침으로서 "경신 생활의 강령"을 내걸고, 씨자・숭경자의 교화・육성에 힘쓰고 있다. 또한, 1980년 7월부터 "신사본청 헌장"을 시행하여, 신사본청의 정신적 통합의 기본적인 규범을 확립했다.[22]
2. 3. 전후 활동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일본의 항복에 따라 신사본청이 설립되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는 1945년 12월 15일, 신도 지령을 발표하여 신도를 국교에서 해체하도록 명령했다. SCAP의 명령에 따라 1946년 2월 2일, 황전강구소/皇典講究所일본어, 대일본신기회/大日本神祇会일본어, 신궁봉사회/神宮奉斎会일본어는 내무성 산하 신기원의 기능을 이어받아 비정부 단체인 신사본청을 설립했다. 신도 지령에 따라 1946년(쇼와21년) 1월 23일, 전국신직회, 일본고전연구소, 신궁교가 주도하여 진자 혼초(신사본청)를 설립했다.3. 조직
신사본청은 수많은 활동 외에도 다음과 같은 5가지 주요 활동을 수행한다:[1]
- 신토에 대한 정보의 출판 및 배포
- 의례 수행
- 신토 신자 교육
- 이세 신궁에 대한 존경심과 ''Jingū Taima'' (진구타이마/神宮大麻일본어)라는 부적의 배포
- 신토 사제를 위한 개인의 준비 및 훈련
현재 본부와 지부를 포함하는 행정 체제를 갖추고 있다. 본부는 메이지 신궁 옆 도쿄 시부야 요요기에 위치해 있다. 지도부에는 이세 신궁의 여성 최고 사제인 가 있으며, 현재는 구로다 사야코가 맡고 있다.[2] 는 이며, 사무총장인 는 현재 미시마 신사의 주임 사제인 야타베 마사미가 맡고 있다. 신사본청은 모든 도도부현에 지역 사무소를 두고 있다. 이들은 회원 신사의 재정 및 인사 문제를 처리한다.
신사본청(神社本庁)은 일본 최대의 신토 종교 단체로, 주요 신사를 포함한 약 80,000개 일본 신사 중 79,000개 이상이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다.[3] 각 현에는 신사 사무소가 있다.[4] 신사본청은 내무성(Home Ministry)의 외청이었던 신기원(Institute of Divinities)의 후신이며, 종교법에 근거한 포괄적인 종교 법인이다.
"종교 법인 '신사본청' 기관 규약" 제3조에 따르면, 종교 법인으로서의 신사본청의 목적은 관할 신사를 관리 및 지도하고, 신토를 진흥하며, 신사 의식을 수행하고, 신도(氏子)를 교육하고 육성하며, 이세 신궁(Ise Grand Shrine)을 지원하고, 신직을 양성하며, 팜플렛 발행 및 배포 등을 통해 홍보 활동을 하는 것이다.
신사본청은 약 8만 개의 신사를 포괄하는 단체이다. 광의의 "신사본청"은 피포괄 신사를 포함한 집합체를 지칭하며, 협의의 "신사본청"은 시부야구 요요기에 있는 사무 조직을 지칭한다. 신사본청의 의결 기관은 전국의 신직·총대에서 선출된 평의원회이며, 총장 이하 임원도 거기에서 선임된다. 전전의 감독 관청이었던 신기원과는 근본적으로 조직 체질이 다르다.
신사본청의 규칙인 "신사본청청규"에 따른 종교법인으로서의 대표 임원은 총장이다. 2022년 6월 4일 이후, 통리가 지명한 아시하라 다카오(제20대)[64]와 사무국이 재임을 주장하는 다나카 쓰네키요(제19대)[65]가 병립하는 혼란 상태에 있다.
"통리"는 "신사본청 헌장"(헌장)에 따라 신사본청을 총괄하고 대표한다. 현임은 다카쓰카사 나오타케이다. 총재는 헌장에 따라 명예를 상징하고, 표창을 한다. 현임은 전 이세 신궁제주인 이케다 아쓰코(쇼와 천황의 넷째 딸이자 상황의 친언니, 현 천황의 고모)이다.
지방 기관으로서 각 도도부현에 하나씩 신사청을 두고, 각 신사청 관내에 지부를 둔다. 인사, 재정 등의 제반 사무 외에 지역 활동의 추진 등을 한다. 일부 신사청은 종교 법인이 되어 있으며, 그 경우에는 신사본청의 피포괄 법인이다.
전국 약 8만 개의 신사가 신사본청에 의해 관할된다. 그중 특히 신사본청이 신직의 진퇴 등에 개입하는 신사를 별표 신사라고 부르며, 350개 이상에 달한다. 신사본청에 속하는 신사라도 별도로 포괄 종교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가 있다.
예: 이즈모 대사(이즈모 대사교), 이시즈치 신사(이시즈치 혼교) 등이상의 단체 외에, 관계 단체, 지정 단체가 있다.
역대 총재는 다음과 같다.
대 | 성명 | 재임 | 생몰년 |
---|---|---|---|
초대 | 기타시라카와 후사코 | 1947-1974 | 1890-1974 |
2대 | 다카쓰카사 가즈코 | 1974-1988 | 1929-1989 |
3대 | 이케다 아쓰코 | 1996- | 1931- |
역대 통리는 다음과 같다.
대 | 성명 | 재임 | 생몰년 |
---|---|---|---|
초대 | 하세 소요오 | 1946.2.6-3.26(대무자)/3.26(취임·즉일 사임) | 1890-1974 |
2대 | 다카쓰카사 노부스케 | 1946-1959 | 1889-1959 |
(대무자) | 아키오카 야스하루 | 1959.2-1959.6 | 1886-1971 |
3대 | 사사키 유키타다 | 1959-1975 | 1893-1975 |
(대무자) | 시노다 야스오 | 1975-1976 | 1908-1997 |
4대 | 도쿠가와 무네타카 | 1976-1989 | 1897-1989 |
5대 | 호소카와 모리사다 | 1989-1998 | 1912-2005 |
6대 | 히가시조노 모토후미 | 1998-2001 | 1911-2007 |
7대 | 구니 구니아키 | 2001-2011 | 1929- |
8대 | 기타시라카와 미치히사 | 2011-2018 | 1937-2018 |
9대 | 다카쓰카사 나오타케 | 2018- | 1945- |
역대 사무총장(1946-1976)·총장(1976-2022)은 다음과 같다.
대 | 성명 | 재임 | 생몰년 |
---|---|---|---|
초대 | 미야가와 무네노리 | 1946-1948 | 1890-1973 |
2대 | 하세 소요오 | 1948-1949 | 1890-1973 |
3대 | 다카시나 겐이치 | 1949-1953 | 1885-1967 |
4대 | 히라타 간이치 | 1953-1953 | 1883-1971 |
5대 | 요시다 시게루 | 1953-1954 | 1885-1954 |
6대 | 히라타 간이치 | 1955-1956 | 1883-1971 |
7대 | 아키오카 야스하루 | 1956-1959 | 1886-1971 |
8대 | 도미오카 모리히코 | 1959-1962 | 1892-1974 |
9대 | 후루야 아라타 | 1962-1966 | 1893-1968 |
10대 | 하야시 에이지 | 1966-1971 | 1902-1972 |
11대 | 하나와 미즈히코 | 1971-1974 | 1902-1987 |
12대 | 시노다 야스오 | 1974-1983 | 1908-1997 |
13대 | 구로가미 나오히사 | 1983-1987 | 1907-1987 |
14대 | 사쿠라이 가쓰노신 | 1987-1989 | 1909-2005 |
15대 | 시라이 에이지 | 1989-1995 | 1915-2008 |
16대 | 오카모토 겐지 | 1995-1998 | 1924-1999 |
17대 | 구도 이즈 | 1998-2004 | 1922-2005 |
18대 | 야타베 마사미 | 2004-2010 | 1936-2015 |
19대 | 다나카 쓰네키요 | 2010-2022.06.03 | 1944- |
3. 1. 중앙 조직
신사본청은 약 8만 개의 신사를 포괄하는 단체이다. 광의의 "신사본청"은 피포괄 신사를 포함한 집합체를, 협의의 "신사본청"은 도쿄도 시부야구 요요기에 있는 사무 조직을 지칭한다. 신사본청의 의결 기관은 전국의 신직·총대에서 선출된 평의원회이며, 총장 이하 임원도 거기에서 선임된다. 전전의 감독 관청이었던 신기원과는 근본적으로 조직 체질이 다르다. 주된 사무소는 도쿄도시부야구요요기 1초메 1번 2호 (메이지 신궁 옆)이다.신사본청의 규칙인 "신사본청청규"에 따른 종교법인으로서의 대표 임원은 총장이다. 2022년 6월 4일 이후, 통리가 지명한 아시하라 다카오(제20대)[64]와 사무국이 재임을 주장하는 다나카 쓰네키요(제19대)[65]가 병립하는 혼란 상태에 있다.
"통리"는 "신사본청 헌장"(헌장)에 따라 신사본청을 총괄하고 대표한다. 현임은 다카쓰카사 나오타케이다. 총재는 헌장에 따라 명예를 상징하고, 표창을 한다. 현임은 전 이세 신궁제주인 이케다 아쓰코(쇼와 천황의 넷째 딸이자 상황의 친언니, 현 천황의 고모)이다.
지방 기관으로서 각 도도부현에 하나씩 신사청을 두고, 각 신사청 관내에 지부를 둔다. 인사, 재정 등의 제반 사무 외에 지역 활동의 추진 등을 한다. 일부 신사청은 종교 법인이 되어 있으며, 그 경우에는 신사본청의 피포괄 법인이다.
전국 약 8만 개의 신사가 신사본청에 의해 관할된다. 그중 특히 신사본청이 신직의 진퇴 등에 개입하는 신사를 별표 신사라고 부르며, 350개 이상에 달한다. 신사본청에 속하는 신사라도 별도로 포괄 종교 법인을 설립하는 경우가 있다.
예: 이즈모 대사(이즈모 대사교), 이시즈치 신사(이시즈치 혼교) 등이상의 단체 외에, 관계 단체, 지정 단체가 있다.
역대 총재는 다음과 같다.
대 | 성명 | 재임 | 생몰년 |
---|---|---|---|
초대 | 기타시라카와 후사코 | 1947-1974 | 1890-1974 |
2대 | 다카쓰카사 가즈코 | 1974-1988 | 1929-1989 |
3대 | 이케다 아쓰코 | 1996- | 1931- |
역대 통리는 다음과 같다.
대 | 성명 | 재임 | 생몰년 |
---|---|---|---|
초대 | 하세 소요오 | 1946.2.6-3.26(대무자)/3.26(취임·즉일 사임) | 1890-1974 |
2대 | 다카쓰카사 노부스케 | 1946-1959 | 1889-1959 |
(대무자) | 아키오카 야스하루 | 1959.2-1959.6 | 1886-1971 |
3대 | 사사키 유키타다 | 1959-1975 | 1893-1975 |
(대무자) | 시노다 야스오 | 1975-1976 | 1908-1997 |
4대 | 도쿠가와 무네타카 | 1976-1989 | 1897-1989 |
5대 | 호소카와 모리사다 | 1989-1998 | 1912-2005 |
6대 | 히가시조노 모토후미 | 1998-2001 | 1911-2007 |
7대 | 구니 구니아키 | 2001-2011 | 1929- |
8대 | 기타시라카와 미치히사 | 2011-2018 | 1937-2018 |
9대 | 다카쓰카사 나오타케 | 2018- | 1945- |
역대 사무총장(1946-1976)·총장(1976-2022)은 다음과 같다.
대 | 성명 | 재임 | 생몰년 |
---|---|---|---|
초대 | 미야가와 무네노리 | 1946-1948 | 1890-1973 |
2대 | 하세 소요오 | 1948-1949 | 1890-1973 |
3대 | 다카시나 겐이치 | 1949-1953 | 1885-1967 |
4대 | 히라타 간이치 | 1953-1953 | 1883-1971 |
5대 | 요시다 시게루 | 1953-1954 | 1885-1954 |
6대 | 히라타 간이치 | 1955-1956 | 1883-1971 |
7대 | 아키오카 야스하루 | 1956-1959 | 1886-1971 |
8대 | 도미오카 모리히코 | 1959-1962 | 1892-1974 |
9대 | 후루야 아라타 | 1962-1966 | 1893-1968 |
10대 | 하야시 에이지 | 1966-1971 | 1902-1972 |
11대 | 하나와 미즈히코 | 1971-1974 | 1902-1987 |
12대 | 시노다 야스오 | 1974-1983 | 1908-1997 |
13대 | 구로가미 나오히사 | 1983-1987 | 1907-1987 |
14대 | 사쿠라이 가쓰노신 | 1987-1989 | 1909-2005 |
15대 | 시라이 에이지 | 1989-1995 | 1915-2008 |
16대 | 오카모토 겐지 | 1995-1998 | 1924-1999 |
17대 | 구도 이즈 | 1998-2004 | 1922-2005 |
18대 | 야타베 마사미 | 2004-2010 | 1936-2015 |
19대 | 다나카 쓰네키요 | 2010-2022.06.03 | 1944- |
3. 2. 지방 조직
3. 3. 피포괄 신사
신사본청(神社本庁)은 일본 최대의 신토 종교 단체로, 내무성(Home Ministry)의 외청이었던 신기원(Institute of Divinities)의 후신이며, 종교법에 근거한 포괄적인 종교 법인이다. 회원 신사는 주요 신사를 포함한 약 80,000개 일본 신사 중 79,000개 이상이다.[3] 각 현에는 신사 사무소가 있다.[4]"종교 법인 '신사본청' 기관 규약" 제3조에 따르면, 종교 법인으로서의 신사본청의 목적은 관할 신사를 관리 및 지도하고, 신토를 진흥하며, 신사 의식을 수행하고, 신도(氏子)를 교육하고 육성하며, 이세 신궁(Ise Grand Shrine)을 지원하고, 신직을 양성하며, 팜플렛 발행 및 배포 등을 통해 홍보 활동을 하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 도미오카하치만구(富岡八幡宮), 무사시미타케 신사(武蔵御嶽神社), 가마쿠라구(鎌倉宮), 쓰루오카하치만구(鶴岡八幡宮), 닛코 도쇼구(日光東照宮), 기타 대사(気多大社), 후시미이나리 신사(伏見稲荷大社), 우메노미야 대사(梅宮大社), 나시노키 신사(梨木神社), 겐쿤 신사(建勲神社), 구루마자키 신사(車折神社), 이즈모오카미 신사(出雲大神宮), 이시키리쓰루기야 신사(石切剣箭神社), 히노마에 신궁・구니카케 신궁(日前神宮・國懸神宮), 아와시마 신사(淡嶋神社), 구사도이나리 신사(草戸稲荷神社), 고토히라궁(金刀比羅宮) 등은 신사본청(神社本庁)과의 피포괄 관계에 속하지 않고, 단립(単立) 종교법인으로 운영된다. 큰 단립 신사는 약 2000사, 작은 사당 등을 포함하면 20만 사의 단립 신사가 있다.[33] 히가시오사카시(東大阪市)처럼 종교 법인격을 가지고 있는 신사에 한정해도 절반 이상이 신사본청에 속하지 않는 지역도 있다.[34]
신사본청 외에도 신사 신도계의 포괄 종교 법인이 몇 개 있으며(신사본교(神社本教), 홋카이도 신사 협회(北海道神社協会), 신사산토교(神社産土教), 일본 신궁 본청(日本神宮本庁) 등), 여기에 속하는 신사는 신사본청의 피포괄 관계에 속하지 않는다.
기타 대사(気多大社)는 별표 신사(別表神社)였지만, 재산 관리 및 처분 관련 분쟁으로 소송 끝에 신사본청에서 이탈하여 단립 신사가 되었다.[35][36][37]
메이지 신궁(明治神宮)은 2004년 (헤이세이(平成) 16년)에 신사본청과 피포괄 관계를 해소하고 별표 신사에서 이탈했지만, 2010년 (헤이세이 22년) 8월 23일에 다시 신사본청과 피포괄 관계가 되었다.
나시노키 신사(梨木神社)는 2013년 (헤이세이 25년) 경내 부지 임대 계획이 신사본청의 승인을 얻지 못하여 신사본청에서 이탈, 단립 신사가 되어 별표 신사에서 제외되었다.
도미오카하치만구(富岡八幡宮)는 궁사 인사에 대한 신사본청의 입장에 의문을 품고 2017년 (헤이세이 29년) 6월에 이탈을 통지, 같은 해 9월에 도쿄도가 승인했다.[38][39]
고토히라궁(金刀比羅宮)은 신사본청에서 소외된 것을 이유로 2020년 (레이와(令和) 2년) 6월에 이탈했다.[40]
쓰루오카하치만구(鶴岡八幡宮)는 2024년(레이와 6년) 3월에 신사본청에 이탈을 통지했다.[41]
3. 4. 관계 단체
신사본청은 자유민주당 내에 많은 연계를 가지고 있으며, 성공적인 로비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7] 그 영향은 일장기(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법적 인정, 공식 학교 행사에서의 사용, 교육기본법 개정 등 최근의 보수적인 법률 제정에서 드러난다.[7] 또한, 당시 일본의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일부 보수주의 정치인들의 행동 뒤에도 신사본청이 관여하고 있다.[7]전국신사총대회는 신사의 씨총대들로 구성되며, 신사본청 내에 사무국이 설치된다.[28] 1946년(쇼와 21년) 2월, 신사본청 초대 사무총장인 미야가와 무네노리가 사장이 되어 신사신보사를 설립했다.[29] 일반 재단 법인 신도문화회도 미야가와의 제창으로 설립되었다.[30] 신사본청의 평의원회가 신사신보사 등에서 개최될 것이 공시된다.[25]
1969년(쇼와 44년)에 신도정치연맹이 신사본청을 모체로 설립되었다. 신도정치연맹의 이념에 찬동하는 일본의 국회의원(실질적으로 자민당 외에는 없다)으로 구성된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신정련 국회의원 간)가 있으며, 현재 회장은 나카소네 히로후미이다. 제3차 아베 내각에서는, 각료 20명 중 공명당 소속을 제외한 19명이 신정련 국회의원 간의 회원이었다.[31]
신사 관계 단체 중 특히 신사본청이 그 활동을 권장, 육성, 조성하는 단체에 지정 단체[32]가 있다.
- 전국경신부인연합회 - 신사에 봉사하는 부인회의 전국 조직.
- 신도청년전국협의회 - 젊은 신직으로 구성된 전국 조직.
- 전국신사보육단체연합회 - 신사를 운영 모체로 하는 유치원, 보육원, 인가받은 어린이집, 보육소 등의 상호 호조와 연찬을 목적으로 한다.
- 전국교육관계신직협의회 - 교직원을 겸임하는 신직의 상호 호조와 연찬을 목적으로 한다.
- 전국신사스카우트협의회 -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를 직접 운영 또는 운영에 협력하는 신사의 상호 호조를 목적으로 한다 (스카우트에는 「종교장」이라는 기능장이 제정되어 있다).
- 전국씨자청년협의회 - 신사를 중심으로 한 청년 단체로, 신사에의 봉사를 통해 지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 주요 활동 및 교리
신사본청은 신궁으로부터 위탁받은 신궁대마(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부적)를 전국의 신사를 통해 희망자에게 반포한다.[26] 초보료 일부는 신궁에서 신사본청으로 교부되고, 신사본청 예산에서 신사청 및 전국의 신사에 일정 비율로 교부되며, 나머지는 이세 신궁의 수입이 된다.[26] 2001년 신사본청의 수입은 약 35억 엔이었다. 신사본청은 산하 신사에 일정 수의 신궁대마 반포를 요구하며, 규정 수에 미달할 경우에도 부적을 반환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있다. 신궁대마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위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반포되며, 실제 반포 수와 신사의 신궁대마 청구 수가 다른 점이 지적된다.[27]
신사본청의 관계 단체로는 신도정치연맹(신정련)이 있다.[43] 신사본청 총장 다나카 쓰네키요는 일본회의 부회장, 통리 다카쓰카사 나오타케는 고문으로,[43] 일본회의 전신인 일본을 지키는 회 결성에 관여하는 등 오랜 관계를 맺고 있다.
1953년 제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신사본청은 미야가와 무네노리를 옹립했으나 낙선했다.[44] 1966년 신사심의회는 국회에 대표를 보내야 한다고 답신했다. 1969년 신정련 결성 후, 자체 후보 옹립 대신 기존 정당 정치인 추천이 이루어졌다. 신사본청과 신정련은 자유민주당 의원을 주로 지원하며, 이익 대표를 내는 데 열심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프 킹스턴에 따르면, 신사본청은 일본유족회 등 다른 우파 단체와 함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대가로 정치인에게 표와 돈을 제공하는 로비 활동을 했다.[45]
우에스기 사토시는 과거 일본회의 행사 접수처에서 신사본청을 포함한 각종 종교 단체별 접수 창구가 설치되어 참가자가 조직 동원되었다고 보고했다.[46]
2005년 신사본청은 황실전범에 관한 유식자회의가 황위 계승 방식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남계에 의한 황위 계승 존중을 촉구하는 기본적인 자세와 견해를 발표했다.[47]
2005년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관해, 신사본청은 분사는 신사 제사의 본의에서 있을 수 없다는 기본 견해를 발표했다.[48][49] A급 전범을 포함해 전쟁 재판 희생자를 쇼와 순난자로서 합사, 위령해 온 야스쿠니 신사를 지지하며, 많은 사람이 제신의 "분사" 의미를 오해하여 신사 제사의 본의에서 벗어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우려한다고 표명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전몰자 추도의 중심 시설이며, 제신 분리라는 의미의 "분사"는 신사 제사의 본의에서 있을 수 없고, 수상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속해야 하며, 이른바 A급 전범은 국회 결의와 정부 대응에 의해 합사되었다는 것이 견해의 요지이다. 신사본청은 야스쿠니 신사 숭경 봉찬회의 법인 회원이기도 하다.
1957년 8월 21일, 생장의 집 등과 합동으로 기원절 부활 운동을 위한 통일 단체 "기원절 봉축회"를 결성했다. 1967년 건국기념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기원절을 부활시키는 등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주고쿠 전력이 건설 예정인 상관 원자력 발전소 부지 일부가 시다이 하치만구 경내지에 걸쳐 있었지만, 당시 궁사였던 하야시 하루히코가 신사 부지 제공에 반대했다.[50][51] 신사 본청 대표 이사 등이 하야시의 해임을 획책했다고 하야시는 2002년에 주장했다. 2003년에는 원자력 발전소 추진파 씨족이 궁사 해임을 요구하는 소동으로 발전했다. 신사 본청은 원자력 발전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 효과 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므로 환경 파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시다이 하치만구에 경내지 매각을 승인했다.[52]
일부 신사본청과 포괄 관계에 있는 신사에서 사쿠라이 요시코가 주재하고 신사본청도 참가하는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이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 활동을 하고 있다.[53] 이러한 활동에 대해 신쿠마노 신사 궁사 오타케 요시히사는 신사 사유화라고 비판했다. 하치오지시의 아사카와 코토히라 신사 궁사 오쿠다 세이지도 과거 전쟁 협력을 반성한다면 평화 안전 법제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1977년 쓰 지진제 소송 최고 재판소 판결에서 국가나 자치체가 사회 일반 관습에 따른 의례 등에서 종교와 관련된 것이 일본국 헌법 제20조 제3항에서 금지하는 "종교적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합헌 판결이 내려졌다.[54] 신사본청에서는 이로 인해 점령군에 의한 국가와 종교의 "완전 분리주의"가 배척되어 헌법의 정교분리 조항 해석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신사본청은 전국 약 8만 개의 신사를 포괄하는 종교 법인이다. 각 신사는 고유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하치만 신앙이나 이나리 신앙 등 다양한 종교적 신념이 존재하여 하나의 교리를 확립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1980년 5월 21일 평의원회 의결을 통해 "신사본청 헌장"이 제정되었다. 이 헌장의 배경과 위치는 전문에서 "지금까지 영적 통합의 끈으로서 기본 규범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였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헌장 시행 시, 기관 규칙 및 이전 규칙 등은 이 헌장을 기반으로 제정된 것으로 간주한다.
제1조는 "신사본청은 전통을 존중하고, 의례를 진흥하며, 도덕을 앙양하고, 천황 폐하의 번영을 기원하며, 사해의 평화에 기여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신도는 천지 영원의 도이며, 숭고한 정신을 함양하고 태평을 여는 근본이다. 신을 두려워하고 조상의 가르침을 따르며, 인류의 복지를 증진하는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러한 강령을 통해 실천에 옮기며 도를 선양하고자 한다.[6][23]
1. 신과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제사에 임한다.
2. 세상을 위해 봉사하며, 신의 뜻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고 굳건히 한다.
3. 국가와 세계의 공존 공영을 기원한다.
신사본청에는 성문화된 교리가 없지만, 신사본청 헌장과 「경신생활의 강령」을 통해 설립과 활동의 정신을 구현한다.[6][23] 1956년에 제정된 「경신생활의 강령」은 신사본청의 실천적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4. 1. 주요 활동
신사본청은 신궁으로부터 위탁받은 신궁대마(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부적)를 전국의 신사를 통해 희망자에게 반포한다.[26] 초보료 일부는 신궁에서 신사본청으로 교부되고, 신사본청 예산에서 신사청 및 전국의 신사에 일정 비율로 교부되며, 나머지는 이세 신궁의 수입이 된다.[26] 2001년 신사본청의 수입은 약 35억 엔이었다. 신사본청은 산하 신사에 일정 수의 신궁대마 반포를 요구하며, 규정 수에 미달할 경우에도 부적을 반환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있다. 신궁대마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위엄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반포되며, 실제 반포 수와 신사의 신궁대마 청구 수가 다른 점이 지적된다.[27]신사본청의 관계 단체로는 신도정치연맹(신정련)이 있다.[43] 신사본청 총장 다나카 쓰네키요는 일본회의 부회장, 통리 다카쓰카사 나오타케는 고문으로,[43] 일본회의 전신인 일본을 지키는 회 결성에 관여하는 등 오랜 관계를 맺고 있다.
1953년 제3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신사본청은 미야가와 무네노리를 옹립했으나 낙선했다.[44] 1966년 신사심의회는 국회에 대표를 보내야 한다고 답신했다. 1969년 신정련 결성 후, 자체 후보 옹립 대신 기존 정당 정치인 추천이 이루어졌다. 신사본청과 신정련은 자유민주당 의원을 주로 지원하며, 이익 대표를 내는 데 열심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프 킹스턴에 따르면, 신사본청은 일본유족회 등 다른 우파 단체와 함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대가로 정치인에게 표와 돈을 제공하는 로비 활동을 했다.[45]
우에스기 사토시는 과거 일본회의 행사 접수처에서 신사본청을 포함한 각종 종교 단체별 접수 창구가 설치되어 참가자가 조직 동원되었다고 보고했다.[46]
2005년 신사본청은 황실전범에 관한 유식자회의가 황위 계승 방식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남계에 의한 황위 계승 존중을 촉구하는 기본적인 자세와 견해를 발표했다.[47]
2005년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관해, 신사본청은 분사는 신사 제사의 본의에서 있을 수 없다는 기본 견해를 발표했다.[48][49] A급 전범을 포함해 전쟁 재판 희생자를 쇼와 순난자로서 합사, 위령해 온 야스쿠니 신사를 지지하며, 많은 사람이 제신의 "분사" 의미를 오해하여 신사 제사의 본의에서 벗어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우려한다고 표명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전몰자 추도의 중심 시설이며, 제신 분리라는 의미의 "분사"는 신사 제사의 본의에서 있을 수 없고, 수상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속해야 하며, 이른바 A급 전범은 국회 결의와 정부 대응에 의해 합사되었다는 것이 견해의 요지이다. 신사본청은 야스쿠니 신사 숭경 봉찬회의 법인 회원이기도 하다.
1957년 8월 21일, 생장의 집 등과 합동으로 기원절 부활 운동을 위한 통일 단체 "기원절 봉축회"를 결성했다. 1967년 건국기념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기원절을 부활시키는 등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주고쿠 전력이 건설 예정인 상관 원자력 발전소 부지 일부가 시다이 하치만구 경내지에 걸쳐 있었지만, 당시 궁사였던 하야시 하루히코가 신사 부지 제공에 반대했다.[50][51] 신사 본청 대표 이사 등이 하야시의 해임을 획책했다고 하야시는 2002년에 주장했다. 2003년에는 원자력 발전소 추진파 씨족이 궁사 해임을 요구하는 소동으로 발전했다. 신사 본청은 원자력 발전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 효과 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므로 환경 파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시다이 하치만구에 경내지 매각을 승인했다.[52]
일부 신사본청과 포괄 관계에 있는 신사에서 사쿠라이 요시코가 주재하고 신사본청도 참가하는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의 모임이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 활동을 하고 있다.[53] 이러한 활동에 대해 신쿠마노 신사 궁사 오타케 요시히사는 신사 사유화라고 비판했다. 하치오지시의 아사카와 코토히라 신사 궁사 오쿠다 세이지도 과거 전쟁 협력을 반성한다면 평화 안전 법제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1977년 쓰 지진제 소송 최고 재판소 판결에서 국가나 자치체가 사회 일반 관습에 따른 의례 등에서 종교와 관련된 것이 일본국 헌법 제20조 제3항에서 금지하는 "종교적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합헌 판결이 내려졌다.[54] 신사본청에서는 이로 인해 점령군에 의한 국가와 종교의 "완전 분리주의"가 배척되어 헌법의 정교분리 조항 해석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4. 2. 신사본청 헌장
신사본청은 전국 약 8만 개의 신사를 포괄하는 종교 법인이다. 각 신사는 고유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하치만 신앙이나 이나리 신앙 등 다양한 종교적 신념이 존재하여 하나의 교리를 확립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1980년 5월 21일 평의원회 의결을 통해 "신사본청 헌장"이 제정되었다. 이 헌장의 배경과 위치는 전문에서 "지금까지 영적 통합의 끈으로서 기본 규범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였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 헌장 시행 시, 기관 규칙 및 이전 규칙 등은 이 헌장을 기반으로 제정된 것으로 간주한다.제1조는 "신사본청은 전통을 존중하고, 의례를 진흥하며, 도덕을 앙양하고, 천황 폐하의 번영을 기원하며, 사해의 평화에 기여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4. 3. 경신생활강령
신도는 천지 영원의 도이며, 숭고한 정신을 함양하고 태평을 여는 근본이다. 신을 두려워하고 조상의 가르침을 따르며, 인류의 복지를 증진하는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이러한 강령을 통해 실천에 옮기며 도를 선양하고자 한다.[6][23]1. 신과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제사에 임한다.
2. 세상을 위해 봉사하며, 신의 뜻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고 굳건히 한다.
3. 국가와 세계의 공존 공영을 기원한다.
신사본청에는 성문화된 교리가 없지만, 신사본청 헌장과 「경신생활의 강령」을 통해 설립과 활동의 정신을 구현한다.[6][23] 1956년에 제정된 「경신생활의 강령」은 신사본청의 실천적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5. 한국과의 관계 및 비판
신사본청은 내각총리대신의 참배 등으로 논란을 빚은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관해, 분사는 "신사 제사(祭祀)의 본의에서 있을 수 없다"는 기본 견해를 2005년 6월 9일에 발표했다.[48][49] 신사본청은 A급 전범을 포함해, 전쟁 재판 희생자를 일본 정부의 조치에 의해 쇼와 순난자로서 합사, 위령해 온 야스쿠니 신사를 지지하며, 많은 사람이 제신의 "분사"의 의미를 오해하여 신사 제사의 본의에서 벗어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고 표명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전몰자 추도의 중심적 시설이며, 제신의 분리라는 의미의 "분사"는 신사 제사의 본의에서 있을 수 없고, 수상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속해야 하며, 이른바 A급 전범은 국회의 결의와 그에 따른 정부의 대응에 의해 합사되었다는 것이 견해의 요지이다.
또한, 신사본청은 야스쿠니 신사 숭경 봉찬회의 법인 회원이기도 하다.
참조
[1]
웹사이트
Jinja-Honcho -CIVILIZATION OF THE DIVINE FOREST-
http://www.jinjaho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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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eror's daughter becomes supreme priestess at Ise sh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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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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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宗教年鑑』平成19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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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 神社庁一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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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庁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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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 > 神社本庁のご案内 > 神社庁一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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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 > 神社本庁のご案内 > 関係団体一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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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教年鑑』平成19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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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 神社庁一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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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宗教年鑑 平成30年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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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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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功名家列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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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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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 設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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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宮奉斎会から神社本庁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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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教年鑑 平成25年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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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憲章の解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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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国10万社の頂点に鎮座 比類なき伊勢神宮の威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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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教情報リサーチセンタ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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会社概要 / 神社界唯一の新聞社 神社新報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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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会のあゆみ – 神道文化会 | 伝えたい日本のココロとカタ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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応援し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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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道政治連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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続報真相 改憲急ぐ安倍首相を応援する人々 「美しい日本の憲法」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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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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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阪府神社庁 第六支部 東大阪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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強権発動で宮司人事にも介入 完了・世俗化する神社本庁の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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気多大社 人事で混乱 宮司2人 法廷頼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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最高裁、神社規則の変更認める 羽咋市の気多神社訴訟
共同通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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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神社本庁「恐怖政治」の実態、地方の大神社で全面戦争も(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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ダイヤモンド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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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岡八幡宮、神社本庁に6月離脱通知、9月に認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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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新聞社
20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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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離脱の経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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鶴岡八幡宮が神社本庁を離脱へ 理由は明記されず 神奈川・鎌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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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新聞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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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の「政治力」と「資金力」、不気味がるほどでは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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週刊ダイヤモン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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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会議研究 憲法編 中 国民投票へ 賛同拡大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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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における『宗教右翼』の台頭と『つくる会』『日本会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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皇室典範改正に関する神社本庁の基本的な姿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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靖国神社のA級戦犯分祀「あり得ない」 神社本庁が見解
朝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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靖国神社をめぐる諸問題に関する神社本庁の基本見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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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自然破壊の原発に神の地は売らず 神社、鎮守の森の永続は村落の永続
農山漁村文化協会
2002-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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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が安倍の地元で鎮守の森を原発に売り飛ばし!反対する宮司を追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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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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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口県上関町・八幡宮所有地の上関原発建設用地への財産処分承認申請書に対する承認の可否
200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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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の正体<260>日本会議を追う(2)国民投票への『名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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津地鎮祭事件の最高裁判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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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部科学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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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で不可解な不動産取引、刑事告訴も飛び出す大騒動勃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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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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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神社本庁元幹部ら、解雇処分無効など訴え提訴 不動産売却めぐり癒着指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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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神社本庁元幹部の懲戒無効 不動産売却巡り内部告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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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経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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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再び敗訴 元部長らの処分無効―東京高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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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事通信
20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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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神社本庁処分、無効確定 内部告発の元幹部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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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経新聞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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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こんぴら、神社本庁離脱へ 「大嘗祭巡り不信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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産經新聞
20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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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刀比羅宮、神社本庁を離脱へ 「大嘗祭巡り不信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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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般社団法人共同通信社
20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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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んぴらさん」が神社本庁を離脱 大嘗祭の供え物届かず「天皇陛下にも不敬極まり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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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新聞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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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統理様が芦原理事を総長に指名した理由◆◆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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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古賀攻,「恐れ入らない神社界」
https://mainichi.jp/[...]
毎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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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古賀攻,「一線を越えた神社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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毎日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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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東京地裁への提訴について④六月二十三日の役員会
202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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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社本庁の代表役員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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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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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独占インタビュー 分断危機の「神社本庁」トップが語った「内紛の真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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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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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神社本庁人事 芦原総長の地位確認提訴 庁規「義を経て」の解釈争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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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外日報
2022-09-14
[70]
뉴스
統理を支持する会設立 賛同260人超 神社本庁のあり方議論
中外日報
2022-09-14
[71]
뉴스
統理支持の"花菖蒲ノ會" 賛同者1200人超す 神社本庁
https://www.chugaini[...]
中外日報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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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神社本庁の総長ポストめぐり判決 「統理」だけの指名、認められず
https://www.asahi.co[...]
2022-12-22
[73]
뉴스
最高裁も神社本庁「総長」と認めず トップの指名で騒動、地位確認求めた宮司の敗訴確定
https://www.sankei.c[...]
2024-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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