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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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산후는 고려 왕족으로, 고려 선종과 원신궁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1094년 헌종이 즉위했으나 어렸기에 사숙태후가 정사를 처리하는 동안, 외숙 이자의가 왕윤을 옹립하려는 역모를 꾸몄다. 이 음모는 숙종에게 발각되어 이자의가 숙청되고 왕윤은 어머니와 함께 경원군으로 유배되었다.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나, 이 불상은 조선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산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작위고려의 왕자
왕윤(王昀)
로마자 표기Wang Yun
출생미상
사망미상
아버지선종
어머니원신궁주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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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고려의 왕족으로, 선종과 원신궁주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이름은 왕윤(王昀) 또는 왕균(王均)으로 전해진다.

1094년 이복형제인 헌종이 즉위했으나 나이가 어려 어머니 사숙태후가 섭정하며 정국이 불안정했다. 이때 외숙부인 이자의가 왕윤을 왕위에 앉히려 했으나, 숙부인 계림공(훗날 숙종)에게 발각되어 실패했다. 이 사건으로 이자의는 숙청되었고, 왕윤은 어머니 원신궁주와 함께 경원군(현재의 인천광역시)으로 유배되었다. 유배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2.1. 가계

고려의 제13대 선종과 그의 세 번째 부인원신궁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몰년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은 왕(王), 이름은 윤(昀) 또는 균(昀)이며, 본관개성이다.

순종과 숙종은 그의 숙부이며, 헌종과는 아버지 쪽으로는 이복 형제, 어머니 쪽으로는 6촌 관계가 된다.

어머니 원신궁주인천 이씨 가문 출신으로, 당시 문벌귀족이었던 이자연의 손녀이자 이정의 딸이다. 외숙부는 이자의이다. 또한 문종의 왕비이자 선종의 어머니인 인예왕후는 원신궁주의 고모이므로, 원신궁주는 시어머니인 인예왕후와 고모-조카 사이이며, 남편인 선종과는 사촌 관계였다.

2.2. 왕자 시절

선종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자연의 손녀인 원신궁주 이씨이다. 어머니 원신궁주는 인예태후의 조카이기도 해, 부모는 사촌 관계였다. 이름은 왕윤한국어(王昀) 또는 왕균한국어(王均)으로 불렸다.

1094년 헌종이 즉위하자 그해 음력 6월 30일 수사도(守司徒)의 관직을 받았다. 당시 헌종은 나이가 어려 어머니 사숙태후가 섭정을 했는데, 이로 인해 정국이 불안정했다. 이러한 상황을 틈타 왕윤의 외숙인 이자의는 왕윤을 왕위에 앉히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자의는 무뢰배들을 모아놓고 "지금의 임금(헌종)은 병이 있어 궁궐 바깥에서 왕위를 엿보는 자가 있으니, 너희들은 한산후(왕윤)를 받들어 신기(神器, 임금의 자리를 상징하는 물건)를 다른 이에게 가지 못하게 하라"고 말하며, 궁궐에 군사를 모아 거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이 음모는 왕윤의 숙부인 계림공(훗날 숙종)에게 발각되었다. 계림공은 즉시 소태보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소태보는 왕국모에게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들어오게 했다. 결국 1095년, 계림공 세력은 이자의를 반역 혐의로 숙청하고 살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계림공은 조카인 헌종을 몰아내고 숙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역모에 연루된 왕윤과 어머니 원신궁주는 경원군(현재의 인천광역시)으로 유배되었다.

유배 이후 왕윤의 삶에 대해서는 《고려사》 등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2.3. 유배 이후

1095년 숙종이 즉위한 후, 왕윤은 어머니 원신궁주와 함께 경원군(현재의 인천광역시)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왕윤의 삶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3. 기타: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전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대한민국의 보물 제93호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에는 왕윤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왕윤의 어머니 원신궁주는 입궁 초기에 아이를 낳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원신궁주의 꿈에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인데 배가 몹시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꿈에서 깬 원신궁주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선종에게 알렸다. 선종은 즉시 사람을 보내 장지산 쪽을 알아보게 했고, 다녀온 사람은 "장지산 아래쪽에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선종은 두 바위에 원신궁주의 꿈에 나타난 도승의 모습을 새기게 하고, 근처에 사찰을 지어 불공을 드리게 했다. 얼마 후 원신궁주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때 태어난 아들이 바로 왕윤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불상은 실제로는 조선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1471년(조선 성종 2년)에 작성된 조성문이 남아있다. 동국대학교 교수 이한성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이야기를, 역시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던 고려 숙종의 이야기에 빗대어 그 속내를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추측을 제기하기도 했다.

4. 가족 관계

성은 왕씨이며, 이름은 윤 또는 균(昀)이다. 선종과 원신궁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순종과 숙종의 조카이며, 헌종과는 이복 형제이면서 외가로는 6촌 관계이다.

생모 원신궁주인천 이씨 출신으로, 문하시중을 지낸 이자연의 손녀이자 이정의 딸이다. 외숙부는 이자의이다. 또한 원신궁주의 고모는 문종의 왕비이자 한산후의 할머니인 인예왕후이다. 따라서 원신궁주는 남편인 선종과 사촌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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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관계이름생몰년비고
조부문종1019~1083고려 제11대 국왕
조모인예왕후?~1092문종의 제2비, 이자연의 딸
아버지선종1049~1094고려 제13대 국왕
외조부이정1025~1077이자연의 아들, 문하시중
어머니원신궁주? ~ ?선종의 제3비, 이정의 딸
외숙부이자의?~1095이정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