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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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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프닝은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전위 예술의 한 형태로, 앨런 캐프로우가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서 영감을 받아 발전시켰다. 퍼포먼스 아트, 설치 미술 등에 영향을 미쳤으며, 즉흥성과 일회성을 특징으로 한다. 관객 참여를 강조하고, 회화, 조각,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는 탈장르적 성격을 지닌다. 해프닝은 기성 예술의 틀을 벗어나 예술가의 자유를 강조하며, 반문화적 성향을 띠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에 소개되어 전위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실험적인 시도가 이루어졌으며,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담는 형태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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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
해프닝 (미술)
알렌 카프로우의
알렌 카프로우의 "하우스홀드" (1964)
장르
종류공연 예술
스타일전위 예술
관련 양식플럭서스
퍼포먼스 아트
비디오 아트
창시자
창시자알렌 카프로
시작 시기1950년대 후반
특징
특징관객 참여
계획되지 않은 즉흥성
연극적 요소
일상적인 재료 사용
창작 방법환경 구성
행위 예술
상호 작용
주요 인물알렌 카프로
짐 다인
클래스 올덴버그
레드 그룸스
요코 오노
영향
영향개념미술
행위예술
설치미술
미디어 아트

2. 역사

앨런 카프로는 1959년 조지 시걸의 농장에서 열린 예술 이벤트에서 "해프닝"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39] 다만, 카프로가 뉴욕의 루벤 갤러리에서 개최한 『6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18개의 해프닝』(18 Happenings in 6 Parts)을 최초로 보는 견해도 있다.[40]

초기에 "해프닝"은 예술 작품 제목의 일부였지만, 점차 그 행위 자체를 지칭하게 되었고, 나아가 일종의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캐롤리 슈니만, 앨 한센, 레드 그룸스, 클레스 올덴버그, 짐 다인, 조지 시걸, 로버트 휘트먼 등 여러 예술가들이 다양한 해프닝을 선보였다.

해프닝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추상표현주의가 절정에 달하고 액션 페인팅을 넘어선 예술을 추구하려는 열정과 좀비 아트의 오브제성과 저속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은 해프닝에서 영감을 얻은 후, 점차 해프닝에서 멀어졌다.

해프닝은 여러 나라에서 다음과 같이 발전했다.

국가내용
프랑스1960년대부터 시인 장 자크 르벨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뱅상 보티에의 메일 해프닝도 있었다.
체코밀란 크니자크
네덜란드시몬 판 켄누그, 바르트 휘게스, 마리케 코겔
대한민국1950년대 초 요시하라 지로를 중심으로 한 구체미술협회의 활동이 해프닝의 한 표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초월홀, 앙그라와의 연관성도 있었다. 2010년대부터는 스타일리스트 후시미 케이코를 중심으로 한 패션 집단 The HAPPENING이 게릴라식 패션쇼를 선보였다.


2. 1. 기원

앨런 카프로는 1959년 봄, 조지 시걸의 농장에서 열린 예술 피크닉에서 공연되고 있는 예술 작품을 묘사하기 위해 "해프닝"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었다.[2] 1958년에 발표되었지만 주로 1956년에 쓰여진 카프로의 유명한 "잭슨 폴록의 유산" 에세이에서 해프닝에 대한 최초의 인쇄물 출현이 있었다.[3] 이 형식은 모방되었고, 이 용어는 미국, 독일, 일본의 예술가들에 의해 채택되었다.

해프닝은 각각이 독특하기 때문에 설명하기 어렵다. "해프닝"이라는 용어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앨런 카프로와 다른 사람들이 주최한 많은 공연과 행사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어 왔는데,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대본이 있고 관객의 상호 작용이 제한적인 많은 연극 작품이 포함된다.[4]

카프로는 존 케이지의 제자였는데, 존 케이지는 1952년 초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음악 해프닝"을 실험했다. 카프로는 연극과 시각 예술을 불협화음 음악과 결합했다. "해프닝은 케이지가 침묵을 탐구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부정적인 공간을 탐구한다. 그것은 상징주의의 한 형태이다." 같은 공연의 "해프닝"은 각 공연이 관객의 행동에 달려 있기 때문에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7]

해프닝은 공연자와 관객 간의 상호 작용을 강조하는 참여형 뉴미디어 아트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카프로의 작품 ''6부작 18개의 해프닝''(1959)은 일반적으로 최초의 해프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구분은 때때로 카프로의 1950년대 중반 스승 중 한 명인 존 케이지가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1952년에 공연한 ''연극 작품 1번''으로 주어지기도 한다. 케이지는 사다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찰스 올슨은 다른 사다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그의 그림 몇 점을 보여주고 에디슨 혼 레코더로 에디트 피아프의 왁스 실린더를 연주했고, 데이비드 튜더는 준비된 피아노를 연주했고, 머스 커닝햄은 춤을 추었다.[8] 이 모든 일들이 무대가 아닌 관객들 사이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케이지는 M. C. 리차드와 데이비드 튜더와 함께 앙토냉 아르토의 ''극장과 그 이중성''을 협업하여 깊이 있게 읽은 것을 이 행사의 원동력으로 돌렸다.[9]

해프닝은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 뉴욕시에서 번성했다.

1958년에 캐프로우가 수학하던 뉴스쿨 대학교에서 존 케이지[42]의 강의를 들은 것을 계기로 공간적인 요소를 추가하게 되었다. 같은 수업에는 알 한센, 조지 브렉트, 딕 히긴스 등이 있었다.

해프닝은 퍼포먼스 아트, 설치 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2. 발전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프닝은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캐롤리 슈네만(Carolee Schneemann), 레드 그룸스(Red Grooms), 로버트 휘트먼(Robert Whitman), 짐 다인(Jim Dine),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등이 해프닝을 전개했다.[39][40]

일본의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는 1960년대 후반 뉴욕에서 누드 해프닝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해프닝은 유럽과 남미 등 세계 각지로 확산되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프랑스의 장 자크 르벨(Jean-Jacques Lebel)과 이브 클랭(Yves Klein), 일본의 오노 요코(Yoko Ono), 독일의 볼프 포스텔(Wolf Vostell)과 백남준(Nam June Paik) 등이 대표적인 예술가이다.[20][21][24]

장-자크 르벨 – 비트 세대 전시회, 2013년 11월


1971년 로타르 볼레(Lothar Wolleh)가 촬영한 보이스 펠트 TV 공연

2. 3. 한국에서의 해프닝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소개된 해프닝은 전위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실험적인 시도가 이루어졌다. 1970년대에는 정치,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해프닝이 등장했으며, 제4집단, 신전동인 등 전위예술 그룹이 활동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형태의 퍼포먼스 아트와 결합하여 발전했다. 1950년대 초 요시하라 지로를 중심으로 한 구체미술협회의 활동을 해프닝의 표현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초월홀, 앙그라와 연관성을 가지기도 했다. 2010년대부터는 스타일리스트 후시미 케이코를 중심으로 한 패션 집단 The HAPPENING이 게릴라적인 기법을 사용한 패션쇼를 전개했다.

3. 특징

해프닝은 예술과 환경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을 강조한다. 앨런 카프로는 "해프닝은 우리에게 잠시나마 예의범절을 내려놓고 예술과 삶의 진정한 본질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초대한다. 그것은 거칠고 갑작스러운 행위이며, 종종 '더러운' 느낌을 받게 되는데, 우리는 더러움 또한 유기적이고 비옥하며, 방문객을 포함한 모든 것이 그러한 상황에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18]

카프로우는 해프닝이 단순한 새로운 스타일이 아니라 도덕적 행위이며, 매우 절박한 인간의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예술가들이 인정받고 돈을 받으면 후원자들의 취향에 갇히게 된다고 주장하며, 예술가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은 예술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강조한다.[18]

미국에서는 1959년 앨런 카프로가 조지 시걸의 농장에서 열린 예술 이벤트에서 작품을 발표하면서 "해프닝"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39] 일본에서는 카프로가 뉴욕의 루벤 갤러리에서 개최한 『6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18개의 해프닝』(18 Happenings in 6 Parts)이 "해프닝"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첫 이벤트라는 견해도 있다.[40]

처음에는 예술 작품 제목의 일부였지만, 그 행위 자체도 해프닝으로 불리게 되면서 일종의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캐롤리 슈니만, 앨 한센, 레드 그룸스, 클레스 올덴버그, 짐 다인, 조지 시걸, 로버트 휘트먼 등 여러 예술가들이 다양한 형식의 해프닝을 전개했다.

해프닝은 특히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사랑받았다. 추상표현주의 절정기에 액션 페인팅을 넘어선 예술을 추구하려는 열정과 좀비 아트의 오브제성, 저속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당시 신선함을 주었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은 해프닝을 통해 영감을 얻은 후 점차 해프닝에서 멀어져 갔다.

3. 1. 즉흥성과 일회성

해프닝은 정해진 각본이나 연출 없이 즉흥적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매번 다른 결과가 나타나며, 반복이 불가능하다.[18] 앨런 카프로는 "해프닝은 우리에게 잠시나마 예의범절을 내려놓고 예술과 삶의 진정한 본질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초대한다."라고 말했다.[18]

해프닝에는 줄거리나 철학이 없으며, 즉흥적인 방식으로 구체화된다. 연출이 없기 때문에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훨씬 더 '옳은', 더 계시적인 것이 나타날 수 있다."[18]

레드 그룸스는 해프닝에 대해 "나는 그것이 무언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것이 무언가라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14]

해프닝은 직렬 음악이나 우연성이 강한 확률 음악과 유사하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지루함을 완화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해프닝은 음악 등의 “재현 예술”과 달리, 단 한 번만 유효하다.[41]

3. 2. 관객 참여

해프닝에서 관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작품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이러한 참여는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벽을 허물고, 서로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만든다.[19] 앨런 캐프로는 관객 참여를 통해 예술과 삶이 더 가까워진다고 보았다.[18]

아우구스토 보알의 억압받는 자의 극장도 관객을 '나쁜 단어'라고 부르며, 관객이 배우가 되어 극에 참여하도록 했다. 보알은 억압받는 사람들이 직접 억압하는 세력을 연기하게 하여 정치적 행동을 이끌어내고자 했다.[19]

버닝 맨이나 오리건 컨트리 페어와 같은 예술 및 음악 축제는 긍정적이고 성공적인 해프닝의 좋은 예시이다. 이러한 축제들은 관객이 단순히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참여하여 놀랍고 독특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37] 이러한 행사는 매년 열리며, 약 5만 명의 사람들이 참여한다.[38]

1965년 아르헨티나 예술가 마르타 미누힌은 신문지로 몸을 싼 채 라플라타 강에 들어가는 해프닝 작품 ''뉴스 읽기''를 선보였다.[17]

3. 3. 탈장르적 성격

해프닝은 회화, 조각, 음악,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융합하여, 기존 예술의 형식과 틀을 벗어나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앨런 캐프로우를 비롯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예술가들은 해프닝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기술 발전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41]

해프닝은 잭슨 폴록액션 페인팅에 대한 앨런 캐프로우의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캐프로우는 이를 액션 콜라주, 아상블라주, 환경 미술로 발전시켰고, 최종적으로 "자신과 다양한 물질의 상호작용"이라는 해프닝의 개념을 정립했다.[41] 1958년 캐프로우는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에서 존 케이지[42]의 강의를 들으며 공간적 요소를 추가하는 계기를 얻었다.

해프닝은 퍼포먼스 아트, 설치 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직렬 음악이나 우연성이 강한 확률 음악과 유사하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지루함을 완화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음악과 달리 해프닝은 단 한 번만 유효하다.

해프닝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용되었다.

분야특징주요 인물
음악연기나 개성의 드라마틱한 표현을 부정하고, 악보에 따른 액션을 수행한다.존 케이지, 라 몬테 영
무용해프닝의 순간적인 충동에 기반한 행동을 정형적인 무용에 도입한다.안나 할프린, 이본느 레이너, 로버트 모리스
플럭서스반예술적인 의도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유머가 넘치는 해프닝으로 발전했다.조지 마치우나스, 오노 요코[44]
연극회의와 같은 형식을 해프닝으로 만들었다.케네스 듀이(Ken Dewey)
반예술물체 파괴나 공포를 통해 관객에게 적극성을 요구한다.볼프 포스텔(Wolf Vostell), 백남준


3. 4. 반문화적 성격

해프닝은 퍼포먼스 아트, 설치 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일본과 미국에서는 같은 시대에 활발했던 시민 운동, 반전 운동, 학생 운동 등의 반문화와 깊은 연관을 맺어, 흔히 행정 당국에 사전 허가를 받지 않는 게릴라적인 활동을 했다. 구사마 야요이[43]도 미국 활동 시절에 해프닝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그 때문에 이후 세대에는 “해프닝은 모두 게릴라적인 활동”이라는 오해가 퍼져 있다.

4. 주요 예술가 및 작품

해프닝은 초기에는 예술 작품 제목의 일부였지만, 점차 그 행위 자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일반화되어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캐롤리 슈니만, 앨 한센, 레드 그룸스, 클래스 올덴버그, 짐 다인, 조지 시걸, 로버트 휘트먼 등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형식의 해프닝을 전개했다.[41] 특히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액션 페인팅을 넘어선 예술을 추구하며 해프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은 해프닝을 통해 영감을 얻은 후, 점차 해프닝에서 멀어졌다.

해프닝은 퍼포먼스 아트, 설치 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일본미국에서는 반문화와 깊은 연관을 맺어 게릴라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구사마 야요이[43]는 미국 활동 시절 해프닝의 여왕으로 불렸다.

해프닝은 직렬 음악이나 확률 음악과 같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사건을 유도하고 지루함을 완화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음악과 같은 “재현 예술”과는 달리 단 한 번만 유효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 '''음악가의 해프닝:''' 연기나 개성의 표현을 부정하고, 악보에 따라 정확하게 액션을 수행한다. (존 케이지 일파, 라 몬테 영 등)
  • '''무용가의 해프닝:''' 순간적인 충동에 기반한 행동을 정형적인 무용에 도입하여 경계를 허문다. 재디슨 교회 홀을 중심으로 “댄스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행해졌다. (안나 할프린, 이본느 레이너, 로버트 모리스 등)
  • '''플럭서스의 해프닝:''' 반예술적인 의도로 해프닝을 사용했지만, 점차 멤버 각자의 특징을 지닌 해프닝이 탄생했다. 연극, 게임, 스포츠와 같은 개념을 도입하여 유머가 넘치는 해프닝을 전개했으며, “이벤트”라는 표현 활동도 했다. (조지 마치우나스, 오노 요코[44] 등)
  • '''연극인의 해프닝:''' 1964년 영국의 에든버러에서 열린 국제 연극 회의에서 케네스 듀이는 회의 자체를 해프닝으로 만들었다.
  • '''반예술적 의도의 해프닝:''' 물체의 파괴나 공포를 통해 관객에게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서독의 “데 콜라주” - 볼프 포스텔, 백남준)

4. 1. 앨런 카프로 (Allan Kaprow)

앨런 카프로는 '해프닝'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해프닝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미국의 예술가이다. 1959년, 카프로는 조지 시걸의 농장에서 열린 예술 이벤트에서 작품을 발표하면서 "해프닝"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39] 또 다른 정보에 따르면, 카프로가 뉴욕의 루벤 갤러리에서 개최한 '6부작 18개의 해프닝'(18 Happenings in 6 Parts)이 "해프닝"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최초의 이벤트라는 견해도 있다.[40]

카프로는 잭슨 폴록액션 페인팅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이를 발전시켜 액션 콜라주를 고안했다. 여기에 공간적 요소를 추가하여 환경을 만들었고, 최종적으로는 “자신과 다양한 물질의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의 해프닝을 완성했다.[41]

1958년에 카프로는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에서 존 케이지[42]의 강의를 들으면서 공간적 요소를 추가하게 되었다. 이 수업에는 알 한센(Al Hansen), 조지 브렉트, 딕 히긴스(Dick Higgins) 등도 함께 참여했다.

4. 2. 존 케이지 (John Cage)

앨런 카프로는 1958년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에서 존 케이지[42]의 강의를 들었다. 이 수업에는 알 한센(Al Hansen), 조지 브렉트, 딕 히긴스(Dick Higgins) 등도 함께였다. 존 케이지는 1952년 초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음악 해프닝"을 실험했고,[8] 같은 해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공연한 ''연극 작품 1번''은 최초의 해프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당시 케이지는 사다리에서 책을 읽고, 찰스 올슨(Charles Olson)은 다른 사다리에서 책을 읽었으며,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는 그의 그림 몇 점을 보여주고 에디슨 혼 레코더로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의 왁스 실린더를 연주했고,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는 준비된 피아노(prepared piano)를 연주했으며,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은 춤을 추었다.[8] 이 모든 일들은 무대가 아닌 관객들 사이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케이지는 M. C. 리차드(M.C. Richards)와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와 함께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의 ''극장과 그 이중성''을 협업하여 깊이 있게 읽은 것을 이 행사의 원동력으로 꼽았다.[9]

4. 3. 기타 주요 예술가


  • 캐롤리 슈네만(Carolee Schneemann), 레드 그룸스(Red Grooms), 로버트 휘트먼(Robert Whitman), 짐 다인(Jim Dine):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 뉴욕시에서 해프닝에 크게 기여했다.[10] 짐 다인의 ''자동차 사고''(Car Crash)가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10]
  •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 혁신적인 조각으로 잘 알려진 올덴버그는 ''인준(Injun)'', ''세계 박람회 II(World's Fair II)'', ''AUT OBO DYS''와 같은 해프닝을 위해 빈집, 자신의 상점, 로스앤젤레스의 미국 항공 우주학회 주차장 등을 사용했다.
  •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52년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존 케이지(John Cage)가 공연한 ''연극 작품 1번''에 참여했다. 이 공연에서 라우센버그는 자신의 그림 몇 점을 전시하고 에디슨 혼 레코더로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의 왁스 실린더를 연주했다.[8]
  • 장 자크 르벨(Jean-Jacques Lebel): 1960년 베네치아에서 첫 번째 유럽 해프닝인 ''사물의 장례식(L'enterrement de la Chose)''을 감독하고 참여했다.[21] 장 팅겔리(Jean Tinguely)가 만든 기계 조각인 '시체'는 의식적으로 운하에 던져졌다.[21]

  • 이브 클랭(Yves Klein): 1959년 ''비물질적 회화 감각 영역''(Zone de Sensibilité Picturale Immatérielle)을 공연했다.[20]
  • 오노 요코(Yoko Ono): 1964년 도쿄 소게츠 아트 센터(Sogetsu Art Center)에서 ''컷 피스''(Cut Piece)를 공연했다.[24]
  • 구사마 야요이(Yayoi Kusama): 1960년대 후반 뉴욕시에서 누드 해프닝을 상연했다.[15][16] 일본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해프닝의 여왕"으로 불렸다.[43]
  • 볼프 포스텔(Wolf Vostell): 1963년 얌 페스티벌에서 해프닝 ''TV 매장(TV-Burying)''을 만들었고, 1964년에는 롱아일랜드 그레이트넥(Great Neck, New York)에서 해프닝 ''당신(You)''을 만들었다.[12][13]
  • 백남준(Nam June Paik): 1960년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볼프 포스텔(Wolf Vostell) 등과 함께 독일에서 해프닝을 주최했다.

5. 영향 및 의의

해프닝은 예술과 환경의 유기적 연결을 강조한다. 앨런 카프로는 "해프닝은 우리에게 잠시나마 예의범절을 내려놓고 예술과 삶의 진정한 본질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초대한다."라고 주장했다.[18]

해프닝은 즉흥적으로 구체화되며, 연출이 없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카프로는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는 전체 요소가 전달하는 내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18] 해프닝은 지속되는 동안 신선하며 재현될 수 없다.

레드 그룸스는 해프닝에 대해 "나는 그것이 무언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것이 무언가라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14]

아우구스토 보알의 억압받는 자의 극장처럼, 해프닝은 관객 참여를 유도한다. 보알은 관객이 배우가 되어 억압받는 사람들을 연기함으로써 정치적 행동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카프로우와 보알 모두 극을 더욱 상호작용적으로 만들고 전통적인 서사 형식을 없애려 했다.[19]

카프로우는 해프닝이 도덕적 행위이며, 예술가들이 후원자의 취향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19]

미국에서는 1959년 앨런 카프로가 조지 시걸의 농장에서 열린 예술 이벤트에서 "해프닝"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39] 일본에서는 카프로가 뉴욕의 루벤 갤러리에서 개최한 『6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18개의 해프닝』이 처음으로 "해프닝"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이벤트라는 견해도 있다.[40]

초기에는 예술 작품 제목의 일부였지만, 점차 행위 자체가 해프닝으로 불리며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캐롤리 슈니만, 앨 한센, 레드 그룸스, 클레스 올덴버그, 짐 다인, 조지 시걸, 로버트 휘트먼 등이 다양한 형식의 해프닝을 전개했다.

해프닝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사랑받았다. 추상표현주의가 절정에 달하고 액션 페인팅을 넘어선 예술을 추구하려는 열정과, 좀비 아트의 오브제성과 저속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많은 예술가들은 해프닝을 통해 영감을 얻은 후 점차 멀어져 갔다.

5. 1. 현대 예술에 미친 영향

해프닝은 퍼포먼스 아트, 설치 미술 등 현대 예술의 다양한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관객 참여, 상호작용, 탈장르적 경향 등 현대 예술의 주요 특징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앨런 캐프로우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해프닝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기술 발전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다른 예술가들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문제에 관심을 끌 수 있는 퍼포먼스를 창작하도록 이끌었다.[41]

해프닝은 잭슨 폴록액션 페인팅에 대한 앨런 캐프로우의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캐프로우는 액션 페인팅에서 발전된 액션 콜라주, 아상블라주, 환경 미술을 거쳐 "자신과 다양한 물질의 상호작용"이라는 해프닝의 개념을 정립했다.[41] 1958년 캐프로우가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에서 존 케이지[42]의 강의를 들은 것이 공간적 요소를 추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프닝은 직렬 음악이나 우연성이 강한 확률 음악과 유사하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며, 지루함을 완화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음악과 달리 해프닝은 단 한 번만 유효하며 재현될 수 없다.

해프닝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분야내용
음악가의 해프닝연기나 개성의 드라마틱한 표현을 부정하고, 악보에 따라 긴장감을 유지하며 액션을 수행한다. (존 케이지, 라 몬테 영 등)
무용가의 해프닝해프닝의 순간적인 충동에 기반한 행동을 정형적인 무용에 도입하여 경계를 허문다. 재디슨 교회 홀을 중심으로 "댄스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행해졌다. (안나 할프린, 이본느 레이너, 로버트 모리스 등)
플럭서스의 해프닝"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없앤다"는 반예술적인 의도로 시작되었으나, 멤버의 다양성 등으로 인해 점차 각자의 특징을 지닌 해프닝이 탄생했다. 연극, 게임, 스포츠와 같은 개념을 도입하여 유머가 넘치는 해프닝을 전개했다. (조지 마치우나스, 오노 요코[44] 등)
연극인의 해프닝1964년 영국의 에든버러에서 열린 국제 연극 회의에서 케네스 듀이(Ken Dewey)는 회의 자체를 해프닝으로 만들었다.
반예술적 의도의 해프닝물체의 파괴나 공포를 통해 관객에게 "더 적극적으로 되라"고 도전한다. (서독의 "데 콜라주" (볼프 포스텔(Wolf Vostell), 백남준) 등)



또한, 해프닝은 다음과 같은 국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국가내용
프랑스1960년대부터 시인 장 자크 르벨(Jean-Jacques Lebel)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졌다. 뱅상 보티에(Ben Vautier)의 메일 해프닝도 있다.
체코밀란 크니자크(Milan Knizak)
네덜란드시몬 판 켄누그, 바르트 휘게스, 마리케 코겔
대한민국1950년대 초 吉原治良을 중심으로 한 구체미술협회의 활동, 초월홀, 앙그라와의 연관성 등. 2010년대부터는 스타일리스트 伏見京子(후시미 케이코)를 중심으로 한 패션 집단 The HAPPENING이 게릴라적인 기법을 사용한 패션쇼를 전개했다.


5. 2. 사회적 의의

해프닝은 기성 예술계의 권위와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예술가의 자유와 창의성을 강조한다.[19] 앨런 카프로는 해프닝을 통해 예술가들이 후원자의 취향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프닝이 도덕적 행위이며, 예술가의 실존적 헌신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해프닝은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며, 정해진 줄거리나 철학이 없다.[18] 레드 그룸스는 해프닝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것이 무언가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14] 이러한 특성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아우구스토 보알의 억압받는 자의 극장과 유사하게 관객을 '배우'로 만들어 억압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게 한다.

1965년 아르헨티나 예술가 마르타 미누힌은 신문지로 몸을 싼 채 라플라타 강에 들어가는 해프닝 작품 ''뉴스 읽기''를 선보였다.[17]

해프닝은 프랑스에서는 1960년대부터 시인 장 자크 르벨을 중심으로, 체코에서는 밀란 크니자크를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에서는 1950년대 초 구체미술협회의 활동을 해프닝의 한 형태로 보기도 하며, 초월홀, 앙그라와의 연관성도 주목받는다. 2010년대부터는 패션 집단 The HAPPENING이 게릴라적인 기법을 사용한 패션쇼를 전개하고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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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적 A Critical Introduction to Twentieth-Century American Drama: Volume 3 Beyond Broadway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09-05
[3] 서적 Off Limits: Rutgers University and the Avant-Garde, 1957–1963 Rutgers University Press
[4] 서적 The New Media Reader https://books.google[...] MIT Press 2003-02-14
[5] 서적 Happenings: An Illustrated Anthology E. P. Dutton & Co., Inc.
[6] 서적 The Theatre of Protest in America Harden House 1972
[7] 서적 Oxford Dictionary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Oxford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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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서적 M.C. Richards : centering : life + art -- 10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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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적 Happenings: An Illustrated Anthology E. P. Dutton & Co.,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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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서적 Red Grooms: A Retrospective 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
[15] 뉴스 The world according to Yayoi Kusama http://www.ft.com/cm[...] 2012-01-20
[16] 웹사이트 Scream Against the Sky: Yayoi Kusama's Self-Obliteration, avant garde weirdness, 1967 http://dangerousmind[...] 2013-07-15
[17] 웹사이트 HAPPENINGS AND PERFORMANCES http://www.marta-min[...]
[18] 서적 Essays on the Blurring of Art and Life: Expanded Edition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
[19] 서적 Theater of the Oppressed
[20] 서적 Stich, Cantz
[21] 서적 Immersive Ideals / Critical Distances LAP Lambert Academic Publishing
[22] 서적 Cultural Revolution?: The Challenge of the Arts in the 1960s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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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간행물 Yoko Ono's ''Cut Piece'': From Text to Performance and Back Again http://kevinconcanno[...]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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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웹사이트 Corporate Commands http://www.ikatun.or[...] kanarinka proj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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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잡지 The Battle for Attention https://www.newyorke[...] 2024-05-06
[31] 서적 In Search of The Third Bird: Exemplary Essays from The Proceedings of ESTAR(SER) https://mitpress.mit[...] Strange Attractor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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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웹사이트 Manifesto — OBJECT:PARADISE https://objectpa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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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웹사이트 sandra1985adisa@yahoo.com http://www.khtt.net/[...] 2017-09-25
[38] 웹사이트 Music News & Concert Reviews https://www.jambase.[...] 2015-03-15
[39] 서적 A Critical Introduction to Twentieth-Century American Drama: Volume 3 Beyond Broadway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2-11-29
[40] 문서 木村
[41] 웹사이트 アラン・カプロー公式ウェブサイト http://www.allankapr[...] 2022-11-29
[42] 웹사이트 ジョン・ケージ・オフイシャル https://johncage.org[...] 2022-11-29
[43] 문서 수玉무늬의 아트로 유명한 전위예술가
[44] 문서 바닥이나, YES 등을 소재로 한 아트 작품. 음악에서는 「여성 상위 만세」가 일본에서 소히트 한 적도 있다. 존 레논과의 음악 활동이나 평화 운동은 유명하다
[45] 웹인용 Jim Dine - Terri Maxfield Lipp http://tmlarts.com/j[...]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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