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 (1916년)
1. 개요
홍기(1916년)는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 최규하의 부인이다. 1916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1935년 최규하와 결혼하여 말레이시아 대사 부인, 외무부 장관 부인, 국무총리 부인을 거쳐 1979년 10·26 사건 이후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영부인이 되었다. 영부인 시절 요양원과 고아원을 지원하며 외부 활동을 자제했고, 남편의 청렴함을 돕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0년 최규하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2004년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망했다. 평생 검소한 생활을 실천했으며, 2남 1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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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
대한민국 제4공화국
대한민국 제4공화국은 1972년 유신으로 시작하여 박정희 대통령 사망까지 존속하며 유신 헌법을 통해 강력한 대통령 권한, 긴급조치, 민주화 운동 탄압,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 등을 특징으로 가진 공화국이다. -
최규하 -
최규하 정부
최규하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로 실권을 상실하고 전두환에게 정권을 넘겨주며 종말을 맞이했다. -
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 -
김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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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대통령 배우자 -
육영수
육영수는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이자 퍼스트레이디로서 사회복지 사업과 민원 해결에 힘썼으며 육영재단 설립 등으로 아동 복지 증진에 기여했으나, 1974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저격으로 사망했다. -
한국 사람에 관한 -
한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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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에 관한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홍기는 1916년 충청북도 충주군에서 태어났다. 1935년 최규하와 결혼했다. 1964년 최규하가 말레이시아 대사로 임명되어 함께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였다. 1967년 최규하는 외무부 장관, 1975년 대한민국 국무총리로 발탁되었다.
1979년 10·26 사건 직후 최규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1980년 8월 16일 최규하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하였다. 이후 홍기는 2004년 7월 20일 알츠하이머병으로 투병 중 서거하였다.
2.1. 초기 생애 (1916년 ~ 1935년)
홍기는 1916년 충청북도 충주(당시 행정 구역은 충주군 주내면)에서 아버지 홍병순과 어머니 권재희 사이의 세 딸 중 장녀로 태어났다. 저명한 중국 학자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성인이 되어 중국어를 배웠다. 이로 인해 정규 교육 기관에 다니지 않았다.
1935년, 세 살 연하의 최규하와 중매로 결혼하였다.
2.2. 결혼 생활과 해외 체류 (1935년 ~ 1979년)
1935년 11월에 최규하와 중매로 결혼했다. 최규하가 1935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과 만주국에서 유학하는 동안에는 시댁에서 생활하였다.
1964년 최규하가 말레이시아 주재 대한민국 대사로 임명되면서, 쿠알라룸푸르로 함께 이주하여 생활하였다. 이 기간 동안 말레이시아 대사의 부인으로서 영어를 공부하고 사교 활동을 하였다.
1967년 최규하가 외무부 장관으로, 1975년에는 대한민국 국무총리로 발탁되면서, 홍기는 남편의 직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항상 드러나지 않게 내조하였다. 국무총리 부인 시절에도 직접 부엌일과 빨래를 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가정부를 고용하지 않고 직접 가사를 했으며, 자택의 샘물에 펌프를 설치하여 손빨래를 했다. 세탁기를 권유받자 "손으로 하는 세탁도 믿을 수 없는데, 어떤 기계에 맡기겠어요"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한, 사 온 반찬을 꼼꼼하게 가계부에 기록하는 등 알뜰한 모습을 보였다.
2.3. 영부인 시절 (1979년 ~ 1980년)
1979년 10·26 사건으로 남편 최규하가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대한민국 영부인이 되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단 기간인 약 8개월 동안 영부인으로 재임하였다. 청와대 생활 동안 요양원과 고아원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였고, 외부 활동은 자제하였다. 주변 사람들은 홍기를 공정하고 원칙을 중시하며, 남편의 청렴함을 돕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한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 이후, 1980년 8월 최규하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홍기 또한 영부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2.4. 퇴임 이후와 사망 (1980년 ~ 2004년)
최규하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홍기는 가족과 함께 조용히 생활하며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만년에 알츠하이머병을 앓았으며, 최규하는 아내를 간호하는 동시에 자신의 건강도 챙겼다. 최규하는 종종 서울대학교병원을 방문했는데, 그곳에 홍기가 입원해 있었다. 그녀는 전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친분이 있었다.
2004년 7월 20일, 홍기는 알츠하이머병으로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녀의 유해는 처음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년 후 남편 최규하가 사망하자, 그녀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어 남편 옆에 합장되었다.
4. 평가
홍기는 평생 검소하고 성실하게 생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정부를 두지 않고 직접 가사를 돌보았으며, 손수 빨래를 하는 등 검소하게 생활하였다. 남편 최규하의 공직 생활을 묵묵히 내조하며, 특히 그의 청렴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홍기를 공정하고 원칙을 중시하는 인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