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서울)
1. 개요
효자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동으로, 조선 선조 때 학자 조원의 아들 형제의 효성을 기려 '효자'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되었으나 광복 후 다시 효자동으로 바뀌었다. 1955년 창성동과 청송동을 통합하여 행정동을 이루었으며, 2008년 청운동과 통합되어 청운효자동에 속하게 되었다. 주요 명소로는 쌍홍문 터와 신익희 가옥이 있으며,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 한글 | 효자동 |
|---|---|
| 한자 | 孝子洞 |
| 로마자 표기 | Hyoja-dong |
| 국가 | 대한민국 |
|---|---|
| 수도 | 서울특별시 |
| 면적 | 0.90km² |
| 인구 (2001년) | 12250명 |
| 유래 | 효자동 이름의 유래 |
|---|---|
| 관련 링크 | 종로구청 효자동 소개 (보존된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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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폐지 -
대한민국 재정경제부
대한민국 재정경제부는 1998년 재정경제원을 개편하여 신설된 중앙행정기관으로, 부총리급 장관이 대한민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으며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을 산하 외청으로 두었다. -
2008년 폐지 -
국민중심당
국민중심당은 2006년 자유민주연합 탈당파 의원들이 심대평, 신국환 공동대표 체제로 창당한 중도 정당으로, 중도 노선을 표방했으나 저조한 선거 성적과 후보 사퇴 등의 어려움 끝에 2008년 자유선진당과 합당하여 해산되었다. -
1914년 설치 -
이촌동
이촌동은 서울 용산구에 위치하며, 한강변 모래벌판에서 이주한 주민들에 의해 "옮겨진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졌으며, 동부이촌동은 일본인 거주 지역, 서부이촌동은 개발이 진행 중인 지역이고, 한강공원, 국립중앙박물관 등 주요 시설과 이촌역을 통해 편리한 교통 환경을 제공한다. -
1914년 설치 -
담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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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법정동 -
청운동
청운동은 청풍계와 백운동에서 유래된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행정 구역으로, 조선 초기에는 한성부 북부 지역이었으며, 서울청운초등학교, 청와대, 경복궁 등을 포함하고 최규식 경무관 동상 등의 기념물과 장의문이 위치해 있다. -
서울 종로구의 법정동 -
삼청동
삼청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법정동이자 행정동으로, 이름의 유래는 삼청전 또는 산, 물, 사람의 맑음에서 비롯되었으며, 조선시대 진장방 지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는 주요 기관과 유적이 위치하고 안국역이 인근에 있다.
2. 역사
효자동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조원의 아들들인 희신과 희철 형제가 효자였던 것에서 유래한 쌍효잣골, 효곡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조선 시대에는 환관들이 많이 살았고, 그 흔적이 현재에도 남아 있다.
조선 초 한성부 북부 순화방 지역이었으며, 경복궁 근처에 위치하여 환관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일제강점기 1914년 여러 지역을 통합하여 효자동이 설치되었고, 1936년 일본식 명칭인 효자정으로 바뀌었다가 1946년 광복 이후 효자동으로 다시 변경되었다. 1943년부터 종로구에 속하게 되었다.
1955년 창성동과 함께 행정동 청송동(廳松洞)을 이루었고, 1970년에는 백송동(白松洞)이 더해져 행정동 효자동이 설치되었다. 2008년부터는 행정동 효자동과 청운동이 합쳐진 청운효자동에 속하게 되었다.
2.1. 조선 시대
효자동(孝子洞)이라는 이름은 조선 선조 때 학자 조원의 아들인 희신과 희철 형제가 효자였다 하여 쌍효잣골 또는 효곡(孝谷)이라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환관들이 많이 살던 곳으로 전해지며, 현대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초 한성부 북부 순화방 지역이었으며, 경복궁 근처에 있어 환관들의 집단 거주지였다. 환관 중에는 궁 안에서 사는 장번도 있었지만, 출퇴근하는 출입번도 있었다. 출입번의 경우 처첩을 거느리고 호화롭게 사는 사람이 많았다.
2.2. 일제강점기
1914년 백구동(白狗洞) 일부, 동곡(東谷) 일부, 육상궁동(毓祥宮洞) 일부, 장동(壯洞) 일부, 효곡(孝谷), 온정동(溫井洞) 일부, 신교(新橋) 일부를 합쳐 효자동이 설치되었다. 1936년 동(洞)을 일본식인 정(町)으로 고쳤으나 1946년 다시 동으로 되돌렸다. 1943년부터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에 속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집단 거주지였던 원효로와 조선총독부 관사가 있던 효자동을 잇는 전차 노선이 지금의 효자로에 개설되었다.
2.3. 해방 이후
1914년 일제가 백구동(白狗洞) 일부, 동곡(東谷) 일부, 육상궁동(毓祥宮洞) 일부, 장동(壯洞) 일부, 효곡(孝谷), 온정동(溫井洞) 일부, 신교(新橋) 일부를 합쳐 효자동을 설치하였다. 1936년 동(洞)을 일본식인 정(町)으로 개칭하였으나 1946년 다시 동으로 되돌려졌다. 1943년부터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에 배속되었다.
1955년 창성동과 함께 행정동 청송동(廳松洞)을 이루게 되었고, 1970년에는 여기에 백송동(白松洞)이 더해진 행정동 효자동이 설치되었다. 2008년부터 행정동 효자동과 청운동을 합하여 설치한 청운효자동에 속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집단 거주지였던 원효로와 조선총독부의 관사가 있었던 효자동을 잇는 전차 노선이 지금의 효자로에 개설되었다.
3.1. 쌍홍문(雙紅門) 터
효성이 지극한 조원의 아들들을 기려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세웠던 터로, 효자동이라는 동명의 유래가 되었다.
3.2. [[해공 신익희 가옥|신익희 가옥]]
신익희가 1954년 8월부터 1956년 5월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 효자동 164-2번지에 있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4. 행정 구역
'효자'(孝子)라는 이름은 조선 선조 때 학자 조원의 아들인 형제 희신과 희철이 효자였다 하여 쌍효잣골 또는 효곡(孝谷)이라 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백구동(白狗洞) 일부, 동곡(東谷) 일부, 육상궁동(毓祥宮洞) 일부, 장동(壯洞) 일부, 효곡(孝谷), 온정동(溫井洞) 일부, 신교(新橋) 일부가 합쳐져 효자동이 설치되었다. 1936년 동(洞)을 일본식인 정(町)으로 개칭하였으나 1946년 동으로 되돌려졌다. 1943년부터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에 배속되었다.
1955년 창성동과 함께 행정동 청송동(廳松洞)을 이루게 되었고, 1970년에는 여기에 백송동(白松洞)이 더해진 행정동 효자동이 설치되었다. 2008년부터 행정동 효자동과 청운동을 합하여 설치한 청운효자동에 속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