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운동장
1. 개요
효창운동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 규격 축구 경기장으로, 1959년 6월 AFC 아시안컵 유치를 계기로 효창공원에 건설되었다. 1960년 10월 12일 개장했으며, 같은 달 14일 1960년 AFC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완공 당시 천연 잔디 경기장이었으나, 1983년 인조잔디, 조명탑 등의 개보수 공사를 거쳤다. 효창운동장 건립 과정에서 독립운동가 묘역 이장 논란이 있었으며, 1960년 AFC 아시안컵, 1962년 FIFA 월드컵 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 등 주요 경기가 열렸다.
| 이름 | 효창운동장 |
|---|---|
| 원어 이름 | Hyochang Stadium |
| 위치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원로 177-15 (효창동 3번지) |
| 기공 | 1959년 11월 19일 |
| 건설 기간 | 11개월 |
| 개장 | 1960년 10월 12일 |
| 보수 | 1983년 8월 29일 (인조잔디 설치) 2008년 12월 19일 (인조잔디 교체) |
| 소유 | 서울특별시청 |
| 운영 | 서울특별시축구협회 |
| 건설 비용 | 8억 8천 5백만 원 |
| 표면 | 인조잔디 (필드), 우레탄 (트랙) |
| 규모 | 필드: 105 × 69 m 트랙: 400 m x 4레인 |
| 좌석 | 15,194석 |
| 수용 인원 | 18,000명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홈 경기장 | 서울 유나이티드 FC 서울 시청 아마조네스 WFC |
|---|---|
| 개최 대회 | 1960년 AFC 아시안컵 2019년 전국체육대회 K5리그 서울 K6리그 서울 WK리그 U리그1 K3리그 어드밴스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67년) |
| 운영 주체 | 서울시설공단 |
|---|---|
| 건설 시작 | 1959년 11월 19일 |
| 개장일 | 1960년 10월 12일 |
| 보수 | 1983년 |
| 인조잔디 교체 | 2008년 12월 19일 |
| 건설비 | 2억 원 |
| 사용팀 (과거) | 서울 유나이티드 FC (2009–2010) 서울시청 WFC (2015–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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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여자 축구단 -
서울 시청 아마조네스 WFC
서울 시청 아마조네스 WFC는 서울특별시를 연고로 하는 여자 축구단으로, WK리그에 참가하며 박은선과 같은 유명 선수를 배출했고, 2013년 WK리그 준우승과 2014년 전국체육대회 우승 등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2020년부터 유영실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다. -
1967년 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 경기장 -
스타디움 메르데카
스타디움 메르데카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역사적인 경기장으로, 말라야 연방 독립 선언과 말레이시아 연방 결성 선포가 이루어진 곳이며, 한때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었고, 현재는 국가 유산 건물로 지정되어 독립 당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
서울 노원 유나이티드 FC -
노원마들스타디움
노원마들스타디움은 서울 노원구에 위치하며 지하철 7호선 중계역과 버스 노선을 통해 대중교통 접근성이 용이한 스포츠 시설이다. -
서울 노원 유나이티드 FC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위치한 서울올림픽주경기장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의 주경기장으로 건설되었으며, 현재는 축구 경기, 육상 대회, 콘서트 등이 개최되고, 시설 노후화로 인해 2025년까지 리모델링될 예정이다.
2. 역사
본래 1956년에 효창공원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고 그 자리에 운동장 건립할 계획을 수립했지만, 사회 기관 단체, 여론, 국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959년 6월 AFC 아시안컵의 대한민국 유치가 확정되자,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효창공원에 축구 경기장을 짓도록 지시한다. 한달 뒤 1959년 7월 14일 이기붕 대한체육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 축구 경기장 건설 위원회가 구성된 후 효창공원 내 7,822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959년 11월 19일 축구장 건설에 들어갔다. 경기장은 건물형 구조물이 아니라 언덕을 깎아내고 흙을 돋우어 관중석을 설치하는 설계법으로 공사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1960년 10월 12일 개장 기념으로 경평 OB전이 열렸고, 그 해 10월 14일 1960년 AFC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완공 당시는 천연 잔디 경기장이었으나 이 후 잔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표면이 흙바닥과 같은 상태가 되었고, 1983년 4월 1일 인조잔디, 조명탑, 조명 시설 등의 개보수 공사 기공식을 하였으며 10월 3일 완공식을 가지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를 초청해 4개국 청소년 축구 대회를 열었다.
2.1. 건설 배경 및 초기 역사 (1956년 ~ 1960년)
1956년에 효창공원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고 그 자리에 운동장 건립할 계획을 수립했지만, 사회 기관 단체, 여론, 국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959년 6월 AFC 아시안컵의 대한민국 유치가 확정되자,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효창공원에 축구 경기장을 짓도록 지시하였다. 한달 뒤 1959년 7월 14일 이기붕 대한체육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 축구 경기장 건설 위원회가 구성된 후 효창공원 내 7,822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959년 11월 19일 축구장 건설에 들어갔다. 경기장은 건물형 구조물이 아니라 언덕을 깎아내고 흙을 돋우어 관중석을 설치하는 설계법으로 공사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1960년 10월 12일 개장 기념으로 경평 OB전이 열렸고, 그 해 10월 14일 1960년 AFC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2.2. 개장 및 1960년 AFC 아시안컵 개최
1956년 효창공원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고 그 자리에 운동장 건립할 계획을 수립했지만, 사회 기관 단체, 여론, 국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1959년 6월 AFC 아시안컵의 대한민국 유치가 확정되자,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효창공원에 축구 경기장을 짓도록 지시하였다. 한달 뒤 1959년 7월 14일 이기붕 대한체육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 축구 경기장 건설 위원회가 구성된 후 효창공원 내 7,822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959년 11월 19일 축구장 건설에 들어갔다. 경기장은 건물형 구조물이 아니라 언덕을 깎아내고 흙을 돋우어 관중석을 설치하는 설계법으로 공사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1960년 10월 12일 개장 기념으로 경평 OB전이 열렸고, 그 해 10월 14일 1960년 AFC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완공 당시는 천연 잔디 경기장이었으나 이 후 잔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표면이 흙바닥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2.3. 개보수 및 현재 (1961년 ~ 현재)
1959년 6월 AFC 아시안컵의 대한민국 유치가 확정되자,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효창공원에 축구 경기장을 짓도록 지시하였다. 한달 뒤 1959년 7월 14일 이기붕 대한체육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제 축구 경기장 건설 위원회가 구성된 후 효창공원 내 7,822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959년 11월 19일 축구장 건설에 들어갔다. 경기장은 건물형 구조물이 아니라 언덕을 깎아내고 흙을 돋우어 관중석을 설치하는 설계법으로 공사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1960년 10월 12일 개장 기념으로 경평 OB전이 열렸고, 그 해 10월 14일 1960년 AFC 아시안컵이 개최되었다. 완공 당시는 천연 잔디 경기장이었으나 이 후 잔디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표면이 흙바닥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1983년 4월 1일 인조잔디, 조명탑, 조명 시설 등의 개보수 공사 기공식을 하였으며 10월 3일 완공식을 가지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를 초청해 4개국 청소년 축구 대회를 열었다.
3. 특징
효창운동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 규격 축구 경기장이다. 완공 당시 축구장을 둘러싼 타원형의 관중석으로 구성된 축구 전용 경기장이었지만, 축구장을 둘러싼 보행주로 때문에 관중석에서의 시야는 종합운동장에 비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현재는 400m 육상 트랙이 설치되어 있다.
4.
4.1. 독립운동가 묘역 이장 논란
1956년 정부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묘가 있는 효창공원에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6월 9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김두한 의원은 "선열에 대해서는 물질보다 추모의 정신으로 보답해야 하는 만큼 우선 정부는 분묘에 대한 모든 절차를 결정한 후에 운동장 설비공사에 착수했어야 할 것이라."라고 말하고 "효창공원의 선열 묘지는 성묘이다. 이 성묘를 함부로 파서 헐어 트리는 것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친 선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피력하였다. 공사중지건의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 역시 골프장을 만들려는 공사를 시도했지만 유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효창공원에 반공투사 위령탑, 김구의 묘 옆에 노인회관을 세웠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사업을 시작하고 김구, 안중근 기념관을 남산에 세우기도 했다.
4.2. 박정희 정권의 효창공원 개발 시도
1956년 정부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묘가 있는 효창공원에 다른 곳으로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6월 9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김두한 의원은 "선열에 대해서는 물질보다 추모의 정신으로 보답해야 만큼 우선 정부는 분묘에 대한 모든 절차를 결정한 후에 운동장 설비공사에 착수했어야 할 것이라."라고 말하고 "효창공원의 선열 묘지는 성묘이다. 이 성묘를 함부로 파서 헐어 트리는 것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친 선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피력하였다. 공사중지건의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 역시 골프장을 만들려는 공사를 시도했지만 유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효창공원에 반공투사 위령탑, 김구의 묘 옆에 노인회관을 세웠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사업을 시작하고 김구 안중근 기념관을 남산에 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