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이 사부로
1. 개요
히라이 사부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유격수와 2루수로 활약했으며, 지도자 및 스카우트 경력도 가지고 있다. 도쿠시마 상업학교를 거쳐 메이지 대학을 졸업한 후, 한큐 브레이브스, 니시닛폰 파이레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에는 3년 연속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고, 팀의 3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57년 심장판막증으로 은퇴한 후, 긴테쓰 버펄로스 코치와 한신 타이거스 스카우트 및 코치를 역임했다. 뛰어난 타격과 수비 능력을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았으며, 1969년 4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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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이름 | 히라이 사부로 |
|---|---|
| 원어 이름 | ja: 平井 三郎 |
| 로마자 표기 | Saburo Hirai |
| 출생일 | 1923년 9월 4일 |
| 사망일 | 1969년 7월 23일 (향년 45세) |
| 국적 | 일본 |
| 출생지 | 도쿠시마현 도쿠시마시 |
| 신장 | 167cm |
| 체중 | 60kg |
| 수비 위치 | 유격수 |
| 투구 | 우투 |
| 타석 | 우타 |
| 프로 입단 연도 | 1948년 |
| 첫 출장 | 1948년 |
| 마지막 경기 | 1957년 |
| 아마추어 | 도쿠시마 상업학교 메이지 대학 젠도쿠시마 |
|---|---|
| 프로 | 한큐 브레이브스 (1948년 ~ 1949년) 니시닛폰 파이레츠 (195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1951년 ~ 1957년) |
| 코치 | 긴테쓰 버펄로 (1959년 ~ 1961년) 한신 타이거스 (1963년 ~ 1964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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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출생 -
잭 킬비
잭 킬비는 미국의 전자 공학 기술자이자 집적 회로의 공동 발명가로, 1958년 단일 반도체 재료에 회로 부품을 집적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1959년 최초의 집적 회로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으며,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1923년 출생 -
밥 바커
밥 바커는 《진실 혹은 결과》와 《정가는 얼마일까요》를 진행하며 큰 인기를 얻은 미국의 텔레비전 게임 쇼 진행자이자, 은퇴 후 동물 권리 운동가로 활동하며 동물 보호를 위한 기부와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일본 프로 야구 유격수 -
세이케 마사카즈
세이케 마사카즈는 한신, 세이부, 야쿠르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세이부 시절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으며 은퇴 후 여러 팀에서 코치 및 감독을 거쳐 현재 하나마우이 야구부 코치로 활동 중인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이다. -
일본 프로 야구 유격수 -
요시다 요시오
요시다 요시오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한신 타이거스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뛰어난 수비와 공격 능력을 인정받아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고, 은퇴 후에는 한신 타이거스 감독을 맡아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프랑스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
조성민 (야구인)
조성민은 일본 프로 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투수로 활동했으나 부상 후 한국 프로 야구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 후 야구 해설가와 코치로 활동했으며, 배우 최진실과의 결혼과 이혼, 사망 후 사회적 논란을 겪다 사망했다. -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
후지타 모토시
후지타 모토시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하며 리그 MVP를 2연패하고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으며,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선수 경력
도쿠시마 상업학교 시절 고시엔 대회에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춘계·하계 대회 3차례 출전했다. 동급생으로는 쓰타 후미야가 있다. 당시 도쿠시마 상업학교는 이나하라 유키오 감독이 이끌었으며,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했다. 츠타 후미야는 훈련 참관에 겁을 먹어 야구부를 피해 테니스부에 들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고, 은사인 이나하라 유키오가 감독을 맡은 아마추어 야구팀 젠도쿠시마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1946년과 1947년에는 2년 연속으로 도시 대항에 출전했다. 당시 젠도쿠시마는 프로화 움직임이 있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으며, 하야시, 츠타 후미야 등이 선수로 있었다.
1948년 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하여 곧바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타율 0.279(리그 14위)를 기록하며 팀 내 타격 1위에 올랐다.
1950년 센트럴·퍼시픽 양대 리그가 출범하면서 우다카 이사오의 영입으로 미야자키 다케시, 히비노 다케시, 나가토시 유키치와 함께 신규 구단인 니시닛폰 파이레츠로 이적했다. 니시닛폰에서 1번 타자 겸 유격수로 활약하며 타율 0.309(리그 11위)를 기록했다. 이 해에는 한 시즌에 2번 20경기 이상 연속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NPB 1군 공식전에서 히라이 외에 이치로, 키쿠치 료스케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히라이 사부로는 1950년 니시닛폰 파이레츠에 입단하여 1번 타자 겸 유격수로서 활약했지만, 같은 해 니시닛폰이 니시테쓰 클리퍼스와 합병하게 되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선수 쟁탈전이 벌어졌다. 당시 요미우리는 주전 유격수였던 시라이시 가쓰미를 히로시마 카프로 이적시킨 후 유격수 자리에 공백이 생겨 히라이의 영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결국 히라이는 요미우리로 이적하게 되었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치바 시게루와 키스톤 콤비를 이루어 요미우리의 3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히라이는 3년 연속 베스트 나인(유격수 부문)에 선정되었고,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1953년에는 '히라이 마사아키'(平井正明일본어)에서 '히라이 사부로'로 개명하고 1번 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0.291(리그 10위), 97득점(리그 1위)을 기록했다. 같은 해 3월 미국 샌타마리아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범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쳐 일본 프로 야구팀 최초로 메이저 리그 팀 상대 승리를 이끌었다.
1954년 히로오카 다쓰로가 입단하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1956년부터는 2루수로 전향했다. 1957년 심장판막증으로 은퇴했다.
2.1. 프로 입단 전
도쿠시마 상업학교 시절 고시엔 대회에 1939년부터 1940년까지 춘계·하계 대회 3차례 출전했다. 동급생으로는 쓰타 후미야가 있다. 당시 도쿠시마 상업학교는 이나하라 유키오 감독이 이끌었으며,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했다. 츠타 후미야는 훈련 참관에 겁을 먹어 야구부를 피해 테니스부에 들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고, 은사인 이나하라 유키오가 감독을 맡은 아마추어 야구팀 젠도쿠시마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1946년과 1947년에는 2년 연속으로 도시 대항에 출전했다. 당시 젠도쿠시마는 프로화 움직임이 있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으며, 하야시, 츠타 후미야 등이 선수로 있었다.
2.2. 한큐 브레이브스 (1948~1949)
1948년 한큐 브레이브스에 입단하여 곧바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타율 0.279(리그 14위)를 기록하며 팀 내 타격 1위에 올랐다. 1949년에는 3루타 11개로 리그 1위를 기록했다.
2.3. 니시닛폰 파이레츠 (1950)
1950년 센트럴·퍼시픽 양대 리그가 출범하면서 우다카 이사오의 영입으로 미야자키 다케시, 히비노 다케시, 나가토시 유키치와 함께 신규 구단인 니시닛폰 파이레츠로 이적했다. 니시닛폰에서 1번 타자 겸 유격수로 활약하며 타율 0.309(리그 11위)를 기록했다. 이 해에는 한 시즌에 2번 20경기 이상 연속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NPB 1군 공식전에서 히라이 외에 이치로, 키쿠치 료스케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2.4. 요미우리 자이언츠 (1951~1957)
히라이 사부로는 1950년 니시닛폰 파이레츠에 입단하여 1번 타자 겸 유격수로서 활약했지만, 같은 해 니시닛폰이 니시테쓰 클리퍼스와 합병하게 되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선수 쟁탈전이 벌어졌다. 당시 요미우리는 주전 유격수였던 시라이시 가쓰미를 히로시마 카프로 이적시킨 후 유격수 자리에 공백이 생겨 히라이의 영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결국 히라이는 요미우리로 이적하게 되었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며 치바 시게루와 키스톤 콤비를 이루어 요미우리의 3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히라이는 3년 연속 베스트 나인(유격수 부문)에 선정되었고,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1953년에는 '히라이 마사아키'(平井正明)에서 '히라이 사부로'로 개명하고 1번 타자로 활약하며 타율 0.291(리그 10위), 97득점(리그 1위)을 기록했다. 같은 해 3월 미국 산타마리아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시범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쳐 일본 프로 야구팀 최초로 메이저 리그 팀 상대 승리를 이끌었다.
1954년 히로오카 다쓰로가 입단하면서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1956년부터는 2루수로 전향했다. 1957년 심장판막증으로 은퇴했다.
3. 지도자 및 스카우트 경력
1959년 긴테쓰 버펄로 감독으로 취임한 치바 시게루의 권유로 내야 수비 코치로 부임했고 1961년 시즌 종료 후 지바와 함께 퇴단했다. 1962년 한신 타이거스의 스카우트로 발탁돼 쓰지 야스히코 등을 영입시켰다. 이듬해 1963년부터 2년간 한신에서 코치를 맡았고 1965년에는 다시 스카우트로 복귀했다.
3.1. 긴테쓰 버펄로스 코치 (1959~1961)
1959년에 긴테쓰 버펄로 감독으로 취임한 치바 시게루의 권유로 긴테쓰 1군 내야 수비 코치로 부임했다. 2군 수석 코치가 된 1961년을 마지막으로 치바와 함께 긴테쓰를 퇴단했다.
3.2. 한신 타이거스 스카우트 및 코치 (1962~1965)
1962년 한신 타이거스의 스카우트로 발탁되어 쓰지 야스히코 등을 영입했다. 이듬해인 1963년부터 1964년까지 한신에서 코치를 맡았다. 1965년에는 다시 스카우트로 복귀했다.
4. 은퇴 이후
한신에서 퇴단한 후에는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현역 시절 등번호를 본뜬 찻집 "에이트"를 경영했다. 1969년 7월 23일, 감기가 악화된 것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45세였다.
5. 선수로서의 특징
히라이 사부로는 뛰어난 타격과 안정적인 수비를 겸비한 유격수였다. 1976년 당시 미즈하라 시게루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역대 베스트 나인의 유격수로 히라이를 꼽았다. 당시 유격수는 수비가 중요했고, 타격은 타율 2할 5푼을 기록하면 합격으로 여겨졌지만, 히라이는 평범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스윙으로 통산 타율 2할 7푼 7리를 기록하며, 타격이 가능한 유격수의 첫 번째 사례로 꼽혔다.
지바 시게루는 히라이와의 콤비네이션과 호흡은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대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히라이의 2루수 송구가 매우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지바는 1루수를 보지 않고 던지는 플레이가 가능했다고 한다. 벳쇼 타케히코와 콤비를 이룬 2루 주자 견제 플레이는 절묘하여, 노 사인을 통해 견제하여 종종 2루 주자를 아웃시켰다. 특히 1952년에는 시즌 8회나 견제사를 기록했다.
6. 일화
히라이 사부로는 프로 야구 원정에서 침대차가 없는 야간 열차를 이용할 때 차량 통로에서 자야 하는 고충을 겪었다. 어느 날, 히라이는 돗자리를 준비해 열차에 탔고, 밤이 되자 돗자리를 펼쳐 그 위에서 잠을 잤다. 이를 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들은 다음 원정부터 모두 배트 케이스에 돗자리를 말아 가져갔다고 한다. 히라이는 돗자리 위에 유니폼을 펼쳐 이불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미일 야구에서 홈런을 친 날 밤에는 긴자에 가지 않고, 신주쿠 서쪽 출구의 "호시노"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원정 기간 동안 선수들은 자주 마작을 즐겼지만, 히라이는 마작을 전혀 하지 못했음에도 동료들이 마작을 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또한 식사 시간에는 팀 동료들과 함께 식사하지 않고, 자신의 상을 가지고 부엌으로 가서 여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고 한다.
7. 상세 정보
7.2. 개인 기록
통산 1000경기 출장은 1957년 8월 13일에 달성(역대 41번째)했다. 올스타전에 3회(1951년 ~ 1953년) 출장했다.
7.3. 연도별 타격 성적
| 연 도 | 소 속 | 경 기 | 타 석 | 타 수 | 득 점 | 안 타 | 2 루 타 | 3 루 타 | 홈 런 | 루 타 | 타 점 | 도 루 | 도 루 자 | 희 생 번 | 희 생 플 | 볼 넷 | 고 4 | 사 구 | 삼 진 | 병 살 타 | 타 율 | 출 루 율 | 장 타 율 | O P S |
|---|---|---|---|---|---|---|---|---|---|---|---|---|---|---|---|---|---|---|---|---|---|---|---|---|
| 1948년 | 한큐 | 123 | 487 | 458 | 51 | 128 | 24 | 9 | 2 | 176 | 43 | 26 | 7 | 0 | -- | 26 | -- | 1 | 16 | -- | .279 | .320 | .384 | .704 |
| 1949년 | 120 | 528 | 476 | 69 | 132 | 18 | 11 | 6 | 190 | 43 | 18 | 19 | 3 | -- | 46 | -- | 3 | 26 | -- | .277 | .345 | .399 | .744 | |
| 1950년 | 니시닛폰 | 103 | 476 | 437 | 76 | 135 | 15 | 3 | 13 | 195 | 56 | 28 | 9 | 2 | -- | 37 | -- | 0 | 27 | 8 | .309 | .363 | .446 | .809 |
| 1951년 | 요미우리 | 112 | 511 | 471 | 80 | 132 | 20 | 7 | 7 | 187 | 63 | 27 | 10 | 8 | -- | 31 | -- | 1 | 28 | 10 | .280 | .326 | .397 | .723 |
| 1952년 | 120 | 489 | 427 | 63 | 118 | 19 | 6 | 4 | 161 | 52 | 21 | 7 | 15 | -- | 44 | -- | 3 | 26 | 4 | .276 | .348 | .377 | .725 | |
| 1953년 | 120 | 533 | 471 | 97 | 137 | 23 | 4 | 11 | 201 | 65 | 21 | 12 | 5 | -- | 55 | -- | 2 | 27 | 9 | .291 | .367 | .427 | .794 | |
| 1954년 | 79 | 226 | 206 | 21 | 52 | 9 | 4 | 0 | 69 | 21 | 8 | 1 | 3 | 1 | 15 | -- | 1 | 20 | 4 | .252 | .306 | .335 | .641 | |
| 1955년 | 111 | 410 | 353 | 47 | 99 | 17 | 0 | 5 | 131 | 32 | 14 | 10 | 24 | 3 | 27 | 0 | 2 | 35 | 3 | .280 | .335 | .371 | .706 | |
| 1956년 | 93 | 278 | 232 | 30 | 51 | 8 | 2 | 3 | 72 | 29 | 5 | 5 | 18 | 1 | 26 | 0 | 1 | 20 | 6 | .220 | .301 | .310 | .612 | |
| 1957년 | 28 | 41 | 35 | 5 | 4 | 0 | 1 | 0 | 6 | 4 | 0 | 0 | 3 | 0 | 3 | 0 | 0 | 7 | 1 | .114 | .184 | .171 | .356 | |
| 통산 : 10년 | 1009 | 3979 | 3566 | 539 | 988 | 153 | 47 | 51 | 1388 | 408 | 168 | 80 | 81 | 5 | 310 | 0 | 14 | 232 | 45 | .277 | .337 | .389 | .727 | |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