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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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는 일본에서 개최된 국제 청소년 축구 대회로, 4개 도시(도쿄, 오미야, 고베, 요코하마)에서 경기가 진행되었다. 총 16개 팀이 참가했으며, 아르헨티나가 소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디에고 마라도나는 골든볼을, 라몬 디아스는 골든슈를 수상했으며, 대한민국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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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 [국제 축구 대회 정보]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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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정보 | |
대회 명칭 |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
연도 | 1979년 |
다른 명칭 | 1979 FIFA 와-루도유-스 센슈켄 |
개최국 | 일본 |
기간 | 1979년 8월 25일 – 1979년 9월 7일 |
참가 팀 수 | 16 |
참가 연맹 수 | 5 |
경기장 수 | 4 |
도시 수 | 4 |
결과 | |
우승 | 아르헨티나 |
우승 횟수 | 1 |
준우승 | 소비에트 연방 |
3위 | 우루과이 |
4위 | 폴란드 |
통계 | |
총 경기 수 | 32 |
총 득점 수 | 83 |
총 관중 수 | 454500 |
득점왕 | 라몬 디아스 (8골) |
최우수 선수 | 디에고 마라도나 |
페어 플레이 상 | 폴란드 |
대회 연혁 | |
이전 대회 | 1977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
다음 대회 | 198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
2. 개최 도시 및 경기장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는 다음 4개 도시에서 경기가 개최되었다.
총 16개 팀이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진출했다. AFC에서는 개최국 일본과 1978년 AFC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5위를 기록한 인도네시아, 그리고 대한민국이 본선에 진출했다.[1] CAF에서는 1979년 아프리카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팀 알제리와 준우승팀 기니가 참가했다.[1] CONCACAF에서는 1978년 CONCACAF U-20 토너먼트 우승팀 멕시코와 준우승팀 캐나다가 본선에 합류했다.[1]
3. 본선 진출 팀
CONMEBOL에서는 1979년 CONMEBOL U-20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팀 우루과이, 준우승팀 아르헨티나, 3위팀 파라과이가 본선 진출권을 획득했다.[2] UEFA에서는 1978년 UEFA U-18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팀 소련, 준우승팀 유고슬라비아, 3위팀 폴란드, 그리고 5위팀 스페인, 헝가리, 포르투갈이 본선에 진출했다.[1]
일본, 인도네시아, 알제리, 기니, 캐나다, 아르헨티나,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포르투갈은 이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3. 1. 대한민국 대표팀
4. 조별 리그
16개 팀이 4개 조로 나뉘어 조별 리그를 진행했다. 각 조 상위 2개 팀이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조별 리그를 통과하여 8강에 진출한 팀 | |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팀 |
; A조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A조에서는 스페인과 알제리가 8강에 진출했다. 개최국 일본은 멕시코와 승점, 골득실에서 동률을 이뤘으나, 다득점에서 밀려 탈락했다.
팀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차 |
---|---|---|---|---|---|---|---|---|
스페인/Españaes | 4 | 3 | 2 | 0 | 1 | 3 | 2 | +1 |
알제리/الجزائرar | 4 | 3 | 1 | 2 | 0 | 2 | 1 | +1 |
멕시코/Méxicoes | 2 | 3 | 0 | 2 | 1 | 3 | 4 | -1 |
일본/日本일본어 | 2 | 3 | 0 | 2 | 1 | 1 | 2 | -1 |
- 1979년 8월 25일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도쿄)에서 열린 멕시코와 알제리의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멕시코의 에르난데스가 전반 24분에 선제골을 넣었으나, 알제리의 야히가 후반 22분에 동점골을 기록했다.
- 같은 날,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 스페인의 경기에서는 스페인이 1-0으로 승리했다. 수니가가 후반 6분에 결승골을 넣었다.
- 1979년 8월 27일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스페인과 멕시코의 경기에서는 스페인이 2-1로 승리했다. 스페인의 호아킨과 가일이 각각 전반 8분과 후반 29분에 득점했고, 멕시코의 디아스는 후반 11분에 한 골을 만회했다.
- 같은 날,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알제리와 일본의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 1979년 8월 29일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스페인과 알제리의 경기에서는 알제리가 1-0으로 승리했다. 벤자발라가 전반 15분에 결승골을 넣었다.
- 같은 날,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 멕시코의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일본의 미즈누마가 후반 13분에 선제골을 넣었으나, 멕시코의 로메로가 후반 24분에 동점골을 기록했다.
; B조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B조에서는 아르헨티나와 폴란드가 8강에 진출했다. 아르헨티나는 디에고 마라도나와 라몬 디아스를 앞세워 조별 리그 3경기에서 10득점 1실점의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팀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차 |
---|---|---|---|---|---|---|---|---|
6 | 3 | 3 | 0 | 0 | 10 | 1 | +9 | |
4 | 3 | 2 | 0 | 1 | 9 | 4 | +5 | |
2 | 3 | 1 | 0 | 2 | 5 | 3 | +2 | |
0 | 3 | 0 | 0 | 3 | 0 | 16 | -16 |
- 1979년 8월 26일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의 경기에서는 파와시와 프란코프스키의 득점에 힘입어 폴란드가 2-0으로 승리했다.
- 같은 날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인도네시아의 경기에서는 디아스가 해트트릭, 마라도나가 2골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가 5-0 대승을 거두었다.
- 1979년 8월 28일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유고슬라비아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는 에스쿠데로의 결승골로 아르헨티나가 1-0으로 승리했다.
- 같은 날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인도네시아와 폴란드의 경기에서는 파와시가 2골, 야니에츠, 바란, 부다가 각 1골씩을 기록하며 폴란드가 6-0으로 대승했다.
- 1979년 8월 30일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폴란드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는 마라도나, 칼데론 (2골), 시몬이 득점을 기록하고, 폴란드의 파와시가 만회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가 4-1로 승리했다.
- 같은 날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유고슬라비아와 인도네시아의 경기에서는 스마이치 (2골), 밀로사블레비치 (2골), 믈리나리치가 득점하며 유고슬라비아가 5-0으로 승리했다.
; C조
팀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차 |
---|---|---|---|---|---|---|---|---|
파라과이/Selección juvenil de fútbol de Paraguayes | 4 | 3 | 2 | 0 | 1 | 6 | 1 | +5 |
포르투갈/Seleção Portuguesa de Futebol Sub-20pt | 3 | 3 | 1 | 1 | 1 | 2 | 3 | -1 |
대한민국 | 3 | 3 | 1 | 1 | 1 | 1 | 3 | -2 |
캐나다 | 2 | 3 | 1 | 0 | 2 | 3 | 5 | -2 |
1979년 8월 25일, 파라과이는 고베시 중앙 구기장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었다. 훌리오 세사르 로메로가 5분에 득점하였고, 로베르토 카바냐스가 70분과 74분에 득점하였다. 같은 날, 캐나다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었다.
1979년 8월 27일, 대한민국은 캐나다를 상대로 이태호의 63분 득점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날, 포르투갈은 파라과이를 상대로 페헤이라의 23분 득점으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1979년 8월 29일, 파라과이는 캐나다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었다. 훌리오 세사르 로메로가 37분과 58분에 득점하였고, 이사시가 40분에 득점하였다. 같은 날,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은 0-0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최종 결과, 파라과이와 포르투갈이 8강에 진출했다. 대한민국은 1승 1무 1패, 승점 3점으로 조 3위를 기록하여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 D조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D조에서는 우루과이와 소비에트 연방이 8강에 진출했다. 우루과이는 3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차지했고, 소비에트 연방은 2승 1패로 조 2위를 기록했다. 헝가리는 1승 2패, 기니는 3패로 탈락했다.
팀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차 |
---|---|---|---|---|---|---|---|---|
우루과이/Selección de fútbol sub-20 de Uruguayes | 6 | 3 | 3 | 0 | 0 | 8 | 0 | +8 |
소비에트 연방/Сборная СССР по футболу (до 20 лет)ru | 4 | 3 | 2 | 0 | 1 | 8 | 2 | +6 |
헝가리/Magyar U20-as labdarúgó-válogatotthu | 2 | 3 | 1 | 0 | 2 | 3 | 7 | -4 |
기니/Équipe de Guinée des moins de 20 ans de football프랑스어 | 0 | 3 | 0 | 0 | 3 | 0 | 10 | -10 |
1979년 8월 26일 닛파쓰 미쓰자와 스타디움(요코하마)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소비에트 연방은 헝가리를 5-1로 대파했다. 같은 날 우루과이는 기니를 5-0으로 완파했다. 1979년 8월 28일에는 우루과이가 헝가리를 2-0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기니를 3-0으로 꺾었다. 1979년 8월 30일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소비에트 연방을 1-0으로, 헝가리는 기니를 2-0으로 이겼다.
4. 1. A조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A조에서는 스페인과 알제리가 8강에 진출했다. 개최국 일본은 멕시코와 승점, 골득실에서 동률을 이뤘으나, 다득점에서 밀려 탈락했다.팀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차 |
---|---|---|---|---|---|---|---|---|
스페인/Españaes | 4 | 3 | 2 | 0 | 1 | 3 | 2 | +1 |
알제리/الجزائرar | 4 | 3 | 1 | 2 | 0 | 2 | 1 | +1 |
멕시코/Méxicoes | 2 | 3 | 0 | 2 | 1 | 3 | 4 | -1 |
일본/日本일본어 | 2 | 3 | 0 | 2 | 1 | 1 | 2 | -1 |
- 1979년 8월 25일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도쿄)에서 열린 멕시코와 알제리의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멕시코의 에르난데스가 전반 24분에 선제골을 넣었으나, 알제리의 야히가 후반 22분에 동점골을 기록했다.
- 같은 날,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 스페인의 경기에서는 스페인이 1-0으로 승리했다. 수니가가 후반 6분에 결승골을 넣었다.
- 1979년 8월 27일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스페인과 멕시코의 경기에서는 스페인이 2-1로 승리했다. 스페인의 호아킨과 가일이 각각 전반 8분과 후반 29분에 득점했고, 멕시코의 디아스는 후반 11분에 한 골을 만회했다.
- 같은 날,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알제리와 일본의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 1979년 8월 29일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스페인과 알제리의 경기에서는 알제리가 1-0으로 승리했다. 벤자발라가 전반 15분에 결승골을 넣었다.
- 같은 날,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일본과 멕시코의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일본의 미즈누마가 후반 13분에 선제골을 넣었으나, 멕시코의 로메로가 후반 24분에 동점골을 기록했다.
4. 2. B조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B조에서는 아르헨티나와 폴란드가 8강에 진출했다. 아르헨티나는 디에고 마라도나와 라몬 디아스를 앞세워 조별 리그 3경기에서 10득점 1실점의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팀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차 |
---|---|---|---|---|---|---|---|---|
6 | 3 | 3 | 0 | 0 | 10 | 1 | +9 | |
4 | 3 | 2 | 0 | 1 | 9 | 4 | +5 | |
2 | 3 | 1 | 0 | 2 | 5 | 3 | +2 | |
0 | 3 | 0 | 0 | 3 | 0 | 16 | -16 |
- 1979년 8월 26일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폴란드와 유고슬라비아의 경기에서는 파와시와 프란코프스키의 득점에 힘입어 폴란드가 2-0으로 승리했다.
- 같은 날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인도네시아의 경기에서는 디아스가 해트트릭, 마라도나가 2골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가 5-0 대승을 거두었다.
- 1979년 8월 28일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유고슬라비아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는 에스쿠데로의 결승골로 아르헨티나가 1-0으로 승리했다.
- 같은 날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인도네시아와 폴란드의 경기에서는 파와시가 2골, 야니에츠, 바란, 부다가 각 1골씩을 기록하며 폴란드가 6-0으로 대승했다.
- 1979년 8월 30일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폴란드와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는 마라도나, 칼데론 (2골), 시몬이 득점을 기록하고, 폴란드의 파와시가 만회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가 4-1로 승리했다.
- 같은 날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유고슬라비아와 인도네시아의 경기에서는 스마이치 (2골), 밀로사블레비치 (2골), 믈리나리치가 득점하며 유고슬라비아가 5-0으로 승리했다.
4. 3. C조
{팀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차 |
---|---|---|---|---|---|---|---|---|
파라과이/Selección juvenil de fútbol de Paraguayes | 4 | 3 | 2 | 0 | 1 | 6 | 1 | +5 |
포르투갈/Seleção Portuguesa de Futebol Sub-20pt | 3 | 3 | 1 | 1 | 1 | 2 | 3 | -1 |
대한민국 | 3 | 3 | 1 | 1 | 1 | 1 | 3 | -2 |
캐나다 | 2 | 3 | 1 | 0 | 2 | 3 | 5 | -2 |
1979년 8월 25일, 파라과이는 고베시 중앙 구기장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었다. 훌리오 세사르 로메로가 5분에 득점하였고, 로베르토 카바냐스가 70분과 74분에 득점하였다. 같은 날, 캐나다는 포르투갈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두었다.
1979년 8월 27일, 대한민국은 캐나다를 상대로 이태호의 63분 득점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날, 포르투갈은 파라과이를 상대로 페헤이라의 23분 득점으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1979년 8월 29일, 파라과이는 캐나다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두었다. 훌리오 세사르 로메로가 37분과 58분에 득점하였고, 이사시가 40분에 득점하였다. 같은 날,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은 0-0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최종 결과, 파라과이와 포르투갈이 8강에 진출했다. 대한민국은 1승 1무 1패, 승점 3점으로 조 3위를 기록하여 조별 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4. 4. D조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D조에서는 우루과이와 소비에트 연방이 8강에 진출했다. 우루과이는 3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차지했고, 소비에트 연방은 2승 1패로 조 2위를 기록했다. 헝가리는 1승 2패, 기니는 3패로 탈락했다.팀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득실차 |
---|---|---|---|---|---|---|---|---|
우루과이/Selección de fútbol sub-20 de Uruguayes | 6 | 3 | 3 | 0 | 0 | 8 | 0 | +8 |
소비에트 연방/Сборная СССР по футболу (до 20 лет)ru | 4 | 3 | 2 | 0 | 1 | 8 | 2 | +6 |
헝가리/Magyar U20-as labdarúgó-válogatotthu | 2 | 3 | 1 | 0 | 2 | 3 | 7 | -4 |
기니/Équipe de Guinée des moins de 20 ans de football프랑스어 | 0 | 3 | 0 | 0 | 3 | 0 | 10 | -10 |
1979년 8월 26일 닛파쓰 미쓰자와 스타디움(요코하마)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 소비에트 연방은 헝가리를 5-1로 대파했다. 같은 날 우루과이는 기니를 5-0으로 완파했다. 1979년 8월 28일에는 우루과이가 헝가리를 2-0으로, 소비에트 연방이 기니를 3-0으로 꺾었다. 1979년 8월 30일 마지막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소비에트 연방을 1-0으로, 헝가리는 기니를 2-0으로 이겼다.
5. 결선 토너먼트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결선 토너먼트는 8강전부터 결승전까지 진행되었다.
1979년 9월 2일에 열린 8강전에서는 4개의 경기가 진행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알제리를 5-0으로 대파하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 25분에 득점을 기록했고, 칼데론은 34분에, 디아스는 39분, 51분, 66분에 득점을 기록하여 아르헨티나의 대승을 이끌었다. 이 경기는 도쿄의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렸으며, 20,0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우루과이는 요코하마의 닛파쓰 미쓰자와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1-0으로 승리했다. 파스가 연장 전반 4분에 결승골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는 4,0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폴란드는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0-0으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했다. 10,000명의 관중이 이 경기를 지켜봤다.
고베의 고베시 중앙 구기장에서 열린 소련과 파라과이의 경기는 연장전까지 2-2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소련이 6-5로 승리했다. 파라과이의 로메로가 전반 7분에, 아추카로가 22분에 득점했고, 소련의 두만스키가 전반 3분에, 포노마료프가 후반 25분에 득점했다. 8,500명의 관중이 이 경기를 관람했다.
1979년 9월 4일에 열린 두 준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는 디아스와 마라도나의 득점에 힘입어 우루과이를 2-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 경기는 도쿄의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렸으며, 20,0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스페인의 아우구스토 라모 카스티요가 심판을 맡았다.
같은 날 고베의 고베시 중앙 구기장에서 열린 또 다른 준결승전에서는 소련이 포노마료프의 결승골로 폴란드를 1-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 경기에는 5,000명의 관중이 입장했으며, 벨기에의 마르설 판 랑엔호버가 심판을 맡았다.
1979년 9월 6일 19시, 도쿄의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3·4위전에서 우루과이가 폴란드와 연장전까지 1-1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하며 3위를 차지했다. 파스가 전반 9분에 선제골을 넣었지만, 파와시가 전반 26분에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우루과이가 승리했다.
1979년 9월 7일, 도쿄의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소련을 3-1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포노마료프가 후반 52분에 소련의 선제골을 기록하였으나, 아르헨티나는 알베스(68분), 디아스(71분), 마라도나(76분)의 연속 골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날 경기에는 52,0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5. 1. 8강전
1979년 9월 2일에 열린 8강전에서는 4개의 경기가 진행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알제리를 5-0으로 대파하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마라도나는 이 경기에서 25분에 득점을 기록했고, 칼데론은 34분에, 디아스는 39분, 51분, 66분에 득점을 기록하여 아르헨티나의 대승을 이끌었다. 이 경기는 도쿄의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렸으며, 20,0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우루과이는 요코하마의 닛파쓰 미쓰자와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연장전 끝에 1-0으로 승리했다. 파스가 연장 전반 4분에 결승골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는 4,0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폴란드는 사이타마시 오미야 공원 축구장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0-0으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했다. 10,000명의 관중이 이 경기를 지켜봤다.
고베의 고베시 중앙 구기장에서 열린 소련과 파라과이의 경기는 연장전까지 2-2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소련이 6-5로 승리했다. 파라과이의 로메로가 전반 7분에, 아추카로가 22분에 득점했고, 소련의 두만스키가 전반 3분에, 포노마료프가 후반 25분에 득점했다. 8,500명의 관중이 이 경기를 관람했다.
5. 2. 준결승전
1979년 9월 4일에 열린 두 준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는 디아스와 마라도나의 득점에 힘입어 우루과이를 2-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 경기는 도쿄의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렸으며, 20,0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스페인의 아우구스토 라모 카스티요가 심판을 맡았다.같은 날 고베의 고베시 중앙 구기장에서 열린 또 다른 준결승전에서는 소련이 포노마료프의 결승골로 폴란드를 1-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이 경기에는 5,000명의 관중이 입장했으며, 벨기에의 마르설 판 랑엔호버가 심판을 맡았다.
5. 3. 3·4위전
1979년 9월 6일 19시, 도쿄의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3·4위전에서 우루과이가 폴란드와 연장전까지 1-1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하며 3위를 차지했다. 파스가 전반 9분에 선제골을 넣었지만, 파와시가 전반 26분에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우루과이가 승리했다.5. 4. 결승전
1979년 9월 7일, 도쿄의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197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소련을 3-1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포노마료프가 후반 52분에 소련의 선제골을 기록하였으나, 아르헨티나는 알베스(68분), 디아스(71분), 마라도나(76분)의 연속 골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이날 경기에는 52,000명의 관중이 입장했다.6. 우승
아르헨티나
1번째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