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프레도 페트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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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이탈리아의 작곡가로, 신고전주의와 12음 기법을 거쳐 독자적인 작곡 기법을 확립했다. 1928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하여 오르간과 작곡을 공부했으며, 알프레도 카셀라의 지휘로 작품이 연주되며 이름을 알렸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며 엔니오 모리코네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루이지 달라피콜라, 자친토 셸시와 함께 20세기 이탈리아 음악의 3대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초기에는 신고전주의, 후기에는 무조와 12음 기법을 사용했으며, 8개의 관현악 협주곡을 포함한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1986년 시력 상실로 작곡 활동을 중단했다.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신고전주의와 선법성을 띤 작품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무조와 12음 기법 작품으로 진화했다. 그는 독자적인 기법으로 작곡을 계속했으며, 서정성을 극도로 억제하고 울림의 순수성을 추구했다.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초기에는 신고전주의 음악과 선법성을 띤 작품을 작곡했지만, 점차 무조와 12음 기법을 사용한 작품으로 발전했다. 그는 전위적인 음악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독자적인 기법으로 작곡을 계속했으며, 서정성을 극도로 억제하고 울림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경향은 말년까지 이어졌다.[6]
2. 생애
마리오 필라티에 이어 이탈리아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으며, 이 장르에 8곡의 역작을 남겼다. 특히 1934년에 작곡된 제1번의 제3악장은 영화 "슈퍼맨"의 사운드트랙과 흡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그의 무반주 합창곡 "넌센스"가 자주 불린다. 영화 음악으로는 "가족 일기"가 알려져 있다. 1970년대에는 기타 독주를 위한 "NUNC"를 작곡했다.
루이지 달라피콜라, 자친토 셸시와 함께 20세기 이탈리아 음악의 3대 거장으로 칭송받았으며, 페트라시 국제 작곡 콩쿠르의 심사 위원장을 맡아 이반 페데레, 마츠다이라 요리노리[6] 등의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데 힘썼다.
2. 1. 초기 생애와 교육
로마 근교의 자라골로에서 태어났다. 15세에 가족을 경제적으로 돕기 위해 음악 가게에서 일하면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3] 1928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입학하여 오르간과 작곡을 배웠다.[3] 1934년 지휘자 알프레도 카젤라가 페트라시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르티타'를 암스테르담의 ISCM 페스티발에서 지휘하였다.
2. 2. 교육 활동과 후기 생애
1959년부터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그의 제자 중에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있었다.[4] 1960년부터 1978년까지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아에서 작곡 석사 과정을 가르쳤으며,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도 교수로 재직했다.
페트라시는 프랑코 도나토니, 알도 클레멘티, 코르넬리우스 카르듀, 엔니오 모리코네, 칼 코르테, 보리스 포레나, 노르마 비크로프트, 마리오 베르토치니, 에르네스토 루빈 데 세르빈, 에릭 잘츠만, 케네스 레이턴, 피터 맥스웰 데이비스, 마이클 델라이라, 아르만도 산티아고, 리처드 테이텔바움 등 많은 유명한 제자를 두었다. 페트라시는 98세의 나이로 로마에서 사망했다.[4]
3. 음악적 특징과 양식
그의 초기 작품은 리하르트 바그너와 같은 독일 낭만주의 작품에 상응하는, 고전 음악의 국가적 "이탈리아" 부흥을 창조하려는 여러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시도의 일환이었다. 이 시기에는 벨러 버르토크, 파울 힌데미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영향을 받은 신고전주의 음악 양식을 따랐다.
후년에 페트라시는 열린 음악적 사고와 예리한 개성을 바탕으로 안톤 베베른의 영향, 라틴 찬송가, 아리오스토의 ''La follia d'Orlando'',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문학적 등장인물에 기초한 ''Ritratto di Don Chisciotte'' (''돈 키호테의 초상'') 등 광범위한 시적 소재를 실험했다. 이러한 영향은 그가 1934년부터 1972년까지 작곡한 8개의 관현악 협주곡에 나타난다.[6] 그의 음악은 Chandos, Stradivarius, Naxos, Capriccio 음반 레이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루이지 달라피콜라, 자친토 셸시와 함께 20세기 이탈리아 음악의 3대 거장으로 칭송받았으며,[6] 일본에서는 그의 무반주 합창곡 "넌센스"가 자주 불린다. 영화 음악으로는 "가족 일기"가 알려져 있으며, 1970년대에는 고풍스러운 기타 독주곡 "NUNC"를 작곡했다. 페트라시는 1986년 점진적인 시력 상실로 인해 작곡을 중단했다.[6]
3. 1.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페트라시는 1934년부터 1972년까지 8개의 관현악 협주곡을 작곡했다.[6] 마리오 필라티가 이탈리아인 최초로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페트라시는 이 장르에서 8개의 역작을 남겼다. 이 작품들은 모두 수준 높은 관현악곡이며, 음반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1934년에 작곡된 제1번의 제3악장은 영화 "슈퍼맨"의 사운드트랙과 흡사한 것으로 유명하다.[6]
4. 주요 작품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다.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4. 1. 기악곡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독주곡, 실내악곡 외에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등 다양한 기악곡을 작곡하였다.4. 1. 1. 독주곡
4. 1. 2. 실내악곡
4. 2. 성악곡
고프레도 페트라시는 다양한 성악곡을 작곡했다.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는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구원(1926), 귀도 고차노의 텍스트를 사용한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금화조의 죽음(1927), 세르지오 코라치니의 텍스트를 사용한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바르베리아 오르간(1927),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로마 전원 가곡(1927), 빈첸초 카다렐리의 텍스트를 사용한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시간의 색채(1931),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아기를 재우는 보칼리제(1934),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창세기에서의 축복(1934),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오, 잠이여 자장가(1934),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나를 죽게 내버려 두오 (아리아나의 탄식)(1936), 살바토레 콰시모도의 번역에 의한 목소리와 피아노를 위한 사포의 두 개의 서정시(1941), 테너, 바리톤, 오르간(또는 오케스트라)을 위한 네 개의 성가(1942, 1950년 개정), 레오파르디, 포스콜로, 몬탈레의 텍스트를 사용한 바리톤과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서정시(1944), 바리톤과 피아노를 위한 기적(1944), 소프라노, 플루트, 오르간을 위한 영광, 지극히 높은 곳에(1952), 알랭의 텍스트를 사용한 알랭의 제안(1960), 마틴 루터 킹을 위한 바리톤 또는 베이스와 다섯 악기를 위한 팔복 증언(1968) 등이 있다.4. 2. 1. 실내악곡
4. 2. 2. 대편성 성악곡
4. 3. 관현악곡
현을 위한 서곡과 푸가관현악을 위한 파사칼리아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