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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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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ICFTU)은 1949년 세계노동조합연맹에서 분리되어 창립된 국제 노동 단체이다. 156개국 241개 단체, 약 1억 5천 5백만 명이 가입했으며, 냉전 시기에는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비공산주의 노동조합 연맹들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2006년 세계 노동 연맹과 합병하여 국제 노동조합 연합(ITUC)으로 재출범했다. ICFTU는 노동자의 권익 보호, 특히 결사의 자유, 아동 및 강제 노동 폐지,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했으며, 매년 노동조합 권리 침해 보고서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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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

2. 역사

세계노동조합연맹에서 이념에 따라 분리되어 1949년 12월 7일 창립되었으며, 156개 나라에서 241개 단체, 총 1억 5천 5백만 명이 가입되었다. 미국 노동 총동맹 산업별 조합 연합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 공산주의 노동조합 단체, 영국 노동조합 연합회, 프랑스 노동자 총연맹, 이탈리아 노동조합 연맹, 스페인 노동자 총 연합 등이 4천 8백만 회원과 53개 국가를 대표하여 참석한 런던 총회에서 탈퇴를 결의하고 만들었다.

1949년, 냉전 초기에 공산주의세계노동조합연맹(WFTU)의 핵심 기구를 장악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AFL-CIO, 영국 TUC, 프랑스 FO, 이탈리아 CISL, 스페인 UGT를 포함한 다수의 비공산주의 국가 노동조합 연맹들이 탈퇴하여 런던에서 열린 회의에서 경쟁 단체인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ICFTU)을 창설했다. 이 회의에는 53개국에서 약 4,800만 명의 회원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자유평화라는 슬로건 아래 결성되었다.

소련과 동 유럽에서 공산당 정부가 붕괴된 후, 1988년 8,700만 명에서 1992년 1억 명으로 조합원 수가 급증했는데, 이는 구 소련 블록 국가의 노동조합 연맹들이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는, 동맹이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과 전면적으로 우호 관계에 있었던 반면, 총평은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 측이 되었다가 세계노동조합연맹 측이 된 시기가 있어, 반드시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았다. 그 후, 1989년에 결성된 연합은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에 가맹했다. 2004년 12월에는 미야자키시에서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의 제18회 세계 대회가 개최되었다.

2006년 10월 31일 해산, 세계 노동 연맹과 합병하여 국제 노동조합 연합을 만들었다.

2. 1. 창립 배경

1949년 12월 7일 세계노동조합연맹에서 이념에 따라 분리되어 창립되었으며, 156개 나라에서 241개 단체, 총 1억5천5백만명이 가입되었다. 미국 노동 총동맹 산업별 조합 연합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 공산주의 노동조합 단체, 영국 노동조합 연합회, 프랑스 노동자 총연맹, 이탈리아 노동조합 연맹, 스페인 노동자 총 연합 등이 4천 8백만 회원과 53개 국가를 대표하여 참석한 런던 총회에서 탈퇴를 결의하고 만들었다.

1949년, 냉전의 영향으로, 그동안 세계노동조합연맹(WFTU)에 가맹했던 노동조합 중 서방 국가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자유평화"라는 슬로건 아래 결성되었다.[4] 냉전 초기에 공산주의가 세계노동조합연맹(WFTU)의 핵심 기구를 장악했다고 주장하며, 미국 AFL-CIO, 영국 TUC, 프랑스 FO, 이탈리아 CISL, 스페인 UGT를 포함한 다수의 비공산주의 국가 노동조합 연맹들이 탈퇴하여 런던에서 열린 회의에서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을 창설했다. 이 회의에는 53개국에서 약 4,800만 명의 회원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의 냉전 종식과 함께 그동안 세계노동조합연맹에 가맹했던 노동조합도 가맹하게 되어 세계 최대의 노동조합 세계 조직이 되었다.[4] 소련과 동 유럽에서 공산당 정부가 붕괴된 후, 1988년 8,700만 명에서 1992년 1억 명으로 조합원 수가 급증했는데, 이는 구 소련 블록 국가의 노동조합 연맹들이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동조합(내셔널 센터)과의 관계에서는, 동맹이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과 전면적으로 우호 관계에 있었던 반면, 총평은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 측이 되었다가 세계노동조합연맹 측이 된 시기가 있어, 반드시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았다.[4] 그 후, 1989년에 결성된 연합은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에 가맹했다. 또한, 2004년 12월에는 미야자키시에서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의 제18회 세계 대회가 개최되었다.[5][6]

2. 2. 냉전 시기 활동과 분쟁

세계노동조합연맹에서 이념에 따라 분리되어 1949년 12월 7일 창립되었으며, 156개 나라에서 241개 단체, 총 1억5천5백만명이 가입되었다. 미국 노동 총동맹 산업별 조합 연합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 공산주의 노동조합 단체, 영국 노동조합 연합회, 프랑스 노동자 총연맹, 이탈리아 노동조합 연맹, 스페인 노동자 총 연합 등이 4천 8백만 회원과 53개 국가를 대표하여 참석한 런던 총회에서 탈퇴를 결의하고 만들었다.

1949년, 냉전 초기에 공산주의세계노동조합연맹(WFTU)의 핵심 기구를 장악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AFL-CIO, 영국 TUC, 프랑스 FO, 이탈리아 CISL, 스페인 UGT를 포함한 다수의 비공산주의 국가 노동조합 연맹들이 탈퇴하여 런던에서 열린 회의에서 경쟁 단체인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을 창설했다. 이 회의에는 53개국에서 약 4,800만 명의 회원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일본의 동맹은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과 전면적으로 우호 관계에 있었던 반면, 총평은 시기에 따라 입장이 변동했다.[4] 이후 연합은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에 가입했다.[4]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은 존속 기간 동안 공산주의에 대한 접근 방식을 놓고 내부 분쟁을 겪었다. 1950년대부터는 아시아 지역,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 새로운 회원을 적극적으로 모집했다. 소련과 동 유럽에서 공산당 정부가 붕괴된 후, 1988년 8,700만 명에서 1992년 1억 명으로 조합원 수가 급증했는데, 이는 구 소련 블록 국가의 노동조합 연맹들이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1975년, 전 CIA 요원 필립 에이지는 그의 저서 "회사 내부: CIA 일기"에서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이 "세계노동조합연맹(WFTU)에 대항하기 위해 CIA가 설립하고 통제하는 노동 센터"라고 밝혔다.

2006년 10월 31일 해산, 세계 노동 연맹과 합병하여 국제 노동조합 연합을 만들었다.

2. 3. 냉전 이후 변화와 통합

세계노동조합연맹에서 이념에 따라 분리되어 1949년 12월 7일 창립되었으며, 156개 나라에서 241개 단체, 총 1억 5천 5백만 명이 가입되었다. 미국 노동 총동맹 산업별 조합 연합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 공산주의 노동조합 단체, 영국 노동조합 연합회, 프랑스 노동자 총연맹, 이탈리아 노동조합 연맹, 스페인 노동자 총 연합 등이 4천 8백만 회원과 53개 국가를 대표하여 참석한 런던 총회에서 탈퇴를 결의하고 만들었다.

1949년, 냉전 초기에 공산주의세계노동조합연맹(WFTU)의 핵심 기구를 장악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AFL-CIO, 영국 TUC, 프랑스 FO, 이탈리아 CISL, 스페인 UGT를 포함한 다수의 비공산주의 국가 노동조합 연맹들이 탈퇴하여 런던에서 열린 회의에서 경쟁 단체인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을 창설했다.[4] 이 회의에는 53개국에서 약 4,800만 명의 회원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자유평화라는 슬로건 아래 결성되었다.[4]

소련과 동 유럽에서 공산당 정부가 붕괴된 후, 1988년 8,700만 명에서 1992년 1억 명으로 조합원 수가 급증했는데, 이는 구 소련 블록 국가의 노동조합 연맹들이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ICFTU)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동조합과의 관계에서는, 동맹이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과 전면적으로 우호 관계에 있었던 반면, 총평은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 측이 되었다가 세계노동조합연맹 측이 된 시기가 있어, 반드시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았다.[4] 그 후, 1989년에 결성된 연합은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에 가맹했다.[4] 2004년 12월에는 미야자키시에서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의 제18회 세계 대회가 개최되었다.[5][6]

2006년 10월 31일 해산, 세계 노동 연맹과 합병하여 국제 노동조합 연합을 만들었다.

2. 4. 한국과의 관계

냉전 초기 공산주의가 세계노동조합연맹(WFTU)의 핵심 기구를 장악했다고 주장하며, 1949년 미국 AFL-CIO 등을 포함한 다수의 비공산주의 국가 노동조합 연맹들이 탈퇴하여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ICFTU)을 창설했다. 1988년 8,700만 명이었던 조합원 수는 구 소련 블록 국가의 노동조합 연맹들이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ICFTU)에 가입하면서 1992년 1억 명으로 급증했다. 2006년 10월 31일 세계노동연맹(WCL)과 합병하여 국제노동조합연맹(ITUC)을 결성하면서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3. 조직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ICFTU)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APRO), 아프리카 지역(AFRO), 미주 지역(ORIT)의 총 세 개 지역별 조직이 있었다. 1969년까지 ERO가 유럽을 담당했지만, 점차 영향력이 줄어 해산되었다. ICFTU는 이후 모든 ICFTU 유럽 지부를 포함하는 유럽 노총(ETUC)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국제적 수준에서 특정 직업 또는 산업의 전국 노조를 연결하는 많은 국제 노동조합 연맹과도 긴밀히 협력했다.

ICFTU의 주요 업무는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ICFTU는 결사의 자유, 아동 노동 및 강제 노동 폐지, 직장 내 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 노동 기구의 8개 핵심 협약인 이른바 "핵심 노동 기준"의 비준을 위해 로비를 벌였다.

ICFTU는 노동자의 권리 감시 및 옹호에 전념하는 직원을 두고 있으며, 거의 매일 경고 및 행동 촉구를 발표한다. ICFTU는 매년 6월에 "노동조합 권리 침해 연례 보고서"를 발행했으며, 이 보고서의 출판은 전 세계의 노동조합 권리 침해에 대한 광범위한 언론 보도를 동반했다. 이 보고서는 종종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사람들의 숫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기구는 헌장에서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를 증진하며, 인종, 종교, 성별 또는 출신에 근거한 차별이나 예속의 모든 형태를 전 세계에서 제거하고, 전체주의와 모든 형태의 침략에 반대하고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그 헌장에는 17개 이상의 기구 목표가 나열되어 있으며, ICFTU는 처음부터 특히 소규모 직원과 예산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설정했다고 주장되어 왔다. 예를 들어, 이 기구의 헌장은 "노동조합 및 근로자 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것과 "자연 재해 및 산업 재해의 결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2004년 호주 노조 지도자 샤란 버로우가 ICFTU의 첫 여성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주요 가맹 조직은 다음과 같다.

4. 활동 및 주요 목표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은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권리 존중 및 유지를 핵심 목표로 삼는다. 강제노동과 아동 노동 근절에 앞장서며, 여성 노동자의 동등한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한다.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전 세계 노동조합원을 대상으로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젊은 노동자 조직을 지원한다. 각국의 노동조합 실태를 조사하여 고용 및 국제 노동 규칙 제정에 힘쓰며, 다국적 기업을 감시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노동조합의 권리, 평등, 여성, 인종, 이민자 문제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노동조합 조직 및 유도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5. 노동조합 권리 침해 연례 보고서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ICFTU)은 정부, 산업, 군대 및 경찰이 노동자와 관련 노조를 상대로 저지른 위반 사항을 기록한 연례 보고서를 발간했다.

2006년 6월 7일에 발표된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ICFTU)의 보고서는 2005년 전 세계 노동조합원의 권리 침해 실태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3]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에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다 115명의 노동조합원이 살해당했으며, 1,600명 이상이 폭력적인 공격을 받았고 약 9,000명이 체포되었다.[3] 또한, 약 10,000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되었고 거의 1,700명이 구금되었다.[3]

보고서는 5개의 지역별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가별 상세 보고서가 포함되어 있다.[3]


  • 아프리카: 정부가 공무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났다. 레소토에서는 공공 서비스 부문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없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경찰이 노동자 파업 및 시위에 전기 충격기, 고무탄, 최루탄을 사용했다.[3] 지부티에서는 파업 중인 미니버스 및 트럭 운전사의 시위 중 운전사 노조원이 사망했다.[3]
  • 아메리카: 전 세계 사망자 수의 절반 이상인 80명이 사망했다. 콜롬비아에서만 70명이 사망했으며, 260명의 노동자가 살해 위협을 받았다.[3] 에콰도르에서는 산 호세 농장의 노동자 44명이 노조 결성을 이유로 해고되었다. 캐나다에서는 브리티시컬럼비아 교원 연맹 조합원들에게 법에 의해 단체 협약이 강제되었다.
  • 아시아: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중국, 인도, 대한민국, 필리핀에서 특히 폭력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시나 섬유 공장 시위에 경찰이 개입하여 세 명의 노동조합원이 사망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노총 소속의 김태환이 시위 중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3] 필리핀에서는 식품 및 의약품 산업 노동조합의 지도자 디오스다도 포르투나가 정체불명의 괴한 두 명에게 총을 맞아 사망했고, 안드레스 소리아노 대학 직원 노조의 빅토리아 라몬테가 칼에 찔려 사망했으며, 설탕 노동자 노조의 회장 리카르도 라모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3]
  • 유럽: 독립적인 노동조합 설립에 대한 강력한 반대가 중앙 및 동유럽 전역에서 나타났다. 몰도바에서는 정부가 조직적으로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떠나도록 노동자를 강요하려 한 시도가 있었다.[3] 벨라루스소련 시대의 노동조합 센터로 돌아가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으로 강조되었다.[3] 러시아에서 한 노동조합원이 사망했는데, 그는 이전에 위협을 받았고 그의 집은 방화되었다.[3]
  • 중동: 2005년 첫 두 달 동안 이라크에서 이라크 노동조합 연맹(IFTU)의 국제 사무총장인 하디 살리가 잔혹하게 고문을 받고 살해당했다.[3] IFTU의 탈리브 카딤과 사디 에단도 공격을 받고 납치되었다. IFTU의 키르쿠크 지부장에 대한 두 차례의 살해 시도가 있었다. 석유 가스 노동자 연맹의 알리 하산 압드는 아이들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고, 운송 통신 노동조합의 아흐메드 아드리스 아바스도 총에 맞아 사망했다.[3]


보고서는 쿠웨이트, 레바논, 오만, 카타르, 사우디 아라비아와 같이 이주 노동자들이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권리가 거의 없는 많은 국가에서 직면한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3] 카타르는 자유 노동조합 설립을 허용하는 새로운 노동법을 채택했지만, 국제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다.[3]

5. 1. 2006년 보고서 주요 내용

2006년 6월 7일에 발표된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ICFTU)의 보고서는 2005년 전 세계 노동조합원의 권리 침해 실태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3]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에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다 115명의 노동조합원이 살해당했으며, 1,600명 이상이 폭력적인 공격을 받았고 약 9,000명이 체포되었다.[3] 또한, 약 10,000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되었고 거의 1,700명이 구금되었다.[3]

보고서는 5개의 지역별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국가별 상세 보고서가 포함되어 있다.[3]

  • 아프리카: 정부가 공무원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났다. 레소토에서는 공공 서비스 부문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없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경찰이 노동자 파업 및 시위에 전기 충격기, 고무탄, 최루탄을 사용했다.[3] 지부티에서는 파업 중인 미니버스 및 트럭 운전사의 시위 중 운전사 노조원이 사망했다.[3]
  • 아메리카: 전 세계 사망자 수의 절반 이상인 80명이 사망했다. 콜롬비아에서만 70명이 사망했으며, 260명의 노동자가 살해 위협을 받았다.[3] 에콰도르에서는 산 호세 농장의 노동자 44명이 노조 결성을 이유로 해고되었다. 캐나다에서는 브리티시컬럼비아 교원 연맹 조합원들에게 법에 의해 단체 협약이 강제되었다.
  • 아시아: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중국, 인도, 대한민국, 필리핀에서 특히 폭력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시나 섬유 공장 시위에 경찰이 개입하여 세 명의 노동조합원이 사망했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노총 소속의 김태환이 시위 중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3] 필리핀에서는 식품 및 의약품 산업 노동조합의 지도자 디오스다도 포르투나가 정체불명의 괴한 두 명에게 총을 맞아 사망했고, 안드레스 소리아노 대학 직원 노조의 빅토리아 라몬테가 칼에 찔려 사망했으며, 설탕 노동자 노조의 회장 리카르도 라모스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3]
  • 유럽: 독립적인 노동조합 설립에 대한 강력한 반대가 중앙 및 동유럽 전역에서 나타났다. 몰도바에서는 정부가 조직적으로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떠나도록 노동자를 강요하려 한 시도가 있었다.[3] 벨라루스소련 시대의 노동조합 센터로 돌아가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으로 강조되었다.[3] 러시아에서 한 노동조합원이 사망했는데, 그는 이전에 위협을 받았고 그의 집은 방화되었다.[3]
  • 중동: 2005년 첫 두 달 동안 이라크에서 이라크 노동조합 연맹(IFTU)의 국제 사무총장인 하디 살리가 잔혹하게 고문을 받고 살해당했다.[3] IFTU의 탈리브 카딤과 사디 에단도 공격을 받고 납치되었다. IFTU의 키르쿠크 지부장에 대한 두 차례의 살해 시도가 있었다. 석유 가스 노동자 연맹의 알리 하산 압드는 아이들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고, 운송 통신 노동조합의 아흐메드 아드리스 아바스도 총에 맞아 사망했다.[3]


보고서는 쿠웨이트, 레바논, 오만, 카타르, 사우디 아라비아와 같이 이주 노동자들이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권리가 거의 없는 많은 국가에서 직면한 어려움을 설명하고 있다.[3] 카타르는 자유 노동조합 설립을 허용하는 새로운 노동법을 채택했지만, 국제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다.[3]

6. 역대 지도부

6. 1. 사무총장

야코부스 헨드릭 올덴브로크는 1949년에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의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오메르 베큐, 하름 부이터, 오토 케르스텐이 사무총장직을 역임하였다. 1982년에는 존 반더베켄, 1992년에는 엔초 프리소, 1995년에는 빌 조던이 사무총장으로 선출되었다. 2002년부터는 가이 라이더가 사무총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6. 2. 회장

폴 피네가 1949년에 국제자유노동조합총연맹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1951년에는 빈센트 테슨, 1953년에는 오메르 베쿠, 1957년에는 아르네 가이예르, 1965년에는 브루노 스토르티가 회장직을 역임했다. 1972년에는 도널드 맥도날드가, 1975년에는 P. P. 나라야난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92년에는 로이 트로트만, 2000년에는 팩슨 샴엔다, 2004년에는 샤란 버로우가 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했다.

참조

[1] 간행물 Conflict Within the ICFTU: Anti-Communism and Anti-Colonialism in the 1950s https://www.cambridg[...] 1996
[2] 서적 Inside the Company: CIA Diary Farrar Straus and Giroux 1975
[3] 웹사이트 Annual Survey of violations of trade union rights, 2006 http://www.icftu.org[...] 2006-06-10
[4] 웹사이트 国際労働運動の歴史と国際労働組合組織 http://www.jil.go.jp[...] 独立行政法人労働政策研究・研修機構
[5] 웹사이트 国際自由労連(ICFTU)世界大会/連帯のグローバル化 http://www.jil.go.jp[...] 独立行政法人労働政策研究・研修機構
[6] 뉴스 国際自由労連の世界大会 5日から宮崎市で開催 http://www.47news.jp[...] 47NEWS 200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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