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그리자유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그리자유는 회화 기법의 하나로, 단색 또는 제한된 색상만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의미한다. 주로 회색조를 사용하며, 조각이나 부조와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 고안되었다. 중세 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가들이 그리자유 기법을 사용했으며, 스테인드글라스나 에나멜 등 다른 매체에서도 활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르네상스 미술 - 뒤러의 코뿔소
    1515년 알브레히트 뒤러가 코뿔소를 직접 보지 않고 묘사 편지와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한 목판화 작품인 뒤러의 코뿔소는 실제와 다른 갑옷 입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치며 오랫동안 코뿔소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여겨졌다.
  • 르네상스 미술 -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은 인체 비례 연구를 바탕으로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이론에 나타난 인체 비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여 인체와 우주의 조화를 나타내는 르네상스 시대 예술과 과학 융합의 상징이다.
  • 유리 공예 - 구슬
    구슬은 돌, 점토, 유리, 강철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물체로, 기원전 2500년경부터 사용되었으며, 19세기 유리 구슬 제조 기계 발명 후 대량 생산되어 장난감, 게임 도구, 수집품, 산업용 부품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 유리 공예 - 문진
    문진은 종이를 고정하는 도구 겸 장식품으로, 유리 내부에 다양한 기법으로 만든 장식을 넣어 아름다움을 더하며, 19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 미술 기법 - 마키에
    마키에는 금속 가루를 옻칠로 표면에 입혀 장식하는 일본 전통 칠기 기법이며, 히라마키에, 도기다시마키에, 다카마키에 등의 기법으로 나뉘고, 헤이안 시대에 발전하여 일본 칠기 공예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 미술 기법 - 해칭
    해칭은 선의 밀도, 두께, 방향을 조절하여 이미지의 밝기와 형태를 강조하는 기법으로, 입체감 표현, 기술 도면의 단면 표시, CAD 프로그램의 면 채우기 등에 활용된다.
그리자유
일반 정보
종류회화 기법
기법단색조 또는 제한된 색상 팔레트 사용
목적조각 효과, 밑그림, 색채 연구
상세 정보
설명주로 회색조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기법
조각과 유사한 효과를 내거나, 다른 색층을 위한 밑그림으로 사용
어원
프랑스어grisaille (그리자유) - "회색의" 의미
역사적 용도
중세 시대스테인드 글라스의 음영 표현
르네상스 시대유화의 밑그림 기법
조각 작품 모방
현대색채 연구, 디자인 시안
추가 정보
활용 분야유화
프레스코
스테인드 글라스
삽화

2. 역사

한스 멤링의 작품. 아래쪽에 색상이 있는 기증자 초상화가 있고, 위쪽에는 조각상을 모방한 ''그리자유'' 기법의 성모가 묘사되어 있다.


그리자유는 중세, 르네상스, 네덜란드 황금기,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가들이 사용한 회화 기법이다.

20세기에도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와 같이 그리자유 기법이 사용된 작품들이 존재한다.[2][3] 현대 미국의 화가 휴고 바스티다스는 흑백 사진과 유사한 그리자유 효과를 활용한 그림으로 유명하다.[2][3]

2. 1. 중세

조토는 파도바의 스클로베니 예배당의 프레스코화 하단에 그리자유를 사용했으며, 로베르 캉팽, 얀 판 에이크와 그 후계자들은 3폭 제단화 날개 바깥쪽에 그리자유 인물을 그렸으며, 여기에는 ''겐트 제단화''도 포함된다. 원래 이것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시되었던 면이었는데, 축제일이나 관광객의 (유료) 요청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박물관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이미지를 볼 수 없으며, 3폭 제단화는 벽에 평평하게 놓인 열린 상태로 전시된다. 이러한 경우 조각상의 모방이 의도되었는데, 조각상은 인정받는 거장의 그림보다도 더 비쌌기 때문이다.[8]

세밀화가들은 펜과 매우 제한적인 색상 범위의 수채화로 채색 필사본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장 퓌셀 (1320–1350년경 활동) 및 Matthew Paris|매튜 파리영어와 같은 많은 예술가들이 이러한 작업에 특화되었는데, 이는 앵글로색슨 미술 시대부터 영국에서 특히 흔했다. 안드레아 만테냐 및 Polidoro da Caravaggio|폴리도로 다 카라바조영어와 같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고전적인 조각 부조 또는 로마 그림의 효과를 모방하기 위해 종종 그리자유를 사용했다.[8]

저지대 국가에서는 초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마르틴 헤임스케르크 (1498–1574), 피터 브뤼겔 더 아우더 (''간통한 여인을 데리고 온 그리스도'', 1565) 및 헨드릭 골치우스를 거쳐 아드리안 판 데 베네의 풍부한 작품을 통해 렘브란트와 얀 판 고옌의 서클까지 그리자유 회화의 지속적인 전통을 추적할 수 있다.[8]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프레스코의 일부는 그리자유로 제작되었으며, Antonio Verrio|안토니오 베리오영어가 햄프턴 코트 궁전에 그린 웅장한 계단 장식의 하단 부분도 그리자유로 제작되었다.[8]

2. 2. 르네상스

조토는 파도바의 스클로베니 예배당 프레스코화 하단에 그리자유를 사용했으며, 로베르 캉팽, 얀 판 에이크와 그 후계자들은 3폭 제단화 날개 바깥쪽에 그리자유 인물을 그렸는데, 여기에는 ''겐트 제단화''도 포함된다. 원래 이것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시되었던 면이었는데, 축제일이나 관광객의 (유료) 요청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박물관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이미지를 볼 수 없으며, 3폭 제단화는 벽에 평평하게 놓인 열린 상태로 전시된다. 이러한 경우 조각상의 모방이 의도되었는데, 조각상은 인정받는 거장의 그림보다도 더 비쌌다.[8]

세밀화가들은 펜과 매우 제한적인 색상 범위의 수채화로 채색 필사본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장 퓌셀 및 매튜 파리와 같은 많은 예술가들이 이러한 작업에 특화되었는데, 이는 앵글로색슨 미술 시대부터 영국에서 특히 흔했다. 만테냐 및 폴리도로 다 카라바조와 같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고전적인 조각 부조 또는 로마 그림의 효과를 모방하기 위해 종종 그리자유를 사용했다.[8]

저지대 국가에서는 초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마르틴 헤임스케르크, 피터 브뤼겔 더 아우더(''간통한 여인을 데리고 온 그리스도'') 및 헨드릭 골치우스를 거쳐 아드리안 판 데 베네의 풍부한 작품을 통해 렘브란트와 얀 판 고옌의 서클까지 그리자유 회화의 지속적인 전통을 추적할 수 있다.[8]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프레스코의 일부는 그리자유로 제작되었으며, 안토니오 베리오가 햄프턴 코트 궁전에 그린 웅장한 계단 장식의 하단 부분도 그리자유로 제작되었다.[8]

2. 3. 네덜란드 황금기

조토는 파도바의 스클로베니 예배당 프레스코화 하단에 그리자유를 사용했으며, 로베르 캉팽, 얀 판 에이크와 그 후계자들은 3폭 제단화 날개 바깥쪽에 그리자유 인물을 그렸는데, 여기에는 ''겐트 제단화''도 포함된다. 원래 이것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시되었던 면이었는데, 축제일이나 관광객의 (유료) 요청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박물관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이미지를 볼 수 없으며, 3폭 제단화는 벽에 평평하게 놓인 열린 상태로 전시된다. 이러한 경우 조각상의 모방이 의도되었는데, 조각상은 인정받는 거장의 그림보다도 더 비쌌기 때문이다.

저지대 국가에서는 초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마르틴 헤임스케르크(1498–1574), 피터 브뤼겔 더 아우더(''간통한 여인을 데리고 온 그리스도'' (1565) 및 헨드릭 골치우스를 거쳐 아드리안 판 데 베네의 풍부한 작품을 통해 렘브란트와 얀 판 고옌의 서클까지 그리자유 회화의 지속적인 전통을 추적할 수 있다.

2. 4. 바로크와 로코코

조토는 파도바의 스클로베니 예배당 프레스코화 하단에 그리자유를 사용했으며, 로베르 캉팽, 얀 판 에이크와 그 후계자들은 3폭 제단화 날개 바깥쪽에 그리자유 인물을 그렸는데, 여기에는 ''겐트 제단화''도 포함된다. 원래 이것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시되었던 면이었는데, 축제일이나 관광객의 (유료) 요청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박물관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이미지를 볼 수 없으며, 3폭 제단화는 벽에 평평하게 놓인 열린 상태로 전시된다. 이러한 경우 조각상의 모방이 의도되었는데, 조각상은 인정받는 거장의 그림보다도 더 비쌌다.[8]

세밀화가들은 펜과 매우 제한적인 색상 범위의 수채화로 채색 필사본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장 퓌셀 및 매튜 파리와 같은 많은 예술가들이 이러한 작업에 특화되었는데, 이는 앵글로색슨 미술 시대부터 영국에서 특히 흔했다. 만테냐 및 폴리도로 다 카라바조it와 같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고전적인 조각 부조 또는 로마 그림의 효과를 모방하기 위해 종종 그리자유를 사용했다.[8]

저지대 국가에서는 초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마르틴 헤임스케르크, 피터 브뤼겔 더 아우더(''간통한 여인을 데리고 온 그리스도'', 1565) 및 헨드릭 골치우스를 거쳐 아드리안 판 데 베네의 풍부한 작품을 통해 렘브란트와 얀 판 고옌의 서클까지 그리자유 회화의 지속적인 전통을 추적할 수 있다.[8]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프레스코의 일부는 그리자유로 제작되었으며, 안토니오 베리오it가 햄프턴 코트 궁전에 그린 웅장한 계단 장식의 하단 부분도 그리자유로 제작되었다.[8]

2. 5. 근현대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1937)는 20세기에 제작된 그리자유의 대표적인 예시이다.[2][3]

현대 미국의 화가 휴고 바스티다스는 그리자유 효과를 모방하고 흑백 사진과 유사한 흑백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중대형 그림은 세밀함이 높고 낮은 대비 구역을 특징으로 한다.[2][3]

3. 다른 매체에서의 그리자유

조토는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프레스코화 아랫부분에 그리자유를 사용했고, 얀 판 에이크는 겐트 제단화 등 3폭 제단화의 날개 바깥쪽에 그리자유 인물상을 그렸다. 두 경우 모두 조각을 모방하려는 의도였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와 햄프턴 궁전의 안토니오 베리오가 제작한 대계단 장식 아랫부분도 그리자유로 그려졌다.

네덜란드의 그리자유 전통은 마르턴 판 헤임스케르크, 얀 브뤼헐 (아버지), 헨드릭 홀치우스, 아드리안 판 데 페네의 여러 작품을 거쳐 렘브란트나 얀 판 고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장식 필사본은 사용할 수 있는 색상이 제한되어 펜과 수채화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Jean Pucelle|장 퓌셀영어, Matthew Paris|매튜 파리스영어 등은 이를 전문으로 했다. 안드레아 만테냐, Polidoro da Caravaggio|폴리도로 다 카라바조영어와 같은 르네상스 화가들은 고전적인 효과, 즉 고전기 조각 부조나 로마 미술을 모방하기 위해 그리자유를 사용하기도 했다.

3. 1. 에나멜

이 용어는 에나멜과 같이 은색 부조와 유사한 효과를 내는 다른 매체의 단색 페인팅에도 적용된다. 스테인드 글라스에서도 그리자유는 흔히 사용되는데, 요크 민스터의 다섯 자매의 창과 같이 다양한 색상으로 칠할 필요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8] 예를 들어 은 얼룩이나 유리질 페인트를 사용하여 창의 일부를 그리자유로 만들 수 있으며, 다른 부분은 유색 유리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자유"라는 말은 에나멜의 모노크롬 그림에도 사용된다.

3. 2.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자유 스테인드 글라스 (15세기)


그리자유는 스테인드 글라스에서도 흔히 사용되었는데, 요크 민스터의 파이브 시스터즈 창과 같이 다양한 색상으로 칠할 필요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8] 예를 들어 은 얼룩이나 유리질 페인트를 사용하여 창의 일부를 그리자유로 만들고, 다른 부분은 유색 유리를 사용할 수 있다.

4. 브루나이유와 베르다이유

단색 작품은 회색 이외의 색상으로도 제작되기도 한다. ''브루나이유''(brunaille)는 갈색 계열로만 또는 주로 갈색 계열로만 그려진 그림이며, ''베르다이유''(verdaille)는 녹색에 해당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각각 ''en brunaille'' 또는 ''en verdaille''로 그려졌다고 말한다.[4][5]

''브루나이유''와 ''베르다이유'' 회화는 모두 12세기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유래되었으며, 시토회 수도원에서는 1134년에 색채 예술의 사용을 금지했다. "브루나이유"라는 용어는 17세기에 처음으로 모든 갈색 그림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5]

5. 갤러리



1730년대 암스테르담의 야코프 드 비트가 그린 트롱프뢰유 벽 그리자유

참조

[1] 서적 The Oxford Companion to Art Clarendon Press
[2] 뉴스 Without Hue: A Rainbow of Grays https://www.washingt[...] 2017-02-16
[3] 간행물 Hugo Bastidas at Nohra Haime 2008-04
[4] 문서 Sale 2437, Old Master Pictures Christie’s 1999-11-08
[5] 문서 Sale 1380, Old Master Paintings Christie’s 2004-06-17
[6] 웹사이트 Mims Studios School of Fine Art http://www.mimsstudi[...] 2009-02-21
[7] 웹사이트 Old Masters Academy https://oldmasters.a[...]
[8] 파일 File:York_Minster_window_n16_"The_Five_sisters"_(16157008236).jpg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