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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네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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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후네 신사는 교토시 사쿄구에 위치한 신사로, 기원은 불분명하나 반정 천황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물의 신인 타카오카미 신을 모시며, 에마의 발상지, 인연 맺기, 악연 끊기 등의 신앙으로 유명하다. 헤이안 시대에는 황실의 후원을 받았고, 이후 관폐 중사로 지정되었다. 본궁, 결사, 오쿠미야 세 곳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즈미 시키부의 와카, 노 연극 '가나와' 등 문학 작품에도 등장한다. 또한, 물에 띄워 점을 치는 '물점 오미쿠지'가 유명하며, 주변에는 가와도코(川床)가 설치되어 은어 요리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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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네 신사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기후네 신사
원어 이름貴船神社 (Kifune Jinja)
본전
종교신토
구라오카미
위치교토부 교토시 사쿄구 구라마 기후네정 180
역사
창건자불명 (한제이 천황 시기로 여겨짐)
설립불명
파괴일해당 사항 없음
건축
건축 양식불명
행사
축제불명
조직
지도자불명
웹사이트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2. 역사

기후네 신사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반정 천황 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8] 진무 천황의 어머니인 타마요리히메가 노란 배를 타고 요도가와, 가모가와, 기부네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 지역에 물의 신을 모신 것이 신사 건립의 시작이라고 한다. 신사의 이름은 '황선(黃船)'에서 유래했으며, 오쿠미야 경내의 '미후네가타 이시'는 타마요리히메가 탔던 배가 작은 돌로 덮인 것이라고 전해진다. '기의 생성 근원'이라는 뜻에서 '기후네'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666년에 처음으로 사당을 고쳐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796년에는 후지와라노 이세토가 도지를 건설하던 중, 기후네 신사의 신이 꿈에 나타나 구라마데라를 건립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일본후기에 기록되어 있다.

818년에는 조정에서 '야마시로국 아타고군 기후네 신'을 대사로 삼았다.[8] 엔기시키에도 같은 이름으로 명신대사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22사 중 하나가 되었으며, 1140년에는 최고 등급인 정1위의 신계를 받았다.

1046년에 홍수로 사당이 유실되자, 1055년에 현재의 본궁 자리에 사당을 다시 짓고 천궁하였다. 원래 신좌지는 오쿠미야가 되었다. 이 신사는 오랫동안 가미가모 신사의 섭사로 여겨졌는데, 이는 1055년의 사당 재건이 계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근세 이후, 이를 불복하는 소송이 계속되었고, 메이지 시대 이후에야 독립된 신사가 되었다. 에도 시대까지는 가미가모 신사의 제신인 가모와케이카즈치노미코토도 함께 모셨다.

1948년에는 신사본청의 별표 신사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천황들은 가뭄에는 검은 말을, 장마에는 흰 말을 바쳐 기원했다고 하며, 나중에는 실제 말 대신 말 모양 판에 색을 칠한 '이타타테우마'를 바쳤다고 한다. 이것이 에마의 원형이 되어, 기후네 신사는 '에마 발상지'로 불리기도 한다.

기후네 신사는 인연을 맺어주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소설이나 만화음양사의 인기로 젊은 커플들이 많이 찾는다. 한편으로는 악연을 끊는 신, 저주신으로도 숭배받아 우시노코쿠마이리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축년 축월 축일 축시'에 기후네 묘진이 기후네 산에 강림했다는 유래에서, 축시에 참배하여 소원을 비는 것은 소원 성취의 방법이며, 저주가 본래의 의미는 아니다.[6]

2. 1. 헤이안 시대

기후네 신사는 초기 헤이안 시대에 황실의 후원을 받았다.[1] 965년, 무라카미 천황은 일본을 수호하는 신에게 중요한 사건을 보고하기 위해 황실 사신을 파견하라고 명령했다. 이 헤이하쿠는 기후네 신사를 포함한 16개 신사에 처음으로 봉납되었다.[2]

1871년부터 1946년까지 기후네 신사는 공식적으로 간페이츄샤(官幣中社) 중 하나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신사 중 두 번째 등급에 해당한다는 의미이다.[3]

이 신사는 또한 우시노토키마이리와 관련이 있다. 이는 머리에 촛불을 켜고 "축시(자시)"에 신사에서 저주를 거는 의식이다. 하시히메 (우지 다리의 공주)가 복수를 위해 스스로를 ''오니'' 악마로 바꾸는 규정된 의식을 기후네 신사에 거주하는 신으로부터 배웠다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이 이야기는 노 연극 ''가나와'' ("철관")에 영원히 기록되었다.[4]

2. 2. 근대

무라카미 천황은 965년에 일본을 수호하는 신에게 중요한 사건을 보고하기 위해 황실 사신을 파견하라고 명령했다. 이 헤이하쿠는 기후네 신사를 포함한 16개의 신사에 처음으로 봉납되었다.[2]

1871년부터 1946년까지 기후네 신사는 공식적으로 간페이츄샤(官幣中社) 중 하나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신사 중 두 번째 등급에 해당한다는 의미이다.[3]

이 신사는 또한 우시노토키마이리와 관련이 있는데, 이는 머리에 촛불을 켜고 "축시(자시)"에 신사에서 저주를 거는 의식이다. 이는 기후네 신사에 거주하는 신으로부터 하시히메 (우지 다리의 공주)가 복수를 위해 스스로를 ''오니'' 악마로 바꾸는 규정된 의식을 배우는 데서 유래되었으며, 이 이야기는 노 연극 ''가나와'' ("철관")에 영원히 기록되었다.[4]

3. 경내

기부네산과 구라마산 사이의 삼림 속 골짜기에 기후네 신사가 자리한다.[11] 신사 앞에는 가모가와강의 상류인 기부네강이 흐르는데, 교토시를 흐르는 가모가와강의 원류로도 여겨진다.[11] 이곳에서 모시는 물의 신 오카미노카미(高龗神)는 예로부터 비를 내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져, 헤이안 시대에는 기우제 85좌(연희식)의 일좌로 여겨졌다. 농업, 발전업뿐 아니라 수도, 음식, 양조, 염색, 목욕탕 등의 업자들도 물의 신을 찾아 기후네 신사를 방문한다. 화마를 막는 힘도 있다고 여겨진다.

천황들은 가뭄 때에는 검은 말을, 장마에는 흰 말을 봉납하여 기원했으며, 후에는 실제 말이 아니라 말 모양 판자에 색을 칠한 판립마(板立馬)를 봉납했다. 이것이 에마의 원형이 되어, 기후네 신사는 에마의 기원이 되는 신사로도 알려져 있다.

'에마의 발상지'로 여겨진다.


인연을 이어준다는 엔무스비노카미 신앙과 소설, 만화 속 음양사의 인기로 젊은 커플들이 많이 찾는다. 한편으로는 연을 끊는 주저신(呪咀神)으로도 알려져 축시의 참배로도 유명하다. 헤이안 시대에는 기후네 신사에 밤에 참배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본래는 저주가 아닌 소원을 비는 의미였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의미가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12]

이곳은 교토에서도 유명한 단풍 명소 중 하나이다. 신수(神水)는 교토 수맥의 원류인 귀선(貴船)에서 흐르는 것으로, 마실 수 있다.

기후네 신사의 사전(社殿)은 본궁, 결사(중궁), 오쿠미야(奧宮)의 3곳으로 나뉘어 있다.

3. 1. 본궁 (本宮)

본궁 참도


사전(社殿)은 본궁, 결사(중궁), 오쿠미야(奧宮)의 3곳으로 나뉘어 세워져 있다.

시설명제신 및 설명
본전다카오카미 신. 2007년에 개축.
배전2007년에 개축.
권전
사문소
정원 '아마츠 이와자카'1965년에 시게모리 미레이에 의해 조성된 석정.
료센카쿠현조로 되어 있다.
시라히게 신사제신: 사루타히코노미코토
우시이치 신사제신: 고노하나노사쿠야히메노미코토
가와오 신사제신: 미즈하노메노미코토
스즈카 신사제신: 오오히코노미코토
조레이 신사제신: 씨족의 조령


3. 2. 결사 (結社, 中宮)

결사(유이노야시로)는 본궁과 오쿠미야(奥宮)의 중간, 본궁에서 상류쪽 300m 지점에 있다. 그 입지 조건 때문에 중궁(中宮, 나카미야)이라고도 불린다.

이와나가히메노미코토를 제신으로 모시며, 인연을 맺어주는 신으로 숭배받는다. 이와나가히메노미코토가 인연을 맺어주는 신으로 여겨지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전승이 있다. 천손 니니기노미코토가 이와나가히메노미코토의 여동생인 고노하나노사쿠야비메와 결혼하려고 했을 때, 자매의 아버지인 오야마즈미노미코토는 이와나가히메노미코토도 함께 받들었다. 그러나 니니기노미코토는 고노하나노사쿠야비메와만 결혼했기 때문에, 이와나가히메노미코토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인연을 맺어주는 신으로서 좋은 인연을 내려주겠다"라고 말하고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경내의 가느다란 풀잎을 묶어 인연을 기원했지만, 현재는 식물 보호를 위해 본궁에서 수여되는 "맺음 글"에 기원문을 써서 지정된 장소에 묶도록 되어 있다.

  • 본전 - 제신: 이와나가히메노미코토
  • 배전
  • 천의 반석배 - "이와나가히메노미코토의 어료선"으로서 1996년 (헤이세이 8년)에 헌납된 배 모양의 자연석.
  • 와카 비(和歌碑) - 이즈미시키부의 가비

3. 3. 오쿠미야 (奧宮)

오쿠미야


오쿠미야(奧宮)는 본궁에서 상류 방향으로 700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이전에는 이곳이 본궁이었다. 야미오카미노카미를 제신으로 모시고 있지만, 타카오카미노카미와 같은 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 본전 - 제신: 야미오카미노카미. 2012년(헤이세이 24년)에 개축. 본전 바로 아래에는 아무도 봐서는 안 된다는 용혈이 있다. 일본 3대 용혈 중 하나라고도 한다.
  • 배소
  • 배전
  • 어선형석 - 돌을 쌓아 배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다. 타마요리히메노미코토가 타고 왔다는 황선의 주위를 돌로 굳힌 것이라고 한다.
  • 신문

4. 신앙

기후네 신사는 물의 신인 다카오카미노카미(高龗神)를 모셔, 농업, 발전업뿐 아니라 수도, 음식, 양조, 염색, 목욕탕 등 물과 관련된 다양한 업종 종사자들이 신앙을 바치고 있다. 화재를 막는 힘도 있다고 여겨진다.[11]

헤이안 시대에는 기우제를 지내는 85좌 중 하나였으며, 예로부터 천황들은 가뭄에는 검은 말을, 장마에는 흰 말을 봉납하여 기원했다. 이후에는 실제 말 대신 말 모양 판에 색을 칠한 판립마(板立馬)를 봉납했는데, 이것이 에마의 원형이 되어 기후네 신사는 에마 발상지로도 알려져 있다.

인연을 맺어주는 엔무스비노카미 신앙이 있어 젊은 커플들이 많이 찾지만, 악연을 끊는 주저신(呪咀神)으로도 알려져 축시의 참배로 유명하다. 헤이안 시대에는 축시에 참배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본래는 저주가 아니라 소원을 비는 의미였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변질되었다.[12]

4. 1. 물의 신

기부네산과 구라마산 사이의 삼림 속 골짜기에 자리하며, 신사 앞에는 가모가와강의 상류인 기부네강이 흐른다. 이 강은 교토시를 흐르는 가모가와강의 원류로도 여겨진다.[11] 예로부터 이곳에서 모시는 물의 신은 비를 내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져 왔으며, 헤이안 시대에는 기우제 85좌(엔기시키)의 일좌로 여겨졌다. 수신(水神)인 오카미노카미(高龗神)를 모시고 있어 농업, 발전업뿐 아니라 수도, 음식, 양조, 염색, 목욕탕 등의 업자들도 주로 방문한다. 화마를 막는 힘도 있다고 여겨진다.

예로부터 천황들은 가뭄 때에는 검은 말을, 장마에는 흰 말을 봉납하여 기원했다고 전해지며, 후에 실제 말이 아니라 말 모양의 판자에 색을 칠한 판립마(板立馬)를 봉납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현재 에마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에 기후네 신사를 에마의 기원이 되는 신사라고 하기도 한다.

4. 2. 인연 맺기

예로부터 천황들은 가뭄 때에는 검은 말을, 장마에는 흰 말을 봉납하여 기원했다고 전해지며, 후에 실제 말이 아니라 말 모양의 판자에 색을 칠한 판립마(板立馬)를 봉납하였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현재 에마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에 기후네 신사를 에마의 기원이 되는 신사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인연을 이어준다는 엔무스비노카미 신앙이 있고, 소설이나 만화 속 음양사의 인기로 젊은 커플들이 많이 방문한다. 한편으로는 연을 끊는 신인 주저신(呪咀神)으로 모셔지기도 하여, 축시의 참배로도 유명하다. 헤이안 시대에는 축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후네 신사에 밤에 참배하는 관습이 있었다. 이때 본래 저주가 아니라 소원을 비는 의미였는데, 시대의 변천과 함께 본래의 의미가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12]

4. 3. 악연 끊기

기후네 신사는 인연을 맺어주는 신으로도 알려져 있어, 소설이나 만화음양사의 인기에 힘입어 젊은 커플들이 많이 찾는다. 한편으로는 악연을 끊는 신, 즉 저주신으로도 숭배받아 우시노코쿠마이리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축년 축월 축일 축시"에 기후네 묘진이 기후네산에 강림했다는 유래에서 알 수 있듯, 축시에 참배하여 소원을 비는 것은 소원 성취를 위한 방법이며, 저주가 본래의 의미는 아니다. 헤이안 시대에는 축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후네 신사에 밤에 참배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시대가 변하면서 본래의 의미가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12]

4. 4. 에마 발상지

예로부터 역대 천황은 가뭄이 들면 검은 말을, 장마가 계속되면 흰 말을 봉납하여 기원했다고 하며, 이후 살아있는 대신 말 모양의 판에 채색한 "이타타테우마"를 봉납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현재 에마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에, 기후네 신사는 "에마 발상지"라고 불린다. 에도 시대에는 나무나 종이에 그린 말 그림을 신사에 봉납하는 에마 풍습이 널리 퍼졌다.

4. 5. 문학

예로부터 기후네 신사는 문학 작품에도 자주 등장했다.

; 와카의 여류 시인 이즈미 시키부(和泉式部)

이즈미 시키부의 노래비


: 와카의 여류 시인 이즈미 시키부가 기후네 신사에 참배했을 때의 노래가 『고습유화가집(後拾遺和歌集)』에 수록되어 있다. "남편(후지와라노 야스마사(藤原保昌))에게 잊혀진 무렵, 기후네 신사에 참배하여, 미타라이가와(御手洗川)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읊은 단가"로, 다음과 같다.

:

:이에 대해 기후네 명신(貴船明神)이 답했다고 전해지는 단가 또한 『고습유화가집』에 수록되어 있다.

:

: 후세에 쓰여진 『사석집(沙石集)』에는, 이 때의 참배 모습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즈미 시키부는 무녀에게 인연 맺기의 제사를 행하게 했는데, 그 일환으로 무녀는 이즈미 시키부의 기모노 옷자락을 걷어 음부를 노출시키는 작법을 강요했다. 이즈미 시키부는 그것을 거부했지만, 그 모습을 남편 야스마사가 신사의 그늘에서 보고 있었고, 그 태도에 감동하여, 그 후에는 부부의 금실이 좋아졌다고 한다.

; 노의 곡 "가나와(鉄輪)"

: 무로마치 시대의 노 제목. "가나와(かなわ)"라고 읽는다. 줄거리는 후처를 맞이한 남편을 전처가 원망하여 기후네 신사에 참배했는데 "붉은 천을 잘라 몸에 두르고, 얼굴에는 주홍을 칠하고, 머리에는 쇠테를 얹고, 촛불을 켜면 귀신이 된다"는 계시를 받는다. 남편은 악몽에 시달리며 아베노 세이메이를 찾아가 귀신이 된 전처와 대결하여 귀신은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이 노는 교토 시내에 있는 "가나와의 우물(鉄輪の井)"에 얽힌 전설이 유래라는 설과, 『헤이케 이야기(平家物語)』 "검의 권(剣之巻)" 및 『타헤이키(太平記)』 내의 "우지 다리 공주(宇治の橋姫)"의 이야기가 유래라는 설이 있다.

4. 6. 오미쿠지(おみくじ)

신수(神水)


기후네 신사의 오미쿠지(제비뽑기)는 제비뽑기를 뽑아 무녀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겉보기에는 새하얀 종이 중에서 한 장을 골라 경내의 영천에 띄우면 길흉을 알 수 있는 "물점 오미쿠지"이다. 본 신사의 오미쿠지에는 '''"대흉"이 실제로 존재'''하지만, 신사 측에서는 "대흉이 나왔다고 해도, 그 이후의 인생이 결정된 것은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참고 정도'로 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본 신사의 오미쿠지에는 QR Translator가 인쇄되어 있어, 본 신사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은 각자의 언어로 오미쿠지를 읽을 수 있다.

5. 주변 환경

기후네 산과 구라마 산 사이의 울창한 숲 속에 자리 잡은 기후네 신사 앞에는 가모가와의 상류인 기후네 강이 흐른다.[5] 예로부터 비를 기원하는 신으로 숭배받았으며, 헤이안 시대에는 기우 85좌(엔기시키)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수신인 다카오카미노카미를 모시며, 농업, 전력, 수도, 음식, 양조, 염색, 목욕탕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신앙을 받고, 화재 예방과 소방의 신으로도 숭배받는다.

역대 천황은 가뭄에는 검은 말을, 장마에는 흰 말을 봉납하여 기원했으며, 이후 말 모양 판인 "이타타테우마"를 봉납했는데, 이것이 에마의 원형이 되어 기후네 신사는 "에마 발상지"로 불린다. 인연을 맺어주는 신이자 악연을 끊어주는 신, 저주신으로도 알려져 우시노코쿠마이리로도 유명하다.

기후네는 교토의 유명한 단풍 명소이며, 신수는 교토 수맥의 근원인 기후네에서 흘러나와 마실 수 있다.[7] 신사 주변에는 요리 여관이 많아 숙박이 가능하며, 여름에는 기후네강 위에 가와도코가 설치되어 은어 요리가 제공된다.


  • 교통

교통편상세 정보
에이잔 전철구라마선 기후네구치역
데마치야나기역에이잔 전철구라마선 이용, 기후네구치역까지 약 25분
교토 시영 지하철 가라스마선 고쿠사이카이칸역교토 버스 52번 이용, 기후네구치역까지 약 25분 (단, 지하철·버스 1일권 이용 시 편도 200엔 추가 요금 필요)


  • 기후네에는 주차장이 거의 없으므로,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한다. 승차 정원 11명 이상 차량은 날짜와 시간을 정하여 주변 도로 통행이 금지된다.[10]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벤케이 관련 관광지로 구라마데라와 함께 둘러보는 코스가 인기 있다. 일반적인 코스는 에이잔 전철 구라마선구라마역에서 구라마 산삭 철도산몬역~다호토역을 타고 구라마데라, 구라마데라 영보전~마왕전을 거쳐 기후네 신사를 참배하고 기후네구치역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5. 1. 자연

기부네산과 구라마산 사이의 숲 속 골짜기에 자리한다.[5] 신사 앞에는 가모가와의 상류인 기후네 강이 흐르며, 교토시를 흐르는 가모가와의 발원지로도 여겨진다.[5]

예로부터 비를 내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져 왔으며, 헤이안 시대에는 기우 85좌(엔기시키)의 하나로 지정되었다.[11] 수신인 다카오카미노카미를 모시고 있어 농업 및 발전 관계자뿐만 아니라 수도, 음식, 양조, 염색, 목욕탕 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신앙을 받으며, 화재 예방의 신, 소방의 신으로도 숭배받고 있다.[11]

이 부근은 교토에서도 유명한 단풍 명소 중 하나이다. 신수(神水)는 교토 수맥의 원류인 기후네에서 흐르는 것으로 마실 수 있다.[7]

5. 2. 가와도코(川床)

기후네 신사는 기후네 산과 구라마 산 사이의 울창한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신사 앞에는 가모가와의 상류인 기후네 강이 흐르고 있다.[5]

이 섹션의 제목은 '가와도코(川床)'이지만,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가와도코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가와도코에 대한 내용은 작성할 수 없다.

6. 기타 정보

기부네산과 구라마산 사이의 삼림 속 골짜기에 자리한다.[11] 신사 앞에는 가모가와강의 상류에 위치한 기부네강이 흐르고 있는데, 교토시를 흐르는 가모가와강의 원류로도 여겨진다.[11] 이곳에서 모시는 물의 신은 예로부터 비를 내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져 헤이안 시대에는 기우 85좌(연희식)의 일좌로 여겨졌다. 수신(水神)인 오카미노카미(高龗神)를 모시고 있어 농업, 발전업뿐 아니라 수도, 음식, 양조, 염색, 목욕탕 등의 업자들도 주로 방문한다. 화마를 막는 힘도 있다고 여겨진다.

예로부터 천황들은 가뭄 때에는 검은 말을, 장마에는 흰 말을 봉납하여 기원했다고 전해지며, 후에는 실제 말이 아니라 말 모양의 판자에 색을 칠한 판립마(板立馬)를 봉납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현재 에마의 원형이 되었기 때문에 기후네 신사를 에마의 기원이 되는 신사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인연을 이어준다는 엔무스비노카미 신앙도 있고, 소설이나 만화 속 음양사에 의한 인기로 젊은 커플들이 많이 방문한다. 한편으로는 연을 끊는 신인 주저신(呪咀神)으로 모셔지기도 하여, 축시의 참배로도 유명하다. 헤이안 시대에는 축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후네 신사에 밤에 참배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때는 본래 저주가 아니라 소원을 비는 의미였으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본래의 의미가 변질된 것으로 보인다.[12]

이 부근은 교토에서도 유명한 단풍 명소 중 하나이다. 신수(神水)는 교토 수맥의 원류인 귀선(貴船)에서 흐르는 것으로 마실 수 있다.

6. 1. 분사(分社)

기후네 신사에서 分社일본어를 받은 기후네 신사(貴船神社일본어, 貴布禰神社일본어, 木船神社일본어, 木舟神社일본어, 貴舩神社일본어 등)는 일본 각지에 약 450개 사가 있으며, 제신을 동일하게 하고 '오카미'를 사명으로 하는 신사(龗神社일본어, 다카오카미 신사, 闇龗神社일본어, 大龗神社일본어 등)는 2,000개 사를 넘는다. ('''기후네 신사 (동음이의)''' 참조)

참조

[1] 서적 Shinto in History: Ways of the Kami https://books.google[...] 2000
[2] 서적 Studies in Shinto and Shrines 1962
[3] 서적 The Imperial House of Japan 1959
[4] 서적 Women in medieval Japan: motherhood, household management and sexuality https://books.google[...] Monash Asia Institute
[5] 서적 探訪 神々のふる里 6:平安京の神々 小学館 1982
[6] 간행물 神社だより12号 http://www.kibune.jp[...] 貴船神社 1993-12-01
[7] 서적 水の環境史「京の名水」はなぜ失われたか PHP研究所 2001
[8] 서적 日本紀略 新訂増補国史大系普及版
[9] 웹사이트 貴布禰総本宮 貴船神社 http://www.kibune.or[...]
[10] 웹사이트 おいでやす京の奥座敷 貴船へ http://www.kibune.or[...]
[11] 서적 探訪 神々のふる里 6:平安京の神々 小学館 1982
[12] 보도자료 神社だより12号 http://www.kibune.jp[...] 貴船神社 199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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