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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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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만중은 1918년 울산 출생으로, 삼도물산을 설립하여 한국 섬유 산업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이다. 도요타 통상에서 근무하고 조선실업에서 섬유 분야 경력을 쌓은 후, 1951년 신광무역을 설립하여 무역업에 진출했다. 1960년 삼도물산을 설립하여 봉제 의류 수출을 시작으로 급성장시켰으며, 이후 건설, 전자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87년 경영권을 세 아들에게 물려주고, 1996년 사망했다. 그는 수출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여러 차례 대통령 표창과 산업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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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 (기업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삼도 창업주 김만중
삼도 창업주 김만중
본관월성
출생일1918년 8월 13일
출생지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면 어음리
사망일1996년 7월 5일
직업기업인
소속삼도그룹
경력삼도그룹 창업자, 초대 회장

2. 생애

기업인 김만중은 1918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태어나 언양초등학교부산제2상업학교를 졸업했다.[3][4]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타 통상에서 근무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광복 이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섬유 및 무역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5]

1960년, 자본금 500만으로 삼도물산을 설립하여 한국 최초로 제조 의류 수출을 성공시켰다.[5] 그는 점진적인 성장과 전문가 존중, 여성 인력 활용 등 합리적인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회사를 성장시켰다.[5] 삼도물산은 빠르게 성장하여 1970년대 국내 최고의 의류 수출 기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1979년에는 단일 의류 품목으로 수출액 1억달러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5]

1980년대에는 삼도종합개발, 삼도건설, 삼도전자 등을 설립하며 건설업과 전자 산업으로 사업 영역을 다각화했다.[6] 1987년에는 세 아들에게 그룹 경영권을 승계했다.[6] 그러나 이후 삼도그룹은 해외 수입 할당제와 외환 위기 등의 여파로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1995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2. 1. 출생 및 학력

1918년 양력 8월 13일(음력 7월 7일),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면 어음리(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아버지 김영진과 어머니 이봉순 사이의 5남 2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 월성이며,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의 37대손이다.[3] 김만중의 증조부 때까지는 경주에 살았으나, 조부 때 언양으로 이주했다.

언양공립보통학교(현 언양초등학교)와 부산제2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4]를 졸업한 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 2. 초기 경력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도요타 통상 주식회사(구 토멘)에 입사하여 동남아시아, 특히 태국에서 근무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방콕에 머물렀다. 당시 다른 사람들이 안전 자산으로 금, 은, 보석 등을 사들일 때, 그는 은행에 모든 돈을 예금했다. 그러나 광복 이후 전후 혼란기에 은행 예금은 가치를 잃어버렸고, 그는 이 경험을 교훈 삼아 1970년대 쌀 100포대 값에 해당했던 1700THB가 적힌 낡은 통장을 계속 간직했다고 한다.[5]

광복 후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서울에 정착했다. 그는 섬유 산업에서의 경험을 살려 조선실업에 입사하여 섬유 분야에서 경력을 이어갔다. 1951년에는 직접 신광무역을 설립하며 무역업에 뛰어들었다.[5]

2. 3. 삼도물산 설립과 성장

1960년 4월, 김만중은 자본금 500만으로 삼도물산을 설립했다. 무역회사 천우사와 협력하여 한국 최초로 제조 의류 수출을 성사시켰는데, 처음 수출된 품목은 4달러짜리 바지였다. 김만중과 천우사 회장은 이를 계기로 보세 가공 분야에 진출했다.[5]

김만중은 "모든 일은 자기 능력에 맞게 해야 한다"는 지론 아래 점진적인 성장을 추구했으며, 다른 기업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경영 방식을 강조했다.[5]

:''“모든 일은 자기 능력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이것은 사업뿐만 아니라 가정과 개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원칙입니다. 다른 사람이 시장에 간다고 해서 빈손으로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5]

그는 겸손함을 바탕으로 전문가에게 업무를 위임하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경영 방식을 택했다.[5]

:''“저는 탐욕을 부리고 아는 체하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저는 전문가들에게 위임하고 그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지원합니다.”''[5]

또한, 김만중은 당시로서는 선구적으로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효율적인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등 진보적인 통찰력을 보여주었다.[5]

:''“인력 부족 시대에, 우리는 인력 및 생산 관리 측면에서 새로운 기술을 고안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10년 이상 경력의 숙련된 여성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 여성들은 1~2년만 일하고 그만두거나 결혼합니다. 이는 엄청난 인력 낭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적 자원 관리 측면에서 숙련된 인력의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5]

삼도물산은 빠르게 성장하여 1963년 80만달러, 1965년 270만달러, 1973년 35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국내 최고의 봉제 수출업체이자 의류 전문 수출업체로 자리매김했다. 1974년 9월에는 지퍼 공장을 설립했으며, 1979년 11월에는 단일 의류 품목으로 수출액 1억달러를 국내 최초로 달성하는 성과를 이루었다.[5]

2. 4. 경영 다각화와 승계

1980년 삼도 기업 창립 20주년을 맞아 김만중은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되었다.[6] 같은 해 삼도종합개발과 삼도건설을 설립하여 회사를 확장하고 건설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6] 중동과 한국에서 사무실 건물 및 다양한 사회 기반 시설 개발을 시작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6]

또한, 삼도전자를 통해 오디오 제품을 수출하고 메리야스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등 경영 다각화를 추진했다.[6] 1987년, 김만중은 삼도 그룹과 그 자회사들의 경영권을 세 아들에게 물려주었다.[6]

2. 5. 경영난과 법정관리

삼도그룹은 해외 수입 할당제와 외환 위기 등 여러 요인으로 경영난이 심화되었다. 결국 1995년에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었다.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계열사 중 동해터미널, 풍무엔지니어링, 삼도 괌 호텔 등 3개사를 매각하고 계열사가 보유한 부동산을 처분하는 내용의 계획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3. 사망

1996년 7월 5일 오후 3시 30분경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향년 78세로 타계하였다.[16] 장례식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삼성서울병원에서 치러졌다.

4. 상훈

수출의 날 행사에서 여섯 차례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한국 수출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주요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연도훈격 또는 상비고
총 6회대통령 표창수출의 날 기념
1968년동탑산업훈장삼도물산
1976년은탑산업훈장삼도물산
1977년금탑산업훈장제14회 수출의 날, 수출업체 최고 영예
1979년1억불 수출의 탑섬유 제품 단일 품목 최초 수출 1억달러 달성
1998년은탑산업훈장삼도그룹 (대신통상), 사후 수상


5. 가족 관계

김만중은 추영수(秋永壽, 1926~2012)와 결혼하여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관계이름 (한자)생년
배우자추영수 (秋永壽)1926 ~ 2012
장남김상헌1948 ~
장녀김의순1950 ~
차남김재헌1954 ~
삼남김재하1955 ~


6. 기타 경력


  • 한국의류수출조합 이사장[17][9]
  • 한국보세가공품수출협회 회장/부회장[18][10]
  • 재단법인 백양장학회 제1대 이사장[19][11]
  • 도멘 (현 토요타통상) 명예고문 (1992)

참조

[1] 문서
[2] 웹사이트 "≪TIN 뉴스≫ 섬유 단일 업종 최초 100억불 수출 30돌(1)" http://www.tinnews.c[...] 2023-05-17
[3] 웹사이트 "[김영호 특별기고] 신라의 마지막 왕자(王子) 영분공(永芬公)" http://www.kbsm.net/[...] 2020-09-28
[4] 웹사이트 주목받는 부산상고 사람들 https://m.mk.co.kr/n[...] 2002-04-26
[5] 웹사이트 필승사장학삼도그룹사장 김만중 https://www.mk.co.kr[...] 1979-01-22
[6] 웹사이트 삼도그룹 2세경영체제로 https://www.mk.co.kr[...] 1987-12-01
[7] 웹사이트 "[패션월드] 대신통상 김재헌 사장 인터뷰" https://www.sedaily.[...] 1998-12-03
[8] 웹사이트 "타계한 김만중 삼도물산회장 의류수출 개척..."섬유대부"" https://www.mk.co.kr[...] 1996-07-06
[9] 웹사이트 "타계한 김만중 삼도물산회장 의류수출 개척..."섬유대부"" https://www.mk.co.kr[...] 1996-07-06
[10] 웹사이트 회장전택보씨선출 보세가공수협정총 https://www.mk.co.kr[...] 1968-02-19
[11] 웹사이트 노무현 전 대통령 '자랑스런 백양인상' https://www.busan.co[...] 2023-08-26
[12] 웹인용 필승사장학삼도그룹사장 김만중 https://www.mk.co.kr[...] 2023-05-10
[13] 웹인용 필승사장학삼도그룹사장 김만중 https://www.mk.co.kr[...] 2023-05-10
[14] 웹인용 "≪TIN 뉴스≫ 섬유 단일 업종 최초 100억불 수출 30돌(1)" http://www.tinnews.c[...] 2023-05-10
[15] 웹인용 삼도그룹 2세경영체제로 https://www.mk.co.kr[...] 2023-05-10
[16] 웹인용 김만중 삼도그룹회장 別世 https://www.joongang[...] 2023-05-10
[17] 웹인용 "타계한 김만중 삼도물산회장 의류수출 개척..."섬유대부"" https://www.mk.co.kr[...] 2023-08-26
[18] 웹인용 회장전택보씨선출 보세가공수협정총 https://www.mk.co.kr[...] 2023-08-26
[19] 웹인용 노무현 전 대통령 '자랑스런 백양인상' https://www.busan.co[...]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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