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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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희중은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대주교이다. 1947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나 광주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대건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로마 유학을 마치고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로 20년간 재직했으며, 2003년 광주대교구 보좌주교, 2009년 부교구장 대주교를 거쳐 2010년 광주대교구장에 임명되었다. 그의 문장은 흰 비둘기, 일곱 줄기 빛살, 세 줄기 파도 등의 상징을 담고 있으며, 사목 표어는 '주님 뜻대로'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광주가톨릭대학교 동문 - 조환길
조환길은 1954년 대구 출생으로 1981년 사제 서품을 받고 대구대교구에서 사목하다가 2010년 대구대교구 교구장에 임명된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사제이자 대주교이다. - 광주가톨릭대학교 동문 - 이태석
이태석는 한국인 로마 가톨릭 신부이자 의사, 교육자, 음악가로서, 남수단 톤즈에서 의료 봉사, 교육, 구호 활동을 펼치며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고 브라스 밴드를 조직하는 등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 윤공희
윤공희는 1950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광주대교구 대주교를 역임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들을 보호하고 민주주의 회복에 헌신한 대한민국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이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 옥현진
옥현진은 1994년 사제 서품을 받고 2011년 광주대교구 보좌주교이자 페데로디아나의 명의 주교로 임명된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주교이며, 그의 문장은 예수 성심, 올리브 잎,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고 사목 표어는 "Manete in me(내 안에 머물러라)"이다. -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대주교 - 최영수
최영수는 1970년 사제 서품을 받은 대한민국의 가톨릭 성직자로서, 가톨릭신문 사장과 대구 평화방송 초대 사장을 역임하여 언론 선교에 힘썼고,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형제 폐지 운동과 환경 운동에 헌신했으며, 제9대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을 지냈다. -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대주교 - 윤공희
윤공희는 1950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광주대교구 대주교를 역임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들을 보호하고 민주주의 회복에 헌신한 대한민국 로마 가톨릭교회 성직자이다.
김희중 (대주교)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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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직함 | 광주대교구 명예 대주교 |
교회 | 로마 가톨릭교회 |
관구 | 광주대교구 |
로마자 표기 | Gim Hui-jung |
한글 | 김희중 |
한자 | 金喜中 |
사목 이력 | |
서품 | 1975년 |
주교 서품 | 2003년 6월 24일 |
광주대교구장 임명 | 2010년 4월 9일 |
광주대교구장 퇴임 | 2022년 11월 19일 |
개인 정보 | |
출생일 | 1947년 1월 21일 |
출생지 | 전라남도 목포시 |
학력 | 광주 대건신학대학교 졸업 |
모교 |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 |
좌우명 | 주님 뜻대로 (FIAT VOLUNTAS DOMlNI) |
2. 약력
1947년 2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아버지 김용섭(베드로)과 어머니 박영님의 3남 3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6] 형제로는 큰누나 김복순 수녀와 형 석중(프란치스코), 작은누나 덕순(데레사), 여동생 정순(안나), 남동생 대중(요한)이 있다.[6] 김희중은 목자로서의 길을 걷는 데 전통적 교우 집안의 신앙 배경이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6] ‘6남매 전부 다 성직자와 수도자가 되길’ 바라는 부모와 함께 매일 미사에 참례하면서 자연스레 사제 성소의 싹을 키웠다.[6] 김희중의 형제들은 “대주교는 동네 친구들이 흙장난을 하며 뛰어놀 때에도 집안에서 조용히 십자가와 성상 앞에서 보자기를 두르고 ‘미사 놀이’를 즐기곤 했다.”라고 회상했다.[6]
김희중은 당시 집안이 너무 가난해 언제나 완행열차를 타고 다녔는데 항상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5분이 황금 같은 시간”이라며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6]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 신학교 방학 때면 공소에서 궂은일은 도맡아서 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가르치곤 했다.[6]
김희중은 목포중학교와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를 거쳐 오늘날 광주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대건신학대학을 졸업했다.[6] 1975년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6] 그는 이듬해 로마로 유학,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고대 교회사’를 전공했다.[6] 김희중은 1983년부터 20년간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6] 재직 당시 학위논문을 작성하여 1986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6] 2003년 7월 9일 광주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었으며, 그해 8월 주교품을 받았다.[6] 2009년 7월 10일에는 광주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다.[6]
2010년 3월 25일 광주대교구장 최창무(안드레아) 대주교가 교구장직을 사임함에 따라, 김희중 주교가 교구장직을 자동 승계받아 제9대 광주 대교구장이 되었다.[6] 착좌식은 4월 30일 오후 2시에 임동 주교좌 성당에서 거행되었다.[6] 2010년 6월 29일 바티칸 시국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팔리움을 받았다.[6]
2. 1. 생애 초기
김희중은 1947년 2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아버지 김용섭(베드로)과 어머니 박영님의 3남 3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6] 형제로는 큰누나 김복순 수녀와 형 석중(프란치스코), 작은누나 덕순(데레사), 여동생 정순(안나), 남동생 대중(요한)이 있다.[6] 김희중은 목자로서의 길을 걷는 데 전통적 교우 집안의 신앙 배경이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6] ‘6남매 전부 다 성직자와 수도자가 되길’ 바라는 부모와 함께 매일 미사에 참례하면서 자연스레 사제 성소의 싹을 키웠다.[6] 김희중의 형제들은 “대주교는 동네 친구들이 흙장난을 하며 뛰어놀 때에도 집안에서 조용히 십자가와 성상 앞에서 보자기를 두르고 ‘미사 놀이’를 즐기곤 했다.”라고 회상했다.[6]김희중은 당시 집안이 너무 가난해 언제나 완행열차를 타고 다녔는데 항상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5분이 황금 같은 시간”이라며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6]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아 신학교 방학 때면 공소에서 궂은일은 도맡아서 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가르치곤 했다.[6]
김희중은 목포중학교와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를 거쳐 오늘날 광주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대건신학대학을 졸업했다.[6] 1975년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6] 그는 이듬해 로마로 유학,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고대 교회사’를 전공했다.[6] 김희중은 1983년부터 20년간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6] 재직 당시 학위논문을 작성하여 1986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6]
2. 2. 학력 및 사제 서품
김희중은 1947년 2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출생했다. 목포중학교와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를 거쳐 광주 가톨릭 대학교의 전신인 대건신학대학을 졸업했다.[6] 1975년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으며,[6] 이듬해 로마로 유학,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고대 교회사 전공으로 1986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6] 1983년부터 20년간 광주 가톨릭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6]2. 3. 주교 서품 및 광주대교구장 임명
김희중은 1947년 2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출생하였다. 광주 살레시오 고등학교와 광주 가톨릭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윤공희 대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6] 이듬해 로마로 유학,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고대 교회사 전공으로 1986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6] 1983년부터 20년간 광주 가톨릭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6]2003년 7월 9일 광주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었으며, 그해 8월 주교품을 받았다.[6] 2009년 7월 10일 부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되었다.[6] 2010년 3월 25일 최창무 대주교가 교구장직을 사임함에 따라 교구장직을 자동 승계, 제9대 광주 대교구장이 되었다.[6] 착좌식은 4월 30일 오후 2시 임동 주교좌 성당에서 거행되었다.[6] 2010년 6월 29일 바티칸 시국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팔리움을 받았다.[6]
3. 주요 활동
3. 1. 5.18 민주화운동 관련 활동
3. 2.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
3. 3. 종교 간 대화 및 화합 노력
4. 문장
남색 바탕의 문장 안에는 흰색 비둘기와 일곱 줄기 빛살, 세 줄기 파도가 그려져 있다. 남색은 천상의 색으로 영원과 무한함을 뜻한다.[7]
성령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는 날개와 꼬리를 사람의 손과 발로 형상화해 일상 안에서 함께하는 성령의 손발을 나타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그리스도의 섬김을 본받고 모든 이를 위한 착한 목자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성령의 힘으로 교구민 일치와 평화, 지역 복음화에 대한 의지이기도 하다.[7]
일곱 줄기 빛살은 칠성사와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 그리고 빛고을 광주대교구를 비추는 빛이다. 특별히 가운데 긴 세 줄기 빛은 입문성사인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나타낸다.[7]
세 줄기의 파도는 교구 지역 특징인 다도해의 푸른 물결과 내륙을 흐르는 영산강, 섬진강, 탐진강을 표상한다.[7]
문장 위 이중 십자가는 광주대교구와 사도 바오로의 칼을 상징하며 문장 아래에는 사목표어인 ‘주님 뜻대로(FIAT VOLUNTAS DOMINI)’가 적혀 있다. 사목표어는 루카 복음서 1장 38절 말씀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긴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르겠다는 의지다. 표어가 적힌 리본의 파란색은 성모님 색깔을 의미한다.[7]
가장 윗부분에 자리한 4개의 술을 달고 있는 갓은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을 상징한다.[7]
4. 1. 상징적 의미
남색 바탕의 문장 안에는 흰색 비둘기와 일곱 줄기 빛살, 세 줄기 파도가 그려져 있다. 남색은 천상의 색으로 영원과 무한함을 뜻한다.[7]성령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는 날개와 꼬리를 사람의 손과 발로 형상화해 일상 안에서 함께하는 성령의 손발을 나타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그리스도의 섬김을 본받고 모든 이를 위한 착한 목자의 마음을 담은 것이다. 성령의 힘으로 교구민 일치와 평화, 지역 복음화에 대한 의지이기도 하다.[7]
일곱 줄기 빛살은 칠성사와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 그리고 빛고을 광주대교구를 비추는 빛이다. 특별히 가운데 긴 세 줄기 빛은 입문성사인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나타낸다.[7]
세 줄기의 파도는 교구 지역 특징인 다도해의 푸른 물결과 내륙을 흐르는 영산강, 섬진강, 탐진강을 표상한다.[7]
문장 위 이중 십자가는 광주대교구와 사도 바오로의 칼을 상징하며 문장 아래에는 사목표어인 ‘주님 뜻대로(FIAT VOLUNTAS DOMINI)’가 적혀 있다. 사목표어는 루카 복음서 1장 38절 말씀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긴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르겠다는 의지다. 표어가 적힌 리본의 파란색은 성모님 색깔을 의미한다.[7]
가장 윗부분에 자리한 4개의 술을 달고 있는 갓은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을 상징한다.[7]
4. 2. 사목 표어
남색 바탕의 문장 안에는 흰색 비둘기와 일곱 줄기 빛살, 세 줄기 파도가 그려져 있다.[7] 남색은 천상의 색으로 영원과 무한함을 뜻한다.[7]성령을 상징하는 흰 비둘기는 날개와 꼬리를 사람의 손과 발로 형상화해 일상 안에서 함께하는 성령의 손발을 나타냈다.[7] 이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그리스도의 섬김을 본받고 모든 이를 위한 착한 목자의 마음을 담은 것이며, 성령의 힘으로 교구민 일치와 평화, 지역 복음화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다.[7]
일곱 줄기 빛살은 칠성사와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 그리고 빛고을 광주대교구를 비추는 빛이다.[7] 특별히 가운데 긴 세 줄기 빛은 입문성사인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나타낸다.[7]
세 줄기의 파도는 교구 지역 특징인 다도해의 푸른 물결과 내륙을 흐르는 영산강, 섬진강, 탐진강을 표상한다.[7]
문장 위 이중 십자가는 광주대교구와 사도 바오로의 칼을 상징하며 문장 아래에는 사목표어인 ‘주님 뜻대로(FIAT VOLUNTAS DOMINI)’가 적혀 있다.[7] 사목표어는 루카 복음서 1장 38절 말씀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긴 성모 마리아의 모범을 따르겠다는 의지다.[7] 표어가 적힌 리본의 파란색은 성모님 색깔을 의미한다.[7]
가장 윗부분에 자리한 4개의 술을 달고 있는 갓은 한국의 첫 사제 김대건을 상징한다.[7]
참조
[1]
웹사이트
ASIA/KOREA - KWANGJU ARCHDIOCESE, REV. HYGINUS KIM HEE-JONG APPOINTED AUXILIARY
http://www.fides.org[...]
2003-07-10
[2]
웹사이트
Archbishop Hyginus Hee-joong Kim
https://www.ucanews.[...]
[3]
웹사이트
New Archbishop of Kwangju
http://www.cbck.or.k[...]
2010-04-09
[4]
웹사이트
Archbishop of Kwangju resigns, successor appointed
https://fides.org/en[...]
2010-03-25
[5]
웹사이트
Korea, Msgr. Kim elected president of Bishops. Bishop You to Justice and Peace
http://www.asianews.[...]
2014-10-30
[6]
뉴스
"[김희중 주교 광주대교구 부교구장 임명] 김희중 대주교가 걸어온 길"
http://www.catholict[...]
가톨릭신문
2009-07-19
[7]
뉴스
김희중 대주교 새 문장 해설
http://web.pbc.co.kr[...]
평화신문
2009-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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