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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슈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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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세이 2슈긴은 1859년 미일 화친 조약에 따라 요코하마 항 개항에 대비하여 주조된 무역 거래 전용 은화이다. 고반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발행되었으며, '무역 2슈' 또는 '바보 2슈'라고도 불렸다. 흑선 내항 이후 미국과의 화폐 교환 비율 협상에서 난항을 겪은 막부는, 1달러를 1분으로 계산하여 금은 비가를 국제 수준보다 높게 설정하려 했다. 1달러를 이치분긴 3매로 교환해야 한다는 해리스의 주장을 수용하여 안세이 고반과 함께 발행되었지만, 개항장에서만 통용되고 국내에서는 이치분긴으로 환전해야 하는 문제로 인해 22일 만에 통용이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외국인들은 1달러 은화를 이치분긴으로 교환하고 고반으로 환전하여 국외로 반출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일본 국내에서는 금화 부족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량의 금 유출은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고, 막부의 권위 실추와 경제적 혼란을 야기하여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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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슈긴
기본 정보
종류정화 은화
액면 가격2 주
무게약 5.6g
재질
역사
주조 시기에도 시대
첫 발행분세이 연간 (1818년-1829년)
마지막 발행안세이 연간 (1854년-1860년)
발행 목적덴포 개혁의 일환으로 긴자에서 주조
이전 화폐이치부긴
다음 화폐만엔 이치부긴
특징
형태장방형
앞면"니슈긴 (二朱銀)" 묵서
뒷면"정 (政)" 묵서, 고토 조베이의 사인

2. 안세이 2슈긴 주조 배경

가에이 6년(1853년), 우라가 앞바다에 미국 해군의 흑선이 나타나면서 막부는 개항 압력을 받게 되었다. 이후 미일 화친 조약 체결에 따라 안세이 원년 5월 17일 (1854년)부터 시모다의 료센지에서 일본 화폐와 서양 화폐의 교환 비율을 정하기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다.[3][4]

협상에서 미국 측은 금화은화는 각각 같은 질량을 기준으로 교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막부 측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맞섰다.


  • 1달러 은화는 자체(지금)로 간주하여 순은량(6몬메 2분, 약 23.2g)을 당시 통용되던 덴포 쵸긴으로 평가하면 약 16몬메가 되는데, 이는 고반 1냥의 약 1/4에 해당하므로 1달러 = 1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 또한 이치분긴은 실제 은 함량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명목 화폐이며, 을 기준으로 하는 본위 화폐인 고반으로 교환할 수 있는 교환권의 성격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초기 협상에서는 양측의 입장 차이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안세이 3년 9월 9일 (1856년), 시모다에서 초대 주일 미국 총영사 해리스와 새로운 협상이 시작되었다. 해리스는 당시 유통되던 덴포 이치분긴의 무게(2.3몬메, 약 8.62g)가 1달러 은화(약 26.73g) 무게의 약 1/3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무게 비율에 따라 1달러를 이치분긴 3매와 교환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3][4] 해리스는 중국과의 무역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화폐 단위를 중국의 테일(약 37.3g)과 유사하게 이해했는데, 1달러 은화가 약 3/4 테일, 이치분긴이 약 1/4 테일의 무게를 가진다는 점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결국 막부는 "실질 가치에 못 미치는 명목 화폐는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없다"는 해리스의 논리에 밀려, 1달러 = 3분이라는 불리한 교환 비율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결정은 이후 일본 내 금은 비가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막대한 양의 이 해외로 유출되는 배경이 되었으며, 안세이 2슈긴 주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3. 안세이 2슈긴의 특징 및 문제점

안세이 2슈긴


'''안세이 2슈긴'''(安政二朱銀)은 미일 화친 조약 체결 이후 1859년(안세이 6년) 6월 2일 요코하마항 개항을 앞두고, 고반의 해외 유출을 방지할 목적으로 같은 해 5월 25일부터 발행된 무역 거래 전용 은화이다. 이 때문에 '''무역 2슈'''(貿易二朱)라고도 불린다.

화폐의 크기는 컸으나 액면 가치는 이치분긴의 절반에 불과하여 '''바보 2슈'''(바보二朱)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1]. 또한, 본래의 발행 목적이었던 금 유출 방지에 실패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2].

안세이 2슈긴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액면가와 실제 은 함량의 불일치였다. 액면가는 이치분긴의 절반이었지만, 포함된 은의 양은 오히려 이치분긴의 약 4/3배에 달했다. 이전까지 질 낮은 화폐(악화) 발행에 익숙했던 에도 막부로서는 은 함량이 높은 안세이 2슈긴의 대량 발행을 꺼렸고, 결국 사용처를 무역 거래로 한정하게 되었다. 이 화폐 주조에 필요한 은을 조달하기 위해 은 함량을 낮춘 안세이 쵸긴을 발행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안세이 쵸긴은 안세이 2슈긴 주조가 중단된 지 반년 후인 1860년 1월 19일(안세이 6년 12월 27일)에 발행되었다[1].

안세이 2슈긴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1859년 6월 2일부터 개항장에서 1달러 은화와의 교환이 시작되었지만, 통용 지역이 개항장으로 한정되었다. 당시 일본 국내에서는 여전히 이치분긴이 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안세이 2슈긴을 국내에서 사용하려면 이치분긴으로 환전해야만 했다. 이는 화폐로서의 기본적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심각한 결함이었다.

또한, 에도 막부는 안세이 2슈긴 발행을 통해 외국 은화인 1달러를 1분(이치분긴 1매)으로 교환하려 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일본 내에서 1달러 은화의 구매력을 기존의 1/3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조치였다. 이에 미국 총영사 해리스영국 공사 올콕 등 외국 사절단은 조약 위반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결국 에도 막부는 외국 사절단의 항의를 받아들여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6월 22일에는 1달러 은화를 이치분긴 3매로 교환하도록 개항장 책임자에게 지시했다. 다음 날인 23일, 안세이 2슈긴은 발행된 지 불과 22일 만에 통용이 중지되었다. 이는 에도 막부의 통화 정책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안세이 2슈긴의 실패와 이후 1달러=3분 교환 정책은 외국인들이 1달러 은화를 이치분긴 3매로 바꾼 뒤, 이를 다시 고반으로 환전하여 해외로 유출시키는 경로를 열어주었고, 결과적으로 막대한 양의 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문제를 심화시켰다[4].

4. 안세이 2슈긴의 통용 중지와 그 영향

개항장에서 6월 2일부터 1달러 은화와의 교환이 시작되었지만, 안세이 2슈긴은 개항장에서만 통용되는 화폐였고 일본 국내에서는 여전히 이치분긴이 일반적으로 유통되었다. 따라서 외국 상인이 받은 2슈긴은 국내에서 사용하려면 이치분긴으로 다시 환전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는 안세이 2슈긴이 화폐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함을 의미했다.[1]

또한, 1달러 은화의 일본 내 구매력을 실질적으로 1/3로 줄이는 이 정책에 대해 해리스와 올콕 등 외국 공사들은 조약 위반이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결국 6월 22일, 막부는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 날인 23일부터는 1달러 은화를 이치분긴 3매로 교환하도록 개항장 봉행에게 지시했다. 이로써 안세이 2슈긴의 통용은 발행 22일 만에 중지되었고, 함께 발행되었던 안세이 고반 역시 4개월도 채 안 되어 주조가 중단되는 결과를 맞았다.

이 조치로 인해 외국인들은 1달러 은화를 이치분긴 3매로 교환한 뒤, 이 이치분긴 4매를 고반 1냥으로 환전하여 국외로 반출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당시 일본의 금은 비가는 국제 시세보다 금의 가치가 훨씬 높게 책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레셤의 법칙을 현실화시켰다. 양질의 화폐인 고반은 해외로 유출되어 시중에서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명목 화폐인 2슈판이나 이치분긴만이 유통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외국인들의 달러-이치분긴 환전 요구가 쇄도하면서 개항장에서는 이치분긴이 순식간에 동이 났고, 고반으로의 환전에는 높은 프리미엄(증보)이 붙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막대한 양의 고반이 해외로 유출되면서 일본 국내는 심각한 금화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외국 상인들은 이러한 환전 과정을 1년에 5~6차례 반복하며 이익을 챙겼다고 전해진다.[4]

이치분긴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월 29일, 해리스는 멕시코 은화나 1달러 은화를 이용해 이치분긴을 새로 주조할 것을 제안했다. 막부는 이를 받아들여 8월 13일부터 외국 양은과 동일한 은 함량으로 안세이 이치분긴을 발행했다. 그러나 이는 고반 유출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더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안세이 이치분긴 발행에도 불구하고 무역항 주변의 이치분긴 부족 현상은 해소되지 않았다. 해리스는 막부에 이치분긴 증주를 계속 요구했지만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자, 외국 은화에 직접 각인을 찍어 3분의 가치로 통용시키도록 요구했다.[3][6] 이에 따라 멕시코 8레알 은화 등에 '改三分定|개삼분정일본어'이라는 각인을 찍은 개3분정은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 각인 은화는 일본 국내에서는 액면가보다 낮은 2분 2슈 정도로밖에 통용되지 않았으며, 안세이 6년 12월 29일 (1860년 1월 21일)부터 시작된 각인 작업은 이듬해인 만엔 원년 5월 12일 (1860년)까지만 시행되고 단기간에 중단되었다.[1][4]

훗날 영국 총영사였던 올콕은 자신의 저서 '대군의 도시' (The Capital of the Tycoon영어)에서 일본의 본위 화폐인 덴포 고반이 실제 금 함량(약 4달러 가치)에 비해 이치분긴과의 교환 비율이 낮게 책정되어 있었고, 이치분긴은 소재 가치 이상의 명목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금화 유출이 필연적이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막대한 양의 고반이 유출된 뒤의 일이었다.

5. 안세이 2슈긴의 품위, 주조량

wikitext

명칭주조 시작규정 품위
분석 품위(조폐국)[7]
규정량주조량
안세이 2슈긴안세이 6년
(1859년)
6푼 5리 인케 (은 85%/동 15%)
금 0.04%/은 84.76%/잡 15.20%
3.6몬메
(13.5g)
88,300
(706,400장)


6. 안세이 2슈긴과 유사한 지방 화폐 및 시주 화폐

지방 화폐 중에서 2주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은화로는 아키타 1냥 1분 5리 은판과 치쿠젠 2주 은이 있다. 센다이 코즈치 은 역시 2주로 통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1분으로 통용되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또한, 안세이 2주 은과 유사한 형태의 시주 화폐도 확인된다. 이는 크기는 작지만 무게는 가에이 1주 은의 거의 두 배에 달하며, 가에이 1주 은 발행 시기에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조

[1] 서적 日本史小百科「貨幣」 東京堂出版 1999
[2] 서적 日本の貨幣-収集の手引き- 日本貨幣商協同組合 1998
[3] 서적 江戸の貨幣物語 東洋経済新報社 1996
[4] 서적 近世銀座の研究 吉川弘文館 1963
[5] 서적 近世銀座の研究, 日本の貨幣
[6] 서적 日本の貨幣 至文堂 1958
[7] 서적 古金銀調査明細録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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