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노코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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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케노코족은 1970년대 후반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에서 유행한 스텝 댄스를 시작으로, 1980년대 초 하라주쿠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젊은이들의 댄스 그룹이다. 하라주쿠 보행자 천국에서 춤을 추며 붐을 일으켰으나, 1980년대 후반 쇠퇴하여 1998년 보행자 천국 폐지와 함께 하라주쿠에서 철수했다. 이후 신주쿠의 디스코 등에서 활동을 이어갔으며, 2010년대에도 비슷한 패션과 활동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존재한다. 다케노코족은 독특한 패션과 춤, 그리고 사회적 사건으로도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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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노코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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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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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패션 하위문화 |
유행 시기 | 1980년대 초반 |
관련 지역 | 하라주쿠 |
어원 | |
이름 유래 | 부티크 다케노코 |
특징 | |
스타일 | 화려하고 기발한 의상 |
의상 구매처 | 하라주쿠의 '다케노코' 부티크 |
주요 활동 | 호코텐 거리에서 춤추기 |
음악 | 마츠다 세이코, 타하라 토시히코 등의 아이돌 음악 |
인기 요인 | 개성 표현의 자유, 또래 집단과의 유대감 |
영향 | |
패션계 영향 | 일본의 스트리트 패션에 큰 영향 |
대중 문화 영향 | 1980년대 일본의 젊은 문화를 상징 |
쇠퇴 | |
쇠퇴 시기 | 1990년대 |
쇠퇴 원인 | 호코텐 폐쇄, 패션 트렌드 변화 |
2. 역사
1970년대 후반,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에서 유행했던 스텝 댄스가 다케노코족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탤런트 후루하시 마유의 친부 후루하시 유지는 TV 출연[5]에서 다케노코족과 관련된 발족 비화를 밝혔다[6]. 후루하시에 따르면, 원래는 오모테산도의 키디랜드 앞 보행자 천국에서 "쿨스" 관련 오토바이 팀인 롤러족의 한 그룹이 로커빌리 댄스를 추고 있었다. 이 모습이 NHK에서 소개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경찰의 지도로 요요기 공원으로 이동했다. 롤러족이 디스코에 갔을 때 하라주쿠의 "부티크 다케노코" 패션으로 춤을 추는 그룹을 보고 "하라주쿠에서 함께 춤추자"고 권유했고, 이것이 "다케노코족"으로 발전했다.
1980년대 초, 매주 일요일 하라주쿠·요요기 공원 옆 보행자 천국에는 다케노코족 팀 약 50개 그룹, 멤버 약 2000명이 모였다. 초기 멤버는 30명 정도였으나, 1년 만에 100배 가까이 늘어났다. 갤러리 수도 급증하여 매주 일요일 약 10만 명이 "하라주쿠 호코텐"에 모여 보행자 천국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롤러족, 밴드, 브레이크 댄스 등 다양한 퍼포먼스 집단에 밀려 다케노코족 붐은 쇠퇴했다. 1996년부터 1997년에 걸쳐 요요기 공원 앞 보행자 천국이 시험 폐지되고, 1998년 8월 31일 보행자 천국이 완전 폐지되면서 다케노코족은 하라주쿠에서 철수하여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로 활동 장소를 옮겼다.
2010년대에도 "부티크 다케노코"나 미디어를 통해 다케노코족을 알게 된 젊은이들이 비슷한 패션과 활동을 즐기고 있다. 이들은 竹의 한자를 가타카나 두 글자로 분해한 "케케노코"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7]
2. 1. 기원
"다케노코족"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지만, 1978년(쇼와 53년)에 개업한 "부티크 타케노코"에서 구입한 의상이 그 중 하나라고 한다.[3] -- 거리나 노상에서 젊은이 그룹이 음악에 맞춰 퍼포먼스를 표현하는 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신주쿠의 대부분의 디스코가 다케노코족을 금지하고 내쫓았기 때문에 이들은 보행자 천국으로 흘러갔다. 많은 인원이 둥글게 원을 만들어 플로어를 점거하여 다른 사람이 춤을 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룹은 주로 수도권의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되었으며, 보행자 천국이 개최되는 휴일에 하라주쿠보행자 천국(호코텐)에 모여 춤을 췄다. 보행자 천국이 개최되지 않는 경우에는 요요기 공원 내나 공원 입구, NHK 방송 센터 근처의 시부야 방면으로 향하는 육교 근처에서 모였다.
"다케노코족"의 젊은이들로 하라주쿠보행자 천국은 넘쳐났으며, 붐 최성기에는 멤버가 2,000명 이상 있었다고 한다.[2] 청중이 너무 많아 이동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았다. 라디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디스코 사운드가 중심이었다. ("아라베스크", 빌리지 피플, 징기스칸" 등의 80년대 캔디 팝스)[3]
다케노코족의 의상은 팀마다 특징있는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다. 이들은 주로 원색과 큰 무늬의 천을 다용한 패션으로,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기상천외한 실루엣이 주목을 받았다.[3] 화장 또한 남녀를 불문하고 화려한 메이크업을 했다. 다케노코족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지게 된 오오타케 타케노리가 오너를 맡은 "부티크 타케노코"에서는, 다케노코족 붐 전성기인 1980년 (쇼와 55년), 다케노코족을 위한 의상이 연간 10만 벌이나 판매되었다고 한다.[4] '''롤러족'''이 1950년대의 미국을 모티브로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다케노코족의 패션은 동양 회귀를 연상시키는 점이 있다.[3]
젊은이 집단의 문화, 패션으로도 1980년대 전반에 주목받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시미즈 코지로나 오키타 히로유키도 거리에서 스카우트되어 연예계에 데뷔한 전 다케노코족이다.
각각의 안무는 팀마다 다른 경우가 많았다.
2. 2. 발전
1970년대 후반,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에서 유행했던 스텝 댄스가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5][6]탤런트 후루하시 마유의 친부 후루하시 유지(실업가·오토바이 가게 경영자)에 따르면, 원래는 오모테산도의 키디랜드 앞 보행자 천국에서 "쿨즈"(록 밴드 "쿨스"와 관련된 오토바이 팀)에 속하는 롤러족의 한 그룹이 로커빌리 댄스를 추고 있었다. NHK에서 이 모습이 소개되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경찰의 지도를 받아 요요기 공원으로 이동했다. 그 롤러족이 디스코에 놀러 갔을 때 하라주쿠의 "부티크 다케노코"의 패션으로 몸을 감싸고 춤을 추는 그룹이 눈에 띄어서 "하라주쿠에서 함께 춤추자"라고 말을 걸었다. 이것이 댄스를 포함하여 "다케노코" 측에 파급되어, 이후 "다케노코족"으로 발전했다.[5][6]
1980년대 초, 매주 일요일 하라주쿠·요요기 공원 옆 보행자 천국에는 다케노코족 팀 약 50개 그룹, 멤버 약 2000명이 있었다. 초기 멤버는 30명 정도였으며, 1년 만에 100배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다케노코족 이상으로 갤러리의 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급증했다. 매주 일요일이 되면 약 10만 명 가까이 "하라주쿠 호코텐"에 모여 하라주쿠 보행자 천국은 끝에서 끝까지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1980년대 후반, 롤러족이나 밴드, 브레이크 댄스 등 다양한 퍼포먼스 집단에 밀려 다케노코족 붐은 쇠퇴해 갔다.
1996년부터 1997년에 걸쳐 요요기 공원 앞 보행자 천국의 시험 폐지 및 1998년 8월 31일 보행자 천국 완전 폐지와 함께 하라주쿠에서 철수하여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로 활동 장소를 옮겼다.
2010년대에도 최성기를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부티크 다케노코"나 미디어 등을 통해 다케노코족을 알고, 비슷한 패션과 활동을 즐기고 있다. 竹의 한자를 가타카나 두 글자로 분해한 "케케노코"족이라고 자칭·타칭되기도 한다.[7]
2. 3. 쇠퇴
1980년대 후반, 롤러족, 밴드, 브레이크 댄스 등 다양한 퍼포먼스 집단에 밀려 다케노코족 붐은 쇠퇴해 갔다.[5][6]1996년부터 1997년에 걸쳐 요요기 공원 앞 보행자 천국이 시험 폐지되고, 1998년 8월 31일에는 완전히 폐지되면서 다케노코족은 하라주쿠에서 철수하여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로 활동 장소를 옮겼다.
2010년대에도 전성기를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부티크 다케노코'나 미디어 등을 통해 다케노코족을 접하고, 비슷한 패션과 활동을 즐기고 있다. 이들은 竹의 한자를 가타카나 두 글자로 분해한 '케케노코'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7]
2. 4. 현대
1970년대 후반,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에서 유행했던 스텝 댄스가 다케노코족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5][6]탤런트 후루하시 마유의 친부 후루하시 유지는 TV에서 다케노코족 발족 비화를 밝혔다. 후루하시에 따르면, 원래 오모테산도의 키디랜드 앞 보행자 천국에서 "쿨스" 관련 오토바이 팀인 롤러족의 한 그룹이 로커빌리 댄스를 추고 있었다. 이 모습이 NHK에서 소개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경찰의 지도로 요요기 공원으로 이동했다. 롤러족이 디스코에 갔을 때 "부티크 다케노코" 패션으로 춤을 추는 그룹을 보고 "하라주쿠에서 함께 춤추자"고 권유했고, 이것이 "다케노코족"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1980년대 초, 매주 일요일 하라주쿠·요요기 공원 옆 보행자 천국에는 약 50개 다케노코족 팀, 약 2000명의 멤버가 모였다. 초기 멤버는 30명 정도였으나, 1년 만에 100배 가까이 늘어났다. 갤러리 수도 급증하여 매주 일요일 약 10만 명이 "하라주쿠 호코텐"에 모여 보행자 천국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롤러족, 밴드, 브레이크 댄스 등 다양한 퍼포먼스 집단에 밀려 다케노코족 붐은 쇠퇴했다.
1996년부터 1997년에 걸쳐 요요기 공원 앞 보행자 천국이 시험 폐지되고, 1998년 8월 31일 보행자 천국이 완전 폐지되면서 다케노코족은 하라주쿠에서 철수하여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로 활동 장소를 옮겼다.
2010년대에도 "부티크 다케노코"나 미디어를 통해 다케노코족을 알게 된 젊은이들이 비슷한 패션과 활동을 즐기고 있다. 이들은 竹의 한자를 가타카나 두 글자로 분해한 "케케노코"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7]
3. 특징
다케노코족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지만, 자작 의상 외에 1978년 (쇼와 53년)에 개업한 "부티크 타케노코"에서 구입한 것이 다케노코족의 유래 중 하나라고 한다.[3] 다케노코족은 거리나 노상에서 젊은이 그룹이 음악에 맞춰 퍼포먼스를 표현하는 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신주쿠의 대부분의 디스코가 다케노코족을 금지하고 내쫓았기 때문에 보행자 천국으로 흘러갔다(많은 인원이 둥글게 원을 만들어 플로어를 점거하여 다른 사람이 춤을 출 수 없기 때문).
이들은 주로 수도권의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되었으며, 보행자 천국이 개최되는 휴일에 하라주쿠보행자 천국(호코텐)에 모여 춤을 췄다. 보행자 천국이 개최되지 않는 경우에는 요요기 공원이나 NHK 방송 센터 근처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다케노코족 젊은이들로 하라주쿠보행자 천국은 넘쳐났으며, 붐 최성기에는 멤버가 2,00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청중이 많아 이동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았다.[2]
다케노코족은 젊은이 집단의 문화와 패션으로 1980년대 전반에 주목받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시미즈 코지로나 오키타 히로유키도 거리에서 스카우트되어 연예계에 데뷔한 전 다케노코족이다.
3. 1. 패션
다케노코족의 의상은 팀마다 특징적인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다. 주로 원색과 큰 무늬의 천을 많이 사용한 패션으로, '아라비안 나이트'와 같은 기상천외한 실루엣이 주목받았다.[3] 남녀 모두 화려한 화장을 했다. 다케노코족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오오타케 타케노리가 오너를 맡은 "부티크 타케노코"에서는, 다케노코족 붐 전성기인 1980년에 다케노코족을 위한 의상이 연간 10만 벌이나 판매되었다.[4] '''롤러족'''이 1950년대의 미국을 모티브로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다케노코족의 패션은 동양 회귀를 연상시키는 점이 있다.[3]3. 2. 음악과 춤
다케노코족은 주로 수도권의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휴일에 하라주쿠보행자 천국(호코텐)이나 요요기 공원 등에서 아라베스크, 빌리지 피플, 징기스칸 등의 80년대 디스코 사운드에 맞춰 춤을 췄다. 붐 최성기에는 멤버가 2,00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2][3] 각 그룹은 팀마다 다른 안무를 선보였으며, 1970년대 후반 신주쿠의 디스코에서 유행했던 스텝 댄스가 그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탤런트 후루하시 마유의 친부인 후루하시 유지(실업가)는 TV 출연[5]에서 다케노코족 발족 비화를 밝혔다[6]. 후루하시에 따르면, 원래 오모테산도의 키디랜드 앞 보행자 천국에서 "쿨즈"라는 오토바이 팀에 속한 롤러족 그룹이 로커빌리 댄스를 추었는데, NHK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경찰의 지도로 요요기 공원으로 이동했다. 이 롤러족이 디스코에서 "부티크 다케노코"의 패션으로 춤을 추는 그룹에게 함께 춤을 추자고 제안하며 "다케노코족"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1980년대 초, 매주 일요일 하라주쿠·요요기 공원 옆 보행자 천국에는 약 50개 그룹, 2000명 정도의 다케노코족이 모였다. 초기 멤버는 30명 정도였지만, 1년 만에 100배 가까이 불어났다. 갤러리 수도 급증하여 매주 일요일 약 10만 명 가까이 "하라주쿠 호코텐"에 모여들어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1980년대 후반, 롤러족, 밴드, 브레이크 댄스 등 다른 퍼포먼스 집단에 밀려 다케노코족 붐은 쇠퇴했다. 1998년 8월 31일 보행자 천국이 완전 폐지되면서 하라주쿠에서 철수하여 신주쿠의 디스코로 활동 장소를 옮겼다.
2010년대에도 최성기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부티크 다케노코" 등을 통해 다케노코족을 알고 비슷한 활동을 즐기고 있으며, "케케노코"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7]
4. 주요 그룹
다음은 다케노코족의 주요 그룹 목록이다.
가나다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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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회적 영향 및 사건
1980년대 초, 다케노코족은 전성기에 약 50개 그룹, 2000여 명의 멤버로 불어났다. 이는 초기 멤버 30명에서 1년 만에 100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였다. 매주 일요일이면 약 10만 명의 인파가 "하라주쿠 호코텐" (하라주쿠보행자 천국)에 몰려들어 보행자 천국이 마비될 정도였다.[5][6]
다케노코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연도 | 사건 내용 |
---|---|
1980년 4월 14일 | 다케노코족 습격 사건.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야외 디스코를 벌이던 다케노코족이 "엿보기 그룹"에게 습격당해 고등학생 3명이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
1983년 10월 | 폭력단이 다케노코족 리더에게 100만엔을 갈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폭력단 구성원과 다케노코족 그룹의 총 리더 등 3명이 공갈 혐의로 체포되었다. |
5. 1. 사회적 영향
"다케노코족"은 주로 수도권의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된 젊은이 그룹으로, 휴일에 하라주쿠보행자 천국(호코텐)에 모여 춤을 췄다. 보행자 천국이 열리지 않을 때는 요요기 공원이나 NHK 방송 센터 근처에서 활동했다.[2]이들은 1980년대 전반에 걸쳐 젊은이 문화와 패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붐이 절정이었을 때는 멤버 수가 2,000명이 넘었고, 구경꾼이 너무 많아 이동이 어려울 정도였다.[2] 이들은 라디오 카세트에서 나오는 디스코 음악, 특히 아라베스크, 빌리지 피플, 징기스칸 등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3]
다케노코족의 의상은 팀마다 독특했는데, 원색과 큰 무늬 천을 사용한 화려한 패션이 특징이었다. 이는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시키는 기발한 스타일로 주목받았다.[3] 남녀 모두 화려한 화장을 했다. "부티크 타케노코"에서는 1980년에 다케노코족 의상이 연간 10만 벌이나 팔렸다고 한다.[4]
시미즈 코지로나 오키타 히로유키 등은 거리에서 스카우트되어 연예계에 데뷔한 다케노코족 출신이다.
5. 2. 주요 사건
1970년대 후반,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에서 유행했던 스텝 댄스가 다케노코족의 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5][6] 탤런트 후루하시 마유의 친부 후루하시 유지는 TV 출연에서 "다케노코족"과 관련된 비화를 밝혔다. 후루하시에 따르면, 원래 오모테산도의 키디랜드 앞 보행자 천국에서 "쿨즈"(록 밴드 "쿨스"와 관련된 오토바이 팀)에 속하는 롤러족의 한 그룹이 로커빌리 댄스를 추고 있었는데, NHK에서 소개되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경찰의 지도를 받아 요요기 공원으로 이동했다. 그 롤러족이 디스코에 놀러 갔을 때 하라주쿠의 "부티크 다케노코"의 패션으로 춤을 추는 그룹에게 "하라주쿠에서 함께 춤추자"라고 말을 걸었고, 이것이 댄스를 포함하여 "다케노코" 측에 파급되어, 이후 "다케노코족"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5][6]1980년대 초, 매주 일요일 하라주쿠·요요기 공원 옆 보행자 천국에는 다케노코족 팀 약 50개 그룹, 멤버가 약 2000명으로 불어났다. 초기 멤버는 30명 정도였으며, 1년 만에 100배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매주 일요일이 되면 약 10만 명 가까이 "하라주쿠 호코텐"에 모여 하라주쿠 보행자 천국은 끝에서 끝까지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1980년대 후반, 롤러족이나 밴드, 브레이크 댄스 등 다양한 퍼포먼스 집단에 밀려 다케노코족 붐은 쇠퇴해 갔다.
1996년부터 1997년에 걸쳐 요요기 공원 앞 보행자 천국의 시험 폐지 및 1998년 8월 31일 보행자 천국 완전 폐지와 함께 하라주쿠에서 철수하여 도쿄 신주쿠의 디스코로 활동의 장을 옮겼다.
2010년대에도 최성기를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부티크 다케노코"나 미디어 등을 통해 다케노코족을 알고, 비슷한 패션과 활동을 즐기고 있다. 竹의 한자를 가타카나 두 글자로 분해한 "케케노코"족이라고 자칭·타칭되기도 한다.[7]
연도 | 사건 내용 |
---|---|
1980년 4월 14일 | 다케노코족 습격 사건.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야외 디스코를 벌이던 다케노코족이 "엿보기 그룹"에게 습격당해 고등학생 3명이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
1983년 10월 | 폭력단이 다케노코족 리더에게 100만엔을 갈취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폭력단 구성원과 다케노코족 그룹의 총 리더 등 3명이 공갈 혐의로 체포되었다. |
6. 출신 인물
- 시미즈 코지로 (배우, 가수)
- 오키타 히로유키 (배우, 가수)
참조
[1]
웹사이트
Harajuku – District for Anti-fashion
http://fashion.semio[...]
2015-03-29
[2]
서적
80년대 아이돌collection
別冊宝島2611
[3]
서적
昭和55年 写真生活
다이아프레스
2017
[4]
서적
原宿 1995
コム・プロジェクト 穏田表参道商店会
1994-12-25
[5]
방송
ザ・カセットテープ・ミュージック
[6]
웹사이트
마키타스포츠&스ージー 스즈키도 엔진 전개! 캐롤, 요코하마 은바에를 말한다
https://thetv.jp/new[...]
자텔레비전
2018-08-18
[7]
뉴스
「竹の子族」から30年余 ケケノコ族原宿に現る♪昔の衣装に魅了ゆるさ今っぽく
日経MJ
201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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