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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일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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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명일통지》는 명나라 시기에 편찬된 지리지로, 북송의 《태평환우기》 이래 중국에서 통일 왕조가 성립될 때마다 지리서를 편찬하는 통례에 따라 제작되었다. 홍무제 때 초안이 마련되어 경태제 때 119권으로 완성되었으며, 이후 영종, 홍치, 만력 연간에 걸쳐 수정 및 추가되었다. 책은 전국을 직례와 13개 포정사사로 나누어 각 지역의 지도와 함께 건치, 연혁, 풍속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마지막 2권에는 조선, 일본 등 주변 국가에 대한 설명도 포함한다. 《대명일통지》는 조선과 일본에 영향을 미쳐, 조선에서는 《동국여지승람》, 일본에서는 여러 지방지 편찬에 영향을 주었으나, 청나라 학자 고염무는 오류가 많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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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일통지
개요
제목대명일통지
저자영락제 칙명, 이현 등 찬수
편찬 시기영락제 13년 (1415년) 완성
소장 위치일본 도쿄 대학 동양 문화 연구소

2. 성립

북송의 《태평환우기》 이래로 중국에서는 통일 왕조가 성립될 때마다 지리서가 편찬되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원대에는 《대원대일통지》 1300권이 편찬되었으나, 현재는 잔권과 인용 부분만 남아있다. 명나라에서도 이러한 전통에 따라 지리서 편찬이 이루어졌다.

《대명일통지》는 홍무 연간에 《대명지》라는 이름으로 처음 편찬되었고, 이후 경태 연간에 《환우통지》로 완성되었다. 영종은 탈문의 변 이후 《환우통지》를 개정하여 《대명일통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내용이 추가되었다.

2. 1. 초기 편찬 과정

북송의 《태평환우기》 이래로 중국에서는 통일 왕조가 성립될 때마다 지리서가 편찬되는 것이 하나의 관례였다. 원대에는 《대원대일통지》 1300권이 편찬되었으나, 현재는 잔권과 인용 부분만 남아있다.

에서는 홍무 3년(1370년) 위준민(魏俊民), 황지(黃篪), 유엄(劉儼), 정봉(丁鳯) 등이 《대원대일통지》의 체제를 따라 초안을 잡아 《대명지》(大明志)라는 이름으로 처음 편찬하였다. 홍무 6년(1373년) 편찬된 이 책은 홍무 17년(1384년) 《대명청류천문분야서》(大明清類天文分野書) 24권에 편성되었고, 경태 7년(1456년) 119권으로 완성되어 《환우통지》(寰宇通志)라 하였다.[4] 이 책은 당시의 양경(兩京), 13포정사(布政司)를 강(綱), 여러 부주(府州)들을 목(目)으로 하고 그 아래에 건치(建置), 연혁(沿革), 관할 군(郡)의 이름들과 산천, 형승(形勝), 풍속(風俗), 토산(土產) 등 38개 문(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환우통지》가 완성된 이듬해 탈문의 변으로 경태제로부터 제위를 빼앗은 영종은 연호를 천순(天順)으로 바꾸고, 이현(李賢) 등에게 《환우통지》의 개정을 명했다. 홍무제·영락제 이래 중국 각지에서는 그 지역의 지방지(地方志)가 편찬되었고, 천순 연간까지 그러한 지방지의 수는 257종에 달했다.[1] 영락제 때에도 이러한 지방지들을 토대로 종합적인 지리지 편찬을 시도했지만 미완으로 그쳤다.[3]

홍무제 때 편찬된 《대명지》는 천순 2년(1458년) 8월에 《환우통지》 중수를 시작할 때까지 남아 있었는데, 천순 5년(1461년)에 중수 작업이 완료된 뒤 간행이 중지되었고 현재 전하지 않는다.[2] 새로 중수된 《환우통지》에는 《대명일통지》라는 이름이 붙었다.[4]

2. 2. 이현 등의 중수

영종은 탈문의 변으로 경태제에게서 제위를 빼앗은 이듬해 연호를 천순으로 바꾸고, 이현 등에게 《환우통지》를 개정하라고 명했다.[4] 홍무제·영락제 때부터 중국 각지에서는 그 지역의 지방지(地方志)가 편찬되었고, 천순 연간에는 이러한 지방지가 257종에 달했다.[1] 영락제 때 이러한 지방지들을 바탕으로 종합적인 지리지 편찬을 시도했지만 미완으로 그쳤다.[3]

홍무제 때 편찬된 《대명지》는 천순 2년(1458년) 8월에 《환우통지》 중수를 시작할 때까지 남아 있었으나, 천순 5년(1461년)에 중수 작업이 완료된 뒤 간행이 중지되어 현재 전하지 않는다. 새로 중수된 《환우통지》에는 《대명일통지》라는 이름이 붙었다.[4]

2. 3. 후대의 수정 및 추가

《대명일통지》는 이후 홍치, 만력 연간에 중수되면서 수정을 거쳤고, 가정, 융경 연간에 이후의 내용이 추가되었다.[1]

3. 구성

《대명일통지》는 첫머리에 「대명일통지도」(大明一統之図)라는 지도를 싣고, 본문은 크게 직예(直隷) 및 13개 포정사사(布政使司)를 다룬 부분(권1~권88)과 외이(外夷)를 다룬 부분(마지막 2권)으로 구성된다.[12] 각 포정사사에는 전체 지도가 포함되어 있고, 소속 부(府)와 주(州)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외이에는 조선, 여진, 일본, 류큐 등이 간략하게 언급된다.

3. 1. 대명일통지도

《대명일통지》는 첫머리에 「대명일통지도」(大明一統之図)라는 이름의 지도를 실었다.[12]

3. 2. 직예와 포정사사

《대명일통지》는 권1부터 권88까지 전국을 직례[12]와 13개의 포정사사[13]로 나누었다. 각 포정사사에는 전체 지도를 싣고, 소속 부(府) 및 주(州) 등을 기술했다. 각 부의 이정(里程), 건치 연혁, 소속 현 일람, 군의 이름을 적고, 형승(形勝)·풍속·산천·토산·공서(公署)·학교·서원·궁실·관량(関梁)·사관(寺観)·사묘(祠廟)·능묘(陵墓)·고적(古蹟)·명환(名宦)·유우(流寓)·인물(人物)·열녀(列女)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3. 3. 외이

마지막 2권에는 외이(外夷) 즉 중국 외부의 국가인 조선, 여진, 일본, 류큐 등이 실려 있으며, 각국의 연혁·풍속·산천·토산만을 간략하게 다루었다.[12]

4. 판본

《대명일통지》는 명나라 영종 때의 원판(필사본, 초각) 외에도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1505년 신독재(慎獨齋) 간본, 1588년 양간귀인재(楊刊歸仁齋) 간본, 천계 5년(1625년) 대자본(大字本) 및 만수당(萬壽堂) 간본, 청나라 초기 직수당각본(織秀堂刻本), 문연각사고전서본(文淵閣四庫全書本), 1965년 대만 영인본(影印本) 등이 있다.[1] 《대명일통지》의 영향을 받아 청나라 때에는 《대청일통지(大清一統志)》가 편찬되었다.

4. 1. 명 영종 때의 원판

명 영종 때의 원판은 필사본 또는 초각본으로 추정된다.[1]

4. 2. 신독재 간본

홍치 18년(1505년) 신독재(慎獨齋) 간본이 있다.[1]

4. 3. 양간귀인재 간본

1588년 양간귀인재(楊刊歸仁齋) 간본이 있다.[1]

4. 4. 천계 간본

천계 5년(1625년)에 대자본(大字本)과 만수당(萬壽堂) 간본이 간행되었다.[1]

4. 5. 청 초기 간본

천계 5년(1625년)에 간행된 대자본(大字本), 만수당(萬壽堂) 간본, 청 초기 직수당각본(織秀堂刻本) 등이 있다.[1]

4. 6. 문연각사고전서본

명나라 천계 5년(1625년)에 간행된 대자본(大字本), 만수당(萬壽堂) 간본 및 청나라 초기 직수당각본(織秀堂刻本)과 함께 문연각사고전서본(文淵閣四庫全書本)이 있다.[1]

4. 7. 대만 영인본

1965년에 대만에서 펴낸 영인본(影印本)이 있다.[1]

5. 영향

《대명일통지》는 한국과 일본의 지리지 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에서는 《대명일통지》의 영향을 받아 전국적인 규모의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고,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이어졌으며, 각 군현의 읍지 편찬에도 영향을 주었다. 15~16세기 조선에서 《대명일통지》는 대표적인 중국 지리지이자 역사지리 연구의 기본 자료로 활용되었다. 특히 요동 지역에 대한 지명 고증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으며, 류형원 등의 실학자들은 요동 지역을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한국 왕조들의 옛 땅으로 인식하는데 《대명일통지》의 기록을 활용하였다.[14][15]

일본의 경우 에도 시대에 《대명일통지》가 와코쿠본(和刻本)으로 출판되었고, 《게비국군지(芸備国郡志)》, 《옹주부지(雍州府志)》, 《아이즈 풍토기(会津風土記)》, 《고키나이 지(五畿内志)》 등의 지방지 편찬에 영향을 미쳤다. 메이지 초기의 《대일본국지(大日本国誌)》 역시 《대명일통지》의 영향을 받은 지리지였다.

5. 1. 조선에 미친 영향

조선에서는 15세기부터 여러 종류의 지지(地誌)가 편찬되었는데, 대명일통지의 영향을 받아 성종 12년(1481년) 전국적인 규모의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50권)이 편찬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중종 25년(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체제를 따라 각 군현의 「읍지」(邑誌) 편찬으로 이어졌다.[14]

15~16세기 조선에서 대명일통지는 대표적인 중국 지리지로 받아들여졌으며, 이 책의 대조선관은 역사지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기본 자료로 이용되었다. 대명일통지에서는 단정적인 기술보다는 여러 관련 기록과 전승들을 나열하고 수록하는 선에서 그쳤고, 요동 지역에 대한 일부 지명의 고증에서는 한국 고대사의 지명을 비정함에 단서가 될 만한 언급이 있었다.[14] 류형원을 비롯한 조선의 실학자들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요동 지역에서의 한국 왕조들의 역사적 행방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요동 지역을 조선의 옛 땅으로 비정한 요사나 요동 일대를 고구려의 옛 강역으로 비정한 대명일통지의 기사를 재발견했다.[15]

5. 2. 일본에 미친 영향

《대명일통지》는 일본에도 전해져 에도 시대에 와코쿠본(和刻本)으로 출판되었으며, 《게비국군지(芸備国郡志)》·《옹주부지(雍州府志)》·《아이즈 풍토기(会津風土記)》·《고키나이 지(五畿内志)》 등의 지방지들이 《대명일통지》의 체제를 본따 편찬되었다.[14] 메이지 초기 《대일본국지(大日本国誌)》 아와(安房)도 중국의 《대명일통지》나 《대청일통지(大清一統志)》 형식의 지리지였다.

6. 비판

고염무의 『일지록』에서는 『대명일통지』에 오류가 많다(舛謬特甚)고 비판하며, 많은 오류를 열거하고 있다.[9]

참조

[1] 서적 '' 1988
[2] 문서 『明史』芸文志二・史類 https://zh.wikisourc[...]
[3] 문서 『四庫全書総目提要』巻68・史部24・地理類1 https://zh.wikisourc[...]
[4] 서적 明会要 https://archive.org/[...]
[5] 서적 韓国 朝鮮を知る事典 平凡社
[6] 서적 '' 1996
[7] 서적 '' 1966
[8] 서적 和刻本大明一統志 全2巻 http://www.kyuko.asi[...] 汲古書院
[9] 서적 日知録
[10] 웹사이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ttp://kyujanggak.sn[...]
[11] 웹인용 일본 도쿄 대학 동양 문화 연구소 간개-대명일통지 http://shanben.ioc.u[...] 2015-05-27
[12] 문서 경사(京師)와 양경(南京).
[13] 문서 산서(山西)·산동(山東)·하남(河南)·섬서(陝西)·절강(浙江)·강서(江西)·호광(湖広)·사천(四川)·복건(福建)·광동(広東)·광서(広西)·운남(雲南)·귀주(貴州)
[14] 서적 실학자들은 우리나라 역사지리를 어떻게 보았는가 동북아역사재단 2021
[15] 서적 '' 동북아역사재단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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