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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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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마누자는 11세기와 12세기에 활동한 인도의 철학자이자 힌두교의 스리바이슈나바 전통의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타밀 브라민 공동체에서 태어나 첸나이 근처의 칸치푸람에서 야다바 프라카샤를 스승으로 베다 문헌을 공부했다. 라마누자는 스승과의 의견 차이로 결별한 후, 바라다라자 페루말 사원의 신자가 되었으며, 슈리랑감 랑가나타스와미 사원의 종교 지도자였던 야무나차리아의 제자가 되려 했지만, 야무나차리아의 죽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라마누자는 비시슈타드바이타 철학을 발전시켰으며, 힌두교에서 박티 운동을 이끌었고, 사회 개혁에도 기여했다. 그의 가르침은 윤리학, 인식론, 존재론, 구원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슈리 바샤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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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누자
기본 정보
라마누자의 조각상
이름라마누자
출생 이름일라이얄바르
출생일1017년 4월 25일
출생지스리페룸부두르, 촐라 제국 (현재의 타밀나두, 인도)
사망일1137년경
사망지스리랑감, 촐라 제국 (현재의 타밀나두, 인도)
종교힌두교
종파스리 바이슈나비즘
철학비시슈타드바이타
스승야다바 프라카샤
전파자비시슈타드바이타 베단타
존칭에베룸마나르
우다이야바르
야티라자 (산냐시의 왕)
영향을 준 인물라마난다
영향을 받은 인물나타무니
야무나차르야
문학 작품
주요 저서베다르타삼그라하
스리 바샤
기타 바샤
개인 정보
부모케샤바소마야지 (아버지)
칸티메티 데비 (어머니)

2. 생애

இராமானுசர்ta (라마누자)는 촐라 왕조 시기 슈리페룸부두르(오늘날 타밀나두 주)의 타밀 브라민 공동체에서 태어났다.[10] 칸치푸람으로 이주하여 야다바 프라카샤에게 베다, 특히 우파니샤드를 배웠으나, 해석 차이로 스승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11][13][10][12]

11세기 베단타 학자 야무나차리아를 만나려 했으나, 슈리 바이슈나바 전통에 따르면 먼저 사망하여 만나지 못했다.[10] 슈리랑감 랑가나타스와미 사원의 종교 지도자였던 야무나차리아는 라마누자를 후계자로 지명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 야무나차리아의 제자 스리 마하푸르나는 라마누자를 슈리랑감으로 데려오려 했으나, 야무나차리아의 사망 소식에 칸치로 돌아갔다.[18][19] 이후 마하푸르나는 다시 라마누자를 설득하여 바이슈나바 수행자로 입문시켰다.[18]

라마누자는 촐라 왕 쿨로퉁가 2세[24]의 박해를 피해 망명길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쿨로퉁가 2세는 스리바이슈나바교에 대한 극심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으며, 목이나 인후암을 앓았다고 알려져 크리미칸타 촐라 또는 벌레 목의 촐라라고 불렸다.[20][21]

역사가 닐라칸타 사스트리는 크리미칸타 촐라를 아디라젠드라 촐라 또는 비라라젠드라 촐라와 동일시하는데, 이들과 함께 비자얄라야 계열의 주계열이 끝났다.[22][23] 왕의 악의를 알게 된 라마누자의 제자 쿠라타즈완은 라마누자에게 촐라 왕국을 떠날 것을 설득했다.

이후 14년간 호이살라 왕국으로 망명하여 자이나교 왕 비티 데바를 힌두교로 개종시키고 비슈누바르다나라는 이름을 받게 했다. 비슈누바르다나 왕의 도움으로 멜루코테에 티루나라야나스와미 신전을 건립했다.[24] 라마누자는 크리미칸타 촐라(아디라젠드라 촐라)가 바이슈나바들의 지역 반란으로 살해된 후 타밀나두로 돌아왔다.[23][25]

스리랑감 사원 기록에 따르면, 쿨로퉁가 3세는 크리미칸타 촐라의 아들이며, 아버지와 달리 회개하고 바이슈나바교를 지지했다.[26][27][28] 라마누자는 쿨로퉁가 3세를 제자로 삼고, 사원 관리권을 그의 조카 다사라티와 그 후손들에게 부여했다.[29][30]

라마누자는 카스트 제도에 반대하며 알와르(Alwars)의 전통을 따라 불가촉천민도 스리바이슈나바 푸티 운동에 참여시키고, ''티르쿨라타르(Tirukulattar)''(고귀한 혈통)라 부르며 멜루코테(Melukote) 사원에 받아들였다.[32] 이러한 개혁은 카이콜라(Kaikolar) 등 비브라만 카스트 집단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 그의 사후 스리바이슈나바 공동체는 바다칼라이와 텐칼라이로 분열되었으나, 두 종파 모두 판차 삼스카라를 통한 스리바이슈나바(Sri Vaishnavism) 입문을 중시한다.[33][34]

라마누자는 생전에 여러 차례 암살 위협을 받았다. 스승 야다바 프라카사는 그의 명성에 질투를 느껴 갠지스 강 여행 중 그를 제거하려 했으나, 사촌 고빈다[14]의 도움으로 탈출했다.[35][36] 슈리랑감(Srirangam) 사원에서는 수석 사제가 그를 독살하려 했으나, 사제 아내의 고백과 사제의 회개로 위기를 넘겼다.[37]

라마누자는 120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지지만, 이는 확실하지 않다.

2. 1. 초기 생애

라마누자는 타밀 브라민 공동체에서 태어났으며, 촐라 제국 아래 슈리페룸부두르(오늘날 타밀나두주)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바이슈나바 전통의 추종자들은 그에 대한 전기(행적기)를 썼는데, 그중 일부는 그의 사후 수세기 후에 쓰여진 것들이며, 전통적으로는 사실로 여겨진다.[10]

라마누자의 전통적인 전기에는 그가 어머니 칸티마티와 아버지 아수리 케샤바 소마야지 사이에서[11] 현대 첸나이 근처 타밀나두주 슈리페룸부두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티루바디라이 별자리 아래 치티라이 달에 태어났다고 여겨진다. 전기에는 그의 생애를 1017년~1137년으로 기록하여 120년의 수명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1세기와 12세기 사원 기록과 슈리 바이슈나바 전통 이외의 지역 문학을 바탕으로 현대 학자들은 라마누자가 1077년~1157년에 살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11]

라마누자는 결혼하여 칸치푸람으로 이주하여 야다바 프라카샤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다.[62][6][12] 라마누자와 그의 스승은 베다 경전, 특히 우파니샤드에 대한 해석에서 자주 의견이 달랐다.[11][13] 라마누자와 야다바 프라카샤는 헤어졌고, 그 후 라마누자는 스스로 공부를 계속했다.[10][12]

그는 11세기 유명한 베단타 학자 야무나차리아를 만나려고 했지만, 슈리 바이슈나바 전통에 따르면 야무나차리아가 만나기 전에 사망하여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10] 라마누자는 야무나차리아의 손녀를 통해 그의 증손자였다.[14] 그러나 일부 전기에서는 야무나차리아의 시체가 기적적으로 일어나 야무나차리아가 이전에 이끌었던 슈리 바이슈나바 종파의 새로운 지도자로 라마누자를 지명했다고 주장한다.[10] 한 전기에는 야다바 프라카샤를 떠난 후 라마누자가 또 다른 베단타 학자인 페리야 남비(마하푸르나라고도 함)에게 슈리 바이슈나바교의 입문을 받았다고 나와 있다. 라마누자는 결혼 생활을 버리고 힌두 승려가 되었다. 그러나 캐서린 영은 라마누자가 결혼 생활을 했는지 아니면 금욕 생활을 했는지에 대한 증거는 불확실하다고 말한다.[16]

라마누자와 그의 스승인 야다바 프라카사가 베다 문헌 해석에 대한 의견 차이로 갈라선 후, 라마누자는 칸치푸람의 바라다라자 페루말 사원의 신자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라마누자의 강의와 명성은 널리 퍼져 나갔다. 슈리랑감의 랑가나타스와미 사원의 바이슈나바 아차리아이자 종교 지도자였던 야무나차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라마누자를 면밀히 주시해 왔다. 계승할 때가 되자 아차리아는 라마누자를 부르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그는 사원 업무를 돕던 제자인 스리 마하푸르나를 불러 칸치로 가서 라마누자를 데려오라고 했다.[18]

마하푸르나는 라마누자를 만나 스승의 뜻을 전하자, 라마누자는 기뻐하며 둘은 즉시 슈리랑감으로 떠났다. 그러나 슈리랑감에서는 안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고, 둘은 야무나차리아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통한 심정으로 라마누자는 칸치로 돌아갔다.[19] 마하푸르나는 야무나차리아의 아들인 티루바랑가 아라이야르가 사원 업무를 관리하는 것을 돕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티루바랑가 아라이야르와 바이슈나바 계열의 다른 고위 성직자들은 야무나차리아가 사망한 후 공백이 생겼고, 야무나차리아처럼 베다와 샤스트라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마침내 스리 마하푸르나가 다시 한번 칸치로 가서 라마누자를 슈리랑감으로 초청하기로 결정했다.[19]

한편, 칸치에서 라마누자는 동료 신자인 칸치푸르나를 정기적으로 만났고, 곧 칸치푸르나의 제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그가 칸치푸르나에게 이를 말하자, 칸치푸르나는 자신과 라마누자가 같은 카스트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하고 더 적절한 스승을 찾으라고 말했다.[19] 그 후 칸치푸르나는 티루파티로 가서 벤카테스와라 신을 숭배하고 6개월 후에 돌아왔다. 그가 마침내 돌아왔을 때, 바라다라자 신이 라마누자에게 자신의 뜻을 전한 것은 바로 그를 통해서였다. 따라서 칸치푸르나는 라마누자가 슈리랑감으로 가서 스리 마하푸르나에게 위로를 받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조언했다.[18]

2. 2. 바이슈나바교 입문

இராமானுசர்ta는 타밀 브라민 공동체에서 태어났으며, 촐라 제국 아래 슈리페룸부두르(오늘날 타밀나두주)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10]

라마누자는 결혼하여 칸치푸람으로 이주하여 야다바 프라카샤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다.[62][6][12] 라마누자와 그의 스승은 베다 경전, 특히 우파니샤드에 대한 해석에서 자주 의견이 달랐다.[11][13] 라마누자와 야다바 프라카사는 헤어졌고, 그 후 라마누자는 스스로 공부를 계속했다.[10][12]

11세기 유명한 베단타 학자 야무나차리아를 만나려 했지만, 슈리 바이슈나바 전통에 따르면 야무나차리아가 만나기 전에 사망하여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10] 야무나차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라마누자를 면밀히 주시했다. 슈리랑감의 랑가나타스와미 사원의 바이슈나바 아차리아이자 종교 지도자였던 야무나차리아는 계승할 때가 되자 라마누자를 부르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원 업무를 돕던 제자인 스리 마하푸르나를 불러 칸치로 가서 라마누자를 데려오라고 했다.[18]

마하푸르나는 라마누자를 만나 스승의 뜻을 전하자, 라마누자는 기뻐하며 둘은 즉시 슈리랑감으로 떠났다. 그러나 슈리랑감에서는 안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고, 둘은 야무나차리아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비통한 심정으로 라마누자는 칸치로 돌아갔다.[19] 마하푸르나는 야무나차리아의 아들인 티루바랑가 아라이야르가 사원 업무를 관리하는 것을 돕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티루바랑가 아라이야르와 바이슈나바 계열의 다른 고위 성직자들은 야무나차리아가 사망한 후 공백이 생겼고, 야무나차리아처럼 베다와 샤스트라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스리 마하푸르나가 다시 한번 칸치로 가서 라마누자를 슈리랑감으로 초청하기로 결정했다.[19]

한편, 칸치에서 라마누자는 동료 신자인 칸치푸르나를 정기적으로 만났고, 곧 칸치푸르나의 제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칸치푸르나는 자신과 라마누자가 같은 카스트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하고 더 적절한 스승을 찾으라고 말했다.[19] 그 후 칸치푸르나는 티루파티로 가서 벤카테스와라 신을 숭배하고 6개월 후에 돌아왔다. 칸치푸르나는 라마누자가 슈리랑감으로 가서 스리 마하푸르나에게 위로를 받는 것이 신의 뜻이라고 조언했다.[18]

마하푸르나가 스리랑감으로 가서 라마누자를 초청하기로 결정된 후, 아차르야는 아내와 함께 칸치로 떠났다. 칸치로 가는 도중 마하푸르나와 그의 아내는 현재 첸나이(Chennai)에서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두란타캄(Maduranthakam)에서 휴식을 취했다. 라마누자는 스리랑감으로 가는 길에 같은 곳에 도착했고, 마하푸르나를 만났다. 라마누자는 그에게 자신을 바이슈나바 수행자의 계급으로 받아들이도록 요청했다. 마하푸르나는 즉시 승낙했고, 라마누자는 판차삼스카라스(다섯 가지 성례)를 받았다.[18]

2. 3. 박해와 망명

라마누자는 슈리바이슈나바(Śrīvaiṣṇava) 공동체가 바다칼라이와 텐칼라이로 분열된 이후인 17세기나 18세기에 쓰여진 전기들에서 촐라 왕 쿨로퉁가 2세[24]의 박해를 피해 망명길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쿨로퉁가 2세는 스리바이슈나바교에 대한 극심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으며, 목이나 인후암을 앓았다고 알려져 크리미칸타 촐라 또는 벌레 목의 촐라라고 불렸다.[20][21]

역사가 닐라칸타 사스트리는 크리미칸타 촐라를 아디라젠드라 촐라 또는 비라라젠드라 촐라와 동일시하는데, 이들과 함께 비자얄라야 계열의 주계열이 끝났다.[22][23] 왕의 악의를 알게 된 라마누자의 제자 쿠라타즈완은 라마누자에게 촐라 왕국을 떠날 것을 설득했다.

라마누자는 이후 14년 동안 호이살라 왕국으로 이동하여 자이나교 왕인 비티 데바를 힌두교로 개종시켰다. 비티 데바는 비슈누바르다나로 이름을 바꾸었다. 비슈누바르다나 왕은 라마누자를 도와 멜루코테에 티루나라야나스와미 신전을 건립했는데, 이곳은 현재 카르나타카주 만디야 지역의 사원 도시이다. 라마누자는 크리미칸타 촐라가 죽은 후 스스로 타밀나두로 돌아왔다.[24] 사스트리에 따르면, 크리미칸타 또는 아디라젠드라 촐라는 바이슈나바들의 지역 반란에서 살해되었다.[23][25]

스리랑감 사원의 기록에 따르면, 쿨로퉁가 3세는 크리미칸타 촐라 또는 카리칼라 촐라의 아들이었다.[26] 그는 아버지와 달리 회개한 아들이었고 바이슈나바교를 지지했다고 한다.[27][28] 라마누자는 쿨로퉁가 3세를 그의 조카 다사라티의 제자로 삼았고, 왕은 랑가나타스와미 사원의 관리권을 다사라티와 그의 후손들에게 부여했다.[29][30] 일부 역사가들은 라마누자를 박해한 크리미칸타가 개인적인 적대감으로 인해 박해를 했으며, 바이슈나바교도들을 박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31]

2. 4. 사회 개혁

라마누자는 촐라 왕조 시기 타밀 문화권에서 성장했다. 당시에는 바이슈나바, 샤이바, 스마르타 전통, 불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신앙이 번성했다. 힌두교 수도원에서는 아드바이타 베단타가 우세했으며,[6] 라마누자의 스승 야다바 프라카샤도 이 전통에 속했다.[12] 라마누자는 샹카라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우파니샤드에 대한 대안적인 해석을 제시한 최초의 사상가로 명성을 얻었다.

라마누자 이전의 스리바이슈나바 종교는 카스트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받아들였다.[19] 라마누자는 알와르(Alwars)의 전통을 따라 카스트 제도 내의 차별에 반대하며, 불가촉천민으로 여겨졌던 사람들도 스리바이슈나바 푸티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그들에게 영적 깨달음을 얻도록 격려하고, ''티르쿨라타르(Tirukulattar)''(고귀한 혈통)라고 부르며 멜루코테(Melukote) 사원에 받아들였다.[32]

라마누자의 자유로운 견해는 스리랑감의 의식 재편성과 비브라만 사람들의 바이슈나바 예배 참여를 이끌었다. 이러한 변화는 카이콜라(Kaikolar)를 포함한 장인과 다른 비브라만 카스트 집단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 라마누자 시대 이후, 스리바이슈나바 공동체는 바다칼라이(북부 및 산스크리트)와 텐칼라이(남부 및 타밀) 종파로 분열되었다.[33] 두 종파 모두 판차 삼스카라를 통한 스리바이슈나바(Sri Vaishnavism) 입문을 중시하며,[34] 이 의식은 브라만과 비브라만 모두 바이슈나바가 되기 위해 행한다.

2. 5. 말년과 죽음

라마누자는 여러 차례 암살 시도에 직면했다. 그가 야다바 프라카사(Yadava Prakasa) 밑에서 공부할 때, 야다바 프라카사는 라마누자의 명성이 높아지자 질투심을 느꼈다. 야다바 프라카사는 갠지스 강 여행 중에 라마누자를 제거하려 했으나, 라마누자의 사촌 고빈다(Govinda)[14]가 이 음모를 알고 라마누자에게 알려주어 그는 노부부 사냥꾼의 도움으로 칸치(Kanchi)로 피신했다. 야다바 프라카사는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라마누자의 제자가 되었다.[35][36]

슈리랑감(Srirangam) 사원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또 다른 암살 시도가 있었다. 슈리랑감 랑가나타스와미 사원(Ranganathaswamy Temple, Srirangam)의 수석 사제는 라마누자를 싫어하여 그를 독살하려 했다. 사제는 라마누자를 집에 초대하여 음식에 독을 넣었으나, 사제의 아내가 라마누자의 신성한 광채를 보고 남편의 계획을 고백했다. 사제는 멈추지 않고 사원의 테르탐(Theertham)(성수)에 독을 넣어 라마누자에게 주었지만, 라마누자는 죽는 대신 기쁨으로 춤을 추었다. 놀란 사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라마누자의 발 아래 엎드렸다.[37]

라마누자는 120세까지 살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인도에서 흔히 있는 이야기로, 사실 여부는 의심스럽다.

3. 철학

스리랑감의 랑가나타스와미 사원 안에 있는 우파데샤 무드라 자세의 라마누자상. 그의 보존된 유해로 여겨진다.


라마누자의 철학적 기반은 유자격 일원론(qualified monism)이었으며, 힌두 전통에서는 비시슈타드바이타라고 불린다.[8][66] 그의 사상은 베단타의 세 가지 하위 학파 중 하나이며, 다른 두 학파는 아디 샹카라의 아드바이타(절대 일원론)와 마드바차리아의 드바이타(이원론)이다.[8]

라마누자는 아디 샹카라의 우파니샤드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 브라흐만은 미분화된 의식이 아니라 분화된 의식이다.
  • 샹카라의 니르구나 브라흐만 개념은 잘못되었고 옹호될 수 없다.
  • 무시무종의 업(카르마)이 아니라, 첩가가 아비디아의 원인이다.
  • 샹카라의 아비디야(무지)와 마야(환상) 교리는 7가지 주요 결함과 모순을 가지고 있다.


라마누자는 베다 경전이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의 원천이라고 보았지만, 아드바이타 베단타를 포함한 다른 힌두교 철학 학파들이 모든 베다 경전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53] 그는 자신의 저서 『슈리 바샤야(Sri Bhāshya)』에서 이전 학파들이 자신들의 일원론적 해석을 지지하는 우파니샤드 구절만 선택적으로 해석하고, 다원론적 해석을 지지하는 구절들은 무시한다고 주장했다.[53] 라마누자는 경전의 일부를 다른 부분보다 선호할 이유가 없으며, 경전 전체를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53]

이러한 경전 해석 방법의 차이로 인해 라마누자는 아디 샹카라와 달리 유자격 일원론이 힌두 영성의 기초라고 결론 내렸다.[53]

라마누자의 비시슈타드바이타는 마드바차르야의 드바이타와 마찬가지로 유신론적 헌신주의 사상을 공유한다. 두 학파 모두 지바(영혼)와 브라흐만(비슈누)은 서로 다르며, 그 차이는 결코 초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57][58] 그러나 마드바차르야와 달리 라마누자는 "자격을 갖춘 불이원론"을 주장하며, 영혼은 브라흐만과 동일한 본질적 성격을 공유하고, 인간 영혼에게 가능한 행복의 질과 정도에 있어 보편적인 동일성이 있으며, 모든 영혼은 신 자신과 같은 행복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57]

라마누자의 비시슈타드바이타 학파와 아디 샹카라의 아드바이타 학파는 모두 불이원론적 베단타 학파이다.[12][59] 두 학파 모두 모든 영혼은 행복한 해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59] 샹카라의 이론은 브라흐만과 원인만이 형이상학적으로 불변의 실재이며, 경험적 세계는 변화하는 환상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15][66] 반면 라마누자는 브라흐만과 물질 세계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절대적인 존재이며, 둘 다 형이상학적으로 실재하고, 속성을 지닌 saguna 브라흐만 또한 실재한다고 주장한다.[66] 라마누자는 브라흐만을 내면의 지배자이자 전지전능한 존재, 그리고 "영혼의 본질"로 보았다. 그는 브라흐만을 지성, 진리, 행복의 근원이자 세계의 통치자로 묘사한다.[47] 라마누자에 따르면, 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혼과 몸을 가지고 있으며, 물질 세계 전체는 신의 몸의 영광이다.[12]

라마누자는 12세기 남인도 마두라이 티루치라팔리의 슈리랑감 사원의 대주교였다. 그는 아디 샹카라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불이일원론)을 공부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비시슈타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수정 불이일원론)을 창시했다.

라마누자의 철학은 현상 세계는 실재이며 신(神)은 인격신이며, 해탈(解脫)은 박티(信愛)에 의해 달성된다는 점에서 샹카라의 철학과 크게 달랐다.

3. 1. 인식론

라마누자의 인식론은 초현실적이거나 순진한 경험론과 유사하다.[41] 지식의 첫 두 원천은 지각과 추론이며, 이들은 일반적인 인간의 "무시무종의 무지"에 종속됨에도 불구하고 신뢰할 수 있다. 꿈에서조차 지식은 항상 실재에 대한 것이며, 오류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지각의 혼란이나 잘못된 추론이다. 지식의 세 번째 원천은 경전의 증언, 또는 더 엄격하게는 ''샤브다(śabda)''(शब्द|샤브다sa)("영원한 소리")로, 감각 지각과 추론을 기반으로 불확실한 많은 것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궁극적인 실재(브라만)의 존재와 본성에 대한 것이다. 일부 순진한 경험론자들과 달리, 라마누자는 지식의 대상을 간헐적으로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식(jñāna)(ज्ञान|지냐나sa)은 대상을 직접 지각할 때만 발생한다. 적절한 경험론자들과 달리, 라마누자는 지식을 감각으로부터 수집할 수 있는 것으로 제한하지 않는다.[42][43][12] 라마누자는 에 대한 지식은 감각 지각이나 논리적 추론이 아닌 베다 경전, 특히 우파니샤드에서만 온다고 주장한다.

라마누자는 ''박티''(bhakti)(भक्ति|박티sa) 즉 헌신 자체가 인식론적(epistemic) 상태라는 그의 견해로 독특했다. 그는 박티가 개인에게 굳건히 뿌리를 내리면 파라박티(parabhakti)(परभक्ति|파라박티sa)로 변하며, 이는 박티의 최고 형태이며, 박티는 브라만의 본성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이므로 일종의 지식(지냐나(jñāna))이라고 말한다.[44][45]

3. 2. 존재론

현실주의자였던 라마누자는 마야(환상) 개념에 단호히 반대했다. 그의 이해에 따르면, 세 가지의 독립된 실체가 존재한다. 광대한 물질적 대상의 영역, 물질적 몸 안에 있는 무수한 의식적인 영혼들, 그리고 초월적인 브라흐만이다. 이러한 각 범주는 비의식적인 물질 세계에서부터 완전히 의식적인 브라흐만까지 각기 다른 정도의 의식을 지니고 있지만, 모두 동등하게 실재한다. 라마누자의 아드바이타(불이원론) 해석은 샹카라가 제시한 아드바이타와는 다르다. 라마누자의 봉헌(bhakti) 개념은 진정한 사랑은 구별된 정체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연인(영혼)과 사랑하는 대상(비슈누) 사이에는 항상 분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입장은 영혼과 물질 세계는 브라흐만과 깊이 연결되어 있지만, 영원히 브라흐만과는 다르다는, 비슈슈타드바이타(유정 불이원론)를 시사한다.[57]

라마누자 철학에서 영혼-몸 모델의 기본 개념은 영혼(jivas)과 물질(prakrti)을 포함한 전체 우주가 "샤리라-샤리리-바바(sarira-sariri-bhava)"라고 불리는 신의 몸(sarira)으로서 기능한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한다. 여기서 "sarira"는 몸을, "sariri"는 내재하는 영혼 또는 의식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브리하다라냐카 우파니샤드 3.7.3-23과 같은 슈루티(sruti) 구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3. 3. 구원론

라마누자에 따르면, 최고의 선은 우리의 참된 본성을 깨닫고 브라흐만의 참된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다. 목샤 또는 영적 해방은 브라흐만을 묵상하는 기쁨(생사윤회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12]으로 여겨지며, 그 기쁨은 신성한 완전함에 대한 헌신, 찬양, 예배 및 묵상의 결과이다. 라마누자에게 브라흐만에 대한 지식은 주로 브라흐만의 특성 때문에 해방을 의미한다.[46] 라마누자에 따르면, 브라흐만은 모든 것을 포괄하지만 본질적으로 균일하지 않다. 다양한 세계에서 나타날 수 있도록 다원성의 요소를 포함한다. 라마누자는 브라흐만을 자신의 영으로 가득 찬 실제 세계를 다스리는 인격적인 신으로 본다. 그는 브라흐만이 “전능, 전지 및 무한한 사랑”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47]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브라흐만 이외의 존재는 기쁨의 본성에 대한 그러한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유한한 정도와 제한된 기간 동안만 가능하다. 그러나 브라흐만은 그를 인식하는 것이 무한하고 지속적인 기쁨인 존재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슈루티[경전]는 ‘브라흐만은 기쁨이다’라고 말한다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 II.6). 기쁨으로서의 인식의 형태는 그 대상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브라흐만 그 자체가 기쁨이다.”[48]


라마누자는 브라흐만의 본성에 대한 단순한 이론적 지식만으로는 목샤를 얻기에 불충분하다고 명확히 한다.[45] 라마누자에 따르면, 바크티 요가 (헌신 또는 예배)는 해방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48] 그의 해석에서 목샤는 윤회 또는 일련의 환생으로부터의 부정적인 분리라기보다는 신성한 완전함을 묵상하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브라흐만에 대한 독점적인 헌신(바크티)의 삶, 그의 찬양을 부르고 사원과 개인 예배에서 아첨하는 행위를 하고 그의 완전함을 끊임없이 숙고함으로써 얻어진다. 그 대가로 브라흐만은 그의 은총을 베풀어 헌신자의 해방을 돕는다.[49][50][12]

그의 가르침은 후에 고양이파와 원숭이파로 분열되었다. 고양이파는 새끼 고양이가 위험해지면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의 목을 물고 이동하는 데 반해, 원숭이파는 새끼 원숭이가 위험해지면 새끼 원숭이가 어미 원숭이에게 달라붙어 이동한다. 즉,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것인가, 아니면 개인의 노력도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3. 4. 윤리학

라마누자의 윤리 체계는 도덕성이 내재적 가치와 도구적 가치를 모두 지닌다고 주장한다. 내재적으로 도덕성은 도덕적으로 완벽하며 도덕적일 외부적 이유가 필요 없는 신의 신성한 본성을 반영한다. 도구적으로 도덕성은 과거 잘못에 대한 업보의 짐을 덜고 신을 달래어 영적 해방을 용이하게 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51] 라마누자는 ''지냐나 요가''를 통한 초탈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대부분에게는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한다. 대신 그는 개인의 능력과 성격에 따라 의무를 다하는 ''카르마 요가''를 옹호하며, 이는 도덕성을 개인의 삶에 적합하고 접근 가능하게 만든다.[51]

3. 5. [[아디 샹카라]] 비판

라마누자는 상카라의 우파니샤드 해석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52] 그의 주요 반론은 다음과 같다.

  • 브라흐만은 미분화된 의식이 아니라 분화된 의식이다.
  • 상카라의 니르구나 브라흐만 개념은 잘못되었고 옹호될 수 없다.
  • 무시무종의 업(카르마)이 아니라, 첩가가 아비디아의 원인이다.
  • 상카라의 아비디야(무지)와 마야(환상) 교리는 7가지 주요 결함과 모순을 가지고 있다.


라마누자는 상카라의 아드바이타 베단타 철학(불이일원론)을 공부했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비시슈타드바이타 베단타 철학(수정 불이일원론)을 창시했다. 그의 철학은 현상 세계는 실재이며 신(神)은 인격신이며, 해탈(解脫)은 박티(信愛)에 의해 달성된다는 점에서 상카라의 철학과 크게 달랐다.

3. 6. 경전 해석

라마누자는 베다 경전이 신뢰할 수 있는 지식의 원천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아드바이타 베단타를 포함한 다른 힌두교 철학 학파들이 모든 베다 경전을 해석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53] 그는 그의 저서 『슈리 바샤야(Sri Bhāshya)』에서 이전 학파(purvapaksin)들이 자신들의 일원론적 해석을 지지하는 우파니샤드 구절만 선택적으로 해석하고, 다원론적 해석을 지지하는 구절들은 무시한다고 주장했다.[53] 라마누자는 경전의 일부를 다른 부분보다 선호할 이유가 없으며, 경전 전체를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53] 라마누자에 따르면, 어떤 경전의 일부분만을 따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경전은 일관된 교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통합된 자료로 간주되어야 한다.[53] 라마누자는 베다 문헌이 다원성과 일원성 모두를 언급하기 때문에, 진리는 다원론과 일원론, 또는 유자격 일원론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3]

이러한 경전 해석 방법은 라마누자를 아디 샹카라와 구별짓는다. 샹카라의 주석 접근 방식인 '사만바야타 탓파르야 링가(Samanvayat Tatparya Linga)'와 '안바야-비야티레카(Anvaya-Vyatireka)'는 적절한 이해를 위해서는 모든 경전을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그 후 여섯 가지 특징에 따라 의도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저자가 자신의 목표로 명시한 것을 연구하고, 설명에서 반복하는 내용, 결론으로 명시하는 내용, 그리고 인식론적으로 검증 가능한지 여부가 포함된다.[54][55] 샹카라에 따르면, 어떤 경전의 모든 내용이 동일한 무게를 가지는 것은 아니며, 어떤 사상은 전문가의 경전 증언의 본질이다. 경전 연구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차이는 샹카라가 주요 우파니샤드가 '너는 그것이다(Tat tvam asi)'와 같은 가르침을 통해 주로 일원론을 가르친다고 결론 내리는 데 기여했고, 라마누자는 유자격 일원론이 힌두 영성의 기초라고 결론 내리는 데 기여했다.[53]

4. 영향

해럴드 카워드는 라마누자를 "스리바이슈나바 경전의 창시자이자 해석가"라고 묘사한다.[61] 웬디 도니거는 그를 "아마도 헌신적인 힌두교 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일 것"이라고 말한다.[62] J. A. B. 반 부이테넨은 라마누자가 "박티에 지적인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그의 노력으로 박티가 힌두교의 다양한 전통 내에서 주요한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12]

라마누자의 평등의 동상(Statue of Equality), 하이데라바드




현대 학자들은 힌두교에서 라마누자의 중요성을 서구 기독교에서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의 중요성에 비교해왔다.[63][64][65]

스리랑감에 있는 랑가나타스와미 사원의 스리 라마누자 사당


라마누자는 스리랑감 랑가나타스와미 사원 단지를 개혁하고, 인도 전역을 여행하며 그의 조직의 영향력을 확장했다. 이 사원 조직은 그의 사상과 제자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바로 이곳에서 그가 그의 영향력 있는 비시슈타드바이타 철학 논문인 ''스리 바샤야''를 저술했다.

라마누자는 이론을 개발하고 철학적 저술을 출판했을 뿐만 아니라 비슈누-락슈미 숭배를 위한 사원 네트워크를 조직했다.[62] 그는 11세기와 12세기 동안 인도를 여행하며 그의 철학을 위한 연구 센터를 설립했고, 이는 박티 운동에 헌신한 여러 세대의 시성들에게 영향을 미쳤다.[62] 지역 전통은 그의 방문, 논쟁 및 담론이 마이소르와 데칸 지역에서 자이나교도와 불교도의 바이슈나바교 개종을 촉발했다고 주장한다.[62][66]

첸나이 근처에 있는 라마누자의 출생지는 사원이 있으며 활발한 비시슈타드바이타 학파이다. 그의 교리는 활발한 지적 전통에 영감을 주었고, 그의 종교적 실천은 랑가나타 사원(스리랑감)과 벤카테스와라 사원(티루파티)와 같은 주요 바이슈나바 중심지에서 계속되고 있다.[12]

하이데라바드에 있는 ''평등의 동상''은 친나 지이야르(Chinna Jeeyar)가 기획한 라마누자에게 헌정된 것이다.[67] 이는 2022년 2월 5일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에 의해 개관되었다.[68]

5. 저술

스리바이슈나바 전통에서는 라마누자에게 9가지 산스크리트어 텍스트를 귀속시키는데, 그것들은 베다르타상그라하(베다 의미 요약), 슈리 바샤(브라마 슈트라 주석), 기타 바샤(바가바드 기타 주석) 그리고 소규모 작품인 베단타디파, 베단타사라, 가디야 트라얌(शरणगत गद्यं|샤라나가티 가디얌sa, श्रीरङ्ग गद्यं|슈리랑가 가디얌sa, वैकुण्ठ गद्यं|바이쿤타 가디얌sa 세 작품으로 구성됨) 및 नित्य ग्रन्थं|니티야 그란탐sa이다.[38]

일부 학자들은 라마누자가 스리랑감에서 저술한 슈리 바샤, 베다르타상그라하, 바가바드 기타 바샤 세 가지 주요 작품과 가디야 트라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저술의 진위 여부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39][40]

6. 다른 이름

라마누자는 Śrī Rāmānujāchārya|스리 라마누자차리야sa, 우다이아바르(Udaiyavar), 에티라자르(Ethirājar, 야티라자(Yatirāja)라고도 불리며 수도승들의 왕이라는 뜻이다), 바샤야카라(텔루구어로는 바샤야카룰루(Bhashyakarulu))[69], 고다그라자르(Godāgrajar), 티루파바이 제야르(Thiruppavai Jeeyar), 엠페루마나르(Emberumānār), 락슈마나 무니[70]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다음은 라마누자를 부르는 다른 이름과 그 이름을 수여한 사람을 정리한 표이다.

이름수여한 사람
일라야즈와르(Ilayazhwar)페리야 티루말라이 남비(Periya Thirumalai Nambi)
부다 푸리세르(Boodha Puriser)스리페룸부두르 아디케사바 페루말(Sriperumbudur Adikesava Perumal)
암 무달반 에반(Am Mudalvan Evan)야무나차리아(Yamunāchārya)
에티라자르(Ethirajar), 라마누자 무니(Ramanuja Muni)칸치 페라룰랄라 페루말(Kanchi Perarulala Perumal)
우다야바르(Udayavar)스리랑감 페리야 페루말(Srirangam Periya Perumal)
엠페루마나르(Emperumanar)티루코즈티유르 남비(Tirukozhtiyur Nambi)
티루파바이 제야르(Tiruppavai Jeeyar)페리야 남비(Periya Nambi)
락슈마나 무니(Lakshmana Muni)티루바랑가 페루말 아라야르(Tiruvaranga Perumal Arayar)
사다고판 폰나디(Sadagopan Ponnadi)티루말라이단단(Tirumalaiyandan)
스리 바샤야카라르(Sri Bashyakarar)칼라이마갈(Kalaimagal)
데시 켄디란(Desi Kendiran)티루파티 티루벤카타무다얀(Tirupathi Thiruvenkatamudayan)
코일 안난(Koil Annan)스리빌리푸투르 코타이 나치야르(Srivilliputhur Kothai Nachiya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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