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포함 코리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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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코리에츠는 1904년 러일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여한 러시아 해군 군함의 이름이다. 1904년 2월 제물포 해전에서 자침한 군함(1대)은 스웨덴에서 건조되었으며, 76mm 함포 등을 탑재했다. 1942년 흑해에서 자침한 수송선(2대)은 1918년 건조되어 37mm 함포 등을 장착했다. 또한 현대 러시아 해군은 그리샤 III급 코르벳에 "코리에츠"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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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포함 코리에츠 - [배(Ship)]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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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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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 | 코리에츠 (Кореец) |
함종 | 포함 |
함급 | 코리에츠급 포함 |
건조 국가 | 러시아 제국 |
건조 장소 | ・스톡홀름 |
진수 | 1886년 8월 7일 |
취역 | 1888년 |
퇴역 | 1904년 |
최종 운명 | 인천沖海戦에서 침몰 후 일본 해군에 의해 인양, 해체됨 |
설계 | Bergsund Mekaniska, 스웨덴, 스톡홀름 |
제원 | |
배수량 | 1,355 톤 |
길이 | 66.3 미터 |
폭 | 10.7 미터 |
흘수 | 3.5 미터 |
추진 방식 | 범주, 기주 (2축 추진식 증기 기관) 병용 |
속력 | 13.5 노트 |
항속 거리 | 2,850 해리 / 8 노트 |
승무원 | 사관 12명, 해병 162명 |
무장 | |
주포 | 203 밀리미터 포 2문 |
부포 | 152 밀리미터 포 1문 |
기타 포 | 9 파운드 포 4문, 37 밀리미터 포 4문, 64 밀리미터 포 1문 |
어뢰 발사관 | 381 밀리미터 어뢰 발사관 1기 |
전투 및 작전 이력 | |
주요 전투 | 제물포 해전 (1904년) |
추가 정보 | |
러시아어 표기 | Кореец |
2. 함정 정보
러시아 태평양 함대에 편성된 코리에츠는 1895년부터 일본, 조선, 중국 북부 항구에 자주 기항하며 활동했다. 의화단의 난이 발생했을 때는 8개국 연합군에 소속되어 참전했으며, 1900년 6월에는 톈진의 다구 포대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포격으로 6발을 맞아 승무원 9명이 전사하고 20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다.
1904년, 러시아와 일본 간의 긴장이 고조되자, 러시아는 자국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순양함 바략과 함께 코리에츠를 제물포항(현재의 인천항)으로 파견했다. 2월 7일, 러시아 상선으로부터 일본 함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코리에츠는 뤼순항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월 8일 새벽, 출항을 준비하던 코리에츠는 제물포항 밖에 정박 중이던 일본 순양함 지요다를 아군 함선으로 오인하고 출항 신호로 포격을 가했다. 이를 공격으로 받아들인 지요다는 어뢰로 응사했으나 양측 모두 피해는 없었다. 이 사건은 러일 전쟁의 직접적인 도화선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어느 쪽이 먼저 발포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3]。 이 교전으로 인해 코리에츠는 출항을 중단하고 제물포항에 머물게 되었다.
이후 벌어진 제물포 해전에서 일본 해군 제독 우류 소토키치 소장은 바략의 함장 프세볼로트 루드네프 대령에게 항복을 권고했으나, 루드네프 대령은 이를 거부했다. 바략과 코리에츠는 일본 함대의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강행 돌파를 시도했다. 코리에츠는 52발의 포탄을 발사했지만 일본 함대에 명중시키지 못했다. 반면, 일본 함대의 집중 포격으로 바략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코리에츠 역시 피탄되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오가 지나도록 돌파에 실패하자 두 함선은 제물포항 내 중립국 군함 근처로 후퇴했다.
결국 오후 4시경, 코리에츠는 일본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승무원들이 직접 탄약고를 폭파시켜 자침했다. 생존한 승무원들은 프랑스 순양함 파스칼(Pascal) 호에 의해 구조되어 사이공 등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이송된 후 러시아로 송환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한 승무원 전원에게는 군사 훈장인 제4급 성 게오르기 훈장이 수여되었다.
1905년, 코리에츠는 일본군에 의해 인양된 후 해체되었다.
한편, 두 번째 '코리에츠'라는 이름을 가진 포함은 19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건조되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이 함선은 문사운드 해전 중이던 1915년 8월 8일, 독일군에게 나포될 위기에 처하자 승무원들에 의해 자침되었다.
2. 1. 건조 및 취역
코리에츠는 1885년 12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위치한 조선소에서 건조를 시작했다. 이후 1886년 8월 7일에 준공되었으며, 1888년에 러시아 제국 해군에 정식으로 취역하였다.2. 2. 제원
코리에츠는 1885년 12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 위치한 조선소에서 건조를 시작했다. 이후 1886년 8월 7일에 준공되었으며, 1888년에 정식으로 취역하여 활동을 시작했다.3. 운용 역사
1885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베르그순드 메카니스카(Bergsunds Mekaniska Verkstad) 조선소에서 기공되어 1886년 8월 7일 진수되었고, 1888년에 취역하여 러시아 제국 해군 소속이 되었다.
이후 러시아 태평양 함대에 배속되어 1895년부터 조선, 일본, 중국 북부 항구를 자주 방문하며 활동했다. 1900년 의화단 운동이 발발하자 8개국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톈진의 다구 포대 공격에 참여했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 측 포격으로 승무원 9명이 전사하고 20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다.
1904년 초, 러시아와 일본 간의 긴장이 고조되자 러시아는 자국의 이익 보호를 명분으로 순양함 바략과 함께 '코리에츠'를 대한제국의 제물포항(현재의 인천항)으로 파견했다. 2월 8일, '코리에츠'는 뤼순항으로 복귀하려다 제물포항 외곽에서 일본 순양함 지요다와 우발적인 교전을 벌였는데, 이는 러일 전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1][3] 이 교전 후 '코리에츠'는 출항을 포기하고 제물포항으로 후퇴했다.
다음 날인 2월 9일, 제물포 해전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일본 함대의 항복 요구를 거부하고 '바략'과 함께 포위망 돌파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진 '코리에츠'는 일본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같은 날 오후 승무원들에 의해 자침되었다. 생존 승무원들은 프랑스 군함에 구조되어 러시아로 귀환했으며, 용맹을 인정받아 성 게오르기 훈장을 받았다.
1905년 '코리에츠'의 잔해는 일본군에 의해 인양되어 고철로 해체되었다.
한편, '코리에츠'라는 이름을 계승한 두 번째 포함은 19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인도되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며, 1915년 8월 8일 문사운드 해전에서 독일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승무원들에 의해 자침되었다.
3. 1. 초기 활동
1885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베르그순드 메카니스카 조선소에서 기공되어 1886년 8월 7일 진수되었으며, 1888년에 취역했다.1895년 러시아 태평양 함대에 배속된 코리에츠는 조선, 일본, 중국 북부의 항구를 자주 방문하며 활동했다. 의화단 운동이 발발하자 8개국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했으며, 1900년 6월에는 톈진의 다구 포대 공격에 참여했다. 이 전투 과정에서 코리에츠는 중국 방어군의 포탄에 6발을 맞아 승무원 중 9명이 전사하고 20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다.
3. 2. 의화단 운동 참전
러시아 태평양 함대에 배속된 코리에츠는 1895년부터 조선, 일본, 중국 북부 항구를 자주 방문했다.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자 1900년 6월, 8개국 연합군의 일원으로 톈진의 다구 포대 공격에 참여했다. 이 전투에서 코리에츠는 중국 측 포대에 6발을 맞아 승무원 9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다.[1]3. 3. 러일 전쟁
1904년 러시아와 일본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열강의 이권 다툼이 치열했던 대한제국의 제물포항(현재의 인천항)에 러시아는 자국의 이익 보호를 명분으로 순양함 바략과 함께 포함 '코리에츠'를 파견했다.2월 7일, 러시아 수송선 '숭가리'호로부터 일본 함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코리에츠'는 상황 보고를 위해 뤼순항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월 8일 이른 아침, 출항을 준비하던 '코리에츠'는 제물포항 외곽에 정박 중이던 일본 순양함 지요다를 아군 함선으로 오인하여 포를 발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요다' 역시 어뢰를 발사하며 응수했으나 양측 모두 피해는 없었다. 이 사건은 러일 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평가받지만, 어느 쪽이 먼저 발포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교전으로 인해 '코리에츠'는 뤼순항으로의 출항을 중단하고 제물포항으로 후퇴했다.[1][3]
다음 날인 2월 9일, 제물포 해전이 발발했다. 일본 해군 우류 소토키치 소장의 항복 요구를 바략의 함장 프세볼로트 루드네프 대령이 거부하면서, '바략'과 '코리에츠'는 수적으로 우세한 일본 함대에 맞서 포위망 돌파를 시도했다. 격렬한 전투 끝에 '바략'은 큰 피해를 입었고, '코리에츠' 역시 교전 후 제물포항으로 후퇴했다. 결국 더 이상의 항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코리에츠'는 같은 날 오후 4시경, 승무원들에 의해 탄약고가 폭파되어 스스로 침몰하는 자침을 선택했다.
'코리에츠'의 생존 승무원들은 프랑스 순양함 '파스칼'에 의해 구조되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사이공을 거쳐 러시아로 귀환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모든 승무원에게는 용맹을 기리는 성 게오르기 훈장 4급이 수여되었다.
1905년, '코리에츠'의 잔해는 일본군에 의해 인양되어 고철로 해체되었다.
3. 3. 1. 제물포 해전

1904년, 러시아와 일본 간의 긴장이 고조되자, 러시아는 자국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해 순양함 바략과 함께 포함 '코리에츠'를 뤼순항에서 조선의 주요 항구인 제물포항(현재의 인천항)으로 파견했다. 2월 7일, 제물포에 도착한 러시아 수송선 '숭가리'호가 일본 함대의 접근을 보고하자, '코리에츠'는 뤼순항으로 복귀하여 상황을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월 8일 이른 새벽, '코리에츠'는 출항을 준비하던 중 제물포항 외곽에 정박 중이던 일본 순양함 지요다를 발견했다. 이를 아군 함선으로 오인한 '코리에츠'는 출항 신호 또는 예포 발사를 위해 포를 장전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포탄을 발사했다. 이를 공격으로 간주한 '지요다'는 즉시 어뢰를 발사하며 응수했으나, 양측 모두 피해는 없었다. 이 사건은 러일 전쟁의 실질적인 첫 교전으로 여겨지지만, 어느 쪽이 먼저 발포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 교전 후 '코리에츠'는 출항을 포기하고 제물포항으로 후퇴했다.[1][3]
다음 날인 2월 9일, 제물포 해전이 발발했다. 일본 제국 해군의 우류 소토키치 소장은 '바략'의 함장 프세볼로트 루드네프 대령에게 항복을 강요했으나, 루드네프 함장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수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바략'과 '코리에츠'는 일본 함대의 포위망을 뚫고 공해로 나아가기 위해 용감하게 강행 돌파를 시도했다.
교전 중 '코리에츠'는 일본 함대를 향해 52발의 포탄을 발사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대부분 명중하지 못했다. 반면, 일본 함대의 집중 포화로 '바략'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코리에츠' 역시 일본 함대의 포격으로 피탄되어 사상자가 발생했다.[3] 정오가 지나도록 일본 함대의 포위망을 돌파하지 못하자, 두 러시아 함선은 결국 제물포항 내에 정박 중이던 중립국 군함들 근처로 후퇴하여 피신했다.
같은 날 오후 4시경,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코리에츠'의 승무원들은 함선이 일본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두 개의 탄약고를 폭파시켜 자침했다. 생존한 승무원들은 프랑스 순양함 '파스칼'에 의해 구조되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사이공으로 이송되었고, 이후 러시아로 송환되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한 모든 승무원들에게는 용맹함을 기리는 의미로 제4급 성 게오르기 훈장이 수여되었다.
3. 3. 2. 자침
제물포 해전에서 바략의 함장 프세볼로트 루드네프 대령은 일본 제국 해군 제독 우류 소토키치의 항복 요구를 거부하고, 1904년 2월 9일 바략과 함께 제물포항을 포위한 일본 함대를 돌파하려 시도했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코리에츠는 일본 함대를 향해 52발의 포탄을 발사했으나, 거리가 멀어 대부분 명중하지 못했다. 이 교전에서 바략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코리에츠는 파편으로 인한 가벼운 손상만 입었을 뿐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오후가 되도록 일본 함대를 돌파할 수 없다고 판단한 코리에츠와 바략은 제물포항 안쪽의 중립국 군함 근처로 후퇴했다. 같은 날 오후 4시경, 코리에츠는 승무원들이 직접 두 개의 탄약고를 폭파시켜 스스로 침몰하는 자침을 선택했다.
코리에츠의 승무원들은 프랑스 순양함 파스칼에 의해 구조되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사이공으로 이송되었고, 이후 러시아로 무사히 귀환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모든 장교와 승무원들에게는 러시아 제국의 최고 군사 훈장 중 하나인 성 게오르기 훈장 4급이 수여되었다.
1905년, 코리에츠의 잔해는 일본군 기술자들에 의해 인양되어 고철로 처리되었다.

3. 4. 일본에 의한 인양 및 해체
1905년 러일 전쟁이 끝난 후 코리에츠는 일본군에 의해 인양되어 해체되었고, 잔해는 고철로 처리되었다.4. 2대 코리에츠
1대 코리에츠의 이름을 계승한 두 번째 함선이 건조되었다. 이 함선은 길략급 포격함으로 19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진수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1915년 문사운드 해전 중 독일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승무원들에 의해 자침되었다.
4. 1. 건조 및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두 번째 코리에츠는 길략급 포격함으로, 1906년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푸틸로프 공장에서 건조되어 인도되었다. 이 함선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전쟁 말기 문사운드 해전에 참가했으며, 1915년 8월 8일 독일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승무원들에 의해 자침되었다.
4. 2. 문사운드 해전과 자침
두 번째 '코리에츠'는 길략급 포격함으로, 1906년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푸틸로프 공장에서 건조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으며, 문사운드 해전에 참가했다. 1915년 8월 8일, 독일군에게 나포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승무원들이 직접 배를 폭파시켜 자침했다.5. 기타
(내용 없음)
5. 1. 그리샤 III급 코르벳 "코리에츠"
그리샤 III급 코르벳 ''Кореец|코리에츠ru''는 현대 러시아 해군 소속의 코르벳으로, 러시아 한인 협회의 요청에 따라 러일 전쟁 당시의 군함 ''코리에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2]참조
[1]
서적
"''Rising Sun and Tumbling Bear: Russia's War with Japan ''"
Cassell
[2]
웹사이트
"Малый противолодочный корабль МПК-17 (ТОФ) получил имя \"Усть-Илимск\""
http://vladimir-pele[...]
[3]
서적
"''Rising Sun and Tumbling Bear: Russia's War with Japan ''"
Cassell
[4]
문서
실제로는 ''카리에츠''에 가깝게 들린다. 여기서는 [[위키백과:외래어 표기법/러시아어|러시아어 한국어 표기법 권고안]]에 따라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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