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조약 (19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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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런던 조약 (1913년)은 제1차 발칸 전쟁 종전 후 1913년 5월 30일 런던에서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은 알바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오스만 제국이 발칸 동맹에 영토를 할양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알바니아의 국경선 획정 문제와 발칸 동맹 간의 영토 분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제2차 발칸 전쟁을 촉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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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발칸 전쟁 - 발칸 동맹
발칸 동맹은 1912년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그리스가 결성한 군사 동맹으로, 복잡한 국제 정세와 각국의 이해관계 충돌, 오스만 제국의 약화가 배경이었으나, 영토 야망과 불신으로 제2차 발칸 전쟁을 초래하며 붕괴되어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에 영향을 미쳤다.
런던 조약 (1913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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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정보 | |
조약 이름 | 런던 조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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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일 | 1913년 5월 30일 |
서명 장소 | 런던, 영국 |
서명국 | 불가리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그리스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 이탈리아 왕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내용 | |
주요 내용 | 제1차 발칸 전쟁의 종결에 따른 영토 문제 조정 |
기타 정보 | |
영어 제목 | Treaty of London |
2. 배경
1912년 발칸 동맹(세르비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발칸 동맹의 승리로 끝났지만, 영국(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 등 유럽 열강들이 개입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3]
2. 1. 제1차 발칸 전쟁
1912년 12월 2일, 발칸 동맹(세르비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과 오스만 제국 간의 전투가 종식되었다.[3] 주요 쟁점 영토는 다음과 같았다.[3][4][10]- 알바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가 대부분을 점령했다.
- 산자크: 1878년 베를린 조약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 코소보,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발칸 동맹이 점령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탈리아는 세르비아의 아드리아해 진출을 막기 위해 알바니아의 독립을 지지했다.[3][4][10] 러시아 제국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지지했고, 독일 제국과 영국은 중립을 지켰다.
2. 2. 열강들의 개입
1912년 12월 2일 제1차 발칸 전쟁이 종식된 후, 발칸 동맹(세르비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과 오스만 제국 외에도 영국(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 등 유럽 열강들이 개입했다.[3]당시 쟁점이 되었던 영토 문제는 크게 3가지였다.[3]
- 현재의 알바니아에 해당하는 영역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가 알바니아의 대부분을 침공했음)
- 1878년 베를린 조약 체결 이후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호를 받고 있던 산자크 영역
- 연합국이 점령하고 있던 코소보,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영역
1912년 11월 28일 알바니아 독립 선언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의 독립을 강하게 지지했다.[10]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가 아드리아해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전부터 견제 정책을 펼쳐왔고, 이탈리아는 1939년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침공에서 드러나듯이 알바니아에 대한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10] 러시아 제국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입장을 지지했으며, 독일과 영국은 중립을 유지했다.[10]
3. 조약 협상 과정
1912년 12월 2일, 제1차 발칸 전쟁의 전투 행위가 종결되었다. 이 전쟁의 승자는 발칸 동맹(세르비아, 그리스 왕국,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왕국)이었고, 패자는 오스만 제국이었다. 영국,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등 강대국들이 이 문제에 개입했다.
쟁점이 된 영토 문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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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협상은 1912년 12월부터 런던에서 열린 1913년 런던 회의에서 진행되었다.
3. 1. 알바니아 독립 문제
1912년 11월 28일 알바니아 독립 선언이 발표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의 독립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 왕국이 아드리아해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러한 입장을 취했으며, 이탈리아는 1939년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침공에서 드러나듯이 알바니아 지역에 대한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 제국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왕국을 지지한 반면, 독일 제국과 영국은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했다.[4] 발칸 동맹 국가들은 알바니아 영토를 분할하려 했으나,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알바니아는 독립 국가로 남게 되었다.3. 2. 기타 영토 분쟁
런던 국제 회의는 알바니아의 독립 선언 이후인 1912년 12월에 열렸다. 이 조약[4]에서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날 알바니아 영토의 지위: 알바니아 영토 대부분은 세르비아에 의해 점령되었고, 몬테네그로와 그리스도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
- 노비파자르 산자크의 지위: 1878년 베를린 조약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 코소보 빌라예트, 마케도니아, 트라키아 등 연합군이 점령한 다른 영토들의 지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탈리아는 독립 알바니아 건설을 강력히 지지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의 아드리아 해 진출을 막으려 했고, 이탈리아는 1939년 알바니아 침공에서 드러났듯이 이 지역에 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10] 러시아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지지했고, 독일과 영국은 중립을 유지했다. 발칸 동맹국들은 알바니아 영토를 분할할 계획이었으나, 강대국들의 개입으로 무산되었다.
4. 조약 내용
런던 국제 회의에서 협상된 이 조약은 강대국들의 압력으로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다.[4]
- 알바니아는 독립 국가로 인정되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는 알바니아에서 군대를 철수해야 했다.
- 오스만 제국은 에게해의 에노스와 흑해의 미디아를 잇는 선 서쪽의 모든 유럽 영토(알바니아 제외)와 크레타 섬에 대한 모든 주권을 발칸 동맹에 할양했다.
- 코소보 빌라예트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사이에 분할되었으며, 산자크 지방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 분할되었다.
- 불가리아는 트라키아에서 에네스와 미디아를 잇는 선 북쪽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발칸 동맹국 간의 영토 분할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마케도니아 지역 분할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1913년 6월 제2차 발칸 전쟁으로 이어졌다.[5]
4. 1. 알바니아 독립 인정
런던 국제 회의에서 협상된 런던 조약에 따라, 알바니아는 독립 국가로 인정되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는 알바니아에서 군대를 철수해야 했다.[4] 알바니아의 국경 및 기타 문제들은 열강에 의해 결정될 예정이었다.[4]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탈리아와 함께 독립 알바니아 건설을 강력히 지지했는데, 이는 세르비아의 아드리아 해 진출을 저지하려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기존 정책과 일치했다. 이탈리아는 1939년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침공에서 드러났듯이 이 지역에 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지지했고, 독일과 영국은 중립을 유지했다.
피렌체 의정서(1913년 12월 17일)에 따른 알바니아의 정확한 경계선 지도는 남알바니아(그리스 명칭: 북에피루스)의 그리스인들에게 강한 불쾌감을 안겨주었고, 그리스인들은 폭동 이후 북에피루스 자치 공화국을 선포하였으며, 코르푸 의정서에 따라 알바니아 영토 내의 자치구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11]
4. 2. 영토 할양

열강의 강요에 따라, 오스만 제국은 에게해의 에노스와 흑해의 미디아를 잇는 선 서쪽의 모든 유럽 영토를 발칸 동맹에 할양해야 했다. 단, 알바니아는 제외되었다.[4] 또한, 오스만 제국은 크레타 섬에 대한 모든 주권을 포기했다.[4]
코소보 빌라예트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사이에 분할되었으며, 산자크 지방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 분할되었다.[4] 불가리아는 트라키아에서 에네스와 미디아를 잇는 선 북쪽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4]
하지만, 발칸 동맹에 할양된 영토의 구체적인 분할 문제는 조약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세르비아가 1912년 3월 조약에서 불가리아와 합의한 분할을 거부하면서, 마케도니아 지역의 분할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1913년 6월 제2차 발칸 전쟁으로 이어졌다.[5]
4. 3. 마케도니아 문제 미해결
런던 조약에서는 발칸 동맹에 할양된 영토의 분할을 다루지 않았다. 특히 마케도니아 지역 분할에 대한 최종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르비아는 1912년 3월 조약에서 불가리아와 합의한 분할을 이행하지 않았고, 이에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의 군사적 분할에 불만을 품고 1913년 6월 16일 제2차 발칸 전쟁을 일으켰다.[5]5. 조약의 결과 및 영향
런던 조약은 강대국들의 압력으로 체결되었지만, 발칸 동맹국들은 조약 내용에 불만을 품고 이행하지 않았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알바니아는 독립 국가로 인정되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그리스는 알바니아에서 군대를 철수해야 했다.
- 산자크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 분할되었다.
- 트라키아는 불가리아에 양도되었다.
- 마케도니아 지역 분할에 대한 최종 합의는 연합국 간의 이견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런던 조약의 미비점은 결국 제2차 발칸 전쟁 발발의 원인이 되었다.
피렌체 의정서(1913년 12월 17일)에 따라 알바니아의 국경선이 확정되었지만, 남알바니아(그리스 명칭: 북에피루스)의 그리스인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북에피루스 자치 공화국을 선포했고, 코르푸 의정서에 따라 알바니아 영토 내 자치구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11]
5. 1. 제2차 발칸 전쟁 발발
1913년 6월, 런던 조약의 미비점으로 인해 제2차 발칸 전쟁이 발발했다.[4] 발칸 동맹에 할양된 영토 분할은 조약에서 다루어지지 않았고, 세르비아는 1912년 3월 조약에서 불가리아와 합의한 분할을 거부했다. 마케도니아의 사실상 군사적 분할에 대한 불가리아의 불만으로 인해 1913년 6월 16일 제2차 발칸 전쟁이 발발했다.[5] 불가리아군은 패배했고, 오스만 제국은 에노스-미디아 선 서쪽에서 약간의 이득을 얻었다. 최종 평화는 1913년 8월 12일 부쿠레슈티 조약에서 합의되었다. 불가리아와 터키 사이에는 별도의 조약인 콘스탄티노플 조약이 체결되어 두 나라 사이의 현대 국경을 대체로 정의했다.5. 2. 부쿠레슈티 조약 체결
1913년 6월에 발발한 제2차 발칸 전쟁은 1913년 8월 12일 부쿠레슈티 조약 체결로 종결되었다.[4] 불가리아군은 패배했고, 오스만 제국은 에노스-미디아 선 서쪽에서 약간의 영토를 회복했다. 불가리아와 오스만 제국은 별도로 콘스탄티노플 조약을 체결하여 양국 간의 국경선을 확정했다.[5]5. 3. 알바니아 문제 지속
1913년 12월 17일 피렌체 의정서에 따라 알바니아의 국경이 확정되자, 남부 알바니아(북에피루스)의 그리스계 주민들은 이에 반발했다.[6][7] 이들은 북에피루스 자치 공화국을 선포하고 봉기했으며, 이후 코르푸 의정서를 통해 알바니아 내 자치권을 인정받았다.[6][7]그러나 알바니아인들은 이 조약이 열강에 의해 강요된 불공정한 조치라고 여겼다. 알바니아인 다수가 거주하는 영토의 약 절반과 전체 인구의 40%가 알바니아 국경 밖에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8][9]
6. 역사적 평가
(런던 조약 (1913년)의 본문 내용이 없으므로 '역사적 평가' 섹션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참조
[1]
서적
Handbook for the Diplomatic History of Europe, Asia, and Africa 1870–1914
National Board for Historical Service, Government Printing Office
[2]
웹사이트
The Treaty of London, 1913
http://www.mtholyoke[...]
[3]
서적
War in the Balkans: An Encyclopedic History from the Fall of the Ottoman Empire to the Breakup of Yugoslavia
[4]
웹사이트
(HIS,P) Treaty of Peace between Greece, Bulgaria, Montenegro, Serbia on the one part and Turkey on the other part. (London) 17/30 May 1913
http://www.zum.de/ps[...]
Zum.de
2013-05-30
[5]
서적
The Balkan Wars, 1912–1913
[6]
서적
The Routledge Handbook of Balkan and Southeast European History
Routledge Handbooks Online
2020-10-20
[7]
서적
The Balkan Exchange of Minorities and Its Impact Upon Greece
https://books.google[...]
Walter de Gruyter GmbH & Co KG
2021-03-22
[8]
서적
Political Parties of Eastern Europe: A Guide to Politics in the Post-Communist Era
M.E. Sharpe
2012-05-29
[9]
서적
Historical dictionary of Albania
Scarecrow Press
2012-02-04
[10]
웹사이트
(HIS,P) ギリシャ、ブルガリア、モンテネグロ、セルビアと対するトルコの平和条約(ロンドン)1913年5月17-30日
http://www.zum.de/ps[...]
[11]
서적
Southern Albania or Northern Epirus in European International Affairs, 1912–1923
https://books.google[...]
Stan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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