뤄창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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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뤄창페이는 1899년에 태어나 1958년에 사망한 중국의 언어학자이다. 베이징 대학에서 공부하고 교수로 재직했으며, 중국 과학원 언어 연구소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방언학과 음운론 연구에 기여했으며, 특히 중국 소수 민족 언어 연구에도 힘썼다. 주요 저서로는 《샤먼 음계》, 《당오대서북방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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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뤄창페이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원어 이름 | 罗常培 (Luó Chángpéi) |
| 출생일 | 1899년 8월 9일 |
| 출생지 | 청나라 베이징 |
| 사망일 | 1958년 12월 13일 (향년 59세) |
| 사망지 |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 |
| 직업 | 중국 언어학자 |
| 학력 | |
| 모교 | 베이징 대학 |
| 지도교수 | |
| 제자 | |
| 주요 제자 | 마이클 홀리데이 데이비드 호크스 양나이시 |
| 경력 | |
| 직장 | 베이징 대학 |
| 기타 정보 | |
| 분야 | 중국 언어학 |
2. 생애
뤄창페이는 1899년 8월 9일 베이징에서 만주족 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같은 기인 출신인 라오서와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1] 1916년에 국립 베이징 대학 중국학과에 입학했지만 나중에 철학과로 전향했다. 1921년 베이징과 톈진의 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고 1926년부터 1928년까지 시안 국립 시베이 대학, 샤먼 대학, 광저우 국립 중산 대학 교사로 근무했다.
뤄창페이는 방언학, 음운론 외에도 민족 언어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 리팡구이와 함께 윈난성 소수 민족 언어를 연구하여 중국 남서부 소수 민족 언어 연구를 중국 언어학계의 주요 연구 대상으로 편입시키는 데 기여했다.[1]
1929년 푸쓰녠에 의해 중앙연구원 산하 역사언어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자오위안런, 리팡구이와 함께 언어 담당 연구원으로 임용되었다. 1934년 국립 베이징 대학 중문과 교수로 채용되었지만 1937년 중일 전쟁이 발발하면서 베이징 대학, 칭화 대학, 난카이 대학이 공동으로 구성한 국립 창사 임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1938년 국립 창사 임시 대학이 윈난성 쿤밍으로 이전하면서 국립 서남 연합 대학으로 이름을 바꿨고 뤄창페이도 윈난성으로 이주했다.
1944년 미국으로 건너가 교수로 근무했지만 1948년 귀국했고 베이징 대학 교수로 근무했다. 1950년 중국 과학원 언어 연구소(현재의 중국 사회과학원 언어 연구소) 설립 과정에 참여하여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제1차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대표, 중국 문자 개혁 위원회 위원,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를 비롯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관직을 역임했으며 1958년 12월 13일 베이징에서 향년 59세로 사망했다.
3. 연구 업적
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 동료인 자오위안런, 리팡구이에 비해 전통적인 연구 경향을 보였지만, 역사언어연구소 재직 시절 중국어 음운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특히 『당오대서북방음』(1933)은 티베트 문자로 기록된 한자음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중국어 음가를 추정하여 현재까지 널리 인용된다.[1]
저우주모와 함께 저술한 『한위진남북조운부연변연구』(1959)는 압운 자료를 이용하여 상고음에서 중고음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원래 총 4권으로 기획되었으나, 제1권(한대의 부)만 출판되었다.[1]
사후에 『뤄창페이 언어학 논문선집』(1963), 『뤄창페이 문집』(1999, 전 10권)이 출판되었다.[1]
3. 1. 음운론 연구
뤄창페이의 주요 연구 성과는 방언학, 음운론에 집중되어 있다. 대표작으로는 《샤먼 음계》(廈門音系), 《절운어우의 음가와 그에 따른 방음고》(切韻魚虞之音値價及其所據方音考), 《지철징랑음치고》(知徹澄娘音値考), 《당오대서북방음》(唐五代西北方音), 《중원음운성류고》(中原音韻聲類考), 《몽고자운발》(蒙古字韻跋), 《음운론에 관한 예수회의 기여》(耶穌會士在音韻學上的貢獻) 등이 있다.[1]
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에서 동료였던 자오위안런, 리팡구이에 비해 뤄창페이의 연구 내용은 보다 전통적인 것이었지만, 역사언어연구소 시대에 중국어 음운에 관한 논문을 많이 저술했다.[1] 『당오대서북방음』(1933)은 한자음을 티베트 문자로 기록한 장한대음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중국어의 음가를 추정한 것으로, 현재에도 종종 이용된다.[1]
둔황 등에서 발견된 절운계 운서를 모은 것으로 『십운회편』(1935, 류푸, 웨이젠궁과 공저)이 있다.[1]
중고음에 관한 논문으로는 「지철징랑음치고」(1931), 「석중경」(1932), 「석내외전」(1933) 등이 있다.[1] 특히 「지철징랑음치고」는 산스크리트어 대음을 이용하여 칼그렌이 구개음화된 치경음이라고 생각한 설상음을 권설음으로 수정하는 논문으로, 칼그렌 자신의 『Compendium』을 포함하여 종종 다른 저작에서 인용된다.[1]
『한위진남북조운부연변연구』(1959, 저우주모와 공저)는 압운 자료에 의해 상고음에서 중고음으로의 변천을 추적하는 저서로, 원래는 전 4권의 대저가 될 예정이었지만, 제1권(한대의 부)밖에 출판되지 않았다.[1]
중국어 방언의 음운을 연구한 저작으로는 『샤먼음계』(1930), 『린촨음계』(1940)가 있다.[1]
3. 2. 방언학 연구
뤄창페이는 방언학, 음운론에 주력하여 연구 성과를 냈다. 대표작으로는 《샤먼 음계》(廈門音系), 《절운어우의 음가와 그에 따른 방음고》(切韻魚虞之音値價及其所據方音考), 《지철징랑음치고》(知徹澄娘音値考), 《당오대서북방음》(唐五代西北方音), 《중원음운성류고》(中原音韻聲類考), 《몽고자운발》(蒙古字韻跋), 《음운론에 관한 예수회의 기여》(耶穌會士在音韻學上的貢獻) 등이 있다.[1]
자오위안런, 리팡구이와 함께 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에서 동료로 일했던 뤄창페이는 이들에 비해 전통적인 연구를 수행했지만, 역사언어연구소 시절 중국어 음운에 관한 많은 논문을 저술했다.[1] 1933년에 출간된 『당오대서북방음』은 한자음을 티베트 문자로 기록한 장한대음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중국어 음가를 추정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된다.[1]
둔황 등에서 발견된 절운계 운서를 모아 류푸, 웨이젠궁과 함께 1935년에 『십운회편』을 공동 저술했다.[1]
중고음에 관한 논문으로는 「지철징랑음치고」(1931), 「석중경」(1932), 「석내외전」(1933) 등이 있다.[1] 특히 「지철징랑음치고」는 산스크리트어 대음을 이용하여 칼그렌이 구개음화된 치경음으로 추정한 설상음을 권설음으로 수정하였는데, 칼그렌 자신의 『Compendium』을 비롯한 여러 저작에서 자주 인용된다.[1]
중국어 방언의 음운을 연구한 저서로는 『샤먼음계』(1930), 『린촨음계』(1940)가 있다.[1]
3. 3. 소수 민족 언어 연구
뤄창페이는 국립 서남 연합 대학 교수로 근무하던 시절 리팡구이와 함께 윈난성에 거주하던 소수 민족의 언어를 연구하여 중국 남서부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언어에 관한 연구를 중국의 언어학 연구 대상에 편입하도록 만들었다. 이와 관련된 주요 작품으로는 《연산파이어초탐》(蓮山擺夷語初探), 《공산구어초탐》(貢山俅語初探), 《공산노어초탐서술》(貢山怒語初探敍述) 등이 있다.
3. 4. 기타 연구
뤄창페이는 민족 언어학에서도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남겼다. 국립 서남 연합 대학 교수로 근무하던 시절 리팡구이와 함께 윈난성에 거주하던 소수 민족의 언어를 연구하여 중국 남서부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의 언어에 관한 연구를 중국의 언어학 연구 대상에 편입하도록 만들었다. 이와 관련된 주요 작품으로는 《연산파이어초탐》(蓮山擺夷語初探), 《공산구어초탐》(貢山俅語初探), 《공산노어초탐서술》(貢山怒語初探敍述) 등이 있다.[1]
중앙연구원 역사언어연구소 동료였던 자오위안런, 리팡구이에 비해 뤄창페이의 연구 내용은 보다 전통적인 것이었지만, 역사언어연구소 시대에 중국어 음운에 관한 논문을 많이 저술했다. 『당오대서북방음』(1933)은 한자음을 티베트 문자로 기록한 장한대음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중국어 음가를 추정한 것으로, 현재에도 종종 이용된다.[1] 둔황 등에서 발견된 절운계 운서를 모은 것으로 『십운회편』(1935, 류푸, 웨이젠궁과 공저)이 있다.[1]
중고음에 관한 논문으로는 「지철징랑음치고」(1931), 「석중경」(1932), 「석내외전」(1933) 등이 있다. 특히 「지철징랑음치고」는 산스크리트어 대음을 이용하여 칼그렌이 구개음화된 치경음이라고 생각한 설상음을 권설음으로 수정하는 논문으로, 칼그렌 자신의 『Compendium』을 포함하여, 종종 다른 저작에서 인용된다.[1] 『한위진남북조운부연변연구』(1959, 저우주모와 공저)는 압운 자료에 의해 상고음에서 중고음으로의 변천을 추적하는 저서로, 원래 전 4권의 대저가 될 예정이었지만, 제1권(한대의 부)밖에 출판되지 않았다.[1]
중국어 방언의 음운을 연구한 저작으로는 『샤먼음계』(1930), 『린촨음계』(1940)가 있다.[1] 사후에 출판된 문집으로 『뤄창페이 언어학 논문선집』(1963), 『뤄창페이 문집』(1999, 전 10권)이 있다.[1]
4. 저서
저우 주모와 함께 저술:
- 1958년, , 베이징, 과학출판사
차이 메이뱌오와 함께 저술:
- 1959년, , 베이징: 과학출판사 (2004년 개정판)
류반눙, 웨이젠궁과 공저:
- (1935)
사후 출판 문집:
- (1963)
- (1999, 전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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