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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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이킹 라인은 1959년 올란드 제도 사업가들이 시작한 발트해 지역의 페리 운송 회사이다. 1960년대 중반 경쟁사들과 공동 마케팅 회사를 설립하여 성장했으며, 1970년대에는 핀란드의 실자 라인에 필적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현재 바이킹 라인은 크루즈 페리 5척과 크루즈선 1척을 운항하며 헬싱키, 투르쿠, 스톡홀름, 탈린 등 6개의 터미널을 운영한다. 바이킹 라인의 마스코트인 빌레 바이킹은 어린이 승객을 위한 활동과 마케팅에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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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라인 - [회사]에 관한 문서 | |
---|---|
회사 정보 | |
회사명 | 바이킹 라인 Abp |
![]() | |
종류 | 공개 회사 |
슬로건 | (정보 없음) |
설립 | 1959년 |
소재지 | 마리에함, 올란드 제도, 핀란드 |
주요 인물 | 얀 한세스 (최고 경영자) 안드레아스 렘머 (부사장) |
직원 수 | 2,227명 (2023년) |
산업 | 해운업 |
서비스 지역 | 북유럽 |
제공 상품 | 페리 항만 서비스 여객 운송 화물 운송 휴가 상품 비즈니스 여행 |
매출 | 감소, 4억 9140만 유로 (2023년) |
영업 이익 | 증가, 5500만 유로 (2023년) |
순이익 | 증가, 3630만 유로 (2023년) |
모회사 | (정보 없음) |
홈페이지 | www.vikingline.com |
![]() |
2. 역사
바이킹 라인의 역사는 1959년 올란드 제도와 스웨덴 고틀란드 섬을 기반으로 한 여러 선사들의 경쟁과 협력 속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각기 다른 회사들이 핀란드와 스웨덴 사이 노선에서 자동차 페리를 운항했으나, 과도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1960년대 중반 공동 마케팅 회사인 바이킹 라인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1970년대에는 발트해 지역의 주요 해운사로 성장하며 당시 최대 규모였던 실자 라인과 경쟁하는 위치에 올랐다.
2. 1. 초기 역사 (1959-1966)
바이킹 라인의 역사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핀란드 올란드 제도 출신의 해운업자 및 사업가 그룹이 Rederi Ab Vikinglinjen을 설립하고, 영국에서 증기 동력 자동차 페리선 SS ''Dinard''를 구매하여 SS ''Viking''(1924년 건조)으로 개명한 후 코르포(핀란드)–마리에함(올란드)–그레드(스웨덴) 노선에서 운항을 시작했다.[2][3] 같은 해에 스웨덴 고틀란드에 기반을 둔 Rederi AB Slite가 심프네스(스웨덴)와 마리에함 사이의 운항을 시작했다.[3]1962년, 내부 불화로 인해 일부 그룹이 Rederi Ab Vikinglinjen을 떠나 새로운 회사인 Rederi Ab Ålandsfärjan을 설립했으며, 이 회사는 이듬해인 1963년 그레드와 마리에함 사이의 운항을 시작했다.[3]
곧 올란드 제도와 스웨덴 사이의 여객 운송 시장에서 경쟁하던 세 회사(Rederi Ab Vikinglinjen, Rederi AB Slite, Rederi Ab Ålandsfärjan)는 상호 경쟁이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1965년 바이킹라인(Rederi Ab Vikinglinjen)과 Slite는 협력을 시작했고,[3] 1966년 7월 말, 세 회사를 위한 공동 마케팅 회사로 바이킹 라인(Viking Line)이 설립되었다.[2][3] 이 시기에 기존의 Rederi Ab Vikinglinjen은 마케팅 회사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사명을 Rederi Ab Solstad로 변경했다.[3] 바이킹 라인의 상징이 된 빨간색 선체 도장은 Slite의 올란드필렌(Ålandspilen) 서비스에서 채택되었는데,[3][4] 이는 당시 Slite 회장 부인의 립스틱 색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고 전해진다.[5]
2. 2. 성장과 경쟁 (1967-1985)
바이킹 라인은 각 소유 회사가 개별 선단을 유지하고 노선 배치를 결정하는 공동 마케팅 회사 형태로 운영되었다. 이는 1960년대 중반, 올란드 제도와 스웨덴 고틀란드 섬 기반의 초기 페리 회사들이 과도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공동 마케팅 회사를 설립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각 회사의 선박은 이름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었는데, 샐리(Rederi Ab Sally) 선박은 이름 앞에 "바이킹(Viking)"을 붙였고, 슬라이트(Rederi AB Slite)는 로마 신화와 그리스 신화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SF 라인(SF Line)의 선박 이름은 사장 군나르 에클룬드의 아내 엘렌 에클룬드를 기리기 위해 "-ella"로 끝났다.
1970년대에 바이킹 라인은 크게 성장하여 북부 발트해에서 실자 라인을 제치고 가장 큰 해운 컨소시엄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 성장의 발판은 독일 마이어 베르프트 조선소에서 건조된 선박들이었다.
소유 회사 | 선박명 | 인도 연도 |
---|---|---|
슬라이트 | 아폴로 (Apollo) | 1970 |
슬라이트 | 다이아나 (Diana) | 1972 |
샐리 | 바이킹 1 (Viking 1) | 1970 |
샐리 | 바이킹 3 (Viking 3) | 1972 |
샐리 | 바이킹 4 (Viking 4) | 1973 |
1974년에는 이들 선박과 동일한 디자인을 확대한 바이킹 5 (Viking 5)가 샐리에 인도되었다.[3] 이른바 '파펜부르크 자매선'으로 불리는 이 선박들은 매우 성공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는다. (이 디자인을 바탕으로 멕시코의 트랜스보르도레스(Transbordadores)사를 위해 3척의 자매선 - ''코로무엘(Coromuel)'',[7] ''푸에르토 바야르타(Puerto Vallarta)'',[8] ''아즈테카(Azteca)''[9] - 가 추가로 건조되기도 했다.)
1973년, 바이킹 라인은 투르쿠–마리에함–스톡홀름 노선 운항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실자 라인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였다. 이듬해인 1974년에는 샐리가 헬싱키–스톡홀름 노선 운항을 시작했다.[3] 이후 10년간 이 노선은 주로 샐리가 담당했지만, 다른 노선에서는 세 회사가 함께 협력하여 운영했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샐리는 컨소시엄 내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80년, 샐리는 당시 바이킹 라인의 기함 역할을 한 바이킹 사가 (Viking Saga), 바이킹 샐리 (Viking Sally), 바이킹 송 (Viking Song) 등 3척의 대형 신규 페리를 인도받으며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에 맞서 다른 파트너들도 신규 선박을 도입했는데, SF 라인은 1979년과 1980년에 각각 투렐라 (Turella)와 로셀라 (Rosella)를, 슬라이트는 1979년에 다이아나 II (Diana II)를 새로 취항시켰다.[3]
그러나 1980년대 초, 샐리는 발트해 외 다른 해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대부분 수익성이 낮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샐리가 바이킹 라인 서비스에 필요한 신규 선박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10]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85년, SF 라인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크루즈페리였던 마리엘라 (Mariella)를 헬싱키-스톡홀름 노선에 투입하며 경쟁 구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2. 3. 변화와 구조조정 (1985-1993)
1985년, SF 라인의 신형 MS ''마리엘라''가 헬싱키-스톡홀름 노선에서 MS ''바이킹 송''을 대체하면서 바이킹 라인의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당시 세계 최대의 페리였던 ''마리엘라''는 샐리의 독점 노선을 깼다. 이듬해 슬리테는 마리엘라의 자매선인 MS ''올림피아''를 인도받아 샐리를 헬싱키-스톡홀름 운항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SF 라인과 슬리테가 추가적인 신조선 건조를 계획하는 동안 샐리는 재정적으로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1987년 실자 라인의 소유주인 에포아와 존슨 라인이 샐리를 인수했다. 그 결과 SF 라인과 슬리테는 샐리가 바이킹 라인 컨소시엄을 떠나도록 했다.[3]1988년부터 1990년 사이에 SF 라인은 세 척의 신규 선박(MS ''아모렐라'', MS ''이사벨라'' 및 MS ''신데렐라'')을 인도받았고, 슬리테는 두 척(MS ''아테나'' 및 MS ''칼립소'')을 인도받았다.[3] 불행히도 SF 라인의 신규 선박 중 하나와 슬리테의 두 선박을 건조하던 조선소인 Wärtsilä Marine이 1989년에 파산했다. SF 라인은 재정적 여파를 피했는데, 신데렐라는 건조가 진행되면서 지속적으로 대금이 지급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소가 파산했을 때 거의 완성된 선박의 소유주는 SF 라인이었다.[11] 그러나 슬리테는 더 전통적인 형태의 계약을 체결하여 칼립소는 인도 시점에 대금을 지불하기로 되어 있었다. 조선소가 미완성 선박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칼립소의 비용이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약 2억스웨덴 크로나 더 증가했다. 결국 재정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1990년까지 바이킹 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새로운 크루즈 페리 함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1989년 슬리테는 회사 최고의 걸작이 될 세계 최대이자 가장 호화로운 크루즈 페리인 MS ''유로파''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그들에게는 선박 건조 중에 스웨덴이 재정 위기에 빠졌고, 이는 스웨덴 크로나의 평가 절하로 이어졌다. 결국 유로파의 비용이 4억스웨덴 크로나 증가했다. 새로운 선박을 인도받을 때가 되자 슬리테는 대금을 지불할 자금이 없었고, 그들의 주요 자금 제공자(실자 라인의 주요 자금 제공자이기도 한 스웨덴의 노르드뱅켄)는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 주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선박은 실자 라인의 함대에 편입되었고 슬리테는 1993년에 파산을 선언해야 했다.[13]
2. 4. SF Line에서 바이킹 라인으로 (1993-2010)
레데리 AB 슬라이트가 파산하면서, SF 라인은 바이킹 라인 브랜드를 단독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슬라이트가 소유했던 남은 두 척의 배, 아테나와 칼립소는 1993년 8월 경매에 나왔다.[14][15] SF 라인은 칼립소 인수를 시도했지만, 두 배 모두 새로 설립된 말레이시아의 크루즈 선박 회사인 스타 크루즈에 팔렸다. 1995년, SF 라인은 회사 이름을 바이킹 라인으로 바꾸었다.1994년부터 1996년까지 여름 시즌 동안에는 헬싱키-탈린 노선에서 쌍동선을 빌려 고속 페리 서비스를 운영했다.[16] 1997년에는 Sea-Link Shipping AB로부터 MS 실야 스칸디나비아를 사들여 이름을 가브리엘라로 바꾸고 헬싱키-스톡홀름 노선에 투입했다.[17] 같은 시기에 이 노선에서 실야 라인과 경쟁하기 위해 새로운 배 2척을 만들 계획도 있었지만, 이는 실행되지 않았다.

2006년, 실야 라인의 주요 소유주였던 Sea Containers Ltd는 핀젯과 실야 오페라를 제외한 실야 라인 전체와 화물 운송 자회사인 SeaWind Line을 매각하기로 했다. 제외된 두 배는 Sea Containers Ltd가 직접 소유하다가 결국 다른 곳에 팔렸다.[18] 바이킹 라인도 경쟁사인 실야 라인 인수에 참여했지만,[19] 에스토니아의 Tallink에게 밀려 실패했다.[20]
1990년 슬라이트의 MS 칼립소 이후 처음으로 바이킹 라인이 새로 주문한 배인 바이킹 XPRS는 2005년 Aker Finnyards에 발주되었으며,[21] 이는 헬싱키-탈린 노선에서 Tallink와의 경쟁이 치열해진 데 따른 것이었다. 바이킹 XPRS는 2008년 4월부터 운항을 시작했다.[21] 두 번째 새 배는 2007년 1월에 발주되었다. 바이킹 라인은 스페인의 Astilleros de Sevilla 조선소에 15000ton 페리를 주문했다고 발표했다. 이 배는 마리에함-카펠셰르 노선에서 로젤라를 대체할 예정이었고, 프로젝트 이름은 바이킹 ADCC였다.[22] 원래 2009년 3월에 인도될 예정이었으나,[23] 배 인도가 계속 늦어지자 결국 2010년 2월 8일 바이킹 라인은 계약을 취소했다.[24]
2. 5. 현재 (2010-현재)
2010년 7월, 닐스-에릭 에클룬드가 바이킹 라인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전에 로얄 캐리비안 인터내셔널에서 근무했던 미카엘 백만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백만은 카리브해 크루즈선의 특징을 바이킹 라인 선박에 도입하고, 북미 고객에게 바이킹 노선을 새로운 크루즈 경험으로 소개할 계획을 밝혔다.[25]같은 해 1월 열린 세미나에서 백만 CEO는 투르쿠-스톡홀름 노선의 ''아모렐라''와 ''이사벨라''를 대체하기 위해 60,000 GT급 선박 2척 건조를 두고 9개 조선소와 협상 중이라고 발표했다.[26][27] 이 과정에서 액화 천연 가스(LNG) 엔진 사용과 배출가스 저감 기술 적용 가능성이 검토되었으며,[28][29] 신규 선박에는 로얄 캐리비안 인터내셔널의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와 같은 대형 크루즈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편의 시설을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언급했다.[27] 선박 인도 예정일은 각각 2012년 5월과 2013년 2월로 예상되었다.[30]
2010년 10월, 바이킹 라인은 핀란드의 STX 투르쿠 조선소와 투르쿠-스톡홀름 노선에 투입될 57,000 GT급 크루즈 페리 건조에 대한 의향서(LOI)를 체결했다.[31] 두 달 뒤인 12월에는 신규 선박 건조를 공식적으로 주문했다.[32] ''바이킹 그레이스''로 명명된 이 선박은 2012년 3월 6일 건조를 시작하여 같은 해 8월 10일에 진수되었고, 2013년 1월부터 운항에 들어갔다. 바이킹 라인은 바이킹 그레이스의 자매 선박 건조 옵션을 가지고 있었으나, 2012년 5월 이를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후 2016년 11월, 바이킹 라인은 중국의 샤먼 조선소와 63,000 GT급 크루즈 페리 건조 의향서를 체결했다. 이 선박은 기존의 ''아모렐라''를 대체할 예정이며, LNG를 연료로 사용하고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해 플레트너 로터를 장착하는 등 친환경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33]
2019년 5월 27일, 대중 공모를 통해 이 신규 선박의 이름이 ''M/S 바이킹 글로리''로 확정되었다.
''M/S 바이킹 글로리''는 2022년 3월 1일부터 2일까지 첫 운항을 시작했으며, 현재 스톡홀름 - 마리에함 - 투르쿠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3. 선박
바이킹 라인은 창립 이후 현재까지 다양한 종류의 카페리와 크루즈선을 운용해왔다. 현재 운항 중인 선박과 과거에 운항했던 선박의 목록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1. 현재 운항 중인 선박
(최대)(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