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수 (18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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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관수는 1897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울산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도쿄 제국대학 철학과를 수료했다. 귀국 후 대구사범학교, 수원고등농림학교 등에서 교사로 활동했고, 조선총독부 시학관, 경기공립고등여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광복 후 경북대학교 교수, 대전고등학교 교장, 울산농업고등학교 교장 등을 지냈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정권에서 반공 우파 단체에서 활동했다. 1966년부터 14년간 반공연맹 이사장을 역임하며 저서를 저술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홍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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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수 (1897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금계 박관수 |
원어명 | 琴溪 朴寬洙 |
출생일 | 1897년 12월 17일 |
출생지 | 경상남도 울산 |
사망지 | 서울 |
사망일 | 1980년 9월 17일 (84세) |
본관 | 밀양(密陽) |
학력 | |
학력 | 일본 도쿄 제국대학교 철학과 학사 |
경력 | |
경력 | 대한민국 민주공화당 특임고문 |
개인 정보 | |
직업 | 교육자, 보수주의 운동가, 시민단체인 |
정당 | 무소속 |
배우자 | 울산 김씨 부인 |
2. 생애
2. 1. 청소년기
경상남도 울산의 밀양 박씨 선비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때 생활이 빈한했으나, 울산 지역 유지인 김홍조(金弘祚)의 도움으로 학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홍조는 지역의 인재들에 대한 장학사업을 하였고, 일본 등으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후에 박관수는 김홍조의 누이동생과 결혼했다.지금의 울산초등학교인 울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부의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19년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제국대학에 입학했다. 일본 유학 도중 유학생 신분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한때 투옥당하기도 했다.[1] 1922년 도쿄 제국대학 철학과를 수료했다.
2. 2. 귀국 및 일제 강점기 활동
귀국 후 교사로 임관되어 대구사범학교에서 교육학 및 심리학 교사로 일했다. 이때 대구사범에 재학 중이던 박정희를 가르쳤다. 수원고등농림학교 강사를 거쳐, 조선총독부 소속의 교육 관료인 시학관으로 오래 근무했다. 1939년에는 경기공립고등여학교 교장이 되었다. 이때 그는 궁성요배를 하며 교직원들에게 전시체제에 대한 훈시를 했다 한다.[2]경기고등여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1941년에는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해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을 맡았다.[3] 이후 춘천고등학교 교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2. 3. 광복 이후
1945년 8월 광복 후 잠시 은거하다가 다시 교육계에 투신, 1952년 경북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4] 이후 경북대학교 법정대학 학장 겸 교학처장, 대전고등학교 교장, 울산농업고등학교 교장, 옥천여자고등학교 교장, 1961년 한양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가 집권하자 여러 반공 우파 단체와 시민단체의 수장으로 초빙되어 활동했다.
1965년 단군정신선양회 회장, 신라오릉보존회 총재, 아시아민족반공연맹 이사장을 지냈다.[4] 1966년 한국반공연맹 제1대 이사장,[4] 1967년 전국노인단체연합회창립준비위원회 명예총재에 추대되었다.[4] 1970년에는 한재덕의 뒤를 이어 제2대 공산권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초빙되었다.[1] 이를 두고 윤형복은 박정희의 은사였기 때문에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5]
공산권문제연구소 이사장 이후 1971년 현정회(顯正會) 이사, 1972년 전북매일신문 회장, 1972년 8월 제3대 대한노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8년 8월 제4대 대한노인회 회장에 재선되었으나 1980년 9월 사퇴했다. 그는 여러 반공 우파 단체들을 지도하며 반공 강연활동을 하기도 했다.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4년 동안 반공연맹 이사장으로 연임되면서,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 정권의 안보논리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저서로는 《인간혁명론》, 《북한의 농민》, 《북한의 노동자》, 《북한의 가정과 부녀자》, 《위대한 시대에의 도전》, 《현대한국반공투쟁사》, 《국민독본》 등이 있다.
2. 4. 박정희 정권 시기 활동
3. 사후 평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교육/학술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4. 저서
5. 상훈
홍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참조
[1]
서적
하늘은 그리도 높고 푸르렀는데
한국문학도서관
2007-09-23
[2]
서적
한국사 이야기 22: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 바람
한길사
2006-07-27
[3]
서적
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민족문제연구소
2004-12-27
[4]
뉴스
노년시대신문 - 어르신들의 최고의 선택
http://www.nnnews.co[...]
[5]
서적
하늘은 그리도 높고 푸르렀는데
한국문학도서관
200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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