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박기서 (1948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박기서 (1948년)는 1996년 10월 23일,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인물이다. 그는 김구를 존경해 왔으며, 권중희의 저서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의 영향을 받아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박기서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8년 대통령 특별 사면으로 석방되었다. 그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엇갈린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 김완섭 폭행 사건에도 연루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의 암살자 - 안중근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동양 평화를 주장하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이다.
  • 한국의 암살자 - 전명운
    전명운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1908년 친일파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과 함께 공격했으나 무죄로 풀려났으며, 이후 미국으로 귀화하여 세탁소를 운영하다 사망했다.
  • 국민주의 암살자 - 윤봉길
    윤봉길은 1908년 출생하여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 요인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이며, 사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 국민주의 암살자 - 안중근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동양 평화를 주장하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이다.
  • 국민중심당 - 정진석 (정치인)
    정진석은 1960년 충청남도 공주 출생으로 한국일보 기자 출신이며, 16, 17, 18, 20, 21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으며,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국회 부의장을 역임했다.
  • 국민중심당 - 심대평
    심대평은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충청남도지사, 국회의원, 국민중심당 대표, 자유선진당 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17대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가 사퇴하고 정계 은퇴 후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박기서 (1948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朴琦緖 (박기서)
출생일1948년 12월 9일
출생지전라북도 정읍
사망일알 수 없음
사망 장소알 수 없음
사인알 수 없음
별칭알 수 없음
동기복수
죄목살인죄 (노인 폭행 치사)
유죄 판결유죄
형벌징역 3년 (감형 및 사면)
상태알 수 없음
직업택시 기사
사회운동가
이전 버스 기사
배우자원미자
자녀박안숙 (장녀)
박정아 (차녀)
박찬종 (막내아들)
거주지경기도 부천
종교천주교 (세례명: 요셉)
본관반남(潘南)
경력
경력소신여객 노동조합위원장
국민중심당 당무위원

2. 안두희 살해 사건

1996년 10월 23일, 경기도 부천 소신여객 시내버스 기사 박기서는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를 살해했다.[5] 박기서는 학창시절부터 김구를 존경해 왔고, 1995년백범일지를 읽은 뒤 백범의 유지를 이어야겠다고 결심했으며, 권중희가 쓴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6][7]

박기서는 1996년 10월 23일 경기도 부천에서 소신여객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던 중, 백범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를 처단하기로 결심한 후 부천시장의 그릇가게에서 홍두깨 비슷한 40cm 크기의 몽둥이를 4천원 주고 사서 오전 11시 30분 인천광역시 중구 신흥동에 있는 안두희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갔다.[5] ‘정의봉(正義棒)’이라고 쓴 홍두깨와 장난감 권총을 지니고 안두희의 부인을 묶은 뒤 옆방에 있던 안두희에게 장난감 권총을 겨누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권총이 불을 뿜는다" 고 고함을 쳤다.[5] 이어 준비해간 나일론 끈으로 안두희의 두손을 묶고 '정의봉으로 사정없이 구타했다.[5] 숨이 차면 냉장고에서 찬 물을 꺼내마셔가며 계속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결국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5] 당시 중풍에 걸려있던 안두희는 무언가를 얘기하려는 듯 입을 움직였다고 한다.[5]

박기서는 안두희가 숨진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심곡본동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한 뒤 경찰에 자수했다.[5] 고해성사를 받은 이준희 신부는 이렇게 회고했다. "박기서 씨는 역사적으로, 김구 선생을 죽인 안두희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데 아직도 역사가 그 일을 하지 않으니 자신이 사명감을 갖고 죽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두희의 장례와 그의 영혼에 대해 걱정하면서 성당에서 안두희의 장례를 치르는데 차라리 도움을 줄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5]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마친 후 인천중부경찰서로 연행되어 긴급 구속되었다.[5] 그는 범행동기에 대해 자신은 학창시절부터 김구를 존경해 왔고 1995년 초 백범일지를 읽은 뒤 백범의 유지를 이어야겠다고 결심했으며, 권중희가 쓴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6][7] 또한 '의로운 일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라는 진술도 하였다. 박기서는 범행 직전 권중희에게 전화를 걸어 안두희를 죽이겠다고 했으나, 권중희는 그를 살려 두어 김구의 살해동기와 배후세력을 알아내야 한다면서 범행을 말렸다고 한다.[6][7]

2. 1. 사건 배경

박기서는 경기도 부천 소신여객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던 중, 1996년 10월 23일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를 처단하기로 결심했다.[5] 안두희는 1949년 김구를 암살한 범인으로, 당시 79세의 고령이었다.[2] 안두희는 공직에서 물러난 후 가명을 사용하며 살았지만, 잦은 박해로 가명 사용을 중단하여 소재가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박기서는 부천시장의 그릇가게에서 40cm 크기의 몽둥이를 구입하고, '정의봉(正義棒)'이라고 쓴 뒤, 안두희의 아파트에 침입하여 그를 살해했다.[5] 범행 후 박기서는 가톨릭 신자로서 심곡본동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하고 경찰에 자수했다.[5] 그는 권중희의 저서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6][7]

2. 2. 범행 과정

1996년 10월 23일, 경기도 부천 소신여객 시내버스 기사 박기서는 백범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를 처단하기로 결심하고 휴가 중 범행을 실행했다.[5] 부천시장의 그릇가게에서 '정의봉(正義棒)'이라고 쓴 40cm 크기의 홍두깨 몽둥이를 구입하고 장난감 권총을 소지한 채, 안두희의 아파트에 침입했다.[5] 안두희의 부인을 묶고 안두희에게 장난감 권총을 겨누며 위협한 뒤, 나일론 끈으로 두 손을 묶고 정의봉으로 사정없이 구타했다.[5]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했던 안두희는[5] 저항하지 못하고 구타당해 사망했다. 박기서는 안두희가 숨진 것을 확인한 후 심곡본동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인천중부경찰서에 자수했다.[5]

2. 3. 범행 동기

박기서는 학창시절부터 김구를 존경했으며, 1995년백범일지를 읽은 뒤 백범의 유지를 이어야겠다고 결심했다.[5] 또한 권중희가 쓴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는 책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다.[6][7] 1996년 10월 23일 안두희를 처단하기 직전 권중희에게 전화를 걸어 안두희를 죽이겠다고 했으나, 권중희는 그를 살려 두어 김구의 살해 동기와 배후 세력을 알아내야 한다면서 범행을 말렸다.[6][7]

범행 후 박기서는 심곡본동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했는데, 김구 선생을 죽인 안두희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데 아직도 역사가 그 일을 하지 않으니 자신이 사명감을 갖고 죽였다고 고백했다.[5] 그러면서 안두희의 장례와 그의 영혼에 대해 걱정하면서 성당에서 안두희의 장례를 치르는 데 도움을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5]

3. 재판 과정

3. 1. 1심 재판

3. 2. 항소심 및 상고심

3. 3. 석방

박기서는 살인죄로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았으나,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3·1절 기념일에 대통령 특별 사면을 받아 남은 형기가 소멸되었다.[2] 살인범임에도 불구하고 1년 6개월 만에 석방되었으며, 이는 안두희가 복역한 기간보다 길다.[2]

4. 사회적 반응 및 평가

이 사건에 대해 '차라리 뒤늦게나마 안두희가 죗값을 치렀다.'라는 반응과 "안두희 죽음에 연민은 아직도 없으며 진실규명이 남아 있다."라는 반응들이 나왔다. 박기서의 행동을 '제2의 독립운동가'로 칭송하는 평가도 나왔다. 반면 '안두희가 죽어 암살 사건의 배후가 가려지게 되었으므로 차라리 박기서는 애국자가 아니라 안두희 살해를 자행하였기에 오히려 배후를 감춘 암살 배후 은폐 방조자'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안두희 그가 만고 역적이라 하지만 중풍을 앓는 노인을 때려죽인 것은 명백한 사형(私刑, 린치)이 아닌가 그것을 먼저 짚어 보아야 할 것'이라는 비난도 나왔다. 권중희의 저서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가 박기서의 범행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 알려지자 주요 서점에 책을 구입할 수 있느냐는 시민들의 전화 문의가 폭주하기도 했다.

박기서는 택시 운전기사이지만, 한국에서는 "안두희 처단자"로서 영웅 취급을 받으며, "의원", "선생", "의사" 등의 존칭으로 불리고, 종종 언론에도 등장한다. 박기서에게 폭행을 당해 피해를 입은 김완섭은, 다음에는 "김완섭 처단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 하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5. 기타

5. 1. 김완섭 폭행 사건

2004년 10월, 박기서는 친일 저작 재판에 출석한 김완섭을 폭행하여 부상을 입혔으나 체포되지 않았다. 김완섭은 박기서가 "김완섭 처단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 한다고 비꼬았다.

참조

[1] 문서 金九の号
[2] 문서 油性ペンで「正義」「安重根義士」と[[ハングル]]で書いた自作の白木の棒。40cmぐらいの大きさ。
[3] 문서 出頭した際に同行した神父とは別の人物で、朴が普段通っていた[[教会]]の人。
[4] 문서 반남박씨 25세손 緖(박○서)자 항렬이다.
[5] 뉴스 백범 암살범 안두희 씨 피살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96-10-24
[6] 뉴스 안두희 피살 범인주변-동기 평소 백범 추앙...응징 결심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96-10-24
[7] 뉴스 '의로운 일 했기에 후회는 없다' http://newslibrary.n[...] 한겨레 1996-10-24
[8] 뉴스 안두희 살해 박씨 각계서 구명운동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96-10-27
[9] 웹인용 안두희, 김구를 쏜 까닭은?(1949년 6월 26일) https://web.archive.[...] 2016-06-25
[10] 뉴스 안두희 살해 박기서씨 격려금 밀물 http://newslibrary.n[...] 한겨레 1996-11-07
[11] 뉴스 안두희씨 살해혐의 박기서씨 5년 선고 http://newslibrary.n[...] 한겨레 1997-04-03
[12] 뉴스 박기서씨 항소심 징역3년 http://newslibrary.n[...] 한겨레 1997-08-01
[13] 뉴스 박기서씨 징역 3년 확정 http://newslibrary.n[...] 한겨레 1997-11-18
[14] 뉴스 552만 명 대사면 단행 http://newslibrary.n[...] 동아일보 1998-03-14
[15] 뉴스 안두희 살해 각계의 반응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96-10-25
[16] 뉴스 권중희 저 '역사의 심판...' 불티 http://newslibrary.n[...] 경향신문 1996-10-2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