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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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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복상(卜商)은 기원전 507년에 태어난 공자의 제자이다. 그는 책을 좋아하고 경전에 정통했으며, 서하에서 교육 활동을 펼쳐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는 어진 이를 존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벗과 믿음으로 사귀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복상은 공자묘 12철 중 한 명으로, 당나라와 송나라 때 작위가 추증되었으며, 그의 후손은 오경박사 칭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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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상
기본 정보
이름복상
자(字)자하(子夏)
기타 이름복자(卜子)
반신상
자하의 반신상(국립고궁박물원)
생애
출생기원전 507년 (추정)
사망기원전 400년 (추정)
국적위나라
활동 시기기원전 5세기
사상유교
스승공자
제자위성

2. 생애

부상(卜商)은 책을 좋아하고 경전에 정통했다. 그는 광범위하고 헌신적인 배움을 권장했으며, "가까운 것들을 성찰하라"(''jinsi'')는 그의 구절은 주희에 의해 주자학의 중요 저서 제목으로 사용되었다.[3] 공자는 그에게 배움보다 덕스러운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쳤다.[3]

논어예기에는 "삶과 죽음은 운명의 문제이고, 부와 명예는 하늘에 달려있다"는 부상의 어록이 기록되어 있다.[3]

부상은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통곡하다 시력을 잃었다.

2. 1. 공자의 제자

부상(卜商)은 어느 나라 출신인지 불분명하다. 다양한 고대 문헌에는 그의 출생지를 위, 위, 또는 온(溫)으로 다르게 언급한다.[1] 치앤무를 포함한 현대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그가 위나라 출신이라고 믿는다.[2] 기원전 507년에 태어난 그는 공자보다 44살 어렸다.[2]

부상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이며, 그는 경전에 정통했다. 그는 광범위하고 헌신적인 배움을 권장했으며, 그가 죽은 뒤 1천 년이 넘어서 그의 "가까운 것들을 성찰하라"(''jinsi'')는 구절은 주희에 의해 주자학의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의 제목으로 사용되었다.[3] 그러나 그는 "세세한 것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었고 때로는 배움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간주했다.[3] 공자는 그에게 문화적 학습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부상의 세세한 면에 대해 가볍게 비판하며, 배움보다 덕스러운 행동이 더 궁극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켰다.[3]

논어예기는 부상의 많은 어록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는 "삶과 죽음은 운명의 문제이고, 부와 명예는 하늘에 달려있다"는 것이다.[3]

2. 2. 서하에서의 교육 활동

부상은 위나라의 서하 (황하 서쪽)에 서당을 세워 위문후 (재위: 기원전 445–396년)를 포함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다.[2] 그의 제자 중에는 전자방, 적황, 단간목, 위성 등 위나라의 고위 대신들도 있었다.[2]

춘추공양전춘추곡량전의 저자인 공양고와 곡량치는 모두 부상에게서 춘추를 배웠다고 전해진다.[2]

2. 3. 만년

부상은 염염, 증삼, 유약, 전손사, 단태멸명과 함께 스승 공자 사후에도 가르침을 이어간 제자였다. 위나라 서하 (황하 서쪽)에 서당을 세워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위문후 (재위: 기원전 445–396년)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전자방, 적황, 단간목, 위성 등 위나라 고위 대신들도 그의 제자였다.[2]

전하는 바에 따르면, 춘추공양전춘추곡량전의 저자인 공양고와 곡량치는 모두 부상에게서 춘추를 배웠다고 한다.

부상은 장수하였다.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통곡하다 시력을 잃었다.

3. 사상 및 영향

자하(子夏)는 유학뿐만 아니라 초기 법가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이회는 재능을 편애보다 우선시하는 원칙을 강조했는데, 이는 복상의 영향으로 여겨진다.[1]

3. 1. 유학 사상

자하(子夏)는 어진 이를 존경하기를 마치 여색을 대하듯 하고, 부모 섬김과 임금 섬김에 최선을 다하며, 벗과의 신의를 지키는 사람은 배우지 않았더라도 배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賢賢易色事父母能竭其力事君能致其身與朋友交言而有信雖曰未學吾必謂之學矣|현현역색사부모능갈기력사군능치기신여붕우교언이유신수왈미학오필위지학의중국어[11]

자하는 공자에게 시경 구절을 인용하여 '꾸미는 일은 소박함 뒤에 온다'는 말의 의미를 묻고, 예를 갖추는 것보다 본바탕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공자는 자하의 깨달음에 감탄하며 함께 시를 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칭찬하였다.[13]

3. 2. 법가 사상에 대한 영향

초기 법가의 스승으로 전해지는 이회의 제자인 복상은 재능을 편애보다 우선시하는 원칙으로 인용된다.[1]

4. 평가 및 기념

복상은 공자묘에서 동쪽에 있는 12철 중 다섯 번째로 신위가 놓여있다.[1] 당나라 당 현종은 복상에게 사후에 위후(魏侯)라는 귀족 작위를 내렸다.[1] 송나라 때에는 하동공(河東公)과 위공(魏公) 작위가 추가로 수여되었다.[1] 복상의 후손은 五經博士|오경박사중국어 칭호를 받았다.[1]

4. 1. 12철

공자묘에서 복상의 신위는 동쪽에 있는 12철 중 다섯 번째로 놓인다.[1]

당나라 당 현종은 복상에게 사후에 위후(魏侯)라는 귀족 작위를 내렸다.[1] 송나라 때에는 하동공(河東公)과 위공(魏公) 작위가 추가로 수여되었다.[1]

복상의 후손은 五經博士|오경박사중국어 칭호를 받았다.[1]

4. 2. 후대의 추증

당나라 당 현종은 복상에게 사후에 위후(魏侯)라는 귀족 작위를 내렸다. 송나라 때에는 하동공(河東公)과 위공(魏公) 작위가 추가로 수여되었다.

복상의 후손은 오경박사(五經博士|Wǔjīng Bóshì중국어) 칭호를 받았다.

4. 3. 오경박사

당나라 당 현종은 복상에게 사후에 위후(魏侯)라는 귀족 작위를 내렸다. 송나라 때에는 하동공(河東公)과 위공(魏公)의 작위가 추가로 수여되었다.

복상의 후손은 오경박사(五經博士, Wǔjīng Bóshì) 칭호를 받았다.

참조

[1] 서적 Chinese Lawmaking: From Non-communicative to Communicative https://books.google[...] 2014
[2] 웹사이트 Bu Shang https://web.archive.[...] Taipei Confucian Temple 2014-11-10
[3] 서적 Present Day Political Organization of China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3-04-15
[4] 서적 論語 明治書院 1960-05-25
[5] 서적 史記 下 平凡社 1971-01-06
[6] 위키문헌 논어 선진편 https://ko.wikisourc[...]
[7] 위키문헌 사기 열전-사기/권067 -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8] 위키문헌 자하역전 https://zh.wikisourc[...]
[9] 문서 (위키문헌 中文)舊本題卜子夏撰。案說易之家。最古者莫若是書。其僞中生僞。至一至再而未已者。亦莫若是書。唐會要載開元七年詔。子夏易傳。近無習者。令儒官詳定。劉知幾議曰。漢志易有十三家。而無子夏作傳者。至梁阮氏七錄。始有子夏易六卷。或云韓嬰作。或云丁寬作。然據漢書韓易十二篇。丁易八篇。求其符合。事殊隳剌。必欲行用。深以爲疑。司馬貞議亦曰。案劉向七略。有子夏易傳。但此書不行已久。今所存多失眞本。荀勖中經簿云。子夏傳四卷。或云丁寬。是先達疑非子夏矣。又隋書經籍志云。子夏傳殘闕。梁六卷。今二卷。知其書錯繆多矣。又王儉七志引劉向七略云。易傳子夏韓氏嬰也。今題不稱韓氏。而載薛虞記。其質粗略。旨趣非遠。無益後學云云。是唐以前。所謂子夏傳。已爲僞本。晁說之傳易堂記又稱。今號爲子夏傳者。乃唐張弧之易。(案弧唐末爲大理寺評事。有素履子別著錄。)是唐時又一僞本並行。故宋國史志。以假託子夏易傳。與眞子夏易傳。兩列其目。而崇文總目。亦稱此書篇第。略依王氏。決非卜子夏之文也。朱彝尊經義考證。以陸德明經典釋文。李鼎祚周易集解。王應麟困學紀聞。所引皆今本所無。德明鼎祚。猶曰在張弧以前。應麟乃南宋末人。何以當日所見。與今本又異。然則令本又出僞託。不但非子夏書。亦並非張弧書矣。流傳既久。姑存以備一家云爾。 謹案唐徐堅初學記。以太宗御製升列歷代之前。蓋臣子尊君之大義。焦竑國史經籍志。朱彝尊經義考。並踵前規。臣等編摩四庫。初亦恭錄御定易經通注。御纂周易折中。御纂周易述義。弁冕諸經。仰蒙指示。命移冠國朝著述之首。俾尊卑有序。而時代不淆。聖度謙沖。酌中立憲。實爲千古之大公。謹恪遵彝訓。仍託始於子夏易傳。並發凡於此。著四庫之通例焉。 又案託名之書。有知其贗作之人者。有不知其贗作之人者。不能一一歸其時代。故漢書藝文志。仍從其所託之時代爲次。今亦悉從其例。
[10] 문서 중국철학서전자와계획-子夏易傳 https://ctext.org/li[...]
[11] 위키문헌 논어, 학이 제일 https://ko.wikisourc[...]
[12] 위키문헌 시경(詩經)-국풍(國風)-위(衛) 석인(碩人) https://ko.wikisourc[...]
[13] 위키문헌 위키문헌 https://ko.wikisou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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