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오이스터 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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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Öyster Cult)는 1967년 결성된 미국의 하드 록 밴드이다. 헤비 메탈, 사이키델릭 록, 오컬트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으며,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헤비 메탈 밴드"로 불리며 많은 밴드에 영향을 미쳤다. 1972년 데뷔 앨범을 시작으로, "Agents of Fortune" (1976) 앨범 수록곡 "(Don't Fear) The Reaper"가 인기를 얻으며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2024년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Ghost Stories"를 발매했으며, 앨범들은 빌보드 200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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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오이스터 컬트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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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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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뉴욕주 스토니브룩 |
장르 | 하드 록 헤비 메탈 오컬트 록 프로그레시브 록 사이키델릭 록 (초기) 애시드 록 (초기) |
활동 기간 | 1967년–1986년 1987년–현재 |
레이블 | 컬럼비아 CMC 프론티어 |
관련 활동 | 앨리스 쿠퍼 블랙 사바스 Brain Surgeons 패티 스미스 |
이전 이름 | Soft White Underbelly (1967년–1969년) Oaxaca (1970년) Stalk-Forrest Group (1970년) Santos Sisters (1970년) The Blue Öyster Cult (1971년–1973년) |
공식 웹사이트 | blueoystercult.com |
구성원 | |
현재 구성원 | 벅 드하마 에릭 블룸 대니 미란다 리치 카스텔라노 줄스 라디노 |
이전 구성원 | 알베르 부샤르 알렌 래니어 조 부샤르 |
2. 역사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1967년 롱아일랜드 스토니브룩 대학교에서 소프트 화이트 언더벨리(Soft White Underbelly)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었다.[9] 록 평론가 샌디 펄먼은 이들의 잼 세션을 듣고 매니저 및 창작 파트너가 되기를 제안했고, 밴드는 이를 수락했다.[9] 초기 라인업은 기타리스트 로저, 드러머 앨버트 부샤드, 키보디스트 앨런 라니에, 보컬 레스 브라운스타인, 베이시스트 앤드류 윈터스로 구성되었다.[10]
밴드는 여러 번 이름을 바꾸고 멤버 교체를 겪은 후, 1971년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Öyster Cult)로 정착했다. 데이비드 루카스의 도움으로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1972년 데뷔 앨범 ''블루 오이스터 컬트''를 발매했다.[16] 이 앨범에는 "Cities on Flame with Rock and Roll" 등의 곡이 수록되어 하드 록 밴드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Tyranny and Mutation''(1973), ''Secret Treaties''(1974) 등의 앨범을 발매하며 "흑백 시대"를 거쳤다.[21] 특히 ''Secret Treaties''는 "Career of Evil", "Astronomy" 등의 곡으로 호평을 받았다.[19]
1975년 첫 라이브 앨범 ''On Your Feet or on Your Knees''의 성공에 이어, 1976년 ''Agents of Fortune''을 발매하여 상업적 절정에 도달했다. 이 앨범에 수록된 "Don't Fear The Reaper"는 빌보드 차트 12위에 오르며 큰 인기를 얻었다.[106]
이후 ''Spectres''(1977), ''Some Enchanted Evening''(1978), ''Mirrors''(1979) 등을 발매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1979년 5월에는 내한 공연을 가졌다. 1980년에는 ''Cultösaurus Erectus''를 발매하고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Black and Blue" 투어를 진행했다.
1981년 ''Fire of Unknown Origin''은 "Burnin' for You"의 히트와 함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후 밴드는 멤버 교체와 인기 하락을 겪었다. ''The Revölution by Night''(1983), ''Club Ninja''(1986) 등의 앨범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88년 앨버트 부샤드의 솔로 프로젝트였던 ''Imaginos''가 밴드 앨범으로 발매되었으나,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밴드는 레이블에서 해고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는 투어에 집중하며 ''헤븐 포비드''(1998), ''커스 오브 더 히든 미러''(2001) 등의 앨범을 발매했으나, 이전의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멤버 교체는 계속되었지만, 밴드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2013년 앨런 라니어가 사망하고,[26] 2020년에는 15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Symbol Remains''를 발매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31][32][33] 2024년에는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Ghost Stories''를 발매했다.[5]
2. 1. 결성 초기 (1967-1971)
1967년 롱아일랜드의 스토니브룩 대학교에 있는 공동 주택에서 소프트 화이트 언더벨리(Soft White Underbelly)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었다. 록 평론가 샌디 펄먼이 스토니브룩 동급생인 도널드 로저와 그의 친구들이 함께한 잼 세션을 엿들은 후였다.[9] 펄먼은 밴드의 매니저이자 창작 파트너가 되기를 제안했고, 밴드는 이에 동의했다.[9] 밴드의 원래 라인업은 기타리스트 로저, 드러머 앨버트 부샤드, 키보디스트 앨런 라니에, 보컬 레스 브라운스타인, 베이시스트 앤드류 윈터스로 구성되었다.[10]1967년 10월, 밴드는 펄먼이 예약한 스토니브룩 대학교 체육관에서 스티브 노넌의 백업 밴드로 데뷔 공연을 했다.[11] 밴드 이름은 윈스턴 처칠이 이탈리아를 "추축의 부드러운 약점"이라고 묘사한 것에서 따왔다.[11]
펄먼은 밴드에 매우 중요했다. 그는 밴드가 콘서트를 잡고 일렉트라 레코드 및 컬럼비아 레코드와 음반 계약을 맺도록 도왔으며, "Astronomy"를 포함한 많은 곡의 가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를 제공했다. 또한 스토니브룩 대학교 학생이었던 작가 리차드 멜처는 초기부터 가장 최근의 스튜디오 앨범까지 밴드에 가사를 제공했다. 1968년, 밴드는 톰스턴 지역의 그레이트 넥에 있는 첫 번째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12] 밴드는 1968년 일렉트라 레코드를 위해 앨범 분량의 자료를 녹음했다.
브라운스타인은 1969년 봄에 소프트 화이트 언더벨리의 리드 싱어로 마지막 공연을 했다.[11] 그의 탈퇴로 인해 일렉트라는 그와 함께 보컬을 녹음한 앨범을 보류했다.
에릭 블룸은 밴드에 음향 엔지니어로 고용되었다. 그는 결국 브라운스타인을 리드 싱어로 교체했는데, 이는 라니에가 블룸과 함께 업스테이트 공연으로 운전하기로 결정하면서 일어난 일련의 우연한 사건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 그는 블룸의 옛 대학 밴드 동료들과 밤을 보내면서 블룸의 리드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이 담긴 옛 테이프를 들을 수 있었다.[13] 이 때문에 블룸은 소프트 화이트 언더벨리의 리드 싱어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러나 1969년 필모어 이스트 쇼에 대한 좋지 않은 리뷰로 인해 펄먼은 밴드의 이름을 변경했다. 처음에는 오아하카(Oaxaca)로, 다음에는 스토크-포레스트 그룹(Stalk-Forrest Group)으로 변경했다. 펄먼은 또한 각 밴드 멤버에게 예명(에릭 블룸은 제시 파이톤(Jesse Python), 도널드 로저는 벅 다르마(Buck Dharma), 앤디 윈터스는 앤디 판다(Andy Panda), 앨버트 부샤드는 프린스 오메가(Prince Omega), 앨런 라니에는 라 베른(La Verne) 등)을 부여했지만 벅 다르마만 예명을 유지했다.[14] 밴드는 일렉트라를 위해 또 다른 앨범 분량의 자료를 녹음했지만, "What Is Quicksand?" b/w "Arthur Comics"라는 단 하나의 싱글만 일렉트라 레코드에서 프로모션 에디션 300장으로 발매되었다(이 앨범은 결국 Rhino Handmade Records에서 2001년에 ''St. Cecilia: The Elektra Recordings''라는 제목으로 추가 아웃테이크와 함께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블룸이 메인 리드 싱어로 참여했지만, 로저 역시 몇몇 곡에서 리드를 불렀고, 이는 밴드 경력 전체에 걸쳐 리드 보컬을 공유하는 패턴으로 이어졌다. 블룸과 함께, 소프트 화이트 언더벨리/스토크-포레스트 그룹은 스토니브룩 대학교의 "하우스 밴드" 중 하나가 되어 캠퍼스에서 인기를 얻었다.[15]
산토스 자매(Santos Sisters)를 포함한 몇 개의 임시 밴드 이름을 거친 후, 밴드는 1971년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Öyster Cult)로 정착했다.
뉴욕시 프로듀서/작곡가이자 징글 작가인 데이비드 루카스는 밴드의 공연을 보고 그들을 자신의 창고 녹음 스튜디오로 데려가 네 개의 데모를 제작했고, 펄먼은 그 데모를 가지고 이름이 바뀐 밴드로 컬럼비아 레코드와 오디션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그가 들은 것을 좋아했고, 밴드와 계약을 체결했다. 첫 번째 앨범은 이후 루카스의 스튜디오에서 루카스가 8트랙으로 제작하고 녹음했다.[16] 윈터스는 밴드를 떠나 부샤드의 형제 조 부샤드로 교체되었다.
2. 2. 흑백 시대 (1971-1975)

그들의 데뷔 앨범 ''블루 오이스터 컬트''(Blue Öyster Cult)''는 1972년 1월에 발매되었으며, 예술가 빌 가울릭이 디자인한 흑백 커버가 특징이었다. 이 앨범에는 "Cities on Flame with Rock and Roll", "Stairway to the Stars", "Then Came the Last Days of May" 등의 곡이 수록되었다. 이 시점에서 밴드의 사운드는 하드 록으로 더 기울어졌지만, "She's As Beautiful As a Foot"와 "Redeemed"와 같은 곡들은 밴드의 사이키델릭적인 뿌리가 강하게 드러났다. 펄만은 이 그룹이 블랙 사바스의 미국식 해답이 되기를 원했다.[17] 앨런 레이니어를 제외한 모든 밴드 멤버가 리드 보컬을 맡았으며, 이는 리드 싱어 에릭 블룸이 대부분의 곡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많은 앨범에서도 지속된 패턴이었다. 이 앨범은 판매량이 좋았으며,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더 버즈,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 앨리스 쿠퍼와 같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투어를 돌았다.[18] 밴드가 투어를 돌면서 사운드는 더욱 헤비하고 직접적으로 변했다.
그들의 두 번째 앨범 ''Tyranny and Mutation''은 1973년에 발매되었으며, 첫 번째 앨범 투어 중에 쓰여졌다. 이 앨범에는 "The Red and the Black" (캐나다 왕립 기마 경찰에 대한 송가이자 데뷔 앨범의 "I'm on the Lamb But I Ain't No Sheep"을 다시 쓴 곡, 또한 스탕달의 동명의 소설을 언급), "Hot Rails to Hell", 그리고 패티 스미스와의 첫 번째 콜라보레이션 중 하나인 "Baby Ice Dog" 등이 수록되었다. 이전보다 더 하드 록적인 접근 방식을 보였지만, 밴드의 곡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이 앨범은 이전 앨범보다 더 많이 팔렸으며, 이는 다음 몇몇 앨범에서도 지속될 추세였다.
밴드의 세 번째 앨범, ''Secret Treaties''(1974년),[19]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Career of Evil" (패티 스미스와 공동 작사), "Dominance and Submission", "Astronomy" 등의 곡이 수록되었다. 끊임없는 투어의 결과로, 밴드는 이제 헤드라인 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앨범은 판매량 증가 추세를 이어갔고, 결국 골드를 달성했다.[20]
이 형성기 동안의 세 앨범 모두 흑백 커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팬들과 비평가들은 이 시기를 그들의 경력의 "흑백 시대"라고 불렀다.[21]
2. 3. 상업적 성공 (1975-1981)
1975년 발매된 첫 라이브 앨범 ''On Your Feet or on Your Knees''는 큰 성공을 거두며 골드를 기록했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밴드는 다음 앨범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고, 멤버들은 홈 레코딩 장비를 구매하여 데모를 녹음할 수 있었다.[22]다음 스튜디오 앨범인 ''Agents of Fortune''(1976)은 그들의 첫 플래티넘 앨범이 되었으며, 데이비드 루카스(David Lucas)가 다시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 앨범에는 빌보드 차트 12위에 오른 히트 싱글 "Don't Fear The Reaper"가 수록되었다.[106] 이 곡은 하드 록 장르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앨범의 다른 주요 곡으로는 "(This Ain't) The Summer of Love", "E.T.I.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The Revenge of Vera Gemini"가 있다. 앨범 녹음 전, 밴드는 집에서 데모를 녹음하면서 작곡 과정이 개별화되었고, 이전 앨범에서 흔했던 공동 작곡은 사라졌다. 이 앨범은 섬뜩한 가사의 하드 록을 특징으로 했지만, 노래 구조는 더 전통적이었고, 프로덕션은 더 세련되었다. 앨런 레이니어(Allen Lanier)가 "True Confessions"에서 리드 보컬을 맡는 등, 다섯 멤버 모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리드 보컬을 맡았다. 앨버트 부샤드(Albert Bouchard)는 세 곡, 조 부샤드(Joe Bouchard)와 도널드 로저(Donald Roeser)는 각각 한 곡, 에릭 블룸(Eric Bloom)은 앨범의 열 곡 중 네 곡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다.
밴드는 투어에서 레이저를 라이트 쇼에 추가하여 공연에서 레이저를 사용한 최초의 밴드 중 하나로 유명해졌다.[22]
다음 앨범 ''Spectres''(1977)는 FM 라디오 히트곡 "Godzilla"를 포함하여 밴드의 베스트셀러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 "I Love the Night"과 "Goin' Through the Motions"과 같은 곡들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판매량은 이전보다 낮아 골드는 기록했지만 플래티넘은 기록하지 못했고, 처음으로 이전 앨범보다 판매량이 적은 앨범이 되었다. 더 세련된 프로덕션을 특징으로 했고, 리드 보컬이 멤버들 간에 분담되는 경향이 이어졌지만, 앨런 레이니어(Allen Lanier)는 리드 보컬을 맡지 않았다. 에릭 블룸(Eric Bloom)은 이전 앨범처럼 절반 미만의 곡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다.

이후 발매된 라이브 앨범 ''Some Enchanted Evening''(1978)은 ''On Your Feet or on Your Knees''와 같은 더블 라이브 앨범으로 기획되었지만, 컬럼비아(Columbia)의 요구로 싱글 앨범 길이로 편집되었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2백만 장 이상 판매되며 Blue Öyster Cult의 가장 인기 있는 앨범이 되었다. 이 앨범은 밴드의 스튜디오 작업이 점점 더 잘 제작되고 있지만, 그들이 여전히 무대에서는 매우 하드 록 밴드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1979년 5월에는 첫 내한을 하였다.
1979년 발매된 ''Mirrors''는 이전 프로듀서인 샌디 펄먼(Sandy Pearlman)과 머레이 크루그먼(Murray Krugman) 대신 칩 트릭(Cheap Trick)과 테드 뉴전트(Ted Nugent)와 작업한 톰 워먼(Tom Werman)이 프로듀싱했다. 이 앨범은 밴드의 가장 세련된 프로덕션을 특징으로 했다. 도널드 로저(Donald Roeser)가 9곡 중 4곡에서 리드 보컬을 맡으며 보컬리스트로 더욱 부각되었다. 그러나 앨범 판매는 실망스러웠다.
샌디 펄먼(Sandy Pearlman)이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관계를 맺으면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Heaven and Hell'' 프로듀서 마틴 비치(Martin Birch)가 다음 앨범 ''Cultösaurus Erectus''(1980)을 위해 고용되었다. 밴드는 하드 록의 뿌리로 돌아갔고, 부샤드(Bouchard) 형제와 도널드 로저(Donald Roeser)가 리드 보컬을 맡았지만, 에릭 블룸(Eric Bloom)이 대부분의 트랙을 불렀다. 앨범은 영국에서 12위를 기록했지만 미국에서는 그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에릭 블룸(Eric Bloom)이 작사하고 SF 및 판타지 작가 마이클 무어콕(Michael Moorcock)이 작사한 "Black Blade"는 마이클 무어콕(Michael Moorcock)의 엘릭 오브 멜니보네 사가를 재해석한 곡이다. 밴드는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와 공동 헤드라이닝 투어를 진행했으며, 투어 이름을 "Black and Blue"라고 명명했다.
마틴 비치(Martin Birch)는 다음 앨범 ''Fire of Unknown Origin''(1981)도 프로듀싱했으며, 이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24위에 올라 밴드의 앨범 중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앨범의 가장 큰 히트곡은 톱 40 히트곡인 "Burnin' for You"였으며, 도널드 로저(Donald Roeser)가 리처드 멜처(Richard Meltzer)의 가사로 작곡했다. 도널드 로저(Donald Roeser)는 이 곡을 자신의 솔로 앨범 ''Flat Out''(1982)에 사용하려고 했지만, Blue Öyster Cult 앨범에 사용하도록 설득당했다. 밴드의 더 무거운 사운드는 계속되었고, 신디사이저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일부 트랙에서 뉴 웨이브의 영향을 받았다. 이 앨범에는 "Mommie Dearest" 책과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Joan Crawford"와 마이클 무어콕(Michael Moorcock)이 공동 작사한 "Veteran of the Psychic Wars"와 같은 팬들이 좋아하는 곡들도 포함되었다. "Veteran of the Psychic Wars"는 애니메이션 영화 ''Heavy Metal''을 위해 쓰여지지 않았지만, 여러 곡이 이 영화를 위해 쓰여졌고 실제로 영화에 사용되었다. 이 앨범은 ''Spectres'' 이후 처음으로 골드 지위를 달성하며 상업적 부활을 보여주었다.
''Fire of Unknown Origin'' 투어 동안 앨버트 부샤드(Albert Bouchard)는 다른 멤버들과 불화를 겪고 밴드를 떠났고, 릭 도니(Rick Downey)가 드럼을 대신했다.[107] 이것은 밴드의 오리지널이자 가장 잘 알려진 라인업의 종말을 의미했다.
2. 4. 인기 하락과 분열 (1982-1989)
1982년, 앨버트 부샤드가 밴드를 떠난 후,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세 번째 라이브 앨범 ''Extraterrestrial Live''를 발매했다. 이후 밴드는 브루스 페어번을 프로듀서로 기용하여 ''The Revölution by Night''(1983)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1980년대 스타일의 AOR 사운드를 채택하여 라디오 친화적인 면모를 보였으며, 패티 스미스가 공동 작사하고 랜디 잭슨이 베이스를 연주한 "Shooting Shark"는 83위를 기록했고, "Take Me Away"는 FM 라디오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앨범 판매량은 이전보다 저조했고, 밴드의 상업적 하락세가 시작되었다. ''Revölution'' 투어 후 드러머 릭 다우니가 탈퇴했다.1985년, 밴드는 앨버트 부샤드와 함께 캘리포니아 투어를 진행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협력이었고 부샤드는 투어 후 다시 밴드를 떠났다. 앨런 라니어도 곧이어 밴드를 떠나면서, 원년 멤버는 세 명만 남게 되었다. 팬들은 이 시기 밴드를 '3ÖC'라고 부르기도 했다.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지미 윌콕스와 토미 즈본체크를 영입하여 앨범 ''Club Ninja''(1986)를 완성했지만, 평가는 좋지 않았다. "Dancin' in the Ruins"만이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며, 밴드 멤버들 역시 앨범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조 부샤드는 "Perfect Water"를 "완벽한 천재성"이라고 평가했다.[23]
독일 투어 후, 조 부샤드가 탈퇴하면서 밴드에는 에릭 블룸과 도널드 로저 두 명만 남게 되었다. 이 시기 밴드는 "Two Öyster Cult"라고 불리기도 했다. 존 로저스가 조를 대신하여 베이시스트로 합류했고, 이 라인업으로 1986년 투어를 마쳤다. 투어 후 밴드는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
1987년, 그리스 투어 제안을 받고 밴드는 재결성되었다. 윌콕스는 탈퇴했고, 즈본체크는 과도한 재정적 요구로 해고되었으며, 앨런 라니어가 다시 합류했다. 새로운 라인업은 세 명의 창립 멤버와 존 로저스(베이스), 론 리들(드럼)로 구성되었다.
1988년, 컬럼비아 레코드는 ''Imaginos''를 블루 오이스터 컬트 앨범으로 발매했다. 이 앨범은 앨버트 부샤드의 솔로 프로젝트였으나, 블룸과 로저의 보컬 및 기타 오버더빙이 추가되었다. 조 부샤드와 앨런 라니어도 참여하여 다섯 명의 오리지널 멤버 모두 크레딧을 받았다. 앨범은 판매가 부진했고, 레이블의 홍보도 거의 없었다. 앨범의 대부분의 곡들은 1989년 이후 라이브로 연주되지 않았다.[24] 이후 컬럼비아 레코드가 소니에 인수되면서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레이블에서 해고되었다.
2. 5. 스튜디오 공백기와 재기 (1990-2024)
밴드는 1990년대 대부분을 새 음반 발매 없이 투어에 집중했다. 1992년 영화 ''배드 채널스'' 사운드트랙에 신곡 2곡을, 1994년에는 재녹음 곡들을 모은 ''컬트 클래식''을 발매했다. 이 시기 동안 원년 멤버 세 명은 변동이 없었으나, 리듬 섹션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1991년 론 리들이 탈퇴한 후 척 버기(1991–1992, 1992–1995, 1996–1997), 존 미첼리(1992, 1995), 존 오'레일리(1995–1996), 바비 론디넬리(1997–2004) 등 여러 드러머가 교체되었다. 1995년에는 존 로저스가 떠나고 대니 미란다가 베이스를 맡았다.1990년대 후반,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CMC 레코드(후에 생츄어리 레코드에 인수됨)와 계약하고 투어를 이어갔다. ''헤븐 포비드''(1998)와 ''커스 오브 더 히든 미러''(2001) 두 스튜디오 앨범이 발매되었는데, 두 앨범 모두 사이버펑크/호러 소설가 존 셜리가 공동 작사한 곡을 포함했다. ''헤븐 포비드''는 대부분 미란다가 베이스를, 버기가 드럼을 연주했지만, 일부 트랙에는 이전 베이시스트 존 로저스가, 한 트랙에는 론디넬리가 드럼을 연주했다. ''커스 오브 더 히든 미러''는 미란다와 론디넬리가 리듬 섹션을 맡았고, 작곡에도 기여했다. 두 앨범 모두 판매 부진을 겪었다.
2001년, 레거시 레코드는 블루 오이스터 컬트의 첫 네 개 스튜디오 앨범의 확장 버전을 발매했다. 여기에는 미공개 데모, 아웃테이크, 라이브 녹음, 스토크-포레스트 그룹 시대의 곡들이 포함되었다.
2002년에는 라이브 앨범 및 DVD ''어 롱 데이즈 나이트''가 발매되었으며, 블룸, 로에저, 라니어, 미란다, 론디넬리 라인업이 참여했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밴드의 라인업은 안정적이었으나, 2004년에 다시 멤버 교체가 시작되었다. 론디넬리가 탈퇴하고 줄스 라디노가 합류했다. 미란다는 퀸 + 폴 로저스의 베이시스트가 되기 위해 탈퇴했고, 리치 카스텔라노가 그 자리를 채웠으며 가끔 리드 보컬도 맡았다.
앨런 라니어는 2006년 말부터 밴드와 함께하지 않다가 2007년에 라이브 공연에서 은퇴했다. 카스텔라노는 리듬 기타와 키보드로 전환했고, 베이시스트 자리는 루디 사르조가 맡았다. 사르조가 불가능할 때는 대니 미란다와 존 로저스가 대타로 출연했다. 사르조는 이후 밴드의 공식 멤버가 되었지만, 로저스는 가끔씩 대타로 출연했다.
2007년 2월, 소니 레거시는 ''Spectres''와 ''Some Enchanted Evening''의 확장판을 발매했다.
2012년 6월, 밴드는 카심 설튼이 베이시스트로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8월, 소니 레거시는 17 디스크 박스 세트 ''The Complete Columbia Albums Collection''을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이 세트에는 리마스터 버전 앨범들과 희귀하고 미공개된 B-사이드, 데모, 라디오 방송 등이 포함되었다.
2012년, 블루 오이스터 컬트 결성 40주년 기념 공연에 오리지널 멤버 조, 앨버트 부샤드, 앨런 라니에가 게스트로 참여했다.[25]
앨런 라니어는 2013년 8월 14일 만성 폐쇄성 폐 질환으로 사망했다.[26]
2016년, 앨버트 부샤드는 밴드의 현 멤버들과 함께 게스트로 다시 공연했다.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Agents of Fortune'' 앨범 전체를 연주했다.[27]
2017년 5월, 블룸은 2018년에 새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전 베이시스트 대니 미란다가 밴드에 복귀했다고 밝혔다.[28]
벅 다마는 2019년 2월에 밴드가 가을에 발매할 새 앨범을 녹음할 것이라고 말했다.[29] 2019년 7월 10일, 밴드는 프론티어스 뮤직과 계약하고 2020년에 새 앨범을 발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0년 2월, 리치 카스테야노는 밴드가 온라인 협업 도구를 사용하여 새 앨범을 원격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30]
2020년 8월, 밴드는 15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Symbol Remains''가 2020년 10월 9일에 발매될 것이라고 발표했다.[31][32] 이 앨범은 긍정적인 비평을 받았다.[33]
2022년 10월, 유럽 투어 동안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딥 퍼플을 지원하며 영국에서 공연했다.
2024년 4월 12일,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16번째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Ghost Stories''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는 재해석된 트랙과 "잃어버린 보석", MC5와 The Animals의 커버곡이 포함되어 있다.[5]
3. 음악 스타일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헤비 메탈,[124] 사이키델릭 록, 오컬트 록, 바이커 부기, 애시드 록,[125] 프로그레시브 록[126]으로 표현되는 하드 록 밴드이다. 스토너 메탈[127]과 스피드 메탈[128]과 같은 선구적인 장르를 개척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밴드는 ''Mirrors''(1979년)와 같은 특정 음반에서 추가적인 장르를 실험하기도 했다.
앨리스 쿠퍼,[126] 그레이트풀 데드, 도어스, 제퍼슨 에어플레인, MC5,[126] 블루스 프로젝트,[129] 지미 헨드릭스,[130] 블랙 사바스[126] 등의 아티스트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헤비한 록 사운드로 유명하지만, 종종 그들만의 해학적인 스타일을 가미했다.[126] 밴드는 노래에 미묘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펄먼의 《The Soft Doctrines of Imaginos》의 맥락에서 벗어난 단편들을 가사에 포함시키기도 했다.[126] 또한, 멜처와 펄먼의 단어 조합을 활용하여 음악에 삽입하기도 했다.[131]
4. 밴드 이름 및 로고
"블루 오이스터 컬트"라는 이름은 프로듀서 샌디 펄먼이 쓴 ''Imaginos''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다. 이 시에서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지구의 역사를 비밀리에 이끄는 외계인 집단을 의미한다.[44] 펄먼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윈스턴 처칠이 이탈리아를 묘사하면서 사용한 "Soft White Underbelly"라는 문구에서 밴드의 초기 이름을 착안했다.[11] 1976년 영국 음악 잡지 ''ZigZag''에 실린 인터뷰에서 펄먼은 밴드 이름이 "Cully Stout Beer"의 아나그램이라고 주장했다.[113]
움라우트(Ö)는 앨런 라니어가 제안했지만, 리처드 멜처는 펄먼이 이름을 생각해낸 직후 "메탈의 바그너적인 측면" 때문에 제안했다고 주장한다.[45] 이후 다른 밴드들도 Motörhead, Mötley Crüe, Queensrÿche와 같은 밴드명에 움라우트 또는 구두점을 사용했으며, Spın̈al Tap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46]
밴드의 로고인 갈고리 십자 기호는 1972년 1월 빌 가울릭이 디자인했으며,[10][47] 밴드의 모든 앨범에 등장한다.[46] 그리스 신화에서 이 기호는 크로노스(크로누스)(티탄의 왕이자 제우스의 아버지)의 기호이며, 연금술 기호로는 연(중금속)을 나타낸다.[49] 샌디 펄먼은 연이 가장 무거운 금속 중 하나라는 점과 밴드의 "헤비"한 기타 사운드를 고려하여 "헤비 메탈"[50][51]이라는 표현이 밴드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갈고리 십자 기호는 또한 농업의 로마 신인 토성의 점성학적 기호[52], 그리고 크로노스(크로누스)와 토성 모두와 관련된 낫과도 유사했다.[53] 이러한 형이상학적, 연금술적, 신화적 함축은 일부 종교적 상징과의 유사성과 결합되어 퇴폐와 신비의 분위기를 자아냈다.[48]
밴드는 두 번째 앨범인 ''Tyranny and Mutation''의 커버와 레이블에 딱 한 번 "''The'' Blue Öyster Cult"로 표기되었다.
5. 유산과 영향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헤비 메탈, 사이키델릭 록, 오컬트 록 등 다양한 장르로 묘사되는 하드 록 밴드이다. 이들은 스토너 메탈, 스피드 메탈 같은 장르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127][128] 앨리스 쿠퍼, 블랙 사바스 등 여러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받았다.[126]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헤비한 록 음악으로 유명하지만, 그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가하기도 했다.[126] 이들은 종종 노래 가사에 샌디 펄먼의 《The Soft Doctrines of Imaginos》의 단편들을 넣어 미묘한 의미를 부여했다.[126]
이들의 히트 싱글 "(Don't Fear) The Reaper"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스케치 "더 많은 카우벨"에 등장하여 유명해졌다.[94][95][96] 이 곡은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 ''할로윈 (1978년 영화)''[97], 스티븐 킹 원작의 미니시리즈 ''스탠드 (1994년 미니시리즈)''[98] 등 여러 작품에 사용되었다.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메탈리카,[57][58] 앨리스 인 체인스[62] 등 많은 밴드들에게 영향을 주며 하드 록과 헤비 메탈 씬에 큰 영향을 미쳤다.
6. 구성원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1990년대 대부분을 새 음반 발매 없이 투어에 전념했다. 1992년 영화 ''배드 채널스'' 사운드트랙에 신곡 2곡을 기여했고, 1994년에는 ''컬트 클래식'' 앨범을 발매했다. 이 시기 동안 밴드의 리듬 섹션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1991년 론 리들이 탈퇴한 후 척 버기, 존 미첼리, 존 오레일리, 바비 론디넬리 등 여러 드러머가 교체되었다. 1995년에는 존 로저스가 떠나고 대니 미란다가 베이스를 맡았다.
1990년대 후반,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CMC 레코드와 계약하고 투어를 이어갔다. ''헤븐 포비드''(1998)와 ''커스 오브 더 히든 미러''(2001) 두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지만, 두 앨범 모두 판매 부진을 겪었다. 2001년, 레거시 레코드는 블루 오이스터 컬트의 첫 네 개 스튜디오 앨범의 확장 버전을 발매했다. 2002년에는 라이브 앨범 및 DVD ''어 롱 데이즈 나이트''가 발매되었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밴드의 라인업은 안정적이었지만, 2004년에 다시 멤버 교체가 시작되었다. 론디넬리가 탈퇴하고 줄스 라디노가 드럼을 맡았고, 미란다는 퀸 + 폴 로저스의 베이시스트가 되기 위해 탈퇴하고 리치 카스텔라노가 그 자리를 채웠다.
2007년 앨런 라니어가 은퇴하고, 루디 사르조가 베이시스트로 합류했다. 사르조가 불가능할 때는 대니 미란다와 존 로저스가 대타로 출연했다. 2012년 6월, 카심 설튼이 베이시스트로 합류했다. 같은 해 8월, 소니 레거시는 ''The Complete Columbia Albums Collection''을 발매했다.
2012년, 블루 오이스터 컬트 결성 40주년 기념 이벤트에 오리지널 멤버들이 게스트로 참여했다.[25] 2013년 앨런 라니에는 만성 폐쇄성 폐 질환으로 사망했다.[26] 2016년, 앨버트 부샤드는 밴드와 함께 게스트로 다시 공연했다.[27]
2017년, 대니 미란다가 밴드에 복귀했다.[28] 2019년, 밴드는 프론티어스 뮤직과 계약하고 2020년에 새 앨범을 발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0년 10월, 15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Symbol Remains''가 발매되었다.[31][32]
2022년 10월, 블루 오이스터 컬트는 딥 퍼플을 지원하며 영국에서 공연했다. 2024년 4월 12일, 16번째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Ghost Stories''를 발매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