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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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마앙은 조나라 장군으로, 진나라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모함을 받아 해임되었다. 이후 진승의 반란에 참여하여 무신, 장이 등을 따랐으며, 유방과의 경쟁에서 은왕으로 봉해졌으나 반란을 일으켜 진압당했다. 유방에게 항복한 후 팽성 전투에서 사망했으며, 서진 황실 사마씨의 선조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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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내 사마씨 - 사마의
후한 말기부터 삼국 시대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군사가였던 사마의는 조조, 조비, 조예 3대에 걸쳐 중용되며 위나라의 권력을 장악했으나, 고평릉의 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 하내 사마씨 - 사마부
사마부는 사마방의 셋째 아들로 조조를 섬기며 위나라의 요직을 역임했고, 경전에 능통하고 문재에도 뛰어났으며, 고평릉의 변 당시 사마의의 쿠데타를 도왔다. - 기원전 205년 사망 - 초 의제
초 의제는 진나라 멸망 후 항량에 의해 초나라 왕으로 옹립되었으나 실권을 갖지 못하고 항우에게 소외되어 유방과의 권력 다툼 끝에 암살당했으며, 그의 죽음은 초한 쟁패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 기원전 205년 사망 - 전영 (제왕)
진나라 말기에 전담, 전횡과 함께 거병하여 제나라 부활을 시도했으나 항우와의 갈등으로 패망하고 살해당한 전영은 유방의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중국의 군인 - 김책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가이자 북한의 군인, 정치인인 김책은 만주에서 항일 투쟁 후 소련에서 김일성과 함께 활동했으며, 해방 후 북한 건국에 참여하여 부수상 겸 산업상, 한국 전쟁 전선사령관을 역임했고 사후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 중국의 군인 - 제 환공
제 환공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제후이자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로, 관중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고 초나라의 남진을 저지하는 등 춘추 시대 초반 질서 확립에 기여했으나, 관중 사후 정치적 혼란과 후계자 다툼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여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다.
사마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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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사마앙 |
한자 | 司馬昂 / 司馬卬 |
로마자 표기 | Sima Ang |
출생 정보 | 알 수 없음 |
사망 정보 | 기원전 205년 |
사망 장소 | 펑청(현재의 장쑤성쉬저우) |
정치 | |
직위 | 은나라의 왕 |
재위 기간 |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5년 |
2. 생애
2세 황제 원년(기원전 209년), 진승이 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앙은 진승이 파견한 무신을 따라 종군했다. 후에 무신이 부하 이량에게 살해되자 장이의 휘하에 들어가 남하하여 하내 지방을 평정했다.[4]
2세 황제 3년(기원전 207년), 사마앙은 조나라의 별동대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 관중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배공 유방이 황하 나루터를 봉쇄하여 진군이 저지되었다. 진나라 멸망 후 항우가 각지에 제후를 봉건할 때, 사마앙은 공적이 있었으므로 하내 지방을 중심으로 한 은왕에 봉해졌다.[4]
전한 고조 원년(기원전 206년), 사마앙은 각지의 반란에 편승하여 반기를 들었으나, 항우 휘하의 도위 진평에게 진압되었다.[4]
고조 2년(기원전 205년), 한왕 유방이 한신을 얻어 관중에서 진군하자, 사마앙은 하남왕 신양과 함께 유방에게 항복했다. 유방은 은나라를 하내군으로 삼아 한나라 직할령으로 하였다. 이후 유방을 따라 팽성으로 들어갔으나, 유방이 항우에게 대패했을 때 (수수의 전투) 사망했다.[4]
통속 소설 《통속한초군담》에 따르면, 항우에게 토벌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2. 1. 초기 생애와 조나라 장군 시절
아버지 사마상은 조나라 장군으로서 이목과 함께 진나라의 왕전 등을 맞아 싸운 노련한 무장이었으나, 유미왕 7년(기원전 229년) 유미왕의 간신 곽개가 이목과 함께 사마상을 참소했기 때문에 이목은 처형되었고, 사마상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도망했기에 그대로 해임되어 물러났다. 이듬해(기원전 228년) 마침내 조나라는 멸망했다.2세 황제 원년(기원전 209년), 반진 토벌을 일으킨 진승이 파견한 무신이 조나라로 진군하자, 사마앙은 무신을 따라 종군했다. 후에 무신이 부하 이량에게 시해되자 장이의 휘하에 들어가 남하하여 하내 지방을 평정했다.
2세 황제 3년(기원전 207년), 조나라의 별동대를 이끌던 사마앙은 황하를 건너 관중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마찬가지로 진나라를 공략하고 관중으로 들어가려던 배공 유방은 황하의 나루터를 봉쇄하여 사마앙의 진군을 저지했다.
2. 2. 진나라 말기의 반란 가담
2세 황제 원년(기원전 209년), 진승이 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진승이 파견한 무신을 따라 종군했다. 후에 무신이 부하 이량에게 살해되자 장이의 휘하에 들어가 남하하여 하내 지방을 평정했다.[4]2세 황제 3년(기원전 207년), 조나라의 별동대를 이끌던 사마앙은 황하를 건너 관중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마찬가지로 진나라를 공략하고 관중으로 들어가려던 배공 유방은 황하의 나루터를 봉쇄하여 사마앙의 진군을 저지했다. 진나라 멸망 후 항우가 각지에 제후를 봉건할 때, 사마앙은 공적이 있었으므로 하내 지방을 중심으로 한 은왕에 봉해졌다.[4]
2. 3. 은왕 즉위와 배반, 그리고 최후
2세 황제 원년(기원전 209년), 진승이 반진 토벌을 일으키고 무신을 조나라로 파견하자, 사마앙은 무신을 따라 종군했다. 무신이 부하 이량에게 살해되자 장이의 휘하에 들어가 남하하여 하내 지방을 평정했다.[4]2세 황제 3년(기원전 207년), 사마앙은 조나라 별동대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 관중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유방이 황하 나루터를 봉쇄하여 진군이 저지되었다. 진나라 멸망 후 항우가 제후를 봉건할 때, 사마앙은 하내 지방을 중심으로 은왕에 봉해졌다.[4]
전한 고조 원년(기원전 206년), 사마앙은 각지의 반란에 편승하여 반기를 들었으나, 항우 휘하의 도위 진평에게 진압되었다.[4]
고조 2년(기원전 205년), 한왕 유방이 한신을 얻어 관중에서 진군하자, 사마앙은 하남왕 신양과 함께 유방에게 항복했다. 유방은 은국을 하내군으로 삼아 한나라 직할령으로 하였다. 이후 유방을 따라 팽성으로 들어갔으나, 유방이 항우에게 대패했을 때 (수수의 전투) 사망했다.[4]
3. 후손
진 (서진, 동진) 황실에서, 하내군 온현의 사마씨(주요 인물은 사마의 등)의 선조는 하내에 정착한 사마앙의 자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5]
참조
[1]
문서
卬
[2]
서적
史記索隠
[3]
서적
人以群分
[4]
서적
漢書
[5]
서적
晋書
[6]
서적
사기 권8 고조본기
[7]
서적
사기 권7 항우본기
[8]
서적
사기 권56 진승상세가
[9]
서적
한서 권1상 고제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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