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슈카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샤슈카는 북캅카스 산악 부족에서 유래한 검으로, 17세기 후반에 처음 묘사되었으며 19세기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코사크에 의해 채택되었다. 러시아군은 1834년 최초의 군용 샤슈카를 생산했으며, 이후 다양한 형태의 샤슈카가 개발되었다. 샤슈카는 가드가 없는 것이 특징이며, 칼집에 날이 위로 향하도록 휴대했다. 샤슈카는 러시아 제국군, 소련군에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의례용으로 사용되거나 미술품, 무도구 등으로 제작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기병도 - 사블라
사블라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발전한 곡선형 검으로, 아르메니아 무기 제작자들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으며 폴란드 후사르 기병의 주력 무기였다. - 기병도 - 사브르
사브르는 9세기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곡선형 검에서 유래하여 17세기 헝가리 후사르 기병을 통해 서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한쪽 날만 있는 도검으로 기병의 주요 무기였으며, 현대에는 의장용이나 펜싱 종목으로 사용된다. - 러시아의 무기 - AK-47
AK-47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설계한 7.62×39mm 탄약을 사용하는 소련제 돌격소총으로, 뛰어난 신뢰성과 생산 용이성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며 냉전 이후 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정확도는 다른 현대 소총에 비해 낮은 편이다. - 러시아의 무기 - AGS-17
AGS-17은 소련에서 개발되어 다양한 분쟁에서 사용된 30mm 자동 유탄 발사기로, 보병 지원 화기로서 삼각대나 차량에 장착되어 운용되며 현대 전장 환경에 맞춰 발전하고 있다. - 외날도검 - 사브르
사브르는 9세기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곡선형 검에서 유래하여 17세기 헝가리 후사르 기병을 통해 서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한쪽 날만 있는 도검으로 기병의 주요 무기였으며, 현대에는 의장용이나 펜싱 종목으로 사용된다. - 외날도검 - 마체테
마체테는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서 농경 작업, 정글 탐험, 무기 등으로 사용되는 크고 넓적한 칼로,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널리 쓰이며, 앙골라 국기의 상징이나 브라질 전통 춤 활용 등 문화적 의미도 지닌다.
샤슈카 | |
---|---|
어원 | |
어원 | "샤슈카(шашка)"라는 단어는 원래 "긴 칼"을 의미하는 아디게어(서캅카스어) 단어 "세슈에(сэшхуэ)"에서 유래함. 러시아어에서는 17세기에 캅카스 부족에서 유래된 검의 일종을 지칭하는 데 처음 사용되었으며, 19세기에 코사크 기병대의 주요 무기가 됨. |
개요 | |
종류 | 칼의 일종 |
용도 | 코사크족의 기병도 군인들의 제식용 칼 |
역사 | |
기원 | 캅카스 지역 |
사용 민족 | 코사크 |
사용 시기 |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
형태 | |
칼날 | 약간 휨 |
특징 | 칼날이 칼집에 깊숙이 들어가 칼자루까지 덮음. 칼자루에 손을 보호하는 가드(방패)가 없음. |
문화적 중요성 | |
상징 | 코사크의 용맹과 무예를 상징 |
언어별 명칭 | |
아디게어 | сэшхуэ (세슈에) |
러시아어 | шашка (샤슈카) |
영어 | Shashka |
우크라이나어 | Шашка (샤슈카) |
2. 역사
샤슈카는 북캅카스 산악 부족들 사이에서 유래된 칼이다. 가장 초기의 샤슈카는 17세기 후반에 나타났지만,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샤슈카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손잡이를 가지고 있다.[1] 1713년에 만들어진 샤슈카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코사크들이 이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은 캅카스 정복(1817-1864) 중에 샤슈카를 접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사브르보다 샤슈카를 선호하게 되었다. 19세기 동안 후사르를 제외한 모든 기병 부대에서 사브르를 점차 대체하였다.[4]
소비에트 정부는 1881년 코사크식과 매우 유사한 1927년형을 도입했으며, 이 유형은 1946년까지 생산되었다. 마지막으로 도입된 샤슈카는 "선임 지휘관"과 장성을 위한 1940년형이었으며, 둘 다 손가락 보호대를 가지고 있었다.[7]
샤슈카는 코사크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의 장비로도 사용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 성립 이후에도 계속해서 장비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소련군 기병부대와 코사크 기병들에 의해 실제 전투에서 사용되었다. 21세기 현대에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는 의례용 장비로서 현역이지만, 그 수는 매우 적다.
2. 1. 기원과 발전
샤슈카는 북캅카스 산악 부족들 사이에서 유래되었다. 이 검의 초기 모습은 17세기 후반에 나타났지만,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샤슈카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손잡이를 가지고 있다.[1] 가장 오래된 것은 1713년의 것이다.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코사크들이 이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샤슈카에는 캅카스/체르케스식과 코사크식 두 가지 유형이 있다. 1834년 러시아 정부는 최초의 군용 샤슈카를 생산하였다.[2]규정 외 샤슈카의 칼날은 여러 곳에서 만들어졌다. 일부는 캅카스, 일부는 러시아, 또 일부는 독일 졸링겐에서 제작되었으며, 파사우의 '달리는 늑대' 마크를 따라한 것도 있었다.[3]
일반적인 체르케스인(아디게인) 샤슈카는 코사크식보다 더 길었다. 러시아어 단어 '샤슈카'는 아디게어 단어 Cэшхуэ|샤슈코ady에서 유래했으며, "긴 칼"을 뜻한다. 19세기 동안 후사르를 제외한 모든 기병 부대에서 샤슈카가 사브르를 대체했다.[4]
러시아군은 캅카스 정복(1817-1864) 중에 샤슈카를 접하고, 자신들이 쓰던 사브르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세 가지 유형의 규정 외 샤슈카가 있었다.
- 캅카스식: 손잡이가 칼집 안에 거의 들어가는 형태. 쿠반 코사크와 캅카스 부족들이 사용했다. 비가 올 때 물이 칼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300g의 매우 가벼운 무게에 유연하고 강했다. 구르다와 볼체크(칼날에 달리는 늑대 문양)가 유명했다.
- 돈 코사크식 샤슈카: 칼날이 더 곧은 형태. 무게는 약 1kg이다.
- 테렉 코사크식 샤슈카: 돈 코사크식 샤슈카처럼 손잡이가 칼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매우 가볍고 강하다.
최초의 공식 러시아 군용 샤슈카는 1834년형 "니제고로드카"였다. 1838년형 샤슈카가 뒤를 이었다. 1881년에는 두 가지 유형이 도입되었다. 가드가 없는 '코사크'식과 놋쇠 손가락 보호대가 있는 '기병'식이다. '기병'식은 1841년 기병 사브르와 매우 유사했지만, 두 유형 모두 칼날은 동일했다.[5]
코사크 군단은 1904년 자체 규정 유형을 받을 때까지 규정 외 샤슈카를 사용하였다.[6]
소비에트 정부는 1881년 코사크식과 비슷한 1927년형을 도입했고, 1946년까지 생산했다. 마지막으로 도입된 샤슈카는 "선임 지휘관"과 장성을 위한 1940년형으로, 둘 다 손가락 보호대가 있었다.[7]
샤슈카의 기원은 카프카스 산악 민족의 도검으로, “샤슈카”라는 이름은 아디게어(Адыгэбзэ)로 “긴 나이프”를 뜻하는 Шашькуэ|사슈코ady[16]에서 유래했다.
카프카스 지역에 큰 영향을 준 이슬람 세력의 도검 양식이 도입되면서 변화했고, 19세기 이후 러시아 제국에 의해 카프카스 지역이 침략과 지배를 받으면서 코사크에 의해 사용되어 현재 형태로 확립되었다.
2. 2. 러시아 제국군의 채택
샤슈카는 북캅카스 산악 부족들 사이에서 유래되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샤슈카는 19세기에 제작된 손잡이를 가지고 있으나, 가장 오래된 기록이 가능한 예시는 1713년의 것이다.[1]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코사크들이 이 무기를 채택하였다. 1834년 러시아 정부는 최초의 군용 샤슈카를 생산하였다.[2]러시아군은 캅카스 정복(1817-1864) 중에 샤슈카를 접하게 된 후, 자신들이 사용하던 사브르보다 이것을 선호하였다. 19세기 동안 후사르를 제외한 모든 기병 부대에서 사브르를 점차 대체하였다.[4]
초기에는 세 가지 유형의 규정 외 샤슈카가 있었다.
- 캅카스식: 손잡이가 칼집 안에 거의 들어가는 형태로, 쿠반 코사크와 캅카스 부족들이 사용하였다. 비가 올 때 물이 칼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300g의 매우 가벼운 무게에 유연하고 강했다. 구르다와 볼체크(칼날에 달리는 늑대 문양)가 유명했다.
- 돈 코사크식 샤슈카: 칼날이 더 곧은 형태로, 무게는 약 1kg이다.
- 테렉 코사크식 샤슈카: 돈 코사크식 샤슈카와 마찬가지로 손잡이가 칼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매우 가볍고 강하다.
최초의 공식적으로 규정된 러시아 군용 샤슈카는 1834년형 "니제고로드카"였다. 이어서 1838년형 샤슈카가 나왔다. 1881년에는 '코사크'식(가드가 없는 형태)과 '기병'식(놋쇠 손가락 보호대를 가진 형태로 1841년 기병 사브르에서 유래) 두 가지 유형이 도입되었으나, 두 유형의 칼날은 본질적으로 동일했다.[5]
코사크 군단은 1904년 자체 규정 유형을 받을 때까지 규정 외 샤슈카를 사용하였다.[6]
러시아 제국군의 용기병이 장비한 '1881년형 용기병 사벨'(러시아어: 1881 драгунская шашкаru)에도 "샤슈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칼날을 비롯한 전체적인 형태는 코사크가 사용한 샤슈카와 거의 같지만, 일반적인 사벨처럼 손잡이를 감싸는 큰 가드가 있다.
2. 3. 소련 시대와 현대
북캅카스 산악 부족들 사이에서 유래된 샤슈카는 17세기 후반에 처음 등장했지만, 현존하는 대부분의 샤슈카는 19세기에 제작된 손잡이를 가지고 있다.[1] 1713년에 제작된 샤슈카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코사크들이 이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샤슈카에는 캅카스/체르케스식과 코사크식 두 가지 유형이 있다. 1834년 러시아 정부는 최초의 군용 샤슈카를 생산하였다.[2]러시아군은 캅카스 정복(1817-1864) 중에 샤슈카를 접하고, 기존에 사용하던 사브르보다 샤슈카를 선호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세 가지 유형의 규정 외 샤슈카가 있었다.
- 캅카스식: 손잡이가 칼집 안에 거의 들어가는 형태로, 쿠반 코사크와 캅카스 부족들이 사용하였다. 비가 올 때 물이 칼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300g의 무게로 매우 가볍고 유연하며 강했다. 구르다와 볼체크(칼날에 달리는 늑대 문양)가 유명했다.
- 돈 코사크식 샤슈카: 칼날이 더 곧은 형태이며, 무게는 약 1kg이다.
- 테렉 코사크식 샤슈카: 돈 코사크식 샤슈카와 마찬가지로 손잡이가 칼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매우 가볍고 강하다.
최초의 공식적인 러시아 군용 샤슈카는 1834년형 "니제고로드카"였다. 1838년형 샤슈카가 뒤를 이었다. 1881년에는 가드가 없는 '코사크'식과 놋쇠 손가락 보호대를 가진 '기병'식 두 가지 유형이 도입되었다. 두 유형 모두 칼날은 본질적으로 동일했다.[5] 코사크 군단은 1904년 자체 규정 유형을 받을 때까지 규정 외 샤슈카를 사용하였다.[6]
소비에트 정부는 1881년 코사크식과 매우 유사한 1927년형을 도입했으며, 1946년까지 생산되었다. 마지막으로 도입된 샤슈카는 "선임 지휘관"과 장성을 위한 1940년형이었으며, 둘 다 손가락 보호대를 가지고 있었다.[7]
샤슈카는 코사크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의 장비로도 사용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 성립 이후에도 계속해서 장비로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소련군 기병부대와 코사크 기병들에 의해 실제 전투에서 사용되었다. 21세기 현대에도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는 의례용 장비로서 현역이지만, 그 수는 매우 적다.
3. 구조
샤슈카는 한쪽 날의 약간 휜 넓고 납작한 칼날과 매우 짧은 손잡이를 가진 검으로, 전체 길이는 표준으로 약 80cm이고 칼집을 제외한 무게는 약 1kg이다.
의례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샤슈카는 칼날에 장식 목적의 조각이 새겨져 있으며, 손잡이와 칼집의 금속 부분에도 장식이 되어 있다. 이러한 물품은 공예품으로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샤슈카 칼날과 외장의 기본적인 형태는 대체로 동일하다. 칼날, 손잡이 및 칼집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조하면 된다.
3. 1. 칼날
샤슈카는 일반적으로 총 길이가 80cm~105cm인 비교적 짧은 사브르이다.[8] 약간 휘어진, 풀러(fuller, 樋(ひ))가 있는 한쪽 날의 칼날을 가지고 있으며, 칼날 뒷면의 팁에 가장 가까운 3분의 1 부분은 종종 날카롭게 연마된 가짜 날이었다. 칼날 길이는 보통 65cm~80cm였다. 손잡이에는 가드가 없었다(러시아 드래군 '샤슈카' 형식은 황동 너클 보우와 가드 및 일반적인 사브르 폼멜을 가지고 있는 것을 제외). 폼멜은 갈고리 모양이었고 두 개의 '귀'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것은 터키의 야타간에서부터 아프간의 페시카브즈에 이르기까지 서아시아 고지대의 많은 무기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이 검은 날이 위로 향하게 칼집에 넣어 차고 다녔다. 샤슈카의 코카서스 형태는 칼집이 손잡이 대부분을 감싸고, 갈고리 모양의 폼멜만 약간 나와 있었다.[9]단순한 규정 외 샤슈카는 종종 뿔로 만든 손잡이를 가지고 있었고, 더 화려하게 장식된 예시는 니엘로 세공이 된 은으로 손잡이를 감싸고, 칼집 장식이 일치하였다. 러시아 군용 샤슈카는 훨씬 더 단순했으며, 손잡이는 일반적으로 황동 페룰, 늑골이 있는 나무 손잡이 및 황동 폼멜로 구성되었다. 전통적인 규정 외 샤슈카와 달리, 규정 샤슈카의 폼멜은 검 끈을 받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다. 폼멜은 제국의 문장으로 장식되었는데, 1917년 혁명 이후에는 종종 갈아 없애졌다. 소비에트 정권 하에서 제조된 샤슈카(1927년 형식)는 제국 문장 대신 공산주의 상징을 가지고 있었다. 후기 병사 모델은 종종 모신나강 카빈용 총검을 고정하기 위한 개조된 황동 칼집 장식을 가지고 있었다. 장교 모델은 비슷한 구조였지만 총검이 부착되어 있지 않았고, 훨씬 더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차르 시대에 장교들은 샤슈카의 장식에 상당한 자유를 누렸고, 일부는 규정 외 칼날을 가지고 있었다.[10]
1834년형 샤슈카는 인기 있는 무기였고, 1881년형으로 교체되었을 때, 여러 연대가 매우 강하게 항의하여 1834년형이 다시 돌려받았다.[11]
1838년 형식 규정 검의 일반적인 통계는 다음과 같다.[12]
총 길이 | 1030mm |
---|---|
칼날 길이 | 875mm |
칼날 너비 | 36mm |
칼날 곡률 | 62mm~375mm |
균형점 | 170mm~180mm |
무게 | 1067g |
일본도의 鋒諸刃造(きっさきもろはづくり)처럼, 찌르는 것을 고려하여 칼끝 부분만 양날인 칼날을 가진 것도 있으며, 넓은 칼날로 인해 발생하는 적의 신체와의 마찰이나 칼날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측면에 풀러(fuller, 樋(ひ))를 파낸(fullered) 것이 많이 보인다.
연대가 오래된 것일수록 칼날의 굽이 크고 가늘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또한, 연대가 오래된 것은 제작되거나 사용된 곳이 러시아·카프카스 지방의 남쪽일수록 굽이 크고 가는 것이 많다. 이것은 샤슈카의 기원과 전래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3. 2. 손잡이 및 칼집
샤슈카는 일반적으로 총 길이가 80~105cm인 비교적 짧은 사브르였다.[8] 약간 휘어진, 풀러가 있는, 한쪽 날의 칼날을 가지고 있었으며, 칼날 뒷면은 끝부분 3분의 1 정도가 날카롭게 연마되어 있기도 했다(가짜 날). 칼날 길이는 보통 65~80cm였다. 손잡이에는 가드가 없었다(러시아 드래군 '샤슈카' 형식은 황동 너클 보우와 가드 및 일반적인 사브르 폼멜을 가지고 있는 것을 제외). 폼멜은 갈고리 모양이었고 두 개의 '귀'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는 터키의 야타간에서부터 아프간의 페시카브즈에 이르기까지 서아시아 고지대의 많은 무기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이 검은 날이 위로 향하게 칼집에 넣어 차고 다녔다. 샤슈카의 코카서스 형태는 칼집이 손잡이 대부분을 감싸고, 갈고리 모양의 폼멜만 약간 나와 있었다.[9]단순한 샤슈카는 종종 뿔로 만든 손잡이를 가지고 있었고, 더 화려하게 장식된 예시는 니엘로 세공이 된 은으로 손잡이를 감싸고, 칼집 장식이 일치하였다. 러시아 군용 샤슈카는 훨씬 더 단순했으며, 손잡이는 일반적으로 황동 페룰, 늑골이 있는 나무 손잡이 및 황동 폼멜로 구성되었다. 전통적인 샤슈카와 달리, 규정 샤슈카의 폼멜은 검 끈을 받도록 구멍이 뚫려 있었다. 폼멜은 제국 문장으로 장식되었는데, 1917년 혁명 이후에는 종종 갈아 없애졌다. 소비에트 정권 하에서 제조된 샤슈카(1927년 형식)는 제국 문장 대신 공산주의 상징을 가지고 있었다. 후기 병사 모델은 종종 모신나강 카빈용 총검을 고정하기 위한 개조된 황동 칼집 장식을 가지고 있었다. 장교 모델은 비슷한 구조였지만 총검이 부착되어 있지 않았고, 훨씬 더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차르 시대에 장교들은 샤슈카의 장식에 상당한 자유를 누렸고, 일부는 규정 외 칼날을 가지고 있었다.[10]
샤슈카는 칼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도의 단도에서 많이 보이는 단검(합구) 꾸밈새처럼 칼집의 칼꽂이 부분(칼집에 칼날을 꽂는 부분)이 직접 자루와 일치하는 구조이다.
기본적으로 기마에서 사용되는 무기이며, 일본의 태도나 서양의 사브르처럼 허리에 차고 휴대하는 것(佩刀(はいとう)라고 부름)과는 큰 차이가 있다. 태도나 사브르와의 큰 차이점은, 佩環(はいかん)이라고 불리는 매달아 휴대하기 위한 금구가 칼집의 칼등 쪽이 아니라 날 쪽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태도나 사브르와 달리 칼날이 아래쪽으로 향하는 형태로 佩刀된다(칼집에 고정 장치를 달지 않고 띠 사이에 끼우는 차이는 있지만, 칼날을 위로 향하게 차는 점에서는 중세 후기 이후의 일본 우치가타나 양식과 유사하다).
보통 佩環은 두 개 달려 있으며, 칼띠보다 두 개의 끈을 사용하여 佩刀하지만, 佩環이 하나뿐인 형태의 것도 군용 사브르로 사용된 것을 중심으로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도 칼꽂이 금구의 겉면(차고 있을 때 안쪽이 되는 쪽)에 또 하나의 佩環 또는 끈을 걸 수 있는 금구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며, 순수하게 「佩環이 하나로 끈 하나만으로 佩刀하는」양식은 적다.
1881년식 용기병 사브르를 시작으로, 근대에 기병총의 보급 이후에 사용된 것에는 칼집에 총검을 장착하여 착검하기 위한 금구가 있는 것이 많다.
4. 사용
카프카스 지역 주민들이 샤슈카(Шашка)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당대의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남아있는 러시아 군사 교본에 따르면, 손을 보호하는 장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군용 샤슈카는 서유럽의 사브르(sabre)와 거의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었으며, 베기, 찌르기, 방어 동작 등이 매우 유사했다. 특히 러시아 군인들은 카프카스 전통에서 제시하는 것과는 달리, 칼집에서 빼는 동시에 한 번의 동작으로 베는 것을 훈련받지 않았다.[13]
참조
[1]
서적
undefined
[2]
서적
undefined
[3]
서적
undefined
[4]
서적
undefined
[5]
서적
undefined
[6]
서적
undefined
[7]
서적
undefined
[8]
웹사이트
The deadly shashka sword used by the renowned Cossacks
https://swordencyclo[...]
2023-06-26
[9]
서적
undefined
[10]
서적
undefined
[11]
서적
undefined
[12]
서적
undefined
[13]
서적
undefined
[14]
서적
Lezgi-English Dictionary
2010
[15]
문서
Shashqa 또는 Chacheka의 표기 및 발음에 대한 설명
[16]
문서
아디게어 표기 및 발음에 대한 추가 설명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