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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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 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는 화면을 9개 구획으로 나누어 극락구품의 내용을 도해한 형식의 불화이다. 고려시대 관경도에서 유래하여 19세기에 유행한 도상으로, 서울·경기 수도권 지역에 다수 남아있다. 1885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저명한 화승인 대허체훈, 혜산축연, 학허석운 등이 참여했다. 고양 흥국사 극락구품도와 유사하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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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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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 | |
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29 (돈암동, 흥천사) |
유형 | 유형문화재 |
지정 번호 | 405 |
지정일 | 2017년 6월 8일 |
시대 | 조선시대 1885년경 |
수량 | 1점 |
2. 지정 사유
서울 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는 도상의 희귀성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불화는 19세기 서울·경기 지역의 극락구품도 양식을 대표하며, 왕실 발원 신중도와의 연관성을 통해 당시 왕실 불교미술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1]
2. 1. 도상의 희귀성 및 중요성
이 극락구품도는 화면을 9개 구획으로 나누어 그 안에 구품의 내용을 도해한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의 극락구품도는 화계사 (1886년), 백련사 (1899년), 도선사 (1903년), 봉원사 (1903년), 수국사 (1907년), 고양 흥국사 (19세기) 등 서울·경기 수도권 지역에 남아있다.[1]고려시대 관경도에서 이어져 변모되어 새롭게 대두된 극락구품도는 19세기에 유행한 도상으로, 당시 저명한 화승인 대허체훈(大虛體訓), 혜산축연(惠山竺衍), 학허석운(鶴虛石雲) 등이 참여한 뛰어난 작품이다. 특히 고양 흥국사 극락구품도(19세기)와 유사한 작품으로 비교되는 중요한 자료이다.[1]
2. 2. 제작 화승 및 예술적 가치
이 극락구품도는 19세기에 유행한 도상으로, 대허체훈(大虛體訓), 혜산축연(惠山竺衍), 학허석운(鶴虛石雲) 등 당대 저명한 화승들이 제작에 참여한 뛰어난 작품이다.[1] 특히 고양 흥국사 극락구품도(19세기)와 유사하여 비교 연구 자료로서 중요하다.[1] 흥천사 소장 왕실 발원 신중도(1885)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이 이 극락구품도 제작에도 참여하여, 극락구품도 역시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1] 서울·경기 지역의 극락구품도와 비교되는 자료로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1]2. 3. 왕실 발원 신중도와의 연관성
서울 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는 흥천사 소장 왕실 발원 신중도(1885)와 제작 시기 및 화승(불화를 그리는 승려)의 연관성을 통해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으며, 당시 왕실 불사와의 관련성을 시사한다.[1]흥천사 극락전에 봉안된 신중도의 화기(그림의 내력 등을 적은 기록)에는 1885년에 대허체훈(大虛體訓), 혜산축연(惠山竺衍), 학허석운(鶴虛石雲) 등이 상궁들의 시주로 감로 등 4축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다.[1] 극락구품도의 화기에는 제작 연대가 없지만, 신중도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의 이름이 극락구품도 화기에도 있어 1885년에 신중도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1] 시주자의 명단은 홍씨, 심씨 등으로 신중도와 다르다.[1]
이는 당시 저명한 화승들이 왕실의 지원을 받아 불화를 제작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1]
3. 조사 보고서
흥천사 극락구품도는 19세기 후반, 조선 왕실의 후원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불화이다. 1885년에 제작된 흥천사 신중도(神衆圖)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당시 저명한 화승(畵僧)이었던 대허체훈, 혜산축연, 학허석운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1]
이 극락구품도는 특히 고양 흥국사 극락구품도(19세기)와 유사한 도상을 보이며, 당시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유행했던 극락구품도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서 그 가치가 높다. 또한, 서울·경기 지역의 다른 극락구품도들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1]
3. 1. 화면 구성 및 도상 분석
이 극락구품도는 화면을 9개 구획으로 나누고, 그 안에 구품(九品)의 내용을 도해(圖解)한 형식이다. 화면은 상⋅중⋅하 3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1]- 상단: 중앙의 〈영산회(靈山會)〉 좌우로 주악천인(奏樂天人)과 보살중(菩薩衆) 및 비구중(比丘衆)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설법을 찬탄하는 장면으로 보인다.[1]
- 중단: 〈수마제(須摩堤)〉, 즉 극락전을 중심으로 구품연못이 표현되어 있다. 〈영산회〉 장면을 제외한 8장면에 왕생자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두 연못이 묘사되어 있다.[1]
- 하단: 사대부 모습으로 왕생한 왕생자가 표현된 중앙부를 상품관(上品觀, 14관)이라 한다면, 보살이 왕생자를 맞이하는 장면은 하품관(下品觀, 16관), 불(佛)이 왕생자를 맞이하는 장면은 중품관(中品觀, 15관)이라 할 수 있다. 보통 보살중은 상품, 승려중은 중품, 속인중은 하품으로 나타나는데 비해, 여기서는 14-16관 모두 속인중으로 표현되었다.[1]
각 요소들은 이전 시대의 관경도(극락도)와 비교하여 크게 변화하였다. 극락의 환상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특히, 관경에 없는 요소들(사자, 사슴, 코끼리, 탑, 대나무숲, 마름모꼴로 형성된 극락땅이 아닌 현실의 정원에 세워진 듯한 기암괴석과 나무, 세 개의 아치형 문이 연속된 건물 등)이 새롭게 나타난다.[1]
일반적으로 전각 안에 아미타삼존불이 묘사되지만, 여기서는 전각이 비어있다. 불⋅보살상들은 모두 구름을 타고 왕생자를 맞으러 오는 것처럼 표현되었는데, 이는 내원암 관경도(1853, 목판본)에서 불⋅보살상이 연못의 왕생자를 맞거나 상단의 불⋅보살상이 반복되어 왕생자를 극락으로 데려오는 듯한 표현과 유사하며, 상단의 구름을 탄 불⋅보살상이 흥천사 극락구품도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1]
이 극락구품도는 고려시대 관경도에서 이어져 변모되어 새롭게 대두된 것으로, 19세기에 유행한 도상이다. 화계사(1886), 백련사(1899), 도선사(1903), 봉원사(1903), 수국사(1907), 고양 흥국사(19세기) 등 서울⋅경기 수도권 지역에 유사한 작품들이 남아있다.[1]
3. 2. 특징적인 표현 기법
서울 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는 화면을 9개 구획으로 나누어 각 구획 안에 구품(九品)의 내용을 묘사한 형식이다. 이러한 극락구품도는 고려시대 관경도에서 이어져 변화된 도상으로, 19세기에 유행하였다. 화계사(1886), 백련사(1899), 도선사(1903), 봉원사(1903), 수국사(1907), 고양 흥국사(19세기) 등 서울·경기 수도권 지역에 남아있다.[1]흥천사 극락구품도는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표현 기법을 보인다.
첫째, 그림을 상·중·하 3단으로 구분하면, 상단 중앙에는 영산회(靈山會)가 있고, 좌우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天人)과 보살, 비구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설법을 찬탄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중단에는 수마제(須摩堤), 즉 극락전을 중심으로 구품연못이 표현되어 있다. 영산회 장면을 제외한 8개 장면에 모두 연못이 묘사되어 있다.[1]
둘째, 이전 시대의 관경도(극락도)와 비교하면, 극락의 환상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특히, 관경에 없는 요소들(사자, 사슴, 코끼리, 탑, 대나무숲, 마름모꼴 극락땅이 아닌 현실 정원에 세워진 듯한 기암괴석과 나무, 세 개의 아치형 문이 연속된 건물 등)이 나타나는 점이 낯설다.[1]
셋째, 사대부 모습으로 왕생한 왕생자가 표현된 하단 중앙부를 상품관(上品觀, 14관)이라 한다면, 보살들이 왕생자를 맞이하는 장면은 하품관(下品觀, 16관), 부처가 왕생자를 맞이하는 장면은 중품관(中品觀, 15관)이다. 보통 보살은 상품, 승려는 중품, 속인은 하품으로 나타나는데, 흥천사 극락구품도에서는 14-16관 모두 속인으로 표현되었다.[1]
넷째, 일반적으로 전각 안에 아미타삼존불이 묘사되지만, 흥천사 극락구품도에서는 전각이 비어있다. 부처와 보살들은 모두 구름을 타고 왕생자를 맞으러 오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는 내원암 관경도(1853, 목판본)에서 부처와 보살이 연못의 왕생자를 맞거나, 상단의 부처·보살이 반복되어 왕생자를 극락으로 데려가는 듯한 표현과 유사하다. 상단의 구름을 탄 부처·보살상이 흥천사 극락구품도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1]
이 불화는 1885년에 제작된 신중탱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저명한 화승인 대허체훈, 혜산축연, 학허석운 등이 참여한 뛰어난 작품이며, 특히 고양 흥국사 극락구품도(19세기)와 유사한 작품으로 비교되는 중요한 자료이다.[1]
3. 3. 화기 분석
화면 좌우 모서리의 붉은색 바탕에 먹으로 쓴 화기(畵記)는 연화질(蓮花帙)과 시주질(施主帙)로 나뉘어 있으나, 제작 연도가 명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1] 그러나 같은 법당인 극락전에 봉안된 신중탱(神衆幀)의 화기를 보면, 1885년에 감로(甘露) 등 4축을 금어편수(金魚片手)인 대허체훈(大虛體訓), 혜산축연(惠山竺衍), 학허석운(鶴虛石雲) 등이 상궁들의 시주로 조성했다고 적혀 있다.[1] 이 불화의 화기에도 대허체훈, 혜산축연, 학허석운 등 화승들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1885년에 신중탱과 함께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1] 다만, 시주자 명단은 홍씨(洪氏), 심씨(沈氏) 등으로 다르게 나타난다.[1]4. 화기
극락구품도 좌우에는 다음과 같은 화기가 있다.
'''연화질(緣化秩)'''
증명(證明)은 환옹□진(幻翁□眞), 송주(誦呪)는 충허기교(沖虛基敎), 지전(持殿)은 영담보윤(暎曇普潤), 금어편수(金魚片手)는 대허체훈(大虛體訓), 금어(金魚)는 혜산축연(惠山竺衍)·학허석운(鶴虛石雲)·성전(性典)·완오(玩悟)·득눌(得訥), 공사(供司)는 운성(雲成), 종두(鐘頭)는 의천(義千)·현주(現珠)이다.
'''시주질(施主秩)'''
대시주(大施主)는 건명계유생홍씨(乾命癸酉生洪氏), 청신(靑信) 갑오생심씨대비화(甲午生沈氏大悲華), 화주(化主)는 허□보천(虛□寶泉)이다.
4. 1. 좌측 화기
연화질(緣化秩)은 다음과 같다.역할 | 이름 |
---|---|
증명 | 환옹□진(幻翁□眞) |
송주 | 충허기교(沖虛基敎) |
지전 | 영담보윤(暎曇普潤) |
금어편수 | 대허체훈(大虛體訓) |
금어 | 혜산축연(惠山竺衍), 학허석운(鶴虛石雲), 성전(性典), 완오(玩悟), 득눌(得訥) |
공사 | 운성(雲成) |
종두 | 의천(義千), 현주(現珠) |
4. 2. 우측 화기
대시주 乾命癸酉生洪氏중국어, 청신 甲午生沈氏大悲華중국어, 화주 虛□寶泉중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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