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브린 (영국 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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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버린은 1489년 헨리 7세 시대에 처음 발행된 영국의 금화이다. 최초의 소버린은 20실링의 가치를 지녔으며, 옥좌에 앉은 국왕의 모습이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며 소버린의 디자인과 가치는 변화를 겪었고, 1816년 금본위제 채택과 함께 새로운 소버린이 제정되어 1817년부터 주조되었다. 이 금화는 1917년까지 국내 유통용으로 발행되었으며, 식민지에서도 발행되었다. 1979년부터는 금괴 시장을 위한 주화로 발행되었으며, 수집가들을 위한 프루프 주화도 함께 제작되었다. 소버린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과 주조소에서 발행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수집과 투자의 대상으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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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브린 (영국 주화) | |
---|---|
기본 정보 | |
액면 | 소브린 |
가치 | 1 |
단위 | 파운드 스털링 |
금 함량 | 0.2354 트로이 온스 |
질량 | 7.98805 |
지름 | 22.0 |
두께 | 1.52 |
가장자리 | 압인 (일부 유통 목적이 아닌 주화는 평면) |
구성 | 금 (91.7%), 구리 또는 기타 금속 (8.3%) |
주조 연도 | 1817년–현재 |
조폐창 표시 | 다양함. 성 게오르기오스와 용 소브린의 경우 디자인과 날짜 사이의 엑서그에, 방패 뒷면 소브린의 경우 화환 아래에, 또는 초기 호주 발행물의 경우 앞면 흉상 아래에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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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 디자인 | 현재 통화에 묘사된 영국 군주 (엘리자베스 2세가 여기에 묘사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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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면 디자인 | 성 게오르기오스와 용 |
뒷면 디자이너 | 베네데토 피스트루치 |
뒷면 디자인 날짜 | 1817년 |
2. 역사적 배경
소브린이라는 이름의 잉글랜드 주화는 1489년 헨리 7세가 처음 발행을 승인하였다. 이 주화는 지름 42mm, 무게 15.55g으로 기존 금화이던 라이얼(ryal)의 두 배 가까이 되었다. 헨리 7세는 이 주화를 처음에는 더블 라이얼이라 불렀으나, 곧 소브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50]
16세기 영국 왕실에서는 1파운드의 가치를 지닌 소브린 금화를 주조했는데, 이 주화의 크기와 순도는 자주 변경되었다. 제임스 1세는 1603년 잉글랜드 왕위에 오르면서 즉위년에 소브린을 발행하였으나, 이듬해에 새로운 20실링 짜리 주화를 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주화는 유나이트로 불렸는데, 제임스 1세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위를 합친 것을 상징하였다.
1660년대, 찰스 2세의 복위와 왕립 조폐국의 기계화에 뒤이어 새 20실링 금화가 발행되었다. 이 금화는 처음에는 고유 명칭이 없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들은 이를 기니라고 불렀고, 이 명칭이 받아들여졌다. 새뮤얼 존슨의 사전에는 소브린이라는 용어가 1750년대에 수록되지 않았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영국 경제는 혼란스러웠고, 금은 시장에 나오지 않고 비축되었다. 무역을 계속하기 위해 1파운드 지폐가 발행되었고 대중들은 21실링이라는 이상한 값어치를 지닌 기니 주화보다 더 편리한 지폐를 더 선호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1816년 의회는 화폐 주조법을 통하여 영국에 공식적으로 금본위제를 도입하였으며, 파운드는 정해진 금 가치로 명시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의원들은 기니를 계속 사용하는 것보다, 20실링의 가치를 지닐 주화를 발행하기를 지지하였다. 추밀원은 10실링, 20실링, 2파운드, 5파운드의 금화를 발행할 것을 권하였으며 이는 조지 왕자에 의하여 1816년 8월 3일 수용되었다. 이 중 20실링 어치 금화는 예전 금화의 이름에서 따온 소브린으로 명명되었다.
2. 1. 15세기 최초의 소브린 금화
1489년 헨리 7세는 최초의 소브린 금화 발행을 승인했다. 이 금화는 지름 42mm, 무게 15.55g으로, 기존의 금화였던 라이얼의 두 배 무게였다. 1480년대 서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많은 금이 유입되자 헨리 7세는 이 주화를 처음에는 더블 라이얼이라 불렀으나, 곧 소브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너무 높은 가치 때문에 실제 유통보다는 고위 인사들에게 선물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1]16세기 영국 왕실에서는 1파운드 가치를 지닌 소브린 금화를 주조했는데, 크기와 순도는 자주 변경되었다. 제임스 1세는 1603년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첫해에 소브린 금화를 발행했으나, 이듬해에 그레이트 브리튼, 프랑스, 아일랜드의 왕을 자칭하며 새로운 20실링짜리 주화를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 새로운 주화는 마지막 소브린 금화보다 10%가량 가벼웠으며, 제임스 1세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위를 합친 것을 상징하는 유나이트라고 불렸다.

1553년 주조
2. 2. 16-17세기 소브린 금화의 변화
1553년 주조]]소브린(Sovereign)이라는 금화는 1489년 헨리 7세 시대에 발행된 무게 240 그레인의 금화가 20 실링과 같은 값으로 된 것이 최초이다. 이 금화는 그 전까지 유통되던 천사가 그려진 Angel (coin)|엔젤 금화영어와는 달리, 옥좌에 앉은 국왕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소브린(군주)이라고 명명되었다.[50]
그 후, 헨리 8세 시대에 발행된 소브린 금화는 22실링 6펜스가 되었고, 20실링과 같은 값으로 된 금화는 200 그레인으로 무게가 줄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가 되자 소브린 금화는 더욱 대형이 되어 30실링으로 되었고, 이와는 별도로 20실링의 1파운드 금화가 주조되었다. 이 옛날의 소브린 금화는 1604년을 마지막으로 주조가 중단되었고, 이후 20실링의 금화는 유나이트라고 칭하며, 옥좌의 군주 디자인이 아닌 국왕의 옆얼굴로 바뀌었다. 공화제, 왕정 복고를 거쳐 1663년에는 기니 금화가 발행되어, 이후 19세기 초까지 금화는 기니 금화뿐이었다.
영국이 금본위제를 채택한 1816년 화폐법(55 GeorgeIII.c.68)에 의해 새로운 본위 금화가 제정되어, 이를 소브린이라고 명명하고 1817년부터 주조되었다. 주조 시작은 1817년이었지만, 실제로 지폐와의 교환이 시작된 것은 1822년이었다.
이 금화는 유일한 무제한 법화로서, 1917년까지 국내 유통용 본위 화폐로서 발행되었다.
2. 3. 19세기 소브린 금화의 부활
1553년 주조]]1489년 헨리 7세 시대에 소버린(Sovereign)이라는 금화가 처음 발행되었는데, 이 금화는 무게가 240 그레인이었고 20 실링과 같은 가치를 가졌다. 이전까지 유통되던 Angel (coin)|엔젤 금화영어와는 달리 옥좌에 앉은 국왕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소버린(군주)이라고 불렸다.[1]
헨리 8세 시대에는 소버린 금화가 22실링 6펜스로 가치가 조정되었고, 20실링과 같은 가치를 지닌 금화는 무게가 200 그레인으로 줄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소버린 금화가 30실링으로 더 커졌고, 이와는 별도로 20실링의 1파운드 금화가 주조되었다. 이 옛 소버린 금화는 1604년을 마지막으로 주조가 중단되었고, 이후 20실링 금화는 유나이트라고 불리며 옥좌의 군주 대신 국왕의 옆얼굴이 새겨진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찰스 2세 시대인 1663년에는 기니 금화가 발행되어 19세기 초까지 금화는 기니 금화만 사용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 경제는 혼란스러웠고, 금은 비축되었다. 무역을 지속하기 위해 1파운드 지폐가 발행되었는데, 사람들은 기니 금화보다 편리한 지폐를 선호했다. 1816년 영국 의회는 화폐법(55 GeorgeIII.c.68)을 통해 영국을 공식적으로 금본위제로 전환하고, 파운드를 일정량의 금으로 정의했다. 거의 모든 의원들은 기니 금화 대신 20실링 가치의 주화를 발행하는 것을 지지했다.
1816년 화폐법은 조폐국이 어떤 주화를 발행해야 하는지 명시하지 않았지만, 추밀원 위원회는 10실링, 20실링, 2파운드, 5파운드 금화를 발행할 것을 권고했고, 조지 섭정공이 이를 수용했다. 이 중 20실링 주화는 소버린으로 명명되었는데, 이는 화폐 수집가들이 옛 이름을 부활시킨 것이었다. 새로운 소브린 금화는 1817년부터 주조되었으며, 1917년까지 국내 유통용 본위 화폐로 발행되었다.
3. 소브린 금화의 탄생 (1817년)
조지 3세의 흉상, 뒷면에 용을 물리치는 성 게오르기우스가 있는 소브린">
1489년 헨리 7세 시대에 최초로 발행된 소브린 금화는 1604년을 마지막으로 주조가 중단되었다. 이후 기니 금화가 발행되었으나,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영국 경제가 혼란에 빠지면서 금은 비축되고 1파운드 지폐가 발행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의회는 1816년 화폐 주조법을 통해 영국에 공식적으로 금본위제를 도입하고 파운드를 정해진 금 가치로 명시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기니 대신 20실링 가치의 주화를 발행하는 것을 지지했지만, 화폐 주조법은 조폐국이 발행해야 할 주화를 명확히 정하지 않았다. 추밀원은 10실링, 20실링, 2파운드, 5파운드의 금화 발행을 권고했고, 섭정이었던 조지 왕자는 1816년 8월 3일 이를 수용했다. 이 중 20실링 금화는 이전 금화의 이름을 따서 소브린으로 명명되었는데, 이는 화폐 수집가들의 제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로운 소브린 금화는 22캐럿 금 1 트로이 파운드(12 트로이 온스)를 46.725 소브린으로 주조하도록 정해졌으며, 각 동전의 무게는 7.98805g이고 순금 7.32238g을 포함했다.[2]
3. 1. 조폐국 개혁과 웰즐리 폴
웰링턴 공작의 형인 윌리엄 웰즐리 폴은 1812년 왕립 조폐국을 개혁할 권한을 지닌 조폐국장(당대 차관급)에 임명되었다. 폴은 남아있는 기니 금화의 양이 많고 이를 소브린으로 교체하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니 금화를 계속 사용하기를 원했으나, 결국 기니 금화 사용은 중지되었다.[2]1816년, 폴은 베네데토 피스트루치를 고용하여 새로운 주화의 모델을 제작하도록 했다. 피스트루치는 소브린에 적합한 주제로 성 게오르기우스를 제안하고, 조지 3세 왕의 머리를 벽옥으로 제작했다. 또한 크라운에 사용할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의 왁스 모형을 준비하여 소브린에 적용했다. 왕립 조폐국의 조각가들은 피스트루치의 이미지를 강철에 재현하는 데 실패하여, 피스트루치가 직접 다이 조각을 맡았다.
1817년 2월, 조폐국에 대한 공식적인 지시가 담긴 도급 계약서를 통해 왕립 조폐국에 금 소브린 주조를 지시했다. 이전에는 22-캐럿 금 1 트로이 파운드(12 트로이 온스)를 44 기니 가치(44.5*£1 = £46)로 주조했으나, 새 도급 계약서에서는 22캐럿 금 1 트로이 파운드를 46.725 소버린으로 주조하도록 변경되었다. 각 동전의 무게는 7.98805g이고 순금 7.32238g을 포함했다.
3. 2. 베네데토 피스트루치의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디자인
윌리엄 웰즐리 폴은 웰링턴 공작의 형으로, 1812년에 조폐국장](Master of the Mint)(당시 정부의 하위직)으로 임명되었다.[2] 폴은 왕립 조폐국을 개혁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새로운 주화 모델 제작을 위해 1816년 이탈리아 조각가피스트루치는 스펜서 부인의 의뢰로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을 주제로 한 카메오를 제작했는데, 이 카메오의 성인 모델은 런던 레스터 스퀘어의 브루넷 호텔에서 일하던 이탈리아인 웨이터였다.[2] 폴은 피스트루치에게 소브린에 적합한 주제로 성 게오르기우스를 제안받고, 이를 수용하여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디자인을 소브린에 적용했다.[2]

피스트루치의 디자인은 말을 탄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물리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왼손으로 말 고삐를 잡고, 다리와 발을 제외하고는 갑옷을 입지 않은 모습이다. 초기 발행본에는 흩날리는 깃털이나 머리카락 뭉치가 달린 헬멧을 쓰고 있으며, 기사 뒤로는 피불라로 고정된 클라미스 망토가 흘러내린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오른손에 글라디우스 칼을 잡고 있으며, 발테우스를 착용하고 있다. 미술 평론가 존 러스킨은 성자가 옷을 입지 않고 격렬한 싸움에 나서는 것이 이상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2]

1817년 원본 디자인에서 성 게오르기우스는 부러진 창을 들고 있었으나, 1821년 디자인을 둘러싼 가터가 제거되면서 칼로 변경되었다. 1821년에는 헬멧 뒤의 머리카락 뭉치도 제거되었다가 1887년에 복원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수정되었다.[2]
피스트루치의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디자인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당시 런던에서 유행하던 스타일이었다. 피스트루치는 엘긴 대리석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2] 소브린은 문장 디자인이 없다는 점에서 19세기 영국 동전 중 특이한 경우인데, 이는 폴이 소브린을 기니와 최대한 다르게 보이도록 의도했기 때문이다.[2]
4. 통용 시기 (1817-1914)
1816년 영국이 금본위제를 채택하면서 새로운 본위 금화인 소버린이 1817년부터 주조되었다. 소버린은 1917년까지 유통되었으며, 처음에는 지폐 선호로 인기가 낮았으나, 소액권 지폐 발행 금지(1826년) 등으로 점차 유통이 확대되었다.[3] 초기 소버린은 프랑스 등지로 대량 수출되기도 했다.[3]
조지 4세 즉위 후 베네데토 피스트루치의 조지 앤 드래곤 디자인과 조지 4세 흉상이 새겨진 소버린이 발행되었으나, 국왕의 불만으로 프랜시스 챈트리의 흉상으로 교체되었다(1825년). 이 시기 소버린 뒷면에는 영국 왕실 문장이 새겨졌다. 윌리엄 4세 시기에는 챈트리의 흉상을 바탕으로 한 소버린이 발행되었다(1837년까지).
빅토리아 여왕 즉위(1837년) 후 영국과 하노버 간의 개인 연합이 종식되면서, 윌리엄 와이언의 여왕 초상과 장 밥티스트 메를렌의 왕실 문장이 새겨진 "방패 뒷면" 소버린이 1838년부터 1874년까지 주조되었다. 1863년부터 1874년 사이 주조된 소버린에는 주화 다이를 나타내는 숫자가 표시되었다.[3]
1850년까지 약 9,400만 파운드의 소버린과 하프 소버린이 유통되었고, 영국 정부는 제국주의적 목적으로 소버린 사용을 지원했다. 그러나 소버린 마모 문제가 발생하여 잉글랜드 은행은 재주조 프로그램을 시행, 소버린은 "세계의 주요 주화"가 되었다.[4]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등으로 소버린 주조량이 증가했지만, 마모 문제는 지속되었다. 1870년 주화법과 1889년 의회법으로 마모 손실을 정부가 부담하게 되었다.
소버린은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등에 등장했으며, 여러 영국 식민지와 브라질, 포르투갈 등에서 유통되었다.[8] 1871년 베네데토 피스트루치의 조지 앤 드래곤 디자인이 복원되었고, 1887년까지 호주에서 주조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젊은 머리"는 1887년까지, 이후 주빌리 머리와 올드 헤드로 대체되었다.
호주에서 금이 발견되면서(1851년) 시드니 조폐국(1853년), 멜버른 조폐국(1872년), 퍼스 조폐국(1899년) 등이 설립되었다.[10] 초기 호주 발행 소버린은 독특한 디자인이었으나, 1870년부터 런던과 동일한 디자인에 조폐국 표시를 추가했다. 1900년까지 영국 유통 소버린의 약 40%가 호주에서 발행되었다.
클론다이크 골드 러시 이후 캐나다 왕립 조폐국이 설립되어 1908년부터 1919년까지 소버린을 발행했다. 봄베이와 프리토리아에서도 발행되었다. 1932년 프리토리아 발행 소버린이 마지막 액면 통용 소버린이었다.
2013년, 인도 시장 수요를 위해 조폐국 표시 I가 있는 인도 금 소버린 발행이 재개되었다. 이 주화는 영국에서 법정 통화이다.[12]
4. 1. 초기 (1817-1837)
1817년 말에 소버린이 유통되기 시작했을 때, 대중은 소버린이 대체하려고 했던 지폐를 선호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인기가 없었다. 수요 부족으로 1818년 2,347,230개였던 주조량이 이듬해 3,574개로 감소했다.[3] 1819년에 소버린 주조량이 적었던 또 다른 이유는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금을 주화 금속에서 제거하고 잉글랜드 은행에서 요구 시에 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 계획은 1820년에 폐기되었고, 은행은 금 소버린의 유통을 장려했지만, 영국 대중의 수용은 느렸다. 전시 지폐 교환에 대한 어려움이 극복되면서 소버린의 인기가 높아졌고, 소액권 지폐가 희귀해지면서 1826년 의회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5파운드 미만의 지폐 발행을 금지했다.초기 소버린은 대량으로 수출되었다. 1819년 로버트 필은 전년 이후 프랑스에서 주조된 약 500만파운드 상당의 금 중 4분의 3이 새롭게 주조된 영국 주화에서 녹여진 것이라고 추정했다. 1820년대에는 금과 합금된 금속에 은이 포함되어 이윤을 남길 수 있었고, 금은 종종 영국으로 반환되어 다시 소버린으로 주조되었기 때문에 더 많은 소버린이 프랑스로 수출되었다. 1829년부터 조폐국은 은을 제거할 수 있었지만, 그 이전부터 소버린의 유출은 계속되었다.
조지 3세는 1820년 1월에 사망했고, 그의 뒤를 이어 조지, 섭정 공이 조지 4세가 되었다. 조폐국 관계자들은 남은 기간 동안 고(故) 국왕의 두상을 주화에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조지 4세 국왕의 주화에 대해 피스트루치는 조지 앤 드래곤 뒷면을 수정하여 주변의 가터 리본과 모토를 제거하고, 홈이 있는 테두리로 대체했다. 또한 피스트루치는 성인의 모습도 수정하여, 이전에는 부러진 창을 들고 있던 손에 검을 쥐게 하고, 헬멧에서 깃발을 제거하고, 망토의 모습을 다듬었다.
조지 4세 소버린의 앞면 디자인은 피스트루치가 대관식 메달을 위해 준비한 흉상에 기초한 조지 4세의 "월계수 머리"를 특징으로 했다. 새로운 버전은 1821년 5월 5일 추밀원령에 의해 승인되었다. 이 동전들은 1821년에서 1825년 사이에 매년 주조되었지만, 국왕은 자신의 묘사에 불만을 품고, 프랜시스 챈트리가 제작한 더 돋보이는 흉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묘사를 준비할 것을 요청했다. 피스트루치는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복제하는 것을 거부했고, 더 이상 주화 작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제2각사(나중에 수석각사) 윌리엄 와이언이 챈트리의 흉상을 주화 디자인으로 변환하는 임무를 맡았고, 새로운 소버린은 1825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조폐국장 토머스 월리스가 현재 주화 디자인 중 일부를 싫어하고, 왕립 조폐국의 장 밥티스트 메를렌에게 새로운 뒷면 디자인을 준비하도록 했기 때문에, 새로운 소버린에는 조지 앤 드래곤 디자인이 새겨지지 않았다. 소버린의 새로운 뒷면은 잉글랜드의 사자가 쿼터 중 두 곳에 새겨진 영국 왕실 문장을 특징으로 하고, 스코틀랜드의 사자와 아일랜드의 하프가 균형을 이루었다. 방패에는 하노버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고, 왕관이 씌워져 있었으며, 브라운슈바이크, 뤼네부르크 및 첼레의 문장이 묘사되어 있다. 조지 앤 드래곤 디자인은 1871년까지 소버린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윌리엄 4세가 형 조지 4세의 사망으로 1830년에 즉위하면서 소버린의 새로운 디자인이 등장했고, 윌리엄 와이언은 챈트리의 흉상을 바탕으로 새 국왕의 모습을 새겼다. 두 개의 약간 다른 흉상이 사용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첫 번째 흉상"이라고 불리는 것은 1831년 유통용 동전(생산 첫 해)과 1832년 일부 동전에 사용되었고, "두 번째 흉상"은 그해 견본 주화뿐만 아니라 1831년 프루프 주화, 1832년 일부, 1833년부터 완전히 사용되었다. 뒷면에는 메를렌이 제작한 문장 묘사가 다시 등장하고, 날짜와 함께 라틴어 단어 ''Anno'' (년도)가 표시되었다. 이 동전들은 국왕의 사망 연도인 1837년까지 매년 주조되었다.
4. 2. 빅토리아 시대 (1837-1901)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는 개인 연합 영국과 하노버 간의 개인 연합을 종식시켰다. 하노버의 살리카법에 따라 여성은 하노버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3] 따라서 소브린의 양면을 모두 변경해야 했다. 윌리엄 와이언은 앞면에 조각할 여왕의 "젊은 머리" 초상을 디자인하고 조각했으며, 장 밥티스트 메를렌은 화환 안의 왕실 문장을 묘사한 뒷면을 조각했으며, 디자인에도 일부 참여했을 것이다. 새로운 주화는 1838년 2월 26일에 승인되었으며, 1840년과 1867년을 제외하고 "방패 뒷면" 소브린은 1838년부터 1874년까지 런던의 왕립 조폐국에서 매년 주조되었다.1863년부터 1874년 사이에 런던에서 주조된 방패 디자인의 소브린에는 방패 아래에 작은 숫자가 표시되어 사용된 주화 다이를 나타냈다. 숫자가 사용된 이유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널리 알려진 이론으로는 다이의 마모를 추적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조지 프레데릭 앤설은 1870년 저서 『왕립 조폐국, 그 작동 방식, 운영 및 작업 완전하고 실용적으로 설명』에서 "뒷면 다이는 인식된 장치 외에도 작은 숫자를 표시하도록 제작되어 어떤 주조 프레스에서, 그리고 어떤 특정 날에 번호가 매겨진 다이가 사용되었는지, 잘못된 작업을 개인에게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1850년까지 약 9,400만 파운드의 소브린과 하프 소브린이 주조되어 영국 밖으로 널리 유통되었으며, 이는 제국주의적 야망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소브린의 사용을 간주한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금은 부드러운 금속이므로 유통 과정에서 소브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1838년, 제임스 스미소니언의 유산이 미국으로 전송하기 위해 금으로 변환되었을 때, 미국 당국은 최근에 주조된 소브린을 요청했는데, 이는 미국 도착 후 소브린을 녹일 때 금의 양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갓 주조된 소브린의 무게는 123.274 그레인(7.98802g)이어야 했다. 무게가 122½ 그레인[4] 이하로 확인되면 1파운드 법정 통화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즉, 소브린당 금 1½ 페니의 부족). 1840년대 초, 잉글랜드 은행은 손에 들어오는 금화의 20%가 가볍다고 추산했다. 소브린의 무역적 평판을 높이기 위해 잉글랜드 은행은 재주조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가벼운 금화를 녹이고 금을 새롭고 정규 중량의 금화에 사용했다. 1842년에서 1845년 사이에 잉글랜드 은행은 약 1,400만 파운드의 가벼운 금화를 회수하여 재주조했는데, 이는 유통 중인 금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는 소브린을 표준에 맞게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 사용되던 대부분의 기니를 제거했을 것이다. 가벼운 금화를 소지한 불운한 사람은 이를 금괴로만 바꿀 수 있었고, 가벼움으로 인해 최소 1½ 페니를 잃었으며, 종종 잉글랜드 은행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동일한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또한 왕립 조폐국 내에서 품질 관리가 강화되었다. 1866년까지 모든 금화와 은화의 무게가 개별적으로 측정되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소브린은 존 클래펌 경의 말처럼 "세계의 주요 주화"가 되었다.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와 1840년대와 1850년대의 기타 발견으로 사용 가능한 금의 양과 주조된 소브린의 수가 증가하여 1850년에서 1875년 사이에 1억 5천만 파운드의 소브린과 하프 소브린이 주조되었다. 마모 문제는 계속되었다. 평균적으로 소브린은 유통된 지 15년 후에 가벼워지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1870년 주화법은 왕립 조폐국의 기준을 강화하여 소브린이 일괄적으로가 아닌 연례 Pyx 재판에서 개별적으로 테스트되도록 요구했다. 이러한 기준은 새로 주조된 소브린에 대한 높은 불합격률을 초래했지만, 때로는 50%를 초과하기도 하는 하프 소브린보다는 낮았다. 1882년 왕립 조폐국이 재건되었을 때, 다른 조폐국으로 이전하는 대신 개보수를 위해 생산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적인 요인은 잉글랜드 은행의 보고서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소브린 재고가 있으며, 런던에서 1년 동안 주조할 수 없더라도 아무런 해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1890년대 잉글랜드 은행의 자동화된 기계로 소브린을 개별적으로 무게를 잴 수 있게 되었으며, 1889년 의회법에 의해 가벼운 금화를 액면가로 상환할 수 있게 되어 마모로 인한 손실은 정부에 귀속되면서 금화를 정규 중량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지원되었다. 1889년 주화법은 또한 잉글랜드 은행이 빅토리아 여왕 시대 이전의 마모된 금화를 상환하도록 승인했지만, 1890년 11월 22일 왕실 포고령에 의해 여왕 시대 이전의 모든 금화가 회수되었고 1891년 2월 28일부터 통용이 중단되었다. 가벼운 조각을 녹여 재주조하는 지속적인 프로그램으로 인해, 1900년까지 법적 최소 중량보다 가볍게 유통되는 소브린의 추정치는 약 4%로 떨어졌다.
소브린은 소설에서도 등장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범블 부인은 그녀의 정보에 대한 대가로 25파운드의 소브린을 받는다. 조지프 콘래드는 라틴 아메리카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선장이 소브린을 가치 저장소로 보관하는 것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다. 많은 소브린이 외국에 도착하면 재주조를 위해 녹여졌지만(스미소니언의 경우도 마찬가지), 수십 개의 영국 식민지와 브라질, 포르투갈과 같은 국가에서도 유통되는 주화로 간주되었다. 후자는 4,500 레이스의 가치로 인정했다.[8]
1871년, 조폐국 부국장 찰스 윌리엄 프레멘틀은 주화의 미화를 추진하기 위해 베네데토 피스트루치의 조지 앤 드래곤 디자인을 소브린에 복원했다. 성 조지의 복귀는 여왕의 승인을 받았으며, 1871년 1월 14일 각의 명령에 의해 승인되었다. 두 디자인은 1871년부터 1874년까지 런던에서 나란히 주조되었으며, 1887년까지 호주 지점에서 주조되었으며, 그 후에는 피스트루치 디자인만 사용되었다. 성인은 1887년에 거의 주조되지 않은 2파운드 및 5파운드 주화로 돌아왔고, 1893년에는 하프 소브린에 배치되었다. 소브린 앞면에 대한 와이언의 빅토리아 여왕의 "젊은 머리"는 1838년부터 1887년까지 주조되었으며, 주빌리 머리가 조셉 뵘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 앞면은 비판을 받았고 1893년에는 올드 헤드가 토마스 브록에 의해 대체되었다.
4. 3. 식민지 발행 (1855-1931)
1851년 호주에서 금이 발견되자 현지인들은 식민지에 왕립 조폐국의 지점을 설립할 것을 즉각 요구했다. 애들레이드 당국은 런던의 조치를 기다리지 않고 감정소를 설립하여 "애들레이드 파운드"로 알려진 주화를 만들었다. 1853년, 의회 명령에 따라 시드니 조폐국이 설립되었고, 멜버른 조폐국은 1872년에, 퍼스 조폐국은 1899년에 설립되었다.[10] 1855년 7월 18일 뉴사우스웨일스에서 통화를 규제하는 법이 발효되어 금화는 소버린과 하프 소버린으로 불리고, 다른 소버린과 동일한 무게, 순도 및 가치를 갖도록 규정했다.

1870년까지 시드니에서 초기에 발행된 주화는 영국에서 발행된 주화와 유사한 빅토리아 여왕의 흉상을 묘사했지만, 머리카락에는 호주 원산의 뱅크시아 화환이 있었다. 뒷면 또한 독특했는데, 조폐국 이름, AUSTRALIA라는 단어와 액면가 ONE SOVEREIGN이 새겨져 있었다. 이 주화는 디자인과 사용된 금의 옅은 색상(합금에 은의 비율이 더 높기 때문)에 대한 우려로 처음에는 호주 외 지역에서 법정 통화가 아니었지만, 1866년부터 호주 소버린은 런던에서 발행된 소버린과 함께 법정 통화가 되었다. 1870년부터는 런던에서 사용된 디자인이 사용되었지만, "S" 또는 "M"(또는 나중에는 "P")이라는 조폐국 표시가 원산지를 나타냈다. 멜버른과 시드니의 조폐국은 런던 시설에서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 인기에 힘입어 1887년까지 쉴드 디자인을 계속 발행할 수 있었다. 식민지 조폐국의 대규모 발행으로 인해 1900년까지 영국에서 유통되는 소버린의 약 40%가 호주에서 발행되었다. 호주 주화용 다이는 런던에서 제작되었다.
클론다이크 골드 러시 이후,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에 왕립 조폐국 지점을 설립할 것을 요청했다. 1908년이 되어서야 현재의 캐나다 왕립 조폐국인 오타와가 문을 열었고, 1908년부터 1919년까지 (1912년과 1915년 제외) "C" 조폐국 표시가 있는 소버린을 소량으로 발행했다. 조폐국 표시 "I"가 있는 봄베이(1918년)와 조폐국 표시 "SA"가 있는 프리토리아(1923–1932년)의 지점 조폐국에서도 소버린을 발행했다. 멜버른과 퍼스는 1931년 이후 소버린 발행을 중단했고, 시드니는 1926년에 폐쇄되었다. 프리토리아에서 발행된 1932년 소버린은 액면가로 통용되도록 발행된 마지막 주화였다.
금화 수입을 허용하지 않는[11] 인도 시장의 금화에 대한 높은 수요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조폐국 표시 I가 있는 인도 금 소버린의 발행이 재개되었다. 인도/스위스 합작 회사인 MMTC-PAMP는 런던 왕립 조폐국의 완전한 품질 관리를 받으며 델리 근처 시설에서 면허를 받아 주화를 발행한다.[12] 이 주화는 영국에서 법정 통화이다.
5. 무역 금화 시대 (1914-1979)
영국이 1914년 7월 위기에 전쟁으로 치닫자 많은 사람들이 잉글랜드 은행권을 금으로 바꾸려 했고, 은행의 금 보유량은 크게 감소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선포 이후, 정부는 금화와 반 금화를 대신하여 1파운드 및 10실링 지폐를 유통시켰다.[1] 금의 해외 반출은 제한되었고, 주화 용해는 범죄가 되었다.[2]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재무부 장관은 금으로의 전환 행위가 비애국적이며 전쟁 노력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호소에 금으로 지급해 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1915년 중반까지 금화는 런던 상업에서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주화는 전쟁 지원을 촉구하는 선전 포스터에 묘사되었다.
금화는 1917년 말까지 런던에서 계속 주조되었지만, 대부분 국가의 금 보유액의 일부로 보유되거나 미국에 대한 전쟁 부채를 지불하는 데 사용되었다.[3] 금화는 여전히 중동을 비롯한 일부 외국에서 통화로 사용되었다.[4] 호주 조폐국에서는 다른 경제 상황으로 인해 금화 주조가 계속되었다. 전쟁 후 금화는 영국 상업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며, 통화로서보다 금으로서의 가치가 더 높았다. 1925년 윈스턴 처칠 재무부 장관은 영국을 금본위제에 복귀시키는 1925년 금본위법을 통과시켰지만, 금은 유통 수단이 아닌 준비금으로 보관되었다. 이 노력은 실패했고 처칠은 그것을 자신의 인생 최악의 실수로 여겼다.
1936년 에드워드 8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 통용을 위한 금화 발행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즉위해에 발행되는 전통적인 프루프 세트의 일부로 주화가 준비되었다. 험프리 파젯이 디자인한 에드워드 왕의 초상이 새겨지고 1937년 연도가 찍힌 이 금화는 1936년 12월 에드워드 8세의 퇴위 이전에 왕실 포고령에 의해 승인되지 않았으며, 패턴 주화로 간주된다.[5] 이 금화는 극히 희귀하며, 2020년에는 100만 파운드에 판매되어 당시 영국 주화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이후 기록이 깨짐).[6][7] 1937년 연도가 찍힌 프루프 상태의 금화는 파젯이 디자인한 에드워드의 동생이자 후임자인 조지 6세를 위해 주조되었으며, 조지의 초상이 새겨진 유일한 금화이다.
금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동 및 기타 지역에서 무역 주화로 인기를 유지했다. 전후 시대에 1925년 연도가 찍힌 금화의 소량 주조는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으며, 이는 유럽과 중동의 위조범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충족되었는데, 이들은 종종 주화에 금의 가치를 모두 넣었다. 위조 기소가 제기되었으며, 금화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변호가 이루어졌으나 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금화는 1870년 주화법에 따라 여전히 법정 통화였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2세 즉위해인 1953년에 금화가 주조되었으며, 메리 길릭이 그린 여왕의 초상이 새겨졌지만, 금화는 주요 박물관에만 전시되었다.[8] 1953년 금화는 2014년 경매에서 384,000파운드에 판매되었다.[9] 1957년, 재무부는 계속적인 기소와 현재 연도가 찍힌 새 주화 발행을 통해 금화의 지위를 방어하기로 결정했다.[10] 길릭의 초상이 새겨진 엘리자베스 2세 금화는 1957년부터 1959년까지, 그리고 1962년부터 1968년까지 금괴 주화로 주조되었다.[11]
1966년 윌슨 2차 내각은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비축을 막기 위해 금화 보유에 대한 제한을 두어 수집가는 잉글랜드 은행으로부터 면허를 받아야 했다. 이는 효과가 없었으며, 금 거래를 지하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1970년에 폐지되었다.[12] 금화는 십진법화와 왕립 조폐국의 런던에서 란트리산트 웨일스로의 이전을 모두 견뎌냈다. 길릭의 마지막 금화는 1968년에 주조되었다. 1974년에 생산이 재개되었을 때, 아놀드 매킨이 그린 초상이 사용되었다.[13]
6. 금괴 및 수집용 주화 (1979-현재)
1979년부터 소버린은 금괴 시장을 위한 주화로 발행되었지만, 수집가를 위해 프루프 상태로 왕립 조폐국에서 주조되었으며, 이러한 프루프 주화의 발행은 매년 계속되었다. 1985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머신 초상화가 라파엘 마클루프의 초상화로 교체되었다.[15] 1982년 이후 금괴 소버린의 주조가 중단되었고, 1989년을 제외하고 1997년 말까지 주조된 마클루프 초상화는 프루프 상태의 소버린에서만 볼 수 있다.[15] 1989년에는 헨리 7세의 소버린 5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 소버린이 최초로 발행되었다. 버나드 신달이 디자인한 이 주화는 이전 작품의 디자인을 연상시키며, 헨리가 옛 영국 소버린에 등장했던 것처럼 엘리자베스가 왕좌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1489년 주화의 뒷면에는 왕실 문장이 있는 이중 튜더 장미가 묘사되어 있으며, 업데이트된 문장이 있는 유사한 디자인이 1989년 소버린의 뒷면을 장식했다.[15]
이안 랭크-브로드리는 소버린에 사용될 엘리자베스 여왕의 네 번째 흉상을 디자인했으며, 이는 1998년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2015년까지 사용되었다. 금괴 소버린은 2000년에 다시 발행되기 시작했고, 이는 계속되었다.[15] 즉위 50주년을 기념하여 2002년에는 특별한 뒷면 디자인이 사용되었으며, 티모시 노드가 19세기 "방패 뒷면" 소버린을 연상시키는 방패 위의 왕실 문장을 개작했다.[15] 2005년과 2012년(후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에는 조지 앤 드래곤 디자인의 해석이 있었으며, 전자는 노드, 후자는 폴 데이가 디자인했다. 데이의 디자인은 주빌리를 기념하는 당일 주조 소버린에 사용되었다. 2009년에는 피스트루치의 디자인을 더 잘 포착하기 위해 조지 3세 시대의 도구를 사용하여 뒷면을 다시 조각했다.[15] 조디 클라크가 디자인한 여왕의 새로운 초상화는 2015년에 도입되었으며, 새로운 흉상이 있는 소버린이 일부 발행되었다. 가장 최근의 특별 디자인은 2016년과 2017년에 수집가만을 위한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90세 생일을 기념하는 2016년 수집가용 주화는 제임스 버틀러가 디자인한 앞면에 1년 한정 초상화가 있다. 2017년 수집가용 주화는 현대 소버린 200주년을 기념하여 가터 벨트와 모토가 있는 피스트루치의 1817년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또한 피에드포르가 주조되었고, 관례적인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란트리산트에서 주조된 금괴 소버린에는 숫자 200이 있는 은밀한 표시가 주어졌다.[15] 2022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플래티넘 주빌리를 기념하기 위해 노드의 왕실 문장을 해석한 뒷면 디자인이 사용되었다.[15]
2022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이후, 왕립 조폐국은 새로운 국왕 찰스 3세를 앞면에, 엘리자베스를 기리고 그녀의 긴 통치를 기념하기 위해 클라크가 디자인한 왕실 문장을 묘사한 소버린을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11월 15일에 주문을 받기 시작했을 때 수요가 너무 많아 조폐국 웹사이트 방문자는 가상 대기열에 배치되었다.[16] 2023년 5월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위해 왕립 조폐국은 피스트루치 뒷면과 함께 왕의 왕관을 쓴 흉상을 보여주는 소버린을 발행했다. 2022년에 처음 발행된 왕관을 쓴 흉상과 왕관을 쓰지 않은 흉상 모두 마틴 제닝스가 디자인했다.[17] 2024년에는 제닝스의 왕관을 쓰지 않은 찰스의 초상화가 프루프로 주조된 5개의 소버린 액면가(쿼터 소버린에서 5파운드 주화까지) 각각의 피스트루치 뒷면과 짝을 이루었다.[18]
2024년, 왕립 조폐국은 2026년부터 주조되는 소버린이 전통적인 노란색 크라운 골드 색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구리의 양이 더 많아 로즈 골드와 유사한 현재 합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2025년 소버린 중 일부는 피스트루치의 뒷면을, 다른 일부는 200년 전에 처음 발행된 멀렌의 왕실 문장 뒷면을 가질 것이다. 또한 2024년 11월에 발행될 소버린의 은색 변형도 발표되었으며, 이 주화는 금 소버린과 동일한 크기와 무게로 주조될 것이다.[19]
1989년 이후 소버린의 다양한 디자인은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도록 고안되었으며, 쿼터 소버린에서 5 소버린 조각에 이르기까지 소버린을 기반으로 한 다른 금화도 마찬가지이다.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왕립 조폐국은 예전처럼 잉글랜드 은행을 통해 생산품을 유통하는 대신 금 소버린을 대중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다.[15] 법정 통화인 소버린은 영국 거주자의 자본 이득세가 면제된다.[20]
7. 디자인
1979년부터 소브린은 금괴 시장을 위한 주화로 발행되었지만, 수집가를 위해 프루프 상태로 왕립 조폐국에서 주조되었으며, 이러한 프루프 주화 발행은 매년 계속되었다. 1985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Machin 초상화가 라파엘 마클루프의 초상화로 교체되었다.[49] 1982년 이후 금괴 소버린 주조는 중단되었고, 1989년을 제외하고 1997년 말까지 주조된 마클루프 초상화는 프루프 상태 소버린에서만 볼 수 있다.[49]
1989년에는 헨리 7세 소버린 5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 소버린이 최초로 발행되었다. 버나드 신달이 디자인한 이 주화는 이전 작품 디자인을 연상시키며, 헨리가 옛 영국 소버린에 등장했던 것처럼 엘리자베스가 왕좌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1489년 주화 뒷면에는 왕실 문장이 있는 이중 튜더 장미가 묘사되어 있으며, 업데이트된 문장이 있는 유사한 디자인이 1989년 소버린 뒷면을 장식했다.[49]
이안 랭크-브로드리는 소버린에 사용될 엘리자베스 여왕의 네 번째 흉상을 디자인했으며, 이는 1998년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2015년까지 사용되었다. 2000년에 금괴 소버린 발행이 다시 시작되었고, 이는 계속되었다.[49] 즉위 50주년을 기념하여 2002년에는 특별한 뒷면 디자인이 사용되었으며, 티모시 노드가 19세기 "방패 뒷면" 소버린을 연상시키는 방패 위 왕실 문장을 개작했다.[49] 2005년과 2012년(후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에는 조지 앤 드래곤 디자인의 해석이 있었으며, 전자는 노드, 후자는 폴 데이가 디자인했다. 데이의 디자인은 주빌리를 기념하는 당일 주조 소버린에 사용되었다. 2009년에는 피스트루치 디자인을 더 잘 포착하기 위해 조지 3세 시대 도구를 사용하여 뒷면을 다시 조각했다.[49]
조디 클라크가 디자인한 여왕의 새로운 초상화는 2015년에 도입되었으며, 새로운 흉상이 있는 소버린이 일부 발행되었다. 가장 최근 특별 디자인은 2016년과 2017년에 수집가만을 위한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90세 생일을 기념하는 2016년 수집가용 주화는 제임스 버틀러가 디자인한 앞면에 1년 한정 초상화가 있다. 2017년 수집가용 주화는 현대 소버린 200주년을 기념하여 가터 벨트와 모토가 있는 피스트루치의 1817년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또한 피에드포르가 주조되었고, 관례적인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란트리산트에서 주조된 금괴 소버린에는 숫자 200이 있는 은밀한 표시가 주어졌다.[49] 2022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플래티넘 주빌리를 기념하기 위해 노드의 왕실 문장을 해석한 뒷면 디자인이 사용되었다.[49]
2022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이후, 왕립 조폐국은 새로운 국왕 찰스 3세를 앞면에, 엘리자베스를 기리고 그녀의 긴 통치를 기념하기 위해 클라크가 디자인한 왕실 문장을 묘사한 소버린을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2023년 5월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위해 왕립 조폐국은 피스트루치 뒷면과 함께 왕의 왕관을 쓴 흉상을 보여주는 소버린을 발행했다. 2022년에 처음 발행된 왕관을 쓴 흉상과 왕관을 쓰지 않은 흉상은 모두 마틴 제닝스가 디자인했다.[49] 2024년에는 제닝스의 왕관을 쓰지 않은 찰스 초상화가 프루프로 주조된 5개 소버린 액면가(쿼터 소버린에서 5파운드 주화까지) 각각의 피스트루치 뒷면과 짝을 이루었다.[49]
2024년, 왕립 조폐국은 2026년부터 주조되는 소버린이 전통적인 노란색 크라운 골드 색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구리 양이 더 많아 로즈 골드와 유사한 현재 합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2025년 소버린 중 일부는 피스트루치 뒷면을, 다른 일부는 200년 전에 처음 발행된 멀렌의 왕실 문장 뒷면을 가질 것이다. 또한 2024년 11월에 발행될 소버린의 은색 변형도 발표되었으며, 이 주화는 금 소버린과 동일한 크기와 무게로 주조될 것이다.[49]
7. 1. 앞면
연도 | 국왕 | 앞면 디자인 | 뒷면 디자인 | 비고 |
---|---|---|---|---|
1817 - 1820 | 조지 3세 | 월계관을 쓴 초상 |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49] | |
1820 - 1825 | 조지 4세 | 월계관을 쓴 초상 |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
1825 - 1830 | 월계관이 없는 초상 | 왕관을 쓴 방패에 그려진 문장 | ||
1831 - 1837 | 윌리엄 4세 | 월계관이 없는 초상 | 왕관을 쓴 방패에 그려진 문장 | |
1838 - 1874 | 빅토리아 여왕 | 영헤드 | 왕관을 쓴 방패에 그려진 문장 | |
1871 - 1885 | 영헤드 |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1863 - 74년 주조된 금화에는 각인 번호 추가 | |
1887 - 1901 | 주빌리 헤드 (1887-1892), 올드 헤드 (1893-1901) |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
1902 - 1910 | 에드워드 7세 | 월계관이 없는 초상 |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
1911 - 1925 | 조지 5세 | 월계관이 없는 초상 |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
1937 | 조지 6세 | 월계관이 없는 초상 |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프루프화만 발행 |
1957 - 현재 | 엘리자베스 2세 | 월계관을 쓴 초상 (1957-1968), 티아라를 쓴 초상 (1974-1984), 왕관을 쓴 초상 (1985-1988) |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1989년 프루프화는 옛 소버린 금화 도안 복각 (옥좌의 여왕) |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로 영국과 하노버 간의 개인 연합이 종식되면서 소브린의 양면을 모두 변경해야 했다. 하노버의 살리카법에 따라 여성은 하노버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와이온은 앞면에 조각할 여왕의 "젊은 머리" 초상을 디자인하고 조각했으며, 메를렌은 화환 안의 왕실 문장을 묘사한 뒷면을 조각했으며, 디자인에도 일부 참여했을 것이다. 새로운 주화는 1838년 2월 26일에 승인되었다.
와이온의 빅토리아 여왕 "젊은 머리"는 1838년부터 1887년까지 주조되었으며, 조셉 뵘의 주빌리 머리로 대체되었다. 주빌리 헤드는 비판을 받았고 1893년에는 토마스 브록의 올드 헤드로 대체되었다.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으로 조지 윌리엄 드 사울레스가 디자인한 에드워드 7세의 새로운 앞면이 1902년에 제작되었다. 1910년 에드워드 7세가 사망하면서 버트럼 매켄널이 디자인한 조지 5세의 새로운 앞면이 필요하게 되었다.
1979년부터 소브린은 금괴 시장을 위한 주화로 발행되었지만, 수집가를 위해 프루프 상태로 왕립 조폐국에서 주조되었으며, 매년 발행되었다. 1985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Machin 초상화가 라파엘 마클루프의 초상화로 교체되었다. 1989년에는 헨리 7세의 소버린 500주년을 기념하는 소버린이 발행되었다. 버나드 신달이 디자인한 이 주화는 엘리자베스가 왕좌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안 랭크-브로드리는 1998년부터 2015년까지 사용될 엘리자베스 여왕의 네 번째 흉상을 디자인했다. 조디 클라크가 디자인한 여왕의 새로운 초상화는 2015년에 도입되었다. 2016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90세 생일을 기념하여 제임스 버틀러가 디자인한 1년 한정 초상화가 수집가용 주화에 사용되었다.
2022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이후, 왕립 조폐국은 찰스 3세를 앞면에, 엘리자베스 2세를 기리기 위해 클라크가 디자인한 왕실 문장을 묘사한 소버린을 발행한다고 발표했다. 2023년 5월 찰스 3세의 대관식을 위해 왕립 조폐국은 왕의 왕관을 쓴 흉상을 보여주는 소버린을 발행했다. 2022년에 처음 발행된 왕관을 쓴 흉상과 왕관을 쓰지 않은 흉상은 모두 마틴 제닝스가 디자인했다. 2024년에는 제닝스의 왕관을 쓰지 않은 찰스의 초상화가 프루프로 주조된 5개의 소버린 액면가(쿼터 소버린에서 5파운드 주화까지) 각각의 피스트루치 뒷면과 짝을 이루었다.
7. 2. 뒷면
소브린 금화 뒷면에는 주로 말을 탄 성 조지가 용을 무찌르는 모습이 새겨졌다. 성 조지는 투구를 쓰고 망토를 두른 채 칼을 들고 용과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 디자인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엘긴 대리석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초기에는 성 조지가 부러진 창을 들고 있었으나, 이후 칼로 바뀌었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 즉위 후, 영국과 하노버 간의 개인 연합이 종료되면서 소브린 뒷면 디자인도 변경되었다. 살리카법에 따라 여성이 하노버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와이언은 앞면에 조각할 여왕의 "젊은 머리" 초상을 디자인하고 조각했으며, 메를렌은 화환 안의 왕실 문장을 묘사한 뒷면을 조각했으며, 디자인에도 일부 참여했을 것이다. 새로운 주화는 1838년 2월 26일에 승인되었으며, 1840년과 1867년을 제외하고 "방패 뒷면" 소브린은 1838년부터 1874년까지 런던의 왕립 조폐국에서 매년 주조되었다.[49] 1863년부터 1874년 사이에 런던에서 주조된 방패 디자인 소브린에는 방패 아래에 작은 숫자가 표시되어 사용된 주화 다이를 나타냈다. 숫자가 사용된 이유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널리 알려진 이론으로는 다이의 마모를 추적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49]
조지 프레데릭 앤설은 1870년 저서 『왕립 조폐국, 그 작동 방식, 운영 및 작업 완전하고 실용적으로 설명』에서 "뒷면 다이는 인식된 장치 외에도 작은 숫자를 표시하도록 제작되어 어떤 주조 프레스에서, 그리고 어떤 특정 날에 번호가 매겨진 다이가 사용되었는지, 잘못된 작업을 개인에게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49]
1871년, 조폐국 부국장 찰스 윌리엄 프레멘틀은 주화의 미화를 추진하기 위해 피스트루치의 성 조지와 용 디자인을 소브린에 복원했다.[49] 성 조지의 복귀는 여왕의 승인을 받았으며, 1871년 1월 14일 각의 명령에 의해 승인되었다. 두 디자인은 1871년부터 1874년까지 런던에서 나란히 주조되었으며, 1887년까지 호주 지점에서 주조되었으며, 그 후에는 피스트루치 디자인만 사용되었다.[49] 성인은 1887년에 거의 주조되지 않은 2파운드 및 5파운드 주화로 돌아왔고, 1893년에는 하프 소브린에 배치되었다.[49]
즉위 50주년을 기념하여 2002년에는 특별한 뒷면 디자인이 사용되었으며, 티모시 노드가 19세기 "방패 뒷면" 소버린을 연상시키는 방패 위의 왕실 문장을 개작했다.[49] 2005년과 2012년(후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에는 성 조지와 용 디자인의 해석이 있었으며, 전자는 노드, 후자는 폴 데이가 디자인했다. 데이의 디자인은 주빌리를 기념하는 당일 주조 소버린에 사용되었다. 2009년에는 피스트루치의 디자인을 더 잘 포착하기 위해 조지 3세 시대의 도구를 사용하여 뒷면을 다시 조각했다.[49]
2017년 수집가용 주화는 현대 소버린 200주년을 기념하여 가터 벨트와 모토가 있는 피스트루치의 1817년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돌아갔다. 또한 피에드포르가 주조되었고, 관례적인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란트리산트에서 주조된 금괴 소버린에는 숫자 200이 있는 은밀한 표시가 주어졌다.[49] 2022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플래티넘 주빌리를 기념하기 위해 노드의 왕실 문장을 해석한 뒷면 디자인이 사용되었다.[49]
2022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이후, 왕립 조폐국은 새로운 국왕 찰스 3세를 앞면에, 엘리자베스 2세를 기리고 그녀의 긴 통치를 기념하기 위해 클라크가 디자인한 왕실 문장을 묘사한 소버린을 발행한다고 발표했다.[49]
7. 3. 주조소
1838년부터 1874년까지 "방패 뒷면" 소브린은 런던의 왕립 조폐국에서 매년 주조되었다(1840년과 1867년 제외).[4] 1863년부터 1874년 사이에 런던에서 주조된 방패 디자인 소브린에는 방패 아래에 작은 숫자가 표시되어 사용된 주화 다이를 나타냈다.[4] 숫자가 사용된 이유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다이의 마모를 추적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이론이 널리 알려져 있다.[4]조지 프레데릭 앤설은 1870년 저서 『왕립 조폐국, 그 작동 방식, 운영 및 작업 완전하고 실용적으로 설명』에서 "뒷면 다이는 인식된 장치 외에도 작은 숫자를 표시하도록 제작되어 어떤 주조 프레스에서, 그리고 어떤 특정 날에 번호가 매겨진 다이가 사용되었는지, 잘못된 작업을 개인에게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4]
1882년 왕립 조폐국이 재건되었을 때, 다른 조폐국으로 이전하는 대신 개보수를 위해 생산을 중단하기로 한 결정적인 요인은 잉글랜드 은행의 보고서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소브린 재고가 있으며, 런던에서 1년 동안 주조할 수 없더라도 아무런 해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4]
소브린은 영국 본국뿐만 아니라 영국 식민지에서도 널리 유통되었기 때문에 런던 왕립 조폐국 외에 다음 장소에서도 주조되었다. 이 동전에는 주조소를 나타내는 민트 마크가 새겨져 있어 식별을 용이하게 한다.
8. 소버린 금화의 종류
1989년 이후 소버린의 다양한 디자인은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도록 고안되었으며, 쿼터 소버린에서 5 소버린 조각에 이르기까지 소버린을 기반으로 한 다른 금화도 마찬가지이다.[20] 소버린은 유통 주화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패션으로도 자리 잡았다. 19세기에는 일부 남성이 소버린을 회중 시계 체인에 걸었고 (정직의 표시로 여겨짐),[21] 다른 사람들은 체인에 연결된 작은 지갑에 소버린을 넣고 다녔다. 여성도 소버린을 팔찌나 귀걸이로 착용했다.[21] 21세기에는 소버린 링을 착용하는 것이 채브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22]
경매소는 이전 시대의 희귀한 소버린을 취급하며, 전문 딜러도 마찬가지이다.[20] 희귀한 소버린으로는 1937년 에드워드 8세와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소버린, 1819년 소버린,[20] 윌리엄 와이온의 이니셜 대신 앞면에 "827"이라는 숫자가 있는 1863년 조각 등이 있다. 1879년 소버린은 런던에서 소량만 주조되었으며, 남아 있는 것들은 마모된 경우가 많다. 애들레이드 파운드는 24,768개만 주조되었으며, 남아 있는 표본은 희귀하고 매우 귀중하다.
스트라이크-온-더-데이 주화는 기념 행사의 특정 날에 왕립 조폐국에서 주조된 한정판 주화로, 대부분 소버린 주화이다.[24] 이 주화는 미사용 상태이거나 무광 마감으로 발행된다. 스트라이크-온-더-데이 소버린 주화는 종종 일반 엣지로 주조되어 다른 톱니형 엣지의 소버린 주화와 구별된다.[25]
번호 | 날짜 | 행사 | 디자인 | 디자이너 | 발행량 |
---|---|---|---|---|---|
1 | 2012년 6월 2일 | 엘리자베스 2세 다이아몬드 주빌리 | 현대식 성 조지와 용 | 폴 데이 | 2,012[26] |
2 | 2013년 6월 2일 | 엘리자베스 2세 다이아몬드 대관식 | 성 조지와 용 | 베네데토 피스트루치 | 2,013[27] |
3 | 2013년 7월 22일 | 웨일스 공자 조지 탄생 | 2,013[28] | ||
4 | 2014년 7월 22일 | 웨일스 공자 조지 1번째 생일 | 398[29] | ||
5 | 2015년 5월 2일 | 웨일스 공주 샬롯 탄생 | 743[30] | ||
6 | 2015년 7월 22일 | 웨일스 공자 조지 2번째 생일 | 400[31] | ||
7 | 2016년 6월 11일 | 엘리자베스 2세 90번째 생일 | 499[32] | ||
8 | 2017년 2월 6일 | 엘리자베스 2세 사파이어 주빌리 | 739[33] | ||
9 | 2017년 7월 1일 | 성 조지와 용 디자인 200주년 기념 | 1,817[34] | ||
10 | 2017년 11월 20일 | 엘리자베스 2세 플래티넘 결혼 기념일 | 744[35] | ||
11 | 2018년 6월 2일 | 엘리자베스 2세 사파이어 대관식 | 650[36] | ||
12 | 2018년 7월 22일 | 웨일스 공자 조지 5번째 생일 | 750[37] | ||
13 | 2019년 5월 24일 | 빅토리아 200주년 기념 | 649[38] | ||
14 | 2019년 8월 26일 | 알버트 공 200주년 기념 | 650[39] | ||
15 | 2020년 1월 31일 | 유럽 연합 탈퇴 | 1,500[40] | ||
16 | 2020년 5월 8일 | 유럽 전승 75주년 | 750[41] | ||
17 | 2020년 8월 15일 | 일본 항복 75주년 | 750[42] | ||
18 | 2021년 6월 12일 | 엘리자베스 2세 95번째 생일 | 1,195[43] | ||
19 | 2022년 2월 6일 | 엘리자베스 2세 플래티넘 주빌리 | 왕실 문장 | 티모시 노드 | 1,200[44] |
20 | 2023년 5월 6일 | 찰스 3세 대관식 | 성 조지와 용 | 베네데토 피스트루치 | 1,250[45] |
21 | 2023년 11월 14일 | 찰스 3세 75번째 생일 | 750[46] | ||
22 | 2024년 6월 6일 | D-Day 80주년 | 1,000[47] |
새로운 소버린 금화는 앞면에 국왕의 옆모습을, 뒷면에는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퇴치하는 도안을 새겼으며, 이 도안은 이후 소버린 금화의 대표적인 도안이 되었다. 이 외에도 방패에 그려진 문장 도안의 코인이 주조되던 시기도 있었다. 당시 영국 동전에는 이 금화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동전에 액면 표시는 없었으며, 그 크기와 무게로 액면을 나타냈다.
- 조지 3세의 초상[49]
- 1817 - 1820년 앞면: 월계관을 쓴 초상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조지 4세의 초상
- 1820 - 1825년 앞면: 월계관을 쓴 초상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1825 - 1830년 앞면: 월계관이 없는 초상 뒷면: 왕관을 쓴 방패에 그려진 문장
- 윌리엄 4세의 초상
- 1831 - 1837년 앞면: 월계관이 없는 초상 뒷면: 왕관을 쓴 방패에 그려진 문장
-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
- 1838 - 1874년 앞면: 영헤드 뒷면: 왕관을 쓴 방패에 그려진 문장
- 1871 - 1885년 앞면: 영헤드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이 영헤드 타입의 금화는 수많은 각인으로 주조되었으며, 1863 - 74년 사이에 주조된 것에는 각각의 각인 번호가 추가되었다.
- 1887 - 1892년 앞면: 주빌리 헤드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1893 - 1901년 앞면: 올드 헤드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에드워드 7세의 초상
- 1902 - 1910년 앞면: 월계관이 없는 초상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조지 5세의 초상
- 1911 - 1925년 앞면: 월계관이 없는 초상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조지 6세의 초상
- 1937년 프루프화만 앞면: 월계관이 없는 초상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
- 1957 - 1968년 앞면: 월계관을 쓴 초상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1974 - 1984년 앞면: 티아라를 쓴 초상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1985 - 1988년 앞면: 왕관을 쓴 초상 뒷면: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 1989년 프루프화만 옛 소버린 금화의 도안을 복각(옥좌의 여왕)
유사한 금화로는 반 소버린(10실링), 2파운드, 5파운드 금화가 있지만, 2파운드나 5파운드 금화를 2소버린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또한, 1974년 이후에는 완전한 지금형 금화로서 현재까지 발행이 이어지고 있으며, 액면가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1파운드의 법정 화폐이다(실제로는 금지금 가격과 연동된 가격으로 거래된다).
9. 문화 속 소버린 금화
1989년 이후 소버린의 다양한 디자인은 수집가들의 관심을 끌도록 고안되었으며, 쿼터 소버린에서 5 소버린 조각에 이르기까지 소버린을 기반으로 한 다른 금화도 마찬가지이다. 왕립 조폐국은 예전처럼 잉글랜드 은행을 통해 생산품을 유통하는 대신 금 소버린을 대중에게 직접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20] 소버린은 법정 통화이므로 영국 거주자의 자본 이득세가 면제된다.
소버린은 유통 주화뿐만 아니라 패션으로도 자리 잡았다. 19세기에는 일부 남성이 소버린을 회중 시계 체인에 걸었고 (정직의 표시로 여겨짐), 다른 사람들은 체인에 연결된 작은 지갑에 소버린을 넣고 다녔다.[21] 이러한 관습은 손목시계가 대중화되면서 사라졌다. 여성도 소버린을 팔찌나 귀걸이로 착용했다. 21세기에는 소버린 링을 착용하는 것이 채브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22]
블랙 로드로 알려진 국사관(Gentleman or Lady Usher of the Black Rod)이 직무의 상징으로 들고 다니며 영국 하원의 문을 의회 개원식 동안 두드리는 지팡이의 한쪽 끝에는 소버린이 박혀 있다.[23]
경매소는 이전 시대의 희귀한 소버린을 취급하며, 전문 딜러도 마찬가지이다. 1937년 에드워드 8세와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소버린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의 희귀한 연도로는 1819년이 있으며, 윌리엄 와이온의 이니셜 대신 앞면에 "827"이라는 숫자가 있는 1863년 조각도 있다. 827은 일종의 실험에 사용된 잉곳 번호일 가능성이 높지만, 연구를 통해 이것이 결정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다. 1879년 소버린은 런던에서 소량만 주조되었으며, 남아 있는 것들은 마모된 경우가 많다. 애들레이드 파운드는 24,768개만 주조되었으며, 남아 있는 표본은 희귀하고 매우 귀중하다. 소버린 자체도 기념의 대상이 되었다. 2005년, 퍼스 조폐국은 1871년 이전 시드니 조폐국 소버린의 뒷면 디자인을 재현한 액면가 호주 달러 25달러의 금화를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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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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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화의 표의 초상은 전통적으로 군주가 교대하면 방향도 변해, 조지 3세의 초상은 향해서 우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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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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