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시드니 세인트 메리 대성당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시드니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186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2000년에 완공된 대성당으로, 2008년 세계청년대회 개최지였다. 1788년 영국에서 온 가톨릭 신자들이 예배당 건설을 시작했으며, 화재로 소실된 후 윌리엄 워델의 설계로 재건되었다. 1930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바실리카로 인정받았고, 2000년 첨탑이 추가되었다. 1821년 맥쿼리 총독이 초석을 놓았으며, 1865년 화재로 소실된 후 윌리엄 워델의 설계로 현재의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대성당은 19세기 고딕 리바이벌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여러 예술품과 보물, 파이프 오르간, 두 개의 성가대가 있다. 2004년 뉴사우스웨일스주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지하 묘지에는 호주 가톨릭 교회의 주요 인물들이 매장되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오스트레일리아의 로마 가톨릭 대성당 -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멜버른)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위치한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은 1848년 건설이 시작되어 1897년 봉헌되었고 1939년에 완공된 고딕 리바이벌 양식의 로마 가톨릭 대성당으로, 1974년 소 바실리카로 지정되었으며 합창단, 오르간, 복원된 종을 갖추고 있다.
  • 1868년 설립 - 캘리포니아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는 1868년에 설립된 미국의 공립 대학교 시스템으로, 10개의 캠퍼스와 법과대학원을 포함하며, 학문 및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 1868년 설립 - 육군사관학교 (일본)
    육군사관학교 (일본)는 1868년 교토에 설립되어 프랑스식, 프로이센식 교육 제도를 거쳐 장교를 양성하다가 1945년 폐지되었으며, 현재는 일본 방위대학교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시드니 세인트 메리 대성당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기본 정보
정식 명칭'원죄 없이 잉태되신 하느님의 어머니, 그리스도인의 도움, 오스트레일리아의 수호자 대성당 교회'
다른 이름성 마리아 대성당 성당
종류작은 바실리카 (1932년부터)
상태대성당 (1835년부터)
예배당 (1821–1835)
국가 성지
상세 정보
위치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주소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하이드 파크에서 바라본 성 마리아 대성당의 모습
밤의 성 마리아 대성당
웹사이트https://stmaryscathedral.org.au/
역사
이전 이름성 마리아 예배당
기공1821년 (성 마리아 예배당)
착공1868년 (현재 대성당)
설립 날짜1821년 10월 21일
헌납 날짜1865년 6월 29일
축성 날짜1882년 9월 8일
사건화재로 소실 (1865년 6월 29일)
완공1928년 (본당 완공)
2000년 (첨탑 추가)
유물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1급 유물 전시, 기타 비공개 유물
건축
건축가윌리엄 워델 (현재 건물)
어거스터스 웰비 퓨진 (최초 건물 확장)
건축 양식예배당 (최초 건물)
대성당 (현재 건물)
건축 스타일기하학적 장식 고딕 양식
재료시드니 사암
오아마루 석재
대리석
설화 석고
모루야 화강암
길이107m
본당 너비24.3m
본당 높이22.5m
첨탑 수2개
첨탑 높이74.6m
종 수14개
종 무게34롱톤 1쿼터 3파운드
조직
교구성 마리아
지구시티 지구
대교구시드니 관구 대교구
관구시드니
대주교앤서니 피셔 (도미니코회)
보좌 주교테렌스 브래디
리처드 움버스
대니 메이거
학장도널드 리처드슨
총장크리스 메니 (평신도 총장)
보좌 사제브렌든 퍼셀
임마누엘 루베가
레위 바라캇
디렉터다니엘 저스틴
오르간 연주자사이먼 니에민스키 (음악 부감독)
서버 길드성 스테파노 대성당
문화재 지정
문화재 지정뉴사우스웨일스 주 문화유산 등록
공식 명칭성 마리아 가톨릭 대성당 및 참사회; 성 마리아 대성당
종류주 문화유산 (복합 / 그룹)
지정 날짜2004년 9월 3일
지정 번호'1709'
유형대성당
분류종교
건축가제이콥 인더 (참사회)

2. 역사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호주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로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68년에 짓기 시작하여 2000년에 완공되었으며, 2008년에는 제23차 세계청년대회 개최지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 9월 30일 기준으로, 대성당 부지는 호주 가톨릭 공동체를 위한 예배 장소로 사용된 가장 오래된 장소이다. 이곳은 호주 최초의 가톨릭 교회였던 오리지널 세인트 메리 대성당이 있던 자리이며, 호주 가톨릭 교회에 처음으로 부지를 기증받은 곳이다. 또한 가톨릭 성직자의 가장 오래된 영구 거주지이며 호주 가톨릭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3]

대성당은 존 테리 신부, 존 폴딩 대주교, 로저 본 대주교, 모란 추기경, 켈리 대주교 등 호주 가톨릭 교회사에서 중요한 인물들과 관련이 있다. 또한 맥쿼리 총독, 볼크, 그린웨이, 푸진, 윌리엄 워델 등 19세기와 20세기의 중요한 인물들과도 관련이 있다.[3] 대성당은 시드니 대주교의 관저이자 호주 모교구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19세기 영국 고딕 양식의 교회 건축물로서 중요한 건축적 의미를 지니는 대성당의 동쪽에 위치한 챕터 홀은 부지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이곳은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학교 건물일 가능성이 있으며, 푸진이 설계에 직접적으로 참여했다는 중요한 증거이다.[3][25]

1930년 비오 9세에 의해 교회당보다 상위 개념인 바실리카로 승격되었다.[11] 2008년 6월에는 베네딕토 16세가 공식 방문했으며, 2023년 12월 14일부터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독교 축제 시즌 "크리스마스의 12일"이 열렸다.[27]

2. 1. 초기 역사 (1788년 ~ 1865년)

1788년 시드니는 영국에서 이송된 죄수들을 위한 정착지로 설립되었으며, 초기에는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종교적 지원이 부족했다.[4] 영국 성공회 채플린인 리처드 존슨 목사가 식민지의 첫 번째 채플린이었지만, 가톨릭 신자였던 죄수들과 정착민들의 종교적 필요를 위한 조항은 마련되지 않았다. 아일랜드 가톨릭 신부인 오플린 신부가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로 왔지만, 정부 승인 없이 도착하여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1820년 존 테리 신부가 호주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공식적으로 사역하기 위해 시드니에 도착했다.[4] 테리 신부는 도착한 날, 시드니 시 위로 쌍둥이 첨탑을 세운,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된 황금색 돌로 된 거대한 교회의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4] 테리 신부는 달링 하버 방향, 시드니 서쪽에 교회 부지를 요청했지만, 래클런 맥쿼리 총독의 여러 건축 프로젝트에 인접한 동쪽 부지를 할당받았다.[5] 이 부지는 현재 하이드 파크로, 가로수길과 아치볼드 분수가 있다.

1821년 10월 29일 맥쿼리 총독이 최초의 세인트 메리 성당 초석을 놓았다.[5] 제임스 뎀프시가 설계한 이 교회는 뾰족한 창문과 첨탑으로 네오 고딕 양식의 유행에 경의를 표하는 단순한 십자형 석조 구조였다.

최초의 세인트 메리 성당, 하이드 파크, 1840년대


1835년, 존 폴딩이 호주 로마 가톨릭 교회의 초대 대주교가 되었다.[6] 1851년에는 어거스터스 웰비 푸진의 설계에 따라 교회가 개조되었다. 1864년 5월 25일 테리 신부가 사망했고, 1865년 6월 29일 화재로 최초의 성당이 파괴되었다.

1860년대 초 어거스터스 푸진의 설계에 따라 확장된 최초의 세인트 메리 대성당

2. 2. 재건과 확장 (1865년 ~ 1928년)

1865년 화재 이후, 윌리엄 워델의 설계로 현재의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워델은 어거스터스 웰비 푸진의 제자로, 고딕 리바이벌 양식의 건축가였다. 1868년 존 베데 파울딩 대주교는 현재 대성당의 초석을 놓았다.[7] 이 성당은 넓은 본당과 통로, 세 개의 탑을 갖춘 거대하고 야심 찬 구조물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파울딩은 1877년에 사망하여 성당이 사용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5년 후인 1882년 9월 8일, 그의 후임인 로저 본 대주교가 봉헌 미사를 주재했다. 본 대주교는 그날 처음으로 울린 종소리를 헌정했다.

이 단계의 대성당 건축가는 존 영이었다. 모란 추기경의 지휘 아래 공사가 진행되었다. 1913년 켈리 대주교는 본당의 초석을 놓았으며, 이는 헤네시, 헤네시 앤 컴퍼니 건축가들의 감독하에 계속되었다. 1928년 켈리는 제29회 국제 성체 숭배 회의 시작에 맞춰 본당을 봉헌했다. 내부 벽의 시드니 사암의 색상과 질감의 약간의 차이는 건물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 사이의 구분을 나타낸다.[8]

2. 3. 현대 (1928년 ~ 현재)

1930년 비오 9세는 세인트 메리 대성당을 교회당보다 상위 개념인 바실리카로 승격시켰다.[11] 2000년에는 윌리엄 워델이 제안했던 첨탑이 완공되었다.[11] 2008년에는 2008년 세계 청소년의 날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방문하여 호주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 학대에 대해 역사적인 사과를 하였다. 이들 중 107명은 법원에 기소되었다.[12] 2014년 12월 16일, 앤서니 피셔 대주교는 2014년 시드니 인질 사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를 집전했다.[13] 12월 19일 아침에는 토리 존슨과 카트리나 도슨을 위한 추모 예배가 열렸으며, 피터 코스그로브 총독, 당시 통신부 장관 말콤 턴불, 아서 시노디노스 상원의원, 마이크 베어드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 당시 교통부 장관 글래디스 베레지클리안이 참석했다.[14][15][16] 2023년 12월 14일부터 크리스마스 당일까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의 12일" 행사가 열렸다.[27]

3. 건축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19세기 고딕 리바이벌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웅장하고 섬세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최초의 세인트 메리 성당 초석은 1821년 래클런 맥쿼리 총독에 의해 놓였다. 제임스 뎀프시가 지은 이 교회는 네오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은 단순한 십자형 석조 구조였다. 1865년 화재로 교회가 파괴되자, 당시 부제였던 맥엔로 신부는 윌리엄 워델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현재 대성당 건축을 시작했다.

존 베데 파울딩 대주교는 1868년에 현재 대성당의 초석을 놓았다.[7] 1882년 9월 8일, 그의 후임인 로저 본 대주교가 봉헌 미사를 주재했다. 1928년에는 켈리 대주교가 본당을 봉헌했다. 1939년 4월 조지프 라이언스 총리가 사망한 후, 그의 유해는 데번포트 (태즈메이니아)로 옮겨지기 전 며칠 동안 성 마리아 대성당에 안치되었다.[9] 2000년에는 정부 보조금 지원으로 첨탑이 건설되었다.[10]

내부 벽의 시드니 사암 색상과 질감의 약간의 차이는 건물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 사이의 구분을 나타낸다.

수년 동안 정면의 두 개의 사각형 탑은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3. 1. 개요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19세기 고딕 리바이벌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웅장하고 섬세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최초의 세인트 메리 성당 초석은 1821년 래클런 맥쿼리 총독에 의해 놓였다. 제임스 뎀프시가 지은 이 교회는 네오 고딕 양식의 영향을 받은 단순한 십자형 석조 구조였다. 1865년 화재로 교회가 파괴되자, 당시 부제였던 맥엔로 신부는 윌리엄 워델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현재 대성당 건축을 시작했다.

존 베데 파울딩 대주교는 1868년에 현재 대성당의 초석을 놓았다.[7] 1882년 9월 8일, 그의 후임인 로저 본 대주교가 봉헌 미사를 주재했다. 1928년에는 켈리 대주교가 본당을 봉헌했다. 2000년에는 정부 보조금 지원으로 첨탑이 건설되었다.[10]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다른 대형 대성당들과 달리 일반적인 동서 방향이 아닌 남북 방향으로 건축되었다. 전례상의 동쪽 끝은 북쪽에 있으며 서쪽 정면은 남쪽에 있다.

건축 양식은 19세기 고딕 리바이벌 양식의 전형적인 예로, 기하학적 장식 고딕 양식이다. 링컨 대성당 양식을 상당히 충실히 따르고 있다.

3. 2. 양식

북서쪽에서 바라본 대성당


북쪽을 바라본 중앙 본당


성가대석 창문은 하늘에 보좌에 앉은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환상을 묘사한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의 건축 양식은 19세기 고딕 리바이벌 양식의 전형적인 예로, 케임브리지 캠든 협회의 저널, 존 러스킨의 저술, 어거스터스 웰비 푸진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았다. 윌리엄 워델의 계획이 실현되었을 때, 세인트 앤드루 대성당보다 훨씬 크고 웅장하며 엄숙한 구조가 되었다.

대성당의 양식은 기하학적 장식 고딕이며, 13세기 말 잉글랜드 교회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특히 링컨 대성당의 양식을 충실히 따랐으며, 거대한 성가대석 창문의 트레이서리는 링컨 대성당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6]

하이드 파크에서 바라본 건물의 측면은 뾰족 아치와 단순한 트레이서리로 이루어진 고딕 양식 창문들이 규칙적으로 이어져 있다. 상부 지붕선은 뚫린 파라펫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상부 창문 위에는 장식적인 박공이 있고, 그 위로 프랑스 양식의 작은 채광창이 많은 가파른 경사의 슬레이트 지붕이 솟아 있다. 측랑의 지붕선은 플라잉 버트레스를 고측창에 지지하는 튼튼한 부벽 사이에 조각된 보스로 장식되어 있다. 하이드 파크를 마주하고 있는 트랜셉트는 프랑스 대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공공 입구의 역할을 하며, 조각된 세부 사항이 완성된 풍성하게 장식된 문이 있다. 잎 모양의 보스에는 워라타 등 뉴사우스웨일스의 꽃 문장과 같은 호주 자생 식물이 포함되어 있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일반적으로 하이드 파크를 통해 도시에서 도보로 접근하며, 트랜셉트 정면과 중앙 탑이 아치볼드 분수 뒤로 솟아 있다.

입구 파사드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서쪽 정면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수직 및 수평 특징의 균형, 세 개의 거대한 포털 및 중앙 로즈 창이 특징이다. 각 트랜셉트에는 로즈 창이 두 개 더 있다. 그러나 프랑스 파사드는 리치필드 대성당과 같은 쌍둥이 석조 첨탑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건물 착공 후 132년이 지나서야 설치되었다.

종을 보관하는 교차 탑은 꽤 튼튼하지만, 키가 큰 크로켓 핀네클을 제공하여 실루엣이 우아하다. 완성된 정면의 첨탑은 컬리지 스트리트를 따라 대성당의 전망을 향상시킨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호주에서 세 번째로 높은 교회이다.

단면에서 대성당은 높은 중앙 본당과 양쪽에 통로가 있는 대부분의 대형 교회와 전형적으로 유사하며, 이는 본당을 지지하고 내부 주변을 통과하는 통로를 제공한다. 따라서 본당 내부는 아케이드, 갤러리, 그리고 본당을 밝히는 창문이 있는 채광창, 이렇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 대성당 다이어그램 참조

이 건물은 황금색 사암으로 지어졌으며, 외부에서는 황금빛 갈색으로 풍화되었다. 지붕은 붉은 삼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본당 지붕은 장식적인 구멍 조각으로 생동감을 더한 개방형 아치 가새 구조이다. 성가대석은 목재 아치형 천장이 있다.

측면 통로는 돌로 된 아치형 천장으로, 각 갈비뼈 천장의 중앙에는 큰 둥근 보스가 있다. 건물 내부 아치 끝에는 모두 성인들의 조각된 머리가 있다.

주 제단 뒤의 스크린은 뉴질랜드산 오아마루 석회암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었다. 그 바로 뒤에 위치한 우리 성모의 제단과 유사한 틈새에 조각상이 채워져 있다. 두 개의 큰 예배당과 두 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으며, 큰 예배당은 예수 성심 예배당과 아일랜드 성인 예배당이다. 성모 예배당의 양쪽에는 화려하게 조각된 제단과 각 틈새에 작은 조각상이 있는 요셉과 베드로 예배당이 있다.

3. 3. 외부

하이드 파크에서 바라본 성 메리 대성당


하이드 파크 쪽에서 바라보면, 뾰족한 아치와 단순한 트레이서리(tracery)로 이루어진 고딕 양식 창문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건물을 마주하고 있는 트랜셉트(transept)에는 일반인들이 드나들 수 있는 출입구가 있다. 정면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영향을 받아 수직과 수평적인 특징이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세 개의 포털(portal)과 중앙의 장미 창(rose window)이 있다. 중앙 탑은 종을 보관하며, 크로켓(crocket) 핀네클(pinnacle)로 장식되어 있다. 2000년에 완공된 첨탑은 컬리지 스트리트에서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의례적인 접근로를 강조한다.[10]

3. 4. 내부

대성당은 높은 중앙 본당과 양쪽에 통로가 있어, 대부분의 대형 교회와 유사한 단면 구조를 가진다. 본당 내부는 아케이드, 갤러리, 채광창의 세 단계로 구성된다. 대성당 다이어그램 참조

건물은 황금색 사암으로 지어졌으며, 외부는 황금빛 갈색으로 풍화되었다. 지붕은 붉은 삼나무로 만들어졌고, 본당 지붕은 장식적인 구멍 조각이 있는 개방형 아치 가새 구조이다. 성가대석은 목재 아치형 천장으로 되어 있는데, 피터버러의 목재 지붕처럼 붉은색, 파란색, 금색으로 장식될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목재의 따뜻한 색상은 석조물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측면 통로는 돌로 된 아치형 천장으로, 각 갈비뼈 천장 중앙에는 큰 둥근 보스가 있다. 강단 아래 아치형 공간으로 기어 들어간 아이들은 미니어처 형태의, 일반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아름다운 조각 보스를 발견하기도 했다. 건물 내부 아치 끝에는 성인들의 조각된 머리가 있다. 고해소 근처의 조각들은 눈높이에 있어 세부 사항을 살펴볼 수 있다.

주 제단 뒤의 스크린은 뉴질랜드산 오아마루 석회암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었다. 바로 뒤에는 우리 성모의 제단과 유사한 틈새에 조각상이 채워져 있다. 두 개의 큰 예배당( 예수 성심 예배당, 아일랜드 성인 예배당)과 두 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다. 성모 예배당 양쪽에는 화려하게 조각된 제단과 각 틈새에 작은 조각상이 있는 요셉과 베드로 예배당이 있다. 1937년 멜로코사에서 깔았던 켈리 예배당 바닥의 장식 모자이크는 윌리엄 워델이 설계한 세인트 존스 칼리지 성모 예배당 모자이크 바닥과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6]

오스트레일리아의 밝은 햇빛 때문에 건축 당시 고창에 노란색 유리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유약은 수년에 걸쳐 어두워져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노란색 유약은 아래쪽 창문의 주로 파란색 스테인드글라스와 대조를 이룬다. 어두움을 상쇄하기 위해 1970년대에 건물 전체에 거의 균등한 조명을 제공하는 대대적인 조명 설비가 설치되었다. 실내는 부드러운 노란색 빛으로 밝혀지며, 이는 위쪽 창문과 스테인드글라스의 흰색 부분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의 효과와 대조된다. 설치된 조명은 일반적으로 어두운 구조 부분을 가장 밝게 비추어 고딕 양식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빛과 그림자의 패턴을 상쇄한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모두 하드만 & Co.의 작품으로, 약 50년에 걸쳐 제작되었다.[6] 약 40개의 그림 창문이 있으며, 인간의 타락, 예수 옆에 왕관을 쓰고 옥좌에 앉아 심판을 내리는 마리아(그리스도인에게 예수의 자비를 간청하는 내용), 묵주기도, 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 성인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양식면에서 창문들은 19세기 고딕 리바이벌에서 20세기 초의 좀 더 회화적이고 화려한 스타일로 변화한다.

성모자상. 바닥의 모자이크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나타낸다(부분).

4. 위치

시드니 하이드 파크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칼리지 스트리트(College Street)를 사이에 두고 하이드 파크와 마주 보고 있다.

5. 예술품 및 보물

세인트 메리 대성당에는 여러 미술 작품들과 귀중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 1885년, 모란 추기경이 파리의 L. 쇼베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유화 십자가의 길이 복도 벽에 걸려있다.[11]
  • 서쪽 익랑에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원작 피에타를 본떠 만든 대리석 복제품이 있다.
  • 조지 워싱턴 램버트가 조각한 죽은 군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무명 용사의 묘가 있다.
  • 지하 묘지에는 피터 멜로코와 그의 회사가 제작한 정교한 모자이크 바닥이 있다.
  • --
  • --
  • --
  • --
  • --
  • --
  • --
  • --
  • --

5. 1. 주요 작품

세인트 메리 대성당에는 여러 미술 작품들과 귀중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 1885년, 모란 추기경이 파리의 L. 쇼베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유화 십자가의 길이 복도 벽에 걸려있다.[11]
  • 서쪽 익랑에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원작 피에타를 본떠 만든 대리석 복제품이 있다. 이 조각품은 원래 데이비드 존스 백화점에 전시하기 위해 호주로 가져왔다가 나중에 대성당에 기증되었다.
  • 조지 워싱턴 램버트가 조각한 죽은 군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무명 용사의 묘가 있다. 이전에는 해질녘 햇빛이 닿는 지하 묘지에 있었으나, 현재는 대성당 복도로 옮겨져 일반인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 지하 묘지에는 피터 멜로코와 그의 회사가 제작한 정교한 모자이크 바닥이 있다. 이 디자인은 켈트 사본처럼 정교하게 장식된 십자가를 기본으로 하며, 창조의 날과 성모 마리아의 칭호를 보여주는 론델(rondel, 원형 장식)이 있다.
  • --
  • --
  • --
  • --
  • --
  • --
  • --
  • --
  • --

6. 음악

세인트 메리 대성당의 음악 감독은 다니엘 저스틴, 부감독은 시몬 니에민스키, 부 오르간 연주자는 도미닉 모와드, 음악 행정가는 엘레노어 테이그이다.

세인트 메리 대성당의 역대 음악 감독은 다음과 같다.

재임 기간이름
1834–1835J. 드 C. 캐번디시
1839J. A. 리드 박사
1840년경로스 박사
1841–1842아이작 네이선
1842–1843G. W. 워건
1848년경–1954년경월튼 씨[18]
1856–1870윌리엄 J. 코르드너
1870–1871 또는 1872존 T. 힐
1872–1877존 A. 델라니
1877–1878"교수" 휴즈
1879–1888토마스 P. 뱅크스
1888–1895네빌 G. 바넷
1895–1897존 A. 델라니
1907–1963해리 도킨스
1963닐 슬라르크
1964–1971에롤 스칼렛
1971–1974존 오도넬
1974–1979에롤 리-스칼렛
1979–1987개빈 티핑
1988–2022피터 니쇼 (후에 명예 오르가니스트)


6. 1. 오르간

세인트 메리 대성당에는 여러 대의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다.

  • 1841년 런던의 헨리 베빙턴이 제작한 오르간이 설치되었다. 2개의 매뉴얼과 23개의 스톱으로 구성된 이 오르간은 당시 호주에서 가장 큰 오르간이었으나, 1865년 화재로 소실되었다.[5]
  • 1942년에는 브리즈번 출신의 조셉 하웰 화이트하우스가 제작한 파이프 오르간이 본당 끝, 정문 위 갤러리에 설치되었다.
  • 1959년부터 1971년 사이에는 로널드 샤프가 성소의 트리포리움 갤러리에 전기식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했지만, 완성되지는 못했다.
  • 1999년에는 오르그 레투르노가 제작한 새로운 파이프 오르간이 서쪽 트랜셉트의 장미 창문 주변에 새로 만들어진 갤러리에 설치되었다. 이 오르간은 3개의 매뉴얼과 46개의 스톱을 갖추고 있으며, 갤러리에서 연주하는 것 외에도 바닥에 위치한 4매뉴얼 이동식 전자 콘솔을 통해 화이트하우스 오르간과 함께 연주할 수 있다.

서쪽 트랜셉트의 파이프 오르간과 장미 창문

  • 헨크 클롭이 제작한 3개의 스톱 챔버 오르간은 아일랜드 성인 예배당에 있으며, 평일 저녁 기도 반주에 사용된다.
  • 성가대석에는 로저스 디지털 오르간이 있어 매일의 합창 전례에 반주한다.
  • 지하 묘지에는 벨샴 파이프 오르간스(1985)가 제작한 오르간이 있다.

6. 2. 합창단

시드니 세인트 메리 대성당에는 두 개의 성가대가 전례를 위해 노래한다.

  • 시드니 세인트 메리 대성당 합창단(St Mary's Cathedral Choir)은 19세기 혼성 합창단으로 시작되어 1955년부터 전통적인 영국 스타일의 남성 및 소년 합창단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24명의 성가대원(소년 고음 및 알토)과 12명의 평신도 성가대원(전문 알토, 테너 및 베이스)이 있다. 이 합창단은 매일(금요일 제외) 미사와 저녁 기도를 부르며,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연속적인 음악 기관이다.[17] 이들은 그레고리오 성가, 성스러운 다성 음악, 르네상스 작곡에서 21세기 작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연주한다. 2025년부터는 소년 성가대와 함께 활동하는 여자 성가대 고음 파트가 창설될 예정이다.
  • 세인트 메리 싱어스(St Mary's Singers)는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저녁기도와 미사에서 노래하며, 다른 전례 행사와 정기적인 콘서트도 개최하는 성인 혼성 자원 봉사 합창단이다.
  • 성가대 합창단원 중 변성기가 지난 단원들은 '스칼라(Cathedral Scholars)'라는 특별한 앙상블의 일원으로서 훈련을 계속한다. 이 스칼라들은 수요일과 토요일에 저녁 기도와 미사를 부른다.

7. 종

세인트 메리 대성당의 종은 호주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런던의 화이트채플 종 주조소에서 제작된 세 개의 서로 다른 이 있었다. 첫 번째 종은 8개로 구성되었으며 1843년 8월 시드니에 도착하여 본 건물에서 떨어진 나무 종탑(현재 설교단이 있는 곳)에 설치되었다. 이 종들은 호주에서 처음으로 체인지 링잉을 위해 매달린 종이었으며 1844년 새해 첫날 처음으로 울렸다. 1865년 6월 대성당이 화재로 파괴되었을 때, 종들은 손상을 면했다. 1866년에 새로운 대성당 건설이 시작되었고, 1868년 동안 종들은 종탑에서 제거되어 현재 남서쪽 탑이 있는 새로운 탑에 설치되었다. 1881년에는 새로운 8개의 종으로 교체되었으며, 이듬해에 설치되었다(당시 화이트채플 주조소는 Mears & Stainbank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885년에는 중앙 탑(모란 탑) 건설 계약이 체결되었고, 종들은 1898년에 그곳으로 옮겨졌다.

100년 후, 완전히 새로운 종이 주문되었다. 오늘날 중앙 탑에는 12개의 종과, 종을 울릴 수 있는 사람의 수와 기술에 따라 다른 그룹의 종을 울릴 수 있도록 하는 두 개의 추가 종이 있다.[19][20] 이 종들은 1986년에 처음으로 울렸다. 1881년의 종소리에서 7개의 종은 현재 애들레이드의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르 대성당에 있는 12개의 종의 일부를 형성한다.[21][22] 옛 테너 종(모란 종)은 삼종 기도 종이 되었으며 세인트 메리 남동쪽 탑에 있다. 종들은 일요일 정식 미사 전에 정기적으로 울리고 주요 축일에 울린다. 또한 결혼식과 장례식을 위해, 그리고 중요한 시민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약속에 따라 울린다. 세인트 메리의 종소리는 호주 연방 100주년을 기념하는 종소리를 이끌었다. 또한 1월 시드니의 도메인 심포니 콘서트의 피날레의 일부로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과 함께 울린다. 종을 울리고 관리하는 것은 호주 및 뉴질랜드 종 울림 협회 회원인 세인트 메리 바실리카 체인지 링어 협회에 위임된다.[23][24]

8. 문화유산 등재

세인트 메리 대성당은 2004년 9월 3일 뉴사우스웨일스주 문화유산 등재 목록에 등재되었다.[3]

이 장소는 뉴사우스웨일스의 문화 또는 자연사의 과정이나 패턴을 보여주는 데 중요하며, 다음과 같은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다.


  • 호주 가톨릭 공동체를 위한 예배 장소로 사용된 가장 오래된 장소이다.[3]
  • 1865년 화재로 소실된 호주 최초의 가톨릭 교회인 오리지널 세인트 메리 대성당이 있던 자리이다.[3]
  • 호주 가톨릭 교회에 처음으로 부지를 기증받은 곳이며, 맥쿼리 총독이 최초의 세인트 메리 대성당의 초석을 놓은 장소로서 가톨릭 교회와 호주 국가의 화해를 상징한다.[3]
  • 호주 가톨릭 성직자의 가장 오래된 영구 거주지이며, 호주 가톨릭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3]
  • 1928년과 1954년에 국제 성체 대회가 열린 장소이다.[3]
  • 호주를 방문한 최초의 교황이 미사를 집전한 곳이다.[3]


대성당 챕터 홀은 부지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학교 건물일 가능성이 있다.[25]
  • 건축 이후 학교와 다목적 강당으로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초기 공공 회의 장소로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3][26]

9. 갤러리



위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있는 성모 예배당, 후진에는 영향력 있는 여성 성인 조각상

10. 지하 묘지 매장 인물


  • 존 베드 폴딩
  • 로저 베드 본
  • 패트릭 프랜시스 모란
  • 마이클 켈리
  • 노먼 토마스 길로이
  • 제임스 다아시 프리먼
  • 에드워드 클랜시
  • 에드워드 캐시디
  • 존 테리
  • 존 맥엔크로
  • 대니얼 파워
  • 찰스 데이비스
  • 조지 펠

참조

[1] 웹사이트 Metropolitan Archdiocese of Sydney http://www.gcatholic[...] 2011-01-15
[2] 서적 Ecclesia Cathedralis Sydneyensis ad Basilicae Minoris Dignitatem Evehitur https://www.vatican.[...] The Holy See 2012-08-29
[3] NSW SHR St. Mary's Catholic Cathedral and Chapter House 2018-10-14
[4] 뉴스 A threat to the bells of St Mary's https://news.google.[...] 2016-05-02
[5] 간행물 For a godly purpose: planning Saint Mary's Chapel in old Sydney-town https://australianca[...] 2022
[6] 문서 Polding's letter to Wardell, 10 October 1865
[7] 문서 McAteer, B. "The laying of the foundation stone of St Mary's Cathedral 1868". ''Journal of the Australian Catholic Historical Society''. 19 (1998) 7–8.
[8] 문서 The Heritage of Australia Macmillan Company
[9] 서적 Joseph Lyons: THe People's Prime Minister UNSW Press
[10] 간행물 The story of St Mary's spires – the completion of Polding's program 2022
[11] 뉴스 Pope apologises for 'evil' of child sex abuse http://www.google.co[...] 2016-05-02
[12] 뉴스 Pope apologises for Church sex abuse http://uk.reuters.co[...] 2016-05-02
[13] 뉴스 Chilling terror act brought central Sydney to a halt http://www.theaustra[...] 2016-05-03
[14] 뉴스 Sydney siege: 'Hell has touched us' http://www.theaustra[...] 2016-05-03
[15] 뉴스 Chilling terror act brought central Sydney to a halt http://www.theaustra[...] 2016-05-03
[16] 뉴스 Memorial service at St Mary's Cathedral for Sydney hostage victims http://www.abc.net.a[...] 2014-12-19
[17] 뉴스 TV talent shows have nothing on the St Mary's Cathedral Choir when it comes to uncovering our young singing stars http://www.dailytele[...] 2016-05-02
[18] 뉴스 Christmas Services http://nla.gov.au/nl[...] 2021-09-01
[19] 웹사이트 Sydney, Basilica of S Mary http://dove.cccbr.or[...] 2022-05-16
[20] 웹사이트 The Bells of St Mary's Cathedral, Sydney http://www.stmarysca[...] St Mary's Basilica Society of Change Ringers 2008-07-15
[21] Dove's Guide for Church Bell Ringers Adelaide, RC Cath Ch of S Francis Xavier http://dove.cccbr.or[...] 2008-07-15
[22] 웹사이트 The Cathedral Bells https://web.archive.[...] 2008-07-19
[23] 웹사이트 Bell ringers http://www.stmarysca[...] St Mary's Cathedral 2014-04-03
[24] 웹사이트 The Bell Ringers of St. Mary's http://www.abc.net.a[...] ABC Radio National 2014-04-09
[25] 문서 State Projects, 1995
[26] 문서 Bennett, 1987.
[27] 웹사이트 Christmas at the Cathedral set to celebrate with the Twelve Days of Christmas https://catholicoutl[...] 2023-12-1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