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응모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안응모는 대한민국 경찰 순경으로 시작하여 내무부 치안본부장,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단국대학교 총동창회 회장, 안중근 의사 숭모회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2024년 8월 14일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1991년 강경대 치사 사건으로 내무부 장관에서 경질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치안본부장 - 염보현
- 대한민국의 치안본부장 - 조종석
조종석은 건국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경찰공무원으로 치안본부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었으나, 국회의원 당선 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 처리되었다. - 대한민국의 조달청장 - 권오규 (1952년)
권오규는 1952년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공직에 입문하여 대통령비서실 정책수석비서관, 경제정책 수석비서관, 정책실장을 거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 대한민국의 조달청장 - 임창열
임창열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경제학자, 행정가로서, 여러 정부 부처 차관, 장관, 경기도지사, 언론사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 대한민국의 국가안전기획부 차장 - 이학봉
이학봉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2.12 군사 반란과 5.17 쿠데타에서 신군부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며, 징역형을 선고받고 사면 후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 대한민국의 국가안전기획부 차장 - 이병기 (1947년)
이병기(1947년)는 대한민국의 외교관, 정치인, 공무원으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공직에 입문, 대통령비서실 의전수석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 제2차장, 주일본 대사, 국가정보원장,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에 관여했으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유용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 이력
본관은 순흥이며 호는 송주(松洲)·차돌이·해산(海山)이다. 1968년 베트남 공화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근무하여 잠시 외교관의 길을 걸었으며, 제7대 내무부 치안본부장과 제53대 내무부 장관(1990년 3월 ~ 1991년 4월)을 역임하였다.[1]
"'''대한민국 경찰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안응모'''는 대한민국 경찰 순경에서 시작하여 치안본부장,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충남도지사, 조달청장, 내무부 장관까지 지낸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1] 1992년 5월 23일부터 2010년 4월 22일까지 단국대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경찰 치안총감 출신인 그는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2024년 8월 14일에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3. 학력
4. 경력
5. 강경대 치사 사건
1991년 명지대학교 등록금 분쟁으로 촉발된 시위 도중, 4월 24일 상명여대(현 상명대학교)에서 열린 학원자주화 집회에서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광철이 연행되었다. 이틀 뒤인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총학생회장 석방을 위한 시위가 벌어졌고,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관들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학생 강경대는 쇠파이프에 맞아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하였다.[2][3] 4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은 이 사건의 책임을 물어 안응모 내무부 장관을 경질하였다.
5. 1. 사건의 전개
1991년 4월 24일 상명여대(현 상명대학교)에서 학원자주화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서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광철이 지지 연설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연행되었다. 이틀 뒤인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총학생회장 석방을 위한 구출대회가 열렸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이 진압을 시도했다.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관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시위 진압을 시작했다. 당시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학생 강경대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학교 쪽으로 도망치기 위해 1.5m 높이의 담을 넘으려다 경찰에 붙잡혀 쇠파이프로 구타당한 뒤 방치되었다. 다른 학생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으나 한 시간 만에 사망하였다.[2][3]
이 사건은 우발적으로 발생했지만, 다음날인 4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은 사건의 책임을 물어 안응모 내무부 장관을 경질했다.
5. 2. 결과 및 영향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총학생회장 석방을 위한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이 진압을 시도했다.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관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시위 진압을 시작했고, 당시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학생 강경대는 쇠파이프로 구타당한 뒤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 시간 만에 사망하였다.[2][3]사건 다음 날인 4월 27일, 노태우 대통령은 사건의 책임을 물어 안응모를 내무부 장관에서 경질하였다.
6. 상훈
7. 가족 관계
참조
[1]
뉴스
‘경찰의 살아있는 전설’ 안응모 전 장관 특강
http://www.asiae.co.[...]
아시아경제
2009-12-08
[2]
뉴스인용
시위학생 상처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https://web.archive.[...]
MBC 뉴스데스크
1991-04-26
[3]
뉴스인용
경찰, 백골단 폭행에 의한 명지대 강경대군 타살 확인
https://web.archive.[...]
MBC 뉴스데스크
1991-04-2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