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루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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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베르 루셀은 프랑스의 작곡가로, 생애 초기에는 해군 장교로 복무하며 동양을 경험했다. 이후 음악가로 전향하여 파리 스콜라 칸토룸에서 뱅상 당디에게 작곡을 배우고, 에릭 사티, 에드가 바레즈 등을 가르쳤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노르망디에 정착하여 작곡에 전념했으며, 만년에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작품은 세 시기로 구분되며, 초기에는 프랑크와 바그너의 영향을, 중기에는 인상주의와 스콜라풍의 결합을 보였고, 후기에는 고전주의를 바탕으로 개성적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발레 "거미의 향연",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아이네아스"와 4개의 교향곡 등이 있으며, 그의 음악은 견고한 구조와 다양한 표현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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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루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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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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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9년 4월 5일 |
출생지 | 투르코앵 |
사망지 | 루앙 |
직업 | 작곡가 |
음악 경력 | |
장르 | 클래식 음악 |
관련 인물 | |
영향 | 뱅상 당디 클로드 드뷔시 에릭 사티 |
2. 생애
1869년 프랑스 북부 투르쿠앙에서 태어난 알베르 루셀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숙부 밑에서 자랐다. 숙부는 루셀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고,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처음에는 음악가의 길을 걷지 않았다. 바다를 동경하여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 장교가 되어 동양으로 항해하기도 했다. 1889년과 1890년에는 프리깃함 ''이피제니''호의 승무원으로 남부 베트남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1894년 해군에서 퇴역한 후, 루베에서 줄리앙 코즐(앙리 뒤티외의 할아버지)에게 화성학을 배웠다. 코즐은 외젠 지구와 함께 파리에서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이후 1908년까지 파리 스콜라 칸토룸에서 뱅상 당디에게 배우며 음악 공부를 계속했다. 스콜라 칸토룸 재학 중에는 이미 대위법 강의를 맡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으며, 에리크 사티, 에드가르 바레즈 등 훗날 유명한 작곡가들을 가르치기도 했다.[1]
1908년 결혼 후, 1909년부터 1911년까지 아내와 함께 유럽 각지와 동양을 여행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하자, 퇴역 상태였으나 참전하여 서부 전선에서 구급차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전쟁 후 노르망디에 별장을 구입하고 그곳에서 작곡에 전념했다.
만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창작력은 더욱 왕성해졌다. 1937년 8월 23일, 루아양에서 사망하였으며, 사망한 해에도 현악 3중주곡을 작곡했다.
2. 1. 초기 생애와 해군 복무
1869년 프랑스 북부 투르쿠앙에서 태어난 알베르 루셀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숙부 밑에서 자랐다. 숙부는 루셀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고, 루셀은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처음에는 음악가의 길을 걷지 않았다. 그는 바다를 동경하여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 후 장교가 되어 동양으로 항해하기도 했다. 1889년과 1890년에는 프리깃함 ''이피제니''호의 승무원으로 복무하며, 남부 베트남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이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1894년 해군에서 퇴역한 후, 루셀은 루베에서 줄리앙 코즐(앙리 뒤티외의 할아버지)에게 화성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코즐은 루셀에게 외젠 지구와 함께 파리에서 공부할 것을 권유했다. 이후 루셀은 1908년까지 파리 스콜라 칸토룸에서 뱅상 당디 등에게 배우며 음악 공부를 계속했다.
2. 2. 음악가로의 전향과 스콜라 칸토룸
1869년 북프랑스의 투르쿠앙에서 태어난 루셀은 일찍 부모를 잃고 숙부 밑에서 자랐다. 숙부는 그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게 했고, 루셀은 음악적 재능을 보였지만, 처음부터 음악가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그는 바다를 동경하여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가 되어 동양으로 항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군에서 떠나 25세 때 파리로 나와 외젠 지구에게 작곡법을 배웠다.[1]수년 후, 루셀은 스콜라 칸토룸에 입학하여 뱅상 당디의 작곡법 강의를 수강하였다(1898-1907).[1] 하지만 이미 지구에게서 대위법 기술을 익힌 상태였고, 스콜라 칸토룸에 입학할 당시에는 이미 작품이 출판될 정도였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재학 중부터 대위법 강의를 맡아 1914년까지 많은 작곡 학생들을 지도했다.[1] 그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는 에리크 사티, 에드가르 바레즈 등이 있다.[1]
1908년에 결혼한 루셀은 아내와 함께 1909년부터 1911년까지 유럽 각지와 동양을 여행했다. 동양에서는 인도 음악에 관심을 갖고 그 선법을 연구하여 훗날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다 (오페라 발레 <파드마바티> 작품18, 1914-1918 등).[1]
2. 3. 결혼과 동양 여행
1908년에 루셀은 결혼하여, 아내와 함께 1909년부터 1911년까지 유럽 각지와 동양을 여행하였다. 동양에서는 인도 음악에 접하여 흥미를 가졌고, 그 선법을 연구하여 이후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다. (오페라 발레 <파드마바티> 작품 18, 1914-1918 등)[1]2. 4.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루셀은 퇴역 상태였으나 참전하였다. 그가 무사히 복무를 마친 것은 음악사에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개성이 성숙해진 것은 그 이후의 작품부터였기 때문이다.[1] 그는 서부 전선에서 구급차 운전병으로 복무했다.2. 5. 노르망디 정착과 창작 활동
1894년 해군에서 퇴역한 후, 루셀은 루베에서 줄리앙 코즐(앙리 뒤티외의 할아버지)에게 화성학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코즐은 그에게 외젠 지구와 함께 파리에서 교육을 받도록 권유했다. 이후 파리 스콜라 칸토룸에서 뱅상 당디에게 배우며, 1908년까지 공부했다. 루셀은 공부하는 동안 에릭 사티와 에드가 바레즈를 가르치기도 했다.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서부 전선에서 구급차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전쟁 후 그는 노르망디에 별장을 구입하고 그곳에서 작곡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2. 6. 만년과 죽음
루셀은 만년에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창작력은 더욱 왕성해졌다. 1937년 8월 23일, 루아양에서 사망하였으며, 사망한 해에도 현악 3중주곡을 작곡했다. 이 곡은 "프랑스 실내악곡의 가장 걸출한 작품의 하나"(뒤푸르크)로 높이 평가받는 명작이다.[1] 그는 바랑주빌-쉬르-메르의 생 발레리 교회 묘지에 묻혔다.[2]
3. 작품 경향
루셀은 기질적으로 고전주의 음악가였다. 초기 작품은 음악의 인상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점차 형식미를 강조하고 강렬한 리듬감을 추구하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했다. 그의 음악은 드뷔시, 라벨, 사티, 스트라빈스키 등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보다 기능 화성에 더 친화적인 경향을 보였다.[6]
팔레스트리나와 바흐 등 고전 음악의 엄격한 형식을 강조한 스콜라 칸토룸에서의 교육은 루셀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은 대위법적인 구성을 특징으로 하며, 관현악법은 가브리엘 포레와 같은 프랑스 작곡가들의 섬세한 스타일보다는 다소 무거운 편이다. 루셀은 관현악 작품에서 낭만주의 미학을 일부 유지했으며, 이는 스트라빈스키나 레 식스와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6]
루셀의 창작 시기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루셀은 재즈에도 관심을 보였으며,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2악장이나 미요의 ''La création du monde''와 같은 재즈풍의 작품 ''Jazz dans la nuit''를 작곡하기도 했다.[6]
3. 1. 제1기 (초기)
드뷔시, 라벨 등 인상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댕디, 프랑크 등의 영향이 짙은 시기이다. 작품 2번인 바이올린 소나타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6] 이 시기에는 바그너 외 독일음악의 영향도 엿볼 수 있다.[6]3. 2. 제2기 (중기)
Roussel프랑스어의 창작은 대략 3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제2기는 스콜라풍의 형식감이 인상파풍의 음향감과 행복한 결합을 보이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교향곡 제1번 <숲의 시> 작품7(1905-1907), 독창과 합창 및 관현악을 위한 <에보카시옹> 작품15(1910-1912), 발레곡 <거미의 향연> 작품17(1912) 등을 작곡했다. 제2기는 드뷔시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러한 시기에서도 확연한 형태와 선적(linearity)인 사고(thought)와 생명력에 찬 리듬에의 개성적인 추구가 두드러진다.[6]이 시기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작품 번호 | 작품 제목 | 작곡 연도 |
---|---|---|
작품 33 | 모음곡 바장조 | 1926 |
작품 37 | 피아노 협주곡 | 1927 |
작품 37 | <시편 80번> | 1928 |
작품 39 | 관현악을 위한 소모음곡 | 1929 |
작품 40 | 플루트 3중주곡 | 1929 |
작품 45 | 현악 4중주곡 | 1931-1932 |
작품 46 |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과 푸가(바흐에 헌정함)> | 1932-1934 |
작품 53 | 교향곡 제4번 | 1934 |
작품 57 | 첼로 협주곡 | 1936 |
3. 3. 제3기 (후기)
루셀은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적인 성숙을 보인 제3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에는 고전적인 의지를 바탕으로 바흐와 베토벤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한편, 이국적인 선율이나 다조성, 무조성적인 음 처리 기법을 도입하여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추구했다.제3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교향곡 3번(1929-1930)이 있으며, 이 작품은 당시 프랑스 음악계에 교향곡과 실내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발레곡 <바카느와 아리안느> 작품43(1930)과 <아이네아스> 작품54(1935)는 루셀 특유의 리듬감과 화려한 관현악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발레곡들은 제3기의 교향곡, 모음곡, 협주곡과 더불어 루셀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으로는 모음곡 바장조 작품33(1926), 피아노 협주곡 작품37(1927), <시편 80번> 작품37(1928), 관현악을 위한 소모음곡 작품39(1929), 플루트 3중주곡 작품40(1929), 현악 4중주곡 작품45(1931-1932), 피아노를 위한 <전주곡과 푸가(바흐에 헌정함)> 작품46(1932-1934), 교향곡 제4번 작품53(1934), 첼로 협주곡 작품57(1936) 등이 있다.
루셀은 재즈에도 관심을 보여 '밤의 재즈[6]'(작품 38, L. 49)라는 가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4. 주요 작품 목록
루셀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오페라
- * 파드마바티
- * 리라의 탄생
- * 카롤린 이모의 유언
- 발레
- * 거미의 향연
- *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 * 아이네이아스
- 교향곡
- * 교향곡 1번 라단조 "숲의 시"
- * 교향곡 2번 내림 나장조
- * 교향곡 3번 사단조
- * 교향곡 4번 가장조
- 관현악곡
- * 관현악 모음곡 바장조
- * 신포니에타 라단조
- * 피아노 협주곡 사장조
- * 콘체르티노 다장조
- * 시편 80편
- 실내악곡
- * 세레나데 다장조
- * 현악 사중주 라장조
- * 현악 삼중주 가단조
- * 플루트, 비올라, 첼로를 위한 삼중주 바장조
- * 바이올린 소나타 2번 가장조
- * 플루트 연주자들
- * 세 개의 소품
- 피아노곡
- * 전주곡과 푸가
- * 소나티네
- * 뮤즈들의 환영
- * 모음곡 올림 바장조
- * 세고비아(Ségovia)
- * 즉흥곡
- 그 밖의 가곡 피아노곡에도 좋은 곡이 있다.
4. 1. 오페라
- 파드마바티'', 2막 오페라 (1913–1918, 루이 라로이, T.-M. 파비에 원작). 초연: 파리 오페라, 1923년 6월 1일, 작품번호 18
- 리라의 탄생'', 1막 오페라, 파리 오페라, 1925년 7월 1일, 작품번호 24[1]
- 카롤린 이모의 유언'', 3막 오페라, 1936년 11월 14일[2]
- 오페라-발레 Padmâvatî (opera)|파드마바티|Padmavati영어 작품 18, L. 20 (1914-1918년)[3]
4. 2. 발레
- 거미의 향연 Op.17 (1913)[1]
- 바쿠스와 아리아드네 Op.43 (1931)[1]
- 아이네이아스 (합창과 관현악) Op.54 (1935)[1]
루셀의 주요 발레 작품은 다음과 같다.
- 거미의 향연(Le festin de l'araignée) (1913년 초연)[1]
- 바쿠스와 아리아드네(Bacchus et Ariane) (1931년 초연)[1]
- 아이네아스(Énée) (1935년 초연)[1]
특히, <바카느와 아리안느(디오니소스와 아리아도네)>와 <아이네아스>는 리듬과 관현악법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받는다.[1]
Aeneas (Roussel)|아이네이아스프랑스어는 Aeneas|아이네이아스프랑스어로 수정함.
4. 3. 교향곡
루셀은 4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3번 사단조와 4번 가장조는 높이 평가받으며 그의 성숙한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그의 교향곡들은 다음과 같다.번호 | 제목 | 조성 | 작품 번호 | 작곡 연도 |
---|---|---|---|---|
1번 | 숲의 시 | 라단조 | Op. 7 | 1904년 ~ 1906년 |
2번 | 내림 나장조 | Op. 23 | 1919년 ~ 1921년 | |
3번 | 사단조 | Op. 42 | 1929년 ~ 1930년 | |
4번 | 가장조 | Op. 53 | 1934년 |
루셀의 창작은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제3기는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개성적인 성숙을 보인 시기이다. 이 시기에 작곡된 교향곡 3번은 그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당시 프랑스에서 교향곡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4. 4. 관현악곡
루셀의 관현악 작품으로는 4개의 교향곡이 있는데, 그중 교향곡 3번 사단조와 교향곡 4번 가장조는 높이 평가받으며 그의 성숙한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대표한다.[4] 이 외에도 여러 관현악 모음곡, 피아노 협주곡,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티노,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시편 등이 있다.루셀의 창작 시기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 제1기: 댕디, 프랑크 등의 영향이 짙었던 시기 (예: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2번)
- 제2기: 스콜라풍의 형식감과 인상파풍의 음향감이 결합된 시기 (예: 교향곡 제1번 <숲의 시> 작품 7번, <에보카시옹> 작품 15번, 발레곡 거미의 향연 작품 17번)
- 제3기: 인상파에서 벗어나 개성적인 성숙을 보인 시기 (예: 교향곡 3번 작품 42번, 발레곡 <바카느와 아리안느> 작품 43번, <아이네아스> 작품 54번)
제3기에 작곡된 교향곡 3번은 프랑스에 교향곡과 실내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주요 관현악곡은 다음과 같다.
제목 | 작품 번호 | 작곡 연도 | 비고 |
---|---|---|---|
부활 | 4 | 1903년 | 관현악을 위한 전주곡 |
교향곡 1번 라단조 "숲의 시" | 7 | 1904-1906년 | |
환기 | 15 | 1910-1911년 | 관현악, 메조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합창을 위한 작품 |
봄 축제를 위하여 | 22 | 1920년 | 교향시 |
교향곡 2번 내림 나장조 | 23 | 1919-1921년 | |
관현악 모음곡 바장조 | 33 | 1926년 | |
소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 34 | 1926-1927년 | |
피아노 협주곡 사장조 | 36 | 1927년 | |
시편 80편 | 37 | 1928년 | 관현악과 혼성 합창을 위한 작품 |
작은 모음곡 | 39 | 1929년 | |
교향곡 3번 사단조 | 42 | 1929-1930년 | 보스턴 교향악단 창단 50주년 기념 위촉[4] |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포니에타 | 52 | 1934년 | |
교향곡 4번 가장조 | 53 | 1934년 | |
플랑드르 랩소디 | 56 | 1936년 | |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콘체르티노 다장조 | 57 | 1936년 |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작품. |
4. 5. 협주곡
4. 6. 실내악
루셀의 실내악 작품은 그의 음악적 발전 과정을 잘 보여준다. 초기에는 인상주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지만, 점차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해 나갔다. 그의 작품은 기능 화성에 대한 친화성을 가지며, 팔레스트리나와 바흐와 같은 학문적 모델을 강조하는 숄라 칸토룸에서의 훈련은 그의 성숙한 스타일에 흔적을 남겼으며, 이는 대위법적인 질감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또한 재즈에도 관심이 있어 ''Jazz dans la nuit''라는 피아노-보컬 작품을 쓰기도 했다.작품 번호 | 작품명 | 악기 구성 |
---|---|---|
Op.2 | 피아노 3중주 내림 마장조 | 피아노 3중주 (1902, 27년에 개작) |
Op.11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라단조 | 바이올린, 피아노 (1907~8) |
Op.21 | 즉흥곡 | 하프 (191) |
Op.27 | 플루트 연주자들 | 플루트, 피아노 (1924) |
Op.28 | 바이올린 소나타 2번 가장조 | 바이올린, 피아노 (1924) |
Op.29 | 세고비아 | 기타 (1925) |
바순과 더블베이스를 위한 이중주 | 바순, 더블베이스 (1925) | |
Op.30 | 세레나데 | 플루트, 현악 3중주, 하프 (1925) |
Op.40 | 플루트, 비올라, 첼로를 위한 3중주 | 플루트, 비올라, 첼로 (1929) |
Op.45 | 현악 4중주 | 현악 4중주 (1931~2) |
Op.51 | 안단테와 스케르초 | 플루트, 피아노 (1934) |
피페 | 피콜로, 피아노 (1934) | |
Op.58 | 현악 3중주 | 현악 3중주 (1937) |
4. 7. 피아노
루셀의 피아노 작품으로는 〈인형 이야기〉 (1904), 〈시골풍〉 Op.5(1906), 모음곡 올림 바단조 Op.14(1910), 소나티나 Op.16(1914), 〈전주곡과 푸가〉 Op.46(1932), 세 개의 소품 Op.49(1933) 등이 있다.4. 8. 합창
4. 9. 가곡
- 《4개의 시》(Quatre poèmes), Op. 3 (1903)[1]
- 《4개의 시》(Quatre poèmes), Op. 8 (1907)[1]
- 《위협》(La Menace), Op. 9 (1907–1908)[2]
- 《불꽃》(Flammes), Op. 10 (1908)[1]
- 《두 개의 중국 시》(Deux Poèmes chinois), Op. 12 (1908)[1]
- 《두 개의 멜로디》(Deux Mélodies), Op. 19 (1918)[1]
- 《두 개의 멜로디》(Deux Mélodies), Op. 20 (1919)[1]
- 《롱사르의 두 개의 시》(Deux Poèmes de Ronsard), Op. 26 (1924)[2]
- 《아나크레온 송가》(Odes anacréontiques), Op. 31 (1926)[2]
- 《아나크레온 송가》(Odes anacréontiques), Op. 32 (1926)[2]
- 《두 개의 중국 시》(Deux poèmes chinois), Op. 35 (1927)[1]
- 《보컬리제》(Vocalise) (1927)[2]
- 《밤의 재즈》(Jazz dans la nuit), Op. 38 (1928)[1]
- 《보컬리제-에튀드》(Vocalise-étude) (1928)[2]
- 《내 딸에게 준 꽃》(A Flower Given to My Daughter) (1931)[2]
- 《두 개의 목가》(Deux Idylles), Op. 44 (1932)[1]
- 《두 개의 중국 시》(Deux Poèmes chinois), Op. 47 (1932)[1]
- 《두 개의 멜로디》(Deux Mélodies), Op. 50 (1934)[1]
- 《두 개의 멜로디》(Deux Mélodies), Op. 55 (1935)[1]
루셀은 재즈에도 관심이 있어서,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2악장이나 미요의 ''La création du monde''와 같은 재즈에서 영감을 받은 다른 작품과 유사한 ''Jazz dans la nuit''라는 피아노-보컬 작품을 썼다.[2]
5. 평가
세사르 프랑크의 음악 구조와 드뷔시의 울림과 선법 처리에 영향을 받았지만, 인상주의적 표현 속에서도 선을 묘사하는 독자성을 유지했다. 프랑크처럼 늦게 개성적인 양식을 확립하여, 상반된 영향을 훌륭하게 종합하고 소화하여 크고 격조 높은 고전적이고 견고한 음악을 구축했다. 이러한 점에서 폴 뒤카의 정신적 후계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1929년, 프랑스 평론가 앙리 프뤼니에르는 루셀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의 작품은 관능적인 매력이 부족하여 드뷔시나 라벨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중요하고 매력적인 프랑스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그의 음악은 반복해서 들을수록 미묘한 리듬의 생동감으로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는 화려함, 톡 쏘는 듯함, 부드러움, 날카로움, 건조함, 유머러스함 등 다채로운 표현을 구사한다. 피아노 모음곡(작품 14, 1911)은 옛 춤 형식에 대한 그의 숙련도를 보여주며, 발레 악보 ''거미의 향연''(작품 17, 1913)과 ''바쿠스와 아리아드네''(작품 43, 1931)는 생동감 넘치고 회화적이다. 제3번과 제4번 교향곡은 프랑스 교향곡에 대한 최고의 기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3]
21세기 한 평론가는 제3 교향곡에 대해 "일반 대중에게 루셀은 거의 유명한 존재로 남아 있으며, 그의 작품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레퍼토리의 범위를 약간 벗어난다"고 평하며, 그의 음악이 기억할 만한 것과 잊을 수 없는 것 사이의 경계에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의 작곡이 관련 없는 조성을 대치시키면서도 결국 강력한 조성을 찾고, 활기 넘치는 에너지의 축제와 같은 비바체 악장을 통해 단순한 반(反) 19세기 반항자 그 이상이었다고 평가했다.[4]
참조
[1]
뉴스
What Do You Play in the Evening? Serenades. Moonlight Becomes Them
https://query.nytime[...]
New York Times
2007-02-08
[2]
서적
The Macmillan Encyclopedia of Music and Musicians
The Macmillan Company
[3]
서적
The Essential Canon of Classical Music
North Point Press
2001
[4]
뉴스
The Boston Symphony Reunites With Friends at Tanglewood
https://www.nytimes.[...]
New York Times
2006-07-11
[5]
웹사이트
Home • KBR
http://www.kbr.be
Kbr.be
2023-02-12
[6]
웹사이트
アルベール・ルーセル・エディション(11CD)
https://www.hmv.co.j[...]
HMV Japan
202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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