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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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시선은 사설 철도 회사인 다사도 철도에 의해 1939년 신의주역~양시역 구간으로 처음 개통되었으며, 이후 남시역까지 연장되었다. 1943년 조선총독부 철도에 의해 국유화되었고, 해방 이후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에 의해 국유화되어 조선국유철도에 편입되었다. 양시선을 경유하는 노선이 평의선보다 거리가 짧아 노선이 재배치되었고, 1964년 백마선이 분리되었다. 룡천역과 염주역은 각각 양시역과 남시역의 현재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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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시선 | |
|---|---|
| 노선 정보 | |
| 노선 이름 | 양시선 (楊市線) |
| 로마자 표기 | Yangsi-seon |
| 노선 종류 | 여객 철도, 지역 철도, 화물 철도 |
| 운영 | 다사도 철도 (1940–1945) 조선총독부 철도 (1943–1945, 일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 (1945년 이후) |
| 노선 상태 | 병합; 본문 참조 |
| 개통일 | 1940년 10월 29일 |
| 노선 길이 | 28.7km |
| 선로 수 | 단선 |
| 노선도 | |
![]() | |
| 역 목록 | |
| 기점 | 남시 (염주) |
| 종점 | 남신의주 |
| 역 수 | 9 |
2. 연혁
- 1939년 10월 31일: 다사도 철도에서 신의주역~양시역 구간과 현재의 다사도선 구간을 개통하였다.[7]
- 1940년 10월 29일: 다사도 철도에서 양시역~남시역 구간을 개통하였다.[8]
- 1943년 4월 1일: 조선총독부 철도에서 양시선(신의주-양시) 구간을 인수하여 영업을 개시하였다.[9]
- 1943년 10월 16일: 남신의주역이 경의선과 공용으로 되면서 양시선 구간은 남시역~남신의주역으로 단축되었다.[10]
- 1944년 4월 30일: 수정역, 당령역이 폐쇄되었다.[11]
- 1964년: 백마선이 분리되고 양시선이 평의선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2. 1. 일제강점기
다사도 철도는 1939년 10월 31일, 조선총독부 철도(선철) 경의선 상의 남신의주역에서 다사도항까지 양시를 경유하는 다사도선을 개통하였다.[2] 이는 압록강이 겨울에 얼어붙기 때문에 신의주의 오지 제지 주식회사(오늘날 신의주 화학 섬유 공장)가 다사도 항을 통해 제품을 선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후 1940년 10월 29일, 다사도 철도는 양시에서 남시까지의 두 번째 노선인 '''양시선'''을 개통했는데,[3] 이 역시 선철의 경의선 상에 위치하여 평양과 경성으로 가는 본선과 연결되었다. 1943년 4월 1일, 선철은 신의주-양시 구간의 노선을 국유화했고,[4] 선철의 신설 노선과 다사도 철도의 단축된 노선 모두 "양시선"이라는 이름을 유지했으며, 다사도선은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단축되었다.2. 2. 해방 이후
다사도 철도는 1940년 10월 29일 양시에서 남시까지 노선인 양시선을 개통했다.[3] 이 노선은 조선총독부 철도(선철) 경의선 상에 위치하여 평양과 경성으로 가는 본선과 남쪽으로 연결되었다. 1943년 4월 1일, 선철은 신의주-양시 구간을 국유화했다.[4]한국의 분단 이후 이 노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 내에 있게 되었고, 1946년 8월 10일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에 의해 국유화되어 조선국유철도(국철)가 설립되었다.[5] 당시 선철과 다사도 철도의 양시선 구간은 다시 합병되어 남신의주에서 남시까지의 원래 노선으로 되돌아갔다. 양시선을 경유한 남신의주와 남시 사이의 거리가 백마를 경유하는 기존의 평의선 노선보다 거의 11km 더 짧았기 때문에, 국철은 노선을 재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양시선은 평의선의 일부가 되었고, 기존의 남신의주-백마-양시 구간은 분리되어 1964년에 백마선이 되었다.[1] 구 양시선의 전철화는 같은 해에 완료되었다.[6] 양시역과 남시역은 1964년 이후 각각 룡천, 염주로 현재의 명칭을 얻었다.
3. 역 목록
신의주강안선(강안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