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큐티브 아웃컴즈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엑스큐티브 아웃컴즈(Executive Outcomes, EO)는 1989년 남아프리카 국경 전쟁 종식 후 설립된 민간 군사 기업으로, 앙골라 내전과 시에라리온 내전 등 아프리카 분쟁에 개입하여 군사적 효율성을 보였다. EO는 1990년대에 앙골라 정부군 훈련과 UNITA 소탕 작전을 수행했으며, 시에라리온에서는 RUF 반군을 진압하고 다이아몬드 광산을 탈환했다. EO는 1998년 외국 군사 지원 규제법 위반으로 해산되었으나, 2020년 창업자에 의해 재설립되었다. EO의 등장은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블랙워터와 같은 다른 민간 군사 기업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EO의 활동은 긍정적인 군사적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문제와 분쟁 악화 가능성으로 인해 국제 규제 및 감시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낳았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민간군사기업 - 용병
용병은 금전적 보상을 받고 고용되어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으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민간군사기업을 통해 기업화되기도 하지만 국제법상 전투원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범죄로 규정된다. - 민간군사기업 - 바그너 그룹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당시 등장한 러시아의 민간 군사 기업인 바그너 그룹은 드미트리 우트킨과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주요 인물로, 우크라이나, 시리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활동하며 전쟁범죄 혐의와 제재를 받았고, 2023년 무장 반란 후 벨라루스로 이동, 프리고진 사망 후 러시아 정부에 의해 사실상 국유화되었다.
엑스큐티브 아웃컴즈 | |
---|---|
기본 정보 | |
![]() | |
회사명 | 에그제큐티브 아웃컴즈 |
원어 | Executive Outcomes |
종류 | 민간군사기업 |
설립 | 1989년, 2020년 (재설립) |
창립자 | 이븐 발로우 |
서비스 | 보안 관리, 풀 서비스 위험 관리 컨설팅 |
사업 지역 | 아프리카 (앙골라 & 시에라리온) |
산업 | 민간 군사 및 보안 계약 |
제품 | 병력 및 장비 제공, 법 집행 및 훈련, 병참, 근접 전투 훈련 및 보안 서비스 |
직원 수 | 2,000명 이상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추가 정보 | |
직원수 | 3500명 정도 (전투요원 3000명, 군사 고문 500명) |
지점 | 1개 (런던) |
관계자 | 팀 스파이서 사이먼 맨 |
주요 자회사 | 아이비스 에어 어드밴스 커뮤니케이션 사라센 인터내셔널 알파5 라이프가드 |
서비스 | |
제공 서비스 | 군사 컨설팅 위험 관리 군사 훈련 전투 행위 |
2. 역사
1989년 프레데릭 빌렘 데 클레르크 정권이 앙골라, 모잠비크, 남서아프리카와의 국경 분쟁을 종식하고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및 군축을 선언하면서, 구 남아프리카 국방군(South African Defence Force: 약칭 SADF, 이하 구 국방군[23]) 제32대대의 전 부사령관 중령이었던 '''이벤 바로우'''가 엑스큐티브 아웃컴즈(EO)를 설립했다.
이후 대통령이 된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넬슨 만델라는 제32대대를 비롯한 특수부대와 시민 협력국(Civil Cooperation Bureau)과 같은 첩보 기관의 해산을 요구하였고, 그 결과 남서아프리카 경찰 비정규전 부대가 나미비아 협상의 도구로 해체되었으며, 제32대대 또한 1993년 3월 26일 해체될 때까지 점차 규모가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EO는 구 남아프리카 국방군과 남서아프리카 경찰 비정규전 부대에 소속되었던 병사들을 채용하였다. 특히 바로우가 부사령관을 역임했던 제32대대 등 정예 부대 출신 병사들을 많이 고용함으로써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들 중 다수는 앙골라 내전 등에서 가족과 재산을 잃고, 탈출하여 구 남아프리카 국방군에 배속된 후 실직한 흑인 병사들이었다. 군사 고문 및 지휘관으로는 그들을 지휘했던 백인 장교 및 부사관들이 주로 고용되었다. 또한, 남아프리카인 이외에도 우크라이나인 헬리콥터 조종사 및 정비사가 채용되었다.
1994년에는 게릴라 집단에서 정당으로 변신한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무장 조직이었던 움콘토 위 시즈웨 소속 인원도 채용하였다.
EO는 20개 이상의 민간 군사 회사를 보유한 남아프리카 광산 개발 회사 SRC의 자회사가 되었으며, 공동 경영자인 이 경영하는 석유 회사 헤리티지 오일 및 광산 개발 회사 브랜치 헤리티지 그룹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2. 1. 배경
1989년 앙골라와 나미비아에서 남아프리카 국경 전쟁이 끝난 후,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방위군의 광범위한 감축을 고려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 아파르트헤이트 제도가 해체되면서 이러한 초기 감축은 빠르게 가속화되었다. 아프리카 민족회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는 당시 남아프리카 대통령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에게 제32대대와 코에보엣과 같은 남아프리카와 남서아프리카 특수부대를 해체할 것을 요구했다. 그중 하나는 정부 반대파 암살을 포함한 비밀 작전을 수행하고, 해외 위장 회사를 설립하여 유엔의 아파르트헤이트 제재를 우회하는 활동을 했던 시민 협력국(CCB)이었다.남서아프리카 경찰(SWAPOL)의 일부였던 코에보엣만이 남서아프리카(현 나미비아)의 독립 협상의 일환으로 해체되었다. 다른 부대의 많은 구성원들이나 단순히 전직 병역 복무자들이 엑스큐티브 아웃컴즈(EO)에 고용되었다.[23]
2. 2. 편성
이벤 바로(Eeben Barlow)와 CCB 서유럽 담당자였던 마이클 멀렌은 1989년 엑스큐티브 아웃컴즈(EO)를 설립했다.[3] 초기 목표는 특수부대원들에게 특수한 비밀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바로는 데브스와나(Debswana)로부터 선발된 보안 요원 그룹에게 불법 다이아몬드 거래 조직에 잠입 및 침투하는 훈련을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데브스와나가 EO가 앙골라군(FAA)을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즉시 EO와의 계약을 취소했다.월터 할리키에 따르면, 바로의 특수부대 학생들 중 많은 수가 앙골라군 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인원을 모집하기 시작한 후 그와 함께 EO에 합류했다.
이 회사는 F. W. 데 클레르크(F. W. De Klerk) 대통령이 해산한 부대에서 많은 인원을 모집했다. 움콘토 위 시즈웨(uMkhonto we Sizwe)와 아자니아 인민해방군(Azanian People's Liberation Army)의 전 적대 세력 전투원들도 모집되었는데,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자체 구조조정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방군(South African National Defense Force) 통합 이후 실업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었다. EO는 최고조기에 약 2,000명의 전직 군인을 고용했다.
바로는 남아프리카 준비은행(South African Reserve Bank)의 압력으로 영국에 엑스큐티브 아웃컴즈 유한회사를 등록했다. 영국의 최고 기밀 정보 보고서에 "엑스큐티브 아웃컴즈는 1993년 9월 영국 사업가인 토니 버킹엄(Tony Buckingham)과 전직 영국 장교인 사이먼 맨(Simon Mann)에 의해 영국에 등록되었다"고 명시되어 있어 이 문제에 대한 혼란이 있다.[4] 버킹엄은 자신이 런던에 EO를 등록한 사실을 부인하고 EO와의 "기업적 유대"를 꾸준히 부인한다.[5]
2. 3. 주요 인물
이벤 바로우는 엑스큐티브 아웃컴즈(EO)의 설립자이자 CEO였다. 라프라스 루이팅은 CEO 부사장이었고, 니크 반 데어 버그는 바로우의 사임 후 CEO를 맡았다.[6][7] 사이먼 만, 토니 버킹엄, 데렉 윌리엄스는 바로우 및 루이팅과 함께 EO의 항공기 조달 기관이자 사실상 사설 "공군"이었던 아이비스 항공의 임원이었다.[9][10] 크라우세 스테일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기반을 둔 아이비스 항공의 이사였다.[8]3. 활동
1989년 프레데릭 빌렘 데 클레르크 정권의 군축 선언과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 당선 이후, 특수부대와 첩보기관 해산 요구가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 남아프리카 국방군(South African Defence Force: 약칭 SADF) 제32대대 부사령관 출신 이벤 바로우가 설립한 엑스큐티브 아웃컴즈(EO)는 해체 위기에 놓인 부대 출신 병사들을 채용하여 우수한 인재를 확보했다.[23]
EO는 주로 앙골라 내전 등에서 가족과 재산을 잃고 구 국방군에 합류했다가 실직한 흑인 병사들을 고용했으며, 군사 고문 및 지휘관으로는 그들을 지휘했던 백인 장교 및 부사관들을 채용했다. 남아프리카인 외에도 우크라이나인 헬리콥터 조종사 및 정비사, 1994년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무장 조직이었던 민족의 창(움콘토 위 시즈웨) 소속 인원도 채용되었다.
EO는 20개 이상의 민간 군사 회사를 보유한 남아프리카 광산 개발 회사 SRC의 자회사였으며, 공동 경영자인 토니 버킹엄이 경영하는 석유 회사 헤리티지 오일 및 광산 개발 회사 브랜치 헤리티지 그룹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EO는 앙골라와 시에라리온 정부를 비롯하여 데비어스(De Beers), 셰브론, 리오틴토(Rio Tinto Zinc), 텍사코(Texaco) 등 다국적 기업과도 계약을 맺었다.[23] 모잠비크 내전, 콘트라 전쟁, 캄보디아 내전 등에도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당시, EO는 1500명 규모의 부대를 4주 동안 하루 60만달러의 비용으로 배치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나, 실제 작전은 실행되지 않았다.
3. 1. 앙골라
1992년 제2차 유엔 앙골라 검증단의 감시 하에 앙골라에서 선거가 실시되었고,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이 승리했다. 하지만 과거 대립 상대였던 앙골라 완전독립민족동맹(UNITA)이 이에 반발하며 다시 분쟁이 발발했다.[11]1991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붕괴와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정권 수립 등으로 많은 국가들이 양측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정부군인 MPLA는 북부의 유전을, UNITA는 남부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전쟁 자금원으로 삼으면서 내전은 자원 전쟁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엑스큐티브 아웃컴즈(EO)는 1993년 앙골라 정부군(FAA)과 계약을 맺고 FAA 훈련과 UNITA 소탕 작전을 실행했다. 이는 EO가 소요(Soyo) 항구 도시에서 렌저 오일(Ranger Oil)의 장비 회수 작전을 지원한 후 체결된 계약이었다.[11] 남아프리카 언론은 이를 UNITA 지도자 조나스 사빔비 박사 암살 시도로 묘사했으며, EO는 UNITA의 공격을 받아 세 명의 대원을 잃기도 했다.[11]
EO의 군사 작전 결과, UNITA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 UNITA를 평화 협상에 응하게 하는 데 성공하여, 1974년 이후 20년간 지속된 앙골라 내전을 1년 만에 종식시키는 듯 했다.[11]
하지만 앙골라 내전은 애초에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 성격이 강했고, EO의 고용주인 MPLA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및 쿠바와 같은 공산권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UNITA를 지원했던 미국을 비롯한 UN의 압력으로 앙골라 정부는 EO와의 계약을 해지해야 했다.[11]
이후 EO는 국제연합의 유엔 평화유지활동(제3차 유엔 앙골라 검증단)(UNAVEM III)으로 대체되었으나, 평화유지군은 UNITA와의 강화 및 무장 해제에 실패했다. 결국 2002년 2월 22일 UNITA 지도자 조나스 사빔비가 암살되고, 같은 해 4월 4일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앙골라 내전은 계속되었다.[11]
3. 2. 시에라리온
1995년 3월, 엑스큐티브 아웃컴즈(EO)는 시에라리온에서 혁명통일전선(RUF)의 반란을 진압하고, 다이아몬드 광산을 탈환하여 평화 협상을 이끌어냈다.[12]
당시 혁명통일전선(RUF)은 학살과 약탈을 일삼으며 동부 주 등 넓은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고, 로버트 C. 맥켄지가 살해되는 등 큰 피해를 본 구르카 시큐리티 서비스를 대신하여 투입되었다. EO는 프리타운 함락 직전의 상황에서 발렌타인 스트래서가 이끄는 시에라리온 정부와 계약을 맺었다. EO는 300명의 부대를 시에라리온에 투입하여 RUF가 점령했던 다이아몬드 광산을 되찾고, 평화 협상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14]
EO는 전투원뿐만 아니라, Mi-24 하인드(Mi-24 Hind) 1대와 Mi-8 힙 헬리콥터 2대, BMP-2 보병전투차량, T-72 주력전차 등 장갑차와 지원 항공기도 제공했다.[15][16]
이후 시에라리온은 쿠데타와 선거를 거쳐 1996년 3월 아마드 테잔 카바의 민정으로 이양되었지만, 국제 여론의 반발로 EO와의 계약은 해지되었다. 1997년 1월, 시에라리온을 떠나면서 EO는 카바에게 100일 안에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5월에 RUF와 연계한 군사혁명평의회의 쿠데타로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이후 RUF의 살육이 계속되었다.[14]
3. 3. 아이비스 항공 (Ibis Air)
아이비스 에어(Ibis Air)는 EO에 항공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트너 사업체였으며, 등록번호 D2-FLZ의 보잉 727 항공기를 이용한 의료 후송 능력을 포함했다.[18] 아이비스 에어는 정찰 및 지상 공격 능력을 위해 개조된 MiG-23 "플로거" 전투기와 필라투스 PC-7 터보프롭 훈련기도 소유했으며, SNEB 공대지 로켓을 사용했다.[18] 또한 앙골라 공군이 EO에 대여한 MiG-27 "플로거" 공격기와 Su-25 "프로그풋" 근접 항공 지원 항공기 운용도 허가되었다.[18]3. 4. 기타
데비어스(De Beers), 셰브론, 리오틴토(Rio Tinto Zinc), 텍사코(Texaco) 등 다국적 기업과 계약을 맺었으며, 앙골라, 시에라리온, 인도네시아 정부도 고객이었다.[23] 모잠비크 내전, 콘트라 전쟁, 캄보디아 내전 등에도 관여했다는 주장이 있다.1994년 르완다 대학살 당시 엑스큐티브 아웃컴즈는 1500명 규모의 부대를 배치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미 해병대 선발대와 같은 규모이다. 작전 기간은 4주로 계획했고, 하루 비용은 60만달러로 추산했지만, 의뢰 기관이 없어 실행되지 않았다.
4. 해체 및 재설립
199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가 사설 군사 회사(PMC) 규제를 시행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한 배경에는 여러 남아프리카 공화국 및 국제 기업들이 엑스큐티브 아웃컴즈의 이름으로 일하는 것을 가장하고 있었던 점이 있었다. 또한 엑스큐티브 아웃컴즈는 외국 군사 지원 규제법(Regulation of Foreign Military Assistance Act) 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이 법률의 요건을 충족한다는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받았다.
엑스큐티브 아웃컴즈는 1998년 12월 31일에 해산되었으나, 2020년 11월, 창업자인 이벤 바로우는 엑스큐티브 아웃컴즈를 재가동하기 위해 STTEP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거짓말로 번영하는 언론과 정보기관을 폭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21] 바로우는 회사 재개 결정이 "일부 아프리카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며, 자신은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주장했다.[22]
이벤 바로우는 이후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서 군사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대학 및 군사학교에서 안보 문제 강사를 맡는 한편, 블로그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민간 군사 회사인 "STTEP 인터내셔널"(2006년 설립)의 사장에 취임했다.
2004년 EO사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용병 사이먼 맨(Simon Mann)과 닉 두토아(Nick du Toit)가 영국의 사업가들의 요청으로 적도 기니 쿠데타를 계획했으나 미리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이 사건에는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의 아들인 마크 대처(Mark Thatcher)가 연루되어 있었다.
EO사 전 직원인 라플라스 루틴과 빌 펠저가 경영하는 EO사의 자매 회사인 "사라센 인터내셔널"은 현재 레바논과 우간다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0년에는 소말리아에서 활동하며 푼트랜드군 해병대 창설, 군사 훈련 및 해적 대책 경비를 담당했으나, 2011년 계약이 해지되었다.
EO사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샌드라인 인터내셔널(Sandline International)사의 팀 스파이서(Tim Spicer)는 새로운 회사인 "이지스 디펜스 서비스(Aegis Defence Services)"를 설립하여 9·11 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 정부로부터 2.93억달러의 거액 계약을 따냈으나, 직원의 민간인 총격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EO사의 공동 경영자였던 토니 버킹엄은 에그제큐티브 아웃컴즈에서 얻은 노하우를 활용하여 브랜치 헤리티지 그룹 외에도 1992년 헤리티지 오일(Heritage Oil)사를 설립했는데, 2008년 헤리티지 오일이 우간다와 이라크 등의 석유 개발 사업으로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등 성공을 거두었다.
4. 1. 해체
199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는 '외국 군사 지원 규제법(Regulation of Foreign Military Assistance Act)'을 제정 및 시행하였다. 이 법은 용병 활동을 중단시키기 위해 다음 두 가지를 목표로 했다.# 사적 이익을 위한 무력 충돌에 전투원으로 직접 참여하는 것(용병의 훈련, 모집 및 사용 포함) 방지
# 해외 군사 지원 제공에 대해 국가 재래식 무기 통제 위원회(National Conventional Arms Control Committee)의 승인을 받도록 요구[19]
엑스큐티브 아웃컴즈는 이 법안 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새 법률의 요건을 충족한다는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받았다. 그러나 여러 남아프리카 공화국 및 국제 기업들이 엑스큐티브 아웃컴즈의 이름으로 일하는 것을 가장했기 때문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는 사설 군사 회사(PMC) 규제를 시행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결국 엑스큐티브 아웃컴즈는 1998년 12월 31일에 해산되었다.
4. 2. 샌드라인 인터내셔널 (Sandline International)과의 관계
1997년, 샌드라인 인터내셔널(Sandline International)은 파푸아뉴기니에서 부겐빌섬의 팡구나 광산을 점거한 반군을 축출하기 위한 작전에 대해 엑스큐티브 아웃컴즈에 하청을 주었다. 이는 정부의 용병 고용 계획이 호주 언론에 유출되면서 소위 "샌드라인 사건(Sandline affair)"으로 이어졌다.[2]파푸아뉴기니 방위군(Papua New Guinea Defence Force) 사령관인 제리 싱기록(Jerry Singirok)은 작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용병들이 도착하자마자 모두 체포하도록 명령했으며, 줄리어스 찬 경(Sir Julius Chan) 총리의 사퇴를 강요하여 파푸아뉴기니는 군사 쿠데타 직전까지 갔다.[2]
4. 3. 스털링 코퍼레이트 서비스 (Sterling Corporate Services)
2012년 7월 유엔 보고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보안회사인 스털링 코퍼레이트 서비스(Sterling Corporate Services)가 국제 협정과 소말리아 제재를 무시하고 "민간 군대"를 조직한 것을 비판했다.[20] 이 보고서는 유엔 소말리아·에리트리아 감시단(SEMG)이 작성했으며, 엑스큐티브 아웃컴즈와의 강력한 연관성을 밝혀냈다.[20]4. 4. 재설립
2020년 11월, 설립자 이벤 바로우는 STTEP 회장직에서 물러나 엑스큐티브 아웃컴즈를 재개했다. 그는 회사의 임무 중 일부가 "비밀 돈을 받고 거짓말을 일삼는 언론과 정보기관 매춘부들을 폭로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21] 바로우는 회사 재개 결정이 "몇몇 아프리카 정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22]5. 무장
EO는 주로 생산 과잉으로 가격이 저렴해진 동구권 무기를 채택했다. 소화기로는 AK-47, 마카로프 PM, PKM, RPG-7 등을 사용했다.[24] BMP-2, BTR-60, MiG-23, MiG-27, Su-25, Mi-24 하인드 등 소련제 항공기 및 전투 장갑차도 사용했다.[24]
서구권 장비로는 부상자 수송용 보잉 707과 영국제 지프 등 소수만 채택했다. EO가 사용하는 항공기는 제휴 관계에 있던 "아이비스 에어"사가 보유하고 있었다.
EO는 집속탄, 나팜탄, 열압력탄 등 고성능 폭탄을 사용했으며,[25] 적외선 방식 야간투시경을 채용하여 높은 숙련도와 파격적인 전술로 전투를 수행했다.
EO사 요원들은 정규군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위장복을 입고 전투에 임했는데, 남아프리카군 제32대대의 위장복을 사용했기 때문에 요원마다 다른 디자인의 위장복을 착용했다. 또한 백인 요원들도 얼굴을 검게 칠해 흑인으로 위장하여, 분쟁 초기에는 어느 부대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전술 조끼도 제32대대와 국방군 특수부대 여단의 것을 주로 사용했다.
6. 영향 및 평가
엑스큐티브 아웃컴즈(EO)는 소수 정예 병력으로 내전의 전세를 단기간에 뒤바꾸는 등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셰브론(Chevron)과 같은 다국적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1997년 네이비실(Navy SEALs) 출신 에릭 프린스가 설립한 블랙워터(Blackwater USA)와 같은 민간군사기업(PMC)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23]
6. 1. 긍정적 평가
Executive Outcomes영어는 뛰어난 군사적 효율성과 전문성을 보였으며, 분쟁 지역에서 단기적으로 안정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또한 아프리카 정부군의 역량 강화도 지원했다.[23]6. 2. 부정적 평가
엑스큐티브 아웃컴즈(EO)는 '용병'으로서 윤리적 문제와 인권 침해, 분쟁 악화 가능성에 대한 비판을 받는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는 이러한 민간군사기업(PMC)이 국제 안보 질서에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들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7. 참고 문헌
- P. W. 싱어 저 『전쟁 하청업체』(Corporate Warriors: The Rise of the Privatized Military Industry) ISBN 978-0801489150
참조
[1]
웹사이트
Soldiers of Fortune Ltd.: A Profile of Today's Private Sector Corporate Mercenary Firms
https://web.archive.[...]
Center for Defense Information
2015-07-29
[2]
웹사이트
The Privatisation of Violence: New mercenaries and the state
http://www.caat.org.[...]
2006-10-08
[3]
웹사이트
Eeben Barlow's autobiography: Executive Outcomes – ''Against all Odds''
http://www.galago.co[...]
2007-12-29
[4]
뉴스
Africa's new-look dogs of war
http://mg.co.za/arti[...]
Mail & Guardian
2015-07-16
[5]
웹사이트
PEACE, PROFIT OR PLUNDER? The Privatisation of Security in War-Torn African Societies :- Chapter 5: Executive Outcomes – A corporate conquest p.106, №18
https://web.archive.[...]
Institute for Security Studies in Africa
2015-07-16
[6]
웹사이트
Soldiers of Fortune Ltd.: A Profile of Today's Private Sector Corporate Mercenary Firms
https://web.archive.[...]
Center for Defense Information
2015-07-15
[7]
서적
Corporate Warriors: The Rise of the Privatized Military Industry
https://books.google[...]
Cornell University Press
2015-07-15
[8]
뉴스
Thatcher 'directly involved in coup'
https://www.theguard[...]
2015-07-16
[9]
웹사이트
Executive Outcomes
http://www.sourcewat[...]
The Center for Media and Democracy
2015-07-15
[10]
웹사이트
PEACE, PROFIT OR PLUNDER? The Privatisation of Security in War-Torn African Societies – Chapter 5: Executive Outcomes – A corporate conquest p.88
https://web.archive.[...]
Institute for Security Studies in Africa
2015-07-15
[11]
웹사이트
Company Overview of Ranger Oil Limited
https://www.bloomber[...]
Bloomberg L.P
2015-07-15
[12]
웹사이트
The New Mercenaries and the Privatization of Conflict
http://strategicstud[...]
2016-01-07
[13]
웹사이트
Conflict, Inc.: Selling the Art of War
https://web.archive.[...]
Center for Defense Information
1997-12-07
[14]
웹사이트
The vagabond king
http://www.newstates[...]
New Statesman
2012-02-02
[15]
웹사이트
Sierra Leone, 1990–2002
http://www.acig.org/[...]
Acig.org
[16]
서적
Executive Outcomes : Against All Odds
Galago
[17]
서적
War dog : fighting other people's wars : the modern mercenary in combat
https://archive.org/[...]
Casemate
[18]
서적
Corporate Warriors: The Rise of the Privatized Military Industry
https://books.google[...]
Cornell University Press
2015-07-15
[19]
간행물
Chapter 2 – The Private Military Companies' Perspective
https://publications[...]
Select Committee on Foreign Affairs
2002-08-01
[20]
뉴스
UN slams SA's 'private army'
http://www.iol.co.za[...]
IOL News
2012-09-01
[21]
웹사이트
Industry Talk: The Rebirth of Executive Outcomes! – Feral Jundi
https://feraljundi.c[...]
Feraljundi.com
2020-11-27
[22]
웹사이트
Private Military Contractor Executive Outcomes Revived After 22 Years
https://www.overtdef[...]
2020-11-27
[23]
문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종료 후의 1994년, 남아프리카 국방군은 조직 명칭을 South African National Defence Force(약칭 SANDF)로 개칭했다.
[24]
문서
EO사가 사용한 차량이나 항공기의 대부분은 계약을 맺은 국가의 소유물이었다.
[25]
문서
이러한 폭탄도 차량이나 항공기와 마찬가지로, 계약을 맺은 국가가 소유하고 있던 것을 사용했다.
[26]
웹인용
Soldiers of Fortune Ltd.: A Profile of Today's Private Sector Corporate Mercenary Firms
http://www.aloha.net[...]
Center for Defense Information
[27]
웹사이트
The Privatisation of Violence: New mercenaries and the state
http://www.caat.org.[...]
2006-10-08
[28]
웹인용
Private Military Contractor Executive Outcomes Revived After 22 Years
https://www.overtdef[...]
2020-11-2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