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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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잉 707은 보잉사가 개발한 최초의 제트 여객기로, 1950년대에 개발되어 1958년부터 1978년까지 생산되었다. 보잉 367-80을 기반으로 개발되었으며, 초기에는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했으나 이후 터보팬 엔진으로 교체되어 연료 효율을 높였다. 다양한 파생형이 존재하며, 초기에는 팬 아메리칸 항공(Pan American World Airways)에 의해 상업 운항이 시작되었다. 707은 항공 여행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나, 1970년대 말부터는 소음 규제와 와이드바디 여객기의 등장으로 인해 점차 운용이 감소했다. 군용으로도 개조되어 조기 경보기, 공중 급유기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대한항공에서도 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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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07 | |
---|---|
보잉 707 정보 | |
![]() | |
항공기 유형 | 협폭동체 여객기 |
원산지 | 미국 |
제작사 | 보잉 상업 항공기 |
첫 비행 | 1957년 12월 20일 |
도입 | 1958년 10월 26일, 팬암 |
생산 기간 | 1956년–1978년 |
현재 상태 | 군용 서비스 중 |
주요 사용자 | 팬암 |
추가 사용자 | 트랜스 월드 항공 아메리칸 항공 에어 프랑스 |
생산 대수 | 865대 (보잉 720 제외) |
개발 기반 | 보잉 367-80 |
파생형 | 보잉 720 보잉 C-137 스트래토라이너 |
개발 결과 | 보잉 E-3 센트리 보잉 E-6 머큐리 노스럽 그루먼 E-8 조인트 스타즈 |
기본 정보 | |
명칭 | 보잉 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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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 | 여객기 |
제작자 | 보잉 |
운용자 more | 팬아메리칸 항공 트랜스 월드 항공 아메리칸 항공 에어 프랑스 노스웨스트 항공 기타 |
첫 비행일 | 1957년 12월 20일 |
생산 수 | 1,010 |
운용 시작일 | 1958년 10월 26일 |
운용 상황 | 여객형은 2019년에 종료, 군용형은 운용 중 |
항공기 정보 | |
이름 | 보잉 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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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종 | 협동체 4발 제트 여객기 |
제작 | 보잉 |
첫비행 | 1957년 12월 20일 |
현황 | 생산 종료 |
주요 사용자 | 팬아메리칸 월드 항공 (퇴역) 영국해외항공 캐세이퍼시픽 항공 (퇴역) 루프트한자 (퇴역) 대한항공 (퇴역) |
생산 시기 | 1958년 ~ 1979년 |
생산 대수 | 1,010대 |
개발 원형 | 보잉 367-80 |
파생형 | C-137 스트라토라이너 E-3 센트리 E-6 머큐리 E-8 조인트스타즈 보잉 KC-135 스트래토탱커 KC-707 VC-137 |
2. 개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보잉은 B-17 플라잉 포트리스, B-29 슈퍼포트리스, B-47 스트라토제트, B-52 스트라토포트리스와 같은 군용 폭격기 개발에 주력하며 제트 엔진 기술력을 축적했다. 전쟁이 끝난 후, 민간 항공기 시장에서 더글러스 항공과 같은 경쟁사에 뒤처진 보잉은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한 4발 후퇴익 항공기인 보잉 367-80을 개발하여 경쟁에 뛰어들었다.
1949년과 1950년에 보잉은 새로운 제트 여객기 연구에 착수하여 군용 및 민간 시장 모두를 겨냥한 설계의 이점을 확인했다. 공중급유는 군용 항공기의 표준 기술이 되고 있었고, 보잉의 새로운 설계는 군사 주문을 따낼 수 있었다.[7]
보잉은 B-47과 C-97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수송/급유기의 다양한 날개와 엔진 배치를 연구했으며, 결국 367-80 "대시 80" 쿼드제트 시제기 항공기로 결정되었다. 1952년 프로젝트 시작부터 1954년 5월 14일 공개까지 2년도 채 걸리지 않았으며, 첫 번째 대시 80은 1954년 7월 15일에 비행했다.[10] 미국 공군은 KC-135 스트래토탱커 공중 급유 및 수송기의 기반으로 367-80을 사용했다.
당시 보잉의 매출은 거의 전적으로 군 계약에서 나왔기 때문에 707 여객기의 수익성은 불확실했다. 1955년 8월, 시험 조종사 텍스 존스턴이 367-80 시제기로 배럴 롤을 실시했지만, 보잉 사장 윌리엄 맥퍼슨 앨런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12]
당초 367-80의 동체 너비는 약 335.28cm로 4열 좌석 배치에 충분했지만, 보잉은 고객의 요구와 더글러스와의 경쟁을 위해 동체 너비를 약 365.76cm로 넓혀 5열 좌석 배치를 가능하게 했다.[13] 더글러스는 동체 너비가 약 373.38cm인 DC-8을 출시했고, 항공사들은 6열 좌석 배치를 선호하여 보잉은 707의 너비를 약 375.92cm로 다시 늘렸다.[14]
1957년 5월 20일, 보잉 367-80을 기반으로 보잉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보잉 707-120이 생산에 들어갔고, 1958년 9월 18일 연방항공청의 인증을 받았다.[6]
707의 원형기는 367-80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B-47 폭격기로 대형 제트기의 기본형을 확립한 보잉은, 미국 공군 최초의 대형 제트 수송기로 채택될 것을 예상하여 1940년대 후반부터 자체 자금으로 제트 수송기 개발에 착수, 1954년에 원형기 367-80(대시 80)을 처음 비행시켰다. 냉전으로 제트 폭격기가 급격히 보급됨에 따라 당시 수요가 컸던 공중급유기 사양의 KC-135로 먼저 대량 주문을 받았다.
보잉은 1952년 4월, 367-80을 개발하던 중 동체 직경을 6인치(15cm) 확대한 여객기(후의 707) 개발을 시작했다. 이는 377 이후 대형 여객기이자 최초의 제트 여객기 개발이었지만, 항공사로부터 발주를 받지 않은 채 시작된 일종의 모험이었다.
팬 암의 후안 트립 회장은 DH.106 코멧 Mk.1을 발주했으나, 코멧 항공기 사고로 생산이 중단되었기에 제트 여객기를 조기에 도입하기를 원했고 즉시 707 20대를 정식 발주했다. 초기 코멧(Mk.1/2/3)은 항속거리가 짧고, DC-6, DC-7C, 록히드 컨스텔레이션 등 기존 프로펠러기와 비슷하거나 그 이하의 여객 정원을 가졌다. 그러나 제트기는 속도뿐만 아니라 편안함에서도 프로펠러기를 압도적으로 앞선다는 것이 명확해졌고, 항공사들은 과도기적인 터보프롭기보다 본격적인 제트 여객기의 등장을 기다리게 되었다.
보잉의 신형 제트 여객기는 승객 수와 순항 속도 모두 일반적인 프로펠러기의 약 2배였고, 초기 코멧과 비교해도 수송력과 속도가 크게 앞섰다. 코멧 Mk.1 사고 조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철저한 안전 대책을 마련했고, 찰스 린드버그를 자문으로 초빙했으며, 처음부터 대서양 무착륙 횡단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데뷔 전부터 큰 인기를 누렸다. 팬 암의 정식 발주를 시작으로 아메리칸 항공, 에어 프랑스, 바르그 브라질 항공 등 세계 각국 항공사로부터 수많은 주문을 받았다.
최초 발주한 팬 암은 보잉이 대형 여객기 개발 경험이 부족하고, 최근 개발한 대형 프로펠러 여객기인 377이 사고와 고장이 잦은 문제가 많은 기체였기 때문에, 개발 실패를 대비하여 경쟁사인 더글러스 DC-8도 25대 발주했다.
보잉은 당초 신형 제트 여객기의 이름을 "700"으로 계획했으나, 광고 대행사의 이미지 전략 자문에 따라 700번대의 첫 기종임에도 "707"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보잉의 제트 여객기는 기본적으로 "7X7"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콴타스 항공은 초기 보잉 707-120의 동체를 3m 줄여 항속거리를 늘린 보잉 707-138을 요구했다.[18] 브래니프 국제항공은 프랫앤휘트니 JT4A 엔진을 탑재한 707-220을 도입했고, 영국항공은 롤스로이스 엔진을 적용한 707-400을 도입했다. 대부분의 항공사는 터보팬 엔진을 장착하여 연료 효율성을 높이고 동체를 강화한 707-320B/C를 사용했다.
2. 1. 프로토타입 개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보잉은 B-17 플라잉 포트리스, B-29 슈퍼포트리스, B-47 스트라토제트, B-52 스트라토포트리스와 같은 군용 폭격기 개발에 주력하며 제트 엔진 기술력을 축적했다. 전쟁이 끝난 후, 민간 항공기 시장에서 더글러스 항공과 같은 경쟁사에 뒤처진 보잉은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한 4발 후퇴익 항공기인 보잉 367-80을 개발하여 경쟁에 뛰어들었다.
1949년과 1950년에 보잉은 새로운 제트 여객기 연구에 착수하여 군용 및 민간 시장 모두를 겨냥한 설계의 이점을 확인했다. 공중급유는 군용 항공기의 표준 기술이 되고 있었고, 보잉의 새로운 설계는 군사 주문을 따낼 수 있었다.[7]
보잉은 새로운 수송/급유기의 다양한 날개와 엔진 배치를 연구했는데, 그중 일부는 B-47과 C-97을 기반으로 했으며, 결국 367-80 "대시 80" 쿼드제트 시제기 항공기에 정착했다. 1952년 프로젝트 시작부터 1954년 5월 14일 공개까지 2년도 채 걸리지 않았으며, 첫 번째 대시 80은 1954년 7월 15일에 비행했다.[10] 미국 공군은 KC-135 스트래토탱커 공중 급유 및 수송기의 기반으로 367-80을 사용했다.


707 여객기가 수익성이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당시 보잉의 매출은 거의 전적으로 군 계약에서 나왔다. 1955년 8월, 시험 조종사 텍스 존스턴이 367-80 시제기로 배럴 롤을 실시했지만, 보잉 사장 윌리엄 맥퍼슨 앨런에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12]
당초 367-80의 동체 너비는 약 335.28cm로 4열 좌석 배치에 충분했지만, 보잉은 고객의 요구와 더글러스와의 경쟁을 위해 동체 너비를 약 365.76cm로 넓혀 5열 좌석 배치를 가능하게 했다.[13] 더글러스는 동체 너비가 약 373.38cm인 DC-8을 출시했고, 항공사들은 6열 좌석 배치를 선호하여 보잉은 707의 너비를 약 375.92cm로 다시 늘렸다.[14]
2. 2. 생산
1957년 5월 20일, 보잉 367-80을 기반으로 보잉 최초의 제트 여객기인 보잉 707-120이 생산에 들어갔고, 1958년 9월 18일 연방항공청의 인증을 받았다.[6]707의 원형기는 367-80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B-47 폭격기로 대형 제트기의 기본형을 확립한 보잉은, 미국 공군 최초의 대형 제트 수송기로 채택될 것을 예상하여 1940년대 후반부터 자체 자금으로 제트 수송기 개발에 착수, 1954년에 원형기 367-80(대시 80)을 처음 비행시켰다.
냉전으로 제트 폭격기가 급격히 보급됨에 따라 당시 수요가 컸던 공중급유기 사양의 KC-135로 먼저 대량 주문을 받았다.
보잉은 1952년 4월, 367-80을 개발하던 중 동체 직경을 6인치(15cm) 확대한 여객기(후의 707) 개발을 시작했다. 이는 377 이후 대형 여객기이자 최초의 제트 여객기 개발이었지만, 항공사로부터 발주를 받지 않은 채 시작된 일종의 모험이었다.
팬 암의 후안 트립 회장은 즉시 20대를 정식 발주했다. 팬 암은 영국 드 하빌랜드 항공의 DH.106 코멧 Mk.1을 발주했으나, 코멧 항공기 사고로 생산이 중단되었기에 제트 여객기를 조기에 도입하기를 원했다.
초기 코멧(Mk.1/2/3)은 항속거리가 짧고, DC-6, DC-7C, 록히드 컨스텔레이션 등 기존 프로펠러기와 비슷하거나 그 이하의 여객 정원을 가졌다. 그러나 제트기는 속도뿐만 아니라 편안함에서도 프로펠러기를 압도적으로 앞선다는 것이 명확해졌고, 항공사들은 과도기적인 터보프롭기보다 본격적인 제트 여객기의 등장을 기다리게 되었다.
보잉의 신형 제트 여객기는 승객 수와 순항 속도 모두 일반적인 프로펠러기의 약 2배였고, 초기 코멧과 비교해도 수송력과 속도가 크게 앞섰다. 코멧 Mk.1 사고 조사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철저한 안전 대책을 마련했고, 찰스 린드버그를 자문으로 초빙했으며, 처음부터 대서양 무착륙 횡단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데뷔 전부터 큰 인기를 누렸다. 팬 암의 정식 발주를 시작으로 아메리칸 항공, 에어 프랑스, 바르그 브라질 항공 등 세계 각국 항공사로부터 수많은 주문을 받았다. 미국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가진 보잉이 FAA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개량형 코멧 Mk.4에 대한 운항 증명 재발급을 계속 지연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초 발주한 팬 암은 보잉이 대형 여객기 개발 경험이 부족하고, 최근 개발한 대형 프로펠러 여객기인 377이 사고와 고장이 잦은 문제가 많은 기체였기 때문에, 개발 실패를 대비하여 경쟁사인 더글러스 DC-8도 25대 발주했다.
보잉은 당초 신형 제트 여객기의 이름을 "700"으로 계획했으나, 광고 대행사의 이미지 전략 자문에 따라 700번대의 첫 기종임에도 "707"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보잉의 제트 여객기는 기본적으로 "7X7"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2. 3. 개량 개발
콴타스 항공은 초기 보잉 707-120의 동체를 3m 줄여 항속거리를 늘린 보잉 707-138을 요구했다.[18] 브래니프 국제항공은 프랫앤휘트니 JT4A 엔진을 탑재한 707-220을 도입했고, 영국항공은 롤스로이스 엔진을 적용한 707-400을 도입했다. 대부분의 항공사는 터보팬 엔진을 장착하여 연료 효율성을 높이고 동체를 강화한 707-320B/C를 사용했다.3. 엔진과 개발
강력한 제트 엔진의 장착은 더욱 거대한 동체를 가진 항공기의 제작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커다란 동체에 의한 넓은 내부 공간은 항공기 여행객들에게 전에 없었던 안락함을 선사해 주었다. 이는 항공 여객 운송에 있어 제트 여객기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보잉 707의 성공은 다른 항공기 제작사들도 제트기 개발에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기종의 개발 도중, 경쟁사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보잉은 대형 프로펠러 항공기를 개발 중인 것으로 소문을 퍼뜨렸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초기형에는 터보제트 엔진이 장착되었으나, 후기형에는 터보팬 엔진이 장착되어 연비가 개선되었다.[6] 1949년과 1950년에 보잉은 새로운 제트 여객기 연구에 착수하여 군용 및 민간 시장 모두를 겨냥한 설계의 이점을 확인했다. 공중급유는 800대 이상의 KC-97 스트래토프레이터가 주문 중일 정도로 군용 항공기의 표준 기술이 되고 있었다. KC-97은 미 공군의 새로운 제트 전투기와 폭격기 함대와의 운영에 이상적이지 않았는데, 이것이 보잉의 새로운 설계가 군사 주문을 따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7]
이 프로젝트는 프랫 앤 휘트니 JT3C 터보제트 엔진(B-52에서 성능이 입증된 J57의 민간용 버전) 덕분에 가능했다. 이 엔진은 이전 세대의 제트 엔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추력을 제공했다. 1940년대 후반 제트 엔진의 한계로 인해 부과되었던 설계 제약에서 벗어나 보잉은 견고하고 안전하며 고용량의 제트 항공기를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보잉은 새로운 수송/급유기의 다양한 날개와 엔진 배치를 연구했는데, 그중 일부는 B-47과 C-97을 기반으로 했으며, 결국 367-80 "대시 80" 쿼드제트 시제기 항공기에 정착했다.[10]
707의 원형기는 367-80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완성된 폭격기, B-47으로 대형 제트기의 기본형을 확립한 보잉은, 미국 공군 최초의 대형 제트 수송기로 채택될 것을 예상하여, 1940년대 후반부터 자사 자금으로 제트 수송기 개발에 착수하여, 1954년에 원형기 367-80(대시 80)을 초비행시켰다.
프랫 앤드 휘트니(Pratt & Whitney)는 세븐 큐 세븐(Seven Q Seven, SQS)과 오메가 에어(Omega Air)와의 합작 투자를 통해 보잉 707 기반 항공기에 대한 동력 장치 교체용으로 프랫 앤드 휘트니 JT8D(Pratt & Whitney JT8D)-219 저바이패스 터보팬 엔진을 선정하고, 개조된 구성을 707RE라고 명명했다.[26]
4. 파생형
- -120 형식: 초기 생산형으로, 프랫 앤 휘트니(P&W)의 JT3C 터보제트 엔진을 탑재했다.[6]
- -220 형식: -120 기체에 JT4A형 엔진을 탑재했으나, 연비가 나쁘다는 이유로 영국항공만 도입했다.[6]
- -320 Intercontinental 형식: -120의 동체와 날개를 연장하고 연료 탑재량을 늘려 항속거리를 늘린 발전형이다. 연료 탑재량이 증가해 항속거리가 늘어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인터콘티넨털(Intercontinental, 대륙간)이라는 애칭이 붙었다.[6]
- -320B 형식: -320에 P&W의 JT3D-3B 터보팬 엔진을 탑재한 형식이다.[6] 터보팬 엔진 채용으로 연료 효율이 크게 향상되어 항속거리가 늘어났기 때문에, 도쿄-모스크바 구간 무착륙 비행이나, 편서풍 등의 기상 조건이 맞고 적재량 제한을 하면 태평양 무착륙 비행도 가능해졌다.
- -420 형식: -320형을 기반으로 영국제 터보팬 엔진인 롤스로이스 컨웨이 Mk.508형을 탑재한 형식이다.[6] 영국 해외 항공(현재의 영국항공)의 요청에 따라 개발되었다.
- 720 형식: 당시 터보프롭 항공기와 프로펠러기가 주류를 이루던 짧은 중단거리용 항공기로의 취역을 목표로 개발됐다.[6] -120의 동체를 2.54m 줄이고, 줄어든 탑재량과 연료 적재량에 대응하여 경량화했다.
5. 운용 역사
1958년 10월 26일, 팬 아메리칸 항공이 뉴욕(존 F. 케네디 국제공항)-파리(파리-오를리 공항) 노선에 보잉 707을 처음 취항시키면서 상업 운항이 시작되었다.[18] 이는 드 해빌랜드 코멧 Mk.1의 첫 취항보다 6년 늦고, 소련의 Tu-104 취항(1956년 9월 1일)보다 2년 늦은 것이었다.
보잉 707은 더글러스 DC-8보다 1년 가까이 앞섰고, 컨베어 880보다 1년 앞섰다. 드 해빌랜드 코멧과 Tu-104, 수드 카라벨 등 유럽 기종들보다 먼저 출시되지는 못했지만, 장거리 노선용 여객기로서의 진보적인 개념과 6열 좌석 배치를 가능하게 한 막대한 수송력은 세계 주요 항공사들이 기대했던 차세대 항공기의 구현이었고, 이후 운용과 경쟁에서 크게 앞서나갔다. 1958년 10월 4일 코멧 Mk.4가 대서양 노선에 재취항했을 때, 보잉 707의 시험 비행은 임박했고, 실제로 세계 대부분의 항공사는 코멧 Mk.4가 아닌 더 큰 707이나 DC-8과 같은 신세대 제트기를 선택했다.
팬 아메리칸 항공에 이어 트랜스월드 항공, 영국항공, 노스웨스트 항공 등에서도 도입되었고, 대부분 태평양과 대서양 횡단 노선, 미국 대륙 횡단 노선 등 장거리 노선에 투입되었다.
그 결과, 미국 국내는 물론이고, 대륙 간을 이동하는 상류층 승객 대부분이 단기간에 항공 이용으로 바뀌게 되었다. 1950년대까지 퀸 메리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와 같은 대형 여객선이 큰 점유율을 차지했던 대서양 횡단 항로와 미국프레지던트라인스, 일본우편선·상선삼井(오사카상선) 등이 운항했던 태평양 횡단 정기 항로는 여객 수입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특히 대서양 횡단 항로에 미치는 영향이 컸고, 1969년 대서양 횡단 항로에 취항한 퀸 엘리자베스 2호는 퀸 메리보다 경제성을 고려하여 소형화되었고 다른 항로에도 투입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동선은 정기 항로보다 크루즈 여객선으로서의 운용을 주로 하게 되었다). 해운회사들은 수익 구조를 바꾸기 위해 미국프레지던트라인스처럼 여객 사업에서 철수하고 화물 사업에 집중하는 회사들이 잇따랐다. 또 조선업계는 화물선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등, 19세기부터 이어진 장거리 정기 여객선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민간형은 보잉 767과 보잉 757의 생산 본격화에 따라 1982년에 생산이 종료되었다. 이후에도 생산이 계속된 군용형이 1991년에 생산 종료될 때까지 33년간, 민간형과 군용형을 포함하여 1,010대가 제조되어 역사적인 베스트셀러 기종으로서의 기록을 남겼다.
1980년대 중반부터 보잉 767이나 에어버스 A310 등 신세대 항공기 도입과 노후화,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소음 규제 강화로 많은 항공기가 퇴역했다. 민간 항공기의 경우, 더글러스 DC-8처럼 CFM56 엔진으로 교체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높은 신뢰성 때문에 엔진과 항법 장치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현대화 개조를 거쳐 초도기 취항 후 60년 이상이 지난 현재에도 수 기가 화물기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란의 사하 항공은 사고로 전손될 때까지 2019년 1월까지 여객기로 운항했으며, 보잉 707을 여객 운항한 마지막 항공사가 되었다.
그 외에 미국 공군, 이스라엘 공군, 이란 공군을 비롯한 전 세계 공군과 정부에서 군용기로 개조된 기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군용기에는 저소음 엔진으로 교체한 업데이트 버전도 포함된다.
'''보잉 707 주요 운용 항공사'''
항공사 | 보유 대수 |
---|---|
팬암(Pan American World Airways) | 128 |
트랜스월드항공(Trans World Airlines) | 127 |
아메리칸항공(American Airlines) | 104 |
에어프랑스(Air France) | 41 |
노스웨스트항공(Northwest Airlines) | 36 |
콴타스항공(Qantas) | 36 |
영국해외항공(British Overseas Airways Corporation) (현재의 브리티시항공(British Airways)) | 32 |
루프트한자(Lufthansa) | 24 |
파키스탄국제항공(Pakistan International Airlines) | 23 |
브리티시 캘레도니안 항공(British Caledonian Airways) | 22 |
대한항공(Korean Air Lines) | 11 |
6. 군용 파생형
보잉 707은 군용으로 개조되어 조기 경보기, 공중 급유기 등으로 사용되었다. 미국 공군은 707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군용기를 운용했는데, 대표적인 기종은 다음과 같다.
- E-3 센트리: 조기경보통제기로, 미국 외에도 영국 공군 등에서 도입되었다.
- E-6 머큐리: 통신 중계기이다.
- E-8 J-STARS: 지상 감시를 목적으로 노스롭 그루먼이 중고 707-320을 개조한 기체이다.
- C-137: 수송기이며, 해외에서도 이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 VC-137 스트라토라이너: 케네디부터 레이건까지 28년간 "에어포스원"으로 사용된 대통령 전용기이다. 후속 기종인 VC-25가 도입된 후에도 지방 공항 비행이나 부통령, 국무장관 전용기로 사용되다가 C-32(757-200)의 취항과 함께 퇴역했다.

이 외에도 독일 공군, 이탈리아 공군, 칠레 공군, 브라질 공군, 남아프리카 공군 등 세계 각국의 공군과 정부에서 보잉 707을 채택했다. 신조기뿐만 아니라 항공사에서 퇴역한 중고 기체를 구입하여 장거리 수송, 공중급유, 시긴트 등 특수 임무용으로 개조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노후화로 인해 2000년대 이후로는 그 수가 줄고 있다.
이란 공군은 이란 혁명 이전에 보잉 707을 공중급유기로 도입하여 현재도 운용 중이며, 일부는 공중급유 장비를 제거하고 사하 항공에서 여객기로 운항되기도 했다.
이스라엘 공군은 1960년대부터 보잉 377 기반의 수송기, 전자전기, 공중급유기(KC-97) 등을 운용하다가 1970년대에 보잉 707로 교체하여 제120비행대대에서 KC-707이라는 이름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공군의 KC-707은 자체 개발한 원격 조작식 플라잉붐과 추가 연료 탱크를 갖추고 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 공군은 항속거리가 긴 보잉 707 수송기를 영국 기동 부대 탐색에 활용했으나, 영국 해군 시 해리어의 요격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했다.[74]
칠레 공군은 EL/M-2075 팔콘 조기 경보 레이더를 탑재한 EB-707 콘도르를 조기 경보기로 운용하고 있다.

KC-135와 C-135는 707의 원형기인 367-80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지만, 동체 직경이 약간 작은 등 707과는 다른 기종이다.
7. 대한민국에서의 운용
대한항공은 1970년대에 보잉 707-320C를 도입하여 국제선 노선을 확장하였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사고 기종은 707-320이며, 해당 기체는 대한항공이 자체 주문한 유일한 707 기종으로 보잉이 대한항공에 부여한 커스터머 코드(BCC)인 B5가 붙어 있었다. 나머지 707들은 타 항공사에서 임차 혹은 중고로 도입했다.[78]
7. 1. 대한항공
대한항공은 1970년대 보잉 707-320C를 도입하여 국제선 노선을 확장하였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사고 기종이 바로 이 기종이었다.[78] 대한항공은 보잉 720을 일본 노선에 투입하기도 했다.8. 제원
179 (1클래스)
202 (1클래스)
53.3kN
75.6kN
80kN
P&W JT3D-7:
84.4k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