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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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윤경은 1941년 북한에서 태어난 축구 선수로, 1966년 FIFA 월드컵에 북한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그는 미드필더 또는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1962년 북한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 40인에 선정되어 국가대표팀 후보가 되었다. 1966년 월드컵에서 8강 진출에 기여했으며, 이후 공훈체육인 및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다. 2002년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당시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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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경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오윤경 |
출생일 | 1941년 8월 6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
사망일 | 2002년 이전 |
키 | 172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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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경력 | |
포지션 | 수비수 / 미드필더 |
클럽 | 8월 8일 체육단 |
국가대표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국가대표팀 연도 | 1962년–1966년 이후 |
국가대표팀 출장수 | 58+ |
국가대표팀 득점 | (정보 없음) |
국가대표팀 명단 | |
1966년 FIFA 월드컵 | 리찬명, 박리섭, 신영규, 강봉칠, 림중선, 임성휘, 박두익, 박승진, 리근학, 강룡운, 한봉진, 김승일, 오윤경, 하정원, 양성국, 리동운, 김봉환, 계승운, 김영길, 류창길, 안세복, 리치안 |
감독 | 명례현 |
2. 초기 생애
오윤경은 1941년 8월 6일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1] 그는 국내 선수로서, 북한 최상위 리그인 8·8 체육단에서 활동했다.[1] 선수 시절 그의 키는 172cm였다.[2]
2. 1. 선수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195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966년 FIFA 월드컵 참가를 목표로 재편되었다.[3] 1962년경, 오윤경은 25만 명 이상의 선수로 구성된 북한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 4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국가대표팀 후보가 되었다.[4][5] 이들은 명래현의 지휘 아래 군 장교로 입대하여 4년 동안 훈련을 받았다.[3][4] 선수들은 엄격한 훈련과 제약을 받았다.[4]
1965년 초, 북한 리그는 월드컵 출전에 집중하기 위해 중단되었다.[4] 오윤경과 선수들은 여러 국가와의 국제 경기를 통해 경험을 쌓았다.[5] 같은 해 신흥국가경기대회(GANEFO)에서 우승하고,[5] 196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호주를 꺾고 본선에 진출했다.[6]
미드필더이자 수비수였던 오윤경은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2][7] 당시 그는 55번(또는 102번)의 국가대표 경기를 치렀다고 보도되었다.[4][7] 북한은 4조에서 소련, 칠레, 이탈리아와 경기를 치렀다.[8] 소련에 패하고 칠레와 비긴 후,[8]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신영규, 하정원, 오윤경은 산드로 마촐라 등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10] 박두익의 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진출했지만,[8][9] 포르투갈에 패했다.[8] 오윤경은 월드컵 3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하여 풀타임을 소화했다.[2]
3. 1. 1966년 FIFA 월드컵 이전
3. 2. 1966년 FIFA 월드컵
1957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966년 FIFA 월드컵 참가를 목표로 재편되었다.[3] 1962년경, 오윤경은 북한 리그 최고의 선수 4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국가대표팀 후보가 되었다.[4][5] 이들은 명래현의 지휘 아래 4년 동안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3][4] 오윤경을 비롯한 선수들은 하루 두 번 훈련을 받았고, 미혼, 금연, 금주 등의 제약을 받았다.[4]1965년 초, 북한 리그는 월드컵 출전에 집중하기 위해 중단되었다.[4] 선수들은 여러 국가와의 국제 경기를 통해 경험을 쌓았고, 같은 해 신흥국가경기대회 (GANEFO)에서 무패로 우승했다.[5] 196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호주를 꺾고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을 통과했다.[6]
미드필더이자 수비수인 오윤경은 월드컵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다.[2][7] 당시 그는 ''이브닝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55번, ''선데이 미러''는 102번의 국가대표 경기를 치렀다고 보도했다.[4][7] 4조에 속한 북한은 소련, 칠레, 이탈리아와 영국 미들즈브러의 에어썸 파크에서 경기를 치렀다.[8] 첫 경기에서 소련에 3-0으로 패하고 칠레와 1-1로 비겼다.[8] 오윤경은 칠레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2]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신영규, 하정원과 함께 산드로 마촐라 등 이탈리아 선수들과 대등하게 경기했다.[10] 박두익의 골로 1-0으로 승리하는 이변을 일으켰지만,[8][9] 8강전에서 포르투갈에 5-3으로 패했다.[8] 오윤경은 월드컵 마지막 세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하여 27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2]
4. 선수 경력 이후
오윤경은 월드컵에서의 팀 성적을 바탕으로 공훈체육인 칭호를 받았다.[11] 그러나 박두익, 신영규와 함께 북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칭호인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다.[11] 월드컵 이후 북한 대표팀이 이탈리아전 승리를 술집에서 자축하다가 감금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2002년 인터뷰에서 여러 선수들이 이를 부인했다.[12][13]
2002년, 1966년 북한 월드컵 대표팀 생존자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들이 이룬 기적''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 당시 오윤경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14]
4. 1. 월드컵 이후
오윤경은 월드컵에서의 팀 성적을 바탕으로 공훈체육인 칭호를 받았다.[11] 그러나 박두익, 신영규와 함께 북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칭호인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다.[11] 월드컵 이후 북한 대표팀이 이탈리아전 승리를 술집에서 자축하다가 감금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2002년 인터뷰에서 여러 선수들이 이를 부인했다.[12][13]2002년, 1966년 북한 월드컵 대표팀 생존자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들이 이룬 기적''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 당시 오윤경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14]
4. 2. 사망
오윤경은 월드컵에서의 팀 성적을 바탕으로 공훈체육인 칭호를 받았다.[11] 그러나 오윤경은 박두익, 신영규와 함께 북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칭호인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다.[11] 월드컵 이후 북한 대표팀이 이탈리아전 승리를 술집에서 자축하다가 감금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2002년 인터뷰에서 여러 선수들이 이를 부인했다.[12][13]2002년, 1966년 북한 월드컵 대표팀 생존자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그들이 이룬 기적''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 당시 오윤경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14]
참조
[1]
웹사이트
Yoon-Kyung Oh (Player)
https://www.national[...]
[2]
웹사이트
Oh Yoon-kyung Stats
https://fbref.com/en[...]
[3]
뉴스
England are hosts to the elite
https://www.newspape[...]
1966-01-06
[4]
뉴스
No squad better prepared than North Korea
https://www.newspape[...]
1966-05-21
[5]
뉴스
Wizard dribbler with strong shot
https://www.newspape[...]
1966-06-23
[6]
뉴스
Han Bong Jin–he dribbles like Garrincha, shoots like Charlton
https://www.newspape[...]
1966-07-08
[7]
뉴스
Meet The Twenty-Two Football Wizards From Pyongyang
https://www.newspape[...]
1966-05-08
[8]
웹사이트
When Middlesbrough hosted the 1966 World Cup Koreans
http://news.bbc.co.u[...]
BBC
2010-06-15
[9]
뉴스
North Korea in town to relive game of their lives
https://www.theguard[...]
2002-10-18
[10]
뉴스
North Koreans profit by Italy's misfortune
https://www.theguard[...]
1966-07-19
[11]
뉴스
수용소에서 만난 축구영웅
https://www.chosun.c[...]
2001-03-04
[12]
뉴스
Korea boys of '66 are alive and kicking
https://www.independ[...]
2001-11-12
[13]
뉴스
1966 World Cup Upstarts Absent but Not Forgotten
https://www.latimes.[...]
2002-06-22
[14]
뉴스
북한 월드컵 8강주역들 영국 방문
http://nk.chosun.com[...]
200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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