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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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태석은 1940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나 2022년 사망한 대한민국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이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웨딩드레스'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1984년 극단 '목화'를 창단하여 한국 전통 연극의 특징을 살린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초분', '태', '자전거' 등 한국인의 삶과 정신세계를 다룬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1968년 국립극장 장막극 공모 당선,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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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 (극작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한글 이름 | 오태석 |
한자 이름 | 吳泰錫 |
로마자 표기 | O Taeseok |
출생일 | 1940년 10월 11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
사망일 | 2022년 11월 28일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극작가 |
장르 | 희극 |
학력 | 연세대학교 철학과 |
활동 기간 | 1967년 - |
작품 | |
주요 작품 | (자전거) (필부의 꿈) (태) (춘풍의 처) |
2. 생애
1940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14][4] 1967년 단막극 《웨딩드레스》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극작가로 등단했다.[14] 이듬해에는 국립극장 장막극 공모에 《환절기》가 당선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 10살의 나이로 아버지가 납북되는 비극을 겪었으며,[3][15] 할머니와 함께 고향 서천으로 피란하여 생활했다.[15] 이 시기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3] 굿, 산대놀이, 판소리 등 한국 전통 문화를 직접 체험한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15] 오태석은 전쟁의 트라우마와 '전통의 현대화'라는 주제를 통해 단절된 한국 문화를 무대 위에서 되살리는 데 힘썼다.[14] 그의 여러 작품들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했으며, 특히 피란 시절의 경험은 희곡 자전거(1983)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15]
1984년에는 극단 '목화'를 창단하여 《아프리카》를 창단 공연으로 올리는 등 활발한 연극 활동을 이어갔다. 2022년 11월 28일, 향년 82세로 별세했다.[5]
2. 1. 출생 및 유년 시절
1940년 10월 11일,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면 선암리에서 태어났다.[14][2] 아버지는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로, 경무대 법무관이었다.[15]10살 때인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했으나, 어머니가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란을 가지 못했다.[15] 전쟁 발발 한 달 뒤인 7월 중순, 인민군이 남대문 5가에 있던 자택에 들이닥쳐 아버지를 끌고 갔고,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15][3] 당시 오태석은 장남이었고, 어머니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갓난아이를 포함한 4남매와 남겨졌다.[15] 전쟁으로 인해 한 가족의 삶이 예고 없이 비극으로 전환된 것이다.[15]
이후 종손이었던 그는 할머니를 따라 본향인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아룽구지)으로 피란을 떠났다.[15] 50일을 걸어서 도착한 집성촌에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3년을 보냈다.[15] 그는 이 시기를 “전쟁이란 걸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 걸 봤지만, 거머리 떼고 메뚜기 잡으면서 자연이란 더 큰 것을 경험했다”고 회고하며, 시골에서 보낸 3년이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15]
이 시기는 그의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세시풍속을 체화한 때이기도 하다. 굿, 산대놀이, 판소리, 무가, 설화 등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원초적인 관심이 할머니와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뿌리내렸다.[15] 또한 피란 시절 겪었던 읍내 등기소에서 주민 120여 명이 학살당한 사건, 장정들이 죽창을 들고 다니던 모습 등 10대 초반의 기억은 훗날 희곡 자전거(1983)의 모티브가 되었다.[15][3] 어린 시절 겪은 전쟁의 참상은 그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으며,[14][3] 그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여 1963년에 졸업했다.[4]
2. 2. 학창 시절 및 등단
1940년 10월 11일,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1963년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후 희곡 창작과 연극 연출을 시작했다.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웨딩드레스』가 당선되었고, 이듬해인 1968년에는 국립극장 장막극 공모에 『환절기』가 당선되어 극작가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초분』으로 한국 연극 사상 최초로 미국에서 해외 공연을 열기도 했다. 1984년에는 극단 "목화"를 창단하여 『아프리카』로 창단 공연을 열었으며, 1993년에는 극단 이름을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로 바꾸었다.2. 3. 극단 '목화' 창단 및 활동
1963년부터 1965년까지 '희로무대'를 창단하여 활동했으며, 1972년에는 동랑레파토리 극단에서 연출을 맡았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984년, 극단 '목화'를 창단하고 창단 공연으로 『아프리카』를 무대에 올렸다. 1990년에는 목화레파토리극장 충동 1, 2관을 개관했으며, 1993년에는 극단 이름을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로 변경했다. 그는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의 대표를 역임했다.[17]2. 4. 성추문 논란
2018년 2월, 오태석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성희롱과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고발이 제기되었다. 조선일보 보도 등에 따르면, 평소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해 온 일부 진보 성향 단체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침묵하거나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한, 과거 보수 성향 인물의 유사 사건에 대해 즉각 비판 성명을 냈던 일부 여성 단체 역시 이번 사건에는 침묵하여 이중잣대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법조계 및 교육 관련 시민 단체의 소극적인 대응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한 원로 연예계 관계자는 "만약 보수 성향 인사가 비슷한 일을 저질렀다면 벌써 사라졌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당시 문화예술계 및 시민 사회의 대응 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2. 5. 사망
오태석은 2022년 11월 28일, 향년 82세로 사망했다.[5]3. 작품 세계
오태석은 한국인의 삶과 정신세계를 매우 능숙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연극 연출가이자 극작가이다. 그의 희곡은 한국 전통 연극과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무대 위 등장인물들은 조용하고 현실적인 대화보다는 활기찬 노래와 춤을 추거나, 동물의 가면을 쓰고 무대를 누비는 등 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과장된 동작과 분장 역시 자주 활용된다. 이렇게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도 오태석의 작품은 고통의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를 담아내는데, 이는 그의 어린 시절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6]
오태석은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웨딩드레스''가 당선되면서 공식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듬해인 1968년에는 국립극장과 경향신문이 공동 주최한 신춘문예에서 ''환절기''가 입상했다. 1968년과 1969년에는 그의 초기 희곡들인 ''환절기'',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교행'',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 등이 여러 아방가르드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후 그는 동랑 레퍼토리 극단에 합류하여 ''루브''를 연출하는 등 연출가와 작가로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7]
4. 주요 작품
오태석은 주로 희곡을 통해 한국인의 삶과 정신세계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려냈다. 그의 작품은 한국 전통 연극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때로는 강렬하고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인다.[6] 대표적인 희곡 작품 및 해외 번역 소개는 아래 하위 섹션에서 자세히 다룬다.
4. 1. 희곡
오태석은 한국인의 삶과 정신세계를 매우 능숙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연극 연출가이자 극작가이다. 그의 희곡은 한국 전통 연극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무대에서 그의 희곡 속 등장인물들은 정적이고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는 대신, 활기찬 노래와 춤을 추거나 동물의 가면을 쓰고 무대 위를 질주한다. 과장된 동작과 분장 또한 자주 사용된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무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오태석의 작품은 고통의 어둠과 죽음의 그림자를 묘사하기도 한다. 이는 그의 어린 시절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6]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웨딩드레스》가 당선되어 공식적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1968년에는 국립극장과 경향신문이 공동 주최한 신춘문예에서 《환절기》가 입상했다. 1968년과 1969년에는 그의 희곡 《환절기》,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교행》,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가 여러 아방가르드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후 그는 동랑 레퍼토리 극단에 합류하여 《루브》를 연출하는 등 연출과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7]
주요 희곡 작품은 다음과 같다.
연도 | 작품명 |
---|---|
1967 | 웨딩드레스 [12][13] |
1968 | 환절기 |
1968 |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
1968 | 교행 |
1969 |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 |
1973 | 초분 |
1974 | 태 |
1976 | 춘풍의 처 |
1978 | 물보라 |
1982 | 한만선 |
1983 | 자전거 |
1984 | 아프리카 |
1986 | 필부의 꿈 |
1987 | 부자유친 |
1988 | 비닐하우스 |
1989 | 운상각 |
1991 |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몸을 두 번 던졌는가 |
1992 | 백구야 껑충 나지 마라 |
1993 | 백마강 달밤에 |
2002 | 내사랑 DMZ |
2005 | 용호상박 |
2010 | 템페스트 |
2016 | 도토리 |
일부 작품은 해외에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 Warum das Mädchen Sim-Tscheong zweimal ins Wasser ging|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몸을 두 번 던졌는가de
- ''Oh T'ae-sŏk's Metadrama: Five Plays from the Korean Avant-Garde'' (하와이 대학교 출판부, 1999), 김아정, 로버트 B. 그레이브스 공역. 이 책에는 《웨딩드레스》, 《초분》, 《태》, 《춘풍의 처》, 《물보라》가 수록되어 있다.
4. 2. 번역
- Warum das Mädchen Sim-Tscheong zweimal ins Wasser gingdeu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몸을 두 번 던졌는가kor)
- ''오태석의 메타문화 연극: 한국 아방가르드 연극 5선'' (하와이 대학교 출판부, 1999), 김아정, 로버트 B. 그레이브스 공역
5. 수상 내역
연도 | 상 이름 | 비고 |
---|---|---|
1967 | 조선일보 신춘문예 | 희곡 《웨딩드레스》 당선 |
1967 | 한국일보 장막희곡 | 가작 |
1968 | 국립극장·경향신문 공모 | 희곡 《환절기》 당선 |
1973 | 한국일보 연극영화상 | 작품상 (《초분》) |
1973 | 서울 평론가 그룹 | 제1회 작품상 |
1987 | 서울연극제 | 대상 |
1992 | 제28회 동아연극상 | 대상 |
1993 | 제29회 백상예술대상 | 연극 희곡상 |
1993 | 제1회 대산문학상 | 희곡부문 |
1994 | 한국예술평론가협회 | 최우수 예술가 |
2004 | 제36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 |
2005 | 제15회 호암상 | 예술상 |
2012 | 제48회 동아연극상 | 대상, 연출상[16] |
6. 경력
wikitext
연도 | 내용 |
---|---|
1963~1965 | 희로무대 창단 |
1972 | 동랑레파토리 극단 연출 |
- |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교수 |
1984 |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 창단 |
1990 | 목화레파토리극장 충동 1, 2 개관 |
1998 | 성좌극장 대표 |
1999.04 | 대통령 자문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 |
- | 극단 목화레퍼터리컴퍼니 대표[17] |
참조
[1]
웹사이트
Author Database - Korea 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http://klti.or.kr/ke[...]
2013-09-03
[2]
웹사이트
ko:오태석 교수, 연극연출가
http://people.search[...]
Naver
2013-11-13
[3]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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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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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Playwright-director Oh Tae-seok dies at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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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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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극단 ‘목화’ 창단 연극인 오태석 별세…향년 82
https://www.han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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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뉴스
正義・人権を振りかざす韓国左派系団体の二重規範
http://www.chosunonl[...]
2018-02-23
[10]
웹사이트
NAVER
http://people.search[...]
[11]
웹사이트
한국문학번역원 문인DB 오태석
http://www.klti.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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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韓国現代文学大辞典)
http://terms.naver.c[...]
[13]
웹사이트
NAVER(国語国文学資料辞典)
http://term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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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
[15]
뉴스
헤럴드 경제
http://news.heraldco[...]
[16]
웨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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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6
[17]
웨이백
http://people.search[...]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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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백
http://people.search[...]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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