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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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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호우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도군 출신의 시조 시인으로, 1940년 문예지 《문장》에 시조 〈달밤〉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예술대학에서 수학했으나 신경쇠약으로 중퇴했으며, 대구 지역 신문사에서 활동하며 지방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1955년 시조집 《이호우 시집》을 간행하고 경북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누이동생 이영도와 함께 오누이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를 발간했다. 이호우는 전통적인 시조 형식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담아 시조 시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대표작으로 〈개화〉, 〈별〉, 〈바위 앞에서〉 등이 있다. 1970년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대구 앞산공원에 시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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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호우
이호우
본명이호우
한자 표기李鎬雨
로마자 표기I Hou
출생일1912년 3월 1일
출생지경상북도청도군 (현재의 대한민국)
사망일1970년 1월 6일
국적대한민국
직업시인
학력
학교경성제일보통학교, 도쿄예술대학
경력
활동 기간1939년 – 1970년
데뷔 작품「낙엽」
작품 활동
장르
주요 작품「개화」, 「휴화산」

2. 생애

이호우는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도쿄예술대학에서 수학했으나 신경쇠약으로 중퇴했다. 1940년 <문장>지에 시조 <달밤>이 추천되어 등단했으며, 이후 주로 대구에서 신문사에 몸담고 지방 문화 창달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55년 <이호우 시집>을 간행하고 제1회 경북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누이동생 이영도와 함께 오누이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중 1권인 <휴화산>을 발간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옛 시조의 제한된 형식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나 생활의 정서를 담아 새로운 시조를 탄생시켜, 시조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970년 1월 6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2] 현대 대구 앞산공원에 그의 시비가 있다.

2. 1.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이호우는 1912년 3월 1일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태어났다.[2][3] 호는 이호우(爾豪雨)이며, 본명과는 다른 한자 표기를 사용했다. 경성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1] 도쿄예술대학에서 수학했으나 신경쇠약으로 중퇴했다.

2. 2. 등단 및 작품 활동

1940년 잡지 <문장>지에 시조 <달밤>이 추천되어 등단했다.[4] 이후 주로 대구에서 기거하면서 지역 신문사에 몸담고 지방 문화 창달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55년 <이호우 시집>을 간행하고 제1회 경북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 누이동생 이영도와 함께 오누이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중 1권인 <휴화산>을 발간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옛 시조의 제한된 형식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이나 생활의 정서를 담아 새로운 시조를 탄생시켜, 시조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으로 <개화>, <별>, <바위 앞에서> 등이 있다.

2. 3. 언론 활동

이호우는 대구일보에서 편집 및 경영진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매일신문에서 주간과 논설위원을 역임했다.[4]

2. 4. 시조 시인으로서의 업적

이호우는 대한민국의 옛 시조 형식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생활 정서를 담아 새로운 시조를 창조하여, 다른 시조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4] 대표작으로는 〈개화〉, 〈별〉, 〈바위 앞에서〉 등이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이호우의 작품과 생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이호우의 삶과 시는 시인의 끈기 있는 삶에 대한 의지, 불타는 열정, 그리고 동시대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적 인식으로 특징지어진다. 시조와 자유시의 잠재력에 대한 그의 현대적인 시적 감수성과 결합하여, 그의 시조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에게 소통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5]

1939년 동아일보가 주최하고 시인 이병기가 심사한 시조 공모전에서 이호우의 시 〈낙엽〉과 〈진달래〉가 입상했다.[6] 1940년 문예지 《문장》에 시조 〈달밤〉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6] 그는 죽순 동인과 낙강 문학에 참여했으며, 시조집 《이호우 시조집》(1955)과 《휴화산》(1968)을 출간했다.[6]

2. 5. 가족 관계

누이동생으로 이영도가 있다.

2. 6. 사망

이호우는 1970년 1월 6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2]

3. 작품 세계

이호우는 시조라는 전통적인 형식 속에 현대적인 감각을 담아낸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1939년 동아일보 시조 공모전에 〈낙엽〉과 〈진달래〉가 입상했고, 이듬해 문예지 《문장》에 〈달밤〉을 발표하며 등단했다.[6] 이후 죽순 동인과 낙강 문학에 참여했으며, 시조집 《이호우 시조집》(1955)과 《휴화산》(1968)을 출간했다.[6]

3. 1. 현실 인식과 참여 의식

이호우는 시골 생활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면서도 정서적 절제와 현실에 대한 관심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민족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기에 당대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했다.[4]

한국문학번역원은 이호우의 작품과 생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이호우의 삶과 시는 끈기 있는 삶에 대한 의지, 불타는 열정, 그리고 동시대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적 인식으로 특징지어진다. 시조와 자유시의 잠재력에 대한 그의 현대적인 시적 감수성과 결합하여, 그의 시조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에게 소통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5]

3. 2. 시조 형식의 혁신

이호우는 시골 생활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면서도 정서적 절제와 현실에 대한 관심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민족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기에 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하며 당대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작품에 반영했다.[4]

한국문학번역원은 이호우의 작품과 생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이호우의 삶과 시는 끈기 있는 삶에 대한 의지, 불타는 열정, 그리고 동시대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적 인식으로 특징지어진다. 시조와 자유시의 잠재력에 대한 현대적인 시적 감수성이 결합된 그의 시조는 사람들을 위하고 그들에게 소통하는 힘을 지녔다.[5]

1939년 동아일보가 주최하고 이병기가 심사한 시조 공모전에서 이호우의 시 "낙엽"과 "진달래"가 입상했다. 1년 뒤 이병기의 추천으로 문예지 《문장》에 시조 "달밤"을 발표하며 공식 등단했다. 이후 죽순 동인과 낙강 문학에 참여했으며, 시조집 《이호우 시조집》(1955)과 《휴화산》(1968)을 출간했다.[6]

3. 3. 주요 작품

이호우는 시조 시인으로서, 1939년 동아일보 시조 공모전에 〈낙엽〉과 〈진달래〉가 입상하고, 1940년 문예지 《문장》에 〈달밤〉을 발표하며 공식 등단했다.[6] 죽순 동인과 낙강 문학에 참여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6]

그는 단순한 시골 생활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면서도 정서적 절제와 현실에 대한 관심을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민족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의 어려운 시기에 작품을 통해 당대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4]

한국문학번역원은 이호우의 시가 끈기 있는 삶에 대한 의지, 불타는 열정, 그리고 동시대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적 인식을 특징으로 한다고 평가한다. 또한, 시조와 자유시의 잠재력에 대한 현대적인 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위하고 소통하는 힘을 지녔다고 설명한다.[5]

'''주요 시'''

  • 낙엽한국어 (1939)[9]
  • 달밤한국어 (1940)
  • 이호우 시조집한국어 (1955)
  • 휴화산한국어 (1968)

4. 수상 경력


  • 1955년 경북문화상 문학 부문 (「이호우 시조집」)[3]

참조

[1] 웹사이트 Author Database - Korea 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http://klti.or.kr/ke[...] 2013-09-03
[2] 웹사이트 Naver Search http://people.search[...] Naver 2013-11-08
[3] 웹사이트 Monument of Yi Howoo https://nam.daegu.kr[...] 2022-02-23
[4] 서적 Who's Who in Korean Literature Hollym
[5] 웹사이트 Author Database - Korea 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http://klti.or.kr/ke[...] 2013-09-03
[6] 웹사이트 Author Database - Korea 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http://klti.or.kr/ke[...] 2013-09-03
[7] 웹사이트 이호우(李鎬雨) http://encykorea.aks[...] 2022-09-07
[8] 웹사이트 이호우 http://people.search[...] 2014
[9] 웹사이트 이호우 http://terms.naver.c[...]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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